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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원광 [ E-mail ]
  잠시 즐기는 죄의 쾌락보다 믿음의 보상을
  http://av1611.co.kr

제목: 잠시 즐기는 죄의 쾌락보다 믿음의 보상을
■ 본문: (히 11:24~26) “24) 믿음으로 모세는 나이가 들었을 때에 파라오의 딸의 아들이라 불리는 것을 거절하고 25) 잠시 죄의 쾌락들을 즐기는 것보다 오히려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 받는 것을 택하였으며 26) 또 그리스도의 치욕을 이집트의 보화보다 더 큰 재물로 여겼으니 이는 그가 주께서 보상으로 보답해 주시는 일에 관심을 두었기 때문이니라.”
오늘 말씀의 제목은 ‘잠시 즐기는 죄의 쾌락보다 믿음의 보상을’입니다.
그제는 제가 근무했던 **공인중개사사무소를 잠시 방문했었습니다. 소장님과 대화를 나누면서 요즈음 경기가 많이 어려운데, 부동산 분야는 더 많이 어렵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그 와중에도 주변의 몇몇 중개사들은 정직하지 않고 착하지 않게 사업을 하는데도 돈을 제법 벌어간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자신은 하나님을 믿는데도 사업이 어렵고 점점 힘들어져 지쳐가고 있어서 약간은 하나님을 원망하는 것 같은 말이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이렇게 말해드렸습니다. 우리가 믿고 있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향해 원하시는 바는, 우리의 삶이 이 땅에서 잘 먹고 잘 사는 것만이 최종목적이 아니니까, 사업이 많이 힘들고 어려워도 예수 그리스도의 믿음으로 정직하고 선하게 사업을 해야 하나님이 보상해 주시는 때에 영원이라는 시간을 어떻게 보낼지가 결정되니까, 지금 사업을 하면서도 정직하고 선한 방법으로, 믿지 않는 사람들보다 두세배 더 부지런히 연구해서 나쁜 방법으로 사업하는 분들과 경쟁하더라도 선으로 악을 이겨야 한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이런 예는 누구에게나 다가올 수 있습니다. 기말고사를 앞둔 ○○○ 학생이 90점 이상을 받으면 아버지로부터 큰 용돈을 받기로 약속했고, ○○○에게는 친한 친구가 있는데, 그 친구는 시험 이틀 전에 시험문제를 불법으로 유출해서 친한 친구인 ○○○에게 “시험문제를 줄테니, 비밀로 하고 너만 공부해라”고 한다면, ○○○는 유출된 시험지를 받아서 공부를 하고 아버지에게서 용돈을 받아야 할까요, 아니면 자신이 열심히 공부한 만큼 정직하게 시험을 봐야 할까요?
이런 이야기는 선하게 살려는 성도라면 누구나 공통적으로 겪게 되는 인생의 모습일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런 경우에서 어떤 선택을 하며 살고 있는지 스스로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이제 우리는 히브리서 11장을 보려고 하는데요. 이 장은 성경에서 ‘믿음의 장’이라고 불리고 있습니다. 이 책에는 우리를 위해서 본보기로 살아온 구약시대 믿음의 영웅들의 명단이 기록되어 있는데요. 그들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믿음으로 승리한 삶을 살았던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이 히브리서 11장을 단순히 믿음의 장이라고 하지만, 사실 그 이상의 책입니다.
히브리서 11장이 중요하다고는 하지만, 히브리서 전체가 우리에게 주는 주제를 결코 놓쳐서는 안 됩니다. 히브리서의 핵심 주제는 믿음의 승리에 미치지 못하고 있는 생활에 대한 엄숙한 경고입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받는 자들이 자기가 받은 큰 구원을 소홀히 여기지 않도록 호소하면서, 믿음으로 사는 데서 오는 모든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갓난 아이의 신앙에서 더욱 성장하도록 권면하는 책입니다.
