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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원광 [ E-mail ]
  당신은 그리스도인이라 불립니까
  http://av1611.co.kr

제목: 당신은 그리스도인이라 불립니까
■ 본문: (행 11:26) “그를 만나매 안디옥으로 그를 데려오니라. 그들이 만 일 년 동안 그 교회와 함께 모이며 많은 사람들을 가르쳤는데 제자들이 안디옥에서 처음으로 그리스도인이라 불리니라.”
코로나_19로 인해 국가에서 정한 사회적 거리두기 단계가 오르내리고 있는데요. 우리 교회도 하나님의 법에 어긋나지 않는 한, 더 높은 권력에 복종하고 있습니다(롬 13:1).
저의 주변에 교회를 다닌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제법 있습니다. 그런데 요즈음 같이 사회적으로 어려움을 격는 시기에는 교회에 다닌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올바른 믿음으로 사는지, 그렇지 않은지 확연히 드러나 보이게 됩니다. 교회에 다닌다고 해서 모두 거듭난 성도가 아니듯이, 거듭났다고 해서 모두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도 아닙니다.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거듭나길 원하시듯, 모든 거듭난 사람이 그리스도인으로 불려지길 원하십니다.
한글 ‘그리스도인’으로 번역된 영어 단어는 ‘Christian’인데요. ‘Christian’은 ‘Christ’와 ‘ian’의 합성어입니다. 여러분은 ‘그리스도’가 어떤 분인지 잘 아시죠! 그리고 뒤에 붙은 ‘ian’은 ‘~에 대한 전문가’를, 또는 ‘~의 성질을 지니고 있다’는 의미를 나타내는 접미사입니다. 그러니까 ‘Christian’이라고 하면, 그리스도에 대한 전문가, 또는 그리스도의 성질을 지니고 있는 사람에 대한 호칭입니다.
여러분에게 질문을 하나 드릴 건데요, 제가 드리는 말에서 표현이 좀 어색한 부분을 찾아보세요.
질문입니다. “당신은 지금 그리스도인답게 살고 있습니까?” 답은 ‘-답게’입니다. 이것이 왜 어색한 표현일까요? 사람은 자신이 믿는 바 대로 생활을 합니다. 교회에 다니는 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서 교회에서는 거듭난 사람은 성경에 기록된 이러저러 한 말씀을 믿어야 한다고 가르칩니다. 그런데 이 말에 조금 어색한 부분이 있습니다. 가르치는 누군가가 그렇게 말을 한다고 해서 진정으로 믿을 수 있는게 아니기 때문입니다. 만일 사람들에게 그리스도인이 되기 위해서 이러저러한 것을 믿어야 한다고 가르친다면, 이것은 말 앞에 마차가 매어 있는 것과 같습니다. 말 앞에 마차가 있는 형상, 순서가 바뀌었다는 것입니다. -답게 행동하는 것은 누군가가 그리스도인이 된 이후 생활 속에서 결과로 나타나는 것이지, 그 내용을 믿으라고 해서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주님이 말씀하신 ‘믿으라.’는 것은 머리로 인식하는 지적인 요소만을 예기하신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의 지성/공감/의지를 통해 깨닫게 된 말씀대로 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을 믿는다’는 것은 나 자신을 주님께 맡긴다는 의미입니다. 자신의 모든 것을 전부 맡기는 것이 예수님을 믿는 것입니다. 삶의 위기를 주님과 함께 지났던 사람들은 모든 것을 분명하게 보는 가운데 자신의 모든 것을 주님께 드리게 됩니다. 그러나 대부분은 위기가 오기 전까지, 우리는 너무나 얇팍한 사람이기에 자기 자신을 믿으려고 했지, 주님께 자신의 모든 것을 맡기려 하지는 않습니다.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인이 되기 위한 가장 중요한 요소를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이든 상관없이 그리스도의 영이 그에게 임해 있고(거듭났고), 그 영에 인도받으며 사는 사람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사람이 천사가 될 수 없는 것처럼 인간의 노력이나 힘으로 그리스도인이 될 수 없습니다.
