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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울의 고별 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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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울의 고별 설교-
말씀: 행 20:1-38, 요절: 행 20:28. 2019년 12월 8일 일요일 오전 11시

19장의 에베소에서의 소동이 끝나고 바울은 마케도니아로 갔습니다.
1-2절입니다. [소동이 그치매 바울이 제자들을 불러 포옹하고 떠나서 마케도니아로 들어가니라. 그가 그 지방들을 다니며 그들을 많이 권면하고 그리스로 들어와](1-2). 마케도니아는 바울의 꿈에서 “마케도니아로 건너와서 우리를 도우라”는 요청을 받고 그곳으로 가기 위해 힘썼던 곳입니다(행16:9-10). 이곳은 유럽 선교의 전초 기지 역할을 했던 지역입니다. 특히 빌립보가 그러했습니다.
바울은 이전에 자신이 한 번 다녀갔던 곳들을 중심으로 다녔고, 형제들을 권면한 후에 그리스로 들어왔습니다. 성경 지도를 살펴보면 에게해 연안을 중심으로 아시아와 유럽이 갈라집니다. 바울의 선교 여행은 모두 해변에 있는 도시들임을 알 수 있습니다. 내륙 깊은 곳이 아니라 배로 다닐 수 있는 곳들입니다.
3-4절, [거기서 석 달을 머물다가 배타고 시리아로 가고자 할 때에 유대인들이 숨어서 그를 기다리므로 그가 마케도니아를 거쳐 돌아가기로 작정하니 라. 그와 함께 아시아로 들어간 사람들은 베레아 사람 소바더와 데살로니가 사람 아리스다고와 세군도와 더베 사람 가이오와 디모데와 아시아 사람 두기고와 드로비모더라.](3-4).
바울은 그리스에서 3 개월을 머물렀습니다. 그리고 배를 타고 시리아로 가고자 했는데 숨어서 바울을 기다리는 유대인들이 있었습니다. 일전에 다마스커스에서 “예수가 그리스도이심”을 선포하다가 자신을 죽이려 기다리는 유대인들을 피해 밤에 광주리를 타고 도망간 적이 있었는데(행9) 이번에는 그리스에서 동일한 일이 발생한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뱃길이 아니라 마케도니아를 거치는 육로를 택했습니다.
바울의 동행은 베레아 사람 소바더, 데살로니가 사람 아리스다고, 세군도와 더베 사람 가이오, 디모데, 아시아 사람 두기고와 드로비모였습니다. 이들은 후에 바울 서신서에 모두 이름이 다시 한 번 등장합니다. 사도행전의 인명과 지명은 바울 사도의 편지에 모두 나오기 때문에 부지런히 공부해 둘 필요가 있습니다.
5-6절입니다. [이 사람들은 먼저 가서 드로아에 머물며 우리를 기다리고 우리는 무교절(無酵節) 기간이 지난 뒤에 빌립보에서 배로 떠나 닷새 만에 드로아에 있던 그들에게로 가서 이레 동안 거기 머무니라.](5-6).
바울의 동료들은 먼저 드로아로 출발하고 바울은 빌립보에서 무교절 기간을 지냈습니다. 그리고 무교절을 보낸 다음 닷새 동안 배를 타고 드로아로 가서 거기에서 먼저 떠난 동료들과 만났습니다. 이들은 드로아에서 이레 동안 머물렀습니다. 드로아에서 바울은 밤새도록 긴 설교를 합니다.
7절입니다. [주(週)의 첫날에 제자들이 빵을 떼려고 함께 오니 바울이 이튿날 떠나려고 준비한 채 그들에게 말씀을 선포하며 계속해서 한밤중까지 말을 하니라.](7). [주(週)의 첫날]은 일요일입니다. 바울은 안식일 마다 유대인 회당을 즐겨 찾았는데 그것은 ‘안식일’ 준수를 위해서가 아니라 유대인들이 관습적으로 함께 모이는 장소가 회당이었고, 그들을 만나기 위해서 안식일날 거기서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였습니다.