히브리서가 주는 경고를 간단히 살펴보면, 히브리서 2:1절에 우리에게 주어진 여러 가지 은혜의 기회들을 흘려보낼 위험성에 대한 것, 2:3절에 이렇게 큰 구원을 소홀히 여기는 것, 4:1절에 승리에 미치지 못할 위험성에 대한 것, 5:12절에 영적인 어린아이에 머무르게 될 위험성에 대한 것 등이 계속해서 우리 앞에 제시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그때나 지금이나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주님의 바로잡아 주심을 거부하며, 말씀에서 너무 멀리 가 버려 그 마음이 강퍅하게 되는 지경에까지 이르며, 다시 그들을 회개케 하는 것이 불가능하게 될 지경입니다. 우리의 신앙생활에서 우리가 알고 있는 죄를 스스로 심판하지 못하는 상황이 되풀이된다면, 우리에게도 ‘배교(떠내려감)’라는 결과가 나올 수도 있습니다. 그렇게 되면 안 됩니다. 이와 같은 히브리서에는 믿음에서 떠나 생활을 하는 사람에게 하나님께서 말씀하심으로 바로잡아 주려는 목적이 있습니다.
그래서 히브리서 12장에서는 “주께서는 사랑하시는 자를 징계하신다.”고 했습니다. 아직 소망이 있고 완전함으로 돌아서기를 바라는 자녀들을 징계라는 도구로 사랑하시는 것입니다.
이 주제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이런 질문을 하기도 합니다. ‘하나님께서 자기 자녀들을 그처럼 엄격히 다루신다면, 도대체 누가 승리를 얻을 수 있단 말입니까? 그런 경우 주님으로부터 칭찬을 획득하거나 받을 수 있을 사람이 과연 있을까요?’
그런데 바로 이 질문에 대한 답이 11장에 나와 있습니다. 실제로 믿음으로 살고 믿음의 승리가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이 주시는 경고의 말씀에 주의를 기울이고자 하는 마음만 있다면, 믿음의 승리는 우리도 가능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첫 믿음의 확신을 확고하게 끝까지 굳게 붙들고자 하는 마음이 있다면, 언제든지 승리가 가능합니다. 그 이유는 우리에겐 중보자요 대제사장이신 주님께서 돕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또한 히브리서 11장은 우리를 격려하시기 위해서 몇몇 예를 열거해 주고 있습니다. 아벨 에녹 노아 아브라함 사라 이삭 야곱 요셉 모세 라합 기드온 바락 입다 삼손 다윗 사무엘 그리고 많은 대언자들이 있습니다. 성경에 이름이 나와 있는 이 사람들의 믿음의 특징이 무엇인지 살펴보면, 우리가 믿음으로 살아가려는데 큰 도움이 될 것입니다.
이 믿음의 선배들은 남녀를 불문하고 우리와 똑같은 성정을 지닌 사람들입니다. 그들도 완전한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흠이 많지만 그럼에도 믿음으로 승리를 얻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도 소망과 희망이 있습니다. 어찌보면 그들은 오늘날 우리가 가지고 있는 영적인 조명보다 훨씬 더 적은 빛을 소유하고 있었는데도 일시적인 패배나 자주 걸려 넘어지는 것이나 뒤로 물러서는 것, 그리고 말할 수 없는 반대들에 맞서며, 그들은 하나님이 계신 하늘을 향해 위로 계속 전진해 나갔습니다. 물론 승리는 싸움을 의미하며 싸움이 없는 곳에는 또한 승리도 있을 수 없는 것은 당연합니다.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구원은 값없이 거처 받습니다. 그러나 믿음의 승리는 자발적인 희생을 의미합니다. 경주에서 이기는 것은 훈련이 전제됨을 의미하는 것처럼 믿음의 삶에도 말씀을 믿고 사는 훈련이 필요하고, 그런 훈련을 잘 받아야 영적인 전쟁에서 믿음으로 승리의 맛을 볼 수 있습니다.
히브리서 11장은 일반적으로 네 부분으로 구분할 수 있는데요. 1) 믿음에 대한 정의 (1~3절), 2) 믿음의 예들(4~32절), 3) 믿음을 통한 승리의 대가(33~38절), 4) 승리를 가져오는 믿음의 보상(39~40절) 입니다.
그러면 믿음(faith)이란 무엇일까요?
