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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의 셋집에서-

말씀: 행 28:1-31, 요절: 행 28:31. 2020년 2월 23일 일요일 오후 2시

사도행전은 시작은 있으나 끝이 없다는 말이 있는데 우리는 오늘 본문을 보면 그 말을 실감할 수 있습니다. 사도행전의 기록자 누가는 결론을 맺지 않고 글을 마감한 까닭입니다. 사도행전은 바울의 죽음을 다루지 않습니다. 성령의 역사, 말씀의 역사는 바울이 매이더라도 결코 매이지 않습니다. 로마로 이송된 바울은 자신의 셋집에서 2년간 오는 사람들을 다 맞이하고 하나님의 왕국을 선포했습니다. 그러나 아무도 그를 막지 못했습니다.
죄수 신분으로 왔지만 바울은 옥에 갇힌 것이 아니라 셋집에서 살며 복음을 전했습니다.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로 바울은 로마에서 사역을 했고, 감옥에 갇힌 후에는 옥중 서신을 기록했고, 마침내 죽임을 당했습니다. 오늘 우리는 로마의 셋집에서 2년 간 사역을 하는 바울의 모습을 보면서 사도행전을 마감합니다.
1-2절입니다. [그들이 피신한 뒤에 그 섬이 멜리데라 불리는 줄 알았더라. 그 당시 비가 오고 날씨가 추우므로 미개한 백성이 불을 피우고 우리를 다 받아들이며 우리에게 적지 않은 친절을 베풀더라.](1-2).
바다에서 갖은 고생을 다 한 후에 하나님의 은혜로 배만 잃고 사람들은 단 한 명도 상하거나 다치지 않은 채 어떤 섬에 도착했습니다. 그들이 도착한 섬은 ‘멜리데’란 섬입니다. 이들이 섬에 도착했을 때 날씨는 춥고 비가 내렸습니다. 하지만 섬에 사는 백성들이 불을 피우고 난파한 배에서 피신한 이들을 다 받아 들였을 뿐 아니라 ‘적지 않은 친절’을 베풀었습니다.
이들이 둘러 앉아 뜨거운 물이라도 한 잔 씩 먹을 때 느끼는 감격과 행복은 죽음의 항로를 경험한 이들만이 누릴 수 있는 것입니다. 난파 직전의 배에서 담대히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한 바울의 도움으로 이들은 기적적인 삶의 기쁨을 누리게 된 것입니다.
3절입니다. [바울이 나뭇가지 한 다발을 거두어 불 위에 놓으니 열기 속에서 독사가 나와 그의 손에 달라붙더라.](3). 불을 피우고 둘러앉은 사람들 가운데는 바울도 있었습니다. 바울 역시 나뭇가지를 거두어 불 위에 놓았습니다. 그런데 그 나무다발에 독사가 있었던지라 뜨거운 열기 속에서 독사가 나와 바울의 손에 달라붙었습니다.
뱀들은 추위에 약합니다. 겨울에는 동면을 취합니다. 그런데 나무다발 속에 있던 뱀이 열기로 인해 깨어나 바울의 손에 달라붙었던 것입니다. 뱀을 좋아하는 사람들이라면 아마 잡아서 구워 먹겠다고 서로 쟁탈전을 벌였을 것입니다. 이 뱀은 독사였던 지라 그것을 본 이들이 기절을 할 노릇이었습니다. 뱀이 나올 시기도 아닌데다 하필이면 그 뱀이 바울의 손에 달라붙었으니 이것은 하늘이 내린 벌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이것이 종교적이고 미신적인 사람들이 내릴 수 있는 생각이며, 판단입니다. 그 섬의 원주민들의 말을 들어 보십시오.
4절, [그 독 있는 짐승이 그의 손에 달려 있음을 미개한 사람들이 보고 자기들끼리 이르되, 분명히 이 사람은 살인자라. 그가 바다는 피하였을지라도 보복이 그를 살지 못하게 하는도다, 하더라.](4).
