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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려 깊고 지혜로운 자

말씀 : 창세기 41:37-46. 2019년 7월 28일 일요일 오후 2시

이스라엘은 하나님께 특별한 백성이고 우리 구원 받은 모든 자들은 주님께 특별한 백성이며 박요셉이는 우리 가정에 아주 특별한 아들이요 손자입니다. 요셉이가 우리 가정에 태어났을 때 아빠 준연이에게는 첫 아들이요, 저에게는 첫 손자였습니다. 저는 첫 손자에게 무슨 이름을 지어줄까? 기쁨의 고민을 했습니다. 제가 경섭이와 준연이를 낳았을 때는 하나님도, 성경도, 예수님도, 구원도 몰랐을 때라서 작명가를 찾아가 돈을 주고 좋다는 이름을 지었습니다.
우리 가정 박씨 가문의 돌림을 따라 이름을 지으려면 가운데에 기쁠 희(喜) 자를 넣어 지어야 했습니다. 그런데 우리고향은 박씨 집성촌이라서 이미 희(喜) 자를 넣어 지을 만한 이름이 더 이상 없었습니다. 그리고 저는 왠지 모르게 내 아이들에게 돌림자를 넣어 이름을 지을 마음이 없었습니다. 만약 완고하신 저의 아버지께서 살아계셨다면 꼼짝 없이 돌림을 따라 이름을 지었을 것입니다. 그렇지 않아도 저의 형님은 아이들의 이름을 돌림자를 따르지 않았다고 상당히 못 마땅히 여겼습니다. 그래서 형님은 문중의 족보 책에 경섭이를 희섭이라 올리고 준연이를 희연이라 올렸습니다.
전도자는 말하기를, “좋은 이름이 귀한 향유보다 낫고”(전7:1)했습니다. 그러므로 저는 우리 요셉이가 태어났을 때 성경 인물 중에 누구의 이름을 따를까 나름대로 심사숙고했습니다. 모세와 아론이라는 이름은 이미 두 아들에게 붙였고 다음으로 생각한 이름이 바로 요셉이었습니다. 제가 생각한 구약의 요셉이는 그의 아버지 야곱으로부터 특별한 사랑을 받았고 하나님께서 주신 꿈이 있었으며 정직하고 부지런 했습니다.
그는 어떤 고난과 시련이 와도 불평하지 않았고 자기에게 맡겨진 일에 불만을 표시하지 않았으며 자기가 할 수 있는 일을 찾아 최선을 다했습니다. 그는 일찍이 하나님께서 보여 주신 원대한 꿈을 잊지 않았습니다. 그러한 요셉에게 하나님께서 크나큰 꿈과 지혜와 형통함을 주셨습니다.
저는 첫 손자가 요셉과 같은 인물이 되기를 바라는 간절한 마음으로 요셉이라는 이름을 붙여주었습니다. 나중에 들은 이야기지만 요셉이 아버지는 그를 요한이라는 이름으로 불렀으면 했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께서는 준연이에게 요한이를 또 주셨습니다. 거기에다 어여쁜 시온공주도 주셨습니다. 요한이와 시온이는 자기 아빠가 지어준 이름이고 요셉이는 우리 가정에 첫아들이요, 저에게는 특별한 손자라서 이름을 요셉이라 붙여주었습니다.
여러분들도 잘 아시지만 구약의 요셉이에 대해서 잠깐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그는 야곱의 첫 사랑 라헬에게서 늦게 얻은 아들이었습니다. 야곱은 사랑하는 여인 라헬을 아내로 얻기 위하여 7년, 또 7년, 14년을 외삼촌이요, 장인에게 종살이를 하고 얻은 아주 귀한 아내였습니다. 여러분들은 사랑하는 아내를 얻기 위해서 치른 값이 무엇입니까? 얼마나 사랑하고, 얼마나 인내하고, 얼마나 기다렸으며, 얼마의 값을 치르고 희생하셨습니까? 그리고 지금은 그 아내에게 어떠합니까?
