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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심이 잉태하면 죄를 낳고

말씀 : 야고보서 1:15. 2020년 7월 26일 일요일 오전 11시

“그런즉 욕심이 잉태하면 죄를 낳고 죄가 완료되면 사망을 낳느니라.”(Then when lust hath conceived, it bringeth forth sin: and sin, when it is finished, bringeth forth death.)

누군가는 “우리는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 ~ ~ ”이라고 노래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말씀하시기를, “사람은 고생하려고 태어나느니라.”(욥5:7) 했습니다.
불행하게도 첫 사람 아담과 이브가 하나님의 말씀을 버림으로 죄인이 되었고 그 죄인들의 후손들은 죄인으로 태어나 평생 죄를 지으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모든 사람이 그 죄들과 싸워 죄들을 이기고 승리하기를 원하십니다. 그러므로 사람은 태어나면서부터 죄와 싸우며 죄를 이기기 위하여 고생해야합니다. 이를 영적전쟁이라고 말합니다.
아담과 이브가 뱀의 유혹하는 말을 듣고 욕심이 생겨 하나님의 말씀보다 뱀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하나님께서 먹지 말라하신 것을 먹음으로 죄를 짓고 말았습니다. 그러고 나서 즉시 자신의 죄를 시인하고 회개하고 용서를 구한 것이 아니라 이브는 뱀에게 책임을 돌리고, 아담은 하나님께서 주신 아내 핑계를 대는 것을 보게 됩니다. 아담의 후손인 저를 포함하여 여러분들은 물론이고 모든 사람들이 지은 죄가 드러나면 즉시 시인하고 회개하는 것이 아니라 핑계를 대고 책임을 다른 것에 돌립니다. 이것이 곧 죄인들의 공통된 행동이며 자신이 죄인이라는 사실의 확실한 증거입니다.
저는 여러분들이 죄를 짓고 그것이 조상 탓이라고 핑계거리를 알려주려는 것이 아닙니다. 나는 정직하게 살려고 하는데 씨 자체가 죄인의 씨에서 태어났기 때문에 어쩔 수 없었다고 핑계대게 하려고 죄의 뿌리를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비록 우리가 죄 가운데 태어났더라도 누구든지 죄를 지은 자는 그 죄 값으로 죽어야 하고 그 혼은 지옥엘 가야합니다. 그러므로 영원한 생명으로 행복하게 살기 위해서는 죄의 유혹을 이기고 속지 말아야합니다.
그 누구든지 죄를 지으면 마음에 평안이 깨집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지으실 때 그 속에 양심이라는 기관을 두셔서 그 양심의 소리를 듣게 하시고 양심에 비추어 자잘 못을 구분할 수 있도록 하셨으며 자신을 판단할 기능을 부여하셨습니다. 이는 무엇을 말합니까? 죄는 나쁜 것이며 죄를 지으면 평안함이 없고 불안하고 두렵다는 것입니다. 죄의 값은 사망이라는 사실을 알려주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 죄를 지으면 그 양심이 마비되어 찔림이 없고 감각이 없어집니다. 이런 상태를 화인 맞았다고 말하는데 양심이 불 인두로 지진 것 같이 딱딱하여 죄를 지어도 더 이상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못합니다.
에덴동산에서 이브가 뱀의 유혹을 이기지 못한 것은 무엇 때문입니까? 욕심입니다. 이브가 뱀의 유혹을 듣기 전까지는 에덴동산에서 부족함이나 불편함이나 불만이 없었습니다. 모든 것이 풍족하고 모든 것이 자유로웠습니다. 그것이 하나님께서 주신 사랑과 은혜입니다. 그러나 누구든지 하나님께서 정하신 경계를 벗어나는 순간부터 불만이나 불평이나 불행이 따르는 것입니다.
이브가 뱀의 말을 듣기 전에는 불행이 무엇인지 불편이 무엇인지 부족이 무엇인지 몰랐습니다. 이것은 우리들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께서 하지 말라 하신 경계를 벗어나는 순간부터 무엇인지 부족하고 불편하고 불행합니다. 그러나 누구든지 하나님의 말씀 안에 거하기만 하면 만족하고 행복하고 평안합니다. 하지만 마귀의 유혹하는 말에 귀를 기울이는 순간부터 모든 것이 부족하고 모든 것이 불편하고 불행해집니다.
