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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원광 [ E-mail ]
  3. 예언의 말씀과 전천년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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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예언의 말씀과 전천년주의
■ 본문: (딤후 3:16~17) “16) 모든 성경 기록은 [하나님]의 영감으로 주신 것으로 교리와 책망과 바로잡음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17) 이것은 [하나님]의 사람이 완전하게 되어 모든 선한 일에 철저히 갖추어지게 하려 함이라.”
1. 예언의 말씀
성경은 신학, 도덕, 역사, 과학 또는 그 어떤 다른 주제에 관해서 사람들이 작성한 체계적인 논문이 아닙니다. 성경은 하나님, 주 예수 그리스도, 왕국, 권위, 인간의 타락, 구원의 방법, 그리고 각 시대에 따른 하나님의 계획과 목적을 보여주려고 사람이라는 필자의 도구를 사용하셔서 하나님이 작성하신 예언과 계시의 책입니다. 성경이 다루고 있는 내용들은 다음과 같습니다.
1) 네 가지 인격 : 아버지 하나님, 아들 하나님, 성령 하나님 그리고 사탄
2) 세 가지 장소 : 하늘, 땅 그리고 지옥
3) 세 부류의 사람들 : 유대인, 이방인 그리고 하나님의 교회
성경기록은 여러 시대에 걸쳐 다양한 방법으로 조금씩, 조금씩 점점 더 많은 하나님의 계시가 인간에게 주어졌습니다. 이것을 점진적 계시라고도 합니다. 하나님의 거룩한 사람들이 성령님의 감동을 받아 약 B.C1490년경부터 A.D100년경에 걸쳐서 약 1600년간 말씀이 선포되고 기록되었습니다. 성경은 66권으로 이루어진 한 권의 책으로, 구약 39권과 신약 27권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성경을 기록한 사람들은 약 40여명으로 다윗, 솔로몬과 같은 왕이 있는가 하면, 정치가인 다니엘, 느헤미야, 제사장 에스라가 있었으며, 이집트의 지혜를 갖추었던 모세, 유대 율법에 정통한 바울, 목자인 아모스, 세무공무원 마태, 어부인 베드로, 야고보 그리고 요한, 그리고 의사인 누가가 있었으며, 이사야, 에스겔, 스가랴 같은 능력 있는 대언자들도 있었습니다.
성경은 비록 소아시아에서 기록되었다 하여도 결코 아시아인들에게만 해당되는 것이 아닙니다. 성경은 시내 광야, 아라비아 절벽, 팔레스타인 언덕과 도성, 성전들, 벧엘과 여리고의 선지자 학교, 페르시아의 수산궁, 바빌론의 세바 강변, 로마의 토굴, 외딴 밧모섬, 그리고 에게 바다 등지에서 기록되었습니다.
만약 어떤 의학책이 이와 유사하게 편집되었다고 가정해 보십시오. 예를 들어 대중요법, 동종요법(同種療法), 수치료법, 안마요법 등과 같은 다양한 치료 방법에 대해 40명의 내외과 의사들이 1600년간 걸쳐 내려오면서 66권의 비법을 저술해서 그것을 한데 묶어 한 권의 책으로 만든 후, 그 책의 처방에 따라 환자를 치료한다면 그것이 얼만큼 효과가 크겠으며, 그 치료 방법이 얼마나 일관성이 있겠습니까?
위에서 말한 바와 같이 성경은 고대 역사, 신화, 전설, 교리와 미신 등 여러 가지 뒤범벅 해 놓은 책이 아닙니다. 성경기록이 완성되기 전까지는 하나님의 계시와 교리에 있어서 점진적인 진전이 있었습니다. 아담보다 아브라함에게 더 많은 계시가 있었고, 아브라함보다 모세에게, 아스라엘 족장들보다 사사들(재판관들)에게, 사사들보다 선지자들에게, 선지자들보다 사도들에게 더 많은 것을 알려주셨습니다. 그래서 구약과 신약은 분리된 별개의 책이 아닙니다. 신약은 구약 속에 감추어져 있는 진리의 말씀이고, 구약(그림자)은 신약(원형) 속에서 드러납니다. 그래서 구약의 레위기는 신약의 히브리서가, 구약의 다니엘서는 신약의 요한계시록이, 그리고 구약의 유월절이나 이사야서 53장은 신약의 사복음서가 없이는 온전히 바르게 이해할 수 없습니다.
성경은 하나님께로부터 온 계시이지만, 그것은 초인간적이거나 천상의 언어로 기록되지 않았습니다. 만일 그런 식으로 기록되었다면, 우리는 그 계시를 이해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리고 어느 나랏말로 번역되든지 그 언어들을 사용해서도 말씀의 능력이 주는 영적 생명력을 잃지 않는다는 것을 볼 때, 성경기록의 초자연적인 능력은 부인할 수 없습니다.