앞서 질문으로 드린 “당신은 지금 그리스도인답게 살고 있습니까?”에서 왜 ‘-답게’인지 아시겠습니까? 우리는 그리스도인답게 종교생활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의 믿음으로 살아가다 보니 얻게 된 호칭이 ‘그리스도인’인데, ‘–답게’라는 표현은 그리스도인이 되기 위해서 지적 가르침대로 살아야 한다는 종교적인 표현으로 들립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인이 되려면, 먼저 하나님의 말씀을 믿어야 한다고 성경은 말하지 않습니다. 오해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믿는 믿음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성령의 열매입니다. ‘먼저’가 아니라고 말한 이유는 예수님의 음성을 통해 성경을 접할 때까지 성경은 아직 우리에게 하나님의 말씀으로 와닿지 않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주님을 인격체로 만나서 알아가기 전까지는 성경이 우리의 삶에 큰 영향을 주지 않습니다. 성경을 이해하는 비결은 나의 지능이 아니라, 예수님과의 인격적인 관계가 바르게 형성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먼저 내 마음속에 주 예수 그리스도로 인한 변화가 있어야 하나님과 성경기록에 대한 지적인 이론이 바르게 정립될 수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절에 있는 스님이 성경을 공부했다고 해서 성경을 바르게 이해했다고 할 수 없는 이유입니다. 어떤 설교자가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 창세기부터 요한계시록까지 잘 가르친다고 하더라도 그는 전혀 그리스도인이 아닐 수 있습니다. 무슨 말인지 아시겠습니까? 그리스도인은 지적으로만 형성되는 것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당연히 지적으로도 감정으로도 의지로도 이해가 되고 감동되어, 전적으로 하나님의 영에 의해 인도받는 사람이 그리스도인이라는 평가를 받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리스도인이란 누구입니까? 여러분은 주변 사람들로부터 그리스도인이라고 불립니까?
1.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의 영이 임해 있는 거듭난 사람입니다.
누군가가 그리스도인이 되기 위해서는 그가 하나님으로부터 어떤 선물을 받아야 합니다. 주님께서는 이를 ‘위로부터 난 선물이신 성령님, 그분을 통한 거듭남’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눅 11:13).
(요 3:3) “예수님께서 그에게 응답하여 이르시되, 진실로 진실로 내가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다시 태어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왕국을 볼 수 없느니라, 하시니라.”
(롬 8:9) “그러나 너희 안에 [하나님]의 [영]께서 거하시면 너희가 육신 안에 있지 아니하고 성령 안에 있나니 이제 어떤 사람에게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는 그분의 사람이 아니니라.”
그리스도인이 되기 위한 가장 중요한 요소는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이든 상관없이 그리스도의 영이 그에게 임해 있어야 합니다. 기독교의 단체에 가입하거나 기독교 예식에 참여한다고 해서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세상을 살다보면 어떤 경우에는 교단이나 예식이 필요할 수도 있겠지만, 시간이 지나면 교단이나 예식이 사람 위에 군림하게 됩니다. 교회나 교회 기관이나 종교단체의 교리와 신조를 따르기 때문에 스스로 기독교인이라고 착각할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교회의 참된 회원 자격을 말한다면, 성령님에 의해 예수 그리스도가 누구신지에 대해 인격적으로 알게 되었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기독교의 근본은 믿음에서(by faith) 옵니다. 믿음은 하나님의 기록된 말씀에서 오는 것입니다(롬 10:17). 우리가 누군가를 신뢰하고 믿게 될 때, 무의식적으로 믿게 되는 것처럼 믿음은 믿어야지와 같이 의식적으로 해서 얻게 되는 것이 아닙니다. 믿음은 편안하고 자연스럽습니다. 그래서 성경적 믿음은 내가 하는 행동으로 나타나게 되어 있습니다(약 2:22). 올바른 믿음은 건전한 성경적 지식과 모순되지 않습니다. 내 믿음이 올바른지 아닌지를 성경기록을 바르게 나누어 점검해 봐야 합니다. 그렇다고 해서 지식이 첫째가 되어서는 안 되고, 성경기록을 믿는 믿음이 첫째가 되어야 합니다. 진리의 영이신 성령님은 우리를 진리가운데로 인도하십니다(요 16:13). 그리스도인은 어떤 사람이든 상관없이 그리스도의 영이 그에게 임해 있어야 합니다.
2. 그리스도인의 주된 관심은 하나님께 있습니다.
