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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원광 [ E-mail ]
  성경공부의 원칙들
  http://av1611.co.kr

제목: 성경공부의 원칙들
■ 본문: (딤후 2:15) “너는 진리의 말씀을 바르게 나누어 네 자신을 [하나님]께 인정받은 자로, 부끄러울 것이 없는 일꾼으로 나타내도록 연구하라.”
이 말씀의 대상은 “너는”입니다. 그렇게 우리 각자는 성경을 연구하라(study)는 명령을 받았습니다. 그 이유는 우리 자신이 부끄럽지 않은 일꾼으로 하나님께 인정을 받기 위해서입니다. “study”는 그냥 책을 읽는 정도가 아니라, 대학교 교수님들이 논문을 쓰듯이 데이터와 데이터를, 단어와 단어를, 문맥과 문맥을, 주제와 주제를 구분해서 서로 비슷한 것과 서로 다른 것을 찾아서 연결 고리를 찾아서 핵심 내용을 찾아내는 것과 비슷한 것입니다.
그러면 성경을 공부할 때 어떤 원칙들이 있을까요?
첫째, 우리가 성경을 읽을 때 가장 염두에 두어야 할 말씀이 있다면 하나님의 말씀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비교해서 이해해야 합니다.
(고전 2:13) “또한 우리가 그것들을 말하되 사람의 지혜가 가르치는 말로 하지 아니하고 [성령님]께서 가르치시는 말로 하나니 곧 영적인 것들은 영적인 것(spiritual)으로 비교하느니라.”
그러면 영적인 것이 어떤 것입니까? 하나님은 영이시고, 영이신 그분의 말씀이 영입니다.
(요 6:63b) “... 내가 너희에게 이르는 말들은 곧 영이요 생명이니라.”
그러므로 성경은 영적인 책입니다. “성경이 영적인 책이다.”라는 말은 성경에는 우리들의 이해력을 넘어서는 하나님의 지식과 지혜와 명철이 가득 차 있다는 말입니다. 성경에는 이 세상의 다른 책들에는 없는 영적인 선한 요소들로 가득 차 있습니다.
비교한다는 말은 지금 우리가 살펴본 것처럼 고전 2:13절에서 영적인 것이 무엇인지 알아보기 위해 성경기록의 다른 부분 요한복음 6:63절에서 “영(spirit)”이 “하나님의 말씀”을 나타내는지 설명해주는 것처럼 이해하는 방식입니다. 그러므로 성경을 성경으로 비교하는 것입니다.
둘째, 우리는 성경 그 자체를 읽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요 17:17) “아버지의 진리로 그들을 거룩히 구별하옵소서. 아버지의 말씀은 진리이니이다.”
하나님의 말씀은 진리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성경을 읽어야 합니다. 우리가 성경을 읽지 않고는 성경을 알 수 없습니다. 성경을 강해한 책도 있고 사람들이 성경에 대해 설교한 것도 있지만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것은 성경 그 자체를 읽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성경에 대해 것을 읽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성경 그 자체를 읽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베일을 벗겨주셨고 우리를 가르치시도록 우리 안에 성령님을 보내주셨습니다. 이제 우리가 진리를 찾고자 원한다면 성령님을 통해 성경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요 14:26) “[위로자]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님] 그분께서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시고 내가 너희에게 무엇을 말하였든지 너희가 모든 것을 기억하게 하시리라.”
셋째, 우리가 성경을 읽을 때 하나님의 말씀으로 읽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믿는다고 말하는 것은 그분의 말씀을 믿는다는 의미입니다.
(행 27:25b) “... 내가 [하나님]을 믿노니 내게 말씀하신 그대로 되리라.”
하나님을 믿는다고 말하면서 그분의 말씀을 믿지 않는다면 그것은 하나님을 믿지 않는 것입니다.
(롬 10:17) “그런즉 이와 같이 믿음은 들음에 의해 오며 들음은 [하나님]의 말씀에 의해 오느니라.”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지 않는다면, 읽어도 아무런 효력이 없습니다.
