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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도 나를 따르는 자가 되라.

말씀 : 고전 11:1. 2020년 9월 27일 일요일 오전 11시

저는 어린 시절 농촌의 가난한 삶이 싫어서 어찌하든지 돈을 벌려고 발버둥을 쳤습니다. 결혼 초 한 때는 형님과 친척들의 도움으로 장사를 하여 어느 정도 종자돈을 모으기도 했었으나 더 많은 돈을 벌려고 욕심 부리다 그것마저 다 잃고 말았습니다. 그렇게 가장 가난하던 그 때 저는 이웃의 한 성도로부터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듣고 교회에 출석하며 목사님께 일대일 성경공부를 하다가 구원 받고 새 사람이 되었습니다.
복음은 먼저 가난한 자들에게 선포된다고 하신 말씀이 제게 임했습니다.
주님은 구약성경을 인용하시어서(사61:1~) 말씀하셨습니다. (눅 4:18) 『[주]의 [영]께서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그분께서 내게 기름을 부으사 가난한 자들에게 복음을 선포하게 하셨기 때문이라. 그분께서 나를 보내신 것은 마음이 상한 자들을 고치며 포로 된 자들에게 구출을, 눈먼 자들에게 다시 보게 함을 선포하고 상처 입은 자들을 자유롭게 하며 ~』 돌이켜보면 당시 저의 가난은 주님의 은혜요, 크나큰 축복이었습니다. 저에게 가난은 교만을 버리고 낮아지고 겸손하게 하여 복음을 받아들일 기회를 주신 것입니다.
저는 구원 받은 뒤에도 여전히 가난했지만 그 가난이 더 이상 불행도 두려움도 아니었으며 나날이 즐겁고 행복했습니다. 그리고 누구를 만나든지 예수님을 믿으라고 권면하고 강요하고 졸랐습니다. 그토록 좋은 복음을 모든 사람들에게 들려주고 싶었습니다. 가난에 찌들고 병든 사람들에게 내가 경험한 기쁨을 나누고 싶었습니다. 당시 저를 아는 이웃이나 친구들은 저를 돌아버린 사람, 미친놈 취급했습니다. 그러나 그런 시선이나 험담이 조금도 부끄럽거나 싫지가 않았습니다. 그냥 행복했습니다.
저는 예수님을 믿는 것이 정말 자랑스러웠습니다. 누구를 만나도 그리스도인이 되었음을 자랑했으며 그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권했습니다. 물론 많은 사람들과 친구들로부터 광신자라는 조롱과 비웃음을 샀지만 그런 것들이 마음에 걸리지도 않았고 싫지도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들을 불쌍히 여기고 사랑하는 연민의 정으로 내가 믿는 예수님을 그들에게 전하며 그들도 나와 같은 행복을 누리기를 원했습니다. 아마 이런 마음이 복음을 전하다 결박당한 바울의 마음이 아니었을까 생각해봅니다. (행 26:29) 『바울이 이르되, 각하뿐 아니라 이 날 내 말을 듣는 모든 사람도 이렇게 결박당한 것을 빼고는 거의 나와 같이 되고 전적으로 나와 같이 되기를 [하나님]께 원하나이다, 하니라.』
이것이 제가 그리스도를 만난 첫사랑이었습니다.
그런데 오늘날은 내가 그리스도인이라고 세상에 말하기가 부끄러워졌습니다. 내가 순전함을 잃고 타락했기 때문이겠지만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세상 사람들의 조롱거리와 저주의 대상이 되었다는 사실입니다. 한 때는 우리나라 처녀들의 결혼상대로 첫 손에 꼽히는 사람이 목사였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어디 가서 “제가 목사입니다.”말하기가 싫고 부끄럽기까지 합니다. 이 얼마나 불행한 일입니까? 이 얼마나 슬픈 일입니까?
