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 소개
예배시간 안내
약도/찾아오시는 길
연락처


게시판
교회 소식/공지
질의 게시판
행사 및 사진
Free Board
찬양방


말씀 및 설교
kjv mp3 player
주일 설교
묵상/은혜의 말씀
특강


지역 교회
링크


 


  관리자 [ E-mail ]
  반드시 로마도 보아야 하리라
  http://av1611.co.kr

-반드시 로마도 보아야 하리라.-
말씀: 행 19:21-41, 요절: 행 19:21. 2019년 12월 1일 일요일 오후 2시

21-41절은 에베소에서 일어난 소요에 대해서 다루고 있습니다. 바울의 에베소 사역의 결과 에베소에는 큰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특히 두란노라 하는 학교에서 2년간 날마다 강론함으로써(9-10) 복음은 온 아시아에 퍼졌고, 믿는 이들은 자기들의 죄를 자백하고 자기 행위들을 알리며 회개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신기한 술수를 이용하던 많은 사람들이 자기 책들을 다 모아 가지고 모든 사람들 앞에서 태워 버렸습니다(행19:18-19).
에베소의 신자들은 믿은 후로 자신들의 삶의 방식과 진로를 바꾸었습니다. 이전에 마술을 하던 사람이 마술 책을 불태우고, 점을 치던 사람이 복술(卜術)에 관한 책을 불태워 버렸습니다. 그들은 생업을 바꾼 것입니다. 이들은 오늘날 대부분의 교인들처럼 교회는 다니지만 여전히 술집, 비디오 가게, 노래방, 주류 판매점(Liquor store) 등을 그대로 운영하지 않았습니다. 이들은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었고, 자신들의 변화를 온 세상에 증거 했습니다. 이런 변화는 에베소의 우상 제작자들에게 큰 충격과 위기를 느끼게 하기에 충분했습니다.
신자들이 늘어날수록 우상의 수요는 줄어듭니다. 믿는 사람들은 우상들을 부수어 버리거나 불태워 버렸기 때문입니다. 말씀이 세력을 얻고 크고 강하게 자라날수록 에베소의 우상 제작자들은 사도 바울에 대해서 반감을 가졌고 마침내 이들을 이 지역에서 쫓아내고자 소요를 일으켰습니다.
21절입니다. [이 일들이 끝난 뒤에 바울이 마케도니아와 아가야를 거쳐 예루살렘에 가려고 영 안에서 작정하여 이르되, 내가 거기에 있다가 반드시 로마도 보아야 하리라, 하고](21). 바울은 에베소에서의 사역을 마무리하고 다시 한 번 예루살렘을 가기로 마음에 작정 하고 거기에서 로마로 갈 계획을 세웠습니다. 예루살렘으로 가려는 바울의 집착은 집요해서 하나님의 뜻을 거슬러 가며 결행한 일입니다. 바울이 로마로 가려는 계획은 여러 번 세웠지만 번번이 좌절되었습니다.
[형제들아, 이제 나는 너희가 이것을 모르기를 원치 아니하노니 곧 내가 너희 가운데서도 다른 이방인들 가운데서처럼 어떤 열매를 얻기 위해 여러 번 너희에게 가고자 하였으나 (이제껏 막혔도다.)](롬1:13). 바울이 고린도에서 로마의 성도들에게 보낸 편지에 보면 로마로 가려는 그의 열정을 볼 수 있습니다.
“내가......반드시 로마도 보아야 하리라.”는 바울의 결심은 그의 선교 열정이 온 세계를 향하고 있음을 보여 주는 말입니다. 그는 소아시아에서의 복음 전파 사역을 당시 세계 제국의 중심지였던 로마를 거쳐 스페인까지 확대하고자 했습니다. (*롬15:24, 28 참조)
우리는 자신이 어디에 살든지, 어디에서 사역을 하고 있든지 늘 눈을 들어 온 세계의 선교에 대해서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직접 가지 못하면 물질로 후원할 수 있습니다. 기도로 도울 수 있습니다. 문제는 관심과 열정입니다. 잔 웨슬리는 “온 세계가 나의 교구다”라고 했는데 우리 역시 동일한 선교 비전과 믿음의 영을 가질 수 있기를 바랍니다.