때로 안식교 신자들은 바울이 안식일마다 회당을 갔다는 점을 안식일 준수의 근거로 삼는데 이는 잘못입니다. 설령 바울이 안식일을 지켰다고 해도 그는 유대인이기 때문에 이상할 것이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바울 사도가 쓴 다른 서신들을 통해서 그가 안식일을 지킨 것이 아니라 ‘복음 선포’를 목적으로 회당에 들어간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주(週)의 첫날”은 신약의 안식일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신약 교회에 안식일을 제정해 주신 적이 없습니다. 구약의 안식일을 신약에 와서 그 날짜나 요일을 바꾸어 주신 적도 없습니다. 그렇다면 “주(週)의 첫날”은 무엇입니까? 우리 주님께서 부활하신 날입니다.
[예수님께서 주(週)의 첫날에 일찍 일어나신 뒤에](막16:9a).
마리아를 비롯한 여인들은 “안식일이 끝나고 주(週)의 첫날이 밝아오기 시작할 때에” 예수님이 묻히신 무덤으로 갔고 거기서 주님의 부활을 목격했습니다(마28:1). 주(週)의 첫날을 사람들은 주일이라고 부르는데 그 의미를 “주일(Lord's day)”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주의 첫날은 주님의 날이 아니고, 매주 즉 한 주간의 첫날이란 의미입니다. 우리가 주의 첫날에 예배를 드리는 것은 이 날이 국가 공휴일이고, 모이기에 가장 편한 날이기 때문입니다. 다른 특별한 이유가 있는 것이 아닙니다.
주님은 주의 첫날 부활하시고 자신을 보이셨습니다(막16:9). 주님은 주의 첫날 저녁 때에 제자들에게 오셨습니다(요20:19).바울은 주의 첫날에 제자들과 빵을 나누었습니다(행20:7).성도들은 주의 첫날에 헌금/헌물을 했습니다(고전16:2). 이를 통해 우리는 주님께서 안식일을 중심으로 움직이신 것이 아니라 ‘주의 첫날’ 즉 한주간이 시작되는 첫날(일요일)을 중심으로 시작하심을 볼 수 있습니다. 이런 이유로 우리는 구약 율법에 정해진 안식일이 아니라 ‘주의 첫날’ 모임을 갖고, 주의 첫날인 일요일에 예배를 드립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주께서 부활하시고 하늘로 올라가시기 전에 약속하신(눅24:49) 성령님의 오심으로 교회가 시작되었는데 성령님의 오심이 주의 첫날에 있었습니다. 주의 첫날 부활하신 주님은 40일을 동안 제자들에게 보이시고(행1:3) 승천하신 후 10일 후 즉 부활 후 50일이 되는 주의 첫날 제자들이 한마음이 되어 한 곳에 있을 때 성령께서 임하셨습니다.
(행 2:1-3) “오순절 날이 충만히 임하였을 때에 그들이 다 한마음이 되어 한 곳에 있더라. 갑자기 하늘로부터 급하고 강한 바람 소리 같은 소리가 나고 그들이 앉아 있던 온 집안에 그것이 가득하며 또 불의 혀같이 갈라진 것들이 그들에게 나타나 그들 각 사람 위에 앉더라.”
바울은 드로아에서 밤을 새워 설교했습니다. 그는 이번이 이들에게 행할 마지막 설교라는 사실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조금이라도 더 말씀을 전하려는 열정으로 인해 많은 시간이 소요되었습니다. 밤은 깊어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문제가 터졌습니다.
8-9절입니다. [그들이 함께 모인 다락방에 많은 등불이 있었는데 유두고라 하는 어떤 젊은이가 창에 걸터앉아 있다가 깊은 잠에 빠지니라. 바울이 오랫동안 말씀을 선포하매 그가 졸려서 맥을 잃고 삼층 다락에서 떨어져서 죽은 채 일으켜지니라.](8-9). 바울의 설교가 몇 시간이 계속되고 밤이 깊어지자 유두고라는 청년이 창문에 걸터앉아 있다가 깊은 잠에 빠졌습니다. 그는 삼층 다락방에서 창문에 걸터앉아서 졸았던지라 아래로 떨어져 죽어 버렸습니다. 설교 시간에 조는 일은 예나 지금이나 흔한 일이지만 너무 위험한 곳에서 졸았습니다.