원주민들은 독사가 바울의 손에 달라붙자 그는 분명히 ‘살인자’라고 단정했습니다. 폭풍과 파도가 있는 바다에서는 살아남았다 할지라도 기어코 ‘보복’을 받아 죽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인과응보, 천벌, 신벌에 대한 개념은 인간의 깊은 의식 속에 자리 잡고 있는 지식입니다. 그러나 바울은 사도행전 23:11에 따라 자신이 죽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주님은 “바울아, 기운을 내라. 네가 예루살렘에서 나에 대해 증언하였듯이 반드시 로마에서도 증언하여야 하리라, 하시니라.”(행23:11)는 주님의 말씀이 있었기 때문에 독사는 그를 죽일 수 없습니다.
이로써 바울은 예루살렘에서 죽을 뻔 하다 살아났고, 바다에서 죽을 뻔 하다 살아났고, 이곳 섬에서 죽을 뻔 하다 살아났습니다. 바울은 죽음을 곁에 두고 동행하고 있는 삶이었지만 주님은 그가 로마에서 복음을 증언할 때까지 죽지 않습니다. 우리의 생명은 하나님 손에 있습니다. 마귀는 계속해서 바울을 죽이려고 하였지만 성공하지 못했습니다.
우리는 여기서 마가복음 16:18을 기억합니다. “어떤 치명적인 것을 마실지라도 해를 받지 아니하며”(막16:18). 하나님께서 누군가에게 어떤 일을 맡기시면 그는 환경을 두려워하지 않아도 됩니다. 주님은 바다의 폭풍과 풍랑을 통과하고 뱀에 물리는 것을 다 허락하시지만 결국 바울은 로마에 도착합니다. 우리는 환경을 피하는 것이 아니라 ‘환경’을 이기고 나가는 사람들입니다.
5-6절, [그가 그 짐승을 불 속에 떨어 버리고 아무 해도 입지 아니하니라. 그러나 그들은 그가 붓거나 혹은 갑자기 쓰러져 죽을 때를 기다렸는데 한참을 보아도 아무 해가 그에게 임하지 않음을 보고는 생각을 바꾸어 그는 신이라고 말하더라.](5-6).
동면에 든 뱀이 깨어나 물게 되면 독성이 더 강합니다. 그런데 바울은 아무렇지도 않게 뱀을 불 속에 떨어 버렸습니다. 그는 어떤 해도 입지 않았습니다. 원주민들은 바울이 당연히 죽을 것이라고 생각했으나 바울의 몸이 독으로 부어오르지도 않고, 쓰러지지도 않자 “그는 신이다”고 말했습니다. 사람이라면 그럴 수 없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기적을 볼 때면 누구라도 기꺼이 경배할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같은 사람을 초인이니 선인이니 신이라 부르는 것을 조금도 꺼리지 않습니다. 바울은 벌써 두 번째 신이란 말을 들었습니다. 전에 ‘루스드라’에서 앉은뱅이를 일으킴으로 ‘머큐리’란 말을 들었습니다. 이곳 섬에서도 갑자기 신이란 말을 듣게 됩니다. 이것이 참 빛이 없어 지각이 어두워진 사람들의 상태입니다.
하지만 참 하나님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받아들이는 데는 주저하고 꺼립니다. 이것은 무엇을 말합니까? 종교적이고 미신적인 사람들이라도 ‘참 하나님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거부하는 본성이 있다는 것입니다. 타락한 사람의 마음은 ‘자기 지식 속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합니다(롬1:28).
7-10절입니다. 바울에게 일어난 기적으로 인해 그 섬사람들은 더욱 호의를 베풀었습니다. 그 섬의 우두머리인 보블리오는 바울과 그 일행을 받아 들여 삼일 간 대접했습니다. 276명이나 되는 선원들을 먹이고 대접하는 일은 결코 적은 일이 아닙니다(7). 바울은 보블리오의 아버지가 열병과 피 설사로 앓아누워 있는 것을 보고 기도하고 안수하여 그를 고쳤습니다(8). 이 때 행한 표적은 성경 기록상 바울이 행한 생의 마지막 표적으로 보입니다.