우리의 주된 관심이 무엇이냐에 따라서 우리의 영적인 삶의 성숙도를 측정할 수 있습니다. 이런 평가는 여러분이 위기 속에 있을 때, 끝까지 붙잡는 것이 어떤 것이냐에 따라서 여러분의 주된 관심이 무엇인지 평가될 것입니다.
(롬 8:14) “[하나님]의 [영]에 의해 인도 받는 자들은 다 [하나님]의 아들들이니”
여러분은 어려운 상황에서 무엇을 붙들고 살고 계십니까? 돈과 수입원 입니까? 주변 사람들의 도움입니까? 직장입니까? 권력입니까? 보험입니까? 그러나 어떤 여건에서건 그리스도인의 주된 관심은 하나님께 있습니다.
우리가 거듭날 때, 우리를 주관하시는 영은 성령님이십니다. 그러나 아직 우리의 마음은 언제나 ‘나’라는 자아 실현을 원하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우리가 그만큼 육신적이라는 증거입니다.
(롬 8:9) “그러나 너희 안에 [하나님]의 [영]께서 거하시면 너희가 육신 안에 있지 아니하고 성령 안에 있나니 이제 어떤 사람에게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는 그분의 사람이 아니니라.”
여러분도 경험이 있으시겠지만, 거듭난 사람이 영적인 삶을 살고자 할 때, 제일 먼저 의식하게 되는 것은 영에 속한 것인가, 육신에 속한 것인가?에 대한 갈등입니다. 이것은 아주 당연한 것입니다. 거듭나게 되면 나의 내적인 세계에서의 갈등이 있습니다. 이 갈등에서 진리로 인도하시는 성령님의 인도를 받으면 영에 속한 사람으로 속사람이 성장하는 것이고, 육신에 속한 뜻을 쫓으면, 하나님을 등지고 사망의 길로 걷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주도적인 관심이 무엇이냐에 따라서 여러분의 영적인 삶을 측정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의 주된 관심의 삶은 무엇입니까? 사람마다 조금씩 다르겠지만, 여러분이 시간을 어디에 가장 많이 사용하고 투자하고 있는지로 간단히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주요 관심은 이 세상에 있지 않았습니다. 주님의 주요 관심은 외적인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 함께 숨겨져 있던 내적인 것이었습니다. 그분의 마음속에는 항상 하나님의 왕국이 있었습니다. 우리도 그래야 하는데, 우리를 방해하는 것들이 있습니다. 하나님을 향해 집중하려는데, 가족, 사회, 직장, 종교, 궁핍 등이 내가 하나님을 향해 집중하려는데 방해를 받게 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일반적인 사회의 삶 속에서도, 제자들이나 유대인들이나 세리나 죄인들과 시간을 보내실 때도 주님의 주된 관심은 하나님의 왕국에 있었습니다. 주도적인 관심 사항이 확고하셨기 때문에 자신의 주변에서 벌어지는 모든 일들도 성령님의 인도와 하나님의 왕국 성취에 맞춰 계셨습니다.
사람들은 연속적으로 또한 큰 어려움이 겹쳐서 당하게 되면, 그가 어떤 주된 관심을 갖고 살아가는지 드러나게 됩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은 어려움에 닥칠수록 하나님의 영에 의해 인도를 받으며 계속 진리 안에서 거합니다.
(요 16:13) “그러나 그분 곧 진리의 [영]께서 오시면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 그분은 스스로 말씀하지 아니하시고 무엇이든지 자기가 들을 것만을 말씀하시며 앞으로 일어날 일들을 너희에게 보이시리라.”
그리스도인이 어려움에 처하면 처할수록 뜨겁게 하나님을 찾고, 간절히 하나님을 의지하게 됩니다. 여러분도 그리스도인이라고 불리고 계신가요?
3. 그리스도인의 생각(mind)은 그리스도와 일치되어 있습니다.
(고전 2:15~16) “15) 오직 영에 속한 사람은 모든 것을 판단하나 그 자신은 아무에게도 판단을 받지 아니하느니라. 16) 누가 [주]의 생각을 알아서 그를 가르치겠느냐? 그러나 우리가 그리스도의 생각(mind)을 가졌느니라.”