오늘날 교회에서 이런 일이 터지면 당장 설교를 너무 길게 한 설교자에게 비난의 화살이 쏟아질 것입니다. 40-50분 설교도 너무 길어서 몸이 뒤틀리고 1시간을 넘어서면 견디기 힘든 고문으로 생각하는 것이 현대 교회의 특징입니다. 그래서 설교 학을 가르칠 때 20-25분이 청중들의 집중도가 유지되는 시간이며 더 이상 하는 것은 아무 소용이 없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우리 믿음의 대선배들의 설교는 보통 2-3시간 이었습니다. 쟌 웨슬레, 조지 휫필드는 물론이고 쟌 낙스는 한번 강단에 서면 몇 시간은 기본이었습니다. 사보나롤라는 3시간 반에서 4시간을 설교했는데 길 때는 장장 6시간을 설교했습니다. 그가 설교할 때 실내는 금방 차 버린지라 사람들은 마당에 서서 설교를 들었고, 어떤 이들은 대문과 벽에 매달린 채 들려오는 설교에 귀를 기울였습니다. 오늘날 강단은 이런 선포의 능력을 거의 잃어버린 상태입니다. 그래서 교회 안에 바울은 없고, 수많은 유두고만이 넘치고 있습니다.
10-12절입니다. [바울이 내려가서 그 위에 엎드려 그를 껴안고 이르되, 그의 생명이 그 속에 있으니 근심하지 말라, 하고 그러므로 그가 다시 올라가 빵을 떼어 먹고 오랫동안 곧 날이 샐 때까지 이야기하고 이처럼 떠나니라. 그들이 살아난 젊은이를 데리고 와서 적지 않게 위로를 받았더라.](10-12). 바울은 죽은 유두고 위에 엎드려 그를 껴안고 죽은 자를 살려 냈습니다. 바울은 유두고를 일으킨 다음 빵을 떼어 먹고 다시 설교를 시작했습니다. 바울은 철야 기도가 아니라 완전히 밤을 새운 철야 설교를 했던 것입니다. 사람들은 말씀 선포와 함께 일어난 놀라운 이적을 보고 큰 위로를 받았습니다.
13-15절입니다. [우리는 배에 먼저 가서 배 타고 앗소로 떠나 거기서 바울을 태우려 하였으니 이는 그가 스스로 걸어서 가려고 생각하여 그렇게 정하였기 때문이라. 바울이 앗소에서 우리를 만나매 우리가 그를 태우고 미둘레네로 가서 거기서 배 타고 가서 다음 날 기오 맞은편에 이르렀고 그 다음 날 사모에 도착하여 드로길리움에 머물며 또 그 다음 날 밀레도에 이르렀니]
바울은 트로아에서 배가 아니라 계속해서 육로로 여행했습니다. 그는 걸어서 트로아에서 앗소로 갔고, 앗소에서 미리 떠난 동료들과 함께 미둘레네로 갔습니다. 바울의 선교 일정은 강행군이었습니다. 모든 방향은 예루살렘으로 향했고, 그 일정은 오순절 전까지였기 때문입니다. 지금 나오는 도시 이름들은 모두 스쳐 지나간 도시들입니다. 이미 한번 다녀 간 길이었기 때문에 현재는 예루살렘으로 돌아오는 길입니다.
바울은 미둘레네에서 기오 맞은편에 이르렀고, 다음 날 사모에 도착했고, 드로길리움에 일박한 후에 그 다음날 밀레도에 이르렀습니다. 너무 빠른 속도로 움직이고 있기 때문에 우리는 지도를 따라 그 지명을 계속 내려오는 것이 전부입니다. 회당에 들렀다거나 말씀을 선포한 기사가 전혀 없이 걸어서 이동했는지, 배를 타고 이동했는지 만 기록되어 있을 뿐입니다. 이유가 무엇입니까?
16절, [이는 바울이 아시아에서 시간을 보내려 하지 않았으므로 배타고 에베소 옆으로 가기로 결정하였기 때문이며 또 가능한 한 오순절 날에 예루살렘에 있으려고 서둘렀기 때문이더라.] 그는 어떤 이유에서인지 이번 오순절 명절을 반드시 예루살렘에서 보내기로 굳게 결심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인도하심이나 뜻이 아니라 바울 자신의 개인적인 계획이요, 결심이었습니다.
예루살렘은 모든 유대민족들에게 수도일 뿐 아니라 정신적 고향입니다. 예루살렘은 왕의 도성이요, 하나님의 약속이 주어진 곳이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사도들을 만나기 위해서가 아니라 이번 명절에 천하 각지에서 모여드는 유대인들에게 복음을 선포하려는 꿈과 계획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는 지금까지 계속해서 이방 땅을 돌면서 이방인들을 상대로 사역했고, 각 도시의 회당에 있는 소수의 유대인들에게만 말씀을 전했을 뿐입니다.
