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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카이사르에게 청원하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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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이사르에게 청원하나이다.-

말씀: 행 25:1-27, 요절: 행 25:11,12. 2020년 1월 12일 일요일 오후 2시

가이사랴의 총독 벨릭스 앞에서 2년 간 재판을 받았으나 풀려나지 못한 바울은 이제 새 총독 베스도를 맞아 다시 재판을 받게 되었습니다. 벨릭스는 유대인들을 기쁘게 하기 위해서 바울의 무죄를 알면서도 그를 석방하지 않고 억류해 두었다가 자신의 후임으로 온 총독 베스도에게 바울의 사건을 넘겨 버렸습니다. 이들은 어디까지나 정치인에 불과했습니다.
벨릭스나 베스도는 자신의 정치적 이익과 야망을 따라 움직이는 사람입니다. 이들은 모두 유대의 총독으로서 유대인들의 감정을 상하게 하는 일이나 반목할 만한 일을 하고 싶어 하지 않았습니다. 총독부를 유대에 두지 않고 가이사랴에 둔 것은 조금 의외입니다. 그러나 총독 본디오 빌라도는 유대의 예루살렘에 있었습니다.
오늘 본문의 사건은 A.D 61년경에 있었던 사건입니다. 전도 여행 중에 바울은 아테네에서 ‘데살로니가 전∙후서’를 썼고, 빌립보에서 고린도 전∙후서를 쓰고 고린도에서 로마서를 썼습니다. 옥중 서신이라 불리는 서신을 제외한 긴 서신들이 전도 여행 중에 기록되었습니다. 바울이 하나님의 뜻이 아닌 자기 뜻을 따라 예루살렘에 왔다가 붙잡혀서 가이사랴에서 2년간 재판을 받은 후에 다시 로마로 이송이 결정되는 사건이 오늘 본문입니다. 아무리 선한 뜻이라 해도 하나님을 앞서 가다가는 소득 없는 허송세월은 물론 고난을 받게 됩니다.
1절입니다. [이제 베스도가 그 지방에 와서 사흘이 지난 뒤에 가이사랴에서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니](1).
베스도는 자신의 부임지에 도착한 사흘 후 곧바로 예루살렘으로 올라갔습니다. 예루살렘은 유대인들의 주요 인사들이 모두 있는 곳이며, 앞으로 베스도 자신의 총독 생활을 성공리에 마치는데 협조가 필요한 곳입니다. 예루살렘의 장로들, 제사장들을 비롯한 기존 토착 세력들과의 원만한 관계를 위해 베스도는 가이사랴에 부임하자마자 예루살렘으로 올라 간 것입니다.
그가 예루살렘을 방문했다는 것은 예루살렘의 유대인들에게 압력과 로비를 받을 수 있는 환경에 있다는 점을 시사하는 것입니다. 예상대로 예루살렘은 그의 방문에 맞추어 그들의 당면 과제, 요구사항을 전달했습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예산 확보나 언론의 자유, 교육 문제, 유대인의 지위 향상이나 산업 개발 등과 같은 민생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신임 총독의 첫 방문에 맞추어 이들은 ‘바울’에 관한 고소 문제를 들고 나왔습니다.
2절, [이에 대제사장과 유대인들의 우두머리들이 그에게 바울을 고발하고 그에게 간청하며](2).
유대인들은 총독의 교체시기를 바울을 처리할 중요한 변수요, 기회로 여기고, 즉각 베스도에게 바울을 고소했습니다. 벨릭스는 바울의 무죄를 알고도 석방해 주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자신들의 요구대로 죽이지도 않았습니다. 그들은 2년이란 긴 시간 동안 흐지부지하던 재판을 종결짓고, 바울의 신병을 예루살렘에 있는 자신들에게 넘겨주기를 강력하게 요구하기 시작합니다.
정치적 상황이 바뀌면 다양한 정치적 고려 요소가 작용하게 됩니다.
침례 요한을 죽인 헤롯이나 예수님을 죽인 빌라도, 스데반을 죽인 바리새인들, 야고보를 칼로 목을 벤 헤롯 등은 정치적 배경이나 사상이나 민족이 다 다르지만 마귀의 자녀로서 살인자요, 거짓말쟁이란 점(요8:44)은 동일합니다. 이들은 같은 동족이요, 같은 유대인인 바울을 죽이기 위해 갖은 애를 다 쓰고 있습니다.
