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 소개
예배시간 안내
약도/찾아오시는 길
연락처


게시판
교회 소식/공지
질의 게시판
행사 및 사진
Free Board
찬양방


말씀 및 설교
kjv mp3 player
주일 설교
묵상/은혜의 말씀
특강


지역 교회
링크


 


  관리자 [ E-mail ]
  아직도 세상 복을 구하느냐?
  http://av1611.co.kr

아직도 세상 복을 구하느냐?

말씀 : 빌립보서 3:14-21.

우리나라가 수탈자 일본의 탐욕스러운 탄압으로부터의 해방과, 6∙25 전후에 태어난 세대는 배고픈 시절과 오늘날 배부른 시절을 모두 다 겪고 살았습니다. 국민들 누구나 그러했듯이 전쟁 후 얼마나 가난하고 비참한 삶을 살았습니까? 요즈음 모든 것들이 풍성한 시대에 태어난 사람들은 극심한 가난이 무엇인지 잘 모를 것입니다. 지난날의 가난이 자랑거리는 아니지만 우리들의 신앙생활과 깊은 연관이 있으므로 옛날을 반복해서 말하는 것입니다.
오늘날 젊은 세대들은 늙은이들의 듣기 싫은 옛날의 잔소리 정도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으리라는 것도 잘 압니다. 그러나 복음의 1세대들이 가난했던 시절에 복달라고 울부짖던 형태를 지금도 벗어나지 못하고 있음을 보면서 늙은 목회자들이 변했으면 하는 안타까운 마음에서 말씀을 전합니다.
옛날에는 어른들을 만나면 “식사 하셨습니까?”가 인사였습니다. 밥을 굶고 사는 사람들이 하도 많아서 누구를 만나든지 하는 인사가 “밥은 먹었느냐” 입니다. 그리고 집집마다 양식이 부족하여 끼니를 때우는 일이 가장 큰 일중의 하나라서 이웃집에 갈 일이 있으면 식사 때를 피해서 가는 것이 예의라 여겼습니다. 밥을 먹는데 이웃의 누구라도 오면 나누어 먹을 밥이 없으므로 서로가 난처했기 때문입니다.
오늘날의 젊은이들은 보리 고개란 말을 잘 아는 사람들이 그리 많지 않습니다. 지금은 너무 많이 먹어서 살을 빼려고 음식을 가려먹고 땀 흘려 운동을 하지만 전쟁 후 가난한 시절에는 아이들에게 배 꺼진다고 마음대로 뛰어 놀지도 못하게 했습니다. 어렵게 채운 배가 쉬 꺼지면 다음 끼니때까지 기다리기가 힘드니까 그랬습니다.
가난할 때 성도들은 목사님께서 굶으실까봐 성미(聖米)라는 것을 거뒀습니다. 집집마다 밥을 지을 때 주님께 드릴 몫이라고 쌀 한 움큼을 따로 떼어 놓았다가 교회 갈 때 가져가 그것을 모아서 목사님께 양식으로 드렸습니다. 그러다보니 정부미 먹는 사람은 정부미를 가져오고, 밀양 쌀 먹는 사람들은 그것을 가져와 함께 섞어서 이상한 쌀이 되기도 했습니다.
지금은 옛날 그 귀하디귀했던 쌀이 남아돌아갑니다. 그만큼 먹을 것이 많습니다. 이제 시대가 바뀌고 변했으니 그놈의 썩을 육신의 복 받으라는 설교는 그만했으면 좋겠습니다. 제발 성도들의 마음을 이 멸망 받을 땅에다 묶어놓지 말고 하늘에 소망을 두고 우리에게 보상하러 속히 오신다는(계22:12) 주님을 사모하게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저는 얼마 전에 잘 아는 한 권사님으로부터 자기 교회 새로 부임하셨다는 목사님의 이야기를 듣고 속으로 얼마나 창피하고, 부끄럽고, 화가 났는지 모릅니다. 그 목사님께서 크리스마스를 지나고 하시는 말씀이 “전에 있던 교회에서는 크리스마스가 되면 서로 목사님께 밥 사주겠다는 사람들이 많았는데 이 교회에는 목사님께 밥 사준다는 사람이 하나도 없다”하더랍니다.
요즈음 아무리 작은 교회라도 목사님이 밥 굶는 시대는 아니라고 봅니다.
밥 사주는 성도가 없으면 자기가 성도들을 불러 밥 사주면 될 것이지 목사가 밥 구경도 못해본 거지같이 성도들에게 그런 말을 어떻게 공개적으로 합니까? 먹을 것이 넘쳐나서 맹꽁이배들을 들어낸 목사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하나님의 양들을 먹이라고 보냄 받은 목자가 양들에게 밥을 빼앗아 먹으려 하니 주님의 말씀에 거꾸로 가고 있습니다.