바울은 이후에 더 이상 안수를 통해 병을 고치지 못했습니다. 바울의 일행인 드로비모는 병이 들어 ‘밀레도’에 남겨 두어야 했고(딤후4:20), 디모데는 위장 뿐 아니라 잦은 병으로 고생했지만 ‘포도즙을 조금 쓰라’(딤전5:23)는 권면을 했을 뿐 안수를 통해 치유하지는 못했습니다. 바울이 보블리오의 아버지를 고치자 섬에 질병 있는 사람들이 다 모여들었고 바울은 그들을 다 고쳤습니다(9).
덕분에 이들은 후한 예우로 바울과 그 일행을 대접하고 떠날 때에는 필요한 물자를 배에 실어 주었습니다(10). 아무도 예상치 못한 섬에 도착했지만 그 가운데 선한 믿음의 역사가 있었습니다.
사도들의 표적과 권능은 A.D 65년경을 기점으로 거의 사라졌습니다.
11절입니다. [석 달 뒤에 우리가 그 섬에서 겨울을 난 알렉산드리아의 배를 타고 떠났는데 그 배의 기호(記號)는 카스토르와 폴룩스더라.](11). 생각해 보십시오. 병 고침을 받은 이들을 포함해서 이들을 대접하고 호의로 대해준 섬사람들을 향해 바울이 3개월간 복음을 전하고 성경을 가르치고 교회를 세웠을 것은 능히 짐작하고도 남는 일입니다. 바울은 쫓겨 다니며 1-2주간 복음을 전하던 도시들에서보다 훨씬 더 긴 시간을 자유롭게 이 섬에서 복음을 전했습니다. 이전에 자신이 들러 보지 못한 섬에 표류해 와서 온 섬에 복음의 씨앗을 뿌렸습니다. 이것이 주님의 은혜입니다.
12-14절입니다. 이제 섬을 떠나 다시 예정대로 로마로 향했습니다.
[우리가 시러큐스에 상륙하여 거기서 사흘을 머물다가 거기서 돌아가 레기움에 이르고 하루 뒤에 남풍이 불므로 이튿날 푸테올리에 이르러 거기서 형제들을 만나 요청을 받아 그들과 함께 이레를 머무니라. 우리가 이같이 로마를 향하여 가니라.](12-14). 이 부분은 지도를 참조해서 보십시오. 시러큐스는 시실리아 섬입니다. 이제 일단 이탈리아제일 남단에 도착해서 로마 쪽으로 북진하면 됩니다. 레기움은 이탈리아 반도의 최남단입니다. 배는 남풍을 받아서 이튿날 푸테올리에 이르렀습니다. 여기서 바울은 그리스도 안에서 형제 된 이들을 만났습니다.
로마의 형제들은 바울을 초청해서 바울은 일주일동안 거기 머물렀습니다. 바울이 호송 받아 가는 중에 매우 여유롭게 가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보통 죄수들의 호송과는 완전히 다릅니다. 그는 백부장이나 배의 모든 선원들의 인정을 받고, 호의를 얻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이같이 로마로 향하여 가니라.”(14하) 드디어 바울이 로마에 도착했습니다. 반드시 보아야겠다고 결심했던 로마에 도착했습니다(행19:21). 주님이 말씀하신 대로 바울은 로마에 도착했습니다. 바울은 재판을 받기 위해 왔지만 재판은 당장 이루어진 것이 아니었습니다.
15절입니다. [형제들이 우리에 대하여 듣고 거기서부터 멀리 아피이 광장과 세 여관까지 우리를 맞으러 나오매 바울이 그들을 보고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며 용기를 얻으니라.](15). 로마의 형제들은 바울이 왔다는 소식을 듣고 아피이 광장과 세 여관까지 맞으러 왔습니다. 로마의 형제들은 물론이고 로마의 인근 도시들에서까지 바울을 맞으러 왔습니다. 아피이 광장은 로마에서 81km 정도 떨어진 곳이고, 세 여관(three taverns)은 로마에서 50km 거리입니다. 로마의 성도들은 바울을 대대적으로 환영하며 맞이했습니다.