야곱에게는 아내가 둘이요, 첩이 둘로 4명의 여인들에게서 많은 아들들을 두었으나 가장 사랑하는 아내로부터는 아이를 갖지 못했습니다. 라헬도 아이를 낳지 못하자 고민도 많이 했겠지만 먼저 아들을 낳은 언니 레아를 시기하고 남편 야곱에게 원망도 했습니다. [라헬이 자기가 야곱에게 자식을 낳지 못하는 것을 보고 자기 언니를 시기하여 야곱에게 이르되, 내게 자식을 달라. 그리하지 아니하면 내가 죽으리라, 하니](창 30:1)
남편과 아내가 다투면 그 원인이 어디로부터 왔든지 아내의 무기는 죽어버리겠다는 것입니다. 라헬도 자기가 자식을 낳지 못하자 야곱에게 죽겠다고 협박을 합니다. 참으로 기가 막힐 노릇입니다. 여러 아들을 둔 야곱은 자기의 결격사유가 있어서 아들을 못 낳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야곱이 라헬에게 말합니다. 그게 내 잘못이냐? 하나님께서 주지 않으시는데 나라고 별 수 있느냐? [야곱의 분노가 라헬을 향해 타오르므로 그가 이르되, 당신이 태의 열매를 맺지 못하도록 금하신 분은 [하나님]이신데 내가 그분을 대신하겠느냐? 하매](창 30:2)
요즈음은 여인들이 결혼을 하지 않으려 하고 혹 결혼을 하더라도 자식을 낳지 않으려 합니다. 설사 결혼을 하고 자식을 낳아도 자식을 위해서 희생하려하지 않습니다. 어쩌다 아이를 낳게 되면 갖다 버리든지 죽여 버립니다. 부부가 이혼을 하게 되면 아이를 서로 맡지 않으려고 다툽니다. 한마디로 모성애나 부성애라는 것이 사라졌습니다. 여러분들도 잘 아는 이야기지만 솔로몬의 지혜로운 판결이야기 좀 하고 가겠습니다.
지금도 그러하다고 하는데 옛날에도 창녀들은 여럿이 합숙을 했습니다. 창녀들은 남자들에게 몸을 팔고 돈을 벌어 먹고삽니다. 지금은 피임약이 발달해서 성관계를 해도 아이를 갖지 않지만 옛날에는 피임약이 없어 원하지 않는 아이를 갖게 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비록 자기가 사랑하지 않는 남자에게서 아이를 갖게 되고 더더구나 창녀들은 그 아비가 누구인지 알지 못하지만 자기가 자식을 낳으면 그 아이를 자기 자식으로 길렀습니다.
◆ 저는 일본 강점기를 겪은 사람은 아니지만 당시 어린 여인들이 위안부로 끌려가 짐승만도 못한 일본 군인들에게 시달리고 원치 않는 아이를 밴 임신한 여인의 사진을 보고 정말 분노가 일었습니다. 비록 그러한 참혹한 일들을 당하고 어느 놈인가의 자식을 갖게 되어 그 아이를 낳으면 그 아이를 키웠습니다. 그것이 모성애(母性愛)라는 것입니다.
솔로몬의 판결에서 두 창녀가 한 집에서 살다가 사흘 간격으로 아이를 낳았습니다. 그러나 한 여인이 잠을 자다가 자기 아이를 깔아뭉개 죽고 말았습니다. 그 죽은 아이 어미가 옆에 있는 산 아이와 죽은 자기 아이를 바꿔치기 했습니다. 그리고는 산 아이를 서로 자기 아이라고 싸운 것입니다.
이 판결은 결국 솔로몬 왕 앞으로 가져오게 되었고 솔로몬은 시시비비를 가리기 위하여 칼을 가져다가 아이를 둘로 나누어 두 여인에게 나누어 주라는 판결을 합니다. 이때 산자의 어미가 말합니다. 내가 포기 할 터이니 그를 죽이지 말라고 울부짖었습니다. 그러므로 이 판결은 그 아이의 진짜 어미가 누구인지 결판이 쉽게 났습니다. 무슨 이야기입니까? 그녀들이 비록 창녀이기는 하지만, 어느 놈의 아이인지는 모르지만, 열 달 동안 자기 뱃속에서 자라다가 세상에 태어났으므로 그 아이를 사랑하고 기르려했습니다.