저를 포함하여 모든 목사들이 회개해야합니다.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회개해야합니다. 모든 성도들이, 모든 교인들이 회개해야합니다. 주께서는 그분을 믿고 따르는 자들에게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마5:14)하셨습니다. 우리 주님은 죄로 어두워진 이 세상에 빛으로 오셨습니다. 우리 모두는 빛이신 그분을 따라 빛 가운데 다녀야합니다. (요 8:12) 『그때에 예수님께서 다시 그들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나는 세상의 빛이니 나를 따르는 자는 어둠 속에 다니지 아니하고 생명의 빛을 얻으리라, 하시니라.』
어느 목사가 지난 8.15 광화문 집회에 성도들을 데리고 갔다가 코로나19 확진을 받았는데 그가 집회에 갔던 것을 방역당국에 숨기고 거짓말하다가 많은 사람들에게 바이러스를 전파시켰다고 방송을 탔습니다. 그 목사가 다른 사람들에게 코로나 바이러스를 옮겨 고생시키는 것은 미안함이나 부끄러움이 아니고 자기가 집회에 갔던 것은 창피한 일인지, 거기 가지 않았다고 거짓말을 하니 도대체 그가 목사이기 전에 그리스도인이기나 한지 의문이 들었습니다. 그런 뉴스를 본 사람들이 모든 목사들을 어떻게 보겠습니까?
오늘날 세상이 교회나 성도들을 보는 시각은 빛이 아니라 어둠이 되었습니다. 조롱거리와 저주의 대상이 되고 말았습니다. 왜 이렇게 되었습니까? 빛이신 예수님을 따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주님의 말씀을 버렸기 때문입니다. 맛 잃은 소금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세상에 맛을 내는 소금이 되어야 하는데 소금이 그 맛을 잃어버렸으므로 땅에 버려져서 사람들의 발밑에 밟히는 신세가 되고 말았습니다. (마 5:13) 『너희는 땅의 소금이로되 만일 소금이 제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그것을 짜게 하리요? 그 뒤에는 그것이 아무 쓸모없으므로 버려져서 사람들의 발밑에 밟힐 뿐이니라.』 하신 그대로입니다.
제가 예수님을 영접하고 그분과의 첫사랑에 빠져 행복한 삶을 살아가던 어느 날 서울의 한 전통시장을 지나가다가 두 여인이 언성을 높이며 삿대질을 하고 욕하며 싸우는 것과 그 싸움을 구경하는 한 무리의 사람들을 보면서 속으로 “저 사람들도 예수님을 믿었더라면 저렇게 서로를 미워하고 욕하며 싸우지는 않을 텐데!!” 하는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때마침 어떤 여인이 그들 사이를 끼어들면서 한 여인에게 “김(金)집사님 왜 그러세요?”하니까 그 싸우던 김(金)집사라는 사람이 “저년이 나더러 도둑년이라잖아”하니까 싸움을 말리던 여인이 그 여자에게 “이(李)집사님이 참으세요.”하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그들이 모두 집사들이라는 것을 알고 나와는 전혀 관계도 없었지만 크게 놀랐고 둘러선 사람들에게 얼마나 창피하고 부끄러웠던지 지금도 그 때 일이 생생합니다. 시장 바닥에서 싸운 두 사람은 서로는 모르는 사이지만 싸움을 말린 여자와 같이 어느 큰 교회의 여자 집사들이라는 것입니다. 그들이 집사라는 직분으로 불리는데 그들은 성경에 어떤 사람들이 집사로 선택되었는지 기록된 말씀으로 교육을 다시 받아야 할 것 같았습니다.
사도행전에는 초대교회에서 제일 처음 집사들을 뽑을 때 집사의 직분을 받기에 합당한 자들에 대한 명령이 있습니다. (행 6:3) 그러므로 형제들아, 너희는 “너희 가운데서 정직하다는 평판이 있고 [성령님]과 지혜가 충만한 사람”, (행 6:5) “믿음과 [성령님]이 충만한 사람”을 집사로 뽑을 것을 명령합니다. 교회는 어떤 사람을 집사로 세우기 전에 그를 말씀에 비추어 시험해 보아야합니다.
이제 어떤 사람을 집사로 뽑아야 하는지 성경 기록을 살펴보겠습니다.
(딤전 3:7) 『또한 그는 반드시 밖에 있는 자들로부터 좋은 평판을 받아야 하리니 이것은 그가 비방과 마귀의 올무에 빠지지 아니하게 하려 함이라. 8) 이와 같이 집사들도 반드시 신중하며 한 입으로 두 말하지 아니하며 자기를 많은 술에 내주지 아니하며 더러운 이익을 탐내지 아니하며 9) 순수한 양심 속에 믿음의 신비를 간직한 자라야 할지니라. 10) 이 사람들도 먼저 시험해 보고 그 뒤에 책망 받을 것이 없는 것으로 드러나면 그들이 집사의 직무를 수행하게 할지니라.』했습니다.