(살전 2:13) “이런 까닭에 우리가 또한 [하나님]께 끊임없이 감사를 드림은 너희가 우리에게서 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받을 때에 그것을 사람들의 말로 받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았기 때문이니 진실로 그러하도다. 그 말씀이 또한 믿는 너희 안에서 효력 있게 일하느니라.”
그러므로 성경을 비평하면서 읽는다면 그에게는 아무런 효력이 나타나지 않습니다. 성경에 순종할 생각도 없이 읽어도 아무런 소용이 없다는 말입니다. 성경을 읽을 때 자신의 삶을 완전히 바꿀 수 있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대하며 읽어야 그 말씀이 우리의 삶을 변화시키고 권능 있게 역사할 수 있습니다.
넷째, 성경을 읽을 때 하나님의 뜻을 알게 해달라고 기도하는 마음으로 읽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롬 8:27) “마음을 살피시는 분께서 성령의 생각이 무엇인지 아시나니 이는 그분께서 [하나님]의 뜻대로 성도들을 위해 중보하시기 때문이니라.”
우리는 수학책을 공부하며 “이 책을 통해 주님의 뜻을 보여 주시고 저를 변화시켜 주십시오.”라고 기도를 할 필요는 없습니다. 과학 교과서를 보면서 그런 기도를 할 필요도 없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다릅니다. 우리는 성경을 통해서 많은 이단들이 생겨났다가 사라지는 것을 봅니다. 거짓 종교도 생겼다가 사라지기도 합니다. 훌륭하고 선한 사람들도 잘못을 범하고 오류에 빠지는 경우가 있습니다. 한때는 진리를 전하던 건전한 교회가 오류에 빠져 이단적인 교회가 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단지 성경을 읽는 것으로 문제가 해결되는 것이 아닙니다. 성경을 읽으면서 성경의 저자이신 주님께 마음을 드려야 합니다. “주님, 저는 주님을 신뢰합니다. 주님만을 의지합니다. 저는 성경을 온전히 이해할 만큼 현명하지 못합니다. 하나님, 저를 도와 주십시오.” 이러한 마음으로 성경을 읽어야 합니다.
다섯째, 성경은 순종하는 마음으로 읽어야 합니다.
(행 10:31~33) “31) 이르되, 고넬료야, [하나님]께서 친히 보시는 가운데 네 기도를 들으시고 네 구제를 기억하셨으니 32) 그러므로 사람을 욥바로 보내어 베드로라 하는 시몬을 여기로 부르라. 그가 바닷가에 있는 무두장이 시몬이라는 사람의 집에 묵고 있는데 그가 와서 네게 말하리라, 하였나이다. 33) 그러므로 내가 곧 당신에게 사람을 보내었는데 당신이 오셨으니 잘하였나이다. 그런즉 이제 우리는 [하나님]께서 당신에게 명령하신 모든 것을 들으려고 여기 [하나님] 앞에 다 있나이다, 하니라.”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기록을 읽으며 불순종하는 마음이 든다면 진리를 이해하는 문을 닫아버리는 것입니다. 우리가 매일 읽고 이해한 말씀에 순종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다면 하나님께서는 내일 더 많은 진리로 더 깊은 진리로 우리를 인도하실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오늘 보여주신 것에 순종하지 않으면 진리를 아는 지식에서 더 이상 자라갈 수 없습니다. 진리의 지식 안에서 계속 성장하다 성장이 멈춰버린 경우 그 원인을 찾아보면 어느 순간부터 하나님께서 보여주신 진리에 순종하지 않았기 때문임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하라고 하시거나 하지 말라고 하신 것에 순종하지 않으면 주님께서는 더는 말씀하지 않으실 것입니다. 말씀하셔봐야 소용이 없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학교는 시간이 지났다고 자동으로 진급하는 학교가 아닙니다. 주님의 학교에서는 1학년 과정을 마쳤어도 시험에 통과하지 못하면 다시 1학년이 됩니다. 교회에 다닌 연수가 많다고 해서 자동으로 3학년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성경은 반드시 순종하는 마음으로 읽어야 합니다.