성경의 표현 방식은 세 종류가 있습니다. 즉 비유적(Figurative)이고, 상징적(Symbolical)이며, 문자적(Literal)입니다.
“네 마음을 강퍅하게 하지 말라.”, “죽은 자들이 자기들의 죽은 자들을 장사지내게 하라.”는 말씀은 비유적이므로 전후 문맥을 통해 그 뜻을 분명히 파악할 수 있습니다.
상징적 표현으로는 또한 느부갓네살의 ‘신상’, 다니엘의 ‘네 짐승’ 혹은 ‘일곱 촛대’ 가운데 계신 그리스도에 관해 묘사 등은 성경의 동일한 장이나 그 외의 다른 장에서 그 의미를 추가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성경의 문자적 표현은 일반 문법과 수사법(효과적 미적 표현을 위해 문장과 언어를 꾸미는 방법)에 따라 해석되어야 합니다. 즉 성경 말씀을 은유적으로나 영적으로 풀이하는 대신, 신문이나 법전을 볼 때와 같이 문자 그대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그래야 어린아이가 읽으면서도 하나님이 주시고자하는 뜻을 그대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딤후 3:15).
그런데 성경을 은유적으로 영적으로 해석하게 되면 교리와 예언에 그릇된 결과를 가져오게 되고, 그런 원인으로 지금까지 수많은 교파들이 난립하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다룰 때 반드시 다음 세 가지는 피해야합니다.
1) 성경을 잘못 해석함(성경은 한 가지 해석으로 설명함)
2) 성경을 잘못 적용함(말씀의 수신 대상)
3) 성경의 위치를 바꿈(시기와 때, 예언된 순서 등)
사람들은 성경 말씀이 계시하시고자 하는 그대로를 받아들이려 하지 않는다는 것이 문제입니다. 그러한 주된 이유는 사람들의 전통, 환경, 편견, 혹은 성경을 구미에 맞는 교리에 갖다 붙여서 가르치고자 하는 욕구 때문입니다(영지주의의 모습).
그러므로 우리는 진리를 이해하기 쉽게 풀어서 설명하기 위해 ‘비유적인 방법’도 알아두어야 합니다. 예수님과 구약의 선지자들도 이 방법을 사용했습니다. 신약 성경에 이것은 진리를 전하는 유효한 방식이었습니다(마 13:10-17). 하나님의 신비로움을 사람들이 이해하기 쉽게 풀어주기 위한 방식이었습니다. ‘신비’란 한 동안 숨겨져 있어도 언젠가는 밝혀지기 마련입니다. 제가 여러분에게 편지를 보낸다고 할 때, 바로 봉투 안에 든 내용이 드러나 읽혀지기 전까지는 비밀이 됩니다. 봉투를 열어 내용을 읽으면 ‘비밀’란 밝혀지게 됩니다. 그러나 여러분이 이해할 수 없는 공학적 전문용어로 쓰여진 편지일 경우에는 그 용어를 알게 되어야 모든 것을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성경의 신비도 이와 같습니다. 성경을 기록하신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받으며 성경을 읽으면 모든 신비들은 점진적으로 자연히 풀릴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경을 읽을 때 성령님께서 가르쳐달라는 기도하는 마음으로 말씀의 의미를 파악해가며 천천히 읽는 것이 좋습니다.
그렇다면 다음과 같은 심각한 질문이 생길 수 있습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책인가? 아니면 인간의 책인가?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인가? 아니면 단순히 사람들이 글을 모아 놓은 것에 불과한 것인가?’
만일 성경이 하나님의 인도함이 없이 단지 사람들이 써 놓은 글을 모아 놓은 것에 불과하다면 믿을 만한 것이 될 수 없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이 책을 쓰셨다면 진리임이 분명하며 우리는 이 말씀에 의지할 수 있습니다.
성경은 그 특징으로 미루어 보건대 사람이 쓰지 않은 것만은 분명합니다. 또한 쓸 수 있었다고 해도 쓰지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성경에는 아브라함, 야곱, 모세, 다윗, 솔로몬과 같은 위대한 인물들의 모든 죄, 즉 어리석음, 배반, 교만, 간음, 비겁, 살인, 음욕 등을 가혹할 정도로 상세하게 기록하고 있으며, 이스라엘 백성들의 역사를 배은망덕하고, 우상 숭배와 불신과 반란으로 일관된 굴욕적인 모습으로 기술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성령의 인도하심이 없었더라면 유대인들은 자신들의 조상들이 범한 죄들을 그들의 역사책에 그렇게 상세하게 기록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성경이 기록되었을까? 성경이 스스로 그 해답을 주고 있습니다.
(딤후 3:16~17) “16) 모든 성경 기록은 [하나님]의 영감으로 주신 것으로 교리와 책망과 바로잡음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17) 이것은 [하나님]의 사람이 완전하게 되어 모든 선한 일에 철저히 갖추어지게 하려 함이라.”
