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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나님께서 받으시는 헌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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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께서 받으시는 헌물 :

말씀 : 창4:3-5. 2019년 6월 2일 일요일 오전 11시

속죄의 희생양 : 세상에서도 죄인이 감옥에서 풀려나기 위해서는 죄의 형량을 다 채우도록 감옥에 있든지 보석금을 내야 풀려납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께 죄를 지은 자들이 그 죄에서 풀려나기 위해서는 죗값을 치러야합니다. 그런데 그 죗값을 죄인 자신이 치를 수 없습니다. 그 죗값을 치르는 데는 흠도 티도 없는 순결한 어린양이어야 합니다. 이것이 곧 속죄의 희생양입니다.
사람의 죄의 근원이 어디에 있습니까? 하나님께서 첫 사람 아담에게 주신 명령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에서 나는 것은 먹지 말라. 그 나무에서 나는 것을 먹는 날에 네가 반드시 죽으리라, 하시니라.](창 2:17) 하셨습니다. 아담은 “그 나무에서 나는 것을 먹는 날에 네가 반드시 죽으리라” 하신 주님의 명령을 거역하고 그것을 먹음으로 죄를 지었으며 그 죗값으로 그들에게 사망이 임했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은혜를 베푸셔서 아담과 그의 아내 이브에게 희생물의 가죽으로 옷을 만들어 입히시므로 그들의 죄를 덮으시고 아담에게 930년의 육신의 삶을 허락하셨습니다(창5:5).
사람들은 아담이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먹은 그날 왜 죽지 않았느냐 따지는데 핵심은 먹는 날, 즉 먹는 즉시 죽음이 그에게 임한다는 말입니다“그러므로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들어왔나니 이와 같이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임하였느니라.”(롬5:12). 만약에 아담과 이브가 에덴동산에서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먹은 그날 죽었다면 저와 여러분은 이 세상에 없습니다. 온 땅에는 인류는 없고 동물의 세계만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아담이 죄를 짓기 전에 먼저 하나님께 받은 명령들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복을 주시고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다산하고 번성하여 땅을 채우라. 땅을 정복하라. 또 바다의 물고기와 공중의 날짐승과 땅 위에서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지배하라, 하시니라.](창 1:28).
아담에게 죽음이 임했지만 그가 먼저 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첫째, “다산하고 번성하여 땅을 채우라.”입니다.
아담은 930년을 살면서 아이들을 낳았습니다. 성경에 그들이 얼마나 많은 아이들을 낳았는지는 기록이 없습니다. 그들이 낳은 아이들의 이름은 처음에 가인과 아벨을 낳은 것이고 130년에 낳은 아이 이름이 “셋”입니다. 아담은 130년 동안 다산하고 번성했을 것입니다. 물론 셋을 낳은 뒤에도 800년을 더 살며 아들딸들을 낳았습니다. [아담이 셋을 낳은 뒤의 생애는 팔백 년이었으며 그가 아들딸들을 낳았더라.](창 5:4) 그는 930년 동안 살며 죽기 전에 다산하고 번성하여 땅을 채워갔습니다. 이브가 죄를 지은 뒤에 그녀에게 내린 형벌이 무엇입니까? “여자에게 이르시되, 내가 네 고통과 수태를 크게 늘리리니 네가 고통 중에 자식을 낳을 것이요,.....”(창3:16상)

둘째 명령은 “땅을 정복하라.”입니다.
그가 죄를 범한 후 에덴동산을 쫓겨나 땅을 갈았습니다. 그러나 그의 범죄로 인하여 저주받은 땅은 에덴동산과 같은 풍성한 열매를 내지 않고 가시덤불과 엉겅퀴를 내었습니다. 그렇게 농사를 지어 채소를 먹었습니다. 그가 땅으로 돌아갈 때까지 즉 죽을 때까지 얼굴에서 땀을 흘리며 빵을 먹으면서 저주받은 땅을 힘들게 정복해 나갔습니다.