주께서 베드로에게 “내 양을 먹이라”하셨을 때 영의 양식만을 말씀합니까?
우리가 성경을 왜 읽고 성경에서 무엇을 배웁니까? 왜 예수님을 믿습니까? 우리는 예수님을 통하여 죄 사함을 받고 영원한 생명을 얻었습니다. (요 5:39) “성경 기록들을 탐구하라. 너희가 그것들 안에서 영원한 생명을 얻는 줄로 생각하거니와 그것들은 곧 나에 대하여 증언하는 것들이니라.” 그 영원한 생명이 왜 필요합니까? 이 땅에서는 영원한 생명이 전혀 필요하지 않습니다. 영원한 생명은 영원한 세상에서 필요합니다.
성도들의 이 땅에서의 생활은 썩을 육신을 벗어버리고 영원한 생명을 얻고 영원한 나라에서 살기위한 준비기간에 불과합니다. 지금은 옛날에 못 먹고 가난한 시절같이 복달라고 아우성치던 그 시절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충분히 복 주셔서 모두가 잘 먹고 잘살고 있습니다. 주님은 2천 년 전에도 먹을 것과 입을 것이 있으면 만족하라 하셨습니다.
(딤전 6:7) “우리가 이 세상에 아무것도 가지고 오지 아니하였은즉 아무것도 가지고 가지 못할 것이 확실하니 8) 먹을 것과 입을 것이 있은즉 우리가 그것으로 만족할 것이니라.” 그런데 성도들은 어찌하여 아직까지 다오, 다오,(잠30:15) 하고 있습니까?
구약 이스라엘에게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그분의 명령을 지키고 행하면 육신에 필요한 땅의 복을 풍성히 주셨습니다.
(신 28:1) “네가 {주} 네 [하나님]의 음성에 부지런히 귀를 기울이고 내가 이 날 네게 명령하는 그분의 모든 명령을 지키고 행하면 {주} 네 [하나님]께서 땅의 모든 민족들 위로 너를 높이 세우시리라. 2) 네가 {주} 네 [하나님]의 음성에 귀를 기울이면 이 모든 복이 네게 임하며 너를 따라잡으리니 3) 네가 도시에서도 복을 받고 들에서도 복을 받으며 4) 네 몸의 열매와 네 땅의 열매와 네 가축의 열매와 네 암소의 번식과 네 양 떼가 복을 받고 5) 네 바구니와 네 쌓아 둔 것이 복을 받으며 6) 네가 들어와도 복을 받고 나가도 복을 받으리라.” 특별히 복을 좋아하는 가난한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네가 들어와도 복을 받고 나가도 복을 받으리라.” 했으니 얼마나 좋은 말씀입니까?
그러나 지금은 구약 시대도 아니요, 우리는 이스라엘민족도 아닙니다. 그들은 민족적으로 선택받고 땅의 것, 육신의 복을 약속 받은 백성들이지만 오늘날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구원 받은 성도들은 땅의 썩을 것, 육신적인 것을 뛰어넘어 하늘의 것, 모든 영적인 복을 받은 자들임을 알아야합니다.
(엡 1:3)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를 찬송하리로다. 그분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의 처소들에 있는 모든 영적인 복으로 우리에게 복을 주셨으니”
많은 설교자들이 영적인 갓난아이 같고 지극히 육신적이어서 오늘날도 성도들을 육신적인 것, 세상적인 것, 땅의 것을 받으라고 설교하고 있으니 성도들이 영적으로 자라날 수가 없는 것은 당연합니다. 그런 설교를 듣고 있는 수많은 성도들이 하늘에 소망을 두지 않고 이 땅의 썩을 것들에 묶여있습니다. 언제부터 설교주제에서 지옥이나 십자가나 죄의 회개나 하늘의 소망은 간데없고 예수님은 교회 문밖으로 쫓겨나셨습니다(계3:20). 제발 성경으로 돌아오십시오.
(히 5:12) “시간으로 보건대 너희가 마땅히 가르치는 자가 되었어야 할 터이나 [하나님]의 말씀들의 첫째 기초 원리들을 남에게 다시 가르침을 받아야 할 필요가 너희에게 있나니 너희가 단단한 음식이 아니라 젖을 필요로 하는 자가 되었도다. 13) 젖을 사용하는 자마다 갓난아이이므로 의의 말씀에 능숙하지 못하니라.”
주님은 육신에 매여 육신에 속한 목자들 때문에 탄식하고 계십니다.
우리는 종교인들과 달리 영원무궁토록 이 땅에 살고자 하는 사람들이 아니라 영원한 나라에서 영원하신 우리 주님과 함께 살기위한 준비를 하고 있는 나그네입니다. 지지리 가난했던 시절에는 부흥강사들의 고정 레퍼토리(repertory)가 복 받아라 였습니다. “오늘 이 부흥회에 참석한 여러분들은 들어와도 복을 받고 나가도 복을 받을 지어다.”그러면 여인네들은 치마를 치켜들고 쏟아지는 복을 놓칠세라 그것을 받으려고 법석을 떨었습니다.
