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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원광 [ E-mail ]
  죄의 결과와 책임
  http://av1611.co.kr

제목: 죄의 결과와 책임
■ 본문: (롬 5:13~17) “13) (율법이 올 때까지 죄가 세상에 있었으나 율법이 없을 때에는 죄를 죄로 인정하지 아니하였느니라. 14)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담으로부터 모세까지 아담의 범법과 같은 종류의 죄를 짓지 아니한 자들 위에도 사망이 군림하였는데 아담은 오셔야 할 분의 모형이니라. 15) 그러나 거저 주시는 이 선물은 또한 그 범죄와 같지 아니하니 이는 한 사람의 범죄를 통해 많은 사람이 죽었을진대 [하나님]의 은혜와 또 한 사람 예수 그리스도에 의한 은혜로 말미암은 선물은 더욱더 많은 사람에게 넘쳤기 때문이니라. 16) 또 이 선물은 죄 지은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이루어진 것과 같지 아니하니 이는 한 사람으로 말미암은 심판은 정죄에 이르렀으나 많은 범죄로 인한 이 거저 주시는 선물은 칭의에 이르기 때문이니라. 17) 한 사람의 범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한 사람을 통하여 군림하였을진대 은혜와 의의 선물을 넘치게 받는 자들은 한 사람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더욱더 생명 안에서 군림하리라.)”
오늘날 복음은 전하는데 많은 사람이 구원받지 못하는 이유는 죄와 지옥에 대한 설교가 없어서가 아니라, 끔찍하고 피비린내가 진동하는 죄의 결과와 그 책임에 대해 충분히 인식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또한 구원받은 이후에도 죄에 대한 인식이 약한 채로 살면, 거듭나지 않은 사람과 별반 다를 바 없이 죽은 자와 같은 삶을 살게 됩니다.
이 세상은 한 사람의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들어와 엉망진창이 되어 버렸습니다. 그로 인해 모든 사람은 이것에 대한 책임을 져야만 했습니다. 더욱이 예수님을 믿는다고 말하는 성도들조차도 죄의 경각심을 지적받으면 대부분 귀를 막고, 등을 돌려 버립니다. 이것이 바로 오늘날 많은 사람이 구원받지 못한 이유고, 성도가 성도답지 않게 사는 이유입니다.
우리가 받은 은혜의 복음은 죄의 결과와 책임을 분명히 밝히고 있습니다. 확인해 보겠습니다.
(고전 15:3) “내가 또한 받은 것을 무엇보다 먼저 너희에게 전하였노니 그것은 곧 성경 기록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죄들로 인하여 죽으시고”
그리스도가 죽으신 원인이 우리의 죄들 때문입니다. 우리의 죄들로 인해 예수 그리스도가 피를 흘리신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이 구원받기 위해서는 먼저 그리스도의 피가 낭자한 이 끔찍한 장면을 직면해야 합니다. 그래야 하는 이유는 피 흘림이 없은즉 사면이 없기 때문입니다(히 9:22b).
그렇게 우리의 죄로 인해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이 있고, 그 후에 부활이 있는 것입니다. 복음은 예수님의 죽음에서 끝나지 않습니다. 성경 기록대로 주님께서는 셋째 날에 다시 살아나셨습니다(고전 15:4).
이와 같이 우리는 우리의 죄로 인해 주님이 피 흘려 죽으신 끔찍한 결과를 먼저 확실히 인정한 후에 부활하신 주님 앞에 나가야 합니다. 나 자신이 죽어야 마땅한 죄인임을 인정하고 나서야 주님의 은혜의 선물을 받을 수 있습니다.
그렇게 구원받은 우리는 그리스도를 죽음에 이르게 한 우리의 죄를 미워하는 믿음으로 살면서 죄를 멀리하고, 죄에 대하여 반응하지 않는 죽은 자로 살아가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죽게 한 나의 죄, 그럼에도 우리는 아직도 죄의 결과와 그 책임을 너무 소홀히 여겨 잊고, 그냥 무의미하게 살아가는 경향이 있는 것 같습니다.