이것은 무엇을 말합니까? 당시 여인들의 모성애를 말합니다. [왕이 이르되, 살아 있는 아이를 둘로 나누어 반은 이 여자에게 주고 반은 저 여자에게 주라, 하니 그때에 그 살아 있는 아이의 어머니 되는 여자가 속 중심에서 자기 아들을 불쌍히 여겼으므로 왕에게 아뢰어 이르기를, 오 내 주여, 살아 있는 아이를 그녀에게 주시고 아무쪼록 죽이지 마옵소서, 하되 다른 여자는 말하기를, 그것이 내 것도 되게 하지 말고 네 것도 되게 하지 말며 그것을 나누게 하라, 하므로 그때에 왕이 응답하여 이르되, 살아 있는 아이를 그녀에게 주고 결코 죽이지 말라. 그녀가 그 아이의 어머니니라, 하매](왕상 3:25-27) 이는 인류역사에 전무후무한 명 판결로 세상이 끝나는 날까지 이어질 것입니다.
우리나라나 이스라엘도 옛날에는 여인이 결혼하여 자식을 낳지 못하면 저주받은 자로 취급당하든가 심할 경우 쫓겨나기도 했으며 남편이 자식을 낳으려고 첩을 두어도 항의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창세기의 라헬은 자기 몸종을 남편의 품에 안겨 주어서라도 자기 무릎에 자식을 두고 싶어 했고 아이를 낳은 언니를 이기고 싶었습니다.
남편이 자기보다 언니를 더 사랑할까봐 시기와 질투가 일어났습니다.
[그녀가 이르되, 내 하녀 빌하를 보라. 그녀에게로 들어가라. 그녀가 내 무릎 위에 자식을 낳아 주리니 그러면 나도 그녀로 말미암아 자식을 얻으리라, 하고 자기 여종 빌하를 그에게 아내로 주매 야곱이 그녀에게로 들어가니라.](창 30:3-4)
그렇게 하여 라헬은 자기 하녀를 남편에게 주어 두 아들을 낳았으나 결코 만족하거나 행복하지는 않았습니다. 자기가 사랑하는 아들을 낳고 싶은 마음은 여전했습니다. 야곱에게는 이미 열 아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라헬에게는 자식을 갖고 싶은 간절한 마음뿐입니다.
[[하나님]께서 라헬을 기억하시니라. [하나님]께서 그녀에게 귀를 기울이시고 그녀의 태를 여셨으므로 그녀가 수태하여 아들을 낳고 이르되, [하나님]께서 내 치욕을 없애 주셨다, 하고 그의 이름을 요셉이라 하며 이르되, {주}께서 다른 아들을 내게 더하시리라, 하였더라.](창 30:22-24) 이렇게 낳은 아들이 요셉입니다.
요셉은 라헬에게만 귀한 자식이 아닙니다. 야곱에게는 더 특별한 자식입니다.
[이제 이스라엘이 자기의 모든 자식들보다 요셉을 더 사랑하였으니 이는 그가 노년에 얻은 아들이기 때문이더라. 그가 그를 위하여 채색 옷을 지었더라.](창 37:3). 자식을 많이 둔 아버지는 어느 아들을 눈에 띄도록 편애해서는 안 됩니다. 더 사랑받는 아들은 좋을지 몰라도 덜 사랑받는 다른 아들들은 마음에 상처를 입을뿐더러 더 사랑 받는 아들에 대해서 질투를 느끼고 해치기도 합니다. 요셉이 그러했습니다. [그의 형제들은 자기들의 아버지가 그의 모든 형제들보다 그를 더 사랑하는 것을 보고 그를 미워하여 그에게 평안하게 말도 할 수 없었더라.](창 37:4)
이 일로 인하여 요셉의 고난은 시작되었습니다. 요셉이는 들판에서 양을 치던 형들에게 아버지의 심부름을 갔다가 그를 시기하던 형들이 그를 구덩이에 던져서 죽을 고비를 넘기고 가까스로 살아나 미디안 족속의 상인들에게 팔렸으며 그 상인들에 의하여 요셉은 다시 이집트 왕 파라오의 호위대장 보디발의 가정집 종으로 팔려갔습니다.
