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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약속을 통해 주셨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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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속을 통해 주셨느니라.

말씀 : 갈3:15-18. 2020년 8월 2일 일요일 오전 11시

여러분들은 약속(約束)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다른 사람과 서로 지킬 것을 정하는 것입니다. 물론 자기 자신에게 무엇인가를 다짐하거나 어떻게 하기로 정하는 경우도 있겠지만 대개는 둘 이상이나 다수의 사람들이 서로 어떻게 하기로 정하는 것입니다. 쉽게 말해서 우리가 일요일 마다 모여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것은 우리들만의 약속입니다. 우리는 여러 가지 서로 지키기로 약속을 하고 그 약속 안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러다보니 사람들이 적은 시골보다는 사람들이 많고 복잡한 도시에 사는 사람들끼리 정한 약속들이 더 많겠지요. 그런데 어떤 약속을 정해놓고도 지키지 않을 때 어떤 벌을 주기로 정하는 것이 곧 법입니다.
여러분들이 도시에 살면서 일상생활을 하는데 정해진 약속을 지키지 않으면 당장 엉망진창이 되고, 많은 사람들에게 피해를 입히는 것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길을 달리는 자동차나 길을 건너는 사람들이 반드시 지켜야 할 약속이 무엇입니까? 신호등입니다. 길을 달리는 차나 길을 건너는 사람들이 신호등의 약속을 지키지 않으면 엄청난 일들이 벌어집니다.
특히 하루 종일 운전하는 사람들은 일을 마치고 집에 돌아오는 시간까지 수십 번의 신호등을 보게 되며 그 신호등에 따라 차를 멈추기도 하고 돌아가기도 하고 달리기도 할 것입니다. 그러다보면 위험한 시간도 많고 다른 사람들이나 차들이 위험한 일들을 겪는 일들도 보게 될 것입니다.
지난 화요일 아침 아직 날이 밝기도 전인 5시경에 갑자기 쿵 하는 소리가 들려 밖을 내다보니 우리 집 근처 이면도로의 네거리 건널목에서 화물차가 인도로 향해 가로수를 추돌하여 서 있고 승용차 한대는 트럭과 정면충돌을 겨우 피한 상태로 엇갈려 서 있었습니다. 다행히 사람은 크게 다치지 않은 것 같은데 잠시 후 두 차의 운전자가 차에서 내려 서로 네 탓을 하면서 고함을 치고 있는데 경찰차가 오고 나서야 조용해 졌습니다.
왜 이런 일이 벌어집니까? 서로 약속을 지키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길거리에서 모두가 반드시 지켜야할 약속은 바로 신호등입니다. 사람들이 길을 건너기 위한 건널목에서는 신호등에 파란 불이 켜져야 건널 수 있습니다. 이것이 약속입니다. 건널목이라도 빨간불이 켜져 있을 때는 사람이 건너가면 안 됩니다. 그 시간에는 자동차들이 다니기로 약속한 시간입니다.
저도 운전을 하다보면 부주의로 신호를 지키지 않을 때가 가끔 있습니다.
어떤 때는 어느 한 쪽만 신경을 쓰다가 반대쪽의 신호를 보지 못할 때도 있고 어떤 때는 신호가 바뀌려는 시간에 무리하게 진행하는 때도 있습니다. 신호가 바뀌려고 노란불이 깜빡일 때는 즉시 멈춰서야 하는데 바쁘다는 핑계로 서둘러 지나가는 때가 있습니다.
자동차가 다니는 길에서 건널목이 아닌데 길을 건너는 일은 무단횡단으로 법으로 금지한 약속입니다. 건널목이라도 신호등이 파란 불이 아니고 빨간 불일 때 건너는 것도 무단횡단입니다. 이런 약속들을 지키지 않으면 법을 어긴 것으로 벌을 받아야합니다.
자동차는 운전 면허증이 있어야 운전할 수 있습니다. 운전하는 사람이 면허증이 있더라도 술을 마시고 운전하면 안 됩니다. 이것을 음주운전이라 합니다. 술을 먹고 운전하면 자기도 다칠 위험이 크고 다른 사람을 다치게 하거나 죽게 할 수 있기 때문에 절대로 술을 먹은 사람은 운전해서는 안 된다고 법으로 정해진 약속입니다. 자동차 운전면허증도 있고 보험을 들었어도 술을 먹고 운전하다가 사고를 내면 보험회사에서 해결해 주지 않습니다. 자기가 모든 비용을 치러야합니다. 이런 약속을 지키지 않으면 죄가 되고 죄를 범하게 되면 법이 정한 벌을 받게 됩니다.