인근 도시들의 성도들까지 바울을 맞으러 나왔고 그를 환영했습니다. 마치 승전한 장군이 개선문을 통과할 때 환영인파가 몰리듯이 로마 교회의 성도들이 바울을 맞으러 멀리 아피이 광장과 세 연관까지 맞으러 나오자 바울은 하나님께 감사를 드렸습니다. 죄수로 사슬에 결박되어 온 바울을 로마 교회 성도들은 조금도 부끄러워하지 않았을 뿐 아니라 뜨겁게 영접하고 환영함으로써 바울은 용기를 얻게 되었습니다. 그가 지금까지 수많은 지역을 다녔지만 이렇게 뜨거운 환영을 받아 본 적은 이번이 처음일 것입니다.
하나님은 형제애를 통해 우리를 위로하십니다. 동료들의 섬김과 사랑을 통해 우리를 위로하십니다. 우리 역시 형제들을 접대하고 섬기는 일에 조금도 게으르지 말아야 합니다. 특히 선교지에서 수고하고 돌아오는 형제들을 만날 때면 뜨겁게 환영하고 힘을 주어야 합니다.
16절입니다. [우리가 로마에 이르매 백부장이 죄수들을 호위대장에게 넘겨주되 바울은 그를 지키는 한 군사와 함께 따로 거하게 허락하더라.](16). 바울은 로마에서 다른 죄수들과 달리 예외적인 대접을 받았습니다. 백부장은 바울을 지키는 군사 하나와 따로 거하도록 허락했습니다. 백부장은 자신의 권한이 허락하는 최대의 배려를 한 것입니다. 이로써 바울은 자유롭게 사람들과 대화하고, 복음을 전하고, 가르칠 수도 있었던 것입니다.
로마의 황제 앞에 서는 일은 황제가 직접 부르기 전까지 갈 수 없습니다. 카이사르 앞에 나아갈 때까지 시간이 얼마나 걸릴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바울은 그 시각동안 죄수의 신분이면서도 거의 자유를 누렸습니다. 거주 제한과 같은 구속이 있었을 뿐입니다. 바울은 카이사르 앞에 갈 때까지의 시간을 복음 선포에 보냈습니다.
17절, [사흘 뒤에 바울이 유대인들의 지도자들을 함께 부르고 그들이 함께 모인 뒤에 그들에게 이르되, 사람들아 형제들아, 내가 백성이나 우리 조상들의 관례를 대적하는 일을 하지 아니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예루살렘에서부터 로마 사람들의 손에 죄수로 넘겨졌노라.](17). 바울은 언제나 그랬듯이 로마에서도 먼저 유대인들을 상대했습니다. 그는 어디서나 유대인들에게 먼저 복음을 전했는데 이번에도 예외가 아니었습니다. 바울은 이미 이곳에서도 상당히 유명 인사가 되어 있었습니다. 유대인들에게는 배척받는 대상으로 유명 인이고, 이방인들에게 관습과 전통을 뒤엎는 자로 유명하고, 그리스도인들에게는 ‘복음 선포자요, 사도로서’ 유명 인입니다.
바울은 즉시 로마에 있는 유대인 지도자들을 초청하여, 자신이 왜 이곳 로마에 죄수로 왔는지를 설명했습니다. 그는 자신이 유대인 회당에 들어갈 수 없었던지라 유대인 지도자들을 불러서 그들에게 전후 자초지종을 설명하고 ‘복음’을 선포하려 했던 것입니다.
18-19절입니다, [그들은 나를 심문하고는 죽일 이유가 내게 없으므로 나를 노아주려 하였느니라. 그러나 유대인들이 그것을 반대하여 말하기에 내가 마지못해 카이사르에게 청원하였으되 이것은 내가 조금이라도 내 민족을 고소하려 한 것이 아니니라.](18-19). 이것은 사실입니다.