이브가 뱀의 말을 듣기 전에는 욕심이라는 것을 몰랐습니다. 그런데 뱀이 하나님께서 금하신 것을 먹어도 절대로 죽지 않는다는 말에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먹고 싶은 욕심이 생겼습니다. 그것을 먹어도 절대로 죽지 않는다는 말을 듣고 그 열매를 보니 그 전에 보던 것과 많이 달라보였습니다. 전에는 별 생각 없이 보아오던 것이 먹기에 좋고 눈으로 보기에 아름다우며 사람을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러웠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들을 수 있는 귀를 만들어 주셨습니다. 우리에게 볼 수 있는 눈을 주셨습니다. 무엇인가를 듣는 것은 죄가 아닙니다. 무엇인가를 보는 것은 죄가 아닙니다. 그러나 무엇인가를 듣고 그것을 갖고 싶은 욕심이 생긴다면 그것을 판단해야합니다. 하나님께서 허락하지 않으신 것이나 하나님께서 기뻐하지 않으시는 것은 즉시 생각에서 떨쳐버려야 합니다. 그러지 않으면 욕심은 마음속에 자리를 잡고 점점 커집니다. 하나님의 명령도 자기 자신의 양심의 소리도 무시하고 그것을 갖기 위해서 수단과 방법을 동원하고 욕심에 따라 몸으로 행동하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만들어 주신 눈으로 모든 사물을 볼 수 있다는 것은 축복입니다. 시각 장애인들을 보면 우리가 볼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얼마나 행복한지 알게 됩니다. 눈으로 무엇인가를 보는 것은 죄가 아니라 축복입니다. 그러나 눈으로 보고 그것을 갖고 싶어 하는 욕심이 생길 때부터 마음속에 욕심과 양심의 전쟁이 시작됩니다. 만약 그것이 하나님께서 기뻐하지 않으시는 것이라면 즉시 생각 속에서 떨쳐버려야 합니다. 그 욕심을 마음속에 두고 있으면 점점 더 커지고 그것을 갖기 위하여 갖가지 방법들을 찾고 연구합니다.
모든 사람에게는 이루고자 하는 꿈이 있습니다.
소망이 있습니다. 계획이 있고 목표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들이 순수한 것이 아니고 나에게 허락된 것이 아니고 정당한 것이 아니라면 욕심이 됩니다. 욕심이란 나에게 넘침을 말합니다. 없어도 상관없는데 갖고 싶은 마음이 욕심입니다. 욕심은 순수한 마음이나 땀 흘리는 노력에 의한 소득이 아니라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갖고 싶어 하는 마음입니다.
첫 사람이 타락한 뒤 그의 후손이라면 본능적으로 추구하는 것들이 있습니다. 모든 것들을 다 나열할 수는 없지만 기본적으로 먹고 싶어 하는 식욕(食慾)이 있고 자고 싶어 하는 수면욕이 있고 남자는 여자를 소유하고 여자는 남자를 소유하고 싶은 성욕(性慾)이 있습니다. 이런 욕심들은 사람에 따라서 월등하게 두드러지기도 합니다.
식욕이 강한 사람은 먹는 것을 보면 참지 못하고 배가 불러도 더 먹고 싶어 합니다. 수면욕이 강한 사람은 자고, 자고, 또 자도 충분하지 않고 더 자고 싶어 합니다. 성욕이 강한 사람은 자기와 다른 이성을 보면 가까이 하고 싶고, 말을 걸고 싶고, 만지고 싶고, 안아보고 싶어 합니다. 이런 욕심들이 생길 때 자기가 그 욕심을 이기지 못하면 죄를 짓게 됩니다.
귀로 듣고 눈으로 보며 마음속에 성욕이 생길 때 그것을 즉시 떨쳐버리지 못하면 그 욕심은 점점 자라나게 되고 양심의 소리를 듣지 못하게 되고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게 되므로 성적인 행동이 따르게 됩니다. 이런 행동들이 상대가 원하지 않는 상태에서 일어나면 성추행이 되고 성폭력이 되고 성폭행이 됩니다. 세상적인 판단은 마음속의 욕심들이 행동으로 나타날 때 죄로 여기지만 하나님께서는 마음속에 음욕을 품으면 그는 이미 간음했다고 말씀합니다.
(마 5:28)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누구든지 여자를 보고 그녀에게 음욕을 품는 자는 이미 마음속으로 그녀와 간음하였느니라.”어떤 남자가 어떤 여자를 보고 마음속으로 그 여자를 품는다면 그것이 행동으로 나타나지 않았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은 아무도 모릅니다. 누구도 그런 사람에게 죄지었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보실 때 그는 이미 그녀와 간음했다고 말씀하십니다.
거룩하신 하나님께서는 사람들이 마음속으로 생각하는 것, 상상하는 것조차도 다 아시고 판단하십니다. 순수함이란 무엇입니까? 깨끗함이란 무엇입니까? 마음속의 생각조차도 더러움이 조금도 없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들의 마음속으로 생각하는 것들이 얼마나 순수하고 깨끗합니까?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자기 자존심에 상처를 입거나 부끄러운 것이 다른 사람들에게 발견될까봐 얼마나 거짓말을 많이 합니까? 얼마나 많이 숨깁니까?
