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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원광 [ E-mail ]
  진리의 말씀을 바르게 나누어
  http://av1611.co.kr

제목: 진리의 말씀을 바르게 나누어
■ 본문: (딤후 2:15) “너는 진리의 말씀을 바르게 나누어 네 자신을 [하나님]께 인정받은 자로, 부끄러울 것이 없는 일꾼으로 나타내도록 연구하라.”
우리는 오늘부터 성경 전체를 올바로 이해하는 과정을 함께 알아가려고 합니다.
여기 모양이 다른 피스들의 퍼즐 맞추기 게임이 있습니다. 어떤 분은 게임의 일부분을 맞춰놓고 자신이 잘 맞춰가고 있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러다가 자신이 맞추고 있는 모양이 전체의 구도와는 어울리지 않아서 잘못 놓고 있다는 것을 알고, 다시 처음부터 시작하게 됩니다. 이런 일은 퍼즐 맞추기에서만 있는 일들이 아닙니다. 어느 나라의 속담인지는 잘 모르지만, ‘나무만 보고 숲을 보지 못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성경을 연구하는 많은 목사님들 중에는 자신들의 지식과 생각에 갇혀서 성경 전체를 보지 못하고 일부분의 지식으로 오류된 교리를 가르치는 분들도 있습니다. 그렇게 수년 수십년을 성경을 가르쳤지만, 정작 자신은 자신이 높고 있는 성경 퍼즐에 어딘가는 항상 옆 퍼즐과 안 맞는 퍼즐이 있는 것을 알게 되지만, 성경을 가르치는 입장에서는 그런 말을 누구에게도 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앞으로 배우게 되는 이 성경공부 시간만큼은 자신이 갖고 있는 성경적 지식을 잠시 옆으로 비켜놓고, 이제부터 배우려는 하나님의 경영방식을 알아보고 배운 내용이 예전에 자신이 갖고 있던 성경적 지식과 같다면 다시 갖고 있는 지식을 확고히 믿으시면 되고요. 만약 다른 내용이 있다면 베레아 사람들처럼 “과연 그런한가? 하여 성경을 연구해” 보시기 바랍니다(행 17:11). 저는 안내만 할 뿐 선택은 여러분이 하시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여러분 안에 계신 성령님의 인도하심에 따라서 양심껏 진리의 말씀을 붙드시면 됩니다.
...........................
성도는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그분의 피를 값으로 치르고 구속받은 사람들입니다. 그렇죠! 그렇게 성도가 된 사람이 생활 가운데 예수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모시고 사는 사람들을 우리는 ‘그리스도인’이라고 말합니다. 그리스도인이란 말은 세상 사람들이 볼 때 그리스도처럼 살아가는 모습이 있는 사람을 말합니다.
그리스도가 어떤 분이고 어떻게 살아갔느냐?를 알고 따르려면, 자기가 상상하는 예수님을 따르는 것이 아니라, 성경기록이 하나님의 진리의 말씀이라는 사실을 믿고, 그 기록된 말씀을 읽고 따르는 수밖에 없습니다. 그것이 성도요,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는 방식입니다.
우리는 성도들로서, 성경, 즉 하나님의 진리의 말씀을 믿고 따르는 사람들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면서도 성경을 믿지 않는다면, 그는 분명 정상적인 그리스도인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인의 모든 믿음과 실행은 성경기록으로부터 나오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오늘날은 자칭 그리스도인이라 하면서도 성경을 믿지 않는 사람들이 너무도 많은 것 같습니다. 아니~ 그보다는 성경을 믿는다고는 하면서도 사실은 믿지 않는 것이 더 문제입니다. 어떤 사람의 행동에 대해 성경으로 진리를 말해주면, 그 말씀을 말씀 그대로 믿고 받아들이지 않고 자기 상황에 맞춰 해석해 믿으려고 합니다. 그런 분들이 많다보니 교회마다 성도마다 각양각색의 교리가 나오게 되고, 그러한 이상한 교리들이 오늘날 기독교계를 혼탁하게 만들어 버리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이 하나님의 말씀을 올바로 믿고 따른다면, 성경이 제시해 주는 교리를 믿어야 합니다. 즉 성경이 율법을 지키는 행위로 구원받는 것이 아니라 구원에 관한 성경기록(하나님의 말씀)을 믿음으로 구원받는다고 말하면, 그렇게 믿으면 되는 것입니다. 성경이 예수 그리스도께서 천년왕국 이전에 재림하신다고 기록되어 있으면 ,그렇게 믿으면 되는 것입니다. 또한 성경이 그리스도인들은 구원을 잃어버리지 않으며, 그리스도의 심판석에서 상과 유업을 받는다고 말씀하시면 그렇게 믿으면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아쉽게도 기록된 말씀 그대로를 믿는 사람들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이렇게 성경기록, 즉 하나님의 말씀을 문자 그대로 믿어서 그 말씀이 가르치는 바에 따라 교리(특정 주제에 대한 예수님의 가르침)를 세우고 그에 따라 실행해야 합니다.