[아담에게 이르시되, 네가 네 아내의 음성에 귀를 기울이고 내가 네게 명령하여 이르기를, 너는 그것에서 나는 것은 먹지 말라, 하고 말한 그 나무에서 나는 것을 먹었은즉 땅은 너로 인하여 저주를 받았고 너는 평생토록 고통 중에 땅의 소산을 먹으리라.](창 3:17) 죄를 지은 아담이 다산하고 번성할수록 그들이 사는 땅은 점점 더 넓어지겠지요.

셋째 명령은 “바다의 물고기와 공중의 날짐승과 땅 위에서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지배하라”였습니다. 아담은 모든 가축과 공중의 날짐승과 들의 모든 짐승에게 이름을 주고 그가 모든 살아있는 창조물을 부르는 것이 그것들의 이름이 되었습니다.
그는 이와 같이 모든 것들을 다스리는 왕권이 주어지는 복을 받았지만 죄를 지었고 그가 받은 왕권은 자기를 속인 사탄에게 넘어갔으며(눅4:6) 그 죄의 삯으로 사망이 임했습니다. 주께서 그에게 육신의 날을 더해 주신 것은 하나님의 은혜와 고통 중에 다산하고 번성하여 땅을 채우라는 명령을 수행하기 위함입니다. 그러나 죄인의 후손인 모든 사람들에게 죽음이 정해졌습니다. “한 번 죽는 것은 사람들에게 정해진 것이요 이것 뒤에는 심판이 있나니”(히9:27)
창조주 하나님의 명령을 거역한 죄 값으로 그에게 임한 죽음은 피할 길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가죽옷을 만들어 입힌 것은 어떤 짐승의 죽음이 있어야만 얻을 수 있는 것입니다. 희생물의 죽음은 아담의 죄를 덮어 주었으므로 한동안 그것이 죽음을 대신했습니다. [{주} [하나님]께서 또한 아담과 그의 아내에게 가죽옷을 만들어 입히시니라.](창 3:21)
그러나 그의 삶은 모든 풍요로움과 자유를 잃고 죄의 종이 되어 “평생토록 고통 중에 땅의 소산을 먹기 위해서는 땀을 흘려야 하는 삶입니다.” 그의 결국은 땅으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아울러 죄의 삯은 사망이고 피 흘림이 없이는 죄 사함이 없습니다. [이는 육체의 생명이 피에 있기 때문이니라. 내가 피를 너희에게 주어 제단 위에 뿌려 너희 혼을 위해 속죄하게 하였나니 피가 혼을 위해 속죄하느니라.](레 17:11) “내가 피를 너희에게 주어” 하나님께서 주신(허락하신) 피를 제단위에 뿌리면 사람의 죄를 보지 않으시고 제단위의 피를 보십니다. [율법을 따라 거의 모든 물건이 피로써 정결하게 되나니 피 흘림이 없은즉 사함이 없느니라.](히 9:22)
문제는 누구든지 자신의 피로는 자기의 죄 값을 치룰 수 없고 자기를 구원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자신의 피도 죄로 더러워진 피며 더더구나 자신의 피를 다 쏟는다면 그 육신의 생명 또한 죽을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육체의 생명이 피에 있기 때문이니라.”(레 17:11) 누구든지 죄 있는 사람의 피로는 그 누구의 죄 값을 치를 수 없습니다. 구원은 오직 죄 없으시고 죄를 알지도 못하시고 죄를 짓지 아니하신 하나님의 어린양이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밖에는 화해 헌물이 될 수 없습니다. 오직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피, 그분께서 받으시는 피만이 죄를 덮을 수 있습니다.
[시간이 흐른 뒤에 가인은 땅의 열매 중에서 {주}께 헌물을 가져왔고 아벨도 자기 양 떼의 첫 새끼들과 그것들의 기름 중에서 가져왔는데 {주}께서 아벨과 그의 헌물에는 관심을 가지셨으나 가인과 그의 헌물에는 관심을 갖지 아니하셨으므로 가인이 몹시 분을 내고 그의 얼굴빛이 변하니라.](창 4:3-5)
하나님께서 하늘과 땅을 창조하시고 주관하십니다. 하나님께서 하늘과 땅은 물론 동식물들과 사람을 창조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의 주인은 그것들을 지으신 하나님이십니다. 지음 받은 모든 것들의 생명까지도 하나님의 것입니다. 세상의 모든 창조물들은 창조주이신 하나님께 순종해야 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무엇이 부족하거나 필요하신 것이 없으십니다. 하나님은 믿음의 고백으로 인한 흠 없고 깨끗한 희생물을 받으십니다. 사람들이 하나님께 희생물을 드릴 때엔 그분이 원하시는 것을 드려야합니다. 내가 아무리 좋게 여기고 나에게 지극히 필요한 것일지라도 하나님께서 원하지 않으시고 받지 않으시는 것을 드리는 것은 거역이요 대적이며 불순종입니다. 사람이 하나님께 드리는 헌물은 내가 좋아 하는 것을 드리는 선물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기쁘게 받으시는 희생물이어야 합니다.