하나님께서는 사람들의 속성을 잘 아시기 때문에 이웃과의 생활가운데 지켜야 할 생활규칙을 주셨습니다. (출 20:12)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주} 네 [하나님]이 네게 주는 땅에서 네 날들이 길리라. 하신 다음에 13) 너는 살인하지 말라. 14) 너는 간음하지 말라. 15) 너는 도둑질하지 말라. 16) 너는 네 이웃을 대적하여 거짓 증언하지 말라. 17) 너는 네 이웃의 집을 탐내지 말라. 너는 네 이웃의 아내나 그의 남종이나 그의 여종이나 그의 소나 그의 나귀나 네 이웃의 소유 중 아무것도 탐내지 말라. 하셨습니다.
이런 것들은 성경기록이 아니더라도 세상 윤리도덕으로도 마땅히 지켜야 할 것들입니다. 더더구나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들은 이런 것들은 기본적으로 지킨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의외로 그리스도인들이 너무 쉽게 도둑질을 합니다. 거짓말을 하고 사실과 다른 거짓증언을 합니다. 그러면서도 전혀 양심의 가책을 받지 않고 하나님을 두려워하지도 않습니다. 참으로 안타깝습니다.
세상의 모든 범죄는 아주 작은 마음속의 욕심으로부터 시작됩니다.
“욕심이 잉태하면 죄를 낳고” 욕심의 잉태가 무엇입니까? 그것이 합당하거나 옳지 않은데 마음속에 무엇인가를 하고 싶거나 갖고 싶은 마음이 생기는 것입니다. 그런 욕심이 잉태되기 전에, 즉 마음속에 자리 잡기 전에 떨쳐버려야 합니다. 내 힘으로 안 되면 주님께 도움을 청하고 절박하게 호소해야합니다.
(고후 10:5) 『우리는 상상하는 것과 또 [하나님]을 아는 것을 대적하여 스스로를 높이는 모든 높은 것을 무너뜨리고 모든 생각을 사로잡아 그리스도께 순종하게 하며』 사람들은 자기 의지와 상관없이 갖가지 생각들이 끊임없이 일어납니다. 생각이 꼬리를 물고 이어지면 잠을 설치기도 하고 근심걱정거리가 되어 괴롭기도 하고 필요 없는 행동을 하기도 합니다. 만약 여러분들에게 필요 없는 생각이 들면 즉시로 그 생각을 사로잡아 그리스도께 순종하게 해야 합니다.
장성한 남자와 여자가 서로 사랑하여 결혼을 하고 잠자리를 같이 하여 아이를 갖게 되는 것을 잉태한다고 말합니다. 잉태의 다른 말은 임신입니다. 이는 지극히 자연스럽고 정당한 것이며 아름다운 사랑의 열매입니다. 이 모든 것들이 순수하고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것이라면 지극히 행복한 일입니다.
그러나 남자나 여자가 서로 사랑하는 사이가 아닌데 어느 한 쪽의 일방적인 힘에 의해 상대방에게 불편이나 불쾌감을 주는 행동을 했다면 곧 죄가 됩니다. 한 사람의 마음속에 아주 작은 호기심이나 욕심이 생기고 그것이 자라서 행동으로 옮겨지고 열매를 맺게 되면 무시무시한 죄를 짓게 됩니다.
오늘날 사회적인 문제가 되고 있는 성 착취의 범죄들을 눈여겨보면서 한 사람의 호기심이나 성적 욕심이 얼마나 엄청난 일들을 만들어 내는지 죄의 두려움을 실감해야합니다. 한 사람의 호기심이나 장난으로 행해진 성추행은 한 사람의 귀중한 생명을 죽음이라는 엄청난 결과를 낳게 하고 한 가정을 파괴합니다. 심심풀이로 행한 댓글이 자라나면 살인이 된다는 것을 알아야합니다.
아담과 이브의 아주 작은 욕심이 자신들은 물론 온 인류를 사망이라는 저주아래 몰아넣고 말았습니다. (롬 5:12) “그러므로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들어왔나니 이와 같이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임하였느니라.”이는 너무나 슬프고 불행한 일입니다.
