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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도행전 서론 -

말씀: 행 1:1 2019년 8월 4일 일요일 오전 11시
사도행전은 ‘성령 행전’이라고 불리는 책입니다. 이는 주님의 부활과 승천 이후 성령을 통해서 이 땅에 주님의 사역이 계속되고 있다는 뜻입니다.
[저자]는 누가복음의 저자이자 바울의 사랑하는 동역자 누가입니다. 그는 의사이면서 바울과 일생동안 함께 했던 사람입니다(딤후4:11). 흔히 누가는 이방인으로 알려져 있는데 이는 성경적으로나 역사적으로 확실한 근거가 별로 없습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이 유대인에게 맡겨졌다고 말한다면 누가는 유대인입니다. (롬 3:1-2) [그러면 유대인의 나은 점이 무엇이냐? 혹은 할례의 유익이 무엇이냐? 모든 면에서 많으니 주된 이유는 그들에게 [하나님]의 말씀들이 맡겨졌다는 것이라.]
사도행전은 총 28장, 1,007 절이고 킹 제임스 영어 성경으로는 24,229 단어로 되어 있습니다.
[기록 연대]는 A.D 65년경으로 사도 바울이 로마에서 2년간 감옥 생활을 마친 후로 추정합니다(행28:30).
사도행전은 초대 교회의 교회사라고 할 수 있는 책입니다. 주님의 부활 후 승천 직전부터 예루살렘에 성령이 임한 사건, 유대인들의 회심, 사마리아의 회심, 이방인들의 회심과 복음이 전 세계로 선포되는 과정들의 기록이 매우 상세하게 기술되어 있습니다. 성령의 오심을 통해서 이루어진 사도들의 사역을 구체적으로 기록하고 있는데 이 점에서 사도행전, 성령 행전이란 말이 조금도 어색하지 않습니다.
의사 누가는 누가복음을 전편으로 사도행전을 후편으로 계속 기록한 것으로 일련의 연속성을 지니고 있습니다. 1절 후반부에 [......내가 작성한 이전 보고서는](행1:1)-누가복음을 말합니다.
사도행전의 몇 가지 특징을 살펴보면 데오빌로란 사람을 수신인으로 썼고(행1:1, 눅1:3), 예수님의 지상 사역이 성령을 통해 이 땅에서 지속되고 있다는 점을 기록했다는 것입니다.
[제목]은 Acts of Apostles로 ‘사도들의 행적들’입니다.
사도행전의 전체 요절은 1:8절이며, 핵심 어휘는 ‘증거, 증언’(witness)입니다. 사도행전은 비록 28장에서 기록이 멈추지만 내용상 그 끝이 없습니다. 다른 책과 달리 마침 말이 전혀 없습니다. 이는 성령의 역사가 교회 시대 내내 계속 될 것과 성령을 통한 주님의 사역이 끝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사도행전을 통해서 로마 캐톨릭이 그처럼 떠받드는 예수님의 모친 마리아에 대한 기사가 거의 없음을 알 수 있습니다. 사도행전 1:14에서 딱 한번 마지막으로 언급되는 것이 전부입니다. 마리아는 초대 교회 시대 그 누구에 의해서도 숭배 받거나 높임을 받지 않았으며, 사도들은 물론이요 그 어떤 지역 교회에서도 그녀의 이름이 전파되지 않았습니다. 마리아를 공경하고 숭배해야 한다는 논리는 전혀 성경적이지 않으며, 성경적 지지를 받을 수 없습니다.
사도행전의 주요 인물은 베드로와 바울입니다.
베드로는 할례의 일꾼이었고, 바울은 이방인들의 사도였습니다.
사도행전 1-12장은 베드로의 사역이 주로 기록되어 있고, 13-28장까지는 바울의 사역이 자세하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갈라디아서 2:7-8절을 참고합니다.
[오히려 반대로 베드로가 할례자를 위한 복음을 맡은 것같이 내가 무할례자를 위한 복음을 맡은 것을 그들이 보았나니 (베드로 안에서 효력 있게 일하사 할례자를 위한 사도직을 주신 바로 그분께서 내 안에서도 강력하게 일하사 이방인들을 향하게 하셨느니라.)](갈2:7-8). 이는 복음이 유대인에서 이방인들을 향해 나아갔기 때문입니다.