그들이 동족의 석방을 위해 노력하는 것이 정상입니다. 이방인의 손에 재판을 받는 것을 풀어 주도록 탄원하고, 자신들의 손에 재판권을 넘겨주어 공정한 재판을 받게 하는 것이 상식입니다. 그런데 이들은 정반대로 죽여주도록 압력을 가하고 있습니다. 이들의 계획은 다음과 같습니다.
3절, [길에 숨어 있다가 그(바울)를 죽이려고, 그(베스도)가 그(바울)를 대적하는 일에 호의를 베풀되 곧 사람을 보내어 그(바울)를 예루살렘으로 불러 줄 것을 구하더라.](3). “대제사장과 유대인들의 우두머리들”이 바울을 예루살렘으로 불러 달라는 것은 공의로운 재판을 위해서가 아니라 호송 도중에 죽이려는 것입니다. 유대의 주요 인사들은 신임 총리 베스도에게 민족적 숙원이나 복지 사업, 구제 사업 등과 같은 일에 대해 관심을 촉구한 것이 아니라 그에게 압력을 가하여 바울을 죽여 달라는 것을 ‘국정 최우선 과제’로 선정한 것입니다.
이들은 현재 유대에 있는 어떤 국정 과제나 민생 문제보다 바울을 죽이는 것이 더 급하고 중요했습니다. 사울 왕이 다윗을 죽이는 것을 국정 최우선 과제로 삼은 것과 마찬가지로 이들은 어리석음에 매여 있습니다. 뇌물이 재판관의 마음을 어둡게 하듯 미움, 시기심,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는 불신은 사람의 마음을 어둡게 합니다. 특히 종교인들의 마음은 완전히 어둠 속에 있기 때문에 살인을 획책하려고 안달이 나 있습니다.
4-5절, [그러나 베스도가 응답하기를 바울을 가이사랴에 두어야 하며 자기도 곧 거기로 떠나려 한다고 하고 또 이르되, 그러므로 너희 가운데 능력 있는 자들이 나와 함께 내려가서 이 사람에게 무슨 사악한 것이 있거든 그를 고소하게 하라, 하니라.] 베스도는 유대인들의 청을 거절하고 대신 정식 고발을 통해 재판을 받게 하도록 했습니다. 신임 총독으로서 첫 임무는 ‘바울의 재판’이 되고 말았습니다. 베스도는 아직 바울의 재판에 대한 전후좌우 사정조차도 파악되지 않는 상태였던지라 너희들이 직접 가이사랴의 법정에 와서 ‘고소’하라고 말합니다.
6절입니다. [베스도가 그들 가운데서 열흘 이상 머무르고 가이사랴로 내려가 이튿날 재판석에 앉아 바울을 데려오라고 명령하니](6). 베스도는 열흘 남짓의 예루살렘 방문을 마치고 자신의 부임지인 가이사랴로 돌아와 그 다음 날 바로 바울에 대한 재판을 시작했습니다. 현재 바울은 단지 유대의 정치, 사회의 Top News에 Headline을 장식하고 있습니다. 당시의 메인 뉴스는 언제나 바울이었습니다. 대제사장을 비롯한 유대의 주요 인사들은 연일 ‘바울을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로 고민했고, 가이사랴의 총독 역시 바울의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는가? 로 고민하고 있습니다.
그는 지중해와 에게해 연안의 아시아와 유럽, 예루살렘과 시리아에서 가장 유명한 인물이 되어 버린 것입니다. 마치 ‘세기의 재판’이라도 열리는 듯합니다. 모든 사람들이 이 재판에 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재판 없이 예루살렘의 성전에서 끌려 나가 죽임을 당한 스데반과 달리 ‘바울’은 로마 시민권 자였던지라 철저히 재판의 절차를 밟고 있다는 점이 다릅니다.