바울은 자기 민족을 고소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의 무죄를 인정받기 위해 카이사르에게 청원했습니다. 바울이 유대인들을 불러 이런 설명을 하는 것은 무엇보다 그들의 얼마라도 구원받게 하기 위함이요(롬10:1), 또 다시 이전에 다른 도시들에 있었던 것과 같은 폭동이나 소요를 일으키지 않도록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는 자신의 민족을 고소한 배반자가 아님을 거듭 강조함으로써 유대인들이 자신에 대해 가진 편견과 선입견을 누그러뜨리려 했습니다.
바울은 자신이 결박된 이유를 이렇게 말합니다.
20절입니다. [그러므로 이런 까닭에 내가 너희를 보고 너희와 함께 이야기하려고 너희를 불렀으니 이는 이스라엘의 소망으로 인하여 내가 이 사슬에 결박되었기 때문이라, 하니라.](20). *이스라엘의 소망.= 예수 그리스도는 이스라엘의 소망입니다. 아브라함 이후로 이스라엘의 전 역사는 메시아의 오심과 왕국의 건설이란 소망을 기다리는 역사입니다.
바울이 결박당한 것은 예수님이 이스라엘의 소망인 그리스도이심을 선포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죽은 자로부터 부활했음을 선포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시오, 그리스도란 사실이 ‘이스라엘의 소망’이요, 예언의 성취입니다.
21-22절은 바울의 변명에 대한 유대인들의 반응입니다. [그들이 그에게 이르되, 우리는 유대로부터 너에 대한 편지를 받지 아니하였고 또 형제들 중의 누가 와서 너에 대하여 조금이라도 나쁜 것을 보이거나 말하지 아니하였느니라. 그러나 우리는 너로부터 네가 생각하는 바를 듣고자 하노니 이는 이 분파로 말하건대 그것이 어디에서나 비방을 받는 줄 우리가 알기 때문이라, 하더라.](21-22).
이것은 바울에게 다행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유대나 다른 지역의 유대인들이 미리 로마의 유대인 형제들에게 이런저런 악평을 하지 않았다는 것은 이들이 바울에 대해 편견이나 선입견, 악감이 형성되지 않은 상태란 뜻입니다. 편지로나 인편으로나 바울에 대한 나쁜 소식이 로마의 유대인들에게 전해지지 않음으로써 바울은 이들에게 담대하게 복음을 전할 수 있는 좋은 기회를 얻었습니다.
이들은 바울에 대한 소문은 들었지만 직접 바울의 생각하는 바를 듣고자 했습니다. 객관적으로 공정한 판단의 기회를 갖고자 했습니다. 유대인들은 바울의 선포를 어떤 “종파”로 규정했습니다. 유대교의 한 종파 정도로 여겼던 것입니다.
23절, [그들이 그를 위해 한 날을 정하고 많은 사람이 그에게 나아와 그의 숙소로 들어오니 그가 아침부터 저녁까지 모세의 율법과 대언자들의 글을 가지고 예수님에 관하여 그들을 설득하며 그들에게 하나님의 왕국을 풀어 설명하고 증언하니라.](23). 유대인들은 바울과 한 날을 정하고 그의 생각을 들었습니다.
바울은 구약 성경을 가지고 예수님에 대해 유대인들을 설득했고, 하나님의 왕국을 설명했습니다. 성경을 가지고 하는 증거라야 권능이 있습니다. 바울은 유대인들이 무엇을 어떻게 믿고 있는지 누구보다 잘 알았기 때문에 그들에게 예수님과 하나님의 왕국에 대해 설명하는데 온 종일의 모든 시간을 보냈습니다.