저와 여러분들이 눈을 통해서나 귀를 통해서나 어떤 감각을 통해서든 어떤 생각이나 욕심이 생겼을 때 그것이 나에게 무엇을 가져다 줄 것인지 생각해 보고 그것으로 인해 다른 사람에게 어떤 고통과 불행을 끼칠 것인지, 혹은 그것을 하나님께서 기뻐하시거나 허락하신 것인지를 먼저 생각해야합니다. 그러나 대개는 어떤 욕심이 잉태하기 전에는 그것이 과연 하나님께서 기뻐하시거나 허락하신 것인가를 먼저 생각한다는 것은 결코 쉽지 않습니다. 그 욕심이 자라서 행동으로 옮겨지고 난 후 결과를 보고 후회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지난 시간에 말씀드린 “아브라함과 다윗의 세대”에 살고 있는 우리는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과 하나님의 사랑 받는 다윗을 통해서 오늘 우리가 어떤 삶을 살아야 할 것을 다시 한 번 다짐해 보는 시간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다윗은 정말 하나님을 사랑하는 믿음의 용사였습니다. 모든 왕들의 본이 다윗입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하나님의 영광을 노래하며 찬양을 드린 사람이 다윗이며 모든 일에서 감사를 드린 자가 다윗이었습니다. 장차 주님은 그를 통하여 한 왕국을 다스리게 하실 것입니다. 그러한 다윗이 한 순간의 성욕을 이기지 못하여 하나님 앞에 크나큰 죄를 짓고 자기 주위의 수많은 사람들을 고통스럽게 하고 많은 사람들의 목숨을 잃게 했습니다.
세상에는 “내로남불”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 말은 내가하면 로맨스고 다른 사람이 하면 불륜이라는 말입니다. 오늘날 이기주의가 팽배하여 모든 것들을 자기가 기준이고 자기가 옳고 다른 사람이 잘못되었다는 세상입니다. 세상 사람들이나 그리스도인들이 다를 것이 1도 없습니다. 자기가 하는 것은 아름다운 사랑이라고 생각하면서 다른 사람들이 하는 사랑은 불륜이요 아주 잘못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자기가 저지른 잘못은 누구나 할 수 있는 실수로 생각하고 전혀 죄로 여기지 않습니다. 그러나 다른 사람이 동일한 짓을 하면 벌 받을 일이고 죽일 놈입니다. 자기에게는 한 없이 관대하고 다른 사람에게는 대단히 엄격합니다. 이것이 또한 모든 인간은 죄인이라는 것을 증언하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에게 들이대는 잣대를 자신에게 사용하고 엄격하게 자기 자신을 판단해야합니다.
“욕심이 잉태하면 죄를 낳고”우리는 잠시 다윗의 죄를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삼하 11:2) “저녁때에 다윗이 자기 침상에서 일어나 왕의 집 지붕 위에서 거닐다가 한 여인이 목욕하는 것을 지붕에서 보았는데 그 여인이 보기에 매우 아름다우므로”
다윗은 어려서는 양치기로 열심히 살았으며 청년기에는 군인으로 발탁되어 나라와 민족을 위하여 무수한 전쟁을 치렀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전쟁에 나갈 때마다 승리를 거두게 되고 많은 백성들의 사랑을 받게 되어 인기가 하늘을 찌르게 되었습니다. 그로 인하여 사울왕의 미움을 받게 되고 사울에게는 죽어야 마땅한 존재가 되었고 다윗은 사울을 피해 도망 다니는 신세가 되었습니다. 그러한 고난의 세월이 수 없이 흐른 뒤에 사울이 죽고 다윗이 왕이 되어 이스라엘을 통치하게 되고도 이웃나라와 전쟁은 계속 되었으며 수많은 피를 흘린 뒤에야 나라가 견고하게 되었습니다.
예루살렘엔 다윗의 왕궁이 높게 세워지고 왕으로서 인정을 받고 전쟁에 직접 나가지 않아도 될 만큼 여유롭고 한가한 날들을 보내게 되었습니다. 바쁘게 살던 사람이 한가하게 되면 편하고 좋을 것 같으나 무엇인가 심심하고 재미꺼리를 찾아야 하고 만들어야 합니다. 지금 이스라엘의 군대는 암몬 지손들을 멸하기 위하여 전쟁터에 있는데 다윗 왕은 한가롭게 왕의 집 지붕 위를 거닐고 있었습니다.