제가 퀴즈를 하나 내겠습니다. 차가 다니는 길에 신호등이 있는 건널목까지는 멀고 차는 하나도 다니지 않습니다. 보는 사람들이 하나도 없습니다. 그런 때는 건널목이 아닌 찻길을 건너가면 됩니까? 안 됩니까? (안 됩니다.)맞습니다.
그런데 급한 일이 있고 차도 없고 보는 사람이 하나도 없습니다. 그래서 건넜는데 이것도 약속위반입니까? 아닙니까? (약속위반입니다.) 그렇습니다.
그러면 차도 지나가지 않고 보는 사람도 없습니다. 이럴 때 길을 건넌 것도 죄가 됩니까? 안 됩니까? (죄가 됩니다.) 그렇습니다. 사람들은 무단 횡단을 하고서 사고도 없고 경찰이 보지도 않았으면 법에 걸리지 않았기 때문에 잘못한 것이 없고 죄가 되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건널목이 아닌 곳에서 길을 건너다가 경찰 단속에 걸리면 벌금을 내야합니다. 만약 단속하는 경찰에 걸리지 않았다면 교통법규의 약속을 지킨 것입니까? 안 지킨 것입니까? (안 지킨 것입니다.) 그러면 그것이 죄가 됩니까? 걸리지 않았기 때문에 죄가 되지 않습니까?(죄가 됩니다.) 약속은 보는 사람이 있든 없든 반드시 지켜야합니다.
운전 부주의로 길 가에 있는 사람을 다치게 하거나 다른 차를 긁는 교통사고가 났는데 아무도 보는 사람이 없어서 그냥 갔다면 잘하는 일입니까? 잘못하는 일입니까?(잘못하는 일입니다.) 그런 것을 뺑소니라고 말합니다. 그러면 차 주인도 없고 아무도 보는 사람이 없을 땐 어떻게 합니까? 연락처가 없으면 경찰에 신고하거나 자기 전화번호를 남기고 가야합니다.
술을 먹고 운전했는데 단속경찰에 걸리지도 않고 사고도 없이 무사히 잘 왔습니다. 그러면 그것은 약속을 지킨 것입니까? 지키지 않은 것입니까? 단속에 걸리지 않았으니까 죄를 짓지 않은 것입니까? 그것이 죄가 됩니까?
대개 사람들은 음주 운전 단속에 걸리면 재수가 없어서 걸렸다고 투덜댑니다. 자기가 교통법규를 어기고 잘 못하고 죄를 지은 것인데 사고가 없으면 다행이라고 생각하고 그것을 죄로 여기지 않습니다.
이는 대단히 잘못된 일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저와 여러분들에게 은혜를 베푸시고 복 주시기를 원하십니다. 그러면 우리는 항상 하나님께서 주실 복을 받을 준비를 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약속하시고 또 명령하셨습니다.
(출20:12-17),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주} 네 [하나님]이 네게 주는 땅에서 네 날들이 길리라. 너는 살인하지 말라. 너는 간음하지 말라. 너는 도둑질하지 말라. 너는 거짓말하지 말라. 너는 네 이웃의 집을 탐내지 말라. 너는 네 이웃의 아내나 그의 남종이나 그의 여종이나 그의 소나 그의 나귀나 네 이웃의 소유 중 아무것도 탐내지 말라.” 하셨습니다. 더 나아가서 우리 주님은 몸으로 행동하기 전에 마음속으로도 죄를 짓지 말라 하셨습니다.
주님은 (마 5:21-22) “옛 사람들이 말한바, 너는 살인하지 말라. 누구든지 살인하는 자는 심판의 위험에 처하게 되리라, 한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누구든지 까닭 없이 자기 형제에게 화를 내는 자는 심판의 위험에 처하게 되고 누구든지 자기 형제에게, 라가, 하고 말하는 자는 공회의 위험에 처하게 되거니와 누구든지, 너 어리석은 자여, 하고 말하는 자는 지옥 불의 위험에 처하게 되리라.”하셨습니다.
