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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가 넘지 못하는 모래성

말씀 : 렘 5:22. 2020년 2월 23일 일요일 오전 11시

이 세상의 통치자는 마귀요 사탄입니다(요12:31,14:30,16:11).
세상이라 함은 사람들을 말할 때도 있지만 하늘과, 땅과, 바다를 다 포함합니다. 세상의 통치자 마귀는 하늘에서는 하나님을 대적하였고 땅에서는 하나님의 창조물인 이브와 아담을 속였습니다. 그리고 바다에서는 거친 파도와 폭풍으로 배들을 뒤엎고 조각내고 침몰시켜 하나님의 사람들을 죽이려합니다. 모든 파도와 풍랑이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성경의 여러 곳, 바다에서 마귀의 장난을 보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이 땅을 심판하시는 큰 환란 동안에는 마귀가 총 출동합니다.
먼저 큰 붉은 용이 하늘에서 전쟁을 일으키나 미가엘과 그의 천사들에 의해 땅으로 내 쫓깁니다. (계 12:7-9) “하늘에 전쟁이 있더라. 미가엘과 그의 천사들이 용과 싸우매 용과 그의 천사들도 싸우나 이기지 못하고 또 하늘에서 자기들의 처소를 더 이상 찾지 못하더라. 그 큰 용 즉 저 옛 뱀 곧 마귀라고도 하고 사탄이라고도 하며 온 세상을 속이는 자가 내쫓기더라. 그가 땅으로 내쫓기니 그의 천사들도 그와 함께 내쫓기니라.” 여기서 말하는 옛 뱀은 에덴동산에 나타난 간교한 뱀(창3:1)을 말합니다.
큰 환란 때에는 바다에서 일곱 머리 열 뿔 짐승이 올라옵니다. (계 13:1) “내가 바다의 모래 위에 서서 보니 바다에서 일곱 머리와 열 뿔을 가진 한 짐승이 일어나더라. 그의 뿔들 위에는 열 개의 관이 있고 그의 머리들 위에는 신성모독하는 이름이 있더라.”
또 다른 짐승이 땅에서도 올라옵니다.
(계 13:11) “내가 보니 또 다른 짐승이 땅에서 올라오는데 그는 어린양같이 두 뿔이 있고 용처럼 말을 하더라.” 이처럼 하늘에서 쫓겨난(사14:12-19) 사탄은 에덴동산으로 가 첫 사람 이브와 아담을 속이고 세상 통치권을 빼앗아 갔습니다. 사탄은 하늘에서나 땅에서나 바다에서나 공격합니다. 광야에서 예수님을 시험하던 사탄이 세상의 “모든 권능과 그 왕국들의 영광”이 자기에게 넘겨졌다고 말합니다.
(눅 4:6) “마귀가 그분께 이르되, 이 모든 권능과 그 왕국들의 영광을 내가 네게 주리라. 그것이 내게 넘겨졌으므로 누구든지 내가 원하는 자에게 그것을 주리라.” 마귀의 속성은 처음부터 살인과 거짓말쟁입니다(요8:44). 먼저 이브를 속이고 아담을 속여 아담의 통치권을 빼앗았습니다. 우리는 영적인 진리를 깊이 알고 속이는 자 마귀에게 속지 않도록 항상 깨어 있어야 합니다.
이제 바다에서 마귀의 공격을 살펴보겠습니다. 여러분들이 매우 잘 아는 대로 예수님과 그의 제자들이 복음을 전하러 바다 건너편으로 향하고 있었습니다. 언제나 그렇듯이 마귀는 하나님의 일을 방해하며 대적합니다. 예수님과 제자들이 함께 배를 타고 바다를 건너갈 때 마귀는 큰 폭풍과 거센 파도로 배에 탄 일행들을 죽이려합니다.
(마 8:23-24) “그분께서 배에 오르시매 그분의 제자들이 그분을 따르더라. 보라, 바다에 큰 폭풍이 일어나 배가 파도에 덮이게 되었으되 그분께서는 주무시더라.” 하늘을 지으시고 땅을 지으신 창조주께서는 마귀가 주님을 이기지 못할 줄을 아시므로 배 안에서 주무시지만 제자들은 큰 폭풍과 파도로 인하여 죽을까 겁을 먹었습니다. 그들은 배에서 주무시는 주님을 다급하게 깨웁니다.