열심히 일하는 사람에게는 한가할 시간이 없습니다. 소일꺼리나 재미있는 일들을 찾을 여가가 없고 죄를 지을 시간도 없습니다. 대개 게으르고 일하지 않고 시간이 남아도는 사람이 죄를 짓습니다. 이스라엘은 집 지붕이 우리나라의 건물 옥상이라고 생각하면 될 것입니다. 다윗이 한가로이 지붕을 거닐다가 이웃의 한 여인이 목욕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높은 곳에서는 낮은 곳이 잘 보입니다. 낮은 곳 이웃집에서 한 여인이 목욕을 하고 있었습니다. 어쩌다 다윗의 눈에 보였습니다. 그런 모습이 눈에 뛰었을 때 저런 일도 있구나. 하며 눈을 돌렸다면 모든 것이 조용히 끝났을 것입니다. 우연히 다윗의 눈에 한 여인의 모욕하는 것이 보였는데 그것이 죄가 되지는 않습니다. 그 호기심이 욕심이 되어 다윗의 마음속에 잉태된 것입니다. 지극히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일반적인 일이었으나 그것을 마음에 두게 됨으로 돌이킬 수 없는 죄의 대가를 치르게 됩니다.
아마도 남자들의 눈에 아름다운 여인의 목욕하는 모습을 보고 그냥 지나칠 사람들은 많지 않을 것입니다. 그것이 자연스러운 일이라고 말할지 모르지만 거룩하신 하나님의 아들인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그 자리를 즉시 피해야합니다. 우연히 본 일이 단순한 호기심을 넘어 욕심이 되어 마음에 잉태하게 해서는 안 됩니다.
그런데 다윗의 눈에는 호기심을 넘어서 “그 여인이 보기에 매우 아름답게 보이므로”어떤 여인인지 알아보고자 했습니다. 이미 그 여인에 대한 욕심이 다윗의 마음속에 잉태된 것입니다. 욕심이 잉태되면 어떻게 됩니까? 죄를 낫습니다. 그 죄가 완성되어 행동으로 나타나면 사망을 불러옵니다.
3) “다윗이 사람을 보내어 그 여인에 관해 물어보게 하였더니 한 사람이 이르되, 이 여인은 엘리암의 딸이요, 헷 족속 우리야의 아내인 밧세바가 아니니이까? 하니라.”
그 여인이 누구인지를 알아보니 지금 전쟁터에서 나라를 위해 목숨 걸고 싸우는 한 장수의 아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우연히 눈에 띈 아름다운 여인이 한 사람의 아내라는 사실을 알았다면 그것으로 궁금증이 풀렸으므로 넘어 갔어야 했습니다. 그런데 다윗은 그 나라의 왕이라는 지위로 그 여인을 데려오게 하였습니다.
그는 여기서부터 하나님의 말씀을 버리고 죄를 짓게 됩니다.
“너는 네 이웃의 아내를........... 탐내지 말라.”하신 법을 어겼습니다. 다윗이 죄를 짓는 데는 동원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 여자가 누구인지 알아보고 왕에게 보고한 자와 그녀를 데려온 사자들입니다. 그들이 다윗왕의 명령에 움직이지만 불행하게도 다윗의 범죄에 동참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다른 사람이 짓는 죄에 동조자가 되어서도 안 됩니다.
4) “다윗이 사자들을 보내어 그녀를 데려오게 하니 그녀가 그에게로 들어오니라. 그녀가 그녀의 부정함에서 정결하게 되었으므로 그가 그녀와 함께 누웠고 그녀가 자기 집으로 돌아가니라.”왕의 권력이란 대단합니다. 그 여인이 누구인지 알아보라는 말에 즉시 그 여인의 신상정보를 왕에게 보고한 자가 있습니다. 왕은 사자들을 보내어 그 여인을 데려올 수 있습니다. 한 여인은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그 나라의 왕이 사자들을 보내어 부르는데 오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리고 그 여인은 한 사람의 아내였지만 왕의 요구에 자신의 몸을 왕에게 주고 말았습니다.
왕의 권력으로 한 유부녀와의 불륜이 조용히 끝나나 했는데 엄청난 죄가 자라나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사람들에게는 한 순간의 불장난으로 끝날 수도 있으나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서는 용서받을 수 없는 죄가 되었습니다.
(삼하 11:5) “그 여인이 수태하매 사람을 보내어 다윗에게 고하여 이르되, 내가 아이를 가졌나이다, 하니라.” 다윗의 호기심으로 시작된 불륜은 죄의 씨로 열매를 맺게 되었습니다. 사람들이 죄를 지으면 그 죄를 시인하고 즉시 고백하고 회개해야하는데 다윗은 끝까지 숨기고 덮으려고 모든 수단을 총동원합니다.
사람들은 대개 자기는 어리석지 않고 대단히 지혜롭고 현명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보실 때에는 얼마나 어리석고 멍청한 일입니까? 사람들은 자기의 지혜로 다른 사람들을 속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항상 진실은 들어나게 됩니다. 도둑질을 하는 사람들이나 살인을 하는 사람들이 완전범죄를 시도하지만 이 세상엔 완전 범죄란 없습니다. 혹시 누군가 사람들을 한 순간 숨길 수는 있을 지라도 사람을 지으시고 사람의 생명을 주관하시는 전능하시고 거룩하신 하나님의 눈을 피할 수는 없습니다.