7절입니다. [그가 나오매 예루살렘에서 내려온 유대인들이 둘러서서 여러 가지 중대한 고소거리로 바울을 고소하되 그것들에 대한 증거를 대지 못하니라.](7). 법정에 바울이 불려 나오자 이 사건의 재판을 위해 예루살렘에서 다시 바울을 고소하는 ‘중대한 고소거리’를 제시했습니다. 이미 여러 번 재탕, 삼 탕한 것이지만 사형 판결을 받게 하기 위해 집요하게 물고 늘어졌습니다. 후에 총독 베스도는 헤롯 아그립바 2세에게 유대인들의 고소가 자신이 짐작하고 예상했던 죄악이 아니었음을 고백합니다. 그나마 이들이 말하는 중대한 고소에는 ‘증거’가 없었습니다. 고소거리가 사실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모든 형사 재판은 ‘증거 제일주의’입니다. 심증은 있으나 물적 증거가 없으면 필연적인 사연이 성립된다 하더라도 무죄입니다. 그런데 바울의 경우에는 고소만 많았지 고소 자들도 증거를 제시하지 못했습니다.
우리는 때로, ‘여론 재판’이란 말을 합니다. 증거와 상관없이 백성들의 법 감정에 맞추어서 사건을 짜 맞추어 누군가를 처벌해 버리는 것입니다. 캐톨릭처럼 자신들을 반대하는 이들의 죄목을 찾지 못할 경우에는 ‘마녀다!’라고 외친 후에 ‘화형’에 처해 버리는 ‘마녀 사냥’식 재판은 이미 초대 교회 성도들에게 자주 적용되었던 재판입니다. (~~카더라. 악 풀 댓글)
8-9절입니다. 바울은 언제나 그러했듯이 스스로 자신을 변호했고, 무죄를 주장했습니다. 그러나 이런 주장은 유대인들의 압력을 받고, 그들의 호의를 구하는 총독에게 전혀 받아들여지지 않았습니다. 신임 총독 베스도는 도리어 바울을 ‘예루살렘’으로 보낼 마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가 자기를 위해 답변하여 이르되, 내가 유대인들의 율법이나 성전이나 카이사르에 대해 결코 어떤 잘못도 저지르지 아니하였노라, 하나 베스도가 유대인들을 기쁘게 하려고 바울에게 응답하여 이르되, 네가 예루살렘으로 올라가 거기서 이 일들에 대해 내 앞에서 재판을 받고자 하느냐? 하매](8-9). ‘벨릭스’가 그러했듯이 신임 총독 베스도 역시 바울을 활용해 유대인들의 호의를 얻으려는 정치적 타협을 시도했습니다. 이 시점에 바울을 ‘예루살렘’으로 가라는 것은 유대인들의 뜻대로 해 주겠다는 것이며, 죽으라는 말과 같습니다. 이제 바울에게는 달리 선택의 여지가 없었습니다. 그가 살기위해 할 수 있는 유일한 선택은 ‘로마의 카이사르’에게 청원하는 것입니다.
10-11절입니다. [그때에 바울이 이르되, 내가 카이사르의 재판석에 서 있으니 마땅히 거기서 재판받을 것이니이다. 각하께서 매우 잘 아시는 바와 같이 나는 유대인들에게 조금도 잘못하지 아니하였나이다. 만일 내가 범죄자이거나 혹은 죽을 짓을 하였으면 죽는 것을 마다하지 아니할 터이나 만일 이 사람들이 나를 고소하는 이 일들 중에서 그런 것이 없다면 아무도 나를 그들에게 넘겨줄 수 없나이다. 내가 카이사르에게 청원하나이다, 하니](10-11). 바울은 더 이상 가이사랴에서 재판 받을 수가 없음을 알았으므로 베스도의 제의를 일언지하에 거절했습니다. 현재 돌아가는 상황이나 총독의 의도 등을 바울은 정확히 간파한 터라 더 이상 이곳에서 재판을 받는 것이 무의미함을 알고 다시 로마의 황제 카이사르에게 청원했습니다.