여섯째, 성경을 반복해서 읽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신 17:19) “평생토록 자기 곁에 두고 그 안의 것을 읽어서 {주} 자기 [하나님] 두려워하기를 배우며 이 율법의 모든 말과 이 법규를 지키고 행할 것이니라.”
우리 자신을 하나님의 말씀에 내어 주어 계속 해서 읽고 읽고 또 읽어야 합니다. 성경은 우리들이 반복해서 읽을 만한 충분한 가치가 있는 유일한 책입니다. 성경은 읽으면 읽을수록 모르는 부분이 더 많아지는 유일한 책입니다. 성경을 읽으면 읽을수록 우리는 점점 작아지고 성경은 더욱 커집니다. 지금까지 제가 두 번 이상 읽은 책들은 몇 권되지 않습니다. 대부분의 책들은 한 번 읽으면 더 이상 읽을 필요가 없어집니다. 그러나 성경은 이상한 책입니다. 성경을 읽으면 읽을수록 모르는 부분이 많아지지만 또 서로 연결이 되는 관련 구절도 많아집니다. 또한 읽으면 읽을수록 흐릿했던 부분이 선명하게 나타나기도 합니다. 성경을 거듭해서 읽을수록 하나님께서 의도하신 것이 무엇인지 분명하게 알게 됩니다.
일곱째, 성경을 순서대로(연속적으로) 읽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말하는 것이 맞는 말인가요? 하나님께서 66권의 책을 한 권의 책으로 모으셨다는 것도 맞는 말인가요? 그렇다면 왜 성경을 순서대로 읽지 않는 것인가요? 어떤 사람은 성경을 계시록부터 읽기도 합니다. 하나님께서 성경을 순서대로 엮어 두셨다면 우리는 그 순서에 따라 성경을 읽어야 할 것입니다.
주님이 그렇게 하셨습니다.
(눅 24:25~27) “25) 이에 그분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오 어리석고 대언자들이 말한 모든 것을 마음에 더디 믿는 자들이여, 26) 그리스도가 이런 일들로 고난을 당하고 자기의 영광에 들어가야 함이 마땅하지 아니하냐? 하시고 27) 모세와 모든 대언자들의 글에서 시작하여 모든 성경 기록들에서 자기에 관한 것들을 그들에게 풀어 설명해 주시니라.”
주님께서 제자들에게 성경을 알려주시는 순서와 방법이 놀랍지 않습니까? 주님께서는 성경의 앞부분(모세오경)부터 시작해서 선지서 등의 순서로 성경을 알려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성경을 처음부터 끝까지 순서대로 읽어야 합니다.
여덟째, 우리는 성경을 인내를 가지고 읽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능숙한 일꾼이 되기 위해서는 성경을 알아야 하는데 거기에는 많은 경우에 인내가 필요합니다. 성경을 읽어가다 보면, 역사에 관한 이야기나 사람의 이야기가 나오면 쉽게 읽어지지만, 헌물을 드리는 방법이나 법규가 나오면 대부분 넘어가기 쉽지 않은 부분이 있습니다.
우리들 중에는 성경을 읽지 않은 채로 하나님께서 자신 안에서 놀라운 일을 해주시기를 구하는 분도 있을 겁니다. 그러나 어떤 것이 하나님의 방법인지 한 번 생각해 보세요. 능숙한 피아니스트가 되려면 어떻게 해야 될까요? 아무런 연습도 하지 않았는데, 하나님께서 기적적인 방법으로 능력을 주셔서 하루 아침에 능숙한 피아니스트가 되는 게 하나님의 방법일까요? 아니면 오랜 시간 피나는 연습을 해서 능숙한 피아니스트가 되는 게 하나님의 방법일까요? 우리는 심은 대로 거두시는 하나님의 방법을 알기 때문에 피아니스트에 대해서는 어떤 게 하나님의 방법인지 잘 알고 있습니다. 우리의 인생도 별로 다르지 않습니다.
아홉째, 하나님의 말씀은 성경으로 끝났다는 것입니다.
