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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수님 지옥에 가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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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 지옥에 가시다.

말씀 : 마태복음 16:13-16. 2019년 7월 28일 일요일 오전 11시

성도들이 기도할 때마다 믿습니다! 믿습니다! 힘을 주어 외치는데 과연 무엇을 믿는가 물어보고 싶을 때가 많습니다. 믿음이란 과연 무엇입니까? 무엇을 믿는 것입니까? 우리가 무엇을 믿고 구원 받습니까? 예수 그리스도를 믿습니다. 이를 모르는 그리스도인들도 있을까? 반문하겠지만 그리스도인들의 말에서나 평상시 행동에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는 증거를 찾을 수가 없습니다.
예수님이 나에게 어떤 분이신줄 안다면 과연 그분께 반말을 할 수 있을까요?
“예수가 우리를 부르는 소리......”, “예수여, 예수여 나의 죄 위하여.......”
그러면 여러분들은 예수님의 무엇을 믿습니까?
여러분은 왜 성경을 읽습니까? 왜 성경을 탐구합니까? 주께서 말씀하십니다. [성경 기록들을 탐구하라. 너희가 그것들 안에서 영원한 생명을 얻는 줄로 생각하거니와 그것들은 곧 나에 대하여 증언하는 것들이니라.](요 5:39) 예수님께서 여러분들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신다는 것을 믿습니까? 잘하는 것입니다. 『누구든지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 이것을 네가 믿느냐?』(요 11:26). “이것을 네가 믿느냐?”물으십니다. 여러분들은 영원히 살 것을 진실로 믿으십니까?
예수님께서 우리 육신의 질병을 고쳐주실 것을 믿습니까? 그 믿음도 대단한 믿음입니다. [그분께서 집에 들어가시매 그 눈먼 사람들이 그분께로 나아오더라.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너희는 내가 능히 이 일을 할 수 있다고 믿느냐? 하시니 그들이 그분께 이르되, [주]여, 그러하오이다, 하매](마 9:28).
우리 언어에는 분명히 존대어가 있습니다. 우리정서상 주고받는 말에서 과연 그가 하는 말이 존경하는 사람에게 하는 말인가? 말 속에 그의 품위는 물론 상대방을 대우하는 의미가 나타납니다. 나이 적은 사람이 나이 많은 사람에게 하는 말과, 젊은이가 어른에게 하는 말이 다릅니다. 아들이 아버지에게 하는 말 속에 아버지에 대한 신뢰와 존중이 나타납니다. 제자가 스승에게 하는 말에는 제자가 그분을 얼마나 존경하는가가 내포되어있습니다. 친구관계나 대등한 관계에서도 가는 말이 고와야 오는 말이 곱습니다.
우리는 예수님께서 나에게 어떤 분인가를 성도들의 일상 주고받는 말에서 나타납니다. 그분이 나에게 어떤 분인가를 안다면 그분의 이름을 부를 때 막말이나 하대하는 말이 아닌 지극히 존대하는 언어를 쓰는 것이 마땅하다고 봅니다. 세상에서도 나를 가르친 사람에게나 은혜를 입은 사람에게 함부로 부르거나 하대하는 경우는 없습니다.
사도 요한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창조주시라고 기록했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으로 계신 하나님이라고 했습니다. [처음에 [말씀]이 계셨고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며 [말씀]이 [하나님]이셨더라. 바로 그분께서 처음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모든 것이 그분에 의해 만들어졌으니 만들어진 것 중에 그분 없이 만들어진 것은 하나도 없었더라.](요 1:1-3) 했습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하여 육신을 입고 세상에 오시기 전, 영원부터 창조주로 계신 분입니다. 예수님은 육신을 입고 세상에 오시기 전에도 하나님이셨고 육신을 입고 사람의 태를 사용하시고 아기로 세상에 태어나셨을 때도 하나님이셨고 십자가에 매달려 피 흘리실 때도 하나님이십니다.