여러분들이 이해하기 어렵겠지만 제가 어릴 적에는 먹을 양식도 간식도 귀했습니다. 밥도 제대로 먹지 못하는 시대인지라 어른들에게 하는 인사가 “진지 잡수셨습니까?” 젊은이들에게 하는 인사는 “밥은 먹고 다니냐?”였습니다. 당시엔 쌀로 떡을 해 먹는 집들이 흔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쌀떡을 먹는 시기는 일 년 중 설날이나 추석이었습니다. 오직하면 “아나 떡이다”하면 자다가도 벌떡 일어난다고 했습니다. 그 시대에 산 저는 지금도 떡을 좋아합니다.
문제는 내가 떡을 좋아하니까 아내에게 선물한다는 것이 내가 가장 좋아하는 떡이었습니다. 아내도 좋아할 줄로 알았습니다. 그러나 아내는 떡을 그리 좋아하지 않았습니다. 저에게는 그것이 이해할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어떤 사람에게 선물을 하려면 그 사람이 좋아하는 것을 해야 합니다. 그것을 알지 못하고 내가 좋아하는 것을 선물로 줬다면 둘 다 실망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받으시는 헌물은 흠 없는 어린양입니다. 그것을 안 아벨은 자기 양떼의 첫 새끼들로 희생물을 드렸으며 하나님께서 받으셨습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관심사입니다. 그러나 가인은 하나님의 뜻과는 상관없이 자신이 가꾼 땅의 열매 중에서 주께 헌물을 드렸습니다. 아마 가인은 땅의 열매 중에서 가장 좋은 것들로 정성을 다하여 드렸을 것이 분명합니다. 그러나 아무리 정성을 다하고 최상품을 드렸을 지라도 하나님께서 관심을 두지 않는다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사람은 그 주인이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며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을 희생물로 드려야지 내 눈에 좋은 것, 내 마음에 드는 것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는 없습니다.
● 하나님께서 사울 왕에게 아말렉과 그 안에 있는 모든 것과 아말렉 왕 아각을 죽이라 하셨을 때 사울 왕은 자기가 보기에 좋은 것들을 죽이지 않고 하나님께 희생물로 드린다는 핑계를 대고 양과 소와 가장 좋은 것들을 끌고 왔을 때 하나님께서는 그의 불순종 때문에 그를 버리셨습니다.
[사무엘이 이르되, {주}께서 {주}의 음성에 순종하는 것만큼 번제 헌물과 희생물을 크게 기뻐하시나이까? 보소서, 순종이 희생 헌물보다 낫고 귀를 기울이는 것이 숫양의 기름보다 나으니 거역하는 것은 마술 죄와 같고 완고한 것은 불법과 우상 숭배와 같나이다. 왕이 {주}의 말씀을 버렸으므로 그분께서도 왕을 버려 왕이 되지 못하게 하셨나이다, 하더라.](삼상 15:22-23) 사람이 어떻게 전지전능하신 창조주를 버릴 수가 있습니까? 사람이 하나님을 버리는 것은 “주의 말씀을 버리는 것입니다.” 사람이 창조주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지 않는 것은 그분을 무시하고 버리는 것입니다. 하나님으로 인정하지 않는 것입니다.
◆ 미천한 비유가 되겠지만 머리카락이 하나도 없는 대머리에게 최상품의 머리핀이나 좋은 머리 기름이 무슨 소용입니까? 그에게는 선물이 아니라 조롱꺼리밖에 아무 의미가 없는 것들입니다. 골프에 미친 사람에게 고급 낚싯대는 아무런 관심이 없습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 관심 두지 않는 것을 드리는 행위는 하나님을 조롱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관심, 하나님의 뜻, 하나님의 명령을 소홀이 여기는 자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습니다.

