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 소개
예배시간 안내
약도/찾아오시는 길
연락처


게시판
교회 소식/공지
질의 게시판
행사 및 사진
Free Board
찬양방


말씀 및 설교
kjv mp3 player
주일 설교
묵상/은혜의 말씀
특강


지역 교회
링크


 


  관리자 [ E-mail ]
  내 증인이 되리라.
  http://av1611.co.kr

-내 증인이 되리라-
말씀: 행 1:1-26 2019년 8월 4일 일요일 오후 2시
사도행전 1장을 요약하면 ①주님의 승천과 ②제자들의 합심 기도, ③가룟 유다를 대신할 사도 임명 이 세 가지입니다.

1:1-2은 누가 복음에 대한 언급입니다.
의사 누가는 사도행전을 기록하면서 “내가 작성한 이전 보고서”라는 것은 누가복음을 말합니다. 누가복음의 내용은 “예수님께서 행하시고 가르치기 시작하시고 친히 선택하신 사도들에게 성령님을 통해 명령들을 주시고 들려 올라가신 날까지의 모든 일을 기록한 것”(행1:1-2)입니다.
그렇다면 누가 복음에는 주님의 탄생과 승천에 대한 기록이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킹 제임스 성경을 제외한 어떤 성경에도 누가복음에 주님이 승천하시는 장면이 없습니다. 킹 제임스 성경에는 “그분께서 그들을 축복하실 때에 그들을 떠나 위로 올려져서 하늘로 들어가시니라.”(눅24:51)고 말합니다. 이로써 우리는 킹 제임스 성경만이 누가가 기록한 바른 성경이란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누가복음을 읽고 연속해서 사도행전을 읽어야 주님께서 태어나시고, 사역하시고, 가르치시고, 고난 받으시고, 죽으시고, 부활하시고, 승천하시고, 약속하신 성령께서 강림하신 것을 알게 됩니다. 또한 주께서 사도들을 통해 성령님께서 행하신 일들을 기록한 사도행전을 통하여 교회의 시작과 성장을 알게 됩니다. 그러므로 사도행전은 우리의 영적 생활의 실제적인 교과서라고 할 수 있습니다.

1:3-8절은 주님께서 십자가의 고난을 받으신 후 묻히셨다가 부활하시고 승천하시기까지 40일간의 주님의 행적에 대한 요약입니다. 주님은 부활하신 후에 ‘자신의 살아계심을 절대 확실한 많은 증거들로 그들에게’(3중) 보여 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다는 것은 온 유대에 다 알려진 사실입니다. 이 점은 누구도 의심하지 않습니다. 믿지 않는 이가 없는 유명한 역사적 사건입니다. 그런데 죽은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그분이 부활하셨기 때문에 ‘살아계시다’입니다.
주님은 부활을 ‘절대 확실한 많은 증거들’을 통해 보이셨습니다. 제자들의 모임 가운데 세 번이나 나타나셨고, 영인 줄로 알고 두려워하는 제자들을 향해서는 만져 보라고 하셨습니다. 도마에게도 자신의 고난의 흔적인 손과 옆구리를 만져 보라고 말씀하셨고, 제자들이 보는 앞에서 음식을 드심으로써 영이 아니라 몸으로 부활하셨음을 거듭 보이셨습니다. 또한 주님은 40일 동안 ‘하나님의 왕국’에 관한 것들을 말씀하셨습니다(3).
사도들에게는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아버지의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도록 하셨는데 이는 다름 아닌 성령님의 강림을 말합니다. 주님은 몇 차례에 걸쳐 자신이 떠나면 성령을 보내 주시겠다고 하셨습니다.
“위로자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님”(요14:26),
“내가 아버지로부터 너희에게 보낼 위로자 곧 아버지로부터 나오는 진리의 영”(요15:26)이 바로 주님께서 미리 말씀해 주신 성령님에 대한 것입니다.
사도들은 12제자로 부름 받을 때 구약의 대언자나 왕들처럼 뿔 나팔에 기름을 가득 담아 머리에 붓는 그런 의식이나 ‘성령’의 임재 등이 없었습니다. 사무엘이 사울이나 다윗에게 기름을 부어 그들에게 직분을 주시듯이 주님은 사도들에게 그런 성령의 기름 부음을 주시지 않으셨습니다.