성경 기록을 “영감(Inspiration)”으로 주셨다는 의미가 무엇일까요?
하나님께서는 성령을 통하여 그 분 자신이 택한 사람들에게 명하여 세상 사람들에게 알리고자 하는 하나님의 법, 교리, 역사적인 사실, 계시들, 메시지, 그리고 하나님의 뜻을 성경기록에 담아 두셨습니다. 성경기록에 하나님의 숨결이 들어있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흔히 어떤 미술작품을 보고 작가의 혼(생각과 뜻)이 담겨있다, 숨결이 느껴진다고 말하는 것과 비슷할 수 있습니다.
그렇게 하나님께서는 모든 성경 기록에 영감(The-op-neu-stos)이 주어졌는데, 즉 하나님의 생명의 호흡을 불어넣은 것입니다. 사람들이 성경을 읽음으로써 생명의 숨을 공급받아서 살아있는 혼으로 살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고, 그 말씀을 옛 구별된 사람들이 성령님을 통해 문자로 기록하는 방식으로 남게 하셨습니다. 따라서 성경은 살아 있는 하나님의 숨결이 있는 말씀이며, 이러한 사실은 성경의 많은 곳에서 나타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인격이시므로 친히 말씀도 하시고 또 쓰시기도 하십니다. 그 분은 친히 두 개의 증거판인 돌 판을 새기셨으며(출 31:18, 출 32:16), 벨사살 궁전 벽에 친히 글자를 쓰셨습니다.(단 5:5,24~28)
하나님께서는 시내 산에서 성막 및 성막 내부의 양식과 레위기에 적힌 모든 율법과 의식 절차를 모세에게 친히 말씀하셨습니다. 또한 그 분은 예수님께서 침례를 받으실 때(마 3:17)와 변화산상에서도(마 17:5) 말씀하셨으며, 한 번은 예수님과 많은 무리들이 모여 있었을 때도 그분이 말씀하셨습니다(요 12:27~30).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육신으로 오신 분이 예수님이셨기 때문입니다(딤전 3:16, 요 1:5~14). 마태복음과 요한복음은 총 49장에 1950절이 들어 있는데, 그 중 40%, 즉 1140절이 예수님의 말씀입니다(red letter로 표기한 성경도 있음). 예수님께서는 그 분을 보내신 아버지 하나님께서 그분의 말할 것과 이른 것을 친히 명령하시고 예수님은 말씀하셨습니다(요 12:49~50). 따라서 하나님께서 직접 말씀하시고 글로 쓰실 뿐 아니라, 다른 사람들에게 명령하여 대신 말씀하시고 글을 쓰게도 하실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성경의 모든 부분이 하나님의 영감을 받아 기록되었습니까?
네에, 그렇습니다. 창세한 연대기로부터 출애굽기에서 하나님이 친히 모세에게 하신 말씀, 그리고 그리스도를 통해서 하신 말씀 전체가 그렇습니다. 또한 성경 두루마리에 기록되어 있는 모든 문장, 단어, 일점, 일획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수님께서도 율법의 일점 일획도 모든 것이 이루어질 때까지 결코 없어지지 아니한다고(마 5:17~18) 말씀하셨을 때, 일점 일획이란 히브리어의 가장 작은 점과 가장 작은 획을 가리키며, 이것까지도 영감을 받아 기록되었기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을 완전히 이해하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도우심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는 것을 알려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성경에 나오는 사탄의 말과 악한 사람들과 영감을 받지 못한 사람들의 말들, 사람들의 족보, 인류의 타락에 관한 설명, 노아홍수, 그리고 그 밖의 역사적인 부분들은 어떻게 이해해야 합니까? 이것들도 성경의 기자들이나 역사를 기록하는 사람들이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아 성경을 읽는 독자에게 꼭 필요한 역사적인 사건들을 기록한 것입니다. 구약 성경을 읽으며 그 시대의 여러 전통과 신화들까지도 기록되어 있는 역사서로 읽는 사람이라면, 성령님은 구약 성경의 기자들이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아 각 시대에 하나님의 계획과 목적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는 필요한 모든 것들을 기록하게 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성경의 기자들은 어떻게 영감을 받았습니까?
성경 기자들은 단순히 일종의 ‘마력’이나 ‘무아지경’에 빠져서 마음에 떠오르는 대로 기록했습니까? 아니면 하나님께서 성령을 통하여 그들에게 사용해야 할 정확한 단어들을 지시하셨습니까? 생각은 말로 표현될 수 있고, 따라서 그 말은 말하는 사람이나 기록하는 사람의 생각을 정확히 표현해야 합니다. 그렇지 못할 경우는 생각도 불확실하게 전달됩니다. 그러므로 성경 기자는 단순히 받아쓰는 일만 옳게 하면 실수를 범하지 않습니다. 베드로후서 1:20절에 이 같은 말씀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벧후 1:20) “먼저(first) 이것을 알라. 성경 기록의 대언은 결코 어떤 사적인 해석에서 나지 아니하였나니”
성경을 믿는 신자라면 어느 누구도 자기 마음대로 성경을 해석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왜 그래야 합니까? 다음과 같은 이유 때문입니다.