“라가(Raca:헛된 것, 심한 경멸)”는 욕을 하는 것입니다. 특히 자기 형제에게 까닭 없이 화를 내거나 자기형제에게 심한 욕을 하거나 자기형제에게 “너 어리석은 자여(비열한 자, 비참한 자)” 하고 말하는 자는 지옥불의 위험에 처하게 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면 요셉이는 가장 가까운 자기형제인 요한이에게나 시온이에게 욕하면 됩니까? 화를 내면 됩니까? 어리석은 놈이라고 말하면 됩니까? 그러면 주님의 심판의 위험에 처하게 됩니다.
자기 형제에게 욕하고 화를 내고 어리석은 놈이라고 하면 미워하는 것입니다.
누구든지 자기형제를 미워하는 것은 살인하는 자와 같다고 주께서 말씀합니다. (요일 3:15) 『누구든지 자기 형제를 미워하는 자는 살인하는 자니 살인하는 자 속에는 영원한 생명이 거하지 아니하는 줄 너희가 아느니라.』
주님을 믿고 구원 받은 사람은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의 사랑을 입은 사람입니다. 여러분들이 하나님의 사랑을 받은 증거가 무엇입니까? 하나님께서 자신의 아들 예수님을 우리에게 주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에 자신의 하나밖에 없는 아들 예수님을 세상에 보내시고 우리는 그분을 믿고 구원 받게 하신 것입니다. 이보다 더 큰 사랑의 증표는 없습니다. (요일 4:9) 『[하나님]께서 자신의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사 우리가 그분을 통해 살게 하셨은즉 이것 안에서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를 향해 나타났느니라.』 그 하나님의 사랑은 끊을 자가 없다고 하셨습니다.
여러분들도 그런 하나님을 사랑하기 때문에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며, 헌금을 드리며, 날마다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읽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이 형제를 미워하면 그는 거짓말하는 자라고 말씀하십니다. (요일 4:20) 『어떤 사람이, 나는 [하나님]을 사랑하노라, 하고 자기 형제를 미워하면 그는 거짓말하는 자니 자기가 본 자기 형제를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가 어찌 자기가 보지 못한 [하나님]을 사랑할 수 있으리요?』
하나님의 사랑을 받고 하나님을 사랑하는 하나님의 자녀들은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들과는 달라야합니다. 생각하는 것, 말하는 것, 행동하는 것이 달라야합니다. 믿지 않는 사람들과 모든 것이 같다면 세상에 빛이 될 수 없고 세상에 맛을 내는 소금이 될 수 없습니다.
주님은 저와 여러분들을 세상의 소금과 빛이라고 하셨습니다.
(마 5:13-14) 『너희는 땅의 소금이로되 만일 소금이 제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그것을 짜게 하리요? 그 뒤에는 그것이 아무 쓸모없으므로 버려져서 사람들의 발밑에 밟힐 뿐이니라. 너희는 세상의 빛이니 산 위에 세운 도시가 숨겨지지 못하리라.』
저는 사랑하는 첫 손자를 요셉이라는 이름으로 부르고 싶어서 그렇게 이름을 지었습니다. 성경에는 요셉이라는 이름이 많이 나옵니다. ♥구약의 이집트 총리가 된 야곱의 늦둥이 아들 요셉이 있습니다. ♥예수님을 낳은 마리아의 남편이 나사렛의 요셉입니다. 그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마리아와 아기 예수님을 보호하고 섬겼습니다. ♥아리마대 요셉은 부자였으며 십자가에 죽으신 예수님에게 자기의 새 무덤을 내어 드린 사람입니다.
저는 우리 요셉이가 구약의 야곱의 아들 요셉과 같이 하나님의 약속을 굳게 믿고 어떤 곤경에서도 좌절하거나 흔들리지 말고 부모에게 순종하고 모든 사람들을 잘 섬김으로서 모든 일에서 형통한 사람이 되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특히 하나님께서 맺어주신 자기 형제요 자매인 요한이와 시온이를 사랑하고 보살피고 잘해주기를 바랍니다. 그리하여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모든 복을 받기를 소원합니다. 자기형제는 사랑의 대상이지 경쟁의 대상이 아닙니다.