그래서 복음서에서 제자들은 구약의 대언자들이 행했던 그런 능력을 발휘하거나 대언을 하는 등의 일을 하지 않았습니다. 이스라엘 각 도시로 전도 여행을 보낼 때 ‘마귀를 제압하고, 병을 고치는 권능’을 주셨지만 성령의 기름을 부어 주시지 않으셨습니다. 대신 주님께서 고난을 받으시고 영광을 받으신 후 하늘로 올라가시면 성령을 부어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5절을 보십시오. “참으로 요한은 물로 침례를 주었으되 너희는 이제부터 많은 날이 지나지 아니하여 성령님으로 침례를 받으리라, 하시느니라.”(5). 부름 받은 제자들이 받아야 할 침례는 성령 침례입니다. 이전에 요한에게 물로 침례를 받았지만 그와는 전혀 다른 ‘성령’으로 침례를 받아야 그리스도의 몸 안으로 들어가게 되고, 살아있는 돌들로서 주님의 집으로 건축됩니다.
성령이 임했다고 해서 그것이 모두 성령 침례는 아닙니다. 성령 충만이 성령 침례도 아닙니다. 성령으로 침례를 받는 것은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주님 안으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구약의 성도들 가운데 성령 충만했던 이는 많습니다. 주님께서 영으로 충만하게 하신 것은 특별한 사역을 위한 것이었습니다.
심지어 모압의 대언자였던 발람도 성령으로 충만해서 대언을 했고, 삼손과 사울도 성령으로 충만했던 적이 있습니다. 성령 충만이 곧 영적인 사람, 믿음의 성숙, 성령의 열매를 맺는 삶을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누군가를 쓰실 때 성령님의 감동을 받고 성령님에 의해 사용되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령의 임하심과 내주하심의 성령침례는 전혀 다릅니다.
여러분도 알다시피 사울이나 삼손의 영적 삶은 엉망이었습니다. 발람 역시 변화 받지 못했습니다. 모세의 성막이나 솔로몬의 성전을 짓던 기술자들은 대언자나 제사장이 아니었음에도 주님께서 그 사역을 위해 성령을 충만케 해 주셨습니다. 그들은 성령을 통해 받은 지혜로 성막과 성전을 짓는데 기술을 발휘했던 것뿐입니다.
주님은 제자들에게 ‘이제부터 많은 날이 지나지 아니하여 성령님으로 침례를 받으리라’ 말씀하셨습니다. 주님이 승천한지 열흘 뒤 오순절에 주님의 말씀대로 이들은 성령으로 침례를 받았습니다. 이로써 주님의 몸 된 교회가 이 땅에 출현하게 되었습니다. 성령 침례는 일찍이 침례 요한이 물로 침례를 주면서 이미 예언한 말씀입니다(마1:8, 요1:23).
“요한이 그들 모두에게 응답하여 이르되, 참으로 나는 너희에게 물로 침례를 주거니와 나보다 더 능력 있는 분이 오시나니 나는 그분의 신발 끈을 풀 자격도 없노라. 그분께서는 너희에게 성령님으로 침례를 주시고, 불로 침례를 주시리니”(눅3:16). 했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예수님께서 성령님으로 침례를 주시고 또 불로 침례를 주시는 분인데 제자들에게 말씀하실 때 ‘불 침례’는 조금도 언급하지 않으셨다는 점입니다. 불 침례는 믿지 않는 자들을 지옥 불에 던지는 심판을 말하기 때문입니다.
성령 침례는 모든 성도들을 한 성령으로, 한 몸 안으로 들어가게 하는 것입니다(고전12:13). 성령 침례를 통해 모든 성도들이 영 안에서 한 영, 한 믿음, 한 몸이 될 수 있습니다. 구원 받은 성도들이 주님을 받아들여 주님과 한 몸을 이루는 교회의 정의가 성령 침례로 하나 되는 것입니다. 『그 날에는 내가 내 [아버지] 안에, 너희가 내 안에, 내가 너희 안에 있음을 너희가 알리라.』(요 14:20) 성령 침례는 믿지 않는 자들에게 증거의 능력을 주기 위함입니다.
마지막으로 성령 침례는 성령의 열매를 맺게 하고, 성령의 다양한 은사들을 주시기 위함입니다. 사람이 성령으로 침례를 받는 유일한 조건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승천하시면 제자들에게 주실 첫 번째 선물이 성령을 주시는 것입니다. 성령님 자체가 선물입니다. 성령님 자체가 제자들이 받은 능력입니다.