믿음이라는 것은 우리가 절대적으로 신뢰할 수 있는 그 누군가가 그렇다고 말했기 때문에 그 말에 근거해서 더 이상의 증거를 요구하지 않고서 그 말 그대로 사실로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우리는 아무나가 한 말을 다 믿지는 않습니다. 어떤 한 개인의 말에 우리가 믿음을 두게 된다면 그것은 여러 가지 요소에 근거한 것입니다. 우선 우리의 신뢰는 그 말을 한 사람의 신뢰성과 평판에 근거합니다. 만약 우리로 하여금 믿으라고 한 그 사람이 정직하지 못하다는 평판이 있다면 사전에 신뢰감을 가질 수 없고, 그 사람에게 우리의 믿음 두기를 거부합니다. 그러나 오랫동안 신뢰감을 쌓아왔고, 그 사람을 믿을만하다는 평판이 있다면 그때는 우리의 믿음을 가지고 그 사람의 말을 신뢰하게 됩니다.
마찬가지로 참된 구원을 가져다주는 성경적 믿음도 그 누군가의 말을 믿음으로써 얻게 되는데, 다른 어떤 증거와는 전혀 상관없이 주 하나님의 말씀을 믿음으로써 얻게 됩니다. 성경은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에 대해 믿음을 가짐으로써 구원을 받는다고 가르칩니다. 우리는 그 누군가가 신뢰할 만한 사람이라고 입증이 된다면 그 사람의 말을 믿고 따르는 것과 마찬가지로 하나님께서는 우리로 하여금 자신의 말씀의 평판에 의해 그분을 믿도록 하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 각자가 성경기록에 대해 믿음을 둘 수 있는가?의 이유를 찾는 시간이 있어야 합니다. 우리는 이유(reason, 근거) 있는 믿음을 갖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믿는 그분의 말씀에 대한 평판은 하나님의 영원한 신실(faithful)하심에 근거하고 있습니다.
요한은 요한일서 5:9~10절에서 이렇게 말씀합니다.
(요일 5:9~10) “9) 만일 우리가 사람들의 증언을 받을진대 [하나님]의 증언은 더 크도다. 이것은 [하나님]의 증언이니 곧 그분께서 자신의 [아들]에 관하여 증언하신 것이니라. 10)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자는 자기 안에 이 증언을 가지고 있고 [하나님]을 믿지 않는 자는 그분을 거짓말하는 자로 만들었나니 이는 [하나님]께서 자기 [아들]에 관하여 주신 증언을 그가 믿지 아니하기 때문이라.”
마지막 문장을 주목해 보세요. 누군가가 구원받기를 원한다면 하나님께서 자신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에 관해 주신 말씀을 믿으라는 것입니다. 믿음은 들음에 의해 오며 들음은 [하나님]의 말씀에 의해 오는 것, 이것이 성경적 믿음입니다(롬 10:17).
이런 믿음으로 성경의 첫 구절을 믿으면 모든 것을 믿을 수 있는 것입니다.
(창 1:1) “처음에 [하나님]께서 하늘과 땅을 창조하시니라.”
성경의 첫 장, 첫 줄을 믿지 못하면 기록된 모든 말씀을 믿지 못합니다. 그렇게 모든 불신은 창세기 1:1절, 바로 여기에서 시작됩니다. 누군가가 창세기 1:1절을 믿음으로 하나님께서 항상 계시다는 사실을 믿는다면, 그분께서 무(無)로부터 온 우주를 말씀으로 만드셨음을 믿는 것입니다. 이 창세기 1:1절만 확실히 믿는다면 성경 전체를 믿을 수 있고, 성경의 모든 기적들도 믿을 수 있으며, 하나님께서 인간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실 수 있다는 사실도 믿을 수 있습니다. 그렇게 그분이 사람과 하나님이 동시에 될 수 있다는 것도 믿을 수 있고, 온 세상을 위해서 죽으실 수 있다는 사실도 믿을 수 있습니다. 또한 그분이 부활하셨다는 말씀도 믿을 수 있습니다. 그분의 피가 곧 하나님의 피요, 그 피가 우리의 죄를 씻을 수 있다는 사실도 믿을 수 있습니다. 그분이 우리의 구원자요, 하나님의 아들로 오신 그분이 참 하나님이라는 성경 말씀도 믿을 수 있습니다.