(히 1:1~2) “1) 지나간 때에는 여러 시대에 다양한 방식으로 대언자들을 통하여 조상들에게 말씀하신 [하나님]께서 2) 이 마지막 날들에는 자신의 [아들]을 통하여 우리에게 말씀하셨으며(과거 시제에 주목) 그분을 모든 것의 상속자로 정하시고 또 그분으로 말미암아 세상들을 만드셨느니라.”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이미 모든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주님의 말씀은 신약성경이 기록될 때 완성된 것입니다. 꿈을 통한 계시도 끝났고 환상도 끝났고 예언도 끝났고 표적도 끝났고 사도도 끝났고 추가되는 말씀도 없습니다. 주님께서 인간에게 말씀하시는 모든 방법은 성경 66권이 완성되고 나서는 더 이상 추가되는 어떤 말씀도 하신 적이 없습니다.
우리는 성경 66권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는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마지막 책인 요한계시록 22:18~19절에 마지막으로 하신 말씀을 확인해 보겠습니다.
(계 22:18~19) “18) 내가 이 책의 대언의 말씀들을 듣는 모든 사람에게 증언하노니 만일 어떤 사람이 이것들에다 더하면 [하나님]께서 이 책에 기록된 재앙들을 그에게 더하실 것이요, 19) 만일 어떤 사람이 이 대언의 책의 말씀들에서 빼면 [하나님]께서 생명책과 거룩한 도시와 이 책에 기록된 것들로부터 그의 부분을 빼시리라.”
성경은 단순히 인간에게 주신 하나님의 말씀일 뿐만 아니라, 인간에게 주신 하나님의 마지막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 계시록 22장에서 성경을 끝마치실 때 성령님께서는 인간이라는 도구를 놓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하실 모든 말씀을 마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세상에 더 이상 하실 말씀이 없으십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도 성경을 통해 필요한 모든 말씀을 하셨습니다. 우리에게도 성경을 떠나서는 더 이상 어떤 말씀을 하시지 않으십니다.
열째, 성경을 공부하는 사람에게 필요한 것은 “평범한 언어 이해 능력”입니다.
성경은 인간이 읽게 하기 위해 기록되었고 또 인간의 언어로 기록되었습니다. 성경은 인간이 끝까지 알지 못하도록 감추어진 비밀을 담고 있는 책이 아닙니다. 성경에는 몇 군데에서 신비들을 언급하고 있지만, 다른 부분에서 그 신비가 무엇인지 드러내 보여주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마태복음 28:1절을 보겠습니다. “안식일이 끝나고 주의 첫날이 밝아오기 시작할 때에 막달라 마리아와 다른 마리아가 돌무덤을 보러 갔는데”
어떤 사람들은 이 구절을 이런 식으로 해석합니다. “예수님은 돌아가셨다. 막달라 마리아와 다른 마리아는 이제 새로운 아침이 밝았음을 느끼고 있었다. 슬픔에 잠긴 두 여인에게 여명이 밝아오고 있는 것이다. 무덤 앞에 선 두 여인은 새로운 희망에 대한 마음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들의 인생에 새로운 시대가 열린 것이다.” 이런 식으로 성경을 해석하면 듣기 좋고 멋지고 아름답게 보일지는 모르지만, 성경을 바르게 해석한 것과는 거리가 멉니다.
성경을 문자적으로 해석한다는 것은 한 단어 한 단어 기록된 그대로 받아들인다는 의미입니다. 다시 1절을 보세요. 성경에서 안식일이라고 하면 항상 토요일을 의미합니다. 성경에서는 명절을 제외하고는 단 한 번도 안식일이라고 하면서 다른 날을 의미한 적이 없습니다. 안식일이 끝날 무렵 주의 첫날이 밝아올 때 두 유대인 여인이 무덤에 온 것입니다. 본문은 새로운 희망이나 새로운 시대의 시작과 같은 것은 이야기하고 있지 않습니다. 본문은 안식일이 끝나고 새로운 날이 시작되고 있다는 시간적 이야기를 하고 있을 뿐입니다. 본문은 이것 외에 다른 무엇도 의미하지 않습니다. 이들 두 유대인 여인은 무덤을 보려고 왔습니다. 여인들은 어떤 희망을 품고 오지 않았습니다. 본문은 그런 말을 하지 않습니다.