22절입니다. [이에 자기를 섬기던 자들 중에서 디모데와 에라스도 두 사람을 마케도니아로 들여보냈으나 자기는 얼마 동안 아시아에 머물렀더라.](22). 에베소에서 바울을 섬겼던 이는 디모데와 에라스도입니다. 에라스도는 고린도 지역의 재무관이었습니다(롬16:23). 바울은 미리 선발대 형식으로 이 둘을 먼저 마케도니아로 들여보냈습니다. 이 때 문제가 터졌습니다. 도시에 소동이 일어난 것입니다. 반전 시위나 민주화 요구 등과 같은 정치적 요구로 일어난 시위가 아닙니다. 인종 차별, 성 차별 철폐 등과 같은 인권 시위가 아닙니다. 경제난으로 일어난 폭동도 아닙니다. 그럼 무슨 시위입니까?
23절입니다. [바로 그때에 그 길에 대하여 작지 않은 소동이 일어나니라.](23).
“그 길에 대하여”-즉 복음으로 인해 도시에 큰 소동이 일어난 것입니다. *그 길<道>에 대하여 란 말씀에 주목하십시오. “그 길”이란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말합니다. (요 14:6) “예수님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를 통하지 않고는 아무도 [아버지]께 오지 못하느니라.”예수 그리스도는 ‘길’이십니다.
사도행전에는 예수님이 그 길임을 증언하는 구절이 많습니다. “생명의 길”(행2:28), [주께서 생명의 길들을 내게 알려 주셨으니 주의 얼굴로 내게 기쁨이 충만하게 하시리이다, 하느니라.]
“구원이 길”(행16:17), [바로 그 소녀가 바울과 우리를 따라오며 소리 질러 이르되, 이 사람들은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종들로서 우리에게 구원의 길을 보여 주는 사람들이라, 하며]
“주의 길”(행18:25), [이 사람이 전에 [주]의 길 안에서 가르침을 받아 영이 뜨거우므로 [주]에 관한 것들을 부지런히 말하고 가르치나 요한의 침례만 알더라.]
“하나님의 길”(행18:26), [그가 회당에서 담대히 말하기 시작하거늘 아굴라와 브리스길라가 그의 말을 듣고 그를 데리고 와서 그에게 [하나님]의 길을 더욱 완전하게 설명해 주니라.]하셨습니다.
- 바울은 전에 ‘이 길에 속한 사람’을 결박해서 예루살렘으로 잡아오려 했습니다(행9:2). 바울은 후에 “이 길을 핍박”했다고 스스로 고백했습니다(행22:4).- 에베소의 믿지 않는 유대인들은 무리들 앞에서 ‘그 길(道)을 비방’했습니다(행19:9).- [여러 사람들은 굳어져서 믿지 아니하고 오히려 무리 앞에서 그 길을 비방하니 그가 그들을 떠나서 제자들을 분리시키고 두란노라 하는 사람의 학교에서 날마다 강론하니라.]
에베소에서 ‘그 길(道)에 대하여’ 소동이 일어났습니다(행19:23). [바로 그때에 그 길에 대하여 작지 않은 소동이 일어나니라.]
- 성도들은 유대인들이 이단이라 하는 ‘그 길(道)’을 따라 하나님께 경배합니다(행24:14).
[그러나 내가 이것을 각하께 고백하오니 곧 나는 그들이 이단이라 하는 그 길을 따라 내 조상들의 [하나님]께 그렇게 경배하고 율법과 대언자들의 글에 기록된 모든 것을 믿나이다.]- 총독 벨릭스는 바울의 설교를 통해 “이 길(道)에 대하여” 더 완전한 지식이 있었습니다(행24:22).
[벨릭스가 이것들을 듣고는 그 길에 대해 더 완전히 알고 있었으므로 그것들을 연기하여 이르되, 총대장 루시아가 내려오거든 내가 너희 일에 관해 끝까지 알리라, 하고]24-26절입니다. 에베소에서 소요를 일으킨 이들의 주장입니다. 시위의 주모자인 ‘더메드리오’는 은세공업자로서 다이아나를 위한 ‘은 성물 함’을 만들어 돈 벌이를 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에베소에서 이 직업은 적잖은 수익을 올려주는 중요한 사업입니다(24).
그런데 바울의 복음 선포로 에베소의 시민들이 복음을 믿게 되자 수입이 급감했던 것은 물론이려니와 자신들의 직업에 대한 자긍심이 모두 무너져 내려 버렸습니다. 이전에 우상 제작자들은 매우 신성한 직업처럼 여겨졌고, 돈 외에도 존경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이제 이들은 믿는 성도들에게 어리석은 우상 제작자들로 밖에 비쳐지지 않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같은 직업을 가진 직공들을 모았습니다.