오늘은 약속에 대해서 말씀을 살펴보려고 합니다.
성경에 나오는 약속들을 살펴보니 악한 자들끼리의 약속도 있고 하나님께서 사람들에게 하신 약속들도 있습니다.
신약성경에서 처음 나오는 약속이라는 단어는 헤롯 왕이 침례요한의 목을 벨 때 자기가 형에게서 빼앗은 아내의 딸이 자기 잔치에서 춤을 추며 그를 즐겁게 해 주니까 그녀가 구하는 것을 무엇이든지 주겠다고 헤롯이 그녀에게 약속을 합니다. (마 14:7) 『이에 그가 맹세로 그녀가 무엇을 구하든지 그녀에게 주겠다고 약속(promised)하거늘』 그 악한 약속의 결말이 무엇이었습니까? 침례요한의 목이었습니다.
그 다음에 나오는 약속은 예수님을 배반하고 그분을 팔기로 한 가룟 유다와 수제사장들과의 약속입니다. (막14:11)『그들이 그것을 듣고 기뻐하며 그에게 돈을 주기로 약속하니(promised) 그가 그분을 배반하여 적절히 넘겨줄 방도를 찾더라.』 악한 자들도 서로 약속을 하고 그 약속을 지킵니다.
다음으로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를 지시고 죽으시고 부활 승천하시기 전에 아버지께서 제자들에게 하신 약속으로 성령님을 보내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눅 24:49) 『보라, 내가 내 [아버지]의 약속하신(promise) 것을 너희에게 보내려니와 너희는 높은 곳으로부터 오는 권능을 입을 때까지 예루살렘 시에 머물라, 하시니라.』
주님을 따르던 제자들과 수많은 사람들이 주께서 십자가를 지시고 세상을 떠나시면 어떻게 할까 근심걱정 할 때에 아버지께서 성령님을 보내 주시기로 약속하셨고 그 약속을 기다리는 자들에게 오순절에 이루어졌습니다.
(행 1:4) 『또 그들과 함께 모이사 그들이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아버지]의 약속하신(promise) 것을 기다리라고 그들에게 명령하셨느니라. 그분께서 이르시되, 그 약속하신 것에 대해서는 너희가 내게서 들었나니』 (행 2:33) 『그러므로 그분께서 [하나님]의 오른손에 의해 높여지시고 [아버지]에게서 [성령님]을 약속으로(promise) 받아서 너희가 지금 보고 듣는 이것을 부어 주셨느니라.』
이 약속은 당시의 제자들이나 믿는 사람들에게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라 모든 세대에 이르러 주님을 믿는 사람들에게 해당되는 것입니다. (행 2:39) 『이 약속은(promise) 너희와 너희 자손과 멀리 떨어져 있는 모든 사람 곧 [주] 우리 [하나님]께서 부르실 모든 사람을 향한 것이니라, 하고』 이렇게 하나님의 약속은 모든 믿는 자들에게 계속 되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도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하신 약속의 성취입니다.
(행 13:23) 『[하나님]께서 자신의 약속대로(promise) 이 사람의 씨에서 이스라엘에게 [구원자] 곧 예수님을 일으키셨느니라.』 32) 『우리가 너희에게 기쁜 소식을 밝히 알리노니 그것은 곧 조상들에게 하신 약속 33) 바로 그 약속(the same)을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다시 일으키심으로써 그들의 자손인 우리에게 성취하셨다는 것이라. 그것은 또 시편 둘째 편에 기록된바, 너는 내 아들이라. 이 날 내가 너를 낳았도다, 함과 같도다.』
하나님의 약속은 그분을 믿는 자들에게 하신 것이고 그 믿음을 통해서 성취되며 열매를 맺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부르시고 그를 시험하시고 그의 믿음을 통해서 복을 주시고 구원을 이루십니다. 우리는 혈통으로나 율법과는 상관없이 믿음을 통해서 아브라함의 자손이요, 그에게 약속하신 것들을 믿는 우리에게 하나님의 약속이 성취됩니다.