이제 예루살렘으로 올라가 성전에 서서 온 민족을 향해 ‘민족적 회개’를 촉구하는 회개와 결단을 요구하려는 꿈을 가지고 서둘렀던 것입니다. 사람들은 자신의 계획, 자신의 목표를 따라 움직일 때 분주해 지고, 급해집니다. 바울은 성령의 인도하심, 하나님의 계획이 아니라 자신이 준비하고 계획한 일을 실행에 옮기려는 것입니다.
17절입니다. [그가 밀레도에서 에베소로 사람을 보내어 교회의 장로들을 부르니](17). 바울은 에베소를 들르지 않고 그 옆을 통과해서 밀레도에 도착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에베소로 사람들을 보내어 ‘교회의 장로들’을 불렀습니다. 교회의 장로들은 오늘날 장로교회에서 ‘장로’란 직분을 가진 이들과는 전혀 다른 직분입니다.
종교 개혁자 중의 하나인 캘빈이 교회에 장로를 임명하고 그들에게 행정을 맡기고, 목사에게 설교와 가르치는 직분을 맡기는 제도를 세웠습니다. 그러나 성경이 말하는 장로는 장로교회의 장로가 아니라 감독이요, 목자입니다. 지역 교회에서 감독, 장로, 목사는 기능의 강조점만 차이를 둔 동일한 인물이요, 동일한 직분입니다. 바울이 에베소 교회의 장로들을 세웠습니다. 에베소 교회의 초대 감독은 디모데입니다(딤후4:22).
베드로 사도는 자신을 가리켜 장로요, 감독이라 했습니다. (벧전 5:1-3) “너희 가운데 있는 장로들에게 권면하노니 나 역시 장로요 그리스도의 고난의 증인이요 또한 앞으로 나타날 영광에 참여할 자니라. 너희 가운데 있는 [하나님]의 양 떼를 먹이고 감독하되 억지로 하지 말고 자진해서 하며 더러운 이익을 위해 하지 말고 오직 준비된 마음으로 하며 [하나님]의 상속 백성 위에 주인처럼 군림하지 말고 오직 양 떼에게 본이 되라.”
18-35절은 사도 바울의 고별 설교입니다. 바울은 이제 자신이 떠난 후로 에베소 교회에 다시 돌아올 일이 없다는 것을 잘 알았습니다. 그는 마치 유언을 남기듯이 에베소 교회의 장로들을 향해 권면의 말씀을 쏟아 내었습니다.
18-21절은 바울이 어떻게 복음을 전했으며, 사역했는가를 보여 줍니다.
18절입니다. 바울은 말하기를, [......내가 아시아에 들어온 첫날부터 모든 때에 내가 어떤 방식으로 너희와 함께 지냈는지 너희가 알거니와](18)라고 합니다. 바울의 사역은 주님이 그러하셨듯이 투명했습니다. 비밀리에 사람들을 만나고, 공작을 벌이듯이 사람들에게 어떤 내용을 가르친 것이 아닙니다. 그는 반대와 핍박을 받으면서도 언제나 공개적으로 주와 복음을 선포하고 증언했습니다. 이단들, 비밀교 전파자들과 비교해 보십시오. 이단들은 은밀히 들어와 혼들을 사로잡습니다. 자신의 정체를 숨기고 가장합니다. 그러나 바울은 한 번도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언제나 자신의 정체를 드러내었고 자신이 선포하고 섬기는 주님을 드러내었습니다.
19절입니다. [내가 온전히 겸손한 마음과 많은 눈물과 또 숨어서 기다리는 유대인들로 말미암아 내게 닥친 시험들과 더불어 [주]를 섬기며], 바울은 1. 온전히 겸손한 마음 2. 많은 눈물 3. 숨어서 기다리는 유대인들로 인해 받는 생명의 위험을 안고 주님을 섬겼습니다(19). 바울은 적극적으로 성경을 가르쳤습니다. 에베소에서 무려 3년이나 있으면서 주와 복음을 선포하고 성경을 가르쳤습니다.