(마 8:25) “그분의 제자들이 그분께 나아와 그분을 깨우며 이르되, [주]여, 우리를 구원하소서. 우리가 죽나이다, 하매” 제자들이 만약 주무시는 그분이 창조주이심을 알고 믿었다면 그분과 함께 있는 한 죽지 않으리라 생각했겠지만 그분이 권능은 있으나 자기들은 죽을지 모른다고 생각했기에 그분께 도움을 청하고 있습니다. 그 때 주님은 무어라 말씀하십니까?
(마 8:26-27) “그분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오 믿음이 적은 자들아, 너희가 어찌하여 두려워하느냐? 하시고 곧 일어나사 바람과 바다를 꾸짖으시니 매우 고요하게 되거늘 그 사람들이 놀라며 이르되, 이분이 어떤 분이시기에 심지어 바람과 바다도 그분께 순종하는가! 하더라.” 창조물들은 창조주에게 순종해야합니다. 마귀가 파도와 태풍을 동원하여 그들을 죽이려하나 마귀는 주님을 이기지 못합니다. 왜 거센 파도와 큰 폭풍을 마귀의 장난이라고 하는가? 그 이유는 성경에 그렇게 기록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욥기서는 경계를 넘으려는 파도를 교만하다고 말합니다.
(욥 38:8) “혹은 바다가 태에서 나오는 것 같이 터져 나왔을 때에 누가 문들로 그것을 막았느냐?” (욥 38:11) “이르기를, 네가 여기까지만 오고 더 멀리는 가지 못하리니 너의 교만한 파도가 여기서 그칠지니라, 하였느냐?”
계시록에서는 큰 음녀가 많은 물들 위에 앉아있다고 했습니다(계17:1). 그러나
아무리 “큰 폭풍과 거센 파도”도 하나님께서 정하신 경계를 넘어서는 안 됩니다. 파도가 경계를 넘는 것은 교만한 것이며 교만은 전적으로 마귀의 속성입니다. 오늘 우리는 주께서 바닷가에 모래를 배치해 두신 깊은 신비를 알게 됩니다. (렘 5:22) 『{주}가 말하노라. 너희가 나를 두려워하지 아니하느냐? 너희가 내 앞에서 떨지 아니하겠느냐? 내가 영원한 법령으로 모래를 배치하여 바다의 경계로 삼아 바다가 그것을 넘지 못하게 하였으므로 바다의 물결이 일어도 그것을 이기지 못하고 큰소리를 질러도 그것을 넘지 못하느니라.』 하셨습니다.
저는 이 말씀에서 창조주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는 창조물들을 보고 다시 한 번 놀라며 많은 것들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어디를 가든지 바닷가에는 모래사장이 있습니다. 여러분들도 경험했겠지만 바닷가 모래사장에서 파도가 밀려 올 때 파도를 피해 뒷걸음질 치면 달려오던 파도는 하나님께서 정하신 모래의 경계를 넘지 못하고 모래 속으로 사라지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사람들이 파도로부터 배들을 지키기 위하여 바다에 담을 쌓고 방파제를 만들어 놓으면 파도는 그 방파제를 넘어 달려듭니다. 그러나 주께서 바다의 경계로 두신 모래를 파도가 넘지 못하는 것을 목격하게 될 것입니다. 물론 하나님께서 진노하시면 죄인들을 징계하시기 위하여 파도로 방파제를 넘게 하시고 모래 경계를 넘게 하시는 일도 있지만 창조물은 하나님께서 정하신 경계를 넘지 못합니다. 하나님께서 세우신 경계와 질서는 절대적입니다.
“내가 영원한 법령으로 모래를 배치하여 바다의 경계로 삼아 바다가 그것을 넘지 못하게 하였으므로 바다의 물결이 일어도 그것을 이기지 못하고 큰소리를 질러도 그것을 넘지 못하느니라.”(렘 5:22하)이 얼마나 놀라운 말씀입니까? 많은 사람들이 해변 모래에서 휴가를 보내고 바다를 즐기지만 그 모래를 배치하여 바다의 경계로 두신 하나님의 깊은 뜻과 은혜를 생각하여 하나님께 감사하고 영광을 돌리는 자들은 별로 없을 것입니다.
성경에는 거친 파도가 마귀의 역사란 구체적인 내용은 없지만 사도 바울이 로마에 복음을 전하러 가고자 할 때 폭풍이 배를 깨뜨려 그를 죽이려했습니다.