(롬 4:13) 『그가 세상의 상속자가 되리라고 하신 그 약속은 아브라함에게나 그의 씨에게나 율법을 통해 주어지지 아니하고 믿음의 의를 통해 주어졌느니라. 14) 『만일 율법에 속한 자들이 상속자가 되면 믿음은 헛것이 되고 그 약속은 효력을 잃게 되느니라.』 .........
16) 『그러므로 그것이 은혜로 되게 하려고 믿음에서 나나니 그 목적은 그 약속을 모든 씨에게 확고하게 하려 하심이라. 그것은 곧 율법에 속한 자들에게만 아니라 아브라함의 믿음에 속한 자들에게 그 약속을 확고하게 하려 하심이니 그는 하나님 앞에서 우리 모두의 조상이라.』
주님을 믿는 우리 모두에게는 거룩하신 하나님의 약속들이 있습니다. 그 약속들이 우리 위에 이루어지게 하려면 우리의 육과 영을 깨끗하게 해야 합니다.
(고후 7:1) 『그러므로 극진히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이 약속들을 가졌은즉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가운데 거룩함을 완전히 이루어 육과 영의 모든 더러움에서 우리 자신을 깨끗하게 하자.』
여러분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구원 받았습니까? 구원 받았다는 것은 주님을 믿는 우리에게 성령께서 임하셨음을 말합니다. 성령님을 받은 자들은 하나님의 자녀들로 영원히 그분의 나라에서 그분과 행복한 삶을 살게 될 것입니다.
(갈 3:14) 『이것은 아브라함의 복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이방인들 위에 임하게 하고 또 우리가 믿음을 통해 성령을 약속으로 받게 하려 함이니라.』
오늘 본문으로 택한 말씀을 살펴보겠습니다.
아브라함의 씨를 통하여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그 약속들이 이루어졌습니다. 교리적으로는 율법을 뛰어넘어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것들이 우리 믿는 자들 위에 성취되었습니다. 그렇다면 아브라함의 믿음을 따르는 저와 여러분들은 그 거룩하신 약속이 우리 위에 성취되게 해야 할 것입니다.
(갈 3:16) 『이제 그 약속들은 아브라함과 그의 씨에게 하신 것인데 그분께서 여럿을 가리키며, 씨들에게, 하지 아니하시고 하나를 가리키며, 네 씨에게, 하시나니 이 씨는 그리스도시니라.』 17) 『내가 이것을 말하노니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미리 확정하신 그 언약을 사백삼십 년 뒤에 생긴 율법이 취소하지 못하며 또 그 약속을 무효로 만들지 못하리라.』 18) 『만일 그 상속 유업이 율법에서 나면 그것은 더 이상 약속에서 나지 아니하느니라.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것을 아브라함에게 약속을 통해 주셨느니라.』
오늘날 성도들에게 비호감의 설교가 무엇인지 아십니까? 죄나 회개나 지옥은 말할 것도 없고 헌금에 관한 설교를 가장 싫어한다는 것입니다. 그것을 잘 아는 저도 헌금에 관한 설교를 별로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복을 받기 위해서는 헌금하는 것을 가르쳐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성도들에게 헌금을 가르치면 돈을 강요한다고 불평하고 약속의 복을 받지 못하면 가르치지 않아서 못했다고 불평합니다. 이러하든 저러하든 불평할 사람들은 불평할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을 가르치는 자로서 입을 다물고 있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풍성한 상속을 받기 위해서는 아브라함이 하나님께 어떤 것을 드렸는지 알아야합니다.
(갈 3:29) 『너희가 그리스도께 속한 자면 곧 아브라함의 씨요 약속에 따른 상속자니라.』
아브라함의 혈통을 따라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구원 받은 저와 여러분들은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믿음에 속한 상속자들입니다. 상속자들은 상속자답게 살아야합니다. 아브라함은 율법이 오기 훨씬 전에 하나님께 자기 소득의 십분의 일을 드렸습니다. 십분의 일을 십일조라고 부르고 대개는 말라기에 나오는 구절들을 교회에 가르치나 율법에 의한 십일조는 법으로 정한 것으로 의무적입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율법 이전에 자원하여 드렸습니다.
