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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원광 [ E-mail ]
  제목: 하나님의 시선
  http://av1611.co.kr

제목: 하나님의 시선
■ 본문: (마 9:2) “보라, 그들이 마비 병으로 자리에 누운 사람을 그분께 데려오거늘 예수님께서 그들의 믿음을 보시고 마비 병 환자에게 이르시되, 아들아, 기운을 내고 네 죄들을 용서받을지어다, 하시니라.”
오늘 말씀의 제목은 [하나님의 시선]입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것은 역사의 흐름 안에서 각자의 인생을 단편 영화로 찍고 있는 것과 비슷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럼 역사(history)란 무엇일까요? 학교에서 배울 때는 인류 사회의 변천과 흥망의 과정이나 그 기록이라고 배우는데요, 성경을 믿는 우리는 역사(history)를 이렇게 표현할 수 있습니다. 역사라는 영어단어 ‘history’가 말해주는 것처럼, ‘his(그분의) + story(이야기)’, 즉 역사는 그분의 이야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역사를 구분할 수 있을 정도의 그 분, 어떤 분의 이야기일까요?
우리는 역사를 말할 때, ‘B.C’와 ‘A.D’로 나눕니다.
그럼 ‘B.C’는 무슨 약자죠? ‘Before Christ’ 죠. 번역하면 ‘그리스도 이전’이라는 말입니다. 다시 말하면, 예수 그리스도가 이 땅에 사람으로 태어나기 이전이라는 말입니다.
그러면 ‘A.D’는요? ‘Anno Domini’라는 라틴어에서 온 단어인데요. ‘Anno’는 영어로 ‘year(해)’를 뜻하고요. ‘Domini’는 영어로 ‘Lord(주님)’을 뜻합니다. 직역하면 ‘주님의 해가 시작되었다.’는 의미입니다.
△○이에게 물어볼께요. “오늘이 몇 년, 몇 월, 몇 일이에요?” 네에, 2020년 10월 18일이죠. 이렇게 우리가 사용하는 날짜를 공통으로 사용하도록 달력을 만들 때, 날짜의 연속성에서 좀 오차가 있었지만, 어쨋건 0년 0월 0일이 시작된 의미는 정확합니다. 이렇게 날짜를 시작하게 된 기준이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과 관련이 있고, 이것을 세계가 공통적으로 사용하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사건은 인류 역사에 중심점이 되는 가장 위대한 사건입니다.
하나님은 인류 역사의 중심에 예수 그리스도를 두셨고, 그분을 통해 영광을 받는 계획을 세우셨습니다. 그 역사 안에서 우리도 나그네 같이, 풀과 같이 이 땅을 잠시 살아가는 것입니다. 다른 말로 표현하면, 우리 각자는 예수 그리스도를 주인공으로 하는 역사의 영화 속에서 조연이나 엑스트라로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그냥 살아만 가는 것이 아니라, 주연 [예수 그리스도] 라는 역사의 영화 안에서 각자에게 주어진 역할이 있고, 해야할 선한 일들이 있으며, 그렇게 각자에게 주어진 조연이나 엑스트라의 분량을 찍어가고 있는 것입니다.
어떤 영화를 봐도 주연이 있고, 여러 장면에 나오는 조연들이 있는가 하면, 엑스트라로 친구_1,2,3, 지나가는 행인들_1,2,3 등과 같이 비중이 크지 않은 역할로 출연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하나님은 인류 역사의 주인공을 예수 그리스도 한 분으로 정하셨고, 그리고 나머지 조연들과 엑스트라들은 하나님의 시선인 카메라 앞에서 자신의 분량을 만들어가고 있는 것입니다. 어떤 조연은 감독자가 영화에서 많은 장면(scene)으로 보이기도 하는데, 출연이 많은 만큼 출연료도 많아질 것입니다. 영적으로 적용하자면, 조연이지만 많은 분량을 찍은 조연은 하나님이 주시는 하늘에서의 보상도 그만큼 많아지게 될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시선인 카메라 앵글이 향하는 곳이 어디일까요?