성령님은 제자들을 위로하는 하늘의 위로자요, 진리 한 가운데로 인도하는 인도자요, 권능을 부여하는 능력자요, 하나님의 뜻대로 우리를 위해 간구하는 중보자요, 열매를 맺음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는 복되신 하나님이십니다. 성령이 임할 때 마음은 자유 함이 있습니다. 성령이 임할 때 말씀은 살아서 우리 안에서 일을 합니다.
그러나 당시 제자들의 관심은 성령 침례가 아니라 이스라엘 왕국의 회복이었습니다. 제자들에게 성령 침례보다 더 급하고 중요한 문제가 바로 ‘왕국의 회복’이었던 것입니다.
6절입니다. “그러므로 그들이 함께 왔을 때에 그분께 여쭈어 이르되, 주여, 주께서 이때에 그 왕국을 이스라엘에게 다시 회복시켜 주고자 하시나이까? 하매” 그들은 주님이 말씀하신 성령 침례에 대해서 묻지 않았습니다. 메시야 왕국의 회복은 이스라엘의 꿈이요, 오랜 소망이었습니다. 지상에 세워질 메시야 왕국에 대한 모든 성취를 이루실 것이란 기대를 한 몸에 받았던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 박혔을 때 그 꿈은 산산조각 났지만 부활하셨으니 당연히 그에 대한 무슨 말씀을 기대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주님은 ‘하나님의 왕국과 성령 침례’에 대해서만 말씀하실 뿐입니다.
7절입니다. 주님은 제자들의 질문에 [그분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그때나 그 시기는 아버지께서 자신의 권능 안에 두셨으니 너희가 알 바 아니요,](7)라고 말씀하십니다. 제자들이 궁금해 물었던 것, 주된 관심사는 실제로 제자들이 알바가 아니었던 문제였습니다. 주님은 승천 직전에 다시 제자들에게 성령에 대해서 말씀하십니다. 성령으로 침례를 받은 제자들이 해야 할 일에 대해서 말씀해 주셨습니다.
8절입니다. “오직 성령님께서 너희에게 임하신 뒤에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에서 그리고 땅의 맨 끝 지역까지 이르러 나를 위한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8).
지상에서 주님의 마지막 명령이라고 일컫는 이 말씀은 사도들과 교회와 모든 성도들에게 주어진 지상 과제입니다. 구약의 이스라엘은 민족적으로 ‘하나님(여호와)의 증인’이었습니다.
“[주]가 말하노라. 너희는 나의 증인이요, 내가 택한 나의 종이니 이것은 너희가 나를 알고 나를 믿으며 내가 그인 줄 깨닫게 하려 함이라.....”(사43:10a),
“......그러므로 너희는 나의 증인이요, 나는 하나님이니라. [주]가 말하노라.”(사43:12b),
“.......너희는 곧 나의 증인이니라. 나 외에 신이 있느냐? 참으로 신은 없나니 나는 다른 신을 알지 못하노라.”(사44:8).
이스라엘 민족은 우상들과 각 민족들이 섬기는 수많은 신들과 잡신들이 우글거리는 온 세상에 ‘이스라엘의 하나님’만이 참 하나님이요, 살아계신 하나님이란 사실을 증언하도록 부르심을 받았고, 택함 받았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민족적으로 ‘하나님의 증인’들입니다.
반면 교회가 세상으로부터 부르심을 받은 것은 예수 그리스도가 참 하나님이시오, 그분이 구원자란 사실을 온 세상에 증언하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성령을 주신 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증언하는 ‘증인’이 되게 하기 위함입니다. 그러므로 이단 종파인 “여호와의 증인들”은 자신들이 유대인도 아니며 구약시대도 아닌 신약의 그리스도의 증인됨을 알지 못한 맹인들입니다. 이방인들인 주제에 과거 유대인들에게 주신 말씀의 꿈속을 헤매는 불쌍한 자들입니다.
성령의 권능을 받지 않고는 누구도 ‘예수 그리스도의 증인’이 될 수 없습니다. 증인이란 자신이 보고, 듣고, 경험한 것을 책임을 지고 증언하는 사람입니다. 자신의 경험이 아니라 남의 이야기를 옮기는 것은 증인이 아닙니다.