여러분도 잘 아시는 바와 같이 한 사람의 범죄의 결과로 인해 인간이 사는 세상과 인간의 상태와 인간의 마음은 모두 망가져 버렸습니다. 그냥 망가진 정도가 아니라, 폐기 처분할 정도가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자녀라고 하는 사람들이 모인 지역교회의 도덕성은 땅에 떨어져 짓밟히고, 의롭고 정직하게 살아야 할 성도들은 세상 사람들과 구분이 안 가고, 어디가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구원받았다는 말조차 하기 민망할 정도로 교회와 성도들이 죄에 대한 경각심이 너무 많이 무너져 내렸습니다. 이 무너져내리고 망가져 버린 것을 고칠 수 있는 것은 오직 은혜의 복음과 하나님의 말씀 밖에 없습니다.
교회의 제도나 정치 체계로는 망가진 세상과 인간을 고칠 수 없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말씀만이 고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 안에 계시는 성령님이 “죄에 대하여, 의에 대하여, 심판에 대하여 세상을 꾸짖으시리라”(요 16:8)는 이 말씀을 믿어야 합니다.
우리가 죄에 대하여 무딘 생활을 하게 되면, 죄를 꾸짖는 우리를 향하여 세상 사람들은 “너나 잘 하세요.”라고 비꼬임을 할 것입니다. 성령님께서 꾸짖으시는 “죄에 대하여”는 먼저 예수님의 말씀을 믿지 않아 죄를 짓고 사는 우리 자신에 대하여 스스로 꾸짖어야 하고, 그리고 우리가 세상에 대하여 죄를 꾸짖을 수 있는 정도로 건전한 삶을 살아야 합니다(눅 6:41~42).
성경의 모든 말씀은 하나님의 영감으로 주어진 거룩한 말씀입니다. 그렇더라도 구약성경에 기록된 말씀 중에는 단 한 구절도 신약교회에 속한 우리 그리스도인에게 주신 말씀은 없습니다. 물론 우리가 신구약 성경에 포함된 책들 중 단 한 권이라도 소홀하게 연구한다면 우리는 완전하게 되지 못할 수 있습니다.
(딤후 3:16~17) “16) 모든 성경 기록은 [하나님]의 영감으로 주신 것으로 교리와 책망과 바로잡음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17) 이것은 [하나님]의 사람이 완전하게 되어 모든 선한 일에 철저히 갖추어지게 하려 함이라.”
이 말씀에 “모든 성경 기록”이라 함은 1차적으로는 디모데가 읽고 배운 구약 성경 기록입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신약 성경의 한 부분으로 디모데후서 3:16절 말씀을 주셨다고 믿기 때문에 “모든 성경 기록”이 성경 66권 전체를 포함하고 있다고 믿습니다.
성경의 모든 말씀은 신약의 그리스도인들에게 유익을 줍니다. 그렇다고 해서 성경의 모든 말씀이 그리스도인을 향해 기록된 것은 아닙니다. 어떤 말씀은 유대인을 향해 기록되었고, 어떤 말씀은 신약 교회인 그리스도인을 향해 기록되었습니다. 이렇게 성경의 특정한 부분은 특정한 사람을 향해 기록되었습니다. 그렇지만 모든 성경 기록은 예수님에 관한 말씀입니다.
(요 5:39) “¶ 성경 기록들을 탐구하라. 너희가 그것들 안에서 영원한 생명을 얻는 줄로 생각하거니와 그것들은 곧 나에 대하여 증언하는 것들이니라.”
이 말씀에서 “성경 기록들”도 1차적으로는 구약성경을 나타내며, 신약성경은 물론이고 구약성경도 예수님에 관해 증언하는 책입니다. 창세기 1장부터 요한계시록 22장까지 어느 장을 펴서도 예수 그리스도를 찾을 수 있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이 다음에 기회가 주어지면, 신약은 물론이고 구약성경에 나타난 예수 그리스도를 공부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우리 교회는 매년 성경을 1독 이상하도록 매달 성경읽기표를 만들어 나누어 주고 있습니다. 여러분이 구약성경에 읽을 때 예수 그리스도를 나타내는 모형, 예표, 그림자를 찾지 못한다면, 여러분은 예수님이 말씀하신 “성경 기록들을 탐구하라.”는 말씀의 본질을 놓치고 있는 것입니다. 마치 수박은 빨갛게 잘 익은 달콤한 속살을 먹어야 하는데, 수박 겉면의 초록색 껍질을 혀로 핥으면서 나는 수박을 먹었다고 말하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성경을 읽고 연구하는 목사님들이 하신 말이 있는데요. 여러분도 들어보셨을 겁니다.