우리의 믿음의 근원은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기록에 있습니다. 세상에는 많은 종교들이 있지만 우리가 믿는 신앙이 그들 종교들과 구별되는 것은 하나님의 절대적인 말씀이 기록되어 보존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 말씀은 다른 종교들의 경전들처럼 형식적으로 있거나, 아니면 “심오한?(이해하기 어려운)” 철학적 가르침들을 담고 있는 것이 아니라, 변할 수 없고 흠도 없는 말씀이며, 그 자체로 하나님과 동등한 권위를 갖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이 말씀이 가르치는 것은 절대적으로 옳으며, 말씀이 명령하는 것은 순종해야 하고, 말씀이 금지하는 것은 절대적으로 금해야 하며, 가감하지 말아야 하는 것입니다. 만약 그렇게 하지 않으면 불순종이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믿고 살아가는 사람을 우리는 “성경신자”라고 부릅니다. 여러분은 성경신자 입니까? 모든 그리스도인이 그래야 합니다. 그래서 성경기록은 그리스도인들에게 절대적인 권위로 받아들여져야 하고, 사람들의 모든 생각들의 최종적인 결정의 기준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성경을 믿어야 합니다. 이렇게 말하면, “교회에 다니는 사람들치고 성경을 믿지 않는 사람이 어디 있느냐?”고 반문할 분이 있을 수도 있지만, 분명히 성경을 믿지 않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예전에 제가 성경을 가르쳤던 교회에서 어떤 자매님과 교제 대화를 갖으며 나눈 이야기입니다.
{자매님은 하나님께서 여자들의 헤어의 길이에도 관심이 있는 것을 아십니까? 그랬더니 그분의 대답의 요지는 “직업에 따라 헤어의 길이도 다를 수 있는 것이 아닌가요?” 그러면서 헤어샾 사장이나 커리어우먼의 사례를 들으셨습니다. 그래서 저는 고린도전서 11장에 보면 자매님들의 머리에 대한 말씀이 있는데 읽어보라고 알려 드렸습니다.}
우리도 한 번 확인해 보겠습니다. 성경기록이 말씀하시는 헤어인데요, 오늘은 헤어에 대한 말씀으로 보려는 것이 아니라 성경을 대하는 우리의 마음자세가 어때야 하는가 입니다. 고린도전서 11:1~15절의 내용인데요,
주님 안에서 남자와 여자는 위 아래가 아니라, 동등한 존재입니다. 그러나 그 둘에게 하나님이 세우신 규칙이 있는데요, 여자의 머리는 남자요, 남자의 머리는 그리스도시요, 그리스도의 머리는 [하나님]이시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만일 여자가 자신의 머리인 남편을 존경하지 않는 것은 하나님을 존경하지 않는 것이 되기 때문에 하나님을 존경한다면 머리를 덮으라는 것입니다. 덮지 않으려거든 깎거나 빡빡으로 밀어야 하는데, 미는 것이 여자에게 수치가 되거든 여자는 머리를 길게 해서 머리를 덮으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이 가정에 세우신 위치의 서열입니다. 다시 말씀드리지만 남자가 잘나서가 아닙니다. 또한 여자가 못나서도 아닙니다. 이 말씀의 적용은 먼저는 여자들의 마음의 문제요, 여자에게 선한 마음이 있다면 하나님의 말씀대로 긴 머리(long hair)를 보여줌으로 하나님이 세우신 권위에 따르는 것이 마땅하다는 것입니다. 저와 대화를 나눈 자매님이 머리를 길렀을까요? 저는 그랬길 바랍니다.