한글로 “생각”이라고 번역한 “mind”는 생각, 사고관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마인드는 마음에서의 생각과 의도를 세우는 틀과 같은 역할을 합니다. 예수님의 마인드와 내 마인드를 겹쳐서 보게 되면, 공동으로 겹치는 부분도 있을 수 있지만, 그렇지 않은 부분이 더 많을 것입니다. 예수님의 마인드와 내 마인드를 겹칠 때, 예수님 마인드 밖에 있는 내 생각들은 모두 버려야 하는 것들입니다. 악에 대해서, 죄에 대해서 등.
그리고 예수님의 마인드와 내 마인드를 겹쳤을 때, 내 마인드가 부족한 부분은 예수님의 마인드로 채워져야 하는 것입니다. 사랑에 대해서, 아버지의 기쁨에 대해서, 은혜에 대해서, 긍휼에 대해서, 믿음에 대해서, 소망에 대해서 등. 예수님의 마인드와 내 마인드가 비슷한 사람은 예수님과 비슷한 생각과 마음으로 살아가고 있기 때문에 그의 생활 모습을 보면서 우리는 그를 그리스도인이라고 부르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생각이 예수님의 생각과 얼마나 일치하십니까? 많이 일치하신다면 여러분도 그리스도인이라고 불리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아직 미숙할 때는 우리의 영적인 삶에서 육신을 따르는 나의 모습들이 여전히 남아 있게 됩니다. 예를 들면, “내가 무엇을 해야 할지에 대해 내 마음대로 하게, 아무도 내게 말하지 않으면 좋겠어요. 나는 내가 원하는 대로 하나님을 섬길께요.” 이런 생각을 하는 것은 자신이 아직 영적으로 경험이 없고, 미숙해서 자기 자신을 내세우는 것입니다. 이런 분은 하나님과 하나 되어 함께 일을 할 수 없는 종교적인 자신의 일을 하게 될 뿐입니다.
예수님이 기도하셨던 “아버지께서 내게 주신 영광을 내가 그들에게 주었사오니 이것은 우리가 하나인 것 같이 그들도 하나가 되게 하려 함이니이다.”(요 17:22)
예수님은 아버지의 생각과 아버지가 이루시려는 목표와 방법이 일치되었기 때문에 하나 될 수 있었는데요, 그렇게 예수님은 자신의 영광이 아니라 아버지의 영광을 드러냄으로 하나가 될 수 있듯이, 우리도 자기 자신을 내세우지 않고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을 드러낼 정도로 성숙 되고 예수님과 생각이 일치해야 주님과 하나 되어 하나님의 일을 할 수 있게 됩니다. 예수님이 아버지의 영광을 위해였던 것처럼 진정한 그리스도인은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을 위해 살려고 합니다.
4. 그리스도인은 자아 실현이 아니라 그리스도 실현을 원합니다.
(마 16:24~25) “24) ¶ 그때에 예수님께서 자기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어떤 사람이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지니라. 25) 누구든지 자기 생명을 구원하려 하는 자는 그것을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로 인해 자기 생명을 잃으려 하는 자는 그것을 찾으리라.”
자아인 나를 내세우고 실현하는 것이 요즈음 세상 사람들의 트렌드입니다. 그들은 “도덕적인 사람이 되라, 종교적인 사람이 되라, 너 자신의 뜻을 이루도록 해라.”고 외칩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자아 실현을 목표로 선하고 흠 없이 살아가는 인생은 예수 그리스도를 거부합니다.
오늘날 복음 선포 입장에서 볼 때, 가장 어려운 문제는 사람들의 외적인 죄가 아니라, 자아 실현을 원하는 내적인 이상일 것입니다. 이러한 자아 실현의 꿈은 더욱 분명하게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사람들을 분리시키고 있습니다. 만약 우리가 주님의 제자가 되려고 한다면, 우리의 꿈은 내 자아 실현이 아니라, 나를 통한 예수 그리스도의 실현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려면 예수 그리스도의 매력을 알게 될 때, 삶에 큰 변화가 나타납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말씀하셨습니다.