1. 사람의 믿음입니다.
(마 9:2) “보라, 그들이 마비 병으로 자리에 누운 사람을 그분께 데려오거늘 예수님께서 그들의 믿음(faith)을 보시고 마비 병 환자에게 이르시되, 아들아, 기운을 내고 네 죄들을 용서받을지어다, 하시니라.”
사람들은 외모를 중히 여기지만, 하나님은 그렇지 않으시고 사람 안에 있는 믿음을 보십니다.
(눅 18:8)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분께서 속히 그들의 원수를 갚아 주시리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의 [아들]이 올 때에 땅에서 믿음을 보겠느냐? 하시니라.”
신구약 성경을 통틀어 보면, 하나님께서 인간들에게 요구하시는 것은 단 한가지, 믿음(faith) 뿐입니다. 오늘 나머지 전할 말씀도 믿음에 속한 것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과 그분의 말씀을 믿는 믿음만 있다면, 다른 것은 요구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이 믿음의 조상이라고 불리는 것입니다(갈 3:7).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에서와 같이 주님께서 지상 사역을 하실 때, 수많은 병자들이 찾아왔을 때도 제일 우선적으로 보신 것이 믿음이었습니다.
또한 열두 해 동안 혈루증을 앓던 한 여자에게도 “네 믿음이 너를 온전케 하였다”고 선언하셨습니다(마 9:22). 구약적 배경에서의 믿음은 하나님께서 각자에게 주신 말씀을 믿는 자기 믿음이었다면, 신약적 믿음은 공통적인 믿음으로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그 믿음(the faith)입니다. 우리 신약 성도들은 구약적 자기 믿음(합 2:4)이 아니라, 하나님의 아들의 믿음으로 살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갈 2:20)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혀 있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노라. 그러나 내가 아니요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 사시느니라. 나는 지금 내가 육체 안에서 사는 삶을,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해 자신을 주신 [하나님]의 [아들]의 믿음으로 사노라.”
그래서 우리가 살아가는 힘의 원동력은 믿음이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믿음으로 살아가는 사람이 하나님을 기쁘게 할 수 있으며, 이런 사람에게 하나님의 시선이 향하는 것입니다.
(히 11:6) “그러나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게 하지 못하나니 그분께 가는 자는 반드시 그분께서 계시는 것과 또 그분께서 부지런히 자신을 찾는 자들에게 보상해 주시는 분이심을 믿어야 하느니라.”
우리가 사랑한다고 할 때, 사랑이 보여요? 보이지 않아요? 안 보이죠. 믿음도 하나님의 말씀에서 오는 것이고, 영적인 것이므로 보이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우리가 사람들에게 믿음이 있음을 알 수는 있는데요. 올바른 믿음을 소유한 사람에게는 믿음에 따른 일(work)로써 열매가 열리게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이 “네 부모를 공경하라”고 하신 말씀을 믿으면, 부모의 말을 그대로 따르는 행동이 열매로 열린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이 믿음을 소유하려면, 하나님의 기록된 말씀인 성경을 읽어야 하고, 그 말씀을 믿는(believe) 것입니다. 그래야 여러분 안에 믿음(faith)이라는 성령의 열매가 열리게 됩니다.
믿음이라는 렌즈로 찍는 이 영화에 여러분이 조연일지라도 여러분 안에 믿음이 있으면, 예수 그리스도라는 역사의 영화 속에서 여러분이 찍히는 분량이 많아지게 되고, 그렇게 되면 여러분이 하늘에서 받게 될 보상도 많아지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시선은 믿음에 있습니다.
2. 사람의 마음(중심)을 보십니다.
(렘 17:10) “나 {주}는 마음을 살피며 속 중심을 시험하여 각 사람의 길들과 그 사람의 행위들의 열매대로 그 사람에게 주느니라.”
성경기록은 사람의 모든 문제는 마음에서 나온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잠 4:23) “¶ 열심을 다하여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거기에서 나오느니라.”