또한 성경에는 여자 집사란 말은 어디에도 없습니다. 오히려 “한 아내의 남편”이라고 못을 박고 있습니다. (딤전 3:11) 『이와 같이 그들의 아내들도 반드시 신중하며 헐뜯는 자가 되지 아니하며 맑은 정신을 가지고 있으며 모든 일에서 신실한 자라야 할지니라. 12) 집사들은 한 아내의 남편이 되어 자기 자녀들과 자기 집을 잘 다스릴지니라.』했습니다.
하나님의 교회의 봉사자로 집사의 첫째 조건은 교회 안에서“정직하다는 평판”이 있어야 합니다. 교회 밖의 사람들에게도 “반드시 밖에 있는 자들로부터 좋은 평판을 받아야”합니다. 집사들은 “반드시 신중하며 한 입으로 두 말하지 아니하며 자기를 많은 술에 내주지 아니하며 더러운 이익을 탐내지 아니하며 순수한 양심 속에 믿음의 신비를 간직한 자”라야 할지니라. 했습니다.
이렇게 세워진 집사들이 시장바닥에서 욕하며 싸워야 할까요? 그들이 서로 욕하며 싸움으로 세상 사람들로부터 좋은 평판은커녕 비방을 받으며 마귀의 올무에 빠지게 됩니다. 맛 잃은 소금으로 버려져 밟히며 조롱거리가 되고 말았습니다. 성도들의 모든 언어와 행동의 기준은 언제나 기록된 성경입니다.
시장에서 싸우던 그들은 “[성령님]과 지혜가 충만한 사람”도 아니고, “믿음과 [성령님]이 충만한 사람”들이 아니라 육신의 혈기로 충만한 사람들이었습니다. 어찌된 일인지 오늘날은 교회에 출석하면 성도라는 이름이나 형제자매라는 이름보다는 집사로 불러지는 것이 보편적인 것 같습니다.
그들은 “반드시 밖에 있는 자들로부터 좋은 평판을 받았을까요?” 그 집사들의 싸움으로 교회가 좋은 평판을 받았을까요? 우리를 구원하러 오시고 우리의 죄 값을 치르신 주님이 영광을 받으셨을까요? 그녀들은 주님이 주신 명령을 지켰을까요? 참으로 안타깝습니다.
당시 집사들의 싸움이 이상하게 여겨졌던 것은 이제 막 거듭난 갓난아이가 교회 안에서 겪는 순진한 충격이었습니다. 집사들뿐만 아니라 목사나 장로들이 노회나 총회로 모일 때면 세상 사람들 못지않게 막말과 꼴불견은 정치판의 국회의원들과 다를 것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목사들이 그러하니 집사들이나 성도들은 오직하겠습니까? 세상 사람들이 그리스도인들을 보고 무엇을 배우겠습니까? 그리스도인들이 세상에 무엇을 전해야합니까?
우리의 구원자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세상에 오셔서 무엇을 선포하셨으며 제자들에게 무엇을 하라고 명령하셨습니까? 성경에 무어라 기록하셨습니까?
(마 4:23) 『예수님께서 온 갈릴리에 두루 다니사 그들의 회당들에서 가르치시고 왕국의 복음을 선포하시며 백성 가운데서 온갖 종류의 질환과 온갖 종류의 질병을 고치시니』 (눅 20:1) 『그 무렵의 어느 날 그분께서 성전에서 백성을 가르치며 복음을 선포하실 때에 수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이 장로들과 함께 와서』시비를 걸었습니다. 주님은 그들에게 왕국복음을 선포하셨습니다.