(마 16:24) “¶ 그때에 예수님께서 자기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어떤 사람이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지니라.”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라는 말씀의 의미는 무엇일까요? 종교 역사를 보면 금욕운동이 자아 부인이라고 믿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종교에서 말하는 금욕이 자아 부인일까요? 주님께서는 우리의 유익을 위해서 어떤 부분을 거부하라고 가르치신 것이 아닙니다. 주님이 말씀하신 의미는 “자신에 대한 권리를 모두 부인하고 내게 맡기라.”는 의미입니다. 예수님께서 하신 이 말씀은 대충 살거나, 막 살아온 청년에게 하신 것이 아니라, 깨끗하고 흠 없이 살아온 훌륭한 부자 청년이 제자가 되기 원하는 조건으로 하신 말씀입니다. 나에게 주어진 권리를 다른 누군가에게 넘기는 것은 넘김(양도) 받은 사람에 대한 신뢰가 없다면 불가능한 일입니다. 여러분은 여러분에게 주어진 권리를 예수님께 양도하고 있습니까? 아니면 구원받을 때는 양도했지만, 일상에서는 그 권리를 다시 찾아와서 가끔 내가 원하는 것은 내가 하고, 어렵고 힘들고 필요 없어 보이는 것들에 대한 권리만 예수님께 양도하고 있는 것은 아닙니까?
나를 부인해야 예수님이 그의 인생을 인도해 주시는 것입니다. 이 말씀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성경이 말하는 십자가의 특성을 알아야 합니다. 십자가는 죄인을 죽여 매달게 하는 형벌입니다. 나의 옛 본성을 가지고 있는 내 자아가 자기 십자가에 못박혀 죽어있다는 것입니다.
(갈 2:20)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혀 있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노라. 그러나 내가 아니요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 사시느니라. 나는 지금 내가 육체 안에서 사는 삶을,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해 자신을 주신 [하나님]의 [아들]의 믿음으로 사노라.”
그렇게 거듭나기 전의 내 자아가, 내 뜻이, 내 생각이, 십자가에 못박힌 채로 죽어있어야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서 살아가심으로 거듭난 새사람이 예수님과 함께 걸을 수 있고 생명의 하나님과 동행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살아가면 누구와 비슷하게 보일까요? 예수님이겠죠. 그래서 그렇게 사는 사람들을 ‘그리스도인’이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5. 그리스도인은 자신의 옛사람이 아닌 그리스도를 선택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으로부터 거듭날 때, 우리 안에 임하시는 그리스도의 영, 즉 성령님에 의해서 발견되는 것은 우리 안에 죄의 성향이 가득찬 나의 옛 사람입니다. 그래서 우리의 옛사람이 예수님의 죽으심과 함께 못박혀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롬 6:6~7) “6) 우리가 이것을 알거니와 우리의 옛 사람이 그분과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것은 죄의 몸을 멸하여 이제부터는 우리가 죄를 섬기지 아니하게 하려 함이니 7) 죽은 자는 죄로부터 해방되었느니라.”
하나님의 다시 태어나게 하시는 은혜가 우리 안에서 역사할 때, 가장 먼저 나타나는 새사람의 경험은 이 죄성의 옛사람과의 충돌입니다. 이 충돌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이제 거듭나기 이전의 나의 옛성향을 계속 따라 살 것인가 아니면, 그 옛사람을 십자가에 못 박고 새사람으로 그리스도와 함께 살 것인가를 선택해야 합니다. 우리의 죄성은 지금까지 자기 멋대로 모든 것을 주관해 왔던 힘으로 하나님의 영을 거슬러 왔기 때문에 옛사람과 새사람은 함께 거할 수 없습니다.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 안에 계신 성령님께서는 우리의 마음을 살피시고 계속해서 죄에 대해서 의에 대해서 심판에 대해서 세상을 꾸짖으시고, 우리를 예수 그리스도께로 인도하십니다.
여러분은 우리의 옛사람이 십자가에 못박혀 있다는 하나님의 판결에 동의하십니까? 여러분이 동의할 때, 여러분의 옛사람이 갖고 있던 죄성은 그리스도의 몸이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처럼 여러분 안에서 죽어있게 될 것입니다. 죽은 자는 말이 없습니다. 죽은 자는 죄의 뜻을 이행할 힘이 없습니다.