로마 캐톨릭이 베드로를 초대 교황으로 떠받들고 있지만 베드로는 로마에서 사역하지 않았고, 로마인들을 위해 일한 일꾼이 아니었습니다. 성경은 ‘베드로가 할례자를 위한 복음을 맡은 것 같이....베드로 안에서 효력 있게 일하사 할례자를 위한 사도직을 주신......’이라고 분명히 기록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베드로는 예루살렘에서 하루 3000명을 회심시키는 놀라운 말씀 선포자였고, 사마리아에 가서 그들에게 성령이 임하도록 기도했고, 백부장 고넬료와 그 집안을 구원의 길로 인도함으로써 주님이 말씀하신대로 믿음의 문을 여는 역할을 했습니다. 이방인 선교는 베드로가 아니라 주님께서 따로 바울을 택하시고 그에게 맡기셨습니다.
예수님은 부활하신 후에도 40일간 이 땅에 계시며 제자들에게 자신을 드러내셨습니다. 주님이 승천하신 후 열흘 뒤 오순절에 성령이 제자들 위에 강림했는데 이 때 믿는 이들은 성령으로 침례를 받았습니다. 성경은 단 하나의 갈보리, 단 한 번의 부활, 단 한 번의 초림을 말하듯이 단 하루의 오순절에 대해서만 말합니다. 이후로 신약 교회에는 더 이상 오순절이나 기타 지켜야 할 율법이 없습니다. 만약 사도행전의 오순절이 해마다 반복되는 절기라면 해마다, 오순절마다 성령이 임해야겠지만 그런 일은 없습니다.
오순절 성령 강림은 단회적 사건이며, 다시 재현되지 않습니다. 오순절 이후로는 누구든지 복음을 듣고 믿음으로 주님을 받아들이면 그가 구원을 받고 동시에 성령께서 임하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사도행전을 읽을 때 사도들에 의해서 행해지는 수많은 표적들을 봅니다. 방언, 병 고침, 마귀들이 내 쫓기고, 죽은 자가 일어나는 등의 일들이 있었습니다. 이 표적은 ‘사도들의 표적’이라고 합니다.
오늘날은 어떤 성도들이나 목사님들도 이런 표적을 흉내 내거나 그대로 재현할 수 없습니다. 이는 사도들이 죽을 때 사도권을 누구에게 위임하거나 계승해 주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사도직은 유산처럼, 지위처럼, 세습하거나 후계자를 정해 물려 줄 수 있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많은 은사주의자들의 주장처럼 사도의 표적을 누구나 행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이는 까 사도적 권능을 받은 적이 없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영원히 동일하시고(히13:7), 성령 역시 동일하시지만 사도의 표적은 교회와 성도들을 위한 것이 아닙니다.
세 구절을 봅니다.
[모든 혼 위에 두려움이 임하고 사도들을 통하여 많은 이적들과 표적들이 일어나더라.](행2:43).
[사도들의 손을 통하여 백성 가운데 많은 표적들과 이적들이 일어나매 (그들이 다 한 마음이 되어 ..........)] (5:12).
[진실로 내가 너희 가운데서 모든 인내와 표적들과 이적들과 능한 행위들로 사도의 표적들을 행하였노라.](고후12:12).
사도행전에는 사도들을 통해 모세의 시대나 엘리야와 엘리사의 시대에 행해졌던 그런 표적과 기적들이 행해졌습니다. 표적들이 주어진 목적은 신약 성경이 없던 시대에 그들의 사도권에 대한 증거였습니다. 표적은 믿지 않는 유대인들을 위한 것이었습니다. [유대인들은 표적을 요구하고 그리스인들은 지혜를 추구하나](고전1:22)
유대인들은 어디서나 언제나 표적을 요구하기 때문인데 이들은 표적이 없이는 믿지 않을 뿐 아니라 표적을 요구할 권리가 있었습니다. 오늘날 신약 교회에서는 표적이 아니라 말씀을 들음으로 믿어야 합니다. 우리는 보는 것으로 걷지 않고, 믿음으로 걸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믿음으로 걷고 보는 것으로 걷지 아니하노라.)](고후5:7)
사도행전에 있었던 일들이 왜 우리에게는 없는가? 또는 복음서에 주님께서 행하셨던 일들이 오늘날 교회에서는 왜 없는가? 묻는 이들이 있습니다. 우리는 모세의 시대나 엘리야, 엘리사의 시대 때나 주님의 공생애 때나 사도행전의 사도들이 일할 때와는 달리 표적이나 기사가 아닌 말씀을 듣고 믿습니다(롬10:17). 이 마지막 때에 주님은 ‘아들을 통해서 말씀’하시기 때문입니다.
[지나간 때에는 여러 시대에 다양한 방식으로 대언자들을 통하여 조상들에게 말씀하신 하나님께서 이 마지막 날들에는 자신의 아들을 통하여 우리에게 말씀하셨으며 그분을 모든 것의 상속자로 정하시고 또 그분으로 말미암아 세상들을 만드셨느니라.](히1:1-2).