(벧후 1:21) “대언(prophecy,예언)은 옛적에 사람의 뜻으로 말미암아 나오지 아니하였고 오직 [하나님]의 거룩한 사람들은 [성령님]께서 자기들을 움직이시는 대로 말하였느니라.”
위 말씀은 구약 시대의 대언자들 자신도 이해하지 못했던 많은 것들을 기록했습니다.
(벧전 1:10~11) “10) 이 혼의 구원에 관하여는 너희에게 임할 은혜에 대하여 대언한 대언자들이 부지런히 조사하고 탐구하되 11) 자기들 안에 계신 그리스도의 [영]께서 그리스도의 고난과 그 뒤에 있을 영광을 미리 증언해 주실 때에 그 영께서 무엇을 혹은 어느 때를 표적으로 보여 주셨는지 탐구하였느니라.”
그들은 그 당시 하나님의 말씀을 기록했을 뿐, 모든 말씀을 해석하지는 못했습니다. 대언자 중에는 거룩하지도 않은 발람(민 22:38, 23:26), 벧엘의 대언자(왕상13:7~10, 20:22,26), 사울왕(삼상10:10~12, 19:20~24), 가야바(요11:49~52)도 있음을 볼 때, 그들은 단지 하나님께서 자신의 말씀을 전하는 도구로만 쓰임 받은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구약 성경의 기자들은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부어 주신 말씀을 정확히 말하고 기록했습니다. 모세는 주께서 그에게 다음과 같이 일러 주셨다고 선포합니다.
(출 4:10~12) “10) ¶ 모세가 {주}께 아뢰되, 오 내 [주]여, 나는 말에 능하지 못하나이다. 지금까지도 그러하였고 주께서 주의 종에게 말씀하신 이후에도 그러하오니 나는 말이 느리고 혀가 둔하나이다, 하매 11) {주}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누가 사람의 입을 만들었느냐? 누가 말 못하는 자나 귀먹은 자나 보는 자나 눈먼 자를 만들었느냐? 나 {주}가 아니냐? 12) 그런즉 이제 가라. 내가 네 입과 함께하여 네가 할 말을 네게 가르치리라.”
대언자 예레미야는 자신이 하나님의 말씀들을 말함을 이렇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렘 1:6) “그때에 내가 이르되, 아, [주] {하나님}이여! 보소서, 나는 아이라 말을 할 수 없나이다, 하니라.”
(렘 1:9) “그때에 {주}께서 자신의 손을 내미사 내 입에 대시며 {주}께서 내게 이르시되, 보라, 내가 내 말들을 네 입에 두었노라.”
에스겔과 다니엘, 그 밖의 다른 대언자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주께서 말씀하시기를...”, “주께서 말씀하여 이르시되...”, “주께서 이렇게 말씀하시니라...” 등. 이와 같은 표현은 모세 오경에 560여회, 역사서와 예언서에 300여회, 선지서에 1200여회(말라기만 해도 24회나 됨)로 구약 전체로 볼 때 2000회가 훨씬 넘습니다. 이로써 성령님의 감동을 받은 사람들이 하나님께 받아 말한 것이라는 베드로의 말이 그대로 입증됩니다.
그러면 어떤 사람들은 이렇게 말할지도 모릅니다. ‘만일 이것이 사실이라면 성경 기자들의 문체가 서로 다른 점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요?’ 즉 이사야의 문체는 에스겔이나 다니엘과 다르고, 베드로서는 요한의 서신이나 바울의 서신과는 다르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이유는 쉽게 알 수 있고 설명될 수 있습니다. 우리가 법률적인 문서를 원할 경우 법률가를 찾고, 시적인 글을 쓰려면 시인을 택하듯이 하나님께서도 상징들로 말씀하실 때에는 에스겔이나 다니엘이나 요한을 택하였고 시적으로 표현하고자 할 때에는 다윗을 택하셨습니다. 그렇게 하나님은 사람들 각자의 성품과 재능이 다름을 아시고, 그의 성품과 재능을 성령님께서 움직이시는 대로 사용된 것입니다.
그렇다면 신약의 기자들이 가끔 구약을 인용할 경우, 문장을 그대로 인용하지 않고 바꾸어 인용한 것은 어떻게 설명할 수 있습니까? 예를 들어 아모스 9:11절과 사도행전 15:16절 말씀을 읽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암 9:11) “¶ 그 날에 내가 다윗의 쓰러진 장막을 일으켜 세우고 그것의 무너진 곳을 막으며 내가 그의 허물어진 것들을 일으켜 세우고 내가 그것을 옛날과 같이 건축하리니”
하지만 사도 야고보가 예루살렘의 초대 교회 회의에서 위의 말씀을 인용하면서 다음과 같이 바꾸어 말했습니다.