20-21절, [너희에게 유익한 것은 어떤 것도 숨기지 아니하고 너희에게 보여 주며 공중 앞에서 또 집에서 집으로 다니며 너희를 가르치고 유대인들과 또한 그리스인들에게 하나님을 향한 회개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향한 믿음을 증언하였노라.](20-21). 이 말씀은 우리에게 참된 목자의 역할이 무엇인지를 잘 보여 줍니다. 에베소의 장로들은 바울이 어떻게 사역했는지 잘 알고 있습니다.
22절은 바울의 계획입니다. [보라, 이제 내가 예루살렘에서 내게 닥칠 일들을 알지 못한 채 영 안에서 결박당하여 거기로 가노라.](22). 바울은 예루살렘으로 가려는 확고한 계획을 선포했습니다. 바울은 예루살렘에서 자신에게 닥칠 일들을 알지 못한다고 말하지만 곧 이어 대언자들이 바울에게 예루살렘에서 있을 일에 대해 알려 주었습니다. 성령께서는 바울이 예루살렘에 가지 말라고 말씀하셨고, 가면 ‘결박과 고난’이 기다린다고 분명히 말씀해 주셨습니다.
23절, [오직 성령님께서 모든 도시에서 증언하사 결박과 고난이 나를 기다린다고 말씀하시나] 바울은 성령님의 음성을 이미 들었습니다. 선택은 자신의 몫입니다. 불순종으로 인한 결과에 대한 책임 역시 자신이 감당해야 합니다. 우리는 이 장면에서 아무리 위대한 사람이라도 꺾여지지 않는 고집이 있고, 성령을 거스르는 육신이 있다는 사실을 발견합니다. 대부분의 성도들은 자신의 고집을 하나님의 뜻이라고 둘러 댑니다. 하지만 바울은 자신이 하는 일이 성령을 거스르고 있다는 점은 알고 인정합니다.
24절, [이 일들 중 어떤 것도 결코 나를 움직이지 못하며 또한 내가 나의 생명도 내게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니 이것은 내가 나의 달려갈 길과 주 예수님께 받은 사역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언하는 일을 기쁨으로 끝마치고자 함이라.](24). 예루살렘에서의 ‘결박과 고난’으로는 결코 자신의 발을 묶어 놓을 수 없고, 자신의 결심을 움직일 수 없다고 말합니다. 바울은 예루살렘에서 죽으면 죽으리라는 각오가 되어 있습니다.
“내가 나의 생명도 내게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니”란 말씀은 바울의 가장 위대한 장점입니다. 그는 자신을 무가치한 것으로 여겼고 그의 모든 관심의 대상은 오직 하나 ‘복음 전파’였습니다. 그는 자신이 삶, 이생에서의 소유, 남은 여생 등에 대해서는 아예 생각해 본 적이 없었습니다. “내가...주 예수님께 받은 사역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언하는 일을 기쁨으로 끝마치고자 함이라.” 이것이 그의 평생의 삶의 좌우명이요, 목표입니다.
25절입니다. [보라, 내가 너희 가운데서 하나님의 왕국을 선포하며 다녔으나 이제는 너희가 다 다시는 내 얼굴을 보지 못할 줄 내가 아노라.](25). 바울은 에베소 교회의 장로들에게 고별을 고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땅에서의 이별이 끝이 아닙니다. 우리는 모두 저 하늘에서 만날 것입니다.
26절에 바울은 “.........내가 모든 사람의 피로부터 깨끗하니”(26)라고 합니다. 하나님은 경고를 주어야 할 파수꾼이 경고를 주지 않거나 회개를 촉구하지 않으면 “.......그의 피는 내가 네 손에서 요구하리라.”(겔3:18,20) 말씀하십니다. 바울은 이 점에서 자신은 “모든 사람의 피로부터 깨끗하다”고 하는 것입니다.
27절, [이는 내가 지금까지 회피하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모든 계획을 너희에게 밝히 말하였기 때문이라.]
바울은 넘치도록 많이 말해 주었고, 회개와 믿음을 선포했습니다. 고로 아무도 구원받지 못한 책임을 바울에게 돌릴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모든 계획”은 구원 그 이상입니다. 바울은 자신이 서신서에 기록하는 모든 내용들을 에베소에서는 육성으로 모두 선포하고 가르쳤음에 틀림없습니다. 그는 하늘과 지옥, 대 환란, 휴거와 부활, 주의 재림, 영광의 왕국 등 하나님의 모든 계획을 다 말해 주었습니다.