그분을 모르는 사람들은 그분이 나사렛 시골 처녀의 몸에서 태어났다고 사생아취급 했습니다. 이는 그분을 하나님으로 믿고 싶지 않거나 하나님으로 취급하기 싫은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이란 사실은 영원을 말하는 것입니다. 이세상의 대통령은 대통령에 당선되기 전에는 대통령이 아니었으며 대통령의 임기가 끝나면 더 이상 대통령이 아닙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영원히 하나님이십니다.
말씀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어떤 분이신가를 정확하게 기록하신 말씀이 있습니다. [이분은 물과 피로 오신 분이시니 곧 예수 그리스도시라. 물로만 오지 아니하시고 물과 피로 오셨느니라. 증언하시는 이는 성령이시니 이는 성령께서 진리이시기 때문이라. 하늘에 증언하는 세 분이 계시니 곧 [아버지]와 [말씀]과 [성령님]이시라. 또 이 세 분은 하나이시니라.](요일 5:6-7). 요한이 말씀으로 기록한 예수님은 영원히 계시는 창조주 하나님이십니다.
마귀는 자기를 추종하는 사람들을 통해서 이런 진리를 숨기려고 성경을 변개하도록 부추겼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가감하지 말라 명령하신 것을 적극적으로 거역하고 빼버렸습니다. 여러분들이 보는 성경에서 이 구절이 빠졌다면 그것은 진짜 성경의 유사품일 뿐입니다. “하늘에 증언하는 세 분이 계시니 곧 [아버지]와 [말씀]과 [성령님]이시라. 또 이 세 분은 하나이시니라.”(요일5:7).
말씀으로 계신 창조주 예수 그리스도를(요1:1-3) 하나님이 아닌 분으로 숨기려고 개역성경에서 이 구절을 빼버린 것입니다. 아무리 삼위일체 하나님을 설명하려해도 개역성경에서는 결정적인 이 구절을 삭제해 버렸으므로 성도들이 이해하기도 힘들고 목사님들이 가르치기도 힘듭니다. 하나님께서 보존하신 순수한 말씀이 왜 그토록 중요한지를 알아야합니다.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이라면 전지전능하시고 무소부재하신 분으로 존경을 넘어서 위엄 있으시고 죄악을 심판하시는 두려운 분으로 생각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아들로 오신 예수님은 왠지 하나님보다는 덜 두렵고 육신을 입고 오셨기 때문에 보통 사람보다는 특별하신 한 사람으로 대우하거나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물론 친근감이 있어서 사람과 대등한 관계로 생각하거나 대우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사람의 아들로 오셨어도, 그분이 우리를 친구로 대해주셨어도 그분은 여전히 하나님이십니다. 그분이 무지한 사람들에 의해 십자가를 지시고 비참하게 죽음을 당하셨어도 여전히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의 아들로 오신 예수님은 우리의 구원자이심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에게 인정받지 못하고 멸시 천대를 받으셨어도 여전히 예수님은 창조주 하나님이십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받아들인 우리를 하나님의 아들들로 대우하셔도 그분은 여전히 하나님이십니다.
사람으로 태어나 자신의 죄로 지옥엘 가면 영원히 지옥을 벗어나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지옥에 가셨다고 말하면 진리를 모르는 성도들이 깜짝 놀라거나 이상한 사람으로 취급합니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요?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와 동일한 사람으로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감이 예수님께서 지옥엘 가셨다면 무례한 자라고 생각하거나 신성 모독하는 적그리스도라고 생각합니다. 과연 그럴까요? 이는 예수님이 어떤 분이신지 확실히 모르기 때문입니다. 이런 태도가 예수님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나타내는 그 사람의 말이요, 믿음이요, 생각입니다.
[예수님께서 가이사랴 빌립보 지방에 들어오사 자기 제자들에게 물어 이르시되, 사람들이 나 곧 사람의 [아들]을 누구라고 하느냐? 하시니 그들이 이르되, 어떤 이들은 주께서 [침례자] 요한이라 하고 어떤 이들은 엘리야라고도 하며 다른 이들은 예레미야나 대언자들 중의 하나라고 하나이다, 하거늘 그분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그러나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 하시니 시몬 베드로가 대답하여 이르되,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하매](마 16:13-16)
사람들이 예수님을 누구라고 합니까?