사도행전에는 여전히 구약적 요소들이 많이 나옵니다. 구약과 신약의 중간기, 과도기를 다루는 책이 바로 사도행전입니다. 구약에서 신약으로 넘어가는 다리와 같습니다.
우리는 사도행전 1:26에서 제비뽑기를 신약 성경에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볼 수 있습니다. 제비뽑기는 구약에서 하나님의 뜻을 알고, 어떤 사안을 결정하는 중요한 방법이었지만 신약적 규례는 아닙니다. 베드로가 주도한 제비뽑기를 통해 맛디아가 가룟 유다를 대신해 사도로 정해졌지만 이후로 단 한 번도 다시 언급되지 않습니다. 초대 교회에서 어떤 일을 결정할 때 사도들이나 집사들, 장로들은 제비뽑기를 더 이상 하나님의 뜻을 결정하는 수단으로 사용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교회의 일이나 자신의 어떤 선택과 결정에 있어서 제비뽑기를 사용한다면 올바른 성령의 인도함을 받을 수 없을 것입니다. 제비뽑기는 더 이상 신약 교회의 규례가 아니며, 하나님의 뜻을 아는 수단이 아닙니다. 제비를 던져 사도를 뽑는 일은 베드로를 비롯한 다른 사도들에게 맡겨진 사역이 아니라 주님이 친히 부르시고 임명하시는 일입니다.
하나님은 베냐민 지파에서 사울이라 불리는 바울을 사도로 임명하셨습니다.
사도행전에는 예수님을 믿는 유대인들이 성전이 아니라 교회에 더해졌습니다. 교회란 단어가 마태복음에 두 번 사용되었지만(마16:18, 18:17), 이는 예언적인 말씀입니다. 주님께서 “이 반석 위에 내가 내 교회를 세우리니”(마16:18) 하셨으므로 이는 미래형(will)이었습니다. 그날로 교회가 세워 진 것이 아닙니다. 주님이 말씀하신 교회는 사도행전에서 성령이 임한 후에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로 세워집니다.
사도행전 2:47을 보십시오. [하나님을 찬양하며 온 백성에게 호감을 얻으니 주께서 구원받아야 할 자들을 날마다 교회에게 더하시니라.](행2:47). 하나님은 성전이 아니라 ‘교회’를 말씀하십니다. 주님은 더 이상 예루살렘의 성전을 말씀하지 않으십니다. 건물로서의 성전 시대는 완전히 끝나고 믿는 성도들의 몸이 거룩한 성전이 되었습니다.
교회란 어떤 건물이 아니라 ‘구원받은 이들의 모임’을 말합니다. 사도행전 5:11을 보십시오. [온 교회와 이 일들을 들은 모든 사람들에게 큰 두려움이 임하더라.](행5:11). *온 교회란 구원받은 모든 성도들을 의미합니다.
사도행전 7장에는 신약 성경에서 가장 긴 설교가 나오는데 구약 성경을 완전히 요약해 놓은 스데반의 설교입니다. 신약 성경 최초의 순교자로 알려진 스데반은 성령 충만한 가운데 말씀을 선포했지만 유대인들은 그를 죽여 버림으로써 주님을 배척해 십자가에 못 박은 뒤, 성령을 거역하고 배척하는 죄를 지음으로써 민족적 회심의 기회를 잃어 버렸습니다.
신약 성경에서 하늘에 계신 주님을 실제로 본 사람은 스데반, 바울, 요한 세 사람입니다. 우리는 유대인들이 3위 일체의 하나님을 모두 거부한 것을 목격하게 됩니다. 침례인 요한을 통해 선포되는 회개의 침례를 거부함으로써 아버지 하나님의 뜻을 거부했습니다. [바리새인들과 율법사들은 그에게서 침례를 받지 아니하였으므로 자기들을 향한 하나님의 계획을 거절하더라.](눅7:30).
예수 그리스도를 배척하고 십자가에 못 박아 죽임으로써 아들 하나님을 거부했습니다. 스데반을 통해 선포되는 복음을 거부함으로써 죄에 대해서, 의에 대해서, 세상에 대해 책망하는 성령을 거부했습니다. 이로써 이들에게 전해지던 복음은 사마리아와 이방인들을 향하게 된 것입니다.
사도행전 8장에서 우리는 이디오피아 내시의 회심을 읽을 수 있습니다. 이디오피아 내시는 최초로 구원받은 이방인이었습니다. 그는 주의 이름으로 침례를 받았습니다(행8:37).