(행 15:16) “이 일 뒤에 내가 돌아와 다윗의 쓰러진 장막을 다시 건축하고 내가 그것의 허물어진 것을 다시 건축하며 내가 그것을 세우리니”
왜 야고보는 아모스의 말씀이 바꾸었습니까? 이유는 두 성경 구절을 쓴 사람은 아모스나 야고보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성경의 저자는 성령님입니다. 책의 저자는 자신이 뜻하는 바를 모순 없이 보다 명확하게 나타낼 수만 있다면, 1장에 사용한 표현법을 10장에서 다르게 사용할 수 있는 권리가 있습니다.
이와 같은 사실은 베드로전서 1:11절 말씀이 뒷받침 해줍니다. 이 말씀에서 베드로는 “그리스도의 영”이 대언자들을 통하여 고난과 다가올 영광을 미리 증거하셨음을 우리에게 말해 주고 있습니다.  즉 “그리스도의 영”이 대언자들의 마음을 감동시키고 그들로 이사야 53:1~12절의 말씀과 같이 그분 자신이 당할 십자가의 “고난”을 예언하도록 하셨습니다. 
그런데 오늘날은 “성경의 영감”과 세상의 시인, 설교가, 웅변가 또는 작가들의 영감을 같은 것으로 이해하려고 합니다. 이를 위해서는 “영감(Inspiration)”과 “계시(Revelation)”와 “조명(Illumination)”의 의미를 구분할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가 앞에서 보았듯이 “성경의 영감”은 시인, 작가 그리고 대중 연설가의 영감과는 완전히 다르고 독특한 차이가 있습니다. “영감”이란 정확한 하나님의 말씀이 성령님에 의해 성경 기자나 대언자에게 전달되는 것을 말합니다.
“성경의 계시(Bible Revelation)”란 인간의 지혜로는 도저히 알아낼 수 없는 것들을 인간에게 보여주시는 것입니다. 즉 ‘각 시대에 나타난 하나님의 계획과 목적’으로 하나님의 섭리적인 뜻 가운데 감춰져 있는 것들을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선포하신 것입니다. “성경의 계시”는 요한계시록에서 끝났습니다(계 22:18~19). 그 이후로는 하나님의 새로운 계시가 전혀 나타나지 않습니다. 오늘날 사람들이 어떤 새로운 계시를 받았다고 주장한다면서 성경과 다른 것을 전파한다면 그들은 종교적 사기꾼이라고 봐야 합니다.
“영적 조명(Spiritual Illumination)”은 성경의 영감이나 계시와는 다릅니다. 오늘날 성령님의 역사는 믿는 자 안에서 성경을 이해할 수 있는 영의 눈이 뜨이도록 역사하시는 것입니다(요 16:12, 요 16:15). 자연인은 성령의 일을 받아들일 수도 없고 이해할 수도 없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일들은 영적으로만 분별되기 때문입니다(고전 2:11~14). 그러므로 오늘날 성령께서 하시는 일은 인간들에게 새로운 계시를 전하거나 그들에게 영감을 주셔서 옛 대언(예언)자들이나 사도들처럼 말씀을 기록하거나 선포하도록 하는 것이 아니라, 성경을 믿는 사람들의 영적 지각을 열어 주셔서 성경을 이해하며 그들이 성경을 깊이 상고할 때 그들의 마음을 뜨겁게 하고, 또한 그분의 거룩한 말씀에 따라 각 시대에 따른 하나님의 계획과 목적을 그들에게 조명하시는 것입니다.
2. 전천년주의 (PRE-MILLENIALISM)

그리스도의 재림 시기는 “성경의 진리”를 푸는 열쇠입니다. 대부분의 기독교인들은 주님의 재림을 믿지만, 그 시기에 관해서는 의견의 차이가 있습니다. 그들은 크게 두 부류로 나누는데요. 하나는 ‘전천년주의자’들과 다른 하나는 ‘후천년주의자’들로 나누어집니다. 예수님의 지상 재림이 없다고 말하는 ‘무천년주의자’들도 있습니다.
예수님이 땅을 통치하시는 1,000년이란 기간 이전에 재림하시는지 아니면 천년기간 이후에 오시는지 성경을 확인해 보겠습니다. 요한계시록 19:11~20:6절까지입니다.