영어로 보면 이해가 더 쉬워집니다. “Keep” 지켜라, “thy heart” 네 마음을, “with all diligence” 모든 열심 부지런함 근면과 함께, “; for out of it” 그것이 밖으로 나오는데, “are the issues of life.” 인생의 모든 문제들이다.
인생에는 신앙, 가족관계, 친구관계, 건강, 재산, 사업 등 많은 문제들이 있지만, 그 모든 문제의 첫걸음은 ‘혼의 구원’이 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도 믿음이 마음에서 시작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롬 10:8~9) “8) 그러나 그것이 무엇을 말하느냐? 말씀이 네게 가까이 있어 네 입에 있으며 네 마음에 있느니라, 하나니 곧 우리가 선포하는 믿음의 말씀이라. 9)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주] 예수님을 시인하고 [하나님]께서 그분을 죽은 자들로부터 살리신 것을 네 마음속으로 믿으면 구원을 받으리니”
그뿐만 아니라, 구원받은 사람에게는 그리스도의 마음을 이미 갖고 있다고 성경기록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빌립보 교회 안에 있었던 시기와 다툼 문제의 해결책으로 그리스도의 마음이 너희 안에 있지 않느냐?고 묻고 해결책을 제시한 것입니다. 확인해 보겠습니다.
(빌 2:1a) “그러므로 ...” 어떤 상황인지 알기 위해 앞장인 1장 12절로 가보면
(빌 1:12~16) “12) 그러나 형제들아, 내게 일어난 일들이 도리어 복음을 진전시키는 기회가 된 줄을 너희가 알기를 내가 원하노라. 13) 그리하여 그리스도 안에서 내가 결박당한 일이 온 궁궐 안과 다른 모든 곳에 드러나게 되었고 14) [주] 안에 있는 형제들 중의 많은 이들이 내가 결박당한 일로 인해 확신을 갖게 되어 두려움 없이 말씀을 더욱 담대히 말하게 되었느니라. 15) 참으로 어떤 이들은 심지어 시기와 다툼으로 그리스도를 선포하고 또한 어떤 이들은 선한 뜻으로 하나니 16) 저들은 내가 결박당한 일에 고통을 더할 줄로 생각하여 성실하지 않게 다툼으로 그리스도를 선포하나”
시기와 다툼이 있어서, 2장 1절에
(빌 2:1~5) “1) 그러므로 그리스도 안에서 무슨 안위나 사랑의 무슨 위로나 성령의 무슨 교제나 무슨 인정이나 긍휼이 있거든 2) 너희는 같은 생각을 품고 같은 사랑을 가지며 한 마음과 한 생각이 되어 내 기쁨을 성취하라. 3) 어떤 일도 다툼이나 헛된 영광으로 하지 말고 오직 겸손한 생각으로 각각 자기보다 남을 더 낫게 여기며 4) 각 사람이 자기 일들만 돌아보지 말고 각 사람이 남의 일들도 돌아보라. 5) 너희 안에 이 생각을 품을지니 그것은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도 있던 생각이라.”
서로 자신보다 남으로 더 낫게 여기는 겸손한 마음이 있다면, 교회 내에서 싸울 일이 없어지게 됩니다. 성경이 말하는 겸손은 하나님이 말씀하신 뜻에서 어긋나지 않는 범위에서, 남의 생각을 내 생각보다 더 낫게 여기는 것입니다. 우리의 마음에 이런 겸손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런 마음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시선이 향하게 된다는 말씀입니다.
여러분이 아는, 제일 겸손한 마음을 갖고 있는 사람은 누구인가요? 그분은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를 주인공으로 영화를 찍으시고, 그분과 함께 겸손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을 조연으로 해서 역사를 만들고 계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앵글이 겸손한 여러분에게도 계속 있게 되길 바랍니다.
3. 애통하는 사람을 보십니다.