다윗은 유부녀와의 관계에서 생긴 아이를 교묘한 방법으로 숨기려합니다. 그녀의 남편을 불러 부부관계를 맺게 함으로 자기의 죄를 덮으려고 시도합니다. (삼하 11:6) “다윗이 요압에게 사람을 보내어 이르기를, 헷 족속 우리야를 내게로 보내라, 하매 요압이 우리야를 다윗에게로 보내니 7) 우리야가 그에게 이르매..........”
왕의 권력이란 대단합니다. 왕의 명령에 모든 사람들이 복종합니다. 전쟁 중에 있는 장수도 불러옵니다. 그러나 그 권력아래 있는 사람들은 얼마나 불행합니까? 왕의 범죄를 알든 모르든, 그 일에 가담을 원하든 원하지 안 튼 왕의 명령 때문에 깊이 가담하게 됩니다.
(삼하 11:8) “다윗이 또 우리야에게 이르되, 네 집으로 내려가서 네 발을 씻으라, 하니 우리야가 왕의 집에서 떠나매 왕에게서 온 음식물이 그의 뒤를 따르니라.”
다윗은 선심 쓰듯이 전쟁터에 있는 우리야를 불러 특별휴가를 주며 왕의 음식까지 보내줍니다. 이는 아주 특별한 대우입니다. 장수가 큰 전적을 세웠을 때 내리는 포상휴가와 같습니다. 그러나 충성스런 우리야는 전쟁터의 전우들을 생각하여 집으로 돌아가 아내와 즐기며 평안한 잠을 자지 않았습니다.
다윗이 이런 우리야를 웃기는 사람으로 보았을지 모릅니다. 별난 놈이라고 여겼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나라에 충성하고 하나님 앞에 깨끗하며 순결하고 정직했습니다. 그에 비해 다윗은 왕이라는 권력을 이용하여 남의 아내를 위력으로 데려다가 음행하고 자기 죄를 덮으려고 더러운 죄를 도모하고 있습니다.
(삼하 11:9) “그러나 우리야는 왕의 집 문에서 자기 주의 모든 종들과 함께 자고 자기 집으로 내려가지 아니하였으므로” 다윗의 얄팍한 작전은 충성스런 우리야로 하여금 실패하고 말았습니다. 우리야는 “궤와 이스라엘과 유다가 장막에서 머물고 또 내 주 요압과 내 주의 종들이 빈 들에서 진을 치고 있거늘 내가 내 집으로 가서 먹고 마시고 내 아내와 함께 누우리이까?”하며 다윗의 유혹에 넘어가지 않았습니다.
이에 다윗은 또다시 “그를 불러서 그로 하여금 자기 앞에서 먹고 마시고 취하게 하여” 그의 아내에게로 보내려 했으나 “저녁때에 그가 나가서 자기 주의 종들과 함께 침상에 눕고 자기 집으로 내려가지 아니하”였습니다. 우리야가 자기 말을 듣지 않아 자기 죄를 덮지 못함으로 다윗은 우리야를 죽이려고 음모를 꾸몄으니 곧 요압을 시켜 맹렬한 전쟁터의 최전방에서 죽게 되도록 하라고 편지를 써 우리야의 손에 보냈습니다. 이 얼마나 악랄한 짓입니까? 자기 죄를 덮기 위해 다른 사람을 죽이려 하는 것은 결국 욕심이 잉태하여 낳은 장성한 죄의 열매입니다.
그러나 그 누구도 하나님의 눈을 피할 수는 없습니다.
한 왕이 한가롭게 지붕을 거닐다 이웃 여인의 목욕하는 것을 보고 음욕을 품은 결과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자기의 더러운 죄에 연류 되도록 했으며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잃었습니까? 자기의 죄가 세상에 알려 지는 것이 그토록 싫다면 다른 사람의 인격과 생명을 지키는 일 또한 얼마나 귀한 것인가를 알아야합니다.
군대장관 요압은 왕의 명령을 지키기 위하여 우리야를 죽음에 밀어 넣고 말았습니다. “너희는 우리야를 가장 맹렬한 싸움의 최전방에 두고 그로부터 물러가서 그가 맞아 죽게 하라”(15) 이 어처구니없는 명령 때문에 우리야 뿐만 아니라 애매한 백성 중에서 몇 사람이 함께 희생되고 말았습니다. “백성 중에서 몇 사람이 쓰러지고 헷 족속 우리야도 죽으니라.”(17)
다윗은 자기가 요압에게 지시한 대로 되어 우리야가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골치 아픈 일들이 모두 끝났다고 생각하고 안도의 숨을 내 쉬었을 것입니다. 이 얼마나 뻔뻔한 일입니까? 자기 죄를 덮기 위하여 가장 큰 피해자인 여인의 남편을 비참하게 죽이고도 양심의 가책을 받지 않고 있습니다.