(들/참)깨를 짜면, (들/참)기름이 나오죠. 그렇듯이 구약성경을 짜면 짐승의 피가 나오고, 신약성경을 짜면 예수 그리스도의 피가 나온다는 말이 있습니다. 성경은 다른 책들에서 언급하는 것보다 더 많이 피에 관해 언급하고 있습니다. 왜 그럴까요?
하나님이 세우신 규범에는 죄에 대한 결과와 책임을 묻는다는 것입니다. 생명을 유지하는 피, 그 피로만 죄를 사면할 수 있는데요. 그래서 성경 전체에 피가 관통하고 있는 것입니다.
첫 사람 아담 이후부터 죄에 대한 하나님의 해결 방법은 단 한 가지입니다.
(히 9:22b) “... 피 흘림이 없은즉 사면이 없느니라.”
아담이 죄를 지었을 때도 하나님께서 아담에게 가죽옷을 입히기 위해서는 짐승이 죽어야 했습니다. 죄는 죄를 지은 당사자가 죽어야 마땅한데, 하나님은 대신 속죄라는 긍휼과 은혜를 베푸셔서 죄 없는 생명의 피로 죄인의 죄를 속죄할 수 있음을 보이면서, 구약의 각종 헌물을 통해 하나님께 나아오는 방법을 알려주고자 하셨습니다. 레위기를 찾아보겠습니다.
(레 1:2) “이스라엘 자손에게 말하고 그들에게 이르라. 너희 중에 누가 {주}께 헌물을 가져오려거든 너희는 가축에서 곧 소 떼나 양과 염소 떼에서 너희 헌물을 가져올지니라.”
이 말씀은 이스라엘 자손에게 주신 말씀입니다. 우리는 이스라엘이 아니니까 소나 양이나 염소로 헌물을 드리려고 교회에 가지고 오지 않습니다. 이스라엘에게 주신 하나님의 이 말씀은 명령이라기보다는 권면입니다. 주님은 사람이 자신의 의지에 반해 억지로 주님께 헌물을 드리기를 원하지 않으십니다. 사람이 자원하여 주님께 헌물을 드리기를 원하십니다. 이것이 주님께 드리는 것에 관한 가장 중요한 부분입니다. 우리는 신약성경 고린도후서 8~9장에서와 같이 항상 주님께서 우리에게 주신대로, 풍성하게, 인색하지 않게, 즐거이, 자원하는 마음으로 드려야 합니다.
(레 1:3) “만일 그의 헌물이 소 떼의 태우는 희생물이면 그는 흠 없는 수컷으로 드리되 자원하여 자기 의지대로 회중의 성막 문에서 {주} 앞에 그것을 드릴 것이요,”
여기에도 하나님의 마음과 우리가 주님을 섬기는 원칙이 잘 나와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우리가 의무감이 아니라, 주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인해 자원해서 주님을 섬기고 주님께 드리기를 원하십니다. 또한 우리에게 쓸모없고 나쁜 것이 아니라, 흠 없이 좋은 것을 주님께 드리기를 원하십니다.
이 3절에도 대속의 원리가 나옵니다. 성경이 말씀하시는 대속이란? 죄를 지어 죽어 마땅한 죄인을 대신해서 무엇인가가 대신 죽어주는 것입니다. 물론 구약 시대에 드린 짐승의 헌물로 인간의 죄를 완전히 대속할 수는 없습니다. 이것은 단지 하나님의 어린양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의 모형일 뿐입니다.
인간의 죄를 궁극적으로 대속할 수 있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피 밖에 없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대신하여 십자가에 달리셨습니다. 주님께서는 친히 자원해서 자신을 아버지 하나님께 우리를 위한 피 흘려 죽는 헌물로 드리신 것입니다(롬 5:6).