히브리서는 예수님을 영원한 제사장이라 하시고 이는 멜기세덱의 계통을 따른 것이라 했으며 아브라함은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제사장인 멜기세덱에게 소득의 십분의 일을 주었습니다. (히 7:1-2) “이 멜기세덱은 살렘 왕이요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제사장이니라. 그가 왕들을 살육하고 돌아오는 아브라함을 만나 그를 축복하였으며 아브라함도 모든 것의 십분의 일을 그에게 주었느니라. 그 이름을 해석하면 첫째로 의의 [왕]이요 그 다음은 또한 살렘 [왕]이니 곧 화평의 [왕]이라.”
자기 모든 소득의 십분의 일을 주님께 드리는 것은 율법에 의한 것이 아니라 우리를 창조하시고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신 그분이 우리의 주인임을 인정하고 우리의 모든 것이 그분의 것임을 시인하는 믿음의 고백인 것입니다. 이 일은 율법이 오기 훨씬 전에 행해진 것입니다. 그러므로 소득의 십분의 일을 주님께 드리는 것은 나의 모든 것이 주님의 것임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창 14:17-20) “그가 그돌라오멜과 또 그와 함께한 왕들을 살육하고 돌아올 때에 소돔 왕이 사웨 골짜기 곧 왕의 골짜기에 나와 그를 맞이하였고 18) 살렘 왕 멜기세덱이 빵과 포도즙을 가지고 나왔는데 그는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제사장이었더라. 19) 그가 아브람을 축복하여 이르되, 하늘과 땅의 소유주 되시는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아브람에게 복이 있을지어다. 20) 네 원수들을 네 손에 넘겨주신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을 찬송할지어다, 하매 그가 모든 것의 십분의 일을 그에게 주니라.”
그러면 우리의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을 따라 주님을 섬기는 것이 마땅합니다. 십일조가 율법이냐 아니냐? 따지는 것은 우리가 논쟁할 일이 전혀 아닙니다. 십일조를 드림으로 구원을 받고 드리지 않음으로 구원을 못 받고 가 아닙니다. 십일조를 드림으로 복을 받거나 드리지 않았기 때문에 복을 받지 못하는 것이 아닙니다. 단순한 우리 믿음의 신앙고백입니다.
아브라함이 우리 믿음의 조상이라면 그의 믿음을 따라 행하는 것은 너무나도 마땅한 일입니다. (갈 3:6-7) “이것은 곧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매 그것을 그에게 의로 여기셨느니라 함과 같으니라. 7) 그런즉 너희는 믿음에 속한 자들 곧 그들이 아브라함의 자손들인 줄 알지어다.” 9) “그런즉 이와 같이 믿음에 속한 자들은 믿음이 충만한 아브라함과 함께 복을 받느니라.”
여러분들이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것들을 받으려면 아브라함의 믿음의 행위를 따라 살아야 하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일입니다. 우리는 율법을 따르는 자들이 아니라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에게 하신 약속 안에서 상속유업을 받으려는 것입니다. (갈 3:18) “만일 그 상속 유업이 율법에서 나면 그것은 더 이상 약속에서 나지 아니하느니라.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것을 아브라함에게 약속을 통해 주셨느니라.”
그러면 온전한 십일조란 무엇입니까? 순수함과 온전함과 사랑입니다.
전에도 간증 설교를 할 때 예를 든 일이 있지만 다시 말씀 드리겠습니다.
제가 수원 영광교회로 처음 부임을 했을 때 교회 건물주인이 밀린 월세를 받기위해서 저에게 하는 말이 [십일조의 반절은 자기가 다니는 교회에 내고 반은 이 교회에 내면 안 되겠습니까?]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십일조가 누구의 것입니까? 그것을 하나님의 것이라고 생각하면 어찌 자기 마음대로 합니까? 자기가 속한 교회에 온전한 십일조를 드리십시오. 저의 교회가 약하여 돕고 싶으면 구제헌금을 따로 하십시오. 했습니다.
어떤 성도는 감사헌금을 하라니까 십일조에서 얼마를 떼어내어 십일조와 감사헌금으로 써 내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는 십일조도 하고 감사헌금도 했다고 생각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의 것을 도둑질 한 것입니다.