만약 그 자매님이 지금도 머리를 남자들의 길이만큼 짧게 자르고 있다면, 그분은 구원은 받았을지 모르지만, 대다수의 사람들처럼 성경을 믿지 않는 것입니다. 더 나아가면 어떤 이유를 대서라도 성경기록을 자신이 원하는 대로 바꾸려는 분들과 별반 다를 바 없는 생활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성경기록을 대하는 자세가 올바라야 합니다.
성경기록을 대하는 자세에는 문자적으로 대해야 합니다. 우리가 세상의 법전이나 사실을 다루는 뉴스나 신문을 읽으면서 문자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처럼 성경기록도 그래야 합니다.
성경기록에는 예수님에 대한 예언이 7~800개 이상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 중에 그리스도의 초림에 대한 예언이 300개 정도라면, 재림에 대한 예언이 500개가 남아 있다는 점입니다. 그리고 그리스도의 초림에 대한 예언은 모두 문자적으로 성취되었습니다. 그래서 나머지 재림 또한 문자적으로 성취될 것이라고 믿는 것은 마땅한 자세입니다. 그리고 성경의 약 4분의 3이 유대인과 그리스도의 왕국을 다루고 있다는 점 등을 감안해 본다면, 그 예언들에 대한 문자적 해석 또한 매우 중요한 논점임을 인정해야 합니다.
우리가 공부하려는 것은 “세대주의”라는 관점입니다. 사실 성경에는 “세대주의”라는 말은 없습니다. 어떤 특정한 사건들이 있은 후, 하나님께서 그 사건 앞과 뒤에 경영하시는 방식이 달라졌음을 찾아내고 특징들을 구분하다보니, 어떤 기간을 특정해서 “세대”라는 표현을 빌려 쓴 것뿐입니다.
사실 “세대주의”라고 표현한 영어 단어는 “dispensation” 라는 단어를 잘못 번역한 표현입니다. 사람들은 보통 세대주의를 성경을 몇 개의 시대로 나누는 체계 정도로만 생각합니다. 물론 성경을 문자적으로 해석할 때, 몇 개의 시대로 나누어지는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이것이 “세대주의”라는 말로 적용해서 사용하기에는 틀린 부분이 있습니다.
일단 “세대”(generation)라는 말은 “시대”를 뜻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세대는 기간을 나타내기보다는 오히려 일단의 어떤 대상, 즉 사람들을 가리킵니다. 한 혈통을 가진 가문이나 가계를 나타내기도 하고(창 5:1, “아담의 세대”), 조상과 후손과의 이어지는 기간을 말하기도 합니다(창 15:16, “사 대 만에”). 그런가 하면 같은 시대에 살면서 공통의 문화와 의식을 갖는 비슷한 연령층의 사람들을 가리키기도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바리새인이나 서기관들처럼 예수님을 반대하는 무리들을 향해 “악하고 음란한 세대”(마 12:39)라 부르기도 하셨습니다. 이 경우 시대나 기간 자체가 악하다는 말은 분명히 아닙니다. 그때 있는 그 사람들이 악하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세대라는 말을 굳이 시대와 연결시킨다면, “그 시대에 포함되어 있는 사람들”이라고 이해하는 것이 좋을 것입니다. 저는 “세대주의”가 성경을 건전하게 이해하고 믿는데, 바른 노선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더라도 저는 “세대주의”라는 단어를 가급적 자제해서 사용하려고 합니다. 그 이유는 일반 교단 교회의 목사님들은 “세대주의”에 대해 깊이 공부를 해보지도 않은 상태에서 그냥 막무가내로 비판을 해서 가르치기 때문에 그분들을 따르는 성도들이 걸려 넘어지지 않도록 하기 위해 가급적 “세대주의”라는 표현을 삼가려고 합니다. 그래야 우리가 믿는 교리를 많이 전달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세대주의를 비평하고 이단시 하는 분들에게 물어보고 싶습니다.
1. 당신은 짐승 제사 대신에 그리스도의 피를 믿습니까?
2. 당신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영원한 유산으로 약속하신 땅을 내 재산으로 주장하고 있지 않습니까?
3. 당신은 제7일 대신 한 주(week)의 첫 날에 모여 예배드리고 있지 않습니까?