(행 27:18-20) “폭풍으로 우리가 심히 요동하게 되므로 다음 날 그들이 배를 가볍게 하고 사흘째 되는 날에는 우리가 배의 밧줄 감는 기구를 우리 손으로 버리니라. 여러 날 동안 해도별도 보이지 아니하고 작지 않은 폭풍이 우리를 덮치매 우리가 구원받으리라는 모든 희망이 그때에 사라졌더라.”
물론 마귀의 어떤 훼방도 주님을 이기지는 못합니다. 그렇지만 마귀는 언제나 하나님을 대적하고 하나님의 사람들이 하고자 하는 일들을 방해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언제든지 우리를 사랑하시고 보호하시는 하나님을 신뢰해야합니다. 더욱이 그분의 영광을 위한 일이라든지 그분의 명령을 따를 때 일어나는 어려운 일들은 믿음이 약해 질 때에 두려움이 되고 위협이 될 것입니다.
(행 27:22-25) “이제 내가 너희를 권하노니 기운을 내라. 배만 잃을 뿐 너희 가운데 한 사람도 생명을 잃지 아니하리라. 나를 소유하신 [하나님] 곧 내가 섬기는 분의 천사가 이 밤에 내 곁에 서서 이르되, 바울아, 두려워하지 말라. 네가 반드시 카이사르 앞에 가야 하리라. 보라, [하나님]께서 너와 함께 항해하는 자들을 다 네게 주셨느니라, 하였으니 그러므로 선생들아, 기운을 내라. 내가 [하나님]을 믿노니 내게 말씀하신 그대로 되리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귀는 끝까지 바울을 죽이고자했습니다.
(행 27:41) 『두 바다가 만나는 곳으로 들어가매 배가 암초에 얹혀서 앞부분은 단단히 박혀서 움직일 수 없게 되었고 뒷부분은 사나운 파도에 깨어졌더라.』 바울 일행은 14일 동안이나 먹지도 못하면서 파도와 싸웠습니다.
저는 오늘 주께서 정하신 경계를 말씀드리려고 합니다.
하나님께서 땅에게 “가축과 기는 것과 땅의 짐승을 그것의 종류대로 내라”(창1:25) 하시니 그대로 되었습니다. 동물들은 하나님의 형상이나 모양으로 만들지 않으셨습니다. 그것이 사람과 동물의 차별이고 경계입니다. 그런데 타락한 세상은 동물들에게도 인격을 부여하고 동물을 사람과 동등하게 섬기는 일들로 하나님께서 정하신 경계를 허물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동물들을 사람들에게 채소같이 먹을 것으로 주셨지 그것들을 섬기라고 주시지 않았습니다. (창 9:2-3) “땅의 모든 짐승과 공중의 모든 날짐승과 땅 위에서 움직이는 모든 것과 바다의 모든 물고기가 너희를 두려워하고 너희를 무서워하리니 내가 그것들을 너희 손에 넘겨주었노라. 살아서 움직이는 모든 것은 너희에게 먹을 것이 될 것이요, 푸른 채소와 같이 내가 모든 것을 너희에게 주었노라.”
이것이 사람과 동물들 사이에 하나님께서 정하신 경계입니다. 애완동물에게 사람대접을 한다든가 개를 가족으로 여기고 스스로 개의 아빠나 엄마, 개의 형이나 누나가 되는 것은 경계를 정하신 하나님께 반역하는 것입니다. 왜 자청하여 “개자식”이 되고자합니까?
사람의 침실에 짐승과 함께 눕는 것은 하나님께서 정하신 경계를 허무는 대역 죄악입니다. 이를 부인하는 사람들은 저에게 “성적인 문제 성경 구절”을 잘못 인용한다고 말할지 모르나 주님은 분명히 말씀하십니다. (출22:19) “누구든지 짐승과 함께 눕는 자는 반드시 죽일지니라.” 하셨습니다. 사람은 처음 의도와 전혀 다른 결과를 초래하는 일은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습니다.
진리의 말씀은 내가 원하는 곳에만 적용하는 것이 아닙니다.