그러나 요셉은 자기 신세를 탓하거나 슬퍼하거나 형들을 원망하지 않았습니다. 요셉은 주어진 환경에서 최선을 다했습니다. 아주 특별한 대우를 받던 부잣집 귀한 아들이 어느 날 갑자기 낮선 나라의 가정집 종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그에게는 하나님께서 주신 꿈이 있었습니다. 그 꿈이 반드시 이루어 질 것을 굳게 믿고 최선을 다했습니다. 이는 그 꿈을 주신 하나님께서 자기와 함께 하신다는 사실을 굳게 믿었던 것입니다.
나는 우리 요셉이가 구약의 요셉과 같이 되기를 원합니다. 어떤 어려운 환경에서도 누구를 원망하든가, 자기신세를 한탄하든가, 낙심하거나 슬퍼하지 말고 나를 구원하신 주님을 굳게 붙들고 그분을 신뢰하는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러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요셉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기를 원했습니다. 이러한 요셉을 하나님께서 어떻게 인도하셨습니까?
[{주}께서 요셉과 함께 계시므로 그가 형통한 자가 되어 그의 주인인 이집트 사람의 집에 있더라.](창 39:2) 아무리 어려운 환경에서도 주께서 함께하시면 모든 일이 형통합니다. 형통이란 무엇입니까? 하는 일마다 막힘이 없고 통한다는 말입니다. 형통의 반대말은 불통입니다. 진퇴양난입니다. 앞뒤가 꽉 막힌 것입니다.
우리 집은 남향집으로 햇빛도 잘 들고 환기가 잘 됩니다. 바람이 잘 통합니다. 모든 일이 이와 같이 잘 되는 것을 형통하다고 말합니다.
요셉이 보디발의 집에 들어오고 나서 그 집에 모든 일이 다 잘 되었습니다. 이를 요셉의 주인인 보디발이 알아차리게 되었습니다. 저 아이에게는 주께서 함께 하시는 구나! 우리 집에 복덩이가 굴러 들어왔구나! 저 아이라면 무슨 일을 맡겨도 잘 되겠구나! 하는 믿음이 생겼습니다.
[그의 주인이 {주}께서 그와 함께 계심을 보고 또 {주}께서 그가 행한 모든 일을 그의 손에서 형통하게 하심을 보았더라. 요셉이 그의 눈앞에서 은혜를 입어 그를 섬기매 그가 그를 자기 집을 감독하는 자로 삼고 자기의 모든 소유를 그의 손에 맡기니 그가 그를 자기 집과 자기의 모든 소유를 감독하는 자로 삼은 뒤부터 {주}께서 요셉으로 인하여 그 이집트 사람의 집에 복을 내리셨으므로 {주}의 복이 그의 집과 들에 있던 그의 모든 소유에 임하니라.](창 39:3-5) 굴러 들어온 종이 알고 보니 복덩어리입니다.
옛날에는 전쟁고아들이 많았습니다. 다들 어려운 형편이었지만 고아들을 데려다가 친 자식처럼 키운 집도 많았습니다. 그런데 아이를 데려온 집이 무엇인가 잘 풀리지 않으면 그 아이가 재수가 없어서 그런다는 말을 하기도 했습니다. 반면 그 아이가 들어 온 후로 모든 일이 잘 풀리면 복덩이가 들어왔다고 좋아합니다. 보디발은 요셉이가 자기 집에 들어온 후로 모든 일이 형통했습니다. 그야말로 복덩이가 들어온 셈입니다.