(삼하 11:25) “그때에 다윗이 사자에게 이르되, 너는 요압에게 이같이 말하기를, 너는 이 일을 불쾌히 여기지 말라. 칼은 이 사람도 삼키고 저 사람도 삼키나니 그 도시를 향해 더욱 힘써 싸워 그것을 정복하라, 하고 너는 그의 용기를 북돋우라, 하니라.”
여러분들은 다윗의 어리석은 행동이 얼마나 무서운 결과를 가져왔는지 분명히 알아야합니다. 처음 욕심의 시작은 작고 미미한 것일지라도 그것의 끝은 상상을 초월하고 수많은 사람들이 희생되고 행복했던 가정이 파괴된다는 사실을 알고 죄의 대가가 얼마나 크고 무서운지를 알아야합니다.
다윗은 자기가 승리한 줄로 알고 있습니다. 자신의 불륜이 아무도 몰래 덮이는 줄 알았습니다. 이제 우리야가 죽었으니 다윗은 태연하게 우리야의 아내인 밧세바를 자기 집으로 데려와 자기 아내로 삼았습니다. (삼하 11:27) “애곡하는 일을 마치매 다윗이 사람을 보내어 그녀를 자기 집으로 데려오니 그녀가 그의 아내가 되어 그에게 아들을 낳으니라. 그러나 다윗이 행한 그 일을 {주}께서 기뻐하지 아니하시니라.”
여러분들은 혹시 사람들의 눈을 잠시 동안 속일 수 있을지 몰라도 우리를 창조하신 전지전능하신 하나님, 불꽃같은 눈동자로 살피시는 하나님을 속일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기 바랍니다. 자기 잘못이나 자기 죄를 조금이라도 너그럽게 용서하거나 덮으려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아니 아예 음욕을 품지 말고 심심풀이나 장난으로도 죄를 짓지 말아야합니다.
죄를 짓고 그 죄를 자백하지 아니하고 회개하지 아니하는 것은 처음 죄를 짓는 것보다 더 악한 것입니다. 우리가 구원 받은 후에 죄를 짓는 것은 거룩하신 하나님을 업신여기는 일입니다. 만약 여러분들이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는다면 그 구원은 잘못된 것입니다. 진노하신 주께서 다윗에게 말씀하십니다.
(삼하 12:10) “네가 나를 업신여기고 헷 족속 우리야의 아내를 빼앗아 네 아내로 삼았은즉 이제 그런 까닭에 칼이 네 집에서 결코 떠나지 아니하리라. 11) {주}가 이같이 말하노라. 보라, 내가 네 집에서 너를 대적하는 재앙을 일으키고 내가 네 아내들을 네 눈앞에서 가져다가 네 이웃에게 주리니 이 해가 보는 데서 그가 네 아내들과 함께 누우리라. 12) 너는 그 일을 은밀히 행하였으나 나는 온 이스라엘 앞에서 해 앞에서 이 일을 행하리라,”하나님께서는 다윗의 모든 행위를 몹시 실망스러워 하셨으며 다윗도 마침내 하나님께서 보낸 나단 대언자의 말을 듣고서 자기 죄를 시인했습니다.
(삼하 12:13) “다윗이 나단에게 이르되, 내가 {주}께 죄를 지었노라, 하거늘 나단이 다윗에게 이르되, {주}께서도 왕의 죄를 치우셨으므로 왕이 죽지 아니하리이다.”
다윗이 행한 일을 하나님께서 기뻐하지 아니하셨으므로 다윗을 죽이지는 않으셨으나 벌을 내리셨습니다. 다윗이 즉시 “내가 {주}께 죄를 지었노라”시인하고 죽음은 면했지만 그가 지은 죄의 대가로 “칼이 네 집에서 결코 떠나지 아니하리라”하신 대로 다윗의 집에 불행한 일들이 일어났습니다.
다윗의 불륜으로 밧세바에게 태어난 아이가 죽고 다윗의 아들 암논이 배다른 누이동생이며 다윗의 유일한 딸 다말을 성폭행하고 다말의 친오빠 압살롬이 동생을 욕보인 이복동생 암논을 죽였으며, 살인자 압살롬이 아버지의 왕권을 빼앗으려고 반란을 일으켰습니다. 이 모든 일들이 다윗의 음행이 몰고 온 죄의 대가입니다.