(레18:23-24) “너는 어떤 짐승과 함께 누워 그 일로 네 자신을 더럽히지 말며 어떤 여자도 짐승 앞에 서서 그것을 향해 눕지 말라. 그것은 혼돈이니라. 너희는 이것들 중의 어느 하나로 너희 자신을 더럽히지 말라. 내가 너희 앞에서 쫓아내는 이 모든 민족들이 이 모든 것들로 더럽게 되었고” 하셨습니다.
사람들이 자기 정체성을 잃고 스스로 자신을 짐승만도 못하게 만들었습니다. 슬프게도 한 가정의 남자들이 강아지 보다 대접을 받지 못하고 짐승들로 인하여 가정이 깨어지는 세상이 되었습니다. 산천어 축제를 동물학대로 몰아 붙여 분쟁을 일으키는 무리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닭고기도 돼지고기도 먹지 말아야 하고 농작물로 키운 채소도, 과수원의 과일도, 들에 난 각종 풀도 생명이 있으므로 먹지 말아야합니다.
하나님의 모양과 형상을 따라 지음 받은 사람을, 사람들에게 먹을 것으로 주신 동물들과 동일하게 여기거나 대우하는 것은 창조주를 대적하고 하나님의 신성을 모독하는 것입니다. 사람과 동물 사이에도 경계가 있고 질서가 있지만 동물들 사이에도 엄연한 경계가 있습니다. 그 어떤 것도 하나님께서 세우신 경계를 절대로 넘을 수 없습니다. 섞일 수도 없습니다. 이는 창조주 하나님의 명령입니다.
(창 1:24-25) “[하나님]께서 이르시되, 땅은 살아 있는 창조물을 그것의 종류대로 내되 가축과 기는 것과 땅의 짐승을 그것의 종류대로 내라, 하시니 그대로 되니라. [하나님]께서 땅의 짐승을 그것의 종류대로, 가축을 그것들의 종류대로, 땅에서 기는 모든 것을 그것의 종류대로 만드시니라.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좋았더라.”
“하나님께서 땅의 짐승을 그것의 종류대로, 가축을 그것들의 종류대로, 땅에서 기는 모든 것을 그것의 종류대로 만드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좋았더라.” 하셨습니다. 이처럼 모든 창조물 사이엔 하나님께서 두신 종류의 경계가 있습니다. 그것이 서로의 경계를 넘어 섞일 수도 없고 섞여서도 안 됩니다.
돼지는 창조된 이후로 이금까지 돼지만 낳습니다. 개는 개만 낳고 소는 소만 낳습니다. 원숭이는 원숭이만 낳습니다. 원숭이가 사람이 될 수 없고 영원히 원숭이로 살다가 원숭이로 죽습니다. 지구상의 원숭이들은 200종이 넘고 에버랜드에 있는 원숭이 종류만 해도 황금 원숭이를 비롯해서 여우 원숭이, 다람쥐원숭이, 알락꼬리원숭이, 일본 원숭이 등 12종류가 넘습니다. 원숭이끼리도 종류가 다른데 원숭이가 사람이 될 수 있는 확률은 제로입니다. 같은 원숭이 종류로 불려도 서로 그 경계를 넘을 수 없습니다. 망토 원숭이는 망토 원숭이만 낳고, 긴팔원숭이는 긴팔원숭이만 낳습니다.
창조주 하나님께서는 자신과 창조물 사이에도 경계를 두셨습니다. 창조물은 창조주께서 정하신 경계 안에서 주님의 명령을 따라야합니다. 그것이 질서요, 하나님 안에서의 평안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모양과 형상을 따라 지음 받은 사람도 하나님께서 정하신 경계를 넘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첫 사람 아담에게 모든 것을 허락하셨으나 창조주와 창조물 사이에 분명한 경계를 두시기 위하여 아담에게 금하신 것이 있습니다.
(창 2:16-17) “{주} [하나님]께서 남자에게 명령하여 이르시되, 동산의 모든 나무에서 나는 것은 네가 마음대로 먹어도 되나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에서 나는 것은 먹지 말라. 그 나무에서 나는 것을 먹는 날에 네가 반드시 죽으리라, 하시니라.” 창조물은 창조주의 정하신 경계 안에 있으면 안전하고 행복합니다. 그 어떤 것도 하나님의 경계 안에 있는 자를 해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그 경계를 벗어나는 순간 마귀의 손 안에 떨어지며 불행이 시작됩니다.