이렇게 성경은 처음부터 피에 관해 증언하고 있습니다. 생명은 피에 있기 때문에 끊임없이 피에 관해 증언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구약성경의 짐승 헌물을 통해 죄에 대한 값으로 피를 흘려야 한다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구약에서 예표로 보여준 예수님의 이 사역과 같이 신약성경은 다시 태어난, 즉 믿는 사람들인 우리가 우리의 생명을 주님을 위해 자원하여 내어놓는 것이 바로 주님께 향기로운 냄새로 드리는 헌물이라고 말씀합니다.
(엡 5:2)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를 위해 자신을 향기로운 냄새의 헌물과 희생물로 [하나님]께 드리신 것 같이 사랑 안에서 걸으라.”
여기에는 구약성경에서 말씀하시는 것과 동일한 영적 원리가 적용됩니다. 우리 자신을 주님께 드리면 다시 되돌릴 수 없습니다. 우리의 취향을 포기하고, 자신을 부인하며, 오직 주님만을 위해 자원해서 내어드리는 것이 바로 합당한 헌신이라는 것입니다.
이렇게 우리가 자신을 전적으로 주님께 내어드리는 것은 하나님께는 향기로운 냄새요, 생명에 이르는 냄새지만, 세상 사람들에게는 사망의 냄새일 수 있습니다. 우리가 자신을 전적으로 주님께 내어드리면, 우리의 친구들이나 심지어 가족도 우리를 정신 나간 사람 취급을 합니다. 왜냐하면 주님께 전적으로 내어드린 인생이 그들에게는 인생을 낭비하는 사망의 냄새로 풍기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오직 이런 인생만이 주님께 향기로운 냄새가 될 수 있습니다.
(고후 2:15~16) “15) 우리는 구원받은 자들 가운데서나 멸망하는 자들 가운데서나 [하나님]을 향한 그리스도의 향기로운 냄새니 16) 한 부류에게는 우리가 사망에 이르는 사망의 냄새요, 다른 부류에게는 생명에 이르는 생명의 냄새니라. 누가 이런 일들을 감당하리요?”
이렇게 하나님께서는 사람들이 좋아하지 않는 것을 좋아하시고, 사람들이 거부하고 업신여기는 것에 의미를 두시는 경우가 있습니다.
어떤 경우가 있을까요? 세상 사람들은 죄를 짓고 죄의 쾌락을 사랑하며 성도인 우리가 함께 친구가 되기를 원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가 세상과 함께 하지 않고 죄를 미워할 때 더욱 사랑하십니다. 그 이유는 우리는 이미 죄에 대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피를 흘리게 했던 과거가 있었고, 우리가 다시 죄를 지음은 그분의 피 흘리심을 값어치 없는 것으로 인정하는 것과 다를 바 없기 때문입니다.
나의 죄는 나에게 죽음을 가져왔습니다. 그렇게 죽었던 나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생명으로 옮기신 것은 하나님의 은혜인데, 그 은혜를 안다고 말하는 우리가 또다시 죄지음을 가벼이 여긴다면, 과연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를 바르게 인식하고 있는 것일까요?
하나님이 보시는 이 세상은 죄로 말미암아 멸망으로 달려가는 열차와 같습니다. 세상은 우리에게 함께 죄를 지으며 같은 열차를 타고 가자고 손을 내밀고 있습니다. 구원받은 우리가 멸망 당하지는 않겠지만, 멸망 받을 사람들과 함께 죄 안에서 친구가 된다면 하나님의 마음은 어떠실까요?
죄의 삯은 사망입니다. 우리가 지은, 또한 짓고 있는 죄의 결과는 사망이고, 그 사망의 책임을 내가 지어야 하는데, 주님의 은혜로 예수 그리스도가 피 흘리심으로 대신 치루셨습니다.
우리의 현재 삶에서 내가 또 죄를 지을 때마다 나 자신이 피를 흘려야 한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예수님이 여러분 대신 받으신 그 처형과 그 고통과 그 고난으로 피를 흘림을, 지금 우리가 죄를 지을 때마다 직접 받아야 한다면, 여러분은 지금처럼 죄를 그렇게 쉽게 지을 수 있을까요?