첫 새끼들(어린양)
아벨은 하나님께 “자기 양 떼의 첫 새끼들”을 드렸습니다. 자기 양떼의 첫 새끼들을 드린다는 것은 모든 양떼를 다 드린다는 의미입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것임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수입이 생기면 제일 먼저 하나님께 드릴 것을 따로 떼어 놓습니다. 이는 물질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와 나의 모든 것이 하나님의 것이란 신앙고백입니다. 그렇게 정한 것은 그 순간부터 거룩한 것입니다. 양떼의 첫 새끼는 어린양이고 어린 양의 의미는 흠도 티도 없는 순수함과 순결을 의미합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시험하실 때 이삭이 아버지 아브라함에게 묻습니다.
[이삭이 자기 아버지 아브라함에게 말하여 이르되, 내 아버지여, 하니 그가 이르되, 내 아들아, 내가 여기 있노라, 하매 그가 이르되, 불과 나무를 보시거니와 번제 헌물로 쓸 어린양은 어디 있나이까? 하니 아브라함이 이르되, 내 아들아, 번제 헌물로 쓸 어린양은 [하나님]께서 자신을 위하여 예비하시리라, 하고 이처럼 그 두 사람이 함께 가서](창 22:7-8)
= 하나님께서 자신을 번제 헌물의 어린양으로 예비하시리라. 즉 자신을 어린양으로 드릴 것이라고 말합니다.
아버지 하나님께서 받으시는 번제헌물은 하나님께서 자신으로 예비하신다고 하셨습니다. 창조주이신 말씀 하나님께서 자신을 번제 헌물로 드리시기 위하여 육신을 입고 이 세상에 오셨고 자신을 십자가에 달려 희생물로 드리셨습니다. 이를 예언적으로 아브라함을 통해서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을 번제 헌물로 예비하시리라.” 십자가에서 흘리신 피는 실제적으로 하나님의 피 입니다. [그러므로 너희 자신과 온 양 떼에게 주의를 기울이라. [성령님]께서 너희를 그들의 감독자로 삼으사 [하나님]의 교회 곧 그분께서 자신의 피로 사신 교회를 먹이게 하셨느니라.](행 20:28) 하나님께서 자신을 희생양으로 제공할 것인데 이는 어린 양으로 오실 예수 그리스도를 말씀합니다. 어린양은 흠도 티도 없어야 하므로 죄가 없으며(히4:15, 요일3:5) 죄를 짓지도 않으며(벧전2:22) 죄를 알지도 않으신 분으로(고후5:21) 오신 예수 그리스도 뿐입니다.

출애굽의 희생 헌물 :
우리는 구약을 통해서 예언적인 희생양을 볼 수 있습니다.
[너희는 이스라엘 온 회중에게 말하여 이르라. 이 달 십일에 그들은 자기 조상들의 집에 따라 자기들을 위해 각 사람이 어린양을 취하되 한 집에 어린양 한 마리를 취할지니라. 그 어린양에 대하여 집안사람이 너무 적으면 그와 그의 집의 이웃이 혼들의 수에 따라 그것을 취하되 각 사람이 자기가 먹는 양에 따라 그 어린양에 대하여 계산할지니라. 너희의 어린양은 흠이 없고 일 년 된 수컷으로 하라. 너희는 양이나 염소 중에서 그것을 취하고](출 12:3-5)
이집트에 내려진 죽음의 저주를 피할 길은 어린양의 피를 그들이 머물 집의 양옆 기둥과 문설주, 즉 문틀 윗부분에 뿌려야합니다. [그들은 피를 취하여 그것을 먹을 집의 양옆 기둥과 위의 문기둥에 뿌리고](출 12:7) 어린양의 피가 뿌려진 집은 죽음의 저주가 희생당한 어린양의 피를 보고 그 집을 넘어갑니다. 그러므로 죄인이 죽음을 이기고 영원한 생명을 얻는 길은 오직 어린양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피 뿐입니다. 흠도 없고 티도 없는 순수한 어린양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피 아래에서만 영원한 생명을 얻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죄인들의 죄를 보시기 전에 어린양의 피를 보시는 것입니다. 그 피는 죄를 덮기 위한 죽음의 희생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 피가 너희가 거하는 집 위에 있어 너희를 위해 표가 되게 할지니라. 내가 그 피를 볼 때에 너희를 넘어가리니 내가 이집트 땅을 칠 때에 그 재앙이 너희 위에 임하여 너희를 멸하지 아니하리라.](출 12:13) 죽음의 저주가 넘어갔다 해서 유월절이라 합니다. 모든 사람은 각자가 자신의 죄 값을 치러 주시려고 십자가에서 흘린 하나님의 어린양의 보혈을 믿을 때 구원을 받습니다.