“어떤 이들은 주께서 [침례자] 요한이라 하고 어떤 이들은 엘리야라고도 하며 다른 이들은 예레미야나 대언자들 중의 하나라고 하나이다.” 했습니다. 제자들이 사람들의 말을 대변하는 것을 보면 예수님은 다른 사람보다는 특별하지만 역시 사람들 중의 하나로 본다는 말입니다. 침례요한이나 엘리야나 예레미야나 대언자들은 보통 사람보다는 많이 다릅니다. 예수님 역시 그런 사람들 중의 하나로 보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분을 대할 때, 사람을 대하듯 하는 것입니다.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
이 질문을 여러분들이 받고 여러분의 입에서 바로 나올 수 있는 대답은 어떻습니까? 여러분들도 베드로와 같이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마16:16)라고 대답하십니까? “우리는 주께서 그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고 확신하나이다.”(요 6:69) 라고 대답할 수 있습니까?
여러분은 하나님의 아들이란 의미를 제대로 알아야합니다. 우리가 인간적으로 생각하는 부자지간을 넘어서 보다 큰 틀에서 생각해야합니다. 제가 자주 인용하는 말입니다만, 곰 새끼는 곰이고 소 새끼는 소입니다. 개자식은 개이고 사람의 아들은 사람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아들은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이라는 말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의 사고에는 왜 하나님의 아들을 하나님이라 생각하지 못하고 사람이라고 생각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성경에는 여러 제자들이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신에게 누구인가를 말한 대답들이 있습니다. 빌립의 친구 나다나엘은 예수 그리스도를 누구라고 했습니까? “랍비여, 선생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시요 선생님은 이스라엘의 [왕]이로소이다.” (요1:49)했습니다.
“선생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시오” 나다나엘은 예수님을 처음 보았지만 그분이 하나님의 아들, 즉 하나님이심을 알았습니다. 좀 더 쉽게 말하자면 종이 다르다는 말입니다. 하나님께는 누구와 비교한다는 것이 매우 죄송스럽지만 하나님과 사람과 짐승은 각각 종이 다릅니다. 『그런즉 너희가 [하나님]을 누구와 같다 하겠느냐? 또 그분을 어떤 모습과 비교하겠느냐?』(사 40:18).
하나님께서는 모든 것들을 종류대로 창조하셨습니다.
“선생님은 이스라엘의 [왕]이로소이다.” 나다나엘은 예수님께서 이스라엘을 영원히 다스릴 이스라엘의 왕이라고 했습니다. 이는 다윗이나 솔로몬 같은 왕의 한사람이라는 뜻이 아니라 이스라엘을 영원히 통치할 전능하신 왕이시란 말입니다.
하늘의 별을 보고 이스라엘에 왕으로 태어나신 분을 만나기 위하여 동쪽으로부터 지혜자들이 그분께 경배하기 위해서 예루살렘으로 왔을 때 정작 이스라엘 백성들은 자기들을 영원히 다스릴 왕이 태어났다는 사실조차 알지 못했습니다. 그분은 자기 백성을 그들의 죄들에서 구원 하려 오셨으나(마1:21) 그 백성들은 그분을 구원자로도 왕으로도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요1:11).
흔히 의심 많은 제자 도마라는 사람은 부활의 주님을 만나서 그분을 부르기를, [나의 [주]시며 나의 [하나님]이시니이다.](요 20:28) 라고 고백했습니다. 그분이 곧 하나님이십니다. 우리는 단어의 단수 복수를 크게 보지 않지만 영어에서 단수 아들은 유일한 아들, 하나밖에 없는 독생자를 말합니다.
성경은 예수님을 믿고 그분을 받아들인 자들을 하나님의 아들들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아들”과 하나님의 아들들은 전혀 다릅니다. 하나님의 아들은 곧 하나님이심을 말합니다. 하나님의 아들들은 곧 구원 받은 모든 사람들을 말합니다. 누군가 그렇게 강조해서 그런가보다 하는 것과 그분을 하나님으로 믿는 것은 너무나 다릅니다.