설교자들이 바뀌지 않고 성장하지 않는데 그들의 설교를 듣는 성도들에게 영적인 성장을 기대한다는 것은 도저히 불가능합니다. 설교자가 신구약 성경을 나누지 못하고 그 말씀들을 누구에게 하신 것인 줄 모릅니다. 이스라엘에게 주신 말씀인지 신약성도들에게 하신 말씀인지 분간하지 못하고 하는 설교를 듣는 성도들이 어떻게 영적으로 성장할 수 있겠습니까?
지난 2018년 12월 울산 은성교회 박목사님을 만났을 때 그분이 저에게 하시는 말씀이 “요즈음도 이런 설교를 하는 목사님이 계시다니 놀랍습니다.”하셔서 저는 무슨 말씀을 하시는지 몰랐습니다. 요즘 성도들은 성공이나 출세의 비결을 원하지 죄나 회개나 지옥 같은 단어가 들어가는 설교를 싫어한답니다.
어떤 권사님은 말하기를, 자기가 아는 한 권사님은 믿음도 좋고 기도도 잘하고 열심히 봉사하는데 감사 헌금하는 꼴을 못 봤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제가 아니 권사님은 그 권사님이 감사헌금을 하는지 안 하는지 어떻게 아십니까? 했더니 자기교회는 십일조를 하고 감사헌금하면 주보에 그 이름이 적힌다는 것입니다. 그 말을 듣고 저는 머리를 한 대 얻어맞는 것 같았습니다.
헌금은 하나님께 하는 것으로 하나님과 자기만 아는 은밀한 일인데 왜 그것을 주보에 적습니까? 주님은 오히려 오른손이 한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하라 하셨는데 왜 그것을 공개합니까? 헌금한 사람은 주보에 실린 자기 이름을 보고 흐뭇했을 것이고 헌금하지 못한 사람은 부끄러워했을 것입니다.
주보에 적힌 자기 이름을 보고 마음이 즐거운 사람은 이미 땅에서 자기보상을 받은 것입니다. 그는 더 이상 하나님 앞에서는 받을 보상이 남아있지 않습니다. (마 6:1) “너희는 사람들에게 보이려고 그들 앞에서 구제하지 아니하도록 주의하라. 그렇지 않으면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너희가 보상을 받지 못하느니라. 2) 그러므로 너는 구제할 때에 위선자들이 사람들로부터 영광을 얻으려고 회당과 거리에서 하는 것처럼 네 앞에 나팔을 불지 말라. 진실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들은 자기들의 보상을 받았느니라. 3) 오직 너는 구제할 때에 네 오른손이 하는 것을 네 왼손이 모르게 하여 4) 너의 구제하는 일이 은밀한 가운데 이루어지게 하라. 그리하면 은밀한 가운데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친히 네게 드러나게 갚아 주시리라.”하셨습니다.
어떤 타락한 목사는 말하기를, 주보에 헌금한 성도 이름을 올리지 않으면 헌금이 현저하게 줄어든다는 말을 들은 적도 있습니다. 목사들이 주님께 받을 성도들의 복을 이 땅에서 썩을 것으로 바꿔 버립니다. 목사들이 성도들의 혼을 어디로 인도하고 있는지 도대체 모를 일입니다. 이것이 오늘날 목사들의 영적수준이니 참으로 슬픈 일입니다.
옛날에 어떤 노인네가 예배를 마치고 나오다가 배웅하는 목사님께 말하기를, 지난주에 자기가 헌금한 돈을 돌려 달라고 하더랍니다. 그래서 왜 그러세요? 하니까 주보에 자기 이름이 없어서 다시하려 한다고 하더랍니다. 이 얼마나 웃지 못 할 슬픈 일입니까? 누가 그렇게 가르쳤습니까? 그런 목사들의 변명은 재정의 투명성이라고 합니다. 재정은 주님 앞에 부끄럽지 않게 하면 됩니다. 또는 전통이라 하나 전통이 말씀위에 있으면 안 됩니다(마15:2-3).
우리의 신앙생활의 목적이 이 땅에서 잘 먹고 잘사는 것이라면 구태여 예수님을 믿지 않아도 됩니다. 장사를 하거나 돈놀이를 하면 됩니다. 세상 복 받는 것이 목적이라면 그 목적은 이미 이루어졌습니다. 제발 성경을 읽으십시오.
(고전 15:19) “만일 우리가 이 세상 삶을 사는 동안에만 그리스도 안에서 소망을 갖는다면 모든 사람들 중에 우리가 가장 비참한 자니라.”하셨습니다. 왜 목사님들은 성도들을 세상에서 가장 비참한 자들로 만듭니까? 회개해야합니다.