(시 147:14-15) 『그분께서 네 경계 안에서 화평을 이루시고 가장 좋은 밀로 너를 채우시며 자신의 명령을 땅 위에 보내시니 그분의 말씀이 매우 빨리 달리는도다.』
에덴동산에서 하나님의 명령을 듣지 않고 마귀의 달콤한 거짓속삭임에 귀를 기울인 이브와 아담이 어떻게 되었습니까? 하나님의 정하신 경계 안에 있을 때엔 평안과 기쁨과 행복이 있었지만 하나님의 경계를 벗어났을 때엔 평안은 사라지고 두려움과 고통과 슬픔과 죽음이 있을 뿐입니다.
사람이 하나님의 명령을 온전히 따르고 순종하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은 아닙니다. 그렇다고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해도 되고 순종하지 않아도 되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두신 경계와 명령은 우리에게 좋은 것을 주시기 위함입니다. 아울러 하나님의 명령을 순종한다는 것은 수고와 인내와 고통이 동반됩니다. 그러나 순종 뒤에 우리가 누릴 복은 어떤 것과도 족히 비교될 수 없습니다. (롬 8:18) 『내가 생각하건대 이 현 시대의 고난들은 앞으로 우리 안에 나타날 영광과 족히 비교될 수 없도다.』 하셨습니다.
순종의 예를 하나 들어 보겠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집트를 떠나 40년의 광야 생활을 마치고 드디어 요르단을 건너 여리고 성을 함락하러 갈 때에 주께서 그들에게 주신 작전명령이 있습니다.
(수 6:3-5) “너희 모든 군사는 그 도시를 에워싸고 도시 주위를 한 번씩 돌되 너는 엿새 동안을 그리할지니라. 일곱 명의 제사장은 궤 앞에서 숫양의 뿔 나팔 일곱 개를 들고 갈 것이요, 일곱째 날에는 너희가 그 도시를 일곱 번 에워싸고 제사장들은 나팔을 불 것이며 제사장들이 숫양의 뿔 나팔을 길게 불어 너희가 나팔 소리를 들을 때에 온 백성은 큰 소리로 외칠지니라. 그리하면 그 도시의 성벽이 납작하게 무너져 내리리니 백성은 각각 곧장 자기 앞으로 올라갈지니라, 하시니라.”
저는 여리고 성의 둘레가 몇km인지 잘 모릅니다. 주님은 여리고성을 하루에 한 번씩 돌고 엿새 동안을 그렇게 하다가 일곱째 날에는 일곱 번 돌라고 하셨습니다. 하루에 한 번 도는 것은 그렇게 힘든 일은 아닐 것입니다. 그러나 일곱 번 돌기는 결코 쉬운 일이 아니며 매우 힘들고 고달플 것입니다.
여러분! 주님은 일곱 번 돌라 하셨는데 다섯 번만 돌고 포기했다면 여리고 성이 무너졌을까요? 혹 여섯 번 돌고 너무 힘들어 그만 두었다면 과연 여리고 성이 무너졌을까요? 여러분 중에는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들은 없을 것입니다. 이처럼 주님의 명령을 따르는 데는 수고와 인내와 땀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그 명령을 순종 했을 때의 소득은 엄청난 것입니다.
(수6:15-16)“일곱째 날에 그들이 날이 샐 무렵에 일찍 일어나 같은 방식으로 도시를 일곱 번 에워쌌는데 그 날에만 그들이 도시를 일곱 번 에워쌌더라. 일곱 번째에 제사장들이 나팔을 불매 여호수아가 백성에게 이르되, 외치라. {주}께서 도시를 너희에게 주셨느니라.”
여러분들이 서울에 가면 동대문도 보고 남대분도 볼 것입니다. 서대문도 있었지만 현재는 지명만 있고 대문은 없습니다. 서울의 북쪽엔 세검정에 자하문 이라고 있습니다. 이렇게 사대문을 잇는 성곽이 지금도 일부분 있습니다. 여러분들이 그 성 둘레를 걸어서 돈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여리고 성이 서울 성곽보다 적을지 클지 모르지만 아무튼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 일곱째 날에, 날이 샐 무렵, 아직 어두울 때에 일찍 일어나 도시를 일곱 번 에워싼 뒤에 명령에 따라 크게 소리 질러 외쳤습니다. 그 결과를 보십시오.