예수님께서 자신을 말씀하시기를, “나와 내 아버지는 하나이니라.”(요10:30)하셨습니다. 자신이 곧 하나님 아버지라고 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신을 입으시고 이 세상에 사람의 아들로 태어나셨다는 사실 때문에 하나님으로 여기기를 꺼려하는 것 같습니다. 그러므로 주님은 계속해서 자신을 알면 아버지도 알고, 아버지를 보았다고 하셨습니다. [너희가 나를 알았더라면 내 [아버지]도 알았으리라. 이제부터는 너희가 그분을 알며 또 보았느니라, 하시니라.](요 14:7).
예수님을 처음 만났으나 그분이 누구인줄 안 나다나엘의 친구 빌립은 주님의 제자로 그분 곁에서 그분을 보고, 듣고, 같이 생활 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분을 하나님으로 믿지 못해서 예수님께 아버지를 보여 달라고 했습니다. [빌립이 그분께 이르되, [주]여, 우리에게 [아버지]를 보여 주소서. 그리하면 우리에게 족하겠나이다, 하니](요 14:8).
만약 여러분들도 빌립같이 예수님과 하나님 아버지를 동일하신 분으로 믿지 않는다면 빌립에게 하신 말씀을 동일하게 들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빌립아, 내가 이렇게 오랫동안 너희와 함께 있었으되 네가 아직도 나를 알지 못하느냐?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거늘 어찌 네가 말하기를, 우리에게 [아버지]를 보여 주소서, 하느냐?](요 14:9) 하셨습니다.
영적인 문제라 누구든지 믿음이 없으면 아무리 설명해도 알아듣지 못하고 이해하지 못하고 믿지 못합니다. 이 말씀을 듣는 여러분들도 설교자가 그렇다고 하니 그런가보다. 하지 마시고 마음으로 믿으십시오. 이런 사실이 믿음으로 다가오지 않는다면 그분이 행하신 일들을 통해서라도 믿으십시오. 예수님이 행하신 일들이 무엇입니까? 사람이 할 수 없는 일들을 그분이 하셨다는 말입니다. [내가 [아버지] 안에 있고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신다는 내 말을 믿으라. 그렇게 못하겠거든 바로 그 일들로 인하여 나를 믿으라.](요 14:11)
일찍이 이사야대언자는 처녀의 몸을 통하여 태어날 그분을 일컬어 “강하신 [하나님], 영존하는 [아버지]”라 했습니다. [이는 한 아이가 우리에게 태어났고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셨는데 그의 어깨에는 정권이 놓이고 그의 이름은 [놀라우신 이], [조언자], 강하신 [하나님], 영존하는 [아버지], [평화의 통치자]라 할 것이기 때문이라.](사 9:6).
누구든지 예수님께서 누구인가를 모른다면 이는 대단히 슬픈 일입니다. 그분이 나에게 어떤 분인지를 모른다면 올바른 믿음으로 그분을 대우할 수 없습니다. 우려스럽게도 기독교를 모방한 이단들이 예수님을 선지자나 대 제사장정도로 소개하는 자들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주께서 보존하신 순수한 말씀을 통하여 그분을 올바르게 알아야합니다.
하나님께서도 아들에게 친히 말씀하셨습니다. [아들]에게는 이르시기를, 오 [하나님]이여, 주의 왕좌는 영원무궁하오며 주의 왕국의 홀(笏)은 의의 홀이니이다.](히 1:8) 하나님의 역할 분담에 있어서 우리는 아버지 하나님, 아들 하나님, 성령 하나님을 삼위일체 하나님이라 말합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아들로 이 세상에 오셨어도 여전히 하나님이라는 말입니다. 그분은 세상을 영원히 다스릴 왕이시라는 말입니다.
만약 예수 그리스도께서 지옥엘 가시지 않으셨다면, 만약 그렇게 믿는다면, 그 사람은 구원 받지 못한 사람입니다. 왜 그렇게 말합니까? 주께서 지옥에 가신 이유가 무엇입니까? 우리의 죄들을 영원히 지옥에 던지시기 위함입니다. 내가 내 죄로 인하여 지옥엘 가야 하는데 그분이 내 죄들을 지옥에 던지시기 위하여 내 죄를 짊어지시고 지옥으로 가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분이 지옥엘 가시지 않았다면 내 죄는 처리되지 않은 상태로, 그대로 있는 것이며 그 죄로 인하여 내가 지옥엘 가야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이 무엇을 증언해 줍니까? 그리스도를 자신의 구원자로 믿는 자들의 모든 죄가 깨끗이 해결되었음을 증언하는 것입니다. 그분의 부활 승천이 없었다면 우리의 죄는 그대로 있고 우리의 부활도 없습니다.