돌이나 나무를 깎아 우상을 만드는 사람들은 대단한 자부심과 영웅심리가 있습니다. 하나의 돌이나 나무를 정성을 다해 우상을 만들면 거기에 최고의 경의를 표하며 그것들을 부탁한 사람들에게 깊은 존경심과 감사를 받습니다. 형상이 만들어지기 전까지는 흔하디흔한 돌덩어리요, 나무였으나 형상이 만들어 지고 난 다음에는 그것들이 자신들의 경배의 대상이 되고 신이 됩니다. 그러나 우상을 섬기는 자들은 참으로 불쌍한 존재들입니다. 그 우상들이 사람들에게 해 줄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기 때문입니다. 그것들이 나무나 돌이 아니라 은과 금으로 만들지라도 거기에는 전혀 생명이 없습니다.
(시 115:4-8) “그들의 우상들은 은과 금이요, 사람들이 손으로 만든 것이라. 그것들은 입이 있어도 말하지 못하고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며 귀가 있어도 듣지 못하고 코가 있어도 냄새 맡지 못하며 손이 있어도 사용하지 못하고 발이 있어도 걷지 못하며 목구멍으로 말도 하지 못하느니라. 우상들을 만드는 자들도 우상들과 같으며 우상들을 신뢰하는 모든 자도 그와 같도다.” 이런 우상들을 만드는 자들을 세공업자라고합니다.
25절입니다. [그가 이들과 더불어 같은 직업을 가진 직공들을 함께 불러 이르되, 선생들아, 그대들도 알거니와 우리가 이 기술로 우리의 재물을 얻는도다.](25). 이들은 모두 (종교에 관한 사업)Religious business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이 기술로 우리의 재물을 얻는도다.” 우상 숭배가 심한 에베소에서 우상 제작은 정말 돈이 되는 사업이었습니다. 이들이 정말 섬기는 우상은 ‘다이아나’가 아니라 ‘돈’이었습니다. 모든 이교도들이 진정으로 섬기는 신은 ‘맘몬’입니다. 불상을 만들어 파는 사람은 묘비도 제작합니다. 그들은 우상숭배자들의 요구에 따라 불상도 만들고, 예수의 상도 마리아의 상도 만들어줍니다. 돈벌이만 되면 그만입니다.
이들은 캐톨릭 교회에 세워지는 마리아 상을 비롯한 각종 조각상을 만들어 팝니다. 돈벌이가 되는 일이면 주문 받는 대로 무엇이든 만듭니다. 우상은 종교 분야에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사람들의 탐심을 충족시켜 주기 위해 만든 모든 entertainment는 다 우상 제작입니다. 쾌락과 오락을 추구하도록 만드는 게임 산업, 유흥업, 스포츠, 연예 등은 거대한 우상 제작자들의 모입니다. 이들은 다 함께 모여 “우리가 이 기술로 우리의 재물을 얻는도다.”라고 말합니다.
26절입니다. [또 그대들도 보고 듣거니와 이 바울이 에베소 뿐 아니라 거의 온 아시아에서 두루 많은 사람들을 설득하고 돌아서게 하며 손으로 만든 것들은 결코 신이 아니라고 말하였노라.](26).
우상 제작자들이 제일 싫어하는 말이 바로 이것입니다. “손으로 만든 것들은 결코 신이 아니다.” 이들은 자신들이 만든 것들을 사람들이 신으로 믿고, 사 주기를 바랍니다. 오늘날 많은 이들이 자신들이 만든 것을 예술 작품이라고 주장하며 그 속에 마치 엄청난 사상과 영감과 사람들이 잘 알아보지 못하는 내재된 가치가 있는 것처럼 믿고 사 주기를 바랍니다. 성경은 말합니다.
[그들의 우상들은 은과 금이요, 사람들이 손으로 만든 것이라.](시115:4),
[이교도들의 우상들은 은과 금이요, 사람들이 손으로 만든 것이로다.](시135:15). 사람의 손으로 만든 것들은 호흡이 없습니다.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고, 귀가 있어도 듣지 못합니다. 사람의 손으로 만든 것이라면 사람의 피조물입니다. 사람의 손으로 신을 만드는 것입니다. 그리고 거기다 경배합니다. 이것이 종교입니다. 사람들은 원하는 신의 모습이 이것입니다. 자신들이 만들고, 다스리고, 마음대로 하고 싶어 하기 때문에 우상을 만듭니다. 우상은 내가 두고 싶은 곳에 둘 수 있습니다. 좀 더 큰 것으로 바꾸고 싶으면 바꿀 수 있습니다. 재질이나 색상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언제든지 새로 만들고 칠하면 됩니다.