2절을 보겠습니다. “보라, 큰 지진이 났더라. 이는 [주]의 천사가 하늘로부터 내려와서는 가서 그 입구에서 돌을 뒤로 굴려 내고 그 위에 앉았기 때문이더라.”
성경은 지진이 났다고 말씀하고 있지 삶의 희망이 무너져 마음이 두 갈래로 찢어졌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당시 발생한 사건은 지진이고 이것을 바라보는 여인의 심리 상태가 어떠했는지에 대해서는 말하고 있지 않습니다. 여인의 심리 상태를 넣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에 설교자의 생각을 추가한 것입니다.
지진이 의미하는 것은 무엇일까요? 지진이라는 단어의 영적 의미는 무엇일까요? 성경에 기록된 지진은 언제나 지진을 의미할 뿐입니다. 말할 줄 아는 사람 아무나 붙잡고 한 번 물어보세요. “지진의 의미가 무엇인가요?” 모두 동일한 대답을 해 줄 겁니다. 지진은 그냥 지진을 의미합니다. 거기에는 다른 어떤 영적 의미가 있지 않습니다. 성경의 다른 본문에서 다르게 정의하고 있지 않는 이상 지진은 항상 보통 사회에서 의미하는 그대로의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성경을 문자적으로 해석한 것입니다. 불행한 일이지만 본문을 이렇게 결론을 내리지 않는 설교자들이 너무나 많이 있습니다. 사람들은 성경을 제외한 모든 것을 문자적으로 이해하고 해석합니다. 신문이나 책이나 뉴스나 연설은 문자 그대로 이해하고 해석하면서 오직 성경을 읽을 때는 기록된 의미 뒤에 무엇인가 비밀스런 것이 있을 것이고 비유적으로 기록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사람들은 성경에 기록된 것보다 자신의 경험이나 느낌이나 감정을 신뢰합니다.
자신의 경험을 성경보다 더 신뢰하는 사람을 설득할 수는 없습니다. 만일 제가 경험한 것과 성경이 말씀하시는 게 서로 다르면 저는 성경이 말씀하시는 것을 믿겠습니다. 제가 날개가 달린 천사를 실제로 보게 된다고 할지라도 성경이 천사는 날개가 없다고 말씀하신다면 저는 천사는 날개가 없다고 믿겠습니다. 제가 본 것과 성경이 말씀하시는 게 서로 다르면 저는 항상 성경을 믿을 것입니다. 그리고 제가 본 것을 다시는 보지 않게 해 달라고 기도할 것입니다.
모든 본문의 2차적인 의미는 선행한 구절의 문자적인 해석에 달려있습니다. 상징, 은유, 모형 등은 모두 비유적인 것입니다. 여러분은 문자적 해석을 떠나서는 비유를 해석할 수 없습니다.
예를 들면, 누가복음 8:5절에서 “씨 뿌리는 자가 자기 씨를 뿌리러 나가서”라고 말할 때, 씨 뿌리는 자가 의미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주님의 해석(마 13장, 막 4장)에 의하면 씨 뿌리는 자는 인간의 아들인 예수님 본인입니다. 씨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눅 8:11). 씨가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것은 성경 곳곳에 나와 있습니다. 씨 뿌리는 자의 비유에서도 마찬가지로 같은 의미로 사용되었습니다. 이렇게 은유나 비유는 성경의 다른 본문에서 해석을 해주고 있습니다.