4. 당신은 매주 예루살렘 성전에 가서 경배하지 않고 어디서나 영과 진리로 아버지께 경배하고 있지 않습니까?
당신이 “그렇다”고 대답한다면 당신도 세대주의자입니다. 많은 목사님들이나 성도님들이 자신도 알지 못하는 가운데 세대주의 신앙을 걷고 있으면서도 세대주의를 비판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배우려는 이 노선은 성경이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경륜 전체를 가장 쉽고 바르게 이해할 수 있게 해줍니다.
반면 세대주의라고 번역한 “dispensation(경륜)”은 “분배하다”(dispense)라는 의미가 있습니다. 이 말의 고전적인 의미는 약사가 약을 조제할 때 어떤 성분의 약을 얼마만큼 넣는다, 하늘이 내리는 것 등이 있습니다. 약사가 처방전에 맞게 잘 분배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면 성경적으로 “dispensation”은 무엇을 분배한다는 말일까요?
시대가 나누어지기는 나누어지는데, 무엇에 따라 나누어지는 것입니까? 하나님이 무엇인가를 사람들에게 나누어주는 것이 기준입니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의 경륜입니다.
성경기록은 “dispensation”을 네 번 사용했는데요. 흠정역성경은 그중에 고전 9:7절을 “분배”로 번역했고, 나머지 엡 1:10절, 엡 3:2절, 골1:25절은 “경륜”으로 번역했습니다.
(고전 9:17) “내가 자원하여 이 일을 하면 보상을 얻으려니와 내 뜻에 반하여 한다 할지라도 복음의 분배 사역을 내가 맡았노라.”
(엡 1:10) “이것은 충만한 때의 경륜 안에서 친히 모든 것 즉 하늘에 있는 것들과 땅에 있는 것들을 그리스도 안에서 곧 그분 안에서 다 함께 하나로 모으려 하심이라.”
(엡 3:2) “너희를 위해 내게 주신 [하나님]의 은혜의 경륜을 너희가 들었으리라.”
(골 1:25) “내가 교회의 사역자가 된 것은 너희를 위해 내게 주신 [하나님]의 경륜에 따라 [하나님]의 말씀을 성취하려 함이니라.”
“경륜”이란? 하나님께서 다루시는 경영방침인데요, 신의 통치, 천계법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이 경영방침이 어떤 시대에 따라 달리 나타난다는 것입니다. 크게는 구약과 신약으로, 또는 유대인에게 율법을 주심과 이방인들에게도 은혜를 주심 등으로 나눌 수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어떤 세대를 나누어서 적용하다보니 “세대주의”라고 부르는 것이지, 이에 대한 바른 정의는 “시대에 따른 하나님의 경영방침”이라고 해야 합니다.
우리가 잘 아는 클라렌스 라킨은 “경륜”을 “시대에 따른 하나님의 계획과 목적”이라고 말했는데요, 이것이 바로 세대주의입니다.
물론 약사가 약을 함부로 분배하여 조제하면 안 되듯이, 경륜 또한 함부로 나누어서는 안 됩니다. 이 경륜을 아무렇게나 나누면 성경을 난도질하게 되고, 아예 나누지 않으면 성경이 모순투성이가 되어서 아무도 믿지 못하게 됩니다. 그래서 성경은 “나누(divide)”라고 명령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딤후 2:15) “너는 진리의 말씀을 바르게 나누어 네 자신을 [하나님]께 인정받은 자로, 부끄러울 것이 없는 일꾼으로 나타내도록 연구하라(Study).”
이 말씀은 명령입니다. “공부하라”는 이 명령도 [킹제임스성경]에만 있는 진리입니다. “나누라”는 명령 또한 변개된 성경들에는 없고, 보존된 하나님의 말씀에만 있는 진리의 명령입니다.
이 “나누라”는 말은 “사랑을 나누자,” “은혜를 나누자” 할 때의 그런 “나눔”(share)이 아니라, 쪼개고 분리하는 의미의 “나눔”(divide)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믿는 믿음으로 하나님의 기록된 말씀을 근거로 적절하고 올바르게 나누어 믿어야 합니다.
그렇다면 무엇을 나누어야 하는가? 자세한 내용은 앞으로 차차 공부해 가기로 하고요.