*내가 카이사르에게 청원하나이다. 바울은 2심 재판을 끝내고 삼심제의 마지막 최종 재판으로 가고자 했습니다. 이곳에서 시간을 끌다가는 더욱 어려움에 빠지게 될 것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내가...... 죽기를 마다하지 아니할 터이나. 우리는 여기서 바울이 ‘사형제도’에 대해 의미심장한 말을 하는 것을 봅니다. 오늘날 소위 교회의 사역자들이 강력하게 사형제 폐지를 주장하며 그것이 사랑의 실천이요, 하나님의 뜻인 양 성경을 들이대는 것을 자주 볼 수 있습니다. 사형제도는 결혼 제도와 마찬가지로 주님께서 정하신 법입니다. ‘사형제도’는 구약의 율법이고 신약에서는 아니라고 생각 하는 분들은 성경을 크게 오해한 것입니다. 경찰, 군대를 비롯한 공권력을 가진 이들은 ‘하나님의 사역자들’이라고 바울은 말합니다. [그는 하나님의 사역자로서 네게 선을 베푸느니라. 그러나 네가 악한 것을 행하거든 두려워하라. 그가 헛되이 칼을 차지 아니하나니 그는 하나님의 사역자요, 보복하는 자로서 악을 행하는 자에게 진노를 집행하느니라.](롬13:4)고 말합니다.
*칼을 찬다. 보복하는 자, 진노를 집행한다. 이런 말들은 사형제를 지지하는 말씀입니다. 바울 역시 자신이 범죄자이거나 죽을 짓을 했으면 ‘죽기를 마다하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유대에서나 이방에서나 사형제도 그 자체에 대해 논란이 벌어진 적이 한 번도 없다가 갑자기 최근에 들어서 ‘사형제 폐지’가 시대의 요구요, 인권 운동의 꽃이며, 사랑의 결정판이라도 되는 것처럼 교회들이 세상 단체들과 입을 맞추는 것은 우습기 그지없는 일입니다. 사형제 폐지를 요구하는 자들은 주로 살인자들이란 점에 주목하십시오. 살인자에 의해 죽은 피해자의 인권은 없고 살인자의 인권을 주장하는 것은 살인자 마귀가 자신의 자녀들인 살인자들을 보호하기 위해서 ‘사형제 폐지’를 요구합니다.
마귀는 사람이 피 흘리고 죽는 걸 즐깁니다. 우리는 성경에서 이집트‘파라오의 유아 학살, 바알 종교의 유아, 영아를 바치는 인신 공양, 예수님이 태어난 시대에 헤롯 왕의 유아 학살’ 등을 목격합니다. 하나님은 살인자들을 멸하도록 공권력을 주시고, 칼을 쥐어 주셨습니다. 피는 반드시 피로 갚으라고 하십니다(창9:6).
사형제 폐지를 주장하는 이들은 오판, 개선의 여지, 제 2의 기회, 사람이 사람의 생명을 빼앗을 권리가 없다는 등의 말을 하며, "인간이 무슨 권한으로 어떻게 인간을 판단하고 죽이냐?"고 하지만 사실은 살아 있는 사람들이 아니라 사람을 죽인 ‘살인자’를 보호하려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어느 것이 옳은가 생각해 보십시오. 가해자 즉 살인자들의 인권은 옹호하면서 피해자의 인권은 무시해 버리는 세상입니다. 이는 분명히 마귀의 통치수법입니다.
하나님은 우리 몸에 칼을 대는 것을 원치 않으십니다. 문신, 자해, 할복, 자살 등은 물론이고 고행이나 자기 학대 등을 원치 않습니다. 그러나 사람의 피를 흘린 자는 반드시 피를 흘리게 하라고 하십니다. 성경은 분명히 “...사망에 이르는 죄가 있나니/There is a sin unto death”(요일5:16b). 오늘날 공공연히 벌어지는 살인의 하나가 ‘낙태’입니다.
12절입니다. [이에 베스도가 공회와 협의하고 응답하되, 네가 카이사르에게 청원하였느냐? 카이사르에게 네가 갈지니라, 하니라.](12). 총독 베스도는 바울이 로마의 카이사르에게 최종 항소하자 그것을 받아 들였습니다. 이제 이 재판은 총독의 손에서 로마의 황제에게로 넘어 간 것입니다. 이로써 “내가 반드시 로마도 보아야 하리라”(행19:21)는 바울의 소원은 자신이 원하는 때, 원하는 방식은 아니었지만 이루어지게 되었습니다. 그는 죄수의 신분으로 사슬에 묶인 채 로마로 가는 길을 선택했습니다.