그렇게만 되면 모든 사람이(물론 여러분도 포함) 죄인이란 사실을 믿을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그렇게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분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그분을 영접하는 것을 제외하고는 그 어떤 방법으로도 결코 구원받을 수 없다는 사실도 믿게 됩니다. 더욱이 그 믿음은 구원만 주는 권능이 아니라, 살아가는데 영적인 싸움에서 승리를 가져다주는 권능입니다. 바로 이것이 히브리서를 통해서 우리가 배워야 할 핵심입니다.
그리스도 안에 있던 갓난아기들이 영적인 어른으로서 성장할 수 있도록 해 주는 것이 바로 믿음입니다. 성경은 히브리서를 통해 믿음의 정의를 이렇게 내리고 있습니다.
구약성경에 나오는 16명의 성도들의 이름을 거론하고 있고, 그리고 누군지 모르지만 다른 몇몇 사람들에 대해서 언급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사람들은 우리와 같이 공통적으로 있는 잘못과 약함을 그대로 지녔습니다. 그들은 한 때, 실족하고 넘어졌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그렇게 넘어진 상태로 머물러 있지 않았고 일어섰으며 회개했고 인내했고 그리고 결국 믿음을 지켜 승리할 때까지 다시 전진했습니다.
그들이 공통적으로 경험한 바는 ‘승리는 쉽게 오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모든 경우에서 승리는 희생을 동반했습니다. 아벨의 승리는 그의 생명을 대가로 치러야 했고, 에녹의 승리는 절망적으로 악한 시대에서 하나님과 단독으로만 동행했을 때 세상으로부터의 칭찬이나 갈채를 받지 못하는 희생을 치러야 했고, 노아의 승리는 그에게 실망이라고 하는 대가를 치르게 했습니다. 왜냐하면 그가 그렇게 오랫동안 열심히 배를 만들며 말씀을 전파했는데도 단지 자기와 자기 가족 일곱 사람만 방주 안으로 들어갔기 때문입니다. 아브라함의 믿음의 승리는 그에게 이삭을 희생물로 드리도록 요구하는 시험을 통해 쟁취했습니다. 그 시험에서 그가 순종함으로써 하나님께서는 은혜를 베풀어 이삭을 되돌려 주셨습니다. 이삭의 승리는 그의 의지를 내드리는 것이었습니다. 그의 사랑하는 아들 첫째 아들 에서에게 호의를 베풀고자 하는 욕망을 포기하고, 둘째 아들 야곱에게 축복을 주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야곱은 그를 속인 자였습니다. 에서에게 주고자 했던 그 축복을 야곱에게 주어야만 하는 희생을 치렸습니다. 야곱의 승리는 절름발이라는 희생의 대가를 치르고서야 왔습니다. 그는 브나엘 땅의 압복 여울에서 밤새도록 씨름(wrestled)을 했고 승리자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그 사건으로 인해 남은 평생 절름발이가 되었습니다. 요셉은 자기의 형제들에 의해서 멸시당하고 이국 땅에 노예로 팔렸을 뿐 아니라, 타국의 지하 감옥에서 총 13년을 인내함으로써 승리를 쟁취했습니다. 모세는 이집트의 부귀영화와 왕자에 대한 자신의 권리를 포기함으로써 승리의 값을 치렀습니다. 이런 식으로 우리는 나머지 모든 믿음의 영웅들에게도 동일한 일들을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오늘 말씀의 내용을 아시겠죠! 잠시 즐기는 죄의 쾌락보다 믿음의 보상을 택하라는 것입니다.
이들은 모두 다 단순한 믿음에 의해 구원 받았습니다. 그러나 믿음의 승리는 희생을 통해서 쟁취되었습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따른다는 것은 우리의 길에 겟세마네 동산과 갈보리가 있음을 의미합니다. 그러나 주님을 따르는 것의 보상은 부활의 영광으로 우리를 이끌어 줍니다. 여러분도 주님의 제자로 살아가고자 하는데, 세상으로부터 받게 될 치욕과 손실을 두려워하거나 세상과 타협하지 아니하고 분리된 삶을 살고자 하는 것의 대가가 너무 클까 봐 두려워서, 한 발 뒤로 물러서 있는 상태는 아니십니까? 성경은 모든 믿는 자들에게는 다음과 같은 말씀을 하셨습니다.