우리가 성경을 공부하는 목적에 대해서 이야기하도록 하겠습니다.
먼저 우리가 공부하는 전제 조건은 하나님의 말씀에는, 즉 영어 킹제임스성경에는 전혀 오류가 없다는 것입니다. 이 시대에 하나님의 말씀은 영어 킹제임스성경 안에 완벽하게 담겨있다고 믿는 것이 저희의 믿음이고 전제조건입니다 그러므로 저희가 킹제임스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것을 입증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앞으로 언젠가 기회가 되면 원문 비평(킹제임스성경 변호)을 다루는 시간이 있을 것입니다.
우리가 성경을 공부하는 이유는 하나님께 인정받기 위해서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알아야 인정받을 수 있습니다.
(딤후 2:15) “너는 진리의 말씀을 바르게 나누어 네 자신을 [하나님]께 인정받은 자로, 부끄러울 것이 없는 일꾼으로 나타내도록 연구하라.”
“진리의 말씀을 바르게 나누어 연구하라”의 중간에 들어간 말이 “네 자신을 [하나님]께 인정받은 자로, 부끄러울 것이 없는 일꾼으로 나타내도록” 하나님께 인정받기 위해서, 부끄럽지 않은 일꾼이 되기 위해서 진리의 말씀을 바르게 나누어 연구해야 합니다.
왜 이 말씀이 진리냐? 하면, 하나님의 말씀을 바르게 나누지 않는다면, 바르게 나눈다는 것은 이 말씀이 누구에게 하신 말씀인지, 어느 시대에 해당하는 말씀인지, 어디에서 살고 있던 누구에게 하신 말씀인지, 를 나눈다는 것입니다.
성경은 기본적으로 하나님의 말씀인데, 사람들을 향해서 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에게 다 똑같은 말씀을 하고 계시는 것이 아니라, 사람의 시대마다 장소마다 부류마다 다른 말씀을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창세기가 처음 시작할 때는 모든 인류에게 하시는 말씀인데, 아브라함이 등장하고 나서는 하나님께서는 하나의 민족에게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구약성경의 대부분, 즉 창세기 12장 이후부터 말라기 까지 대부분은 유대인에게 하시는 말씀입니다. 구약성경에 개중에는 이방인에게 하시는 말씀도 있지만, 90%이상이 유대인에게 하시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신약성경에서 서신서들 대부분은 구원받은 교회, 즉 그리스도인들에게 하시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각 대상에게 하시는 종류의 말씀이 다르다는 것입니다.
유대인들에게 하시는 말씀은 물질적인 복에 관해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세상에서 땅과 물질적인 부를 축척하게 되고, 건강하게 잘 살게 되고, 하나님을 잘 믿으면 말씀대로 믿으면 이 세상에서 물질적인 축복을 받게 된다는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신약에서 그리스도인들에게 하신 말씀은 그런 말씀이 없습니다. 교회에게는 영적인 복을 약속해 주고 있고, 오히려 물질적인 면에 있어서는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경건하게 살고자 하는 자는, 하나님처럼 살고자 하는 자는 박해와 고난을 당하게 될 것이라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구약성경에 유대인에게 하신 말씀과 다르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진리의 말씀을 바르게 나눈다는 것은 여러 가지 의미가 있지만, 가장 대표적이고 기본적인 것은 이 말씀이 누구에게 하시는 말씀인가를 나누는 것입니다. 그러면 구약성경 대부분은 저에게 하시는 말씀은 없습니다. 창세기 12장부터 말라기 까지는 저에게 하시는 말씀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렇죠! 그러면 나에게 하신 말씀이 아니니까 공부하지 않아도 되냐!, 그렇지는 않습니다. 나에게 하시는 말씀은 아니지만, 이 말씀을 통해서 유익을 얻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저는 그리스도를 믿고 하나님의 아들이 되었습니다. 그러면 저는 아버지이신 하나님에 대해서 더 알아야 더 가까운 교제를 나눌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구약성경은 저에게 하시는 말씀은 아니지만, 하나님께서 다른 누군가에게 하시는 말씀입니다. 이 말씀을 통해서 아버지의 성품이나 속성, 스타일을 더 알 수 있는 것입니다. 저의 주변에 A라는 친구가 있다고 할 때, 그 A친구가 어려운 처지에 있는 B친구를 도와주질 않는다고 한다면, 그 A친구는 내가 어려워져도 나를 도와주질 않겠구나 하는 것을 알 수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구약성경은 우리와 상관없지만 구약성경을 통해서 하나님이 어떤 민족을 다루심을 통해서 그분의 속성, 스타일을 알아갈 수 있는 것과 마찬가지 입니다. 우리가 구약성경을 읽으며 하나님은 신실하심, 하나님은 용서하심, 하나님은 죄를 미워하심, 하나님은 죄를 심판하심, 사랑하시는 자를 징계하심 등을 알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에게는 구약성도들에게 요구하신 것과 같은 것을 요구하지 않는 것들이 있습니다. 안식일을 지켜라, 어떤 음식은 먹어라 먹지말라. 이런 것들이 우리에게는 전혀 상관이 없습니다. 하지만 나의 아버지는 나에게 무엇을 하라 하지 말라고 하지는 않으시지만, 그분은 거룩한 것을 좋아하시고 거룩하지 않은 것을 싫어하시는구나와 같은 이런 하나님의 성품은 구약성경을 통해 배울 수 있는 것입니다.