(계 19:11~21) “11) 또 내가 하늘이 열린 것을 보니, 보라, 흰 말이라. 그 위에 타신 분은 [신실하신 이], [참되신 이]라 불리더라. 그분은 의로 심판하며 전쟁을 하시느니라. 12) 그분의 눈은 불꽃 같고 그분의 머리 위에는 많은 관이 있었으며 또 그분께 기록된 한 이름이 있었으나 그분 밖에는 아무도 그것을 알지 못하더라. 13) 또 그분께서 피에 담근 옷을 입으셨는데 그분의 이름은 [하나님]의 말씀이라 불리느니라. 14) 하늘에 있던 군대들이 희고 깨끗한 고운 아마포 옷을 입고 흰 말을 타고 그분을 따르더라. 15) 그분의 입에서 예리한 검이 나오는데 그분께서 그 검으로 민족들을 치시고 또 철장으로 그들을 다스리시리라. 또 그분께서는 [전능자] [하나님]의 맹렬한 진노의 포도즙 틀을 밟으시며 16) 그분께는 그분의 옷과 넓적다리에 {왕들의 왕}, {주들의 주}라고 기록된 한 이름이 있느니라. 17) 또 내가 보니 한 천사가 해 안에 서서 하늘 한가운데로 날아가는 모든 날짐승을 향하여 큰 음성으로 외쳐 이르되, 너희는 와서 위대하신 [하나님]의 만찬에 함께 모여 18) 왕들의 살과 대장들의 살과 용사들의 살과 말들의 살과 말 탄 자들의 살과 자유로운 자나 매인 자나 작은 자나 큰 자를 막론하고 모든 사람의 살을 먹으라, 하더라. 19) 또 내가 보매 그 짐승과 땅의 왕들과 그들의 군대들이 함께 모여 말 타신 분과 그분의 군대를 대적하여 전쟁을 하더라. 20) 짐승이 잡히고 또 그 앞에서 기적들을 행하던 거짓 대언자도 그와 함께 잡혔는데 그는 짐승의 표를 받은 자들과 그의 형상에게 경배하던 자들을 기적들로 속이던 자더라. 이 둘이 산 채로 유황으로 불타는 불 호수에 던져지고 21) 그 남은 자들은 말 타신 분의 칼 곧 그분의 입에서 나온 칼로 죽임을 당하니 모든 날짐승이 그들의 살로 배를 채우더라.”
계속해서
(계 20:1~6) “1) 또 내가 보니 한 천사가 바닥없는 구덩이의 열쇠와 큰 사슬을 손에 들고 하늘로부터 내려와 2) 마귀요 사탄인 그 용 곧 저 옛 뱀을 붙잡으니라. 그가 그를 붙잡아 천 년 동안 결박하여 3) 바닥없는 구덩이에 던져 넣어 가두고 그 위에 봉인을 하여 천 년이 찰 때까지는 그가 더 이상 민족들을 속이지 못하게 하니라. 그 뒤에는 그가 반드시 잠시 동안 풀려나리라. 4) 또 내가 보니 왕좌들과 그것들 위에 앉은 자들이 있는데 그들에게 심판이 맡겨졌더라. 또 내가 보니 예수님의 증언과 [하나님]의 말씀으로 인하여 목 베인 자들의 혼들이 있는데 그들은 짐승과 그의 형상에게 경배하지도 아니하고 자기들의 이마 위에나 손 안에 짐승의 표를 받지도 아니한 자들이더라. 그들이 살아서 그리스도와 함께 천 년 동안 통치하되 5) 그 나머지 죽은 자들은 그 천 년이 끝날 때까지 다시 살지 못하였더라. 이것은 첫째 부활이니라. 6) 첫째 부활에 참여하는 자는 복이 있고 거룩하도다. 둘째 사망이 그들을 다스릴 권능을 갖지 못하고 도리어 그들이 [하나님]과 그리스도의 제사장이 되어 천 년 동안 그분과 함께 통치하리로다.”
예수님의 재림이 천 년 이전에 있나요? 아니면 후에 있나요? 아니면 천 년 자체가 없나요?
전천년주의자들은 그리스도께서 “천년 왕국”이전에 재림하실 것을 믿지만, 후천년주의자들은 천년 왕국 이후까지는 주님께서 재림하시지 않는다고 믿습니다. “천 년”은 계시록 20:1~7절에 기록되어 있는 1,000년의 기간을 말합니다. 전천년주의자들 모두는 아니지만, 일반적으로 요한계시록 20장에 기록되어 있는 천 년을 문자 그대로 믿는 신앙에 근거를 두는 것입니다. 사실 그리스도께서 천년 왕국 이전에 재림하실 것인지 아니면 이후에 재림하실 것인지에 대한 문제는 요한계시록 훨씬 이전에 기록되었습니다. 구약 시대의 대언자들은 명료한 말과 강력한 어조로 왕이신 메시아의 통치 아래서 이 땅 위에서의 의와 화평의 시대가 올 것을 예언하였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이 약속된 메시아가 통치하시는 “지상 왕국”에 대해 그들이 믿었던 것은 잘못된 믿음이 아니었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께서는 결코 그들이 그러한 믿음을 갖는 것에 대해 책망하시지 않으셨다는 사실에서 명백히 드러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후 승천하시기 전에 제자들이 예수님께 “[주]여, 주께서 이때에 그 왕국을 이스라엘에게 다시 회복시켜 주고자 하시나이까?”(행 1:6)라고 물었을 때 주님께서는 그들에게 “너희는 지상 왕국에 대해 잘못된 생각을 갖고 있다며, 내가 와서 세우고자 하는 왕국, 즉 대언자자들이 예언했던 왕국은 영적인 왕국이다.”라고 말씀하시지 않으시고 오히려 예수님께서는 단지 그들에게 “그 때나 시기는 ... 너희가 알 바 아니요”(행 1:7)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메시아의 재림에 관한 신구약 성경 전체의 가르침은 “천년 왕국 이전”에 오신다는 것입니다. 전천년주의자들이 계시록 20:1~7절에 나오는 “천 년”에  관한 구절을 인용하는데 있어서 이 구절을 사용할 수 있는 유일한 이유는  이 구절이 구약성경의 “의와 화평의 시대”를 나타내기 때문입니다.