사도들은 3년 반이란 시간 동안 주님과 함께 있었기에 자신들이 보고 듣고 경험한 것들을 말하기만 하면 증인의 자격이 되겠지만 그것만으로는 전혀 주님을 보지도 듣지도 못한 사람들에게 증거의 능력을 확보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주님은 ‘오직 성령님께서 너희에게 임하신 후에 너희가 권능을 받고....나를 위한 증인이 되리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우리는 증거의 능력을 얻기 위해서 성령으로 충만해야 합니다. 권능을 받아야 합니다. 무엇보다 우리 주님께서 물로 침례를 받으시고, 광야에서 시험을 받으신 후에 증거의 사역을 위해 권능을 입으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성령의 권능을 입고 갈릴리로 돌아오시매 그분의 명성이 주변 온 지역에 두루 퍼지니라.”(눅4:14). 이것은 사역의 원칙입니다. 주님을 섬기고 복음 증거를 위해 매진하는 이들이 늘 간구하는 한 가지 기도는 ‘성령의 권능’을 주시라는 것입니다. 성도들은 성령을 달라고 기도하지 않습니다. 대신 ‘성령으로 충만 하라’(엡5:18)는 말씀대로 [성령 충만]을 간구합니다.
우리 몸은 결코 빈 그릇처럼 되어서는 안 됩니다. 성령으로 가득 채움을 받고, 은혜가 충만하고, 주님의 말씀으로 가득 채움을 받아야 합니다. 우리는 마음을 비우는 것이 아니라 무엇인가를 채워야 합니다. 성도가 성령이 없는 듯이 사는 것은 패배의 삶이요, 열매 없는 삶입니다. 성도들은 무릇 세상이 갖고 있지 못한 하나님의 권능, 하늘로부터 입은 능력으로 살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때로 이 구절에서 약간의 신학적 논쟁이 발생하기도 하는데 어떤 이는 성령 침례가 곧 권능이라고 말합니다. 킹 제임스 성경은 ‘...임하신 뒤에 너희가 권능을 받고’라고 되어 있지만 성령과 권능을 동의어로 보는 것입니다.
반면 어떤 이들은 성령으로 침례를 받은 후에 권능을 받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이 둘을 분리해서 보는 것입니다. 성령과 더불어 권능을 동시적으로 받을 수도 있지만 한 참의 시간이 지난 뒤에 받을 수도 있다고 말합니다. 자, 성경을 통해 이 주장들을 함께 살펴봅시다.
주님은“......너희는 높은 곳으로부터 오는 권능을 입을 때까지 예루살렘 시에 머물라,”(눅24:49b) 명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성령과 권능이 동의어처럼 보이는 말씀입니다.
제자들은 성령님이 임하신 후에 곧바로 (동시적으로) 권능을 입었습니다. 하지만 사도행전에 나오는 이런 제자들의 체험과 달리 오늘날 대부분의 성도들은 믿는 그 순간에 성령을 받았는지 받지 않았는지, 권능을 받았는지 받지 않았는지 거의 모릅니다. 그래서 몇 몇 은사주의자들은 ‘표적’을 통해 성령을 받았는지 확인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그들은 주로 방언을 예로 듭니다. 그래서 “성령 받으라.” 집회도 하고, “성령 주소서” 노래도 하고, 기도회도 합니다. 이는 완전히 잘못된 것입니다. 성령을 받는 유일한 조건은 주님을 마음으로 믿고, 그분을 받아들이고 입으로 고백하는 것이 전부입니다. 자신이 죄인임을 주님 앞에 나아와 고백하면 주님은 그 사람을 받아 주시고, 성령을 값없이 주십니다.
문제는 권능입니다. 성령을 받은 후에 성령의 권능이 곧 바로 표적이나 기사로 나타나지 않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여기서 주의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권능, 말씀의 권능, 성령의 권능, 부활의 권능, 오는 세상의 권능 등 권능이란 권능은 다 하나님에게서 나는 것이고, 그 권능은 우리 속에 계신 성령을 통해 나타난다는 점은 분명합니다. 이는 분명한 성경적 진리입니다.
하나님의 권능이 우리 안에서 완전해 지기 위해 필요한 것은 우리의 연약함입니다. 하나님의 권능은 연약한데서 완전해 진다! 이는 역설적이지만 사실입니다. 그렇다면 성령과 권능은 동격이 아니라 권능이 성령을 통해 드러나는 한 속성이요, 특징임을 알 수 있습니다. 성경으로 예를 들어 봅시다.