왕국복음은 하늘의 왕국(Kingdom of Heaven)과 하나님의 왕국(Kingdom of God)과 천년왕국(Kingdom of millennium)이 있습니다. 이 모두가 만왕의 왕이신 주께서 다스리시는 나라입니다. 그분이 누구입니까? (사 9:6) 『이는 한 아이가 우리에게 태어났고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셨는데 그의 어깨에는 정권이 놓이고 그의 이름은 [놀라우신 이], [조언자], 강하신 [하나님], 영존하는 [아버지], [평화의 통치자]라 할 것이기 때문이라. 7) 그의 정권과 화평의 번창함이 끝이 없으며 그가 다윗의 왕좌와 그의 왕국 위에 군림하여 그것을 정비하고 이제로부터 영원토록 판단의 공의와 정의로 그것을 굳게 세우리라. 만군의 {주}의 열심이 이것을 이루리라.』하신 분입니다.
주님은 자신을 따르던 제자들에게 그 복음을 선포하라하셨습니다.
(막 16:15) 『그분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너희는 온 세상에 가서 모든 창조물에게 복음을 선포하라.』 주께서 승천하시기 전 제자들에게 명령하신 대로 그분이 승천하신 뒤 제자들은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즉시 행동으로 옮겼습니다. (막 16:20) 『그들이 나아가서 모든 곳에서 복음을 선포하매 [주]께서 그들과 함께 일하시며 따르는 표적들로 말씀을 확증해 주시니라. 아멘.』 (눅 9:6) 『그들이 떠나서 고을들을 두루 다니며 복음을 선포하고 곳곳에서 병을 고치더라.』
그 당시 교회가 유대교의 장로들과 열심당원 사울에게 핍박을 받고 널리 흩어진 사람들과 전도자 빌립이 가는 곳마다 말씀을 선포하고 그리스도를 선포했습니다. (행 8:3) 『사울로 말하건대 그가 교회를 크게 파괴하고 집집마다 들어가 남자와 여자를 끌어다가 감옥에 넘겨주더라. 4) 그러므로 널리 흩어진 사람들이 각처로 다니며 말씀을 선포하니라. 5) 그때에 빌립이 사마리아 시로 내려가 그들에게 그리스도를 선포하매』
그를 이어 사도 베드로와 요한이 주의 말씀을 증언하고 복음을 선포했습니다.
(행 8:25) 『그들이 [주]의 말씀을 증언하고 선포한 뒤 예루살렘으로 돌아가며 사마리아 사람들의 많은 마을에서 복음을 선포하니라.』
바울이 바리새인으로 유대교회에 있을 때엔 그리스도를 핍박하며 그분을 따르는 자들을 잡아 가두고 죽이기까지 했으나 그가 예수님을 만나고 회심한 뒤에는 오히려 그가 유대인들에게 핍박을 받으면 그들에게 대적하는 것이 아니라 핍박하는 자들을 피하여 다니며 가는 곳마다 복음을 선포했습니다.
(행 14:5) 『이방인들과 또 유대인들이 자기들의 치리자들과 함께 악의를 품고 그들을 대하며 돌로 치려고 달려들매 6) 그들이 그것을 알고 루가오니아의 도시인 루스드라와 더베와 주변 지역으로 도피하여 7) 거기서 복음을 선포하니라.』 바울과 바나바는 우상을 섬기는 자들에게도 그것들을 섬기는 것에서 돌아서서 그리스도를 믿으라고 복음을 선포했습니다. (행 14:15) 『이르되, 선생들아, 어찌하여 너희가 이런 일들을 행하느냐? 우리도 너희와 똑같은 성정을 가진 사람들이라. 너희에게 복음을 선포하는 것은 너희가 이런 헛된 일들을 버리고 하늘과 땅과 바다와 그 안에 있는 모든 것을 만드신 분 곧 살아 계신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하려 함이라.』
바울은 복음을 전하다가 유대인들에게 붙잡혀 돌에 맞고 죽어 도시 밖으로 내 던져졌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은혜로 그가 다시일어나 그곳을 떠나가 다른 도시에서 복음을 선포했습니다. (행 14:21) 『그들이 그 도시에 복음을 선포하여 많은 사람을 가르치고 .......』 이처럼 예수님의 제자들과 사도들은 핍박을 받고 죽음을 경험하면서도 그들을 대항하여 싸우거나 복수하지 않았으며 그들을 피하여 다니며 계속 복음을 선포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쳤습니다.