만약 예수님이 창조주가 아니시고 하나님이 아니시라면 그분이 우리 죄들을 지시고 지옥에 가셨을 때 지옥에서 나오시지 못하셨을 것입니다. 지옥에 가셨을 때 나오지 못했다면 그분은 하나님이 아니시고 사람일뿐이며 자신의 죄로 지옥에 갇힌 것입니다. 그러나 시편기자가 일찍이 말한 대로 그분은 지옥에서 일어나셨습니다. 『이는 주께서 내 혼을 지옥에 남겨 두지 아니하시고 주의 [거룩한 자]가 썩음을 보지 아니하게 하실 것이기 때문이니이다.』(시 16:10) 했습니다.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시라고 고백한 베드로는 주께서 부활하시고 승천하신 뒤에 시편기자의 말을 인용하고 증언했습니다. 『이는 주께서 내 혼을 지옥에 남겨 두지 아니하시고 주의 [거룩한 자]가 썩음을 보지 아니하게 하실 것이기 때문이니이다.』(행 2:27), 그는 반복해서 이르기를, 『또 이것을 미리 보았으므로 그리스도의 부활에 대하여 말하기를, 그의 혼이 지옥에 남겨지지 아니하였고 그의 육체도 썩음을 보지 아니하였느니라, 하였느니라.』(행 2:31). 했습니다.
자, 이 말씀을 보면 예수님께서 지옥엘 가신 것이 사실이지요?
두말할 필요 없이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시기 전에 친히 제자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요나가 밤낮으로 사흘 동안 고래 배 속에 있었던 것 같이 사람의 [아들]도 밤낮으로 사흘 동안 땅의 심장부에 있으리라.](마 12:40) 밤낮 사흘 동안은 “땅의 심장부”즉 지옥에 계시겠다고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지옥에 가셔서 하실 일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 중의 하나가 우리의 모든 죄들을 짊어지시고 지옥에다 내려놓으려 가신 것입니다. 『친히 나무에 달려 자신의 몸으로 우리의 죄들을 지셨으니 이것은 죄들에 대하여 죽은 우리가 살아서 의에 이르게 하려 하심이라. 그분께서 채찍에 맞음으로 너희가 고침을 받았나니』(벧전 2:24) 하셨고, 주님은 지상사역을 하시면서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모든 자들아, 너희는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에게 안식을 주리라”(마11:28) 하신 약속을 지키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하나님께로 데려 가시려면 불의한 우리의 죄들을 깨끗이 해결하셔야 했습니다. 그 해결책이 우리들의 죄 값을 대신 치르시는 것인데 바로 자신의 피를 흘리시고 죽으시는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도 죄들로 인하여 한 번 고난을 받으사 의로운 자로서 불의한 자를 대신하셨으니 이것은 그분께서 육체 안에서 죽임을 당하셨으되 성령으로 말미암아 살아나셔서 우리를 [하나님]께로 데려가려 하심이라.](벧전 3:18)
이와 같이 우리들의 죄들을 해결하시기 위하여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셨고 자기 자신의 죄는 없으시기 때문에 지옥에 붙잡혀 있지는 않으십니다. 『그분께서 우리의 죄들을 제거하려고 나타나신 것을 너희가 알거니와 그분 안에는 죄가 없느니라.』(요일 3:5) 『이와 같이 그리스도께서도 많은 사람의 죄들을 담당하시려고 단 한 번 드려지셨으며 또 자신을 기다리는 자들에게 죄와 상관없이 두 번째 나타나사 구원에 이르게 하시리라.』(히 9:28).
히브리기자는 예수님을 어떻게 묘사했습니까?