(수 6:20-21) “제사장들이 나팔을 불매 백성이 그렇게 외치니라. 백성이 나팔 소리를 들을 때에 크게 소리 질러 외치니 성벽이 납작하게 무너져 내리므로 백성이 각각 곧장 자기 앞으로 나아가 도시로 올라가 도시를 점령하고 도시 안에 있던 모든 것을 진멸하되 남자와 여자와 어린이와 노인과 소와 양과 나귀를 칼날로 진멸하니라.”
전쟁은 대 승리였습니다. 이스라엘 백성 중에는 죽거나 다친 자가 하나도 없었습니다. 이것이 주님의 명령에 순종한 대가였습니다. 여러분들이 무슨 일을 하든지 대충하고 승리나 소득을 기대하지 마십시오. 눈속임으로 하지 마십시오. 노력하지 않고 얻어지는 소득은 1도 없습니다. 특히 하나님의 명령을 소홀이 여기는 자들은 형벌을 면치 못할 것입니다.
그 누구도 하나님께서 정하신 경계를 넘으면 안 됩니다. 그 경계는 어떤 명령보다도 가볍지 않습니다. 특별히 그리스도인들도 이 땅에 살면서 하나님의 정하신 경계 안에 거하면 평안의 복이 임하겠지만 그 경계를 무시하거나 가볍게 여기고 그 경계 밖으로 나가게 되면 그에게는 하나님의 약속은 보장이 없고 고통과 실패와 불행만 연속됩니다. 혹시 여러분들에게 원하지 않는 고통과 알 수 없는 어려움이 올 때에 하나님께서 정하신 경계를 벗어났는지 자신을 살펴보고 즉시 돌이켜야 할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큰 복을 누리고 싶다면 하나님께서 정하신 그분의 경계 안에 거하시고 그분의 명령에 온전히 순종하십시오. 무슨 일이든 눈속임으로 하지 마십시오. 그것은 마귀가 하는 일이요, 곧 마귀를 따르는 일입니다.
성경엔 하나님께서 정하신 경계들이 아주 많습니다. 구약에 어떤 사람이 실수로 사람을 죽게 했을 때 하나님께서는 그를 보호하시기 위하여 도피성을 마련하시고 그 경계 안에 있을 동안에는 그를 죽이지 못하게 하셨음을 성경을 읽어 본 여러분들은 잘 알고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가 도피성 경계 밖으로 나갔을 때 그는 보호받지 못하고 복수 하는 자가 그를 죽여도 그는 죄가 되지 않았습니다.
(민 35:26-27) 『그러나 사람을 죽인 자가 어느 때든지 자기가 도피한 도피 도시의 경계 밖으로 나가면 피를 복수하는 자가 그의 도피 도시의 경계 밖에서 사람을 죽인 자를 만나 그를 죽일지라도 그 피에 관하여 죄가 없으리니』
우리가 지도를 보면 나라와 나라를 나타내는 국경이 있습니다. 그 국경을 허락 없이 넘게 되면 전쟁이 일어납니다. 나라 안에도 각 지방을 나누는 경계가 있습니다. 수도 서울과 지방을 나누는 경계가 있고, 도와 도를 나누는 도계가 있고, 그 안에 군을 나누는 군계가 있고, 그 안에 면을 나누는 면계가 있으며, 면 안에서도 각 동네를 나누는 리 경계가 있습니다. 여러분들이 살고 있는 동네 안에서도 여러분들의 집을 표시하는 주소가 그 경계입니다. 이 모든 경계를 하나님께서 정하셨습니다.
(시 74:17) 『땅의 모든 경계를 정하시고 여름과 겨울을 만드셨나이다.』
제가 알기로는 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는 공같이 둥급니다. 비행기를 타고 하늘 높이 올라보면 그것을 부인할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만약 달이나 지구가 공같이 둥글지 않으면 태양빛이 지구에 가려 나타나는 달의 모양이 초승달이나 반달이나 보름달 같은 모양으로 나타나지 않을 것입니다. 성경에서도 분명히 땅을 원이라 명시하고 있습니다.