어떤 성도는 건축헌금을 하라니까 십일조에서 얼마를 떼어내어 일부는 십일조로 일부는 건축헌금으로 나누어 냈습니다. 그러면 세상방식으로 보면 십일조도 내고 건축헌금도 한 셈입니다. 그러나 주님은 그런 것을 기뻐 받으시지 않으십니다. 그는 헌금을 하고도 실패한 것입니다. 십일조는 하나님의 것이라고 따로 정해진 거룩한 것입니다. 그는 구별된 그 거룩한 것을 도둑질 한 것입니다.
교회에는 헌금의 종류가 너무 많다고 불평불만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우리 교회에도 교회 규칙으로 정해진 것은 아니지만 일요일 예배 시 드리는 주의 첫날 헌금이 있고 선교헌금이 있고 십분의 일을 드리는 헌금이 있습니다. 물론 강요에 의한 것은 아닙니다. 각자 주님을 만나고 구원 받은 감사함으로 자기 스스로 정한 약속에 의한 것입니다. 주님과의 첫사랑을 지키는 일입니다. 자원하여 기쁨으로 드립니다. 그러나 그것도 부담스럽다면 하지 않아도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자원하여 드리는 것을 받으십니다. 가진 것이 없는데 빚지면서 헌금하라 강요하시지 않습니다.
(고후 8:11-12) “그러므로 이제는 그것을 행하여 완수하라. 이미 하려고 준비되어 있은즉 너희가 가진 것으로 완수할지니라. 12) 먼저 자원하는 마음만 있으면 사람이 가진 것에 따라 주께서 그것을 받으실 것이요, 그가 갖지 아니한 것은 받지 아니하시리라.”
주님께 드리는 헌금은 자기 자신과의 약속입니다. 자기의 수입이 얼마이니까 그것의 십분의 일을 드리겠다는 것은 자기만이 아는 자기약속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십의 이조를 내라 십의 삼조를 내라 하시지 않습니다. 자기의 신앙고백이므로 마지못해 하거나 억지로 하는 것을 기뻐하시지 않으시고 즐거이 내는 자를 사랑하십니다.
(고후 9:6-7) “다만 내가 말하려는 바는 이것이니 곧 인색하게 뿌리는 자는 또한 인색하게 거둘 것이요, 풍성하게 뿌리는 자는 또한 풍성하게 거두리라는 것이라. 7) 저마다 자기 마음속에 정한 대로 낼 것이요, 마지못해 하거나 억지로 하지 말지니 [하나님]은 즐거이 내는 자를 사랑하시느니라.”했습니다.
사정이 있어 교회에 출석하지 못했다고 자기 자신과의 약속을 깨뜨리는 것은 온전한 것이 아닙니다. 다른 달보다 생활비가 많이 들어가 자기 마음속에 정한 것을 다하지 못했다는 것은 이미 하나님은 그의 우선순위에서 차 순으로 밀려난 것입니다. 자기 생활 속에서 하나님보다 더 우선순위에 있는 것이 있다면 그에게는 그것이 그의 우상이요, 그의 하나님입니다.
전체의 십분의 일이란 처음 것을 말하며 먼저라는 의미이며 모두라는 의미입니다. 자기가 믿음으로 약속한 것을 하나님의 것으로 먼저 구별하여 놓고 나머지로 자기의 삶을 사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의 것을 가지고 자기 마음대로 분산시키는 것은 믿음이나 사랑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마지못해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하신 약속을 분명히 지키십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하나님께 드리기로 약속한 것들도 온전히 사랑으로 드려야 함은 말할 필요도 없을 것입니다.