죽기까지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던 바울은 자기가 그리스도를 따르는 것같이 저와 여러분들에게 자기를 따르는 자가되라고 했습니다. 그렇다면 오늘날 복음을 듣고 구원 받은 성도들이 어떤 삶을 살아야 마땅합니까? 주님의 교회의 거룩한 강단에서 성도들에게 우파를 따르라, 혹은 좌파를 따르라. 정부나 권력자들을 판단하고 비판하고 갈아치우자고 욕을 해야 하겠습니까? 예배라는 이름으로 모인 자들에게 정치를 말하고 파당을 만들어야하겠습니까? 그렇게 복음을 전하고 성경을 가르치는 일이 하찮은 일입니까?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세상을 개혁하러 오시지 않았습니다. 정치를 하거나 이스라엘을 박해하고 억압하는 로마를 뒤엎으시거나 멸망하러 오신 것이 아닙니다. 그리스도께서 하신 일이나 성도들에게 하라고 하신 일이 무엇입니까? 주께서 핍박을 받으실 때 어떻게 하셨는가? 그분의 제자들이나 사도들이 핍박을 받을 때 어떻게 했는가를 성경을 통해서 배워야 할 것입니다. 주님은 자신을 핍박하고 죽이려는 회당의 유대인들에게 복수하지 않고 피하셨습니다.
(눅 4:28) 『회당에 있던 모든 사람들이 이 말들을 듣고 진노가 가득하여 29) 일어나서 그분을 도시 밖으로 밀어낸 뒤 자기들의 도시가 세워진 산의 낭떠러지까지 그분을 끌고 가서 그분을 거꾸로 떨어뜨리려 하되 30) 그분께서는 그들의 한가운데를 지나서 자기 길로 가시니라.』
핍박하는 자들이든지 핍박을 받는 자들이든지 주님께는 다 구원의 대상입니다. 그렇다면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에게 정치인들은 무엇입니까? 갈아치울 대상이 아니라 복음 선포의 대상입니다. 정치인들도 구원 받아야합니다. 주님은 창조주시며 전지전능하시지만 자기를 죽이려는 자들에게 대항하시거나 복수하지 않으셨습니다. 주님을 잡으러 온 사람들을 칼로 대항하는 베드로에게 주님은 말씀하셨습니다.
(마 26:52) 『이에 예수님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네 칼을 도로 칼집에 꽂으라. 칼을 잡는 자들은 다 칼로 망하리라. 53) 너는 내가 지금 내 [아버지]께 기도하여 당장이라도 그분께서 열두 군단이 넘는 천사들을 내게 주시도록 할 수 없는 줄로 생각하느냐?』 주님은 전능하신 분임으로 무슨 일이든지 다 하실 수 있으나 그들에게 대항하지 않으시고 복수하지 않으셨습니다.
주님은 죽는 순간까지도 원수들에게 대항하지 않으시고 오히려 그들의 죄를 용서해 달라고 하나님께 간구하셨습니다. (눅 23:34) 『그때에 예수님께서 이르시되, [아버지]여, 저들을 용서하여 주옵소서. 저들은 자기들이 하는 일을 알지 못하나이다, 하시더라.........』
초대교회의 첫 순교자 스데반도 돌에 맞아죽으면서 무어라 간구했습니까?
(행 7:59) 『그들이 돌로 스데반을 치니 그가 [하나님]을 부르며 이르되, [주] 예수님이여, 내 영을 받으시옵소서, 하고 60) 무릎을 꿇고 큰 소리로 부르짖어 이르되, [주]여, 이 죄를 저들의 책임으로 돌리지 마옵소서, 하더라. 이 말을 하고 그가 잠드니라.』 우리가 그리스도를 따르지 못하거나 바울 사도를 따르지 못할 지라도 주님의 뜻을 거역하지는 말아야 할 것입니다.