주의해야 할 것은 여러분이 하나님의 뜻에 따라 여러분의 의지를 과감히 항복하지 않는다면, 여러분은 자신을 죄에 죽은 것으로 처리할 수 없게 되어 다시 죄를 지음으로 죽은 자 같은 삶을 살아가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여러분이 하나님의 말씀과 그분의 뜻에 과감히 순종하면, 여러분 안에 계신 그리스도께서 여러분을 통해 그리스도로 살아가실 것입니다. 그렇게 우리의 옛사람은 십자가에 못 박힌채, 그리스도를 선택하는 새사람으로 태어난 것입니다.
6. 그리스도인은 성경기록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는 믿음을 소유합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성경에 기록된 하나님에 대한 사실, 사람에 대한 사실, 죄와 사탄에 대한 사실을 마음으로 정직하게 믿는 것입니다.
오늘날 많은 성도들이 성경과 관련해서 자기 신분과 위치를 모른 채 행동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을 믿는다고 말은 하지만, 실생활에서는 예수님의 말씀을 부인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주님 자신이 성경의 맥락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요 5:39) “¶ 성경 기록들을 탐구하라. 너희가 그것들 안에서 영원한 생명을 얻는 줄로 생각하거니와 그것들은 곧 나에 대하여 증언하는 것들이니라.”
(요 5:46) “너희가 모세를 믿었더라면 나를 믿었으리니 그는 나에 대하여 기록하였느니라.”
성경기록에 대항하는, 또는 성경기록을 임의로 해석하는 모든 지적인 교만은 사람들이 하나님에 대해 불신하고 있다는 분명한 증거입니다. 오늘날 교회에 다니는 사람들 중에 예수님께서 구약 성경기록을 믿으셨던 것처럼 믿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요?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예수님께서 아버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신 것처럼, 우리도 주님의 말씀에 순종해야 함을 의미합니다. 이것은 우리의 이성의 능력을 발휘하지 말라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우리의 지성과 감성과 이성을 다해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에게는 예수님이 여러분 안에서 어떤 위치를 차지하고 계십니까? 만약 여러분이 주 예수 그리스도를 가장 높고 유일한 권위로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여러분은 성경 말씀을 온전히 깨달을 수 없습니다. 그 이유는 성경의 유일한 해석자는 그리스도의 영이신 성령님이시고, 그분도 여러분에게 역사하지 않으시기 때문입니다. 성령님께서는 주 예수 그리스도를 최고의 권위로 인정하는 사람들에게 역사하십니다.
여러분은 주 예수 그리스도를 지적으로 동의하고, 마음으로 주님(Lord)으로 받아들였습니까? 그렇게 받아들였는데, 지금 여러분의 인생의 주인은 누구입니까? 정말로 예수님이십니까? 여러분의 삶의 모든 영역에서 최고의 권위자 자리에 예수님으로 받아들인 것이 확실합니까? 혹시 여러분이 잘하는 분야는 제외하고, 못하고 어려운 분야에서만 주님으로 영접하신 것은 아닙니까? 여러분이 예수님을 모든 분야에서 최종 권위로 삼을 때, 여러분은 그리스도인의 걸음을 걷게 되는 것입니다.
7. 그리스도인은 기쁨으로 위대한 삶을 살아갑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영접해서 성도가 되는 것은 위대한 사건이지만, 성도가 된다는 것에 대한 (성경적인) 의미에 대해 오해가 있는 것 같습니다. 성도가 된다는 것은 예수님의 능력이나 계획을 믿는 것이 아니라, 어떤 상황에서도 기쁨이나 고난 가운데에서도 주님의 말씀을 믿고 따르는 것입니다.
(벧전 4:13) “오히려 너희가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하는 자가 되었으므로 기뻐하라. 이것은 그분의 영광이 드러날 때에 너희가 넘치는 기쁨으로 또한 즐거워하게 하려 함이니라.”
(벧전 4:16) “그럼에도 어떤 사람이 그리스도인으로 고난을 받으면 그는 부끄러워하지 말고 도리어 이 일로 인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
우리의 삶에 고난이나 질병이 있을지라도 바른 믿음은 자신에게 소중한 모든 것을 걸고 예수 그리스도와 그분의 말씀을 선택하는 것입니다.