100마리 중 한 마리의 양을 잃어버린 사람의 비유를 보겠습니다(눅 15:4). 이것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입니까? 성경에 의하면 양은 무엇의 비유입니까? 선한 목자는 누구를 비유로 보여주는 것입니까? 성경에서는 비유적인 문맥이라 할지라도 우리는 기본적으로 성경의 다른 부분이 정의하고 있는 그대로의 의미를 가지고 해석하는 것입니다. 즉, 성경의 해석은 비유라 할지라도 이미 다른 부분에서 해석한 문자적인 해석에 기초해서 풀어간다는 것이지 비유 안에서 새로운 것을 창조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렇게 성경을 문자적으로 해석하는 방법은 인간의 상상력을 제한하기 위한 방법입니다. 우리는 성경을 읽으면서 여러가지 상상을 합니다. 성경은 고린도후서 10:5절에서 “우리는 상상하는 것과 또 하나님을 아는 지식을 대적하여 스스로를 높이는 모든 높은 것을 무너뜨리고 모든 생각을 사로잡아 그리스도께 순종하게 하며”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생각하거나 상상하는 것들은 모두 잘못된 것일 수 있음을 인정해야 합니다. 우리의 생각과 상상은 모두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 앞에 순종해야 합니다.
만약 어떤 여자 분이 저에게 자신의 남편이 바람을 피웠다고 말하며, 남편이 바람을 피웠기 때문에 그녀는 남편과 헤어져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래서 저는 남편이 정말 바람을 폈는지 어떻게 확실히 알게 되었냐고 물어봅니다. 그녀는 하나님께서 자기에게 말씀해 주셨다고 대답합니다. 여러분이 기도하거나 걱정하거나 공상하거나 혹은 잡담을 하고 있을 때 작은 목소리가 “네 남편이 바람피고 있어.”라고 속삭여 준다면 여러분은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저 같으면 바로 성경으로 달려가서 나에게 말하는 자가 누군지 확인해 보겠습니다.
우리는 모두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는 누구나 생각을 하면서 삽니다. 성경을 문자적으로 해석하면 우리의 생각과 상상이 성경 해석에 침범할 수 없게 됩니다. 문자적 성경 해석은 우리가 우리의 생각과 상상과 마음대로 성경을 해석하지 못하도록 지켜줍니다. 성경은 “마음은 모든 것보다 거짓되고 극도로 사악하니 누가 그것을 알 수 있으리요?”(렘17:9)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단지 자신이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해서 생각나는 대로, 상상하는 대로, 성경을 마음대로 해석해도 되는 것은 아닙니다. 거듭난 그리스도인의 마음도 인간의 타락한 본성이 그대로 남아 있음을 기억할 필요가 있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할 수도 있지만 마음이 어떠한가는 또 다른 문제입니다. 왜냐하면 성경에 의하면 마음이라는 것은 이 세상 그 무엇보다도 거짓되고 사악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저는 저의 마음과 머리에서 떠오르는 모든 상상과 생각을 잡아서 성경에서 실제로 하시는 말씀과 비교해 보고 그것에 복종시킬 필요가 있는 것입니다.
저는 다른 사람의 설교를 통해서도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 어떤 경우에는 설교자가 이것은 사실이 아닐 것이라고 말했는데 나중에 성경을 찾아보니 그것이 사실이었던 적도 있었습니다. 그 사람이 한 말을 성경과 비교해 봄으로 성경을 배울 수 있었던 것입니다. 성경을 인용하면서 얘기하지만 문맥과 전혀 엉뚱하게 인용하는 경우도 많이 보았습니다. 그래서 성경의 문자적 해석만이 항상 안전하고 확실한 해석방법입니다.
문자적 해석을 할 때 간과할 수 없는 것이 문화적 측면입니다. 문화적 측면을 보기 위해서는 지리적, 역사적, 사회적 측면도 고려해 봐야 합니다. 예를 들면, 성경 시대에는 중동의 문화를 따라 사람들이 넓은 다락방에서 모여 교제를 나눴습니다. 이러한 문화적 배경을 생각하면 성경의 많은 부분들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당시 유대인들이 사는 곳은 오늘날 우리가 사는 곳처럼 수도시설이 잘 건설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서 많은 단지(항아리)가 있었습니다. 지금 우리의 시각으로 본다면 굉장히 지저분하게 보일 수도 있습니다. 여러분이 성경 시대의 환경을 경험하게 된다면 2천년 전에 유대인으로 태어나지 않음에 감사할 것입니다.
동물의 배설물이나 풀로 아궁이에 불을 때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오늘 들에 있다가 내일 아궁이에 던져질 풀”(눅 12:28)이라고 말씀하시는 겁니다.