그분의 수제자라는 베드로는 핍박받는 주님에 대해서 무어라 기록했나요? 자기는 조금도 손해 보려 하지 않는 이기적인 오늘날의 그리스도인들과는 너무나 다릅니다. 주께서 욕을 당하시되 맞대어 욕하지 아니하시고 고난을 당하시되 위협하지 아니하셨다 했습니다. (벧전 2:22) 『그분께서는 죄를 짓지 아니하시고 입에 교활함도 없으시며 23) 욕을 당하시되 맞대어 욕하지 아니하시고 고난을 당하시되 위협하지 아니하시며 오직 의롭게 심판하시는 분에게 자신을 맡기시고 24) 친히 나무에 달려 자신의 몸으로 우리의 죄들을 지셨으니 이것은 죄들에 대하여 죽은 우리가 살아서 의에 이르게 하려 하심이라. 그분께서 채찍에 맞음으로 너희가 고침을 받았나니』
그리스도인들을 핍박하는 사람들은 복수의 대상이 아니라 전도의 대상입니다. 성경 어디에도 그리스도인들이 모여 정부나 권력들에 대항하여 시위하거나 성토하지 않았습니다. 권력자들을 바꿔야한다고 집회로 모이지 않았습니다. 만약 그리스도인들을 핍박하는 자들이 있다면 엎드려 주님께 기도하십시오. 주께서 여러분들이 핍박 받는 것을 원하지 않으시면 반드시 피할 길을 주실 것입니다. 그리하지 않으실 지라도 원수 갚는 것은 하나님께 속한 일입니다.
공산주의자들도 구원 받아야합니다. 우리나라를 침략하고 자유를 빼앗은 일본인들이 밉지만 그들도 복음의 대상이고 구원 받아야합니다. 정치성향이 보수가 되었든 진보가 되었든 그들은 오직 구원 받아야 할 사람들입니다. 제가 성인군자라서 하는 말이 아닙니다. 제가 그렇게 살고 있다는 말도 아닙니다. 주께서 세상에 오신 목적과 그분이 우리를 부르신 목적이 그러합니다. 우리는 다만 (딤후 4:2) 『말씀을 선포하라. 때에 맞든지 맞지 아니하든지 긴급히 하라. 모든 오래 참음과 교리로 책망하고 꾸짖고 권면하라.』하신 말씀을 따라야합니다.
사형선고를 받은 사람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구원의 복음을 전하는 일입니다. 암으로 시한부 진단을 받은 사람에게 가장 먼저해야할 것은 수술이나 약이 아니라 구원의 복음을 전하는 것입니다. 우리 앞에 대통령이든지 의사든지 군인이든지 검사든지 살인자든지 강도든지 도둑이든지 그들에게 가장 먼저 해야 할 것은 구원의 복음을 전하는 것입니다. 그들이 복음을 듣고 받아들이거나 받아들이지 않거나 구원 받는 것은 그들의 선택입니다.
성경인물 가운데 예수님을 가장 많이 닮은 바울 사도는 진정한 그리스도인이었습니다. 그가 성령님의 감동하심을 따라 신약성경을 13권이나 기록했습니다. 그가 기록한 서신들이 우리가 지켜야할 성경의 교리입니다. 우리는 그가 어떻게 살았는가? 기록된 성경을 통하여 알 수 있습니다. 그는 담대하게 말합니다. (고전 11:1) 『내가 그리스도를 따르는 자가 된 것 같이 너희도 나를 따르는 자가 되라.』 구원 받은 바울은 그리스도를 따르는 자가 되었고 그리스도를 믿는 모든 사람들에게 자기와 같이 그리스도를 따르는 자가 되라고 말합니다.
저는 감히 성도들 앞에 “내가 그리스도를 따르는 자가 된 것 같이 너희도 나를 따르는 자가 되라.”말하지 못합니다. 저는 성경을 기록된 대로 가르치려고 노력하지만 바울같이 온전히 그리스도를 따르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저는 제 자식들에게도 떳떳하게 너희는 나를 따르라고 말할 자신이 없습니다.