(롬 12:1~2) “1)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긍휼을 힘입어 너희에게 간청하노니 너희는 너희 몸을 거룩하고 [하나님]께서 받으실 만한 살아 있는 희생물로 드리라. 그것이 너희의 합당한 섬김이니라. 2) 너희는 이 세상에 동화되지 말고 오직 너희 생각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그 선하시고 받으실 만하며 완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입증하도록 하라.”
1절에 드리라, 2절에 입증하라입니다.
많은 성도들이 세상의 보이는 것에 속아 사는 경향이 있습니다. 보이는 것이 다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영화 메트릭스 1편을 보면 “세상의 보이는 것은 보이지 않는 것들로 만들어졌다”는 이 말씀에 의미를 잘 보여주고 있는데요. 우리가 싸워야 할 상대는 보이지 않는 마귀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보이는 사람과는 싸우면서 보이지 않는 마귀는 보지 못하기 때문에 싸우려 하지 않습니다. 이같이 보이는 것이 다가 아닙니다. 믿음의 승리는 마귀와의 치열한 영적인 전투에서 이기는 것을 말합니다. 상처와 흉터와 실망과 희생이 따름을 의미합니다. 그러나 승리를 위해 싸우겠다는 의지만 있다면, 전능하신 주님의 도우심이 있으므로 결국에는 영광스러운 승리의 유업과 왕관을 받게 될 것입니다.
히브리서 11장에서 믿음의 영웅들이 어떤 대가를 치렀는지 잘 주목해 보십시오.
(히 11:35~38) “35) 여인들은 자기들의 죽은 자를 다시 살려서 받기도 하며 다른 이들은 고문을 당하되 더 좋은 부활을 얻으려고 구출받기를 원치 아니하였으며 36) 또 다른 이들은 심한 조롱과 채찍질뿐 아니라 참으로 또한 결박과 옥에 갇히는 시련도 겪었으며 37) 돌로 맞기도 하고 톱으로 잘리기도 하며 시험을 받기도 하고 칼로 죽임을 당하기도 하며 양 가죽과 염소 가죽을 입고 떠돌아다니며 궁핍과 고난과 고통을 당하였으니 38) (세상은 이런 사람들에게 합당치 아니하였느니라.) 그들이 사막과 산과 동굴과 땅굴에서 떠돌아다녔느니라.”
이런 대가를 치른 그들에게는 자신들이 치른 희생보다 비교할 수 없는 더 큰 보상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에게 그 정도로 희생을 요구하시지는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은혜롭게도 이와 같이 혹독한 것들로부터 우리를 지키시고 보호하셨습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어느 때 하나님을 불평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몸으로 그분을 섬기는 일에 바치라고 요구하면 불평합니다. 우리의 시간으로 그분을 섬기라고 요구하면 불평합니다. 우리의 재물로 그분을 섬기라고 요구하면 불평합니다. 세상으로부터 우리를 구별시키라고 말씀하실 때, 죄로 가득한 쾌락들을 금하라고 명하실 때, 악한 것과 타협을 거부하라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요구하시면 우리는 곧 불평과 불만을 늘어놓고 맙니다. 그분께서는 주님을 위해 증언하라고 우리에게 요구하고 계십니다. 그런데 그 증언 때문에 우리가 돌로 맞는 법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말씀을 공부하라고 하십니다. 그런데 우리는 공부하다가 감옥에 갇힌 적이 없습니다. 그분은 우리에게 함께 모이는 일을 폐하지 말고 서로 권면하여 모이기를 힘쓰라고 하십니다. 오늘날 우리는 믿음의 모임이 다른 사람들에 의해서 방해받은 적도 없습니다. 우리는 너무 편안한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우리의 모든 것을 그분께 내어 맡기는 일을 거부하고 불평을 합니다. 히브리서에 나온 믿음의 영웅들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그들이 특별해서 믿음을 끝까지 지킨 것이 아니라, 그들은 모두 잠시 세상이 주는 죄의 쾌락보다 하나님이 주시는 믿음의 보상을 더 크게 여기고 선택하고 스스로 희생을 치렀습니다. 여러분에게도 동일한 믿음의 소신이 있으실거라고 생각합니다. 만약 그분을 위해 작은 희생을 하는 것도 불평하고 싫어한다면, 우리는 부끄러워해야 합니다.