사도행전 9장에서 우리는 사울이라 불리는 바울의 회심을 봅니다. 바울이 섭리적으로 예비 되었습니다. 바울은 베냐민 지파의 유대인이었고, 날 때부터 로마의 시민권을 가지고 있었으며, 그리스 문화에서 교육을 받았고, 가말리엘 문하에서 엄격하게 율법 교육을 받은 바리새인이었으며, 주님의 선택을 받았습니다.
바울이 선교사로 부름 받기 전에 약 10년 동안 교회에서 말씀 사역을 했습니다.
선교사로 떠나는 중에 바나바와 그의 조카 요한 마가와 다툼이 있어서 결별했습니다.
바울은 복음을 선포할 때 자신의 회심 간증을 사용했으며 신약 성경의 절반에 해당되는 13권의 성경을 기록했습니다.
사도행전 10장에서 우리는 이탈리아 백부장 고네료의 회심을 봅니다. 믿음이 선민 유대인들에게 한정 된 것이 아니라 이방인들에게도 동일하게 미치며, 동일한 성령을 주시는 놀라운 광경을 보게 되었습니다. 고넬료의 회심은 하나님의 은혜, 믿음, 성령을 주시는 일이 이방인들에게도 임한다는 놀라운 사건이 되었습니다.
사도행전 11장에는 안디옥에서 처음으로 ‘그리스도인’이란 불리는 무리들을 만납니다. 크리스천(Christian)이란 말은 예루살렘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안디옥입니다.
사도행전은 마태복음이나 히브리서와 같이 3권의 과도기적 성경입니다. 마태복음은 책의 분류상 신약 성경이지만 구약에서 신약으로 넘어오는 과도기적 성경으로 사실상 신약이 발효되는 것은 주님의 죽으심 이후인 27-28장부터입니다. 그러므로 마태복음 내용은 신약 교회에 교리적으로 적용할 수 없습니다. 실제적으로 주님은 하늘의 왕국을 선포하라고 열두 제자들을 보내실 때에 누구에게 보내시는가를 보면 마태복음의 대상이 누구인지를 잘 알게 됩니다.
[예수님께서 이 열둘을 내보내시며 그들에게 명령하여 이르시되, 너희는 이방인들의 길로도 들어가지 말고 사마리아 사람들의 어떤 도시로도 들어가지 말며 오직 이스라엘의 집의 잃어버린 양들에게로 가라. 너희는 가면서 선포하여 이르되, 하늘의 왕국이 가까이 왔느니라, 하라.](마 10:5-7)
마치 구약과 신약을 이어주는 다리라고 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부릿지 복음이라 하기도 합니다.
사도행전은 히브리인들의 유대교와 초대 신약 교회의 과도기적 성경으로서 신약 교회에 교리적 적용이 불가능한 내용들이 많습니다. 또한 히브리서는 교회 시대와 환란 시대의 과도기적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 세 권의 책은 각별히 시대와 대상을 잘 구분해서 적용해야 합니다. 모든 성경이 다 영적으로 유익하고 우리에게 교훈을 줍니다. 그러나 교리적인 적용은 그러하지 않다는 점을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님은 [너는 진리의 말씀을 바르게 나누어 네 자신을 [하나님]께 인정받은 자로, 부끄러울 것이 없는 일꾼으로 나타내도록 연구하라.](딤후 2:15) 하셨습니다. 유대인들에게 하신 말씀을 교회가 받아 지킬 수 없고 교회는 환난 성도들이 이 땅에서 행해야 할 일들을 할 수 없으며 환난 성도들은 교회가 받은 말씀을 지켜 행할 수 없습니다. 성경전서는 모두 하나님의 말씀이지만 유대인에게나 교회에나 환난 성도들에게 동일하게 적용할 수는 없습니다.