(레 1:14~15) “14) ¶ 만일 {주}께 드리는 그의 헌물이 날짐승의 태우는 희생물이면 그는 산비둘기나 집비둘기 새끼 중에서 자기의 헌물을 가져올 것이요, 15) 제사장은 그것을 제단으로 가져다가 그것의 머리를 비틀어 제단 위에서 그것을 태우고 그것의 피는 제단 곁에서 짤지니라.”
온통 피로 범벅된 장면이 계속 등장합니다. 여러분이 이 장면을 직접 본다면 어떠실까요? 고개를 돌리고 싶지 않겠어요? 그런데 이 모든 것의 원인이 우리의 죄입니다.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이러한 진리에 대해 이해하게 되기를 원하십니다. 불쌍한 동물이 끔찍하게 죽임을 당하는 것을 보고 그 이유를 깊이 생각해 보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은 이 모든 죽임당한 동물과 헌물을 가리키시며 우리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죄의 삯은 사망이다. 너희의 죄가 이러한 끔찍한 결과를 가져왔단다. 너희의 범죄로 인해 이 일이 생긴 것이란다. 너희가 죄를 짓지 않았다면 이 동물들은 죽을 필요가 없었단다. 이렇게 죄를 짓는 혼은 모두 죽을 것이란다.”
인간의 죄로 인해 죽임을 당한 동물들은 모두 무죄했습니다. 죄가 없는 동물이 왜 인간을 대신해서 죽임을 당해야 했을까요? 그것이 바로 죄가 하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죄는 죄인에게만 영향을 끼치지 않습니다. 죄는 죄인과 접촉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엄청나게 불행한 영향을 끼칩니다. 죄는 죄인만 해치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다른 사람도 해칩니다. 다른 사람을 해치지 않고 하나님의 법을 범할 수는 없습니다. 이것이 바로 구약성경에서 죽어나간 희생 헌물이 보여주는 진리입니다.
“15) 제사장은 그것을 제단으로 가져다가 그것의 머리를 비틀어 제단 위에서 그것을 태우고 그것의 피는 제단 곁에서 짤지니라.”
이와 같이 죄는 잔인하고 끔찍합니다. 이 세상에서 일어나는 모든 살인과 강간과 거짓말과 도둑질은 이처럼 잔인함을 동반합니다. 그리고 이런 비참함과 잔인함은 바로 죄의 결과입니다.
이런 결과를 초래하는 죄에 대하여 우리는 너무 안일하게 여기는 것은 아닐까요? 죄에 대하여 너무 쉽게 생각하는 것은 아닐까요? 예수 그리스도가 대신 죽으셨다고 하니까, 나는 마음으로만 믿으면 된다고 하니까, 너무 소홀히 여기는 것은 아닐까요? 죄로 말미암아 죽었던 우리가 옛 상태로 다시 돌아가려는 습관이 남아있는 것은 아닐까요?
여러분의 죄를 담당할 그 헌물이 될 짐승을 죽이면 피가 흥건하게 됩니다. 그런 후에 헌물이 되는 짐승을 불로 태워버리면 다시는 원상태로 돌이킬 수 없게 됩니다. 이런 번제 헌물이 대속물입니다. 이것은 하나님께 죄를 지은 인간과 하나님 사이의 관계를 회복시켜 주는 것입니다. 이 대속은 믿는 사람을 하나님께 받아들여지게 해 줍니다.
대속하는 동물은 죽어야 하는 사람을 대신하여 죽임을 당합니다. 하나님께 죄를 짓지 않은 동물이 하나님께 죄를 지은 사람을 대신해서 죽는 것입니다. 물론 이것은 모두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합니다. 예수님은 죄를 지으신 적이 없습니다. 죄를 지은 것은 저와 여러분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죄로 인해 나 자신이 죽지 않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죗값을 치른 적이 없지만, 예수님께서 우리를 대신하여 죗값을 치러주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 위에서 죽으심으로 우리는 살 수 있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은 경배를 받으셔야 하고 인간은 구원받아야 하기에 누군가의 희생을 통해 이러한 일들을 가능하게 해야 하는데, 이러한 예수 그리스도의 피에 대해 히브리서 9장이 설명해주고 있습니다.