(사 40:22) “땅의 원(circle) 위에 앉으신 이가 바로 그분이시니 땅에 거하는 자들은 메뚜기 같으니라. 그분께서 하늘들을 휘장같이 펼치시며 그것들을 거주할 장막같이 펴시고”
어떤 이들은 이 원(circle)을 공같이 둥근 것이 아니라 쟁반같이 평평한 원이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러면 공중에 있는 쟁반같이 평평한 땅 밑은 어떤 모습이며 그 두께는 얼마나 될지, 혹은 평평한 원 밑은 어떤 모양일지 성경 어디에도 말씀하지 않으며 저도 감을 잡을 수 없습니다. 주님은 분명히 땅을 허공에 매다셨다고 말씀하십니다.
(욥 26:7) “그분께서는 북쪽을 빈 곳에 펴시며 땅(earth)을 허공에 매다시고”
이 말씀은 창세기 1장에서 더욱 분명합니다. 그때 있던 세상이 물의 넘침으로 멸망하여 땅은 깊음의 물속에 잠기게 되었을 때 하나님께서는 윗물과 아랫물을 나누시고 땅을 들어나게 하심으로 윗물과 아랫물 사이에서 마른 육지(땅)를 드러내시어 궁창에 두셨습니다.
(창 1:6-10) “[하나님]께서 이르시되, 물들의 한가운데 궁창이 있고 또 그것은 물들에서 물들을 나누라, 하시고 [하나님]께서 궁창을 만드사 궁창 위의 물들에서 궁창 아래의 물들을 나누시니 그대로 되니라. [하나님]께서 궁창을 하늘이라 부르시니라. 그 저녁과 아침이 둘째 날이더라. [하나님]께서 이르시되, 하늘 아래의 물들은 한 곳으로 함께 모이고 마른 육지(dry land)는 드러나라, 하시니 그대로 되니라. [하나님]께서 마른 육지를 땅(Earth)이라 부르시고 물들이 함께 모인 것을 바다들이라 부르시니라.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좋았더라.”
그것들을 만드시고 그것들의 경계를 정하신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이런 사실을 베드로를 통하여 기록하시기를 “땅이 물에서 나와 물 가운데 서 있는 것(the earth standing out of the water and in the water)을 일부러 알려 하지 아니하느니라.”했습니다. 땅이 물에서 나와 물 가운데 서있다(standing)고 하실 때 둥글고 평평한 땅을 의미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지구가 둥글고 평평하다면 물 가운데 누워 있다고 하셨을 것입니다. 지구가 평평하다고 말하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말씀보다는 자기들이 믿고 싶은 대로 믿는 자들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물론 제 생각이 틀릴 수도 있습니다.
(벧후 3:5-7) “그들은 이 사실 즉 [하나님]의 말씀으로 말미암아 하늘들이 옛적부터 있었고 또 땅(earth)이 물에서 나와 물 가운데 서 있는 것을 일부러 알려 하지 아니하느니라. 그것으로 말미암아 그때 있던 세상은 물의 넘침으로 멸망하였으되 지금 있는 하늘들과 땅(earth)은 주께서 같은 말씀으로 보관하여 간직하사 경건치 아니한 사람들의 심판과 멸망의 날에 불사르기 위해 예비해 두셨느니라.” 이렇게 둥근 땅을 굳이 평평하다고 우기는 사람들은 “땅이 물에서 나와 물 가운데 서 있는 것”일부러 알려하지 아니하는 자들이라 하셨습니다.
둥근 공이 굴러가다 멈추면 섰다, 서 있다고 말하지 누워 있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평평한 접시가 놓여 있는 것을 보고 서 있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때 있던 (창1:1)의 세상은 물의 넘침의 멸망과(창1:2) 노아홍수로 두 번에 걸쳐 물로 심판하시고 다시 경계를 정하셨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물로 땅을 심판하지 않으신다고 약속하셨으며 물들이 주께서 정하신 경계를 넘어 땅을 덮지 못하게 하셨습니다.
(시 104:9) 『주께서 경계를 정하사 물들이 넘어가지 못하게 하시며 그것들이 다시 돌아와 땅을 덮지 못하게 하셨나이다.』 우리는 가끔 지역에 따라 장마나 태풍으로 큰 홍수가 나서 많은 재산과 사람들이 죽는 엄청난 물들이 바다로 흘러가는 것을 봅니다. 그러면 바닷물이 크게 불어날 것 같은데도 바닷물은 절대로 하나님께서 정하신 경계를 넘어 땅을 덮지 않습니다.
시편104:9절은 앞에서 본 예례미야서 5:22절 말씀과 정확하게 일치합니다.