이 땅의 육신의 삶은 부자로 살든지 가난하게 살든지 잠시잠깐입니다.
(벧전 1:24) “모든 육체는 풀과 같고 사람의 모든 영광은 풀의 꽃과 같으니라. 풀은 마르고 그것의 꽃은 떨어지되 25) 오직 [주]의 말씀은 영원토록 지속되나니 복음으로 너희에게 선포된 말씀이 이 말씀이니라.”하셨습니다. 우리가 목마르게 소망하는 것은 이 땅에서 잘먹고 잘입고 부귀영화를 누리는 것이 아니라 다시 오마 약속하신 우리 구주 예수님을 기다리는 것입니다. 그분은 우리 각 사람의 행위에 따라 보상을 주시려고 속히 오신다고 하셨습니다(계22:12). 그런데 이 땅에서 보상을 다 받아 버린 사람들은 주님 앞에 부끄러워 어찌 나아갑니까?
오늘본문을 보겠습니다.
(빌 3:14)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하나님]의 높은 부르심의 상을 받으려고 푯대를 향해 밀고 나아가노라.” 오늘 여러분들은 세상의 복을 받으러 교회에 나왔습니까? 아니면 예수님께 상을 받으려고 달려가려는 목적이 있어 나왔습니까? 아직도 여러분들은 육신에 필요한 땅의 것을 요구하려고 나왔습니까? 아직도 받아야 할 육신의 복이 더 있습니까?
........17) 형제들아, 너희는 함께 나를 따르는 자가 되고 또 너희가 우리를 본보기로 삼은 것 같이 그렇게 걷는 자들을 주목하라. 18) (내가 여러 번 너희에게 말한 적이 있고 지금도 눈물을 흘리며 너희에게 말하는 많은 사람들 곧 그들이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원수로 걷느니라. 19) 그들의 마지막은 파멸이요 그들의 [하나님]은 그들의 배요 그들의 영광은 그들의 수치스러운 일에 있고 그들은 땅의 일들을 생각하느니라.) 20) 우리의 생활 방식은 하늘에 있으며 거기로부터 또한 우리가 [구원자] [주] 예수 그리스도를 기다리노니 21) 그분께서는 모든 것을 자기에게 복종시킬 때 사용하는 능력을 발휘하사 우리의 천한 몸을 변화시켜 자신의 영광스러운 몸과 같게 만드시리라.”
여러분들의 신앙생활에 영적인 뚜렷한 목표가 없다면 구원 없는 세상 사람들과 다를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이 세상 썩어질 것에 삶의 목적이 있는 사람이라면, 그는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원수일 뿐입니다. 아직도 이 땅에서 큰 복을 받고 잘먹고 잘입고 잘쓰고 성공하고 출세하는 것을 믿음의 척도로 여긴다면 그들의 하나님은 그들의 배입니다. 이 땅에서 성공했다는 말을 듣는 것을 즐긴다면 그들은 이미 모든 영광을 이 땅에서 다 받은 자들이요, 하늘에서는 수치스러운 일만 있을 것입니다.
이 땅에서의 짧은 신앙생활은 우리의 구원자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기 위한 준비기간이요, 영원한 생명 안에서 살아갈 것을 배우는 과정임을 알아야합니다. 우리의 달려갈 목적은 이 땅에서 복을 받고 부귀영화를 누리는 것이 아니라 구원자 예수님을 만나는 일이요, 그분과 같이 되는 것입니다.
(요일 3:2) “사랑하는 자들아, 이제 우리는 [하나님]의 아들들이니라. 우리가 앞으로 어떻게 될지는 아직 나타나지 아니하였으되 그분께서 나타나시면 우리가 그분과 같게 될 줄 아노니 이는 우리가 그분을 그분께서 계신 그대로 볼 것이기 때문이라. 3) 그분 안에서 이 소망을 가진 자마다 그분께서 순결하신 것 같이 자기를 순결하게 하느니라.”
제발 믿음에는 어린아이가 되지 말고 장성한 자가 되기 바랍니다. 입술로는 부활을 노래하면서 그들의 삶의 모양은 죽어도 이 땅을 떠나서는 안 될 사람들처럼 전쟁하고 있습니다. 입술로는 영적영적 하면서 이 땅의 썩을 것에서 눈을 떼지 못하는 자가 되지 마시기 바랍니다.
예수님처럼 바울처럼 살고 싶다고 노래하면서 주님의 영광을 위하여 복음을 전하다 매 맞는 것은 싫어합니다. 복음을 전하기 위하여 당하는 위험들을 싫어합니다. 한 혼을 주님께로 인도하기 위하여 겪는 배고픔이나 추위나 목마름을 싫어합니다. 그러나 바울은 그렇게 살았습니다(고후11:-27).
우리 모두는 신앙을 가장한 위선자가 아닌지 각각 자신을 돌아보아야합니다.