사랑은 “모든 것을 참으며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며 모든 것을 견디느니라.”(고전 13:7)
올바른 믿음은 그리스도께 있습니다. 그분은 결코 거짓말하지 않으시며, 결코 잘못된 생각을 갖지 않으십니다. 기독교의 믿음이란 하나님의 말씀을 믿으므로 예수 그리스도를 향한 인격적인 신뢰입니다. 그 신뢰가 있는 사람은 그분의 말씀에 따른 적절한 행동을 합니다.
믿음(faith)은 믿으려고(believe) 노력해서 되는 것이 아니고, 억지로 되지 않는 우리의 마음속에서 자연스럽게 예수님을 믿고 신뢰하게 되는 가운데 그분의 말씀을 받아들임으로 성령의 열매인 믿음을 맺게 됩니다.
욥은 자신의 죽음과도 바꿀 정도로 하나님을 신뢰했습니다. 그리고 자신이 신뢰하는 길을 유지했습니다.
(욥 13:15) “그분께서 나를 죽이실지라도 나는 그분을 신뢰할 것이요, 오직 나는 그분 앞에서 내 자신의 길들을 유지하리라.”
욥만 그랬을까요? 다니엘의 세 친구들도 그랬습니다.
(단 3:17~18) “17) 오 왕이여, 그리될지라도 우리가 섬기는 우리 [하나님]께서 맹렬히 불타는 용광로에서 능히 우리를 건져 내시겠고 또한 그분께서 왕의 손에서 우리를 건져 내시리이다. 18) 그러나 그리하지 아니하실지라도, 오 왕이여, 우리가 왕의 신들을 섬기지 아니하고 왕께서 세우신 금 형상에게 경배하지도 아니할 줄을 왕은 아옵소서, 하니라.”
그들이 하나님을 신뢰한 결과가 어땠죠?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았고 고난을 두려워하지 않았으며, 선하신 하나님을 향한 믿음으로 그 죽음과 고난을 기쁨으로 맞았습니다.
이렇게 그리스도인은 마음으로 주님을 신뢰하고, 고난 가운데에서도 기쁨의 삶을 살아갑니다.
오늘 살펴볼 마지막으로
8. 그리스도인은 어제나 오늘이나 하나님의 은혜로 살아갑니다.
(고후 6:1~10) “1) 그런즉 우리가 그분과 함께 일하는 일꾼으로서 너희에게도 간청하노니 너희는 [하나님]의 은혜를 헛되이 받지 말라. 2) (그분께서 이르시되, 받아 주는 때에 내가 네 말을 들었고 구원의 날에 내가 너를 구조하였노라, 하시나니, 보라, 지금이 받아 주시는 때요, 보라, 지금이 구원의 날이로다.) 3) 이 사역이 비난을 받지 않게 하려고 우리가 어떤 일에서도 실족거리를 주지 아니하며 4) 오직 모든 일에서 우리 자신을 [하나님]의 사역자로 입증하되 많은 인내와 고난과 궁핍과 곤경과 5) 매 맞음과 옥에 갇힘과 소동과 수고와 깨어 있음과 금식 가운데서 그리하고 6) 순수함과 지식과 오래 참음과 친절함과 [성령님]과 거짓 없는 사랑과 7) 진리의 말씀과 [하나님]의 권능과 오른손과 왼손에 든 의의 병기로 그리하며 8) 영예와 치욕으로 그리하고 나쁜 평판과 좋은 평판으로 그리하였나니 우리는 속이는 자 같으나 진실하고 9) 무명한 자 같으나 유명하며 죽는 자 같으나, 보라, 우리가 살고 징계를 받는 자 같으나 죽임을 당하지 아니하며 10) 근심하는 자 같으나 항상 기뻐하고 가난한 자 같으나 많은 사람을 부요하게 하며 아무것도 없는 자 같으나 모든 것을 소유한 자로다.”
‘하나님의 은혜’란 선하게 대하심으로 좋은 것이 흘러넘치는 선물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어제 받은 은혜로 오늘을 살려고 하지 않습니다. 오늘은 오늘의 은혜를 받고 누려야 합니다.
우리 개인의 삶은 우리 자신의 문제에 간섭하는 사람들에 의해 만들어져 갑니다. 그들이 우리에게 시련을 줄 의도는 없겠지만, 간섭함으로 말미암아 어떤 문제가 발생하여 나에게는 시련이 될 수도 있는데요, 이런 경우에 인내의 시험이 오게 됩니다.