(히 9:11~14) “11) 그러나 그리스도께서는 다가올 좋은 일들의 대제사장으로 오시되 손으로 만들지 아니한 성막 곧 이 건물에 속하지 아니한 더 크고 더 완전한 성막을 통해 오셔서 12) 염소와 송아지의 피가 아니라 자기 피를 힘입어 단 한 번 거룩한 곳에 들어가사 우리를 위하여 영원한 구속을 얻으셨느니라. 13) 황소와 염소의 피와 암송아지의 재를 부정한 자에게 뿌려 육체를 거룩히 구별하고 정결하게 하거든 14) 하물며 영원하신 성령을 통해 자신을 점 없이 [하나님]께 드린 그리스도의 피는 죽은 행위로부터 너희 양심을 얼마나 더 많이 깨끗하게 하여 살아 계신 [하나님]을 섬기게 하겠느냐?”
히브리서는 예수님을 위대한 희생 헌물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구약성경에 희생 헌물로 드려진 모든 짐승이 보여준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그분의 사역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알지 못하고 지은 죄는 어떨까요? 몰랐으니까 봐줄까요? 성경에 의하면 알지 못하고 지은 죄, 즉 실수로 지은 죄도 분명히 죄가 됩니다.
(약 2:10~11) “10) 누구든지 온 율법을 지키다가 한 조목이라도 어기면 모든 것에서 유죄가 되나니 11) 간음하지 말라, 하신 분께서 또한, 살인하지 말라, 하셨은즉 이제 네가 비록 간음하지 아니하여도 살인하면 율법을 범한 자가 되느니라.”
법을 몰랐다고 무지가 변명 될 수는 없습니다. 죄를 지은 후에 몰랐다고 하는 것은 하나님 앞에서 통하지 않습니다. 실수로 지은 죄, 모르고 지은 죄, 전혀 의도하지 않았던 죄 모두 하나님 앞에서는 고의로 지은 죄와 동일하게 죄가 됩니다. 알고 짓던 모르고 짓던 죄는 죄일 뿐입니다. 이것이 바로 인간이 다시 태어나야만 하는 이유입니다. 단순히 죄를 고백하는 것만으로는 구원받을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우리가 지은 죄가 무엇인지 전체를 알지도 못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알고 지은 죄 못지않게, 알지 못하고 지은 죄도 엄청나게 많습니다. 우리가 인지하지 못하는 가운데 양심의 가책을 전혀 받지 않고 지은 죄도 부지기수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모든 죗값을 십자가 위에서 치러주셨습니다. 우리가 알고 지은 모든 죄와 모르고 지은 모든 죄의 값을 치러주신 것입니다. 알고 지은 죄도 우리를 죄인으로 만들었고, 모르고 실수로 지은 죄도 우리를 죄인으로 만들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수님만이 우리의 유일한 희망입니다. 예수님만이 인간의 죄에 대한 유일하고 실제적인 효력이 있는 죄 헌물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피는 우리가 알고 지은 죄뿐 아니라, 모르고 지은 죄도 완전히 제거해 줄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피는 우리가 알고 지은 죄와 모르고 지은 죄까지도 완전히 지워 줄 수 있습니다. 따라서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을 믿음으로 받아들이는 것을 제외하고는 인간에게는 답이 없습니다. 너무 늦기 전에 그분을 구원자로 받아들이고, 구원받아야 할 분명한 이유입니다.
죄를 짓기를 원하는 성도가 있을까요? 저는 내일에는 죄를 짓지 않기를 원합니다. 하지만 저의 인생 대부분이 그렇듯 내일도 오늘처럼 죄를 지을 것입니다. 알고 짓든 모르고 짓든 계속해서 죄를 지을 것입니다. 제가 내일 지을 죄에 대한 값도 예수님께서는 십자가 위에서 미리 지불해 주셨습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께서는 우리의 모든 죄에 대한 값을 지불하셨기 때문입니다.