“또 나의 말과 나의 복음 선포를 사람의 지혜의 유혹하는 말들로 하지 아니하고 성령과 권능을 실증(實證)함으로 하였으니 이것은 너희의 믿음이 사람들의 지혜 안에 서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의 권능 안에 서게 하려 함이라.”(고전2:4~5). *of the Spirit and of the power. 동격이 아니다.
또 말하기를, [그러나 {주}께서 원하시면 내가 곧 너희에게 가서 우쭐대는 자들의 말이 아니라 권능을 알아보리니 하나님의 왕국은 말에 있지 아니하고 권능에 있느니라.] (고전4:19~20)고 합니다. 그래서 많은 이들이 성령을 받은 후에 봉사, 사역, 증거를 위해 위로부터 권능을 입기를 구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실제로 교회사에 많은 주의 종들이 이런 능력을 체험한 뒤 위대한 복음 사역자들로 일한 일꾼들이 많이 있습니다.
미국의 D.L 무디, 빌리 선데이, 찰스 피니, R.A 토레이를 비롯해 영국의 잔 웨슬리와 조지 휫필드 등은 그런 실 예를 간증으로 남긴 사람들입니다. 반면 따로 권능을 달라고 전혀 구할 필요가 없고, 이미 성령을 받는 순간 성령 자체가 하나님의 권능이기 때문에 우리는 기도하고 믿음으로 행하기만 하면 된다고 말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권능은 우리 속에 계신 성령님으로부터 나는 것은 틀림없습니다(고후4:7).
“그러나 우리가 이 보배를 질그릇 안에 가지고 있나니 이것은 뛰어난 권능이 하나님에게서 나며 우리에게서 나지 아니하게 하려 함이라.”(고후4:7). 핵심은 우리가 어떻게 이 권능을 실제적으로 복음 증거, 그리스도의 증인된 삶을 사는데 사용 하는가 입니다. 성도들이 어떤 사역을 위해서 주님께 지혜와 권능을 주시기를 끊임없이 구하는 것은 전혀 잘못된 것이 아니며 오히려 더욱 구해야 할 것이라고 말해 주어야 합니다. 우리 자신이 위로부터 오는 권능을 입기를 간절히 갈구하고 구해야 합니다.
9-11절은 주님의 승천 장면입니다.
11절을 보십시오. 주님 곁에 섰던 두 천사는 주님의 재림을 예언하고 있습니다.
[또 그들이 이르되, 너희 갈릴리 사람들아, 너희가 어찌하여 서서 하늘을 바라보느냐? 너희를 떠나 하늘로 들려 올라가신 이 동일한 예수님께서는 너희가 그분께서 하늘로 들어가심을 본 그대로 오시리라, 하니라.](11).
제자들은 주님의 승천을 보는 동시에 재림을 보고 있습니다. 하늘로 올라가신 그분께서 하늘로 들어가심을 본 그대로 오시기 때문입니다. 다시 오시는 분은 승천하신 “이 동일한 예수님”(this same Jesus)입니다. 이 말씀은 오늘날 재림에 대한 모든 이론과 이단 사설들을 아웃시켜 버리는 말씀입니다. 올라가시는 모습 그대로라면 우리 안에 임하신 성령을 예수님의 재림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눈에 보이지 않게 영으로 은밀히 오셨다고 누가 말한다면 그 역시 “이 동일한 예수님”이라 할 수 없습니다.
13-14절은 제자들이 함께 모여 기도하는 장면입니다. 이들은 주님의 명령대로 예루살렘을 떠나지 않고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성령을 기다리며 기도하고 있었습니다. 주님이 승천하신 후에 제자들이 한 첫 번째 일은 기도하며 위로부터 능력을 입을 때까지 성령님을 기다리는 것이었습니다.
12절에는 열 한 사도의 이름이 나오고 14절에는 여자들과 예수님의 모친 마리아와 육신의 형제들이 나옵니다. 예수님의 형제들은 예수님을 믿지 않았다가 부활 후에 주님을 믿고 초대 교회의 기둥들이 되었습니다. 예수님의 모친 마리아에 대한 기사는 이곳이 마지막입니다. 초대 교회는 물론이요, 어느 누구도 마리아를 숭배하거나 높이지 않았음에 주목하십시오.
우리가 눈여겨 볼만한 부분은 14절 후반부입니다.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와 그분의 형제들과 함께 한 마음이 되어 기도와 간구를 계속하더라.](14). 기도하기 위해 모인 다락방은 최후의 만찬을 한 마가의 다락방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곳에서 이들은 “함께 한 마음이 되어 기도와 간구를 계속”했습니다.