사람들은 자신의 형상을 따라 하나님을 마음대로 만들고자 합니다. 자기 기준, 자기 기호와 취향을 따라 신을 만듭니다. 내 자신을 바꾸는 것보다 하나님의 이미지를 바꾸는 것이 더 쉽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자신들이 마음대로 지배하고 다스릴 수 있는 신을 원하고, 스스로 그런 것들을 만들고 자기의 소유로 삼고 싶어 합니다. “손으로 만든 것은 결코 신이 아니다.”란 바울의 선포는 우상 제작을 생업으로 하는 이들에게 치명적인 가르침이었습니다.
주님은 일찍이 [기술자의 손으로 만든 것 즉 새기거나 부어 만든 형상 곧 [주]께 가증한 것을 만들어 은밀한 곳에 두는 자는 저주를 받으리라, 할 것이요, 온 백성은 응답하여, 아멘, 할지니라.](신27:15)고 선포하셨습니다. 이 가르침은 바울의 가르침이 아니라 모든 유대인들이 믿어 온 진리요, 에베소에 살던 유대인들 역시 그렇게 믿었던 진리입니다.
오늘날 우리는 손으로 우상을 만들지 않더라도 너무나 쉽게 마음속에 우상을 만들 수 있습니다. 모든 성도들은 시간과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우상’을 제작할 수 있습니다. 성경이 말하기를, [그러므로 땅에 있는 너희 지체(肢體)들을 죽이라. 그것들은 음행과 부정함과 무절제한 애정과 악한 욕정과 탐욕이니 탐욕은 우상 숭배니라.](골3:5)고 하기 때문입니다.
탐욕은 우상 숭배입니다. 그렇다면 탐내는 대상이 우상이란 뜻입니다. 돈을 탐하면 돈이 우상입니다. 좋은 집, 좋은 차, 좋은 옷을 탐하면 그것들이 우상입니다. 명예를 탐하면 그것이 우상이 됩니다. 욕정의 대상이 있다면 그 역시 우상입니다. 술, 도박, 마약, 영화, 스포츠 등도 얼마든지 우상이 될 수 있습니다. 우리 주변에는 우리를 이끌려는 각종 우상들이 넘칩니다. 세상은 예나 지금이나 우상들을 만들어 ‘수익’을 올리는 이들이 대부분입니다.
27절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이 기술이 무시당할 위험에 놓였을 뿐 아니라 온 아시아와 세상이 숭배하는 위대한 여신 다이아나의 신전도 멸시를 당하고 그녀의 위엄도 훼손당하게 되었도다, 하더라.](27). 다이아나는 지중해 연안을 비롯한 모든 지역에서 섬기는 여신입니다. 성경에는 아스다롯(이쉬타르)으로 불리는 여자이며, 캐톨릭에서 숭배하는 마리아가 바로 이 여인입니다. 이들은 자신들의 생업을 위해서 종교 간의 대립과 갈등의 구도로 문제를 풀어 나갔습니다. 이것은 모든 이교도들이 복음을 방해하고 배척하는 고전적인 수법입니다. ‘다이아나의 신전’은 에베소의 대표적 명물이었습니다. 이들은 자신들의 ‘돈’이라는 자신들의 욕망을 ‘다이아나의 신전 멸시, 다아아나의 위엄 훼손’이란 명분으로 소요를 일으켰습니다.
세상에서 일어나는 대부분의 시위, 폭동, 테러 등의 기본적인 동기는 누군가의 이득(돈)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항상 고상한 명분으로 대중들 앞에 제시됩니다. 자신들의 금전적 피해와 손해를 막기 위해서 이들은 ‘다이아나 신전과 여신의 위엄’이 멸시되거나 훼손되는 것을 막겠다는 명분을 내세웠습니다.
28-29절, [그들이 이 말을 듣고 진노가 가득하여 외치며 이르되, 위대하시도다. 에베소 사람들의 다이아나여, 하니 온 도시가 혼란에 빠지고 그들이 바울의 일행으로 여행 중이던 마케도니아 사람 가이오와 아리스다고를 붙잡고 한 마음으로 극장 안으로 몰려들어가매](28-29). 드디어 큰 소동이 일어났습니다. 에베소 시민들이 우상 제작자들의 선동에 끌려 폭동을 일으킵니다. 온 도시는 혼란에 빠졌고, 바울의 일행 중 ‘가이오와 아리스다고’가 붙잡혔습니다.
“위대하시도다. 에베소 사람들의 다이아나여”란 말은 고대 도시 국가에서 일어난 야만적인 사람들의 언행이 아닙니다. 지금 이 시대에도 이와 비슷한 말은 얼마든지 들을 수 있습니다.