우리는 이런 인내의 시점에서 하나님의 은혜를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시련이건 고난이건 궁핍이건 기쁨이건, 언제 어디서나 항상 ‘지금’이라는 때에 얻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어려운 여건에 처해 있을 때, 이 상황 가운데서 피할 길을 내달라고 기도하기 보다는 먼저 그 상황에서 하나님의 은혜를 깨닫고 이겨낼 수 있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사실, 바울이 고린도 교회에 보낸 서신에서 자신의 삶을 이렇게 표현했는데요.
(고후 6:4~7) “4) 오직 모든 일에서 우리 자신을 [하나님]의 사역자로 입증하되 많은 인내와 고난과 궁핍과 곤경과 5) 매 맞음과 옥에 갇힘과 소동과 수고와 깨어 있음과 금식 가운데서 그리하고 6) 순수함과 지식과 오래 참음과 친절함과 [성령님]과 거짓 없는 사랑과 7) 진리의 말씀과 [하나님]의 권능과 오른손과 왼손에 든 의의 병기로 그리하며”
고난과 어려움을 좋아하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이라면 그리스도로 인해 많은 인내와 고난과 궁핍과 곤경과 매 맞음과 옥에 갇힘과 소동과 수고가 주어지는 것을 성도다움을 나타낼 수 있는 때요, 그리스도인으로서의 기쁨이 될 수 있는 기회라고 생각할 것입니다.
마무리입니다.
예수님이 다시 오시기까지 이 세대는 점점 부패해져 가고 있는데요. 이와 더불어 참된 기독교를 찾기가 쉽지 않아졌습니다. 교회 내의 설교도 점점 세상적인 내용으로 물들어 가고 있고, 교회 내 프로그램도 세상 것과 별 차이가 없으며, 성도들도 세상으로부터 ‘그리스도인’이라 불리기보다 세상과 잘 동조하는 그런 친구로 인식되길 바라고 있습니다. 더욱이 성경을 가르치는 분들조차도 절대 기준인 성경기록의 권위를 잃어가며, 성경의 저자이신 성령님의 조명을 원하지 않고 있습니다. 특히 교회에 다니는 사람들이 자신은 그리스도인이라고 말은 하지만, 사실 그들에게 [그리스도인의 정체성] 조차 찾아보기 어려워지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이란? 예수 그리스도를 인격적으로 만나서 그분을 알아가고, 그분을 내 인생의 주님으로 받아들임으로 시작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거듭난 성도가 계속 그리스도와 인격적인 관계를 유지하며 속사람이 그리스도와 같을 만큼 성장해온 결과로 그리스도와 같은 생활 방식, 같은 마인드, 같은 태도를 갖고 살아가는 모습이 보일 때, 다른 사람에 의해 불려지는 호칭이 ‘그리스도인’입니다.
교회에 다니는 모든 사람이 구원받은 성도가 아니고, 모든 성도가 그리스도를 닮은 그리스도인이 아닙니다. 그럼에도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고, 그 구원받은 모든 사람이 그리스도인이라고 불리기를 원하고 계시다는 것입니다.
이 자리에 계신 분들 중에 아직 거듭남이나 다시 태어남을 모른다거나 예수 그리스도를 자신의 주님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무엇인지 잘 모른다면, 먼저 예수 그리스도와 그분께서 하신 일이 여러분 자신과 무슨 관련이 있는지를 알아보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받아들여서 다시 태어나게 되었다면, 건전한 교회를 통해, 건전한 성경을 읽으며, 건전한 교리를 배우고 건전한 생활 모습을 통해 다른 사람으로부터 ‘그리스도인’이라고 불리시길 바랍니다.
(행 26:28) “그때에 아그립바가 바울에게 이르되, 네가 나를 설득하여 거의 그리스도인이 되게 하는도다, 하매”
여러분이 성경을 하나님이 나에게 주시는 말씀으로 믿고 읽어가다 보면, 어느새 여러분의 새사람도 성령님에게 설득당해 그리스도인이 되어 있을 것입니다.
당신은 그리스도인이라 불립니까? (끝).
2020-09-13 12:32: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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