여러분들은 복덩이가 되고 싶습니까? 재수 없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까? 요즘 알바 천국에서 광고하는 말도 이와 같습니다. 그 광고를 들어보면, “네가 들어와서 되는 일이 아주 많아! 계속 있어줘!”라며 광고합니다. 누구든지 자기 이름값을 해야 합니다. 누구에게나 유익을 주는 사람, 칭찬 받는 사람이 되기를 노력해야합니다. 초대교회에서 처음 집사를 뽑을 때도 사람들에게 정직하다는 평판이 있는 자를 찾으라했습니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너희는 너희 가운데서 정직하다는 평판이 있고 [성령님]과 지혜가 충만한 사람 일곱을 찾아내라. 우리가 이 일을 그들에게 맡기고 오직 우리는 계속해서 기도와 말씀 사역에 전념하리라, 하니라.](행 6:3-4).
저는 우리 요셉이가 야곱의 사랑하는 아들 요셉이와 같이 되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주께서 주신 꿈을 굳게 붙잡고 끝까지 믿음을 잃지 않기를 바랍니다. 어떤 형편에서도 누구를 원망하거나 환경 탓을 하거나 변명하거나 핑계를 대지 않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모든 일에 부지런하고 한 눈 팔지 않는 신실한 일꾼이 되어 사람들에게는 물론 하나님의 관심을 끌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주께서 함께 하심으로 모든 일에서 형통한 복덩이가 되어 이웃을 기쁘게 하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인생은 고생하려고 태어났다고 욥은 말합니다(욥5:7). 처음 사람 아담의 범죄 이후로부터 사람들에게는 여러 가지 고통이 따릅니다. 이마에 땀을 흘려야 먹을 것을 얻습니다. 창세기의 요셉이도 항상 야곱의 특별한 사랑을 받고 산 것이 아닙니다. 그가 더 큰 인물이 되기 위해서는 고난도 이겨야합니다. 주께서 요셉과 함께 하심으로 그가 형통한 자가 되어 보디발의 집에서 승진을 하고 집사가 되어 모든 것을 총괄하는 감독관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요셉에게서 모든 시련이 끝난 것이 아닙니다.
요셉은 보디발의 아내로부터 성추행 범의 누명을 쓰고 애매하게 감옥에 갇히게 되었습니다. 요셉은 하나님 앞에 죄를 짓지 아니하려고 보디발의 아내의 유혹을 뿌리쳤습니다. 여인이 나를 유혹하든지 내가 여인을 유혹하든지 간음 하는 자는 자신에게는 물론 상대의 가정을 파괴하는 크나큰 죄를 지을 뿐 아니라 나를 지으시고 나를 구원하신 하나님께 죄를 짓는 것입니다.
성추행이나 성폭행이나 간음이나 모든 음행은 다른 모든 죄들보다 더 큽니다.
『음행을 피하라. 사람이 행하는 모든 죄는 몸 밖에 있거니와 음행하는 자는 자기 몸에 죄를 짓느니라.』(고전 6:18) 했습니다. 우리 몸은 우리의 것이 아닙니다. 우리를 구원 하신 주님의 것입니다. [도대체 무슨 말이냐? 너희 몸이 너희가 [하나님]에게서 받은바 너희 안에 계신 [성령님]의 전인 줄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너희는 너희 자신의 것이 아니니 주께서 값을 치르고 너희를 사셨느니라. 그런즉 [하나님]의 것인 너희 몸과 너희 영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고전 6:19-20)
주님을 믿는 사람들에게 가장 쉽게 짓는 죄가 바로 성추행입니다. 간음입니다. 불륜입니다. 이는 자기 자신은 물론 연결된 모든 가정을 파괴시키는 짓입니다. 더 나아가서 하나님께 짓는 가장 큰 죄입니다. 요셉을 붙들고 유혹하는 보디발의 아내에게 요셉은 단호하게 거절하고 뿌리쳤습니다. 그 결과 보디발의 아내는 자기 뜻을 이루지 못한 분풀이를 요셉에게 뒤집어씌웁니다.
요셉은 또다시 어려운 고비를 만납니다. 아내의 말을 믿은 [요셉의 주인이 그를 잡아 감옥에 넣었는데 이곳은 왕의 죄수들이 묶인 곳이더라. 그가 거기서 감옥에 있었더라.](창 39:20).