“위대하시도다. 로마 캐톨릭의 마리아여!”, “위대하시도다. 파티마의 여인이여.” 등등 얼마든지 이런 찬양을 들을 수 있습니다. 종교적 무지는 예나 지금이나 늘 동일합니다. 복음의 빛이 마음에 비취지 않는 이상 그들은 여전히 어둠 속에 갇혀 있을 뿐입니다. 우상 제작자들은 마리아 상을 만들어 차에 달고 다니며 붙이고, 벽에 붙이고, 부적처럼 이곳저곳 붙일 수 있도록 다양한 크기, 다양한 재질로 만듭니다. 성당이나 공원이나 전망 좋은 높은 산에 세울 수 있도록 크게 만들어 세우기도 합니다.
유럽의 어떤 지역은 길거리마다 마리아 상이 세워져 있습니다. 에베소의 다이아나 여신상이 이름만 바뀐 것뿐입니다. 다이아나 숭배자들이 복음 선포자들을 붙잡듯이, 마리아 숭배자들은 언제나 성경 신자들을 붙잡아 죽였습니다.
30-32절, [바울이 백성에게 들어가고자 하였으나 제자들이 그를 허락하지 아니하고 또 아시아의 주요 인사들 중에 그의 친구인 어떤 사람들이 그에게 사람을 보내어 그가 위험을 무릅쓰고 극장에 들어가지 말 것을 그에게 구하니라. 그러므로 어떤 사람들은 이것을 외치고 어떤 사람들은 저것을 외치니 이는 모인 무리가 혼란에 빠져 대부분이 무슨 까닭으로 자기들이 함께 모였는지 알지 못하였기 때문이더라.](30-32).
바울은 ‘가이오와 아리스다고’가 붙잡혀 극장 안으로 들어가자 자신도 들어가고자 했으나 제자들이 말렸습니다. 바울의 친구들 역시 극장에 들어가지 말 것을 요청했습니다. 지금 일어난 소동은 몇몇 선동가들의 선동에 의해 일어난 일이며, 소동을 일으키는 사람들조차도 자신들이 무슨 까닭으로 모였는지 알지 못한 채, “위대하시도다. 에베소 사람들의 다이아나여”를 외칠 뿐이었습니다. 이런 상태에서 바울이 들어갈 필요가 전혀 없습니다. 이것은 행정적인 문제요, 공권력이 나설 문제이지 결코 종교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우리는 이런 때에 지혜가 필요합니다. 믿음으로 우리 자신이 나서야 할 때와 법과 제도에 맡겨야 할 때를 잘 구분해야 합니다. 많은 이들이 자체적으로 스스로 해결해야 할 교회 내의 문제를 세상 법정으로 가져가고, 대신 나서지 말아야 할 세상일들에 간섭하고 동참함으로서 쓸데없는 고난을 자초합니다.
33-34절입니다. [유대인들이 알렉산더를 앞으로 밀어내매 그들이 무리 가운데서 그를 끄집어 내니라. 알렉산더가 손짓하며 백성에게 자신을 변호하려 하였으나 그들은 그가 유대인인 줄 알고 모두 한 목소리로 두 시간쯤 소리 질러 이르되, 위대하시도다. 에베소 사람들의 다이아나여, 하더라.](33-34). 여기서 “알렉산더”가 누구인지 정확하지 않습니다. 유인들이 ‘알렉산더’를 앞으로 밀어 낸 것으로 보아 그가 바울과 관련된 사람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유대인이 같은 유대인들을 성난 군중들 앞으로 밀어내었다면 그는 분명 유대인들에게 배척받는 ‘그리스도인’일 가능성이 큽니다.
이 사람이 만약 디모데전서 1:20, 디모데후서 4:14에 나오는 “알렉산더와 후메내오”로 언급된 그 인물이라면, 그의 직업은 구리 세공업자요, 믿음에서 파선한 사람입니다. 에베소 사람들은 두 시간이나 “위대하시도다. 에베소 사람들의 다이아나여,”(34)를 외쳤습니다.
35-41절은 마을 서기가 무리들을 진정시키고 해산하도록 설득하는 장면입니다. 마을 서기의 말에 의하면 ‘에베소 사람들’의 종교가 무엇인지 잘 알 수 있습니다. 에베소 도시의 사람들은 ‘다이아나’를 위대한 여신으로 숭배합니다. 그리고 ‘주피터로부터 떨어진 형상’을 숭배합니다(35). 그들이 주피터로부터 떨어진 형상이라고 믿는 것은 ‘하늘에서 떨어진 운석’이었습니다. 이 사실은 누구도 반론할 수 없는 일입니다(36). 자, 그렇다면 문제가 무엇입니까? 아무 문제가 아닌 것을 문제로 만들어 소동을 일으키고 바울의 일행을 잡아서 끌고 온 것입니다.