(롬 15:4) “무엇이든지 전에 기록된 것은 우리의 배움을 위하여 기록되었으니 이것은 우리가 성경 기록들이 주는 인내와 위로를 통해 소망을 가지게 하려 함이니라.”
이와 같이 구약성경이 나에게 직접적으로 하신 말씀은 아니지만, 구약성경을 알면 알수록 하나님과 친밀하게 가까워질 수 있기 때문에 우리는 구약성경을 통해서 많은 유익을 얻을 수 있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모든 성경은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서 증언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진리의 말씀을 바르게 나누어 연구해야 하나님 앞에서 인정받는 일꾼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생각해 보세요. ‘인정받는 일꾼!’
세상에서도 주인(회사) 앞에서 인정받는 일꾼(직원)이 되려고 하는데요, 어떤 사람이 인정을 받을까요?
주인이 시키는 대로 하는 사람이 인정받을 것입니다. 직장에 상사가 있고 부하가 있으면, 인정받는 부하가 되기 위해서는 상사가 시키는 대로 해야 합니다. 시키는 것을 그 이상으로 한다면 말할 것도 없지만, 최소한 시킨 것은 그것만이라도 해야지 인정받을 것입니다. 그런데 엉뚱하게 시키지도 않을 것을 한다든지, 하지 말라고 한 것을 한다든지 하면 인정받을 수 없을 것입니다.
디모데후서 2:15절에 따르면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것들을 바르게 분별하지 못하기 때문에 하나님께 인정받지 못하는 것입니다. 어떤 것은 구하지 말라고 하는데도 구해서 인정받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구하라고 한 것은 구하지 않습니다. 예를 들어 우리에게 먹고 마시고 필요한 것들은 구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그런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버지께서 아신다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구하고 있죠. 저는 그런 것을 구하면 죄가 된다고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대로 그런 것은 구하지 말라고 하셨다는 것이고, 다만 먼저 하나님의 왕국과 그분의 의를 구하라고 하셨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먼저 하나님의 왕국과 의를 구하시나요? 구하라고 한 것을 구해야 하나님이 인정하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하라고 하신 일이 있고 하지 말라고 하신 일이 있으며, 아예 말씀하지 않으신 것들도 있습니다. 그러면 우리가 주님을 섬긴다는 것이 무엇일까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구체적인 예를 들면, 밖에 나가서 복음을 전하는 것도 주님을 섬기는 것이죠. 이것은 증인이 되라고, 복음을 선포하라고 하신 말씀입니다. 이것은 시키신 일입니다. 이 일을 하면 주님께 인정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이 사람은 내가 시킨 대로 잘 했어” 라고 인정하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성경을 바르게 나누어 믿지 않아서 생기는 잘못된 일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시키지 않은 일을 스스로 나서서 하는 경우인데요. 어떤 분이 불당에 가서 시설물에 낙서를 하거나 시설물을 파손하고 심지어는 절 담벼락에 소변을 보는 분들도 있습니다. 이런 장면이 cctv에 찍혔습니다. 단군상의 목을 잘라 버리는 뉴스가 나오기도 했습니다. 누가 그랬을까요? 그 사람은 단군상의 목을 왜 잘랐을까요? 구약성경을 보니까 우상을 때려 부수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그래서 그 사람은 이런 행동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나보다 해서 단군상도 우상이니까 때려 부셔야겠다고 생각했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신약성경에서는 그렇게 말씀하신 적이 없습니다. 