주님이 주신 약속이라 할지라도 우리는 막연히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함께 기도하고 간구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계시된 뜻이라 할지라도 늘 기도하고 간구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자신의 뜻을 알려 주시는 것은 우리로 하여금 기도하라고 ‘기도 제목’으로 주시는 것입니다.
15-26절은 베드로가 가룟 유다를 대신할 사도를 뽑기를 제안하고 제비를 던져 맛디아를 뽑는 사건에 대한 기록입니다. 제자들이 함께 모여 한 마음으로 기도했는데 그 수가 약 120명이었습니다(15). 그 때에 베드로가 일어나 가룟 유다에 대해서 성경적 논증을 했는데 16-20절입니다. 베드로가 말한 가룟 유다의 이 증언은 시편의 기록을 바탕으로 한 정확한 증거입니다.
두 개의 피밭 : 가룟 유다가 예수님을 배반하여 넘겨주고 받은 은30으로 직접 밭을 산 것이 아닙니다. 그가 받은 은 서른 개는 수제사장들과 장로들에게 도로 가져다주었으나 그들이 받지 않아 성전에 내던지고 떠나가서 스스로 목을 매어 죽었습니다.
[그때에 그분을 배반하여 넘긴 유다가 그분께서 정죄 받으신 것을 보고 뜻을 돌이켜 은 서른 개를 수제사장들과 장로들에게 도로 가져다주며 이르되, 내가 무죄한 피를 배반하여 넘기고 죄를 지었노라, 하니 그들이 이르되, 그것이 우리와 무슨 상관이 있느냐? 네가 그것과 상관하라, 하거늘 유다가 그 은들을 성전에 내던지고 떠나가서 스스로 목을 매니라.](마27:3-5).
수제사장들과 장로들이 가룟 유다가 내던진 은 30으로 밭을 샀는데 그것은 예수님을 넘긴 피 값이므로 성전보고에 넣지 못하고 나그네들을 묻기 위해 토기장이의 밭을 사고 그 밭을 피 밭이라했습니다. [수제사장들이 그 은들을 거두며 이르되, 그것은 피 값이므로 그것들을 성전 보고에 넣어 두는 것은 율법에 어긋난다, 하고 의논한 뒤에 나그네들을 묻기 위해 그것들로 토기장이의 밭을 샀더라. 그러므로 이 날까지 그 밭을 피 밭이라 하느니라.](마27:6-8).
사도행전에 기록된 대로 가룟 유다가 “불법의 대가”로 산 밭에 가서 스스로 목을 매어 죽으매 그 밭을 피밭이라 했으며 아겔다마라 했습니다(행1:19). 그러므로 사도행전의 “피밭”은 가룟유다의 피 밭이고 황폐하게 되어 아무도 거하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반면 마태복음의 “피밭”은 예수님을 넘긴 값으로 산 피밭이며 나그네의 매장지로 삼았습니다.
18-19절입니다. [이제 이 사람이 불법의 대가로 밭을 산 뒤 거꾸로 떨어져 한가운데가 터졌고 그의 모든 창자가 흘러나왔으므로 그 일을 예루살렘에 거하는 모든 사람이 알게 되어 그 밭을 자기들 고유의 말로 아겔다마라 하니라. 그것은 곧 피 밭이라는 말이라.](행1:18-19).
가룟 유다가 “불법의 대가로 밭을 산”것은 주님을 넘긴 대가로 받은 은30이 아닙니다. 그가 그 돈으로는 밭을 살 겨를도 없었고 그가 성전에 내 던지고 즉시 가서 목매어 죽었으므로 “불법의 대가로 밭을 산”것은 그 돈이 아닙니다. 그 액수는 얼마인지 모르나 그는 복음 전도단의 돈 가방을 맡아 회계를 보았는데 그 안의 돈을 도둑질하여 남몰래 부동산에 손을 대고 전에 밭을 샀음이 분명합니다.
[그때에 마리아가 매우 값진 나드 향유 한 근을 가져다가 예수님의 발에 붓고 자기 머리털로 그분의 발을 닦으니 향유 냄새가 집에 가득하더라. 이에 그분의 제자들 중의 하나로 그분을 배반하여 넘길 시몬의 아들 가룟 유다가 말하되, 어찌하여 이 향유를 삼백 데나리온에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지 아니하였느냐? 하니 그가 이렇게 말한 것은 가난한 자들을 염려하기 때문이 아니요, 도둑이므로 가방을 맡아 그 안에 든 것을 가져갔기 때문이더라.](요12:3-6).