28-29절을 보십시오. [그러므로 너희 자신과 온 양떼에게 주의를 기울이라. 성령님께서 너희를 그들의 감독자로 삼으사 하나님의 교회 곧 그분께서 자신의 피로 사신 교회를 먹이게 하셨느니라. 내가 이것을 아노니 곧 내가 떠난 뒤에 사나운 이리들이 너희 가운데로 들어와 양떼를 아끼지 아니할 것이요,](28-29). 바울은 교회의 장로들에게 주의 사항을 일러 줍니다. 교회의 장로들은 자신과 모든 양떼에게 주의를 기울여야 합니다. 성령님은 양들 위에 목자를 세우십니다. 목자가 없는 양떼보다 더 불쌍한 짐승이 없습니다.
하나님은 양들을 먹이고 감독할 사람을 세우십니다. 목자의 역할은 무엇입니까?
첫째, 먹이는 것입니다. 말씀의 꼴을 풍성히 먹여야 합니다.
둘째, 감독해야 합니다. 악을 피하고, 세상과 분리하고, 더러운 것에 연루되지 않도록 훈계하고 꾸짖고 책망하고 바로 잡아야 합니다. 양떼를 먹이는 목자, 양떼를 보살필 감독이 없으면 그들은 곧바로 사나운 이리들의 먹이가 되고 맙니다(29).
바울은 ‘사나운 이리들의 출현’에 대해 경고하고 미리 주의를 주었습니다. “하나님의 교회 곧 그분께서 자신의 피로 사신 교회”란 말씀에 주목하십시오. 예수님이 하나님이심을 가장 잘 보여 주는 구절 가운데 하나입니다. 교회의 존재 가치가 선명하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세상은 돈으로, 금과 은으로 사람들을 사려고 합니다. 돈으로 혼을 사고팔려고 합니다. 인신 매매, 노예 계약이 그런 것입니다. 하지만 혼을 살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의 피 즉 예수 그리스도의 피 뿐입니다. “양떼를 아끼지 않는 사나운 이리들”이 누구입니까?
30절입니다. [또 너희 중에서도 제자들을 끌어내어 자기들을 따르게 하려고 왜곡(歪曲)된 것들을 말하는 사람들이 일어나리라.](30). 주님을 따르는 대신 자기들을 따르게 하는 자들이 이리들입니다. 진리가 아닌 ‘왜곡된 것들’을 말하는 사람들이 이리들입니다. 거짓 대언자들은 양의 옷을 입은 약탈하는 이리들입니다(마7:15). 약탈하는 이리들에 대한 효과적인 대책은? 배운 바 말씀을 기억하는 것입니다.
31절입니다.[그러므로 깨어서 내가 삼 년 동안 밤낮 쉬지 않고 눈물로 각 사람을 훈계하던 것을 기억하라.] 은혜의 말씀에 의탁하는 것입니다.
32절, [이제 형제들아, 내가 너희를 하나님과 그분의 은혜의 말씀에 맡기노니 이 말씀이 너희를 능히 든든히 세워 거룩히 구별된 모든 자들 가운데서 너희에게 상속 유업을 주리라.](32). 바울은 하나님의 말씀이 성도들을 든든히 세워 줄 것이라고 말합니다. 말씀은 사람을 자라게 하는 성장제입니다. 말씀은 건강하게 하는 영양제입니다. 말씀은 성도들이 매일 먹어야 할 양식입니다.
“이 말씀이 너희를 능히 든든히 세워”(build you up). 하나님의 말씀의 권능과 역할은 너무나 다양합니다. 우리는 늘 성경을 곁에 두고 읽어야 합니다. 자신을 말씀에 의탁하고 전적으로 그 말씀을 신뢰하는 것보다 더 안전한 것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모든 말씀은 믿는 자에게 ‘방패’가 됩니다(잠30:5-6).
아무리 사나운 이리들도 말씀을 먹고 자라난 성도들, 말씀으로 인해 생긴 믿음의 방패를 든 성도들을 약탈하거나 노략할 수 없습니다. 저는 여러분들이 매일 정기적으로 성경 읽는 습관이 들도록 격려하고 부탁하고 잔소리하고 그것도 부족하여 성경읽기 표를 만들어 매주 확인까지 합니다.
성도가 매일 성경 읽는 것은 지극히 당연하고 기본적이라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이 지극히 당연하고 기본적인 것도 순종하지 않는다면 그에게 더 이상의 것을 기대한다는 것은 무리요, 그가 정상적으로 성장한다는 것 또한 헛된 소망일 것입니다.