또한 ‘사도 시대의 교회’(초대 교회)는 천년 왕국 이전에 예수님께서 재림하실 것(전 천년주의)을 믿었으며, 그 후에도 200년이 넘도록 어떠한 다른 견해도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교부’들의 저술들이 풍부하게 그 사실을 증명해 줍니다.
그러나 A.D 250년 경 교부들의 중의 하나였던 오리겐(Origen)이 성경의 말씀은 단지 성경 진리의 “알맹이”를 숨겨 놓은 “껍질”에 불과하다는 착상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성경을 “은유적(allegorize)”이고 “영적”으로 해석하기 시작했으며, 그렇게 함으로써 성경을 “은유적”이고 “영적”으로 해석하는 자들의 학파를 창설하였습니다. 그 때로부터 교회와 성경은 수많은 곤욕을 겪게 되었습니다. 그리하여 성경을 말씀하신 그대로 믿지 않는 배교한 교회들은 주님께서 재림하셔서 “지상 왕국”을 세우실 것이라는 것을 믿지 않게 되었습니다.
A.D 323년에 로마의 황제가 된 콘스탄틴은 기독교에 호의적이었으며, 그는 교회와 국가를 통합하였습니다(카이사르&하나님의 것 분리, 마 21:21). 그러다보니 성경 해석상에 새로운 난점이 발생하게 되었습니다. 그 당시의 믿음으로는 로마가 적그리스도가 앉는 자리가 된다는 것인데 그렇다면 “콘스탄틴이 적그리스도가 아닌가?”하는 의문이 제기되었고, 그 소문은 은밀하게 퍼져 나갔습니다. 그 같은 소문은 로마 황제에게는 불쾌한 것이었으므로 자기들의 주장을 뒷받침해줄 안전한 해석이 고안되고 채택되었습니다. 즉 “적그리스도는 ‘이교도 로마’였으며, ‘천년 왕국’은 콘스탄틴이 즉위했을 때 시작되었다”는 것이었습니다. 이러한 해석은 종교보다 정치세력이 우세했던 콘스탄틴 황제가 교회에 수여한 특혜와 특권에 의해 채택되어졌으며, 심지어는 구약에 있는 천년 왕국의 축복들이 유대인에게서 자신들의 교회로 옮겨졌다는 주장까지 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로마 카톨릭 교회’가 적그리스도라는 주장은 가라앉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계시록을 정경에서 빼버리고 싶었지만, 삭제하는 것이 불가능함을 알게 되자 마침내 성경을 읽지 못하게 하였습니다. 그리하여 성경은 봉인된 책이 되었고, 암흑의 밤이 모든 신자들을 휩쓸었습니다. 그 결과가 곧 “암흑시대”인 것입니다. 그러나 그 암담한 가운데서도 하나님의 진리에 대한 증인들이 없지 않았습니다. 폴리시안즈(Paulicians), 알비게네스파(Albigeneses), 왈덴파(Waldenses) 등이 천년 왕국 이전 주님의 재림을 증거 하였습니다.
그렇게 암흑시대에도 작은 빛들은 있었습니다. 때가 차자 종교개혁의 선두 주자인 죤 위클리프가 일어났으며, 곧 그 뒤를 이어 마틴 루터가 나타나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만이 신앙의 척도이기 때문에, 성경으로 돌아가자”를 외치며 어두운 암흑시대에 빛을 밝히려 하였으며, 주님께서 천년 왕국 이전에 재림하신다(전천년주의)는 교리가 재생되었으나, 종교 개혁자들 또한 널리 나아가지 못했습니다. 이 기간은 종교적 분쟁과 새로운 기독교 종파들(장로교, 감리교, 성공회, 루터교 등)이 형성된 기간이었습니다. 그 결과 “영적인 것”에 대한 물결이 쇠퇴해가고 ‘이성주의’가 성장하면서 이 세상은 심판을 향해 급히 치닫고 있다는 사실을 믿으려 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리스도의 천년 왕국 통치에 대한 새로운 해석이 요구되었습니다. 영국 교회의 목사인 다니엘 휘트비(Daniel Whitby,1638-1726)가 이러한 이성주의를 창안하였는데, 그는 구약 성경에서 이스라엘의 회복과 다윗의 보좌가 다시 설립된다는 약속들을 읽으면서 “이 약속들은 영적인 것으로서 교회에 적용되는 것이다.”라고 주장하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견해를 그는 “새 가설”이라 불렀습니다.