그리스도를 따른 바울은 주님처럼 자기를 핍박하는 권력자들에게 대항하지 않았습니다. 그에게는 많은 이적들과 표적들과 능력이 있었지만 자기를 핍박하는 자들을 복수하기 위하여 그 능력을 사용하지 않았습니다. 오늘날 코로나 확산을 막기 위하여 정부가 대면 예배를 못하게 하는 것이 교회의 핍박이라고 하는데 과연 그것이 하나님의 뜻대로 살고자 하여 당하는 핍박인지를 살펴보아야 할 것입니다. (딤후 3:12) 『참으로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하나님의 뜻대로 살고자 하는 모든 자는 핍박을 받을 터이나 13) 악한 자들과 유혹하는 자들은 점점 더 악하여져서 속이기도 하고 속기도 하리라.』
많은 성도들이 “예수님처럼, 바울처럼 살고 싶다”고 노래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습니다. 바울이 복음을 전하기 위하여 당한 모든 수고와 고통과 괴로움들이 성경에 낱낱이 기록되어있습니다. 성도들이 눈으로 성경 기록들을 읽지만 죽음을 무릅쓰고 복음을 선포하지는 않습니다. 바울이 당한 고난은 하나님의 뜻대로 살기 위함이었습니다. (딤전 2:4) 『그분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고 진리를 아는 데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하셨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많은 목사들이나 성도들이 성경기록을 따르기보다 어느 학자의 주장을 따릅니다. 성경이 무어라 말씀하느냐? 하지 않고 칼빈이나 죤 웨슬리가 주장한 말을 따릅니다. 왜 주님의 말씀을 제쳐놓고 어떤 신학자를 따르고 그들을 신뢰합니까? 성경은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다고(롬3:23) 말씀하며 모든 사람들이 거짓말쟁이라고(롬3:4) 하셨습니다. 그 모든 사람들 가운데에는 저와 여러분들은 물론 칼빈이나 웨슬리도 예외가 될 수 없습니다.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을 제쳐두고 온전하지 못한 신학자들의 말을 왜 성경위에 둡니까? 성도들은 어떤 학자나 목사의 말을 듣는 것보다 과연 성경이 그렇게 말씀하시는가를 탐구해야 할 것입니다(행17:11). 바울은 복음을 전하다가 감옥에 갇히기도 하고 매를 맞기도 하였으나 그들에게 대항하거나 복수하지 않았습니다. (롬 1:16) 『내가 그리스도의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는 그 복음이 믿는 모든 자를 구원에 이르게 하는 [하나님]의 권능이기 때문이라. 먼저는 유대인에게요 또한 그리스인에게로다.』
바울에게는 모든 사람이 구원의 대상일 뿐입니다. 그가 유대인이건 이방인이건 가리지 않았습니다. (딤전 2:7) 『그 일을 위하여 내가 복음 선포자와 사도로 임명을 받았고 (내가 그리스도 안에서 진실을 말하고 거짓말하지 아니하노니) 믿음과 진리 안에서 이방인들의 교사가 되었노라.』했습니다.
코로나 문제로 정부의 시책에 교회가 찬성하거나 반대하여 양분화 되었다고 하는데 이는 성도들이나 목회자들이 기록된 성경을 따르지 않고 누구누구의 주의를 따르기 때문입니다. 마치 육신에 속한 고린도교회가 그리스도를 따르기 보다는 사람을 따르며 파당을 짓는 것과 같습니다.
(고전 3:4) 『어떤 이는 말하기를, 나는 바울에게 속하였다, 하고 다른 이는 말하기를, 나는 아볼로에게 속하였다, 하나니 너희가 육신에 속하지 아니하였느냐? 5) 그런즉 바울은 누구며 아볼로는 누구냐? 그들은 단지 [주]께서 각 사람에게 주신 대로 너희로 하여금 믿게 한 사역자들이니라. 6) 나는 심었고 아볼로는 물을 주었으되 오직 [하나님]께서 자라나게 하셨나니 7) 그런즉 이와 같이 심는 자나 물 주는 자는 아무것도 아니며 자라나게 하시는 이는 오직 [하나님]이시니라.』
칼빈이나 웨슬리나 어떤 유명한 사람을 따르지 말고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그리스도를 따르십시오.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았는데 핍박을 받는다면 회개하거나 하나님의 판단을 기다리는 것이 옳습니다. 자기 유익을 위하여 혈기부리지 말고 기록된 말씀을 따르십시오. 모여서 정부나 하나님께서 임명하신 권력들에게 거역하여 정죄 받지 말고 엎드려 기도하시시오.