하나님께서 받지 않으시는 헌물 : 더러운 것, 부정한 것,
[너는 창녀의 품삯과 개의 몸값은 어떤 서원하는 일로든 {주} 네 [하나님]의 집에 가져오지 말라. 이 둘은 {주} 네 [하나님]께 가증한 것이니라.](신 23:18) 특별히 하나님께서 거부하시는 헌물로 창녀들의 품삯과 개의 몸값입니다. 헌물은 다 같은 헌물이 아닙니다. 돈은 다 같은 돈이 아닙니다. 거룩하신 하나님께서는 거룩한 헌물만 받으십니다. 믿지 않는 자가 점쟁이에게 복채 내듯 내는 것은 받지 않으십니다. 창녀나 개는 거룩함과는 거리가 매우 멉니다.

◆ 옛날, 동두천에서 사역하던 어느 목사님께서 사역의 고민을 제게 털어 놓은 적이 있었습니다. 당시 동두천에는 창녀촌이 있었고 창녀촌에서 일하는 창녀들 몇몇이 복음을 듣고 구원 받았는데 그녀들이 당장 그 일을 그만 둘 수 없는 형편이었답니다. 그리고 그들이 예배드리러 올 때 드린 헌물이 자신들의 몸을 팔고 받은 것인데 그것을 헌물로 받아야 할지, 받지 말아야 할지, 그리고 어떻게 축복기도를 해야 할지 고민을 많이 한다고 했습니다.
그녀들이 진실로 구원 받았다면 당장 그런 일은 그만 두어야 할 것입니다. 믿음으로 다른 직장을 구해야 할 것입니다. 그에 따르는 경제적인 고난을 감수해야 할 것입니다. 참으로 현실은 안타깝지만 그 자매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으로 위로하고 믿음으로 고난을 잘 이겨내도록 양육해야 할 것입니다.
◆ 오늘날 애완동물을 반려동물, 혹은 반려 가족이라고 말합니다. 반려동물들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그것들을 가족이라 부릅니다. 자기부모나 형제자매보다 그것들을 더 사랑하고 더 아끼는 것 같이 보입니다. 개 팔자가 사람 팔자보다 낫다는 말을 많이 합니다. 그러나 성경에서는 개와 돼지는 부정한 동물로 나옵니다. 물론 우리는 율법 아래 있지는 않지만 성경의 부정적인 말씀은 신약에서도 변함없습니다.
성경에서 사람을 개로 취급하는 경우는 하나님을 믿지 않는 자를 가리키거나 잠시 믿다가 믿음에서 떠난 자들을 개에 비유합니다. [개가 자기의 토한 것으로 돌아가는 것 같이 어리석은 자도 자기의 어리석은 짓으로 돌아가느니라.](잠 26:11)
구원 받은 후에도 옛날 행위를 버리지 못하고 계속한다면 자기가 토한 것으로 돌아가는 개와 같은 어리석은 자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개는 자기가 토한 것으로 되돌아가고 씻긴 돼지는 진창 속에서 뒹군다, 하는 참된 잠언에 따라 그 일이 그들에게 일어났도다.](벧후 2:22) 우리나라 속담으로 개 버릇 남 주지 못 한다는 말이 있듯이 어떤 사람이 구원 받은 후의 생활이 구원 받기 전과 동일하고 변함이 없다면, 그의 진실 된 믿음을 무엇으로 나타내겠습니까? 행위가 없는 믿음을 죽은 믿음이라하셨습니다. 여러분들이 진실로 거듭났다면 더러운 행실을 버리고 거짓을 버리십시오. 제발 변화된 모습을 보여야합니다. 그것이 구원 받은 증거입니다.