그의 주장은 이스라엘과 시온산은 교회를 상징하며, 이방인이 유대인에게 굴복하게 된다는 약속은 이방인이 개종하여 교회로 된다는 단순한 예언으로 보았습니다. 또 사자와 양이 함께 누워 있다는 것은 옛 성품과 새 성품의 조화를 상징하며, 예루살렘에 외관적이고, 눈에 보이는 왕국이 설립되고, 그리스도와 성도들이 통치한다는 것은 지상에서 인간과 영적인 존재들이 다함께 혼합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므로 저속하고, 육신적이며, 이성에 반대 된다고 주장했습니다.
그의 “새 가설”은 복음이 전파됨에 따라 마호메트교가 전복되고, 유대인들이 회심하며, 적그리스도인 교황과 함께 로마 카톨릭 교회도 멸망하게 될 것이고, ‘천년 왕국’으로 알려진  1000년간의 의와 화평의 시대가 뒤따를 것이며, 그 기간이 끝날 무렵에 잠시 동안의 배교가 있을 것이고,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하심으로 끝나게 된다고 합니다. 그리고 나서는 죽은 자들의 일반적인 부활, 그리고 일반적인 심판이 뒤따르며, 땅은 불로서 멸망하게 되는데 그 후 영원한 시대가 시작될 것이라고 주장했습니다.
그 때는 사회적 분위기가 “새 가설”에 대해 호응할 수 있는 시대였습니다. 그 당시의 공개적인 부정으로부터 반작용이 일어났습니다. 영국 전역에서는 기독교의 부흥이 일어나고 있었습니다. 휫필드(Whitefield)와 웨슬리(Wesley)의 영향 아래 “대부흥”이 일어났으며, 그것은 마치 휫필드가 주장했듯이 천년 왕국이 곧 도래할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도 역사의 사건들을 오해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지금 천년 왕국 안에 거하고 있지 않다는 것은 분명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이론”은 어느 곳에서나 호의적으로 받아들여졌고, 아주 빠른 속도로 퍼져 나갔으며 개신교회의 확립된 교리가 되었습니다. 그것은 오늘날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에 대한 “후천년주의”의 관점으로 알려진 것으로 교회의 전통적 신앙으로 간주되었습니다. 간단히 말해 오늘날에도 개신교회들에서 지지를 받고 있는 “천년왕국 이후 재림설(후천년설)”이 겨우 2~300년의 역사를 가지고 있는 반면 “천년왕국 이전 재림설(전천년설)”의 역사는 이사야와 다니엘 시대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우리는 옛 길을 따르는 사람들입니다(렘 6:16, 18:15).
유감스러운 것은 이 “거짓 교리”인 후천년설은 구약 성경에서 각 장들의 머리 제목으로써 성경들을 통해 가르쳐지고 있습니다. 한 예로 이사야 43,44장의 제목에 “주님께서 그 분의 약속으로 교회를 위로하신다.”라고 되어 있지만, 그러나 그 장들은 결코 교회에게 하신 말씀이 아닙니다. 우리가 그 장들을 읽을 경우 그것은 야곱과 이스라엘에게 하신 말씀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천년왕국 이전 재림의 해석을 달리하는 “과거학파(Preterist)”, “역사학파(Historical)”, “미래학파(Futurist)”가 있습니다. 이들의 주장은 성경을 자의적으로 이해하기 때문에 서로 틀립니다. 가르쳐지는 교리가 틀리면 신앙의 모습도 틀립니다.
앞에서도 말씀드린 바와 같이 그리스도께서 천년 왕국 이전에 재림하신다는 예언이 성경의 신비를 푸는 열쇠입니다. 성경에 기록된 모든 예언의 최종 목적지에 도달하는 종착지의 바로 전역이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입니다. 지금 이 세상은 어둡지만 “확실한 예언”이 우리를 비춰 주고 있습니다(벧후 1:19).
성경에 기록된 예언은 일기예보처럼 아무렇게나 추측하시는 것이 아니라, 예언은 미리 기록된 역사입니다. 이런 영적인 시선으로 예언을 생각하고 그리스도께서 성경의 진리대로 천년 왕국 이전에 재림하신다는 말씀을 깨닫게 되면, 성경은 우리에게 새로운 책이 될 것입니다. 교리와 예언적인 진리가 정돈되어 더 이상의 혼동이 없게 되면 우리의 신앙의 뿌리는 든든히 자라게 될 것입니다. (끝).
2020-01-19 15:3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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