유다는 자기가 “불법의 대가로 밭을 산”곳에 가서 목을 메달아 죽었습니다. 그의 몸은 깨끗하게 죽은 것이 아니라 몸이 떨어져 배가 갈라지고, 창자가 쏟아지는 그런 죽음이었습니다. 그래서 그가 죽은 밭도 ‘피밭’이라 불리게 되었습니다. 불의의 삯, 불의의 대가는 당장이든 먼 훗날이든지 반드시 그에 상응하는 보응이 있게 마련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사도행전의 피밭이나 마태복음의 피밭을 하나로 보는데 전혀 다른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을 자세히 보고 여러 번 계속해서 읽어야합니다.
21-22절에서 베드로는 사도의 자격 요건을 이와 같이 정했습니다.
[그러므로 {주} 예수님께서 요한의 침례로부터 시작하여 우리를 떠나 들려 올라가신 바로 그 날까지 우리 가운데서 드나드시던 모든 때에 우리와 함께 다니던 이 사람들 중에서 반드시 하나를 임명하여 우리와 함께 그분의 부활을 증언할 증인이 되게 하여야 하리라, 하매](행1:21-22).
이는 매우 신중하고도 현명한 결정이었습니다. 물론 이 부분에서 반론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사도는 계승되지 않는다는 점에서 과연 사도들이 알아서 다른 사도를 뽑을 수 있는가? 란 문제입니다. 사도는 죽으면 죽은 것으로 끝이지 그 자리를 대신해서 누가 앉아야 하는 것이 아닌데 뽑았다는 것이 첫 번째요,
둘째는 사도는 주님이 친히 부르시고 임명하시는 것이지 제비를 던져 결정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란 것입니다. 제비뽑기는 더 이상 하나님의 뜻을 결정하는 신약적 규례가 아닙니다. 하나님은 후에 친히 사울을 불러 사도로 임명하심으로써 이들이 뽑은 사도를 인정하지 않으셨다는 주장입니다.
우리는 사람들의 분분한 의견을 무시하고 이들이 이런 결정을 했다는 역사적 사건을 이해하면 됩니다. 이는 규례가 아니라 단회적인 일로 끝난 것입니다. 맛디아는 분명히 주님이 승천한 후 제자들이 함께 기도하는 가운데 제비로 뽑힌 사도였다는 점입니다. 이들은 오순절에 모두 성령으로 충만해졌고, 함께 계수되었습니다(행1:26). 우리는 역사적 사실을 있는 그대로 다루면 됩니다.
사도행전 1 장에서 배울 수 있는 영적 교훈을 요약하면 이렇습니다. 1. 우리는 모두 그리스도의 증인입니다.
우리는 이 땅에 그리스도의 증거자로 보냄을 받았습니다(요20:21).2. 증거를 위해 필요한 것은 성령의 권능입니다.
돈이나 물질, 조직, 세상의 권력이 아닙니다.3. 성도들이 한 마음이 되어 간구할 때 성령의 역사가 있습니다.
우리는 이미 계시된 하나님의 뜻을 바라고 믿고 기다릴 때 기도해야 합니다. 4. 120명의 성도들은 마리아에게 기도하지 않았습니다.
마리아와 함께 기도했지 그 누구도 마리아를 섬기지 않았습니다.
2019-08-04 15:07:57


   

관리자로그인~~ 전체 1529개 - 현재 6/77 쪽
1429
2019-08-25
202
1428
2019-08-18
240
1427
2019-08-18
246
1426
2019-08-11
272
1425
2019-08-11
195
2019-08-04
266
1423
2019-08-04
371
1422
2019-07-28
623
1421
2019-07-28
222
1420
김원광
2019-07-21
297
1419
2019-07-14
195
1418
2019-07-14
288
1417
2019-07-07
201
1416
2019-07-07
184
1415
2019-06-30
513
1414
2019-06-30
493
1413
2019-06-23
271
1412
2019-06-16
189
1411
2019-06-16
372
1410
2019-06-09
408

 
Phone: (032) 421-2609 & (011) 389-5994 E-Mail: mykjv@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