37절, [교회 물건을 탈취하지도 아니하고 너희 여신을 모독하지도 아니한 이 사람들을 너희가 여기로 끌고 왔느니라.](37). 이들은 신전 물건을 탈취하지 않았습니다. 여신 다이아나를 모독하지 않았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다이아나 신전이 ‘교회’로 불리고 있음에 놀라게 됩니다. 이교도들은 신전을 교회로 불렀습니다. 그런데 현대 역본에서는 친절하게 ‘temple’이라고 단어를 바꿈으로써 이 정보를 없애 버렸습니다. 자신들의 눈에 좀 더 옳아 보이고, 정확한 의미를 전달하는 것 같은 단어를 선택하였지만 결과적으로는 성경이 말하는 중요한 정보, 영적 지식을 없애 버리는 일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38-41절입니다. [그러므로 만일 데메드리오와 또 그와 함께한 장인들이 누구를 고소할 일이 있거든 법이 열려 있고 총독들도 있으니 그들이 서로 고소하게 할 것이요, 만일 너희가 다른 문제들에 대하여 무엇을 문의하려거든 합법적인 집회에서 그것을 결정할지니라. 이 날의 소동으로 인하여 우리가 불려가 심문 받을 위험에 처해 있으나 이 모임에 관해 우리가 해명하기 위해 제시할 이유가 없도다, 하고 이렇게 말한 뒤에 그 모임을 흩어지게 하니라.](38-41). 마을 서기가 내린 결론입니다. 데메드리오와 그와 함께한 장인들은 백성들을 선동해서 소요를 일으킬 것이 아니라 법에 따라 고소하고 합리적인 집회에서 결정하라는 것입니다. 이는 참으로 현명한 결정이요, 권면입니다.
세상에는 때로 건전한 상식과 판결로 하나님의 일을 돕는 일꾼들이 있습니다. 이로써 세공업자들을 중심으로 한 에베소에서의 소요가 일단락되었습니다. 성도들이 전하는 복음은 세상 사람들의 생계, 직업에 영향을 미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강력하게 자라면 술집, 여관, 나이트클럽 등의 매출이 줄어들고 폐업을 하게 됩니다. 어느 곳이나 부흥의 물결이 강력하게 일 때 복음 전도 집회가 열리는 도시들에서는 실제로 이런 일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오늘날은 이런 일이 매우 드뭅니다. 왜 그렇습니까?
20절 말씀이 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의 말씀이 강력하게 자라고 세력을 얻으니라.] (행19:20). 하나님의 말씀이 사람을 변화시키고, 가정을 변화시키고, 도시를 변화 시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변화의 능력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모든 것의 모든 것이 됩니다. 성도들은 모두 말씀의 능력, 말씀의 은혜를 체험해 보고, 맛보아야 합니다. 오늘 받은 하나님의 말씀이 여러분들 안에서 강력하게 자라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2019-12-01 14:43:31


   

관리자로그인~~ 전체 1476개 - 현재 1/74 쪽
1476
2020-02-23
1
1475
2020-02-23
1
1474
2020-02-16
11
1473
2020-02-16
8
1472
2020-02-09
11
1471
2020-02-09
6
1470
2020-02-02
7
1469
2020-02-02
12
1468
2020-01-26
11
1467
2020-01-19
19
1466
2020-01-19
11
1465
2020-01-12
13
1464
2020-01-12
11
1463
2020-01-05
13
1462
2020-01-05
22
1461
2019-12-29
14
1460
2019-12-22
24
1459
2019-12-22
21
1458
2019-12-15
25
1457
2019-12-15
25

[맨처음] .. [이전] 1 [2] [3] [4] [5] [6] [7] [다음] .. [마지막]

 
Phone: (032) 421-2609 & (011) 389-5994 E-Mail: mykjv@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