예수님은 하나님의 정확한 형상이라 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그분이 곧 하나님이시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의 광채시요 그분 자체의 정확한 형상이시며 자신의 권능의 말씀으로 모든 것을 떠받치시는 이 아들께서는 친히 우리의 죄들을 정결하게 하신 뒤에 높은 곳에 계신 존엄하신 분의 오른편에 앉으셨느니라.』(히 1:3),
예수님께서 지옥에 가셔서 두 번째 하신 일은 감옥에 있는 영들에게 선포하신 것입니다. [그분께서 또한 성령으로 말미암아 감옥에 있는 영들에게 가사 선포하셨는데](벧전 3:19) 이는 사람들의 생각같이 지옥의 감옥에 있는 사람들이 복음을 들을 기회가 더 있다는 것이 아닙니다. 주님은 감옥에 있는 사람들에게 구원의 복음을 전하러 가신 것이 아니라 감옥에 있는 영들에게 가셔서 그들의 죄가 무엇이며 그들이 왜 감옥에 갇혔는가를 선포하신 것입니다. 선포의 대상이 누구인줄 정확하게 알아야 오해하지 않습니다.
[이 영들(spirits)은 노아의 날들에 방주를 예비하는 동안 곧 [하나님]께서 한 번 오래 참고 기다리실 때에 불순종하던 자들이라. 방주 안에서 물로 말미암아 구원 받은 자가 몇 안 되니 곧 여덟 혼이라.](벧전 3:20) 이 영들(spirits)은 사람들이 아닙니다. 이들은 창세기6장에 나타난 자들입니다.
예수님께서 지옥에 가셨다는 성경구절들은 아주 많습니다.
『(이제 그분께서 올라 가셨은즉 그것은 곧 그분께서 또한 먼저 땅의 더 낮은 부분들로 내려가신 것이 아니면 무엇이냐? 내려가신 그분께서 또한 모든 하늘들보다 훨씬 위로 올라가신 바로 그분이시니 이것은 그분께서 모든 것을 충만하게 하려 하심이라.)』(엡 4:9,10)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천지만물을 창조하신 창조주이십니다. 그렇다면 마귀와 그의 천사들을 가두기 위하여 지옥을 예비하신 분도 그분이십니다(마25:41). 그분이 지은 지옥엘 그분이 드나들지 못한다면 말이 되지 않습니다. 창조주이신 예수님에게 열쇠가 필요한 것은 아니지만, 그분에게는 지옥의 열쇠가 있습니다. 『나는 살아 있는 자라. 전에 죽었으나, 보라, 내가 영원무궁토록 살아 있노라. 아멘. 또한 내가 지옥과 사망의 열쇠들을 가지고 있노라.』(계 1:18)
전지전능하시다는 말이 무슨 뜻입니까? 모르는 일이 없고 못하실 일이 없다는 말입니다(참고 ; 렘17,27; 눅1:37,18:27; 마19:26, 막10:27). 또한 무소부재란 무슨 말인가요? 창조주 하나님께서 아니 계신 곳이 없다는 말입니다. 『내가 하늘로 올라갈지라도 주께서 거기 계시오며 내가 지옥에 내 침상을 펼지라도, 보소서, 주께서 거기 계시나이다.』(시 139:8), 『그들이 땅을 파고 지옥으로 들어갈지라도 내 손이 거기서 그들을 붙잡으리라. 그들이 하늘로 올라갈지라도 내가 거기서 그들을 끌어내리리라.』(암 9:2)
누구든지 자기 죄로 지옥엘 갔다면 그는 그곳에서 영원히 나올 수 없습니다. 그러나 죄 없으신 분(요일 3:5), 죄를 알지도 못하신 분(고후 5:21), 죄를 짓지도 아니하신(벧전 2:22) 창조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모든 사람들의 죄를 짊어지시고 그것을 처리하시기 위하여 지옥엘 가신 것입니다.
그러나 지옥이 무서운 곳인 줄만 알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보통 사람이 아닌 창조주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모르거나, 믿지 않는 사람들은 예수님께서 지옥엘 가셨다고 하면 큰일 날 소리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사람들이 사도신경을 우리말로 번역할 때 주께서 지옥에 가셨다는 부분은 빼버린 것입니다.