우리는 사람들로부터 이상한 집단의 사람들이라든가 광신자라는 소리를 들을까봐 겁내고 있으며, 세상의 쾌락과 즐거움에 끌려서 세상과 짝을 이루고 함께 나아가고 있습니다. 그리스도를 위하여 두려움과 타협 없이 굳게 서 있기를 외면한 결과로 장차 그리스도의 심판석에서 보상을 상실하게 된다면, ‘그 때 잘 할 걸’하며, 얼마나 억울하겠습니까? 하나님께서 우리를 용서하시고 우리를 구원하신 기쁨을 위해 십자가에서 고난을 당하신 그분을 향해 우리의 눈을 고정시키도록 해야 합니다.
“믿음”이라는 단어는 히브리서에서 21번 언급됩니다. 그리고 “믿음을 통하여”라는 표현이 5번 나오고 “믿음으로”라는 표현이 13번 사용됩니다. 더우기 히브리서 11장은 구약성경에 나오는 믿음의 영웅들이 승리한 믿음을 기록한 장입니다. 이들 믿음의 영웅들은 구원에 이르는 단순한 믿음, 그 이상의 믿음을 지나고 있었습니다. “믿음에서 믿음까지, 믿음으로 구원받고 믿음으로 살아가는”(롬 1:17). 그들은 구원을 가져다주는 믿음에 보상과 유업이 더해진 자라난 믿음을 가지고 있었는데, 그것은 자기 희생과 세상으로부터의 분리와 주님을 섬김이라는 열매를 맺는 행위가 있는 그런 믿음이었습니다. 그들의 믿음은 조용히 멈춰 있는 믿음이 아니라, 완전함을 향해 끊임없이 나아갔던 믿음이었습니다. 그들은 자신의 믿음을 지키기 위해 어떤 희생도 감수했습니다.
아벨의 올바른 경배에서 믿음을 보고, 주님과 동행하는 에녹에게서 믿음을 보며, 일하며 복음을 전하고 있는 노아의 모습에서 믿음의 생활이 잘 예시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희생 없이 된 것이 아닙니다. 이들 앞에는 많은 장애물이 놓여 있었습니다. 아벨은 그의 형제 가인의 증오를 대면해야 했었고, 에녹은 하나님과 동행하기 위해 세상으로부터 자기 자신을 구별해야만 했었으며, 노아는 그가 마른 땅 위에 오랫동안 방주를 지을 때, 그리고 다가올 홍수의 심판을 전파했을 때, 군중들의 놀림과 조롱을 감내해야만 했습니다. 이 모든 것의 승리는 우리의 관점의 문제입니다. 이들 믿음의 영웅들은 눈앞에 보이는 당장의 순간과 현재를 뛰어넘어, 멀리 영원을 바라보았습니다. 그들은 그들의 모든 시험을 미래의 관점으로 바라보고 험한 장애물들을 뛰어 넘었습니다. 그들은 그들의 모든 희생을 영원이라는 저울에다 달았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이 주시는 그들의 보상에 초점을 맞추었습니다. 그들은 “작은 믿음”에 만족하지 않았고, 큰 믿음을 얻기 위해 희생을 감수했습니다. 그들은 바울처럼 세상의 모든 것을 손실로 여겼습니다. 믿음의 마지막 결승점에서 상급을 얻기 전까지는 우리도 이와 같은 과정을 반복해서 겪어야 합니다. 마치 올림픽에 나가기 위해서 4년이라는 기간을 희생하고 땀을 흘리고 연습을 한 결과로 시상대에서 금메달을 목에 걸게 되는 모습과 비슷하다고 여기면 됩니다. 믿음을 통한 일이 없는 보상은 없습니다.
히브리서 11:6절 말씀을 주목해 보시기 바랍니다.
(히 11:6) “그러나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게 하지 못하나니 그분께 가는 자는 반드시 그분께서 계시는 것과 또 그분께서 부지런히 자신을 찾는 자들에게 보상해 주시는 분이심을 믿어야 하느니라.”