이제 우리 앞에 남아있는 소망은 부활의 몸을 입고 주님을 만나는 일뿐입니다.
슬프게도 오늘날 성도들에게 부활절은 있으나 부활의 소망은 없는 것 같습니다. 구원 받은 사람들이 부활의 몸에 대해서 제대로 알지 못하므로 어떻게 우리가 이 땅에서 주님과 함께 천년 동안 통치할까 의문을 갖게 됩니다. 부활의 몸은 주께서 말씀하신 대로 하늘에 있는 하나님의 천사와 같습니다(마22:30).
부활의 몸은 장가가고 시집가는 일이 없습니다. 다시 태어나면 나와 결혼해 줄래? 같은 진실게임은 전혀 필요하지 않습니다. 아이 낳고 기르거나 가르칠 필요가 없습니다. 부활의 몸은 병들거나 썩거나 죽을 몸이 아닙니다. 투명한 영의 세계에서는 더 이상 주를 알라 하지 않을 것입니다.
(히 8:11) 『그들이 각각 자기 이웃과 각각 자기 형제를 가르쳐 말하기를, [주]를 알라, 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가장 작은 자로부터 가장 큰 자에 이르기까지 모두가 나를 알 것이기 때문이라.』하셨습니다.
부활의 몸은 더 이상 이 땅에 집이나 돈이나 자동차나 패션이 필요 없습니다.
부활의 몸은 먹을 것에 신경 쓰지 않아도 됩니다. (롬 14:17) 『[하나님]의 왕국은 먹는 것과 마시는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님] 안에서 의와 화평과 기쁨이니라.』
부활의 몸은 아버지 집에 거하며(요14:1-3) 이 땅으로 출퇴근하며 육신 안에서 땅에 살아가는 자들을 통치합니다. 부활의 몸은 하늘의 몸, 영적인 몸이므로 시간과 공간, 즉 거리의 제약을 받지 않고 순간이동이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천사들이 이동할 때와 같이 부활의 몸은 다른 탈 기구가 필요하지 않습니다. 구약의 에녹이나 엘리야가 하늘로 올라 갈 때에도 비행기나 로켓 같은 기구가 필요하지 않았습니다.
(창 5:24) “에녹이 [하나님]과 함께 걷더니 [하나님]께서 그를 데려가시므로 그가 있지 아니하더라.” 우리의 휴거도 그와 같이 주께서 우리를 하늘로 채어 가실 것입니다(살전4:15-17).
엘리야는 불 말이나 불 병거가 아닌 회오리바람을 타고 하늘로 올라갔습니다.
(왕하 2:11) “그들이 여전히 가면서 이야기하는데, 보라, 불 병거와 불 말들이 나타나 그들 둘을 갈라놓으매 엘리야는 회오리바람을 타고 하늘로 올라가더라.”
신약에서는 전도자 빌립이 성령에 의하여 순간이동을 했습니다. 그가 사마리아에서 복음을 전하다가 예루살렘으로 가고, 거기서 가자로 내려가는 사막으로 이동하여 에티오피아 여왕 간다게의 내시에게 복음을 전하고 그에게 침례를 준 다음에 주의 영께서 빌립을 채어 가시므로 아소도로 순간 이동하여 복음을 전하고 또 가이사랴에 이르게 됩니다.
(행 8:38) “그가 명령하여 병거를 멈추게 한 뒤 빌립과 내시가 둘 다 물속으로 내려가니 그가 내시에게 침례를 주니라. 39) 그들이 물속에서 나와 올라올 때에 [주]의 [영]께서 빌립을 채어 가시므로 내시는 그를 더 이상 보지 못하더라. 내시는 기뻐하며 자기 길을 가되 40) 빌립은 아소도에 나타나 모든 도시를 두루 지나가며 선포하고 마침내 가이사랴에 이르니라.” 이런 일들을 통하여 그리스도께서 이 땅을 통치하실 때 부활의 몸을 입은 성도들이 어떤 삶을 살게 될 것인가를 미리 보여 주시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이 루스드라에서 복음을 전하다가 동족 유대인들에게 돌에 맞아 죽게 됩니다(행14:19). 그 때에 그는 영 안에서 셋째 하늘을 다녀오게 됩니다. 이것은 영적인 체험이지만 누구든지 부활의 몸을 입게 되면 그와 같이 거리나 공간이나 시간이나 물체의 제약을 받지 않고 이동이 가능함을 말합니다.
(고후 12:2) “내가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한 사람을 알았는데 그 사람은 십사여 년 전에 셋째 하늘로 채여 올라갔느니라. ......... 4) 그가 낙원으로 채여 올라가서 말할 수 없는 말들을 들었는데 사람이 그것들을 말하는 것은 법에 어긋나느니라.” 셋째 하늘을 낙원이라 합니다. 낙원은 하나님께서 계신 곳이며 구원 받은 성도들이 주님과 함께 천년왕국 통치가 끝나면 그곳에서 영원히 살게 됩니다.