(막 5:38) “회당의 치리자의 집에 가사 소란한 것과 슬피 울며 크게 통곡하는 자들을 보시고”
(마 5:4) “애통하는 자들은 복이 있나니 그들이 위로를 받을 것이기 때문이요,”
하나님은 역설적인 분 같습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이 애통한 일을 안 당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애통을 당하고 복과 위로를 주시는 것입니다.
(요 16:20) “진실로 진실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는 슬피 울며 애통할 터이나 세상은 기뻐하리라. 또 너희는 근심할 터이나 너희 근심이 기쁨으로 변하리라.”
근심이 없는 것이 아니라, 근심이 있고 그 근심이 기쁨으로 변하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하나님은 주님 안에 있는 자들에게 슬픔, 울부짖음, 아픔이 영원히 사라지고 없어질 것이라고 약속하셨습니다.
(계 21:4) “또 [하나님]께서 그들의 눈에서 모든 눈물을 씻어 주시리라. 다시는 사망이 없고 슬픔도 울부짖음도 없으며 또 아픔도 다시는 없으리니 이는 이전 것들이 지나갔기 때문이라, 하더라.”
하나님은 우리가 일상을 살아가면서 잘 행하는 가운데 그리스도로 인해 고난과 고통을 당하는 성도들에게 시선을 주시며, 위로와 힘과 능력을 주십니다. 만약 여러분의 삶 가운데 이런 일들이 없이 순탄하고 평이하기만 하다면, 하나님은 여러분에게 주님의 시선이라는 카메라 앵글이 스쳐 지나갈 것이고, 하늘에서 보상을 줄 근거를 찾지 못하실 것입니다.
4. 제자들이 곤경에 빠졌을 때 시선이 향합니다.
(시 4:1) “오 내 의의 [하나님]이여, 내가 부를 때에 내 말을 들으소서. 내가 곤경에 빠졌을 때에 주께서 나를 넓혀 주셨사오니 내게 긍휼을 베푸시고 내 기도를 들으소서.”
주님께서는 초림 사역 때에도 곤경에 빠진 제자들에게 큰 관심과 배려로 돌봐주셨는데요.
(막 6:48) “바람이 그들에게 반대로 불므로 그들이 힘겹게 노 젓는 것을 보시고 밤 사경쯤에 바다 위로 걸어서 그들에게 오사 그들을 지나쳐 가려고 하시거늘”
자신을 따른 제자들이 어려운 지경에 빠져서 당황할 때, 그때마다 개입하셔서 제자들이 처한 문제들을 해결해 주셨습니다. 영적으로 적용하면, 모든 사람이 처해 있는 가장 중요한 문제는 죄와 사망의 문제입니다. 모든 사람의 이 문제를 영원히 해방시켜 주는 사건이 십자가의 구속입니다. 그분을 믿고 받아들이기만 하면, 죄와 사망에서 영원한 생명으로 옮겨지는 것입니다.
제자가 곤경에 빠졌을 때 하나님의 시선이 있다는 이 진리를 깨달은 바울은 예수님의 제자로서 또한 하나님의 사역자로서 어떤 어려운 여건에서도 꿋꿋이 대처하며 믿음으로 사는 생활을 이어갔습니다.
(고후 6:4~10) “4) 오직 모든 일에서 우리 자신을 [하나님]의 사역자로 입증하되 많은 인내와 고난과 궁핍과 곤경과 5) 매 맞음과 옥에 갇힘과 소동과 수고와 깨어 있음과 금식 가운데서 그리하고 6) 순수함과 지식과 오래 참음과 친절함과 [성령님]과 거짓 없는 사랑과 7) 진리의 말씀과 [하나님]의 권능과 오른손과 왼손에 든 의의 병기로 그리하며 8) 영예와 치욕으로 그리하고 나쁜 평판과 좋은 평판으로 그리하였나니 우리는 속이는 자 같으나 진실하고 9) 무명한 자 같으나 유명하며 죽는 자 같으나, 보라, 우리가 살고 징계를 받는 자 같으나 죽임을 당하지 아니하며 10) 근심하는 자 같으나 항상 기뻐하고 가난한 자 같으나 많은 사람을 부요하게 하며 아무것도 없는 자 같으나 모든 것을 소유한 자로다.”