압살롬이 자기아버지 다윗을 대적하고 왕궁에 들어가 밝은 대낮에 높이 무대를 만들고 공개적으로 다윗의 첩들을 데려다가 성폭행을 저질렀습니다. (삼하 16:22) “이에 그들이 압살롬을 위하여 집의 꼭대기에 장막을 치니 압살롬이 온 이스라엘의 눈앞에서 자기 아버지의 첩들에게로 들어가니라.”
우리 옛 속담에 가는 방망이 오는 홍두깨라는 말이 있고 되로 주고 말로 받는다는 말이 있습니다. 남에게 끼친 아주 작은 잘못이나 죄가 자기에게로 돌아올 때는 너무나도 크기에 감당하기 어렵게 된다는 말입니다.
저와 여러분들은 아주 작은 죄라도 저질러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사람들은 속일 수 있고 모르게 할 수 있으나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을 속일 수는 없습니다. 모든 것을 보시는 하나님 앞에 있음을 잊지 말아야합니다. 아주 작은 죄라도 지어서는 안 되며 거짓말하거나 변명해서도 안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행동만 보시는 것이 아니라 생각하는 것이나 마음속까지 살피십니다.
혹시 거짓말이 발각되었을 때에는 숨기려 하지 말고 즉시로 시인하고 고백해야 벌을 적게 받을 수 있습니다. 하나의 거짓을 숨기려면 더 많은 거짓말을 해야 합니다. 그러면 죄는 더욱 무거워지며 형벌 또한 더욱 가중된다는 사실을 알아야합니다. 잘못을 숨기거나 거짓말 하는 것은 아주 어리석은 짓입니다.
이 세상에서 숨길 수 있는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숨기고자 노력하는 만큼 더욱더 커져서 사망으로 돌아온다는 진리를 잊지 마시기를 간곡히 부탁드립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고통스런 40년의 광야 생활을 마치고 드디어 여리고 성을 공격하여 크게 승리한 듯 했으나 한 사람의 도둑질 때문에 여리고성보다 적은 아이성을 공격할 때에 크게 패하고 말았습니다. 여러분들이 성경을 읽어 잘 알 것입니다. 무슨 일 때문에 여호수아의 용사들이 패배했습니까?
여리고성은 저주받은 땅이고 그 안에 있는 모든 것들은 저주받은 것들이므로 그 누구도 저주받은 물건들을 취해서는 안 되었습니다. 눈으로 보기에 아무리 좋아 보여도 그것을 취하는 자들은 저주를 받게 됩니다. 그러므로 주께서 여리고성을 치고 승리할 때에 그것들을 취하지 말라고 엄하게 명령하셨습니다.
(수 6:18) “너희는 반드시 저주받은 물건으로부터 너희 자신을 멀리하라. 너희가 저주받은 물건 중에서 취하여 너희 자신을 저주받게 하며 또 이스라엘 진영을 저주거리로 만들고 괴롭게 할까 염려하노라.”이토록 엄중한 하나님의 경고가 있었는데 어리석고 멍청한 아간이란 자의 도둑질이 있었습니다.
(수 7:11) “이스라엘이 죄를 짓고 또 그들이 내가 그들에게 명령한 내 언약을 어겼나니 그들이 저주받은 물건 중에서 취하여 도둑질하고 또 숨기고 그것을 자기들의 물건 가운데 두었느니라.”한 사람의 도둑질이 하나님의 명령을 거역함은 물론 한 민족을 괴롭게 하고 36명의 백성이 아이와의 전쟁에서 죽었고, 자기 아들딸들은 물론 그에게 속한 소와 나귀와 양과 장막과 모든 것들을 아골 골짜기로 데려가서 그들을 돌로 친 뒤에 불로 태우며 그의 위에 돌무더기를 크게 쌓아 백성들에게 증거물이 되었습니다.
거짓말을 절대로 하지 맙시다. 도둑질을 하지 맙시다. 이는 사람들을 속이는 것이 아니라 거룩하신 하나님을 속이는 것이고 하나님께 죄를 짓는 것입니다. 거짓말을 하거나 도둑질을 하는 자는 자기만 망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와 자기 집이 멸망하게 됩니다. 여러분들이 성경을 읽으면서 전능하신 하나님을 두려워 할 줄 알게 되기를 진심으로 축원합니다.
(고후 9:8) 『[하나님]께서 능히 모든 은혜를 너희에게 넘치게 하시나니 이것은 너희가 항상 모든 일에서 모든 것이 넉넉하여 모든 선한 일을 풍성히 하게 하려 하심이라.』
(참조 : 엡2:10, 딛2:14)
2020-07-26 13:27: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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