이 땅에서 영적인 체험을 한 그들은 아직 부활의 몸을 입기 전이었지만 하나님께서는 사람들이 아직 육신 안에 있을 때 앞으로 부활의 몸을 입게 되면 어떤 삶을 살게 될지를 미리 보여 주셨습니다. 주님은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에게 자신의 부활의 모습을 미리 보여 주시고 엘리야와 모세의 부활의 모습도 보여주셨으며 그들의 순간 이동도 보여 주셨습니다.
(막 9:2) “엿새 뒤에 예수님께서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을 취해 따로 그들을 높은 산으로 이끌고 가사 그들 앞에서 모습이 변하시매 3) 그분의 옷이 빛나며 땅 위의 어떤 세탁공도 희게 할 수 없을 만큼 눈처럼 매우 희게 되었더라. 4) 거기에 엘리야가 모세와 함께 그들에게 나타나고 그들이 예수님과 이야기하거늘, ........ 8) 그들이 문득 주위를 둘러보니 오직 자기들과 함께한 예수님 외에는 더 이상 아무도 보이지 아니하더라.”
당시 제자들 중의 사도 요한이 나이가 가장 어렸으며 가장 오래 살았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습니다. 그가 늙은 나이에 밧모섬에 유배되어 영적인 체험을 하고 계시록을 기록하게 됩니다. 그도 주님이 “이리로 올라오라”하시는 말씀과 더불어 순간 이동을 통하여 셋째 하늘로 올라가 주님의 보좌를 보게 되었습니다.
(계 4:1) “이 일 뒤에 내가 바라보니, 보라, 하늘에 한 문이 열려 있더라. 내가 들은 첫째 음성 곧 나팔 소리같이 내게 이야기하던 음성이 이르되, 이리로 올라오라. 이후에 반드시 일어날 것들을 내가 네게 보이리라, 하더라. 2) 내가 즉시로 영 안에 있었는데, 보라, 하늘에 한 왕좌가 놓여 있고 그 왕좌에 한 분이 앉아 계시더라.”
우리 구원 받은 모든 성도들은 주께서 우리를 채여가실 때 순식간에 변화되어 부활의 몸을 입게 될 것입니다(고전15:51-53). 그리고 이 땅에 있게 될 7년 큰 환란이 끝나갈 즈음에 주님을 따라 부활의 몸으로 이 땅에 내려와 천년동안 그리스도와 함께 이 땅을 통치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잠시 주께서 부활의 몸을 입으시고 승천하시기 전까지의 모습을 살펴보겠습니다. 부활의 첫 열매요, 모델이신 주님은 부활의 아침 일찍 미명에 제일먼저 마리아를 만나셨습니다. 그분은 마리아에게 “내게 손을 대지 말라” 하셨습니다.
(요 20:17) “예수님께서 그녀에게 이르시되, 내게 손을 대지 말라. 내가 아직 내 [아버지]께로 올라가지 아니하였노라. 다만 내 형제들에게 가서 그들에게 이르되, 내가 내 [아버지] 곧 너희 [아버지], 내 [하나님] 곧 너희 [하나님]께로 올라간다, 하라, 하시니”
아침 일찍 마리아를 만난 부활의 주님은 같은 날 낮에는 엠마오로 가는 두 제자들을 만나셨고(눅24:13~) 저녁에는 유대인들을 두려워하여 숨어있는 제자들을 찾아 오셨습니다. 이는 무엇을 의미합니까? 부활의 몸은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받지 아니하므로 부활의 주께서 마리아를 마나신 뒤에 어느 순간 셋째 하늘에 다녀오셨음을 말합니다.
(요 20:19) “그 뒤 같은 날 곧 주의 첫날 저녁때에 제자들이 유대인들을 두려워하여 모인 곳에서 문들을 닫았는데 예수님께서 오셔서 한가운데 서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하시니라.” “문들을 닫았는데”어떤 물체도 부활의 몸의 이동을 방해하지 못합니다. 그냥 통과합니다.
부활의 주님은 주(週)의 첫날(일요일) 아침 아직 어두울 때에 마리아를 만나시고 낮에는 엠마오로 가는 두 제자들을 만나시고 저녁에는 두려움에 숨어있는 제자들을 찾아오셨습니다. 주님은 어느 사이 셋째 하늘에 다녀오셨습니다.
부활의 몸은 시간도 공간도 세상의 어떤 물체도 가로막지 못합니다.
저는 이 땅에서 셋째 하늘까지의 거리가 얼마나 되는지 잘 모릅니다. 인간의 능력으로는 누구도 그 거리를 측량할 수 없습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라는 이 땅은 광대한 우주의 수많은 별무리들 중에 태양계라는 별무리에 속해있으면서 태양을 돌며 자전한다고 과학자들은 말합니다.