(요일 1:7) “그러나 그분께서 빛 가운데 계신 것 같이 만일 우리가 빛 가운데 걸으면 우리가 서로 교제하고 또 그분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피가 모든 죄에서 우리를 깨끗하게 하느니라.”
저의 과거와 현재와 미래의 모든 죗값은 치러졌습니다. 예수님은 제가 미래에 지을 죗값도 미리 갚아 주셨고 하나님도 미리 그 죗값을 받아주셨습니다. 주님의 긍휼과 은혜에 감사드리며 찬양드립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와 같은 주님의 선물에 주님의 값진 희생이 있었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의 죄로 말미암은 결과로 주님이 죽으심을 당하셨고 죄가 되신 그분에게서 아버지의 버림을 받으셨습니다. 이런 결과는 죄를 지은 우리 자신의 책임이었습니다.
우리는 성경을 읽다가, 설교를 듣다가, 다른 형제와 교제를 나누다가 자신이 죄를 지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자신이 죄를 지었다는 사실을 알면 죄를 지었다고 먼저 주님께 자백해야 합니다. 하나님께 지은 죄는 하나님께 자백해야 합니다.
(창 39:7~9) “7) ¶ 이 일들 뒤에 그의 주인의 아내가 요셉에게 눈길을 보내다가 말하기를, 나와 함께 눕자, 하였으나 8) 그가 거절하며 자기 주인의 아내에게 이르되, 보소서, 나의 주인이 집에서 내가 무슨 일을 하는지 알지 못하며 또 자기의 모든 소유를 내 손에 맡겼은즉 9) 이 집에는 나보다 더 큰 자가 없으며 주인이 당신 외에는 아무것도 내게 금하지 아니하였으니 이는 당신이 그의 아내이기 때문이라. 그런즉 내가 어찌 이 큰 악을 행하여 [하나님]께 죄를 지으리이까? 하니라.”
요셉이 누구에게 죄를 짓는 거라고요? 하나님께 죄를 짓는 것입니다.
하지만 어떤 일에 대해 하나님과 사람에게 죄를 지었다면, 하나님께만 자백하지 말고 사람에게도 자백해야 합니다. 일명 탕자의 이야기입니다.
(눅 15:16~18) “16) 그가 돼지들이 먹는 곡식 껍질로 자기 배를 채우려 하되 아무도 그에게 주지 아니하므로 17) 그제야 그가 정신을 차리고 이르되, 내 아버지께는 빵이 풍족하여 나누어 줄 수 있는 품꾼이 얼마나 많은가! 그런데 나는 굶어 죽는구나. 18) 내가 일어나 내 아버지께 가서 그분께 이르기를, 아버지, 내가 하늘을 대적하여 죄를 짓고 아버지 앞에 죄를 지었사오니”
이와 같이 하나님께 자백하고 용서를 구하는 것처럼 사람에게도 자백하고 용서를 구해야 합니다.
자백은 성경적인 것인데, 오늘날에는 거의 사라져 버렸습니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자신의 죄는 자백하지 않으면서 다른 사람의 죄만을 지적합니다. 다른 사람의 죄를 지적하기 전에 먼저 자신의 눈에 있는 들보를 빼내야 할 것입니다(마 7:3~5). 우리는 주님께 경배를 드리면서 죄를 지을 수도 있고, 기도하면서도 죄를 지을 수 있고, 교회 생활을 함께 하는 가운데에서도 죄를 지을 수 있습니다.
오늘날 사람들은 자신의 잘못에 대한 대가를 치르려고 하지 않고, 잘못한 것을 바로 잡으려고 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말과 행동으로 잘못한 모든 것을 바로 잡아야 하며, 더욱 중요한 것은 잘못하지 않기 위해서는 깨어 있어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마 5:23~24) “23) 그러므로 네가 네 예물을 제단으로 가져오다가 너를 대적할 어떤 일이 네 형제에게 있음을 거기서 기억하거든 24) 네 예물을 거기에, 제단 앞에 두고 네 길로 가서 맨 먼저 네 형제와 화해하고 그 뒤에 와서 네 예물을 드리라.”