여러분들은 이러한 일을 당하면 어떻게 합니까? 가능한 나를 도울 자를 물색하고 법에 호소하고 모든 수단과 방법을 동원하여 벗어나려하지 않겠습니까? 그러나 요셉은 애매하게 감옥에 갇혔어도 누구를 원망하거나 슬퍼하거나 괴로워하는 대신 그곳에서도 자기가 할 일을 찾아 최선을 다했습니다. 함께 갇혀 있는 사람들을 섬겼습니다. 그는 낙심하는 대신에 보디발의 집에서나 감옥에서나 이집트의 말을 열심히 익혔으리라 생각합니다. 그렇게 함으로 다시 주님의 은혜를 얻게 되었으며 그가 하는 모든 일이 형통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주}께서 요셉과 함께 계시고 그에게 긍휼을 보이사 감옥의 간수의 눈앞에서 그에게 호의를 베푸시매 감옥의 간수가 감옥에 있던 모든 죄수들을 요셉의 손에 맡기므로 그들이 거기서 무슨 일을 하든지 그가 다 그 일을 행하였더라. 감옥의 간수는 그의 손 밑에 둔 것은 무엇이든 돌아보지 아니하였으니 이는 {주}께서 그와 함께 계셨기 때문이라. {주}께서 그가 행한 일을 형통하게 하셨더라.](창 39:21-23)
다 같이 따라해 봅시다. “{주}께서 그가 행한 일을 형통하게 하셨더라.”
저는 여러분들도 요셉과 같은 믿음으로, 요셉과 같은 삶을 살고, 주께서 요셉과 같이 하셨던 것과 같이 여러분들에게도 복을 주시고 여러분들이 행하는 모든 일에서 형통하게 되시기를 진심으로 축원합니다. 특히 우리 요셉이는 야곱의 특별한 사랑을 받았던 요셉과 같이 살아서 사람들에게도, 하나님께도 인정을 받고 하나님께서 형통하게 하심을 받은 요셉과 같이 지혜롭고 사려 깊은 형통한자가 되기를 간곡히 바라고 부탁합니다.
요셉은 보디발의 아내를 원망하지 않았습니다. 억울하다고 그녀를 고발하지 않았습니다. 그 일을 하나님께서 잘 아시고 하나님께서 해결해 주실 것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요셉이 출세한 뒤에도 그녀를 찾아가 복수 했다는 말이 없습니다.
고진감래(苦盡甘來)라는 말이 있습니다. 쓰디쓴 고난을 이기면 달디 단 일들이 다가온다는 말입니다. 전화위복(轉禍爲福)이란 말도 있습니다. 재화가 바뀌어 복이 온다는 말입니다.
보디발의 아내의 유혹을 뿌리친 용기로 감옥살이를 한 요셉을 더욱 성숙하게 했습니다. 여러분들에게 잠시 닥치는 고난을 고통스럽게 여기거나 낙심하거나 괴로워하지 말고 전능하신 하나님 앞에 올바르게 살면 반드시 하나님께서 더 좋은 것으로 갚아 주실 것을 굳게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러한 역경을 견딘 요셉에게 주어진 보상이 무엇입니까? 당대의 가장 강력한 나라 이집트의 총리가 되었습니다. 이는 요셉이 어렸을 때 그에게 주신 하나님의 꿈을 져버리지 않은 믿음의 결과입니다. 여러분들이 하나님을 믿고 또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면 그분이 기록하신 말씀들을 굳게 믿으시고 소망가운데 견디시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사실 오늘은 하나님께서 주시는 지혜에 대해서 설교를 하려했으나 요셉의 이야기로 흘러버렸습니다. 요셉이 하나님께서 주신 꿈을 굳게 붙들고 승리했을 뿐 아니라 감옥에 갇혔을 때 왕의 잔을 맡은 자와 빵 굽는 자의 꿈을 해석해 준 일로 인하여 파라오의 꿈을 해석해 줄 기회가 왔고 그 일로 인하여 이집트의 총리가 되었습니다.