바울이 이렇게 곤경 가운데에서도 믿음으로 살 수 있었던 비결은 이 진리가 그리스도로 인하여 맺어진 하나님과의 사랑 관계가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롬 8:35~39) “35)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떼어 놓으리요? 환난이나 곤경이나 핍박이나 기근이나 벌거벗음이나 위험이나 칼이랴? 36) 이것은 기록된바, 우리가 종일토록 주를 위해 죽임을 당하며 도살당할 양같이 여겨졌나이다, 함과 같으니라. 37) 아니라. 이 모든 것 가운데서 우리는 우리를 사랑하신 그분을 통해 정복자들보다 더 나은 자들이니라. 38)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정사들이나 권능들이나 현재 있는 것들이나 장래 있을 것들이나 39)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어떤 창조물이라도 능히 우리를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떼어 놓지 못하리라.”
그러면서 데살로니가 교회의 성도들에게도 이런 편지를 보냈습니다.
(살전 3:7)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우리의 모든 고난과 곤경 가운데서 너희의 믿음으로 말미암아 너희로 인해 위로를 받았노라.”
하나님의 시선이 향하는 곳은 제자들이 곤경에 처해 있을 때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제자로 살아가면서 곤경에 처하게 되어도 두렵고 떨 필요가 없습니다. 그분의 은혜롭고 긍휼의 시간이 우리를 감싸고 믿음으로 이겨내도록 위로를 주시며, 주님의 몸 된 교회에게 한 몸으로서의 진리를 통해 도우실 것입니다.
5. 불쌍한 과부입니다.
(눅 7:13) “[주]께서 그녀를 보시고 그녀를 불쌍히 여기사 그녀에게, 울지 말라, 하시고”
하나님께서는 과부들에 대해 남달리 불쌍히 여기십니다. 누가복음 7장의 이 사건의 발단은 나인이라는 도시에 살던 한 과부의 아들이 죽어서 관에 실려나오던 중에 예수님께서 살리시는 장면을 기록한 것입니다.
구약 시대를 보면, 과부의 일상을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렘 49:11) “아버지 없는 네 자녀들을 남겨 두라. 내가 그들을 살려 보존하리니 네 과부들은 나를 신뢰할 것이니라.”
과부들은 세상에 의지할 사람이 없었기 때문에 하나님만 신뢰한다고 증언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야고보서에도 고난 중에 있는 고아와 과부를 돌아보는 것을 선한 행위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약 1:27) “[하나님] 곧 [아버지] 앞에서 순수하고 더럽지 않은 신앙 행위는 이것이니 즉 고난 중에 있는 아버지 없는 자들과 과부들을 돌아보고 세상으로부터 자기를 지켜 더럽혀지지 아니하는 것이니라.”
한의사라고 해서 다 같은 허준이 아니듯이, 또한 과부라고 해서 다 같은 과부가 아닙니다. 하나님이 참 과부로 인정하시는 기준이 있는데요.
(딤전 5:9~10) “9) 육십 세 이하의 과부는 수에 넣지 말라. 과부는 한 남자의 아내였던 자로서 10) 선한 행위로 인하여 좋은 평판이 있어 혹은 자녀들을 양육하며 혹은 나그네들을 묵게 하며 혹은 성도들의 발을 씻어 주며 혹은 고난 받는 자들을 구제하며 혹은 모든 선한 일을 부지런히 따른 자라야 하리라.”
이렇듯이 하나님은 아버지가 없는 자와 과부는 구제하고 나그네를 보존하시는 분입니다(시 146:9, 욥 6:14).
하나님께서 과부를 구제하는 마음을 갖으시고, 여러분은 선한 하나님의 손길을 베풀 것입니다. 이것이 머리되신 주님과 몸된 교회(성도)의 이상적인 모습입니다.
그렇게 되면, 하나님이 찍으시는 그리스도의 역사 영화에 여러분의 선한 행위도 남게 될 것입니다.