무덤가에 사는 사람의 이야기는 어떻습니까? 우리가 생각하는 무덤과 성경 시대의 사람들이 생각하는 무덤은 많이 다릅니다. 당시의 무덤은 주로 한적한 산기슭에 위치하고 있었습니다. 따라서 무덤 근처에 사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발을 씻겨주는 것은 어떻습니까? 이것도 문화적인 배경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왜 우리 교회에서는 발을 씻어 주지 않는 건가요? 우리는 양말을 신고 신발을 신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발은 대체로 깨끗합니다. 그러나 성경 시대의 사람들은 흙먼지가 일어나는 곳에서 샌들을 신고 다녔기 때문에 발이 더러울 수밖에 없었습니다.
성경은 “거룩한 입맞춤”에 대해서도 말씀하고 있습니다(롬 16:16, 고전 16:20, 고후 13:12, 살전 5:26). 우리는 비누가 있고 손을 자주 씻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당시의 사람들은 그럴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의 손은 더러울 수밖에 없었습니다. 여러분이 성경 시대에 살았다면 사람을 만났을 때 결코 악수하고 싶지 않을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손을 잡고 악수하지 않고 입맞춤으로 대신했던 것입니다. 이런 식으로 성경에 나오는 많은 것들이 문화적인 배경을 가지고 있습니다.
주님의 말씀을 바르게 이해하고 연구하기 위해서는 영적으로 바른 상태에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영적으로 바른 상태에 있다고 해서 자동으로 성경을 알게 되는 것은 아닙니다. 성별된 삶을 산다고 해서 저절로 성경을 알게 되는 게 아닙니다. 어떤 사람이 선하고 경건하다고 해서 그 사람이 가르치는 것이 모두 진리는 아니라는 것입니다. 선하고 경건한 사람도 성경을 연구하지 않으면 진리가 아닌 거짓을 가르치게 됩니다.
우리는 모두 육신을 입고 있습니다. 우리의 육신은 매우 제한적이고 연약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모두 성경을 잘못 해석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반드시 정직할 필요가 있습니다. 만일 여러분이 우리 교회의 성경교사라면 그리고 주일학교 설교를 준비하고 있는데 학생의 절반이 여러분을 싫어해서 설교를 듣기 싫다고 한다면, 그런 상황에서 여러분의 타락한 본성이 여러분으로 하여금 반역에 대한 성경본문을 찾아서 여러분의 대적을 정죄하는 설교를 준비하지 않을 거라고 생각하십니까? 여러분이 특정한 때에 특정한 본문을 읽게 되었다고 해서 그것이 모두 하나님의 인도는 아닐 수도 있습니다. 설교자도 자신이 원하는 것을 정당화하기 위한 본문을 성경에서 찾아서 설교할 수도 있다는 것을 알아야합니다. 이만큼 우리의 마음은 기준이 될 수 없습니다.
그래서 문자적 성경 해석은 우리를 우리의 부패한 마음과 상상으로부터 지켜 주는 것뿐만 아니라 우리가 적절하지 못한 방법으로 성경을 이용해서 우리의 앞을 가로막는 장애물을 제거하는 잘못으로부터 우리를 지켜주는 안전지대입니다. 다른 말로 하면 성경의 문자적 해석은 설교자가 자신의 사욕을 채우기 위해 성경을 이용하는 것을 막는 안전장치라는 것입니다.
성경은 66권의 책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우리가 성경을 읽으며 나 자신에게 다음의 질문을 하며 읽어야 합니다.
(1) 이 말씀은 언제 기록된 것인가?(역사적 적용)
(2) 이 말씀은 언제 누구에게(누구를 향해) 기록된 것인가?(교리적 적용)
(3) 이 말씀은 우리에게 어떤 유익으로 기록된 것인가?(영적 적용)
성경을 공부하면서 이러한 점을 먼저 생각해야 하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이렇게 성경을 공부하며 읽어야 나 자신을 [하나님]께 인정받은 자로, 부끄러울 것이 없는 일꾼으로 나타낼 수 있습니다. (끝).
2019-12-15 15:16: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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