근래 들어 이런 말들이 자주 오르내리니까 요즈음 발행하는 찬송가에는 영문과 함께 싣던 사도신경을 아예 한글 사도신경만 올려놓고 있습니다. 이는 그들의 믿음이라는 것의 바닥을 드러낸 것이고 그것을 그대로 답습하는 사람들도 그 믿음의 실체를 알 수 있는 것입니다. 사도신경 자체도 주께서 주신 것이나 사도들이 인용한 성경 구절도 아니지만 그것을 신앙의 고백이라고 여기며 성도들이 교회 예배 때마다 함께 합창하지만 사실상 그들의 믿음의 고백은 자신들의 죄가 사해졌다는 사실을 부인하는 꼴입니다.
예수님께서 지옥에 가신 것을 부인하면 자신의 죄를 예수님께서 지옥에 가셔서 처리 했다는 진실을 부인하는 셈입니다. 아예 사도신경을 낭독하지 말든지, 하려면 제대로 하든지, 남이 하니까 뜻도 모르고 앵무새 같이 흉내 내는 것은 자신의 죄가 처리되었음을 부인하는 꼴이 되고 맙니다. 한국 교회들이 그토록 중요하게 여기는 사도신경을 살펴보십시오.
“......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으사,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장사한지​ ​He descended into hell(지옥에 내려가셨다가 : 생략), 사흘 만에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시며” The third day He rose again form the dead;, 성도들이나 목사님들이 이런 사실을 알고도 체면 때문에, 혹은 노회나 총회 눈치 보느라 진실을 숨긴다면 과연 그 믿음을 어떻게 평가할까요? 존경심이나 윤리도덕이나 믿음이 너무 좋아서 예수님께서 지옥에 가신 것을 믿지 못하고 부인 한다면 진리의 성경 기록들을 부인하는 것입니다.
곁들여 사도신경으로 신앙을 고백하는 사람들이 무엇을 믿는다고 고백하는지 제대로 알고 신앙고백을 하는 사람들이 과연 얼마나 될까요? 성령을 믿는 것, 잘하는 것입니다. 성도가 서로 교통하는 것, 아주 잘하는 것입니다. 죄를 사해 주시는 것, 몸이 다시 사는 것, 영원히 사는 것은 지극히 복음적이지만 “거룩한 공회를 믿는 것은” 잘못된 고백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이 거룩한 공회(catholic) 즉 캐톨릭을 믿는다고 고백하는 것은 자신은 캐톨릭 교인이라고 고백하는 것입니다. (성령을 믿사오며, ​거룩한 공회와(catholic) 성도가 서로 교통하는 것과, 죄를 사하여 주시는 것과, 몸이 다시 사는 것과, ​영원히 사는 것을 믿사옵니다.) 성도들이 무엇을 믿고 무엇을 믿지 말아야 할지를 바로 알아야할 것입니다.
거룩하시고 전지전능하시며 창조주 하나님께서 저와 여러분들을 구원 하시려고 육신을 입고 오셨음은 논쟁의 여지가 없는 것입니다. [논쟁의 여지가 없이 하나님의 성품의 신비는 위대하도다. [하나님]께서 육체 안에 나타나시고 성령 안에서 의롭게 되시고 천사들에게 보이시고 이방인들에게 선포되시고 세상에서 믿기시고 영광 속으로 올려져서 영접을 받으셨느니라.](딤전 3:16)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이 아니시라면 하늘에 오르지 못하셨어야 맞습니다. [하늘로부터 내려온 자 곧 하늘에 있는 사람의 [아들] 외에는 아무도 하늘에 올라가지 아니하였느니라.](요 3:13).
아들로 오신 하나님께서 자신의 피로 교회를 사셨다는 사실을 알고 감사하고 그분께 영광을 돌리시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진심으로 축원합니다. [그러므로 너희 자신과 온 양 떼에게 주의를 기울이라. [성령님]께서 너희를 그들의 감독자로 삼으사 [하나님]의 교회 곧 그분께서 자신의 피로 사신 교회를 먹이게 하셨느니라.](행 20:28).
2019-07-28 11:5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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