6. 죄를 회개치 않은 예루살렘을 보십니다.
(눅 19:41) “¶ 그분께서 가까이 오사 그 도시를 보시고 그 도시로 인해 슬피 우시며”
성경에서 인간의 구원 교리를 요약한다면, 죄를 지은 인류에게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모든 죄를 다 처리 해결해놓았으니(요 19:30), 너희는 회개하고 내게로 돌아오라고 명령하십니다. 이 말씀을 믿음으로 인간의 구원이 있습니다.
(행 17:30~31) “30) [하나님]께서 이같이 무지하던 때를 눈감아 주셨으나 이제는 모든 곳에서 모든 사람에게 회개하라고 명령하시나니 31) 이는 그분께서 한 날을 정하사 그 날에 자신이 정하신 그 사람을 통하여 세상을 의로 심판하실 터이기 때문이라. 그분께서 그 사람을 죽은 자들로부터 살리심으로써 모든 사람들에게 그 일에 대한 확신을 주셨느니라, 하니라.”
이 말씀은 유대인이나 이방인들에게 같은 메시지로 하나님을 향한 회개와 그리스도에 관한 믿음을 증언하고 있습니다(행 20:21).
그렇게 주님과 바울은 모든 사람의 구원에, 그중에 특별히 유대인의 구원에 많은 관심과 열정과 애정이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롬 9:1~3).
주님에게는 모든 사람이 멸망 당하지 않고 구원받길 원하시는 뜻이 있으셔서 죄를 회개치 않는 사람들을 불쌍히 여기고 긍휼히 여기시는 마음으로 바라보십니다.
(벧후 3:9) “[주]께서는 자신의 약속에 대해 어떤 사람들이 더디다고 생각하는 것 같이 더디지 아니하시며 오직 우리를 향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하지 아니하고 모두 회개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하나님의 시선이 임하는 곳에 누가 있어야 할까요? 우리 입니다. 구원받지 못한 한 사람 한 사람에게 복음을 전하는 그런 자리에 우리가 있어야 하고, 우리의 입을 열어야 하고, 우리의 손을 내밀어 전도지를 나누어 주어야 합니다. 그렇게 되면 하나님의 시선에 여러분이 올까요? 안 올까요? 옵니다. 카메라 시선의 앵글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칭찬과 보상이 주어지게 됩니다.
7. 제자로 부르시기 전에 일하는 태도를 보십니다.
(마 4:18~22) “18) ¶ 예수님께서 갈릴리 바닷가를 거니시다가 두 형제 곧 베드로라 하는 시몬과 그의 형제 안드레가 바다에 그물 던지는 것을 보시니 그들은 어부더라. 19) 그분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나를 따르라. 내가 너희를 사람들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 하시니 20) 그들이 즉시 자기들의 그물들을 버려두고 그분을 따르니라. 21) 그분께서 거기서 더 가시다가 다른 두 형제 곧 세베대의 아들 야고보와 그의 형제 요한이 자기들의 아버지 세베대와 함께 배 안에서 자기들의 그물들을 고치고 있는 것을 보시고 그들을 부르시니 22) 그들이 즉시 배와 자기들의 아버지를 남겨 두고 그분을 따르니라.”
예수님이 제자로 부르시기 전에 보신 것이 두 가지입니다. 18절에 바다에 그물 던지는 것을 보셨고, 21절에 자기들의 그물들을 고치시는 것을 보셨습니다.
누가복음 16장에 보면 하나님이 쓰시고자 하는 사람이 나와 있는데요.
(눅 16:10) “가장 적은 것에 신실한 자는 또한 많은 것에 신실하고 가장 적은 것에 불의한 자는 또한 많은 것에 불의하니라.”