우리는 그가 몇 시간을 선포하고 가르쳤는지 알 수 없지만 ‘아침부터 저녁까지’라고 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장장 10시간 이상을 말한 것으로 보입니다. 여러분들은 구약 성경으로 예수님과 하나님의 왕국을 선포할 수 있다는 점에 주목하시고, 신약 뿐 아니라 구약 성경을 부지런히 읽고 공부해야 합니다. 구약에 계시된 예수, 구약에 계시된 하나님의 왕국, 구약에 계시된 구원의 진리 등에 대해서 잘 정리해 두고 증언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24절을 보면 어떤 사람들이 바울의 선포를 통해 ‘믿었습니다.’ 약간의 열매를 거둔 것입니다(24). 바울은 믿지 않는 유대인들을 향해 그들의 완악함을 꾸짖었습니다.
24~27절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그가 말한 것들을 믿고 어떤 사람들은 믿지 아니하더라. 그들이 자기들끼리 동의하지 아니하고는 바울이 한 마디 말을 한 뒤에 떠나니라. 곧, 성령님께서 대언자 이사야를 통하여 우리 조상들에게 잘 말씀하셨도다. 이르시되, 이 백성에게 가서 말하기를, 너희가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하며 보기는 보아도 알지 못하리라. 이 백성의 마음은 무디어지고 그들의 귀는 듣기에 둔하며 그들은 눈을 감았나니 이것은 그들이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마음으로 깨달아 회심하여 내게 고침을 받지 못하게 하려 함이라, 하라, 하셨느니라.](24-27). 유대인들의 눈은 멀었습니다(롬11:25).
유대인들은 들어도 깨닫지 못합니다. 이는 마음이 무디어졌기 때문입니다. 빛으로 나오려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율법을 고수하고, 전통을 지키는 것 외에는 다른 것을 받아들이려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유대인들의 배척은 이미 대언자 이사야를 통해 미리 선포된 것입니다. 바울은 자신이 노력한다고 해서 될 일이 아님을 다시 한 번 절감한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해 준 뒤에 유대인들을 향한 복음 선포를 접었습니다.
28절, [그런즉 하나님의 구원이 이방인들에게로 보내어진 것과 그들이 그것을 들을 줄을 너희가 알라, 하였더라.](28). 바울은 처음 부름 받은 대로 이방인들에게로 향하기로 작정했습니다. 유대인들이 받지 않는 ‘하나님의 구원’이 이방인들에게로 보내어졌고, 그들이 듣게 된다는 것은 유대인들에게 실로 큰 충격이지만 분명한 역사적 사실입니다. 하나님의 구원이신 예수 그리스도는 유대인들에게 배척을 받았으나 이방인들에게 보내져 받아 들여졌습니다.
29절, [그가 이 말들을 하매 유대인들이 떠나서 자기들끼리 큰 논쟁을 벌이더라.](29). 유대인들이 믿지 않고 이방인들에게 ‘하나님의 구원이 이방인들에게로 보내어졌다’는 바울의 말에 이들은 자기들끼리 큰 논쟁을 벌였습니다. 그러나 결론이 없는 논쟁이었습니다.
30-31절입니다. [바울이 자기 셋집에서 만 이 년을 거하며 자기에게 오는 모든 사람을 받아들이고 전적으로 확신 있게 하나님의 왕국을 선포하며 주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그것들을 가르치되 아무도 그를 막지 못하더라.](30). 로마에서 2년간 자기 셋집에서 복음을 전한 것으로 보아 그는 가택 연금 정도의 형을 받아 재판 대기 상태로 지냈던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바울은 자신이 사슬에 묶이고, 갇히고, 감옥에 투옥되었다 하더라도 복음은 전혀 메이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이 복음으로 인하여 내가 악을 행하는 자처럼 매이는 데까지 고난을 당하나 하나님의 말씀은 매이지 아니하느니라.](딤후2:9). 그러다 바울은 풀려나서 다시 자유롭게 여행을 했고, 스페인까지 들린 것으로 보입니다. 네로의 박해시기에 바울은 다시 투옥되었고 이 때 옥중 서신을 기록합니다. 아우구스투스에게 청원했다가 후에 네로 황제의 박해 때에 목 베임을 당한 것으로 전해집니다.
2020-02-23 15:03: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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