“내가 영원한 법령으로 모래를 배치하여 바다의 경계로 삼아 바다가 그것을 넘지 못하게 하였으므로 바다의 물결이 일어도 그것을 이기지 못하고 큰소리를 질러도 그것을 넘지 못하느니라.”(렘 5:22하) 하셨기에 바다도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는데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은 사람은 더욱 순종해야 마땅합니다.
사람들의 범죄와 무질서로 인한 지구 온난화로 하나님께서 정하신 경계가 무너지고 있습니다. 그것은 남극의 빙하가 녹아내리는 것입니다. 그로 인해 지구촌 여러 곳에서 낮은 지역은 물의 넘침으로 삶의 터전을 잃어가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물이 하나님께서 정하신 경계를 넘어 땅을 모두 삼키지는 않을 것입니다. 우리는 현 세상의 위협을 염려하지 않고 신실하신 하나님의 약속을 믿습니다. 노아 홍수 후에 노아에게 하신 언약을 보십시오.
(창 9:11) “내가 너희와 더불어 내 언약을 세우리니 다시는 내가 모든 육체를 홍수의 물들로 멸하지 아니할 것이요, 또 땅을 멸할 홍수가 다시는 있지 아니하리라.”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의 특별한 백성으로 택하신 이스라엘은 어떻습니까? 그들은 특별히 복을 많이 받았지만 하나님의 말씀을 등 뒤로 버린 자들입니다.
(삼상 8:7) 『{주}께서 사무엘에게 이르시되, 백성이 네게 말하는 모든 것에서 그들의 음성에 귀를 기울이라. 그들이 너를 버리지 아니하고 나를 버려서 내가 자기들을 통치하지 못하게 하려 하였느니라.』 (왕상 14:9) 『너 이전의 모든 사람보다 더 악을 행하였으니 네가 가서 너를 위하여 다른 신들을 만들며 부어 만든 형상들을 만들어 내 분노를 일으키고 나를 네 등 뒤로 버렸도다.』
그러므로 주님은 그들을 향하여 경계를 옮기는 자들 같다고 하셨습니다.
(호 5:10) 『유다의 통치자들은 경계를 옮기는 자들 같은즉 내가 내 진노를 그들 위에 물같이 부으리라.』 여러분들이 여기에 모이고 여러분들의 거주지에 사는 것은 자신의 노력이나 계획에 의한 것이라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성경은 하나님께서 여러분들의 거주의 경계를 정하셨다고 말씀하십니다.
(행 17:26) 『또 그분께서 사람들의 모든 민족들을 한 피에서 만드사 온 지면에 거하게 하시고 미리 정하신 때와 그들을 위한 거주의 경계를 정하셨으니』 이렇게 하나님께서 정하신 경계를 표시 하는 것을 지계 표라고 합니다. 그러므로 주께서 정하신 우리 이웃의 지계표를 내 마음대로 옮겨서는 안 됩니다.
세상에는 욕심을 내는 자들이 알게 모르게 이웃의 지계표를 옮기고 사기치고 남의 땅을 빼앗으려고 분쟁을 하는 자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이웃의 지계표를 옮기는 자들은 이득보다는 저주를 받게 될 것입니다. 주님은 말씀하시기를, (신 27:17) 『자기 이웃의 지계표를 옮기는 자는 저주를 받으리라, 할 것이요, 온 백성은, 아멘, 할지니라.』하셨습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 경계를 정하시고 표시해 놓은 지계표를 옮기지 말라고 성경 전체에 여러 번 강조하셨습니다.
(잠 22:28) 『네 조상들이 세워 놓은 옛 지계표를 옮기지 말라.』
(잠 23:10) 『오래된 지계표를 옮기지 말고 아버지 없는 자들의 밭에 들어가지 말라.』
오늘 말씀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각자에게 정해주신 경계를 잘 알고 순종함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복을 받고 주님의 경계 안에서 평안과 행복한 삶을 누리는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진심으로 축원합니다. 하나님께서 정하신 경계를 허물거나 그 경계 밖으로 나가면 하나님의 보호를 받지 못합니다. 지계표를 옮겨서도 안 됩니다. 이와 같이 진리의 말씀을 가감하거나 변개시켜도 안 됩니다. 우리를 보호하시고자 정하신 그분의 경계 안에서 주님이 약속하신 복을 누리시기를 간곡히 바랍니다.
2020-02-23 12:01: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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