13절입니다. [며칠 뒤에 아그립바 왕과 버니게가 베스도에게 문안(問安)하러 가이사랴에 왔더라.](13).
가이사랴에 아그립바 왕과 “버니게”가 총독 베스도에게 문안하러 왔습니다. 아그립바 왕은 헤롯 아그립바 2세를 말합니다. 야고보를 죽이고 베드로를 죽이려다 실패한 헤롯 아그립바 1세(행12:1)가 백성들의 환호를 받고 그 영광을 즐기다가 벌레들에게 먹혀 죽자(행12:22-23), 그 아들로서 4번째 헤롯 왕조의 왕이 되었습니다.
아그립바 왕의 아내 ‘버니게’는 헤롯 아그립바 1세의 딸입니다. 그렇다면 이 둘은 친 남매지간입니다. 이들은 남매간의 근친상간을 했으며, 아그립바 2세는 버니게를 여왕으로 옹립하려 했으나 로마의 반대로 자신이 왕이 되고 늘 함께 다녔다는 역사 기록이 있습니다(행25:13, 23; 26:30). 후에 그녀는 다시 길리기아의 왕 폴레모와 결혼했습니다. 이외에도 여러 명의 정치적 주요 인물들과 염문을 뿌린 당대의 유명한 여자였습니다. 이들이 가이사랴에 총독을 방문하러 왔다가 바울에 대한 이야기를 듣게 되었습니다.
14-21절은 총독 베스도가 자신을 찾아온 아그립바와 버니게에게 바울이란 사람과 그에 대한 그간의 재판 과정을 설명해 주었습니다. 자신이 맡은 특이한 사건에 대해서 말해 준 것입니다. 그의 설명은 이미 앞에서 나온 그대로입니다.
[그들이 여러 날 거기 있은 뒤에 베스도가 바울의 사건을 왕에게 밝히 알리며 이르되, 벨릭스가 어떤 사람을 결박해서 남겨 두었는데 내가 예루살렘에 있을 때에 유대인들의 수제사장들과 장로들이 내게 그를 고발하며 그를 대적하는 판결을 요구하기에 내가 그들에게 응답하되, 고소당한 자가 고소한 자와 얼굴을 마주보고 자기가 고소당한 범죄에 대하여 자기를 위해 답변할 자유를 갖기도 전에 그 사람을 넘겨주어 죽게 하는 것은 로마 사람들의 관례가 아니라, 하였나이다.](14-16). 베스도는 지금 바울을 유대인들의 손에 넘기지 않고 공정한 재판을 받게 했다는 점을 자랑합니다. 재판 없는 형 집행은 없다는 것이 로마의 관례입니다. 바울이 로마의 시민권 자였기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17-21절입니다. [그러므로 그들이 여기 왔을 때에 내가 지체하지 아니하고 이튿날 재판 석에 앉아 명령하여 그 사람을 데려오게 하였으나 고소한 자들이 일어서서 그를 대적하되 내가 짐작한 그런 일들에 대한 혐의는 하나도 제시하지 아니하고 다만 자기들의 미신과 또 예수라는 이 곧 죽었지만 바울이 살아 있다고 확언하는 사람에 관한 어떤 문제들을 제기하여 그를 대적할 뿐이었나이다. 내가 이 같은 종류의 문제들에 의문을 품었으므로 그가 예루살렘에 가서 거기서 이 일들에 대하여 재판을 받고자 하는지 그에게 물었으나 바울이 청원하여 아우구스투스의 청문회 때까지 미루어 달라고 하므로 내가 그를 카이사르에게 보낼 때까지 그를 지키라고 명령하였나이다, 하니](17-21).
베스도가 재판 석에 앉았을 때에 예상했던 혐의는 단 한 건도 올라오지 않았습니다. 유대인들이 바울을 대적하여 한 고소는 모두 자기들의 종교적 문제였습니다. 베스도의 표현대로라면 “다만 자기들의 미신과 예수라는 이의 죽음과 부활”에 관한 것이 전부였습니다. 로마인들의 눈에 유대교는 단지 '자기들의 미신' 에 불과한 것이었습니다. 유대인들의 눈에 예수님을 믿는 것은 ‘나사렛 종파의 이단’에 불과한 것입니다. 오늘날 바른 성경인 킹제임스 성경을 바른 성경으로 믿는 자들을 이단시하고 비방하는 교인들이나 다를 바 없습니다.