◆ 저는 개인적으로 그리스도인들이 개 농장을 한다거나 보신탕 식당을 하며 번 돈을 주님께 드리는 것은 부정한 것에 속한다고 생각됩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들은 직업선택도 신중해야 합니다. 예를 들어 담배 농사나 담배장사도 분명 직업이고 상업입니다. 그러나 그런 일들은 담배를 피우는 자들을 서서히 죽이는 일에 동참하는 것입니다.
술을 만드는 사람이나 술장사 하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잔치에 흥을 돋우기 위해서 술이 필요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술은 많은 사람을 병들게 하고, 불행하게 하고, 고통스럽게 하고 서서히 죽게 합니다. 그러므로 술이나 담배가 사람들의 건강에 좋지 않은 것을 안다면 그리스도인들의 직업으로서는 합당하지 않다고 봅니다.
저도 강아지를 좋아합니다. 혹시 반려동물을 좋아하는 여러분들이 듣기 싫을 수 있겠으나 제 소견을 말씀드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시험 드는 자가 없기를 바랍니다. 제가 읽는 성경을 통해 보자면 동물이나 사람이나 짐승을 동일하게 취급하는 것은 창조질서로 보면 적절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개나 고양이를 사람과 동등하게 여기거나 사람보다 더 귀하게 여기는 것은 창조주 하나님께 대한 반역이라고 생각합니다. 사람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어졌지만 동물은 그렇지 않습니다. 동물도 하나님께서 지으셨지만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은 사람과는 전혀 다릅니다.
하나님의 모양과 형상으로 지음 받은 사람이 그것들을 섬기거나 사람과 동일시하는 것은 하나님의 창조질서에 맞지 않다고 봅니다. 하나님께서 그것들을 섬기라고 명령 하지 아니하시고 정복하고 다스리고 지배하라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이르시되, 우리가 우리의 형상으로 우리의 모양에 따라 사람을 만들고 그들이 바다의 물고기와 공중의 날짐승과 가축과 온 땅과 땅에서 기는 모든 기는 것을 지배하게 하자, 하시고](창 1:26), [이처럼 [하나님]께서 자신의 형상으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하나님]의 형상으로 그를 창조하시고 그들을 남성과 여성으로 창조하시니라.](창 1:27)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복을 주시고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다산하고 번성하여 땅을 채우라. 땅을 정복하라. 또 바다의 물고기와 공중의 날짐승과 땅 위에서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지배하라, 하시니라.](창 1:28) 온 땅에 있는 가축은 물론 모든 동물은 지배의 대상이지 섬김의 대상이 아닙니다.
사람들이 오늘날 애완동물들을 사람 이상의 대우를 하는 것은 그것들을 지배하라 하신 하나님의 말씀에 위배되는 행위라고 생각합니다. 농촌이나 도시에서 노인들이 돌보는 이 없이 가난하고 외롭게 홀로 죽어가는 사람들이 많은 이 시점에 애완동물을 돌보는 그 정성의 반의반이라도 그런 이웃에 관심을 갖는다면 얼마나 값진 일일까요? 반려동물에게 자기를 형이라거나 언니, 혹은 아빠라거나 엄마라고 하는 것은 창조주 하나님을 욕되게 하는 일입니다.