과학자들은 지구에서 태양의 거리가 약 1억5천만km이며 빛의 속도로 가면 8분20초가량 걸린다고 합니다. 빛의 속도란 1초 동안에 약 4만km 지구의 둘레를 일곱 바퀴 반 돈다고 합니다. 태양을 중심으로 돌고 있는 별무리를 태양계라고 말하는데 이런 별무리들이 우주 공간에 몇 천억 개나 되는지 모른답니다. 성경에는 공기가 있고 새들이 나는 하늘을 첫째 하늘이라 하고 우주 공간을 둘째 하늘이라 합니다. 그 둘째 하늘이 얼마나 광활한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 최근 유럽남방천문대(ESO) 연구진은 국제학술지 ‘천문학 및 천체물리학 저널’ 최신호에 별자리 ‘망원경자리’ 인근에서 지구에서 1000광년 떨어진 블랙홀을 발견했다고 밝혔습니다. 지금까지 발견된 블랙홀 중 지구에서 가장 가깝고 블랙홀 주변을 도는 별을 맨눈으로 볼 수도 있는 거리라고 합니다.
1초에 약 30만㎞를 가는 빛의 속도로 1000년을 달려야 하는 ‘1000광년’이라는 거리를 ‘코앞’이라고 표현해도 될까요? 문용재 경희대 우주과학과 교수는 “우리 은하의 지름인 10만 광년보다 100분의 1이나 짧은 거리에 블랙홀이 있다는 얘기”라며 “천문학적 개념으로는 가까운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실제로 우리 은하 중심의 블랙홀은 지구에서 2만5000광년 거리에 있고, 지난해 포착된 블랙홀은 5500만 광년이나 떨어진 다른 은하에 있습니다. 출처 [경향신문 이정호 기자 run@kyunghyang.com 2020.05.10. 21:55] ◆
저는 지금 과학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둘째 하늘의 우주공간이 얼마나 큰지를 말합니다. 그러한 그 광대한 둘째 하늘을 지나고 깊음의 물을 덮고 있는 유리바다 위에 셋째 하늘이 있습니다. 그곳에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가 있으며 우리가 부활의 몸을 입고 영원토록 주와 함께 살 아버지 집이 있습니다. 인간의 힘으로는 그 거리를 측량할 길이 없습니다. 그러나 부활의 몸은 수천광년 거리와 공간을 순식간에 오고 갈 수 있다는 말을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부활의 몸을 입고 하늘에 오르기 전까지는 하나님의 창조의 모든 것을 확실하게 알 수 없습니다. 주님은 과학이라는 것을 거짓되다고 말씀하십니다. (딤전 6:20) 『오 디모데야, 속되고 헛된 말장난과 또 거짓으로 과학이라 불리는 것의 반론들을 피하며 네게 맡긴 것들을 지키라.』 과학자들이 주장하는 것들은 진리가 아닙니다. 진리는 하늘과 땅이 없어지기 전에는 변하지 않지만 과학은 새로운 발견이나 새로운 학설이 나오면 변하기 때문에 진리가 아닙니다.
영의 세계에서는 이 땅의 육신이 받는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받지 않습니다.
영원한 세계에서는 모든 것이 현재입니다. 투명합니다. 과거도 미래도 없습니다. 이러한 사실을 모른다면 혼이 구원 받고 주님과 영원히 함께 산다는 뜻을 이해하지 못합니다. 이처럼 영적인 일들은 믿음으로만 이해가 가능합니다.
(롬 1:17)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믿음에서 믿음까지 계시되어 있나니 이것은 기록된바,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 믿음을 통한 구원은 하나님의 은혜의 선물입니다. 제발 주님의 은혜로 구원 받았다면 기록된 말씀을 기록된 대로 믿으십시오. 교회가 환란을 통과한다는 가짜뉴스를 듣고 쓸데없이 두려워하거나 떨지 마십시오. 666 짐승의 표로 협박하는 거짓 목사들을 조심하십시오.
지난주에는 구약 이스라엘백성의 이름이 기록된 주의 책과 오늘날 은혜의 시대에 구원받은 교회가 그리스도를 믿고 어린양의 생명책에 그 이름들이 기록되어 있음을 살펴보았습니다. 하늘에 소망을 둔 여러분들에게 성경을 반복적으로 가르치는 것은 마귀들의 유혹에 속지 않게 하기 위함입니다.
다시 강조하지만 구약의 특별한 백성 가운데는 열두 지파가 있고 그중에서도 레위지파의 아론의 자손들만이 제사장이 될 수 있었으나 신약 은혜의 시대에서는 누구든지 어느 나라든지 언어와 족속과 민족과 피부색과 상관없이 복음을 듣고 주 예수 그리스도를 자신의 구원자로 믿고 받아들인 자들을 주님의 특별한 백성이 되게 하시고 주께서 이 땅에서 천년 동안 통치하실 때에 성도각자의 행위의 보상에 따라 우리를 왕과 제사장으로 삼으시고 만왕의 왕 되시는 주님과 함께 천년동안 땅에서 통치하게 하실 것입니다.