22-23절입니다. 바울에 대한 베스도의 설명을 들은 아그립바는 직접 바울의 말을 듣고 싶어 했습니다. [이에 아그립바가 베스도에게 이르되, 나도 직접 그 사람의 말을 듣고자 하노라, 하거늘 그가 이르되, 왕께서 내일 그의 말을 들으시리이다, 하더라. 이튿날 아그립바와 버니게가 크고 화려한 행렬을 거느리고 와서 총대장들과 도시의 주요 인사들과 함께 청문회장으로 들어오고 베스도의 명령으로 바울이 끌려나오니](22-23).
이로써 헤롯 왕조의 4명의 헤롯은 모두 복음과 깊은 연관을 갖게 됩니다.

첫째, 헤롯 대제는 동방에서 온 박사들을 통해 예수님의 탄생 소식을 듣고 그가 유대인들의 왕으로 태어났다는 예수님을 죽이기 위해 베들레헴 근방의 두 살 아래 아이들을 모두 학살했습니다.
둘째, 헤롯 안티파스는 침례인 요한의 책망을 받고, 예수님에게 ‘여우’란 별명을 얻었습니다. 그는 자기의 생일에 침례요한의 목을 베게 했습니다.
셋째, 헤롯 아그립바 1세는 야고보를 칼로 죽이고, 베드로를 감옥에 가두었지만 하나님께 돌려야 할 영광을 돌리지 않다가 벌레들에게 먹혀 죽었습니다.
넷째, 헤롯 아그립바 2세는 본문의 인물로 바울을 통해 예수님의 죽으심과 부활에 관한 긴 설교를 듣게 됩니다. 하지만 이들 가운데 믿음으로 구원에 이른 자는 아무도 없었습니다.
24-27절입니다. 총독 베스도가 바울의 무죄를 변론하고 최종 상고 문에 보낼 보고서 작성의 어려움을 토로합니다. 카이사르에게 최종 상고 문을 보내려면 합당한 의견서나 자신이 판결을 통해 알아본 사건일지 등을 상세히 기술해서 보내야 하는데 그런 것이 전혀 없었기 때문에 아그립바 왕에게 조언을 구합니다.
24-27절입니다. [베스도가 이르되, 아그립바 왕과 여기에 우리와 함께 있는 모든 분들이여, 당신들이 보는 이 사람은 유대인들의 온 무리가 더 이상 살려 두어서는 안 된다고 외치며 예루살렘에서 뿐만 아니라 여기에서도 내게 고발한 사람이니이다. 그러나 내가 알아보니 그가 죽을 짓을 한 적이 없고 또 그가 스스로 아우구스투스에게 청원하였으므로 내가 그를 보내기로 작정하였나이다. 그에 관하여 내 주께 쓸 어떤 확실한 사실이 없으므로 내가 심문을 해서 무엇인가 쓸 것을 얻으려고 당신들 앞에, 특히 오 아그립바 왕이여, 당신 앞에 그를 데려왔나니 죄수를 보내면서 더욱이 그에 대한 범죄도 밝히지 아니하는 것이 내게는 합당치 않은 것으로 보이나이다, 하였더라.](24~27).
유대인들은 바울을 ‘살려 두어서는 안 될 사람’이라고 외쳤고, 고발했습니다. 그러나 베스도가 알아보니 죽을 짓을 한 적이 없었습니다. 바울은 아우구스투스 황제에게 청원했습니다. 문제는 바울에 대해 쓸 것이 없었다는 점입니다. 죄수를 보내면서 죄목을 쓸 수 없는 그런 상황이었습니다. 바울의 무죄는 누구나 쉽게 알 수 있는 것입니다. 청원서에 죄목을 쓸 정도가 없을 정도라면 베스도는 이미 그의 무죄를 선포하고 석방했어야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대인들을 기쁘게 해 주려고 예루살렘 송환이나 들먹였으니 바울이 카이사르에게 청원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입니다.
2020-01-12 15:3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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