사 복음서를 통해 육신을 입으신 주님의 지상 생애와 가르침들을 볼 수 있고, 사도행전을 통해 주님의 승천과 성령의 오심을 통해 지역 교회들이 세워지고 회심자들이 생기는 과정을 볼 수 있습니다. 이것은 영적 교훈 이전에 이 땅에서 실제로 일어난 역사적 인물들의 말과 행동을 담은 역사적 사건들의 기록입니다. 성경은 결코 영적, 정신적, 도덕적 감화를 주는 것이 전부인 책이 아니라 역사적 사실을 담고 있는 책이란 점을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어떻게 유대인들이 복음을 받아 들였는가? 어떻게 그들이 복음을 배척하고 교회를 핍박했는가? 사마리아는 어떠했으며, 소아시아의 여러 민족들과 나라들은 어떠했는가? 당시 대제국이었던 로마에는 복음이 어떻게 들어갔는지 등등이 모두 사도행전에 역사적 사실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사도행전의 전체 개요를 네 부분으로 나누면 1-7장은 예루살렘에서 ⇒ 온 유대로, 8장은 ⇒ 사마리아로, 9-12절은 ⇒ 이방인들에게로 13-28절은 ⇒ 땅의 끝까지 복음이 선포되는 그런 확장 구조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는 주님께서 [오직 성령님께서 너희에게 임하신 뒤에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에서 그리고 땅의 맨 끝 지역까지 이르러 나를 위한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행1:8)는 주님의 말씀과 정확히 일치합니다.

오늘은 사도행전에 나온 주요 사건을 연대기적으로 정리하겠습니다.
1. 주님의 승천(1;9-11) -A.D.30,
주님은 제자들이 보는 앞에서 몸이 하늘로 들림을 받으셨고 동일한 모습으로 이 땅에 재림하실 것을 천사들을 통해 말씀하셨습니다.
2. 오순절(2:1-41) -A.D.30,
성령이 하늘로부터 임하여 믿는 이들 안에 거하시고, 성령 침례를 주셨습니다.
이 사건은 단회적인 사건입니다. 그 이후 해 마다 오순절에 이 사건이 재현된 것이 아니었습니다.
3. 초대 교회(2:42-6:7) -A.D. 30,
예루살렘에 회심하고 예수를 믿은 이들이 침례를 받고 교회를 이루었습니다.
성전 중심 시대가 아니라 교회 시대가 열린 것입니다.
4. 첫 번째 박해(4:1-31) -A.D. 31,
사도들이 주님의 부활을 증언했을 때 박해가 임했습니다.
5. 두 번째 박해(5:17-42) -A.D. 32,
6. 세 번째 박해(6:8-8:4) -A.D. 35-36,
스데반의 죽음. 예루살렘의 교회가 사마리아와 다른 지역으로 흩어지게 됩니다. 유대인들이 공식적으로 교회와 교인들을 박해하고 죽입니다.
7. 빌립의 사역(8:5-40) -A.D. 36.
일곱 집사 중의 한 사람이었던 빌립이 사마리아에서 복음을 전하면 놀라운 열매를거둡니다. 동시에 그는 성령의 인도함을 받아 이디오피아 내시에게 복음을 전하고 곧 바로 침례를 주었습니다.
8. 바울의 회심(9:1-21) -A.D. 37
9. 바울의 사역(9:22-30) -A.D. 39,
다마스커스, 예루살렘, 가이사랴, 다소로 옮겨 다님. 박해를 피해서.
10. 백부장의 회심(10:1-11:18) -A.D. 41,
가이사랴에 있던 베드로가 성령의 인도를 받아 백부장 고넬료 집으로 가 복음을 전함.
복음을 전하는 중에 성령이 그들 위에 임하였음.
11. 안디옥에서 이방인 교회가 세워짐(11:19-24). -A.D.41,
12. 바울과 바나바가 안디옥에서 제자들을 가르침(11:25-26) -A.D.41,
최초로 그리스도인이란 이름이 붙음.
13. 야고보의 죽음, 베드로의 투옥(12:1-19) -A.D. 44,
14. 바울의 1차 선교 여행(13:1-14:28) -A.D. 45-47,
15. 예루살렘에서 종교 회의가 열림(15:1-29) -A.D. 50,
믿음으로 의롭게 되며 율법과 상관없음이 신약 교리로 선포되었다. 유대교의 율법, 의식 vs 이방인들의 믿음, 유대인과 이방인이 그리스도 안에서 차별이 없음을 공식 확인함.
16. 바울의 2차 선교 여행(15:36-18:22) -A.D. 51-54,
17. 바울의 3차 선교 여행(18:23-21:19) -A.D. 54-58,
18. 바울이 예루살렘에서 체포됨(21:20-23:22) -A.D.58,
19. 바울이 카이사르에게 청원하다(23:23-26:32) -A.D. 58-60,
바울은 죄수로서 로마에 가게 됨.
20. 바울의 로마 이송과 로마 도착(27:1-28:31) -A.D. 60-61,
바울은 자기 셋집에서 만 2년을 설교하고 선포함.

사도행전은 바울의 죽음이나 끝을 기록하지 않고 이렇게 마감합니다.
지금도 교회를 통해 성령의 사역, 우리 주님의 사역은 계속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2019-08-04 15:06: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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