헌금에 한한한 자기 자신에게나 하나님에게나 서로에게 거짓말해서는 안 됩니다. (골 3:9-10) “서로 거짓말하지 말라. 너희는 옛 사람과 그의 행위를 벗어 버리고 10) 새 사람을 입었는데 이 새 사람은 그를 창조하신 분의 형상을 따라 지식에서 새로워진 자니라.”구원 받고 새로운 창조물이 되었는데도 세상방법으로 살아간다면 아직도 옛 사람의 행위를 버리지 못한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월급날을 왜 기다립니까? 생활비 때문입니까? 카드 값 때문입니까? 여행하기 위해서입니까? 맛있는 것을 먹기 위해서입니까? 그동안 건강주시고 일할 수 있는 직장 주시고 시마다 때마다 모든 위험으로부터 보호해 주시고 은혜주신 주님께 드릴 헌금을 드리기 위해서 월급을 기다립니까?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저는 여러분들에게 시험 들게 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날이 갈수록 더욱 굳건한 믿음위에 세워지기를 간절히 바라는 것입니다. 믿음 없이 드리고 소득 없이 끝나는 것을 바라지 않습니다. 주께서 약속하신 새 상속 언약이 여러분들에게 이루어지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히 9:15) 『이런 까닭에 그분께서는 새 상속 언약(new testament)의 중재자이시니 이것은 첫 상속 언약(first testament) 아래 있던 범법들을 구속하시려고 죽으심으로써 부르심을 받은 자들이 영원한 상속 유업의 약속(promise)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
믿음 생활에도 인내가 필요합니다.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것을 받기 위해서도 인내가 필요합니다. (히 10:36) 『너희가 [하나님]의 뜻을 행한 뒤에 그 약속하신 것을 받기 위해 너희에게 인내가 필요하니라.』하셨습니다.
하나님께 드리기로 약속한 것들을 여러분들의 형편에 따라 흥정하거나 타협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여러분들의 생활여하에 따라 하나님의 것을 나누지 마시기 바랍니다. 거룩하고 온전한 것을 드림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시기를 진심으로 부탁드립니다. 기왕 드리는 헌물을 달콤한 냄새의 향기로움으로 드려서 그분을 감동시키십시오.
(빌 4:18-19) “오직 내게는 모든 것이 있고 또 풍부하니라. 에바브로디도 편에 너희가 보낸 것들을 받았으므로 내가 풍족한데 이것은 달콤한 냄새의 향기요 받으실 만한 희생물이며 [하나님]을 매우 기쁘게 한 것이니라. 19) 오직 내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예수님을 통해 영광 가운데서 자신의 부요하심에 따라 너희의 모든 필요를 공급하시리라.”
여러분들이 스스로 마음에 정한 대로 온전하게 드려 하나님을 매우 기쁘시게 해 드리시기를 거듭 간곡히 부탁드립니다. [이것은 달콤한 냄새의 향기요 받으실 만한 희생물이며 [하나님]을 매우 기쁘게 한 것이니라.]하셨습니다.
혹시 여러분들에게 이 말씀으로 시험이 든다면 분을 내기 보다는 말씀을 상고하고 묵상함으로서 자신의 믿음을 세우고 더욱 주님의 약속이 자신에게 성취되도록 더욱 다가서시기를 축원합니다. (약 1:12) 『시험을 견디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가 단련을 받은 뒤에 [주]께서 자신을 사랑하는 자들에게 약속하신 생명의 관(冠)을 받으리라.』 항상 초심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주님을 만난 첫사랑을 기억하시고 그 사랑을 회복하기위한 노력을 끊임없이 하십시오.
주님은 물질적으로 풍부한 자들을 택하신 것이 아니라 가난한 자들을 택하신 주님께 감사드리고 우리 가난한 자들을 사랑하시고 가난한 자들에게 약속하신 왕국의 상속자들임을 자랑스럽게 여기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약 2:5)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귀를 기울이라. [하나님]께서 이 세상의 가난한 자들을 택하사 믿음에 부요하게 하시고 또 자신을 사랑하는 자들에게 약속하신 왕국의 상속자들로 삼지 아니하셨느냐?』
하나님의 크신 은혜와 사랑을 감사하며 우리에게 주어진 지극히 크고 보배로운 약속들이 성취되는 그날을 소망하며 하나님의 것을 즐겁고 기쁜 마음으로 온전히 하나님께 돌려 드리는 귀한 성도들이 다 되시기를 진심으로 축원합니다. 우리를 데리러 오실 그분을 기다리며 보배로운 약속들이 우리에게 성취되기를 소망하며 주님을 찬양합시다.
(벧후 1:4) 『그것들로 말미암아 지극히 크고 보배로운 약속들이 우리에게 주어졌나니 이것은 너희가 이 약속들을 힘입어 정욕으로 인해 세상에 있게 된 썩을 것을 피하여 하나님의 본성에 참여하는 자가 되게 하려 함이니라.』
2020-08-02 13:2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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