(롬 13:1) 『모든 혼은 더 높은 권력들에 복종할지니 [하나님]으로부터 나지 않은 권력이 없으며 이미 있는 권력들도 [하나님]께서 임명하셨느니라. 2) 그러므로 누구든지 권력에 거역하는 자는 [하나님]의 규례를 거역하나니 거역하는 자들은 스스로 정죄를 받으리라.』
우리나라 정부나 권력은 5년마다 바뀝니다. 내가 좋아하는 정부나 싫어하는 정부나 그 권력들은 하나님께서 임명하셨음을 믿는다면 보수가 어떻고 진보가 어떻고 무슨 상관입니까? 정부가 바뀔 때마다 신앙이나 믿음이나 주장하는 바가 바뀐다면 그는 진리를 따르는 자가 아닙니다.
이 땅에 진실은 없습니다. 누구든지 자기가 믿고 싶은 대로 믿기 때문에 주장이 다르고 호불호가 다르고 믿음이 다르기 때문에 그들이 주장하는 진실도 다릅니다. (롬 3:3) 『그런데 어떤 자들이 믿지 아니하였으면 어찌하리요? 그들의 믿지 아니함이 [하나님]에 대한 믿음을 무효로 만들겠느냐? 4) 결코 그럴 수 없느니라. 참으로 [하나님]은 진실하시되 사람은 다 거짓말쟁이라 할지어다. 이것은 기록된바, 이로써 주께서 주의 말씀하신 것에서 의롭게 되시고 판단 받으실 때에 이기시리이다, 함과 같으니라.』
제발 여러분들이 복음을 듣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구원 받았다면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거역하지 말며 그리스도를 따르시기 바랍니다. 사도 바울이 그리스도를 따른 것같이 그가 자기를 따르라고 말한 대로 그가 기록한 성경교리를 따르십시오. 세상의 공산주의나 자유주의나 진보나 보수나 이념을 따르지 말고 진리를 따르시기 바랍니다.
성령님의 감동을 받은 바울 사도의 간청하는 외침을 가슴깊이 들으십시오. (고전 4:16) 『그러므로 너희에게 간청하노니 너희는 나를 따르는 자들이 되라.』 (고전 11:1) 『내가 그리스도를 따르는 자가 된 것 같이 너희도 나를 따르는 자가 되라.』 (빌 3:17) 『형제들아, 너희는 함께 나를 따르는 자가 되고 또 너희가 우리를 본보기로 삼은 것 같이 그렇게 걷는 자들을 주목하라.』 하였습니다.
여러분들이 진실로 예수님을 믿는다고 고백하고 구원 받은 것이 확실하다면 그리스도를 따르는 자가 되시기 바랍니다. 사도 바울이 그리스도를 따른 것같이 여러분들은 바울이 기록한 성경교리를 따르며 그가 살아간 삶을 살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코로나 바이러스를 전파하는 자가 되지 말고 그리스도를 전파하는 자가 되시기를 진심으로 부탁드립니다. 저는 좌파도 우파도 아닙니다. 그리스도를 따르는 자가 되기를 원합니다.
여러분들을 하나님의 거룩한 강단에 세우신 것은 정부나 하나님께서 세우신 권력들에게 대적하도록 세우신 것이 아닙니다. 정치 이야기하라고 세우신 것이 아니라 복음을 선포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쳐 지키게 하려고 세우셨음을 잊지 말아야합니다. 세상 이야기나 정치 이야기나 세상 돌아가는 뉴스는 교회 밖에서 충분히 듣고 있으니 여러분들은 복음을 전하시고 성경을 가르치시고 그리스도인으로 살도록 본을 보이시고 그 길로 성도들을 인도하시기를 진심으로 간곡히 부탁드립니다.
여러분들이 정말 구원받은 그리스도인이라면 세상에선 손해 좀 보고 사십시오. (빌 3:7) 『그러나 무엇이든지 내게 이득이던 것들을 곧 그것들을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손실로 여겼으며 8) 『참으로 확실히 모든 것을 손실로 여김은 그리스도 예수 내 [주]를 아는 지식이 뛰어나기 때문이라. 내가 그분을 위하여 모든 것의 손실을 입고 그것들을 단지 배설물로 여김은 내가 그리스도를 얻고』, 여러분들이 어떻게 살아야 옳은지 들으십시오. 『이와 같이 [주]께서도 복음을 선포하는 자들이 복음으로 살 것을 정하셨느니라.』 (고전 9:14) 아멘!!
2020-09-27 20:19: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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