각종 짐승이나 동물들과 사람은 지으신 모양도 목적도 다릅니다. 하나님께서는 땅의 짐승이나 가축들은 그것들의 종류대로 지으셨습니다. 종류가 다릅니다. 고양이는 개가 될 수 없고 돼지는 송아지가 될 수 없습니다. 수백 년 수천 년이 흘러도 개는 개를 낳고 고양이는 고양이를 낳습니다. 원숭이가 사람이 될 수 없고 그것들이 사람을 낳을 수도 없습니다. 가축이나 짐승들과 사람은 각각 그 종류대로 지으셨습니다. 절대 사람과 짐승은 가족이 될 수 없습니다. 그것들은 구원의 대상도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땅의 짐승을 그것의 종류대로, 가축을 그것들의 종류대로, 땅에서 기는 모든 것을 그것의 종류대로 만드시니라.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좋았더라.](창 1:25)
여러분들이 구원 받고 거듭난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면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좋았더라 하신 창조질서를 깨뜨리지 말아야합니다. 하나님의 창조를 인정하지 않는 동물애호가들이 들으면 몹시 화를 낼지 모르겠지만 하나님께서 지으신 모든 것들을 사람들에게 넘겨주셨습니다. 모든 짐승과 날짐승과 모든 물고기는 지배하고 정복하고 다스릴 존재들일 뿐만 아니라 살아서 움직이는 모든 것은 사람들에게 채소와 같이 먹을 것으로 주셨다는 말씀을 기억하십시오.
[땅의 모든 짐승과 공중의 모든 날짐승과 땅 위에서 움직이는 모든 것과 바다의 모든 물고기가 너희를 두려워하고 너희를 무서워하리니 내가 그것들을 너희 손에 넘겨주었노라. 살아서 움직이는 모든 것은 너희에게 먹을 것이 될 것이요, 푸른 채소와 같이 내가 모든 것을 너희에게 주었노라.](창 9:2-3)
바다나 강에서 사는 각종 물고기는 거기서 사는 것이 그것들에게 가장 좋은 것입니다. 그것들을 잡아먹는 것은 허락된 일이지만 그것들을 좁은 어항에 가두어 사람들의 안방이나 거실에 놓고 한 생애를 보내게 한다면 그것이 그들에게는 감옥이요 학대입니다.
하늘에 날아다니는 날짐승들은 마음대로 날아다니는 것이 그것들에게 행복입니다. 그것들을 잡아 새장에 가두어 놓고 사람들이 즐기는 것은 그것들의 자유를 빼앗는 것으로 죄없는 사람을 감옥에 가두는 것과 다를 것이 무엇입니까? 그것들을 잡아먹는 것은 허락된 일이지만 그것들을 잡아 가두고 고통스럽게 하는 것은 불법입니다.
들짐승들은 말 그대로 산과 들에 살아야합니다. 내가 좋아한다고 그들의 자유를 빼앗는 것은 사랑이 아니라 가혹한 학대와 범법행위입니다. 가축들은 가축우리에서 살아야합니다. 이와 같이 동물들과 사람 사이엔 엄연한 경계가 있는데 동물과 한 침대에서 잠자리를 같이 한다는 것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은 사람으로서는 해서는 안 될 일입니다.
[너는 어떤 짐승과 함께 누워 그 일로 네 자신을 더럽히지 말며 어떤 여자도 짐승 앞에 서서 그것을 향해 눕지 말라. 그것은 혼돈이니라.](레 18:23) 동물 애호가들은 이 말씀들을 상당히 불쾌하게 생각하겠지만 창조주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으로 지으신 사람이 짐승과의 경계를 허무는 것을 원치 않으십니다. 자기가 좋아한다고 그것들의 자유를 빼앗고 가두고 놀이 개로 삼는 것이야말로 동물학대중의 가장 큰 학대라고 생각합니다.
[남자가 짐승과 함께 누우면 반드시 그를 죽이고 너희는 그 짐승도 죽일 것이며 여자가 어떤 짐승에게 다가가서 그것을 향해 눕거든 너는 그 여자와 그 짐승을 죽이되 그들을 반드시 죽일지니 그들의 피가 그들에게 돌아가리라.](레 20:15-16)
물론 이 말씀은 동물과 사람사이의 성관계를 말씀하지만 그것들이 사람의 품 안에 있게 되면 성적 충동이 일게 됩니다. 반려동물을 키우는 사람들은 성경구절을 잘못 인용했다고 항의 할지 모르겠지만 반려 동물과 입을 맞춘다든지, 품에 안고 다닌다든지, 한 잠자리에 잔다는 것은 엄연한 잘못이며 혼돈입니다. 여러분들은 육신의 뜻을 따르기보다는 하나님의 말씀을 분별하고 순종하시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2019-06-02 12:06: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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