33-34절, [내가 어떤 사람의 은이나 금이나 옷을 탐내지 아니하였으며 참으로 너희가 알거니와 내가 이 손으로 나의 필요한 것들을 마련하였고 또 나와 함께 한 자들을 섬겼노라.](33-34). 바울은 자신의 손으로 손수 일하며 복음 사역을 감당했습니다. 자신은 성도들의 재산이나 헌금을 탐낸 적이 없다고 말합니다. 복음 전도자는 돈 문제에 대해서 깨끗해야 합니다. 이 부분에서 정직하고 흠 잡힐 것이 없어야 합니다. 구약에서 본을 보여 준 인물은 사무엘입니다.
[보라, 내가 여기 있나니 [주] 앞과 그분의 기름 부음 받은 자 앞에서 나를 대적하여 증언하라. 내가 누구의 소를 취하였느냐? 누구의 나귀를 취하였느냐? 누구를 속였느냐? 누구를 학대하였느냐? 내 눈을 어둡게 하는 뇌물을 누구의 손에서 받았느냐? 그리하였으면 내가 그것을 너희에게 갚으리라, 하니](삼상12:3).
그는 당시 최고의 지도자였습니다. 그러나 그는 누구의 재물도 취하지 않았습니다. 뇌물은 물론이고 남의 재산 자체를 탐내지 않았던 청렴한 하나님의 사람이었습니다. 모든 성도는 이런 믿음의 선한 간증을 지녀야 합니다. 특히 교회 안에서 돈 거래는 절대 금물입니다. 서로 빌리지도 말아야합니다. 만약 빌려주어야 한다면 되돌려 받을 생각으로는 주지 말고 형편에 닿는 대로 도와 주기바랍니다.
35절입니다. [내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보여 주되 곧 너희가 마땅히 이렇게 수고하여 약한 자들을 지원(支援)하고 또 {주}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것 즉,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더 복되도다, 하신 그분의 말씀을 기억하게 하였느니라.](35). 바울은 자신이 손수 일하면서 “노동의 목적이 무엇인가? 우리는 왜 일해야 하는가?”를 보여 주었습니다. 그는 “노동이 사역이 되게 한” 사람입니다.
많은 이들이 열심히 일합니다. 먹고 살기 위해서,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서, 좀 더 여유롭게 살기 위해서 등등 다양한 이유로 일합니다. 일을 해서 수고한 삯을 받고, 그 열매를 먹는 일은 복된 일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노동이 노역이 아니라 사역이 되게 해야 합니다. 성경은 말합니다.
[부자가 되려고 수고하지 말고 네 자신의 지혜를 의지하지 말라](잠23:4). 우리는 결코 부자가 되기 위해 노동하지 않습니다(딤전6:9). 우리는 누군가를 도와주기 위해서 일해야 합니다. [도둑질을 한 자는 더 이상 도둑질을 하지 말고 오히려 노동을 하여 궁핍한 자에게 줄 수 있도록 자기 손으로 선한 것을 할지니라.](엡4:28)
마지막 36-38절, 바울과의 이별 장면입니다.
[이렇게 말한 뒤에 그가 무릎을 꿇고 그들 모두와 함께 기도하니 그들이 다 몹시 슬피 울며 바울의 목을 껴안고 그에게 입을 맞추며 무엇보다도 그가 한 말 곧 다시는 그들이 자기 얼굴을 보지 못하리라 한 그 말로 인해 마음 아파하면서 배에까지 그와 함께 가니라.](36-38). 이렇게 행20장을 살펴보았습니다.
가장 아름다운 인간관계란 서로 헤어질 때 나타나게 됩니다.
떨어지기 못내 아쉬운 사람들인가? 뒤돌아보기 싫은 관계인가?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주 안에서 형제요 자매들입니다. 우리는 영원을 함께 살아갈 지체들입니다. 아름답고 멋진 만남을 위해서 멋진 이별을 해야 하고 그 멋진 이별을 위해서 매일 매일을 흠 없이 살아야할 것입니다. 그보다 더욱더 잘살아야하는 것이 주님 앞에 사는 것입니다. 그분의 기쁨을 위하여 최선을 다한다면 가장 잘 사는 삶일 것입니다.
2019-12-08 12:1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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