파라오의 꿈은 그 유명한 이집트의 칠년 풍년과 칠년 흉년의 예고였었습니다. 요셉은 그 칠년 흉년을 위하여 사려 깊고 지혜로운 자를 골라 칠년 풍년 동안에 7년 흉년을 대비하도록 하라고 파라오에게 권고합니다. [그러므로 이제 파라오께서는 사려 깊고 지혜로운 사람을 골라 그가 이집트 땅을 다스리게 하소서. 파라오께서는 또 이 일을 행하시되 곧 이 땅에 직무 수행자들을 두시어 그 일곱 해 풍년에 이집트 땅의 오분의 일을 취하시고 그들이 다가올 그 좋은 해 동안에 모든 식량을 거두고 그 곡식을 파라오의 손 밑에 쌓아 두어 도시들 안에 식량을 간직하게 하소서. 그 식량을 이 땅을 위해 저장하여 이집트 땅에 임할 일곱 해 기근을 대비하시면 이 땅이 그 기근으로 말미암아 멸망하지 아니하리이다, 하니라.](창 41:33-36)
수많은 구절에서 “지혜로운 사람”이 나오는데 여기서 처음으로 등장합니다. 요셉은 단지 파라오에게 지혜로운 사람을 골라 그에게 이집트를 다스리게 하라 했을 뿐인데 파라오의 눈에는 그와 같은 사람이 곧 요셉이란 사실을 알았습니다.
[그 일이 파라오의 눈과 그의 모든 신하들의 눈에 좋게 보이므로 파라오가 자기 신하들에게 이르되, 이 사람같이 속에 [하나님]의 [영]이 거하는 사람을 우리가 찾을 수 있으리요? 하고 요셉에게 이르되, [하나님]께서 이 모든 것을 네게 보여 주셨으니 너와 같이 사려 깊고 지혜로운 자가 없도다. 너는 내 집을 다스릴지니라. 내 온 백성이 네 말에 따라 치리를 받으리니 나는 왕좌에서만 너보다 높으리라, 하니라.](창 41:37-40)
나는 우리 요셉이가 하나님께 인정받는 “사려 깊고 지혜로운 자”가 되기를 소원합니다. 이 말씀을 듣는 여러분 모두가 “사려 깊고 지혜로운 자”가 되기를 축원합니다. 여러분들에게 닥친 고난을 기회로 삼기를 원합니다. 어려운 일들이 몰려올 때 낙심하지 말고 엎드려 기도하십시오. 좋은 날을 소망하고 꿈을 잃지 말고 그날들을 위하여 준비하십시오.
요셉은 형제들이 양식을 사러 그 앞에 나타났을 때 유창한 이집트 말을 하고 히브리말은 알아듣지도 못하고 말도 못하는 척 통역을 두고 대화했고 그 형제들은 그가 요셉인줄 몰랐습니다. 요셉이 17세의 나이에 낮선 나라 이집트로 팔려가서 보낸 세월이 보디발의 집이나 감옥의 13년은 그가 이집트의 언어를 공부하는 학교였음을 알아야합니다. 그는 헛된 시간으로 보내지 않았습니다. 슬픔의 시간이나 원망의 시간이 아니라 지도자가 될 준비를 한 아주 중요한 유학의 기간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만인 앞에 서게 될 태양의 소망을 가지고 역경을 기회로 삼았습니다.
기회는 준비하는 자에게 옵니다. 만약 요셉이 보디발의 집에서나 감옥에서나 자기 신세타령이나 하고 누구를 원망하고 복수할 생각이나 하고 과거 좋은 시절만 생각하고 슬퍼하고 분노하고 13년 동안을 허송세월했다면 이집트의 총리라는 출세 길은 그에게 영원히 오지 않았을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고난의 날에 좋은 날을 대비하여 게을리 하지 말고 요셉과 같이 부지런히 공부하여 전화위복의 기회로 삼기를 축원합니다. 사려 깊고 지혜로운 자들이 되시기를 진심으로 축원합니다. 모든 일에서 형통한 자들이 되시기를 집심으로 원하고 기대합니다.
2019-07-28 14:38: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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