어찌보면, 어부가 고기를 잡으려고 그물을 던지는 것이나 그물들을 고치는 일상은 아주 평범한 적은 일입니다. 그러나 주님은 그 적은 일일지라도 신실하게 하는지 보신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주님께서 제자들을 부르시기 전에 그들의 일상적인 면을 유심히 보시고 계셨는지에 대하여 소상히 기록하고 있습니다. 다름 아닌 자기에게 주어진 일에 신실하게 일하고 있는 모습으로 살아가는 사람을 제자로 부르신다는 것입니다. 가족은 돌보지 않고 목사 하려는 사람, 돈 관리를 잘못하는데 집사가 되고자 하는 사람, 아이들에게 사랑이 없는데 유치원 원장을 하려는 사람, 하나님은 이런 사람을 사용하지 않으십니다. 이런 일들이 작은 일 같지만, 이런 작은 일에도 신실하게 일하고 있을 때, 주님은 여러분을 제자로 부르십니다. 그리고 22절에 보니까 주님은 그들이 부름 받은 즉시 자기 업무를 다 버린 결단도 보셨습니다.
이렇게 하나님이 사용하시는 사람은
(고전 4:1~2) “1) 사람이 마땅히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역자요, [하나님]의 신비들을 맡은 청지기로 여길지어다. 2) 또한 청지기들에게 요구되는 것은 신실한 사람으로 드러나는 것이라.”
(딤전 1:12) “나를 능하게 하신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께 내가 감사를 드림은 그분께서 나를 신실한 자로 여기사 내게 사역을 맡기셨기 때문이라.”
어떤 사람이 신실(faithful)하게 살아간다면 그에게는 하나님의 시선이 있습니다. 우리가 신실하게 살아서 늘 하나님의 시선 안에서 살아야 하지 않을까요?
8. 어린아이들을 보십니다.
(막 10:13~14) “13) ¶ 그들이 어린아이들을 그분께 데려와 그분께서 그들을 쓰다듬어 주시게 하매 그분의 제자들이 그들을 데려온 자들을 꾸짖거늘 14) 예수님께서 그것을 보시고 심히 기뻐하지 아니하사 그들에게 이르시되, 어린아이들이 내게 오는 것을 허락하고 그들을 막지 말라. [하나님]의 왕국은 그런 자들의 것이니라.”
(마 19:14) “예수님께서 이르시되, 어린아이들이 내게 오는 것을 허락하고 그들을 막지 말라. 하늘의 왕국은 그런 자들의 것이니라, 하시고”
주님은 어린아이를 보십니다. 더욱이 자식들에 대해서는 이렇게 증언하셨습니다.
(시 127:3~5) “3) 보라, 자식들은 {주}의 유산이요, 태의 열매는 그분의 보상이로다. 4) 젊은 시절의 자식들은 용사의 손에 있는 화살들 같으니 5) 자기 화살 통에 그것들이 가득한 자는 행복하도다. 그들이 부끄러움을 당하지 아니하며 성문에서 원수들을 마주 대하여 말하리로다.”
또한 아기(baby)와 같이 하나님의 말씀을 단순하게 받아들여 믿는 사람들에게 자신을 계시하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마 11:25) “¶ 그때에 예수님께서 응답하여 이르시되, 오 하늘과 땅의 [주]이신 [아버지]여, 아버지께서 이것들을 지혜롭고 분별 있는 자들에게는 숨기시고 아기들에게는 드러내셨사오니 감사하나이다.”
이것이 어린 아이에 대한 하나님의 입장입니다. 그래서 성경적으로 보면, 외할머니(로이스)와 어머니(유니게)로부터 조기 교육을 받은 디모데는 할머니와 어머니 속에 있던 같은 믿음이 네 속에도 있다고 바울이 말한 바도 있습니다(딤후 1:5). 바울은 디모데에게 그가 어려서부터 성경기록을 배워 알았던 말씀을 상기시키면서 배교의 물결에 휘몰아치는 환경과 여건 속에 있지만, 성경기록을 믿는 믿음으로 살아가라는 격려의 편지를 쓰기도 했습니다.