(계 5:9) “그들이(24장로) 새 노래를 불러 이르되, 주께서 그 책을 취하시고 그 책의 봉인들을 열기에 합당하시나이다. 주께서 죽임을 당하시고 주의 피로 모든 족속과 언어와 백성과 민족 가운데서 우리를 구속하사 [하나님]께 드리셨으며 10) 또 우리 [하나님]을 위해 우리를 왕과 제사장으로 삼으셨으니 우리가 땅에서 통치하리이다, 하더라.”
큰 환란이 시작되기 전 하늘로 채여 올려 진 성도들이 하나님의 보좌 앞에서 는 스물네 장로로 불려 집니다. 스물네 장로들은 구약성도들과는 전혀 상관없습니다. 구약의 열두 지파와 신약의 열두 사도와 스물네 장로는 아무런 상관이 없습니다. “주께서 죽임을 당하시고 주의 피로 모든 족속과 언어와 백성과 민족 가운데서”구원 받고 하늘에 오른 자들이 스물네 장로로 불리며 이 땅에 내려와서는 왕과 제사장이 되어 주님과 함께 천년동안 통치하게 될 것입니다.
믿음으로 받은 여러분의 구원은 천하보다도 더 값진 것입니다. 그것은 곧 예수 그리스도 이신 하나님의 피로 사신 것입니다. (행 20:28) “그러므로 너희 자신과 온 양 떼에게 주의를 기울이라. [성령님]께서 너희를 그들의 감독자로 삼으사 [하나님]의 교회 곧 그분께서 자신의 피로 사신 교회를 먹이게 하셨느니라.”
여러분들의 죄가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깨끗해 졌음을 믿습니까? 주께서 여러분들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셨다고 믿습니까? 여러분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여러분들의 죄 값이 치러졌다고 믿습니까? 그렇다면 여러분들은 여러분의 것이 아니고 주님의 것임을 인정하십시오.
(고전6:20b) “주께서 값을 치르고 너희를 사셨느니라........," (고전7:23) "주께서 값을 치르고 너희를 사셨으니 너희는 사람들의 종이 되지 말라." (엡2:8) “너희가 믿음을 통해 은혜로 구원을 받았나니 그것은 너희 자신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니라.”
이제 주께서 오실 때가 심히도 가까웠음을 누구도 부인하지 못할 것입니다.
이제는 썩어질 땅에 것에 애착을 갖지 마시고 하늘의 것, 영원한 것, 주님의 나라를 사모하여 더 이상 땅의 것에 매이지 마시기 바랍니다. 아직도 땅의 것, 육신의 것, 썩어질 것들에 마음이 있다면 회개해야합니다.
구원 없는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여 그들을 주님께로 인도하는 일도 소중한 일이지만 이미 구원 받은 자들의 눈을 열어 썩어질 육신의 것, 멸망 받을 땅의 것에서 영원한 것, 주님의 보상에 마음을 두시기를 진심으로 간구 드립니다. 더 이상 땅의 썩을 복을 구하는 자가 되지 말고 영원한 복을 받았음을 감사하고 영원한 빛 가운데로 달려가시기를 축원합니다.
제발 영적인 눈을 가지고 하늘을 보십시오. 위대하신 하나님 곧 우리의 구원자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스러운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말씀으로 설교를 마칩니다.
(딛 2:11) “구원을 가져다주시는 [하나님]의 은혜가 모든 사람에게 나타나 12) 우리를 가르치시되 경건치 아니한 것과 세상에 속한 정욕들을 우리가 거부하고 이 현 세상에서 맑은 정신을 가지고 의롭게 하나님의 뜻대로 살며 13) 저 복된 소망과 위대하신 [하나님] 곧 우리의 [구원자]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스러운 나타나심을 기다리게 하셨느니라.”
2020-05-24 12:58:46


   

관리자로그인~~ 전체 1490개 - 현재 1/75 쪽
1490
2020-07-03
2
1489
2020-06-28
4
1488
2020-06-20
13
1487
2020-06-13
14
1486
2020-06-04
18
1485
2020-05-31
20
2020-05-24
18
1483
2020-05-17
19
1482
2020-05-10
14
1481
2020-05-03
33
1480
2020-04-28
16
1479
2020-04-19
16
1478
2020-04-18
37
1477
2020-04-10
30
1476
2020-02-23
47
1475
2020-02-23
42
1474
2020-02-16
46
1473
2020-02-16
43
1472
2020-02-09
51
1471
2020-02-09
20

[맨처음] .. [이전] 1 [2] [3] [4] [5] [6] [7] [다음] .. [마지막]

 
Phone: (032) 421-2609 & (011) 389-5994 E-Mail: mykjv@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