보상해 주시는 하나님, 우리가 믿고 섬기는 분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부르셨을 때 그는 주님께서 자신을 어디로 인도하실지 알지 못했지만, 그는 말씀대로 순종했습니다. 아브라함이 그랬듯이 구약의 승리자들은 멀리 있는 보상을 내다보았습니다. 이것이 히브리서 11장이 우리에게 주는 승리의 비결입니다. 우리의 눈을 미래의 영광에 고정시키는 것입니다.
한 절 더 찾아볼 건데요, 히브리서 11:35절에는 “더 좋은 부활”이라는 표현이 나옵니다.
(히 11:35) “여인들은 자기들의 죽은 자를 다시 살려서 받기도 하며 다른 이들은 고문을 당하되 더 좋은 부활을 얻으려고 구출받기를 원치 아니하였으며”
“더 좋은 부활”이란 무슨 의미일까요?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기 자신의 것, 즉 몸 된 교회를 데려가시기 위해서 다시 오실 때 우리 구원받은 모든 자들은 첫째 부활에 함께 있게 될 것입니다. 이것은 좋은 부활입니다. 그러나 믿는 모든 자들이 다 “더 좋은 부활”을 얻게 되지는 못할 것입니다. 더 좋은 부활은 믿음의 선한 싸움에서 승리한 자들만 이에 동참하게 될 것입니다. 성경은 승리하지 않고서는 승리자의 왕관을 받지 못한다고 말씀하시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보상으로서의 왕관을 말씀하시지 거져주는 선물로서의 왕관이 아닙니다. 부활 때에 그리고 그리스도의 심판석에서 지금 현재 우리의 삶에 근거해서 믿음의 보상으로 배분될 것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구원은 받았지만, 그분이 오실 때 부끄러움을 당할 것이고, 어떤 사람들은 불 가운데에서 구원받은 것같이 될 것이며, 또 어떤 사람은 자기가 기대한만큼 충만한 보상을 못 받을 것입니다. 반면에 신실한 사람들은 더 좋은 부활을 획득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보다 제한된 조건과 제한된 기회들을 가지고 있었던 구약 성도들이 승리할 수 있었다면, 우리는 현재 그들보다 더 많은 조건을 소유하고 있기 때문에 어떤 변명도 할 수 없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그들보다도 훨씬 더 많은 약속들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히브리서 11장은 이와 같은 내용을 우리에게 상기시키면서 마무리합니다.
(히 11:39~40) “39) 이들은 다 믿음을 통해 좋은 평판을 얻었으되 약속하신 것을 받지는 못하였으니 40) 이것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더 좋은 것을 마련하사 우리가 없이는 그들이 완전하게 되지 못하게 하려 하심이니라.”
그 믿음의 영웅들은 그들이 살아있을 동안에나 그들이 죽어서 구원받은 자들이 있는 곳으로 갔을 때에도 즉시 보상받지는 못했습니다. 그들은 신약성도인 우리도 상을 받기 위해 나타나게 될 그때까지 기다려야만하기 때문입니다. 달리기는 다 각각 다른 시대에서 다른 장소에서 달릴지라도 시상식은 그리스도의 심판석에서 함께 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더 좋은 것을 가지고 계십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신부요, 그 몸의 지체들입니다. 만약 우리가 지금 주어진 삶에서 그분께 신실하다면, 하늘에서 보상이 결정되고 그분과 함께 다스리게 될 것입니다. 바울은 디모데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딤후 2:12a) “우리가 고난을 당하면 또한 그분과 함께 통치하리라...”
우리의 믿음(faith)은 우리의 구원을 결정짓습니다. 반면에 우리의 신실한(faithful) 생활은 우리의 보상을 결정짓습니다. 그 보상은 주님을 경배한 것과, 주님과 함께 걸은 것과, 믿음을 통한 의로운 행위를 한 것으로 평가됩니다.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히 12:1~2) “1) 그러므로 증인들이 이렇게 큰 구름을 이루며 또한 우리를 둘러싸고 있으니 모든 무거운 것과 너무 쉽게 우리를 얽어매는 죄를 우리가 떨쳐 버리고 인내로 우리 앞에 놓인 경주를 달리며 2) 우리의 믿음의 창시자요 또 완성자이신 예수님을 바라보자. 그분께서는 자기 앞에 놓인 기쁨으로 인해 십자가를 견디사 그 수치를 멸시하시더니 이제 [하나님]의 왕좌 오른편에 앉으셨느니라.”