(딤후 3:15~17) “15) 또 어린아이 때부터 네가 거룩한 성경 기록들을 알았나니 그것들은 능히 너를 지혜롭게 하여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 있는 믿음을 통해 구원에 이르게 하느니라. 16) 모든 성경 기록은 [하나님]의 영감으로 주신 것으로 교리와 책망과 바로잡음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17) 이것은 [하나님]의 사람이 완전하게 되어 모든 선한 일에 철저히 갖추어지게 하려 함이라.”
어린이 여러분, 하나님은 여러분이 성경말씀을 잘 배우고 있고, 착하고 바르게 살아가는지를 보고 계십니다. 부모 여러분, 하나님은 여러분이 자녀들에게 무엇을 가르치며 어떻게 키우고 계신지 보고 계십니다.
어린아이를 바라보는 하나님의 시선, 그 아이를 가르치기 위해 함께 있는 부모 또한 하나님의 시선 안에 있습니다.
그 외에도 하나님의 시선은 주님은 큰 무리가 오는 것을 보시고(요 6:5), 태어날 때부터 눈먼 사람을 보시고(요 9:1), 주님께로 나아오는 사람을 보시고(요 1:47), 병약한 사람이 누워있는 것을 보시고(요 5:6), 사람이 우는 것을 보시고(요 11:33) 등 이렇게 하나님이 보시는 시선이 가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런 하나님의 시선이 머무는 곳에 하나님의 일하시는 손길로써 여러분이 함께 보여지면 좋겠습니다.
이제 마무리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구원받고, 믿음으로 살아가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하나님을 아버지로 둔 것입니다. 그런 우리의 아버지이신 하나님이 자녀인 우리를 늘 돌보고 계십니다.
우리는 오늘 성경이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시선이 향하는 곳을 들었습니다. 말씀을 요약하면,
첫째, 사람의 믿음을 보십니다. 둘째, 사람의 중심(마음)을 보십니다. 셋째, 애통하는 사람을 보십니다. 넷째, 제자들이 곤경에 빠졌을 때 보십니다. 다섯째, 불쌍한 과부를 보십니다. 여섯째, 죄를 회개치 않은 예루살렘을 보십니다. 일곱째, 제자로 부르시기 전에 작은 일에도 신실한지 일하는 태도를 보십니다. 여덟째, 어린아이들을 보십니다. 성경에는 하나님께서 시선을 두시는 것이 더 있지만, 그 내용은 여러분들이 성경을 읽으며 들으시길 바랍니다.
그러나 하박국 1:13a 절을 보니까, “주께서는 눈이 정결하셔서 악을 보지 못하시며 또 불법을 보지 못하시거늘 ...”이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 말씀은 우리의 마음과 생각이 악하거나 불법을 저지르면, 하나님은 우리를 향한 카메라 앵글을 돌릴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그리스도를 주인공으로 하는 역사라는 영화 속에서 우리의 모습은 없는 것입니다. 카메라 앵글에 많이 잡히는 조연이 출연료(보상)도 세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시선이 향하는 곳에 우리도 시선을 같이 향해서 보면, 하나님이 일하시려는 마음의 생각을 조금은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분은 우리의 머리이고, 우리는 그분의 몸이고 지체입니다. 머리가 생각하고 판단하고 결정하면, 몸은 머리의 결정에 순종해서 움직이는 것이 정상적인 활동입니다. 주님이 시선을 두고 누군가에게 위로를 주고 싶을 때, 누군가를 불쌍히 여겨서 필요를 채우고 싶으실 때, 누군가를 책망하고 싶으실 때, 우리는 그분의 몸된 지체로서 그분의 생각대로 위로를 주고, 필요를 채워주며, 하나님의 책망의 말씀을 전해야 합니다. 이것이 우리의 사역이어야 합니다.
하나님이 시선을 두시는 곳에 우리가 있어야 하고, 그곳에는 주님의 일에 동참할 수 있는 기회가 있습니다. 우리는 주님의 일을 나 자신의 일로 여기고 신실하게 그 일을 행해야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시각인 카메라 앵글에 많이 노출되어서 하늘에서 큰 보상이 있어야 합니다. 끝.
2020-10-18 12:4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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