남의 우상을 때려 부셔라고 말씀하신 적이 없습니다. 그건 구약성경에서 유대인에게 하신 말씀입니다. 신약성경에서는 오히려 자기의 우상을 부셔야 합니다. 신약성경은 탐심이 우상숭배라고 말씀하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남이 만들어 놓은 사유 재산을 때려 부셔야 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안에 있는 우상을 때려 부셔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사람은 엉뚱한 짓을 하면서도 자신은 하나님을 섬기고 있다고 생각하게 됩니다. 만약 이런 일들을 그리스도인이 했다면, 그 상대편에 있던 사람들이 이후라도 예수님을 구원자로 믿을까요? 이런 예는 모습은 다르지만 더 있습니다. 목사님이 절간에 가서 땅 밟기를 한다든지 그런 뉴스를 종종 보게 됩니다. 그래서 구약과 신약을 바르게 나누어 믿지 않으면 이런 잘못된 신앙을 갖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하나님께 인정받기 위해서 성경을 바르게 나누어 연구해야 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사람들에게 인정받기 위해서 연구하는 분들도 있습니다. ‘오늘 설교, 참 은혜가 되었어요~’ 설교를 잘 하는 목사님들이 그런 유혹에 빠질 수 있습니다. 다만 사람들에게 인정받는 것은 나쁜 것이 아니라, 인정을 해 주실 대상은 하나님 이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기도를 열심히 하는 것으로는 하나님에게 인정받을 수 없습니다. 수요/철야 기도회에 모두 참석하는 것으로는 하나님에게 인정받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에게 인정받으려면 성경을 바르게 나누어 공부해야 합니다.
우리가 이 주제로 공부를 하려는 이유가 있습니다. 여러분 스스로가 성경을 연구하는 능력을 키우기 위해서입니다. 저희는 앞으로 몇 번의 분량으로 진리의 말씀을 바르게 나누는 공부를 하려고 합니다. 그러면 이 공부를 마치면 성경을 충분히 알 수 있는 것이냐? 그렇지 않습니다. 제가 여러분에게 가르치는 것들을 잘 공부하시면 훌륭한 사역자가 될 수 있다는 것이 아닙니다. 이 시간은 성도로서 하나님 앞에 인정받는 일꾼으로 드러나기 위해 최소한으로 투자해야 하는 분량입니다. 저희가 이 시간들에서 성경의 모든 문제를 커버할 수 없습니다. 그러면 왜 이렇게 공부를 해야 하느냐? 우리가 성경을 바르게 나누어 이해하는 방법을 배울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런 이런 내용들을 구분해서 스스로 성경을 공부하면 됩니다.’하는 방법을 배우는 것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제가 성경공부 시간에 가르치는 이야기들이 절대적인 것은 아닐 수 있습니다. 물론 저는 가르칠 때, 제가 최대한 바르다고 여기고 믿는, 진리라고 생각하는 것을 말씀을 드릴 것입니다. 그렇지만 저도 모르는 사이에 틀린 것이 나올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저는 최선을 다해서 바른 것을 가르치려고 하겠지만, 잘못 가르칠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이 주의해서 들어보셔야 할 것은 제가 이렇게 가르쳤기 때문에 “그것이 정답이다”고 생각하지 마시고,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어떻게 연구해 가야하는지 그 방법과 그 과정을 보셔야 합니다.
앞으로 저희가 성경적인 원칙하에 어떤 주제들을 풀어가게 될 것입니다. 그 방법을 보시라는 것입니다. 물고기를 잡아드리는 것이 아니라, 물고기를 잡는 법을 알려드리려는 것입니다. 실제로 성경을 공부해야 하는 것은 여러분들의 몫입니다. 그렇게 되면 나중에 여러분이 혼자 성경을 연구를 할 때도 큰 오류에 빠지지 않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오늘은 여기까지 하겠습니다. (끝).
2019-11-11 11:2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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