우리에겐 우리를 앞서간 승리한 수많은 믿음의 선배들의 응원이 있습니다. 또한 큰 구름 같은 수많은 증인들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눈을 항상 예수 그리스도에게로 맞춘 채 그분을 바라보면서 그분 안에서 믿음으로 살아가야 합니다.
마무리하겠습니다.
구약시대에 살았던 믿음의 사람들은 잠시 죄의 쾌락들을 즐기는 것보다 오히려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 받는 것을 택하였으며, 또 그리스도의 치욕을 이집트의 보화보다 더 큰 재물로 여겼으니 이는 그들이 주께서 보상으로 보답해 주시는 일에 관심을 두고 살았습니다(히 11:25~26).
그들이 우리보다 더 특별해서 그렇게 살 수 있었던 것이 아닙니다. 그분들도 우리와 같은 성정의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믿음으로 살았습니다. 믿음으로 산다는 것은 하나님이 나에게 주신 말씀을 믿고, 그 말씀대로 산다는 것입니다. 믿음으로 사는 길에는 고난과 고통과 희생이 있습니다. 그렇지만 그들은 자신이 겪는 그런 고통과 고난과 희생보다 하늘에서 있을 보상을 더 크게 여기며 살았습니다. 이게 올바른 믿음의 길입니다.
우리가 살아가다 보면, 악한 이득 앞에서 선한 하나님을 버리는 경우가 있습니다. 예를 들면, 시간을 아끼기 위해서 교통법을 어기는 경우도 있습니다. 세금을 빼먹기 위해 현금으로 대가를 받는 경우도 있습니다. 세상의 이득 앞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등져 버리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러나 히브리서 11장에 기록된 그 믿음의 형제 자매들은 그렇게 살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성경에 그들을 기록하신 목적 중에는 우리도 그렇게 살 수 있고, 또 살아야 한다는 교훈을 주시기 위해서입니다.
우리는 입으로 큰 구원을 받았다고 말을 하지만, 실 생활에서는 너무도 쉽게 구원의 감격을 너무도 쉽게 소홀히 여기며, 너무도 쉽게 구원받기 전에 갖고 살았던 세상의 방식으로 살아가려는 경향이 있습니다. 우리는 그래서는 안 됩니다. 입으로 고백한 큰 구원은 마음으로도 크게 믿고 사는 그런 생활을 해야 합니다.
성경이 죄를 평가할 때, “즐기는 쾌락”이 있다고는 하지만, 그것은 “잠시”뿐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경각심을 갖아야 할 것은 죄를 지음으로 잠시 즐기는 쾌락의 결과는 죽음이라는 엄중한 판결입니다. 죄는 돈이나 선행이나 어떤 다른 방법으로도 그 대가를 치를 수 없습니다. 반드시 사망과 지옥의 형벌로만 치르는 것입니다. 믿음으로 은혜로 우리가 구원받아서 예수 그리스도 안으로 들어왔기 때문에 더 이상 사망과 지옥에 처해질 위험은 없지만, 그럼에도 하나님께서 죄에 대하여 그만큼 미워하시고 죄를 알지도 못하는 분이시기에 우리가 생활에서 죄를 짓게 되면 아버지와 관계가 어색해지고 그러다가는 징계를 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죄에는 쾌락과 이득이 있을 수 있지만, 그것은 잠시 뿐입니다. 누군가가 믿음의 보상을 택하지 않고 죄가 주는 쾌락과 유익을 선택하는 것은 영원한 생명 측면에서 볼 때 아주아주 어리석은 선택을 하는 것입니다. 더욱이 믿음의 보상을 택하라고 말씀하신 하나님을 믿지 않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러면 안됩니다.
하늘에서 있을 그리스도의 심판석에서 여러분에게도 히브리서 11장 그들과 같이 “○○○ 형제(자매)여, 너는 잠시 즐기는 죄의 쾌락보다 그리스도의 믿음의 보상을 선택했다. 잘 했다.”는 평가가 있으시길 바랍니다.
■ 찬송가 490장 {우리 앞에는 승리뿐일세}
■ 기도 _ 목사님 기도로 예배 마침.
2020-05-31 12:33: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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