잘못을 바로 잡지 않는 것은 진정한 회개가 아닙니다. 특히 교회에서는 더욱 그래야 합니다. 성경적인 회개는 항상 합당한 열매가 동반된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마 3:8).
하나님은 우리가 단순히 미안하다고 사과만 하기를 원하지 않으십니다. 주님은 우리가 잘못한 일에 대해 바로 잡기를 원하십니다. 우리가 정직하게 행하지 않는다면 아무도 우리가 전하는 복음을 듣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가 아무리 복음을 설득력 있고 논리적으로 전한다 해도 정직성에 있어서 간증을 잃는다면 사람들은 우리가 전하는 복음에 귀를 기울이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는 잘못한 일에 대해 원상복구를 해야 함은 물론이고 이자까지 더해 주어야 합니다.
(레 6:5) “혹은 자기가 거짓 맹세한 모든 것을 돌려주되 그것을 원래대로 돌려주고 또 거기에 오분의 일을 더하여 그것을 돌려줄지니 곧 범법 헌물을 드리는 날에 그 물건이 속한 사람에게 그것을 줄지니라”
오분의 일은 20%입니다. 적어도 이 정도의 희생은 있어야 상대방의 용서를 기대할 수 있을 것이며 간증도 회복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렇게 그리스도인은 항상 정당한 값을 치러야 합니다. 특히 주님 안에 있는 같은 형제라고 해서, 같은 교회에 다닌다고 해서 다른 사람의 노동력이나 물건을 공짜로 취하려고 해서는 안 됩니다. 같은 교회에 다닌다고 해서 자동차 수리를 무료로 해 달라고 요구해서도 안 됩니다. 돈이 없다면 아예 자동차 수리를 맡기지 말아야 합니다. 품삯을 줄 수 없다면 처음부터 일꾼을 부르지 말아야 합니다. 일한 것에 대한 정당한 임금은 반드시 지급해야 합니다. 정당한 임금을 지급하지 않아서 많은 기독교인과 소위 말하는 “기독교 기업”이 간증을 잃었습니다. 자신이 받기로 약속한 것보다 더 달라고 하는 직원이나 주기로 한 것을 주지 않는 고용인은 모두 하나님의 법을 어긴 것입니다.
이렇게 죄의 일차적인 대상은 항상 하나님입니다. 왜 이 사실이 중요한 것일까요? 자신은 누구에게도 피해를 끼친 적이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하지만 모든 죄는 일차적으로 하나님께 짓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이 지은 어떤 죄로 피해를 입은 사람이 아무도 없다 할지라도 여전히 그는 유죄입니다. 모든 죄는 하나님께 피해를 끼칩니다. 아무에게도 상처를 주지 않은 죄라 해도 하나님께는 상처가 됩니다. 인간이 범한 모든 죄는 확실히 주님을 대적하여 범법한 것입니다.
사람들은 죄가 얼마나 하나님의 마음을 아프게 하는 것인지 모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더 많은 복을 누리면서 살기를 원하십니다. 죄가 얼마나 우리를 망치는지 알기를 원하십니다. 주님의 말씀대로 사는 것이 얼마나 복된 일이고 우리에게 유익한 것인지를 알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누구에게도 벌을 내리는 것을 원하지 않으십니다. 누구도 지옥에 보내기를 원하지 않으십니다. 누구도 고통 받는 것을 원하지 않으십니다. 누구도 죗값을 스스로 치르기를 원하지 않으십니다.
우리의 혼을 사랑하시는 주님을 대적해서 왜 죄를 지으려고 합니까? 왜 우리의 가장 좋은 친구가 되시는 분을 대적해서 죄를 지으려고 합니까? 우리를 사랑하시고 우리를 돌봐주시는 분을 대적해서 왜 죄를 지으려고 합니까? 성경이 말씀하시는 것처럼 알지 못하고 지은 죄도 고의로 지은 죄만큼이나 끔찍한 죄입니다. 성경은 가장 심각한 죄는 거룩한 것에 지은 죄라고 말씀합니다. 하나님의 거룩하심과 의를 대적해서 지은 죄는 그 어떤 죄보다 심각한 죄입니다. 주님께서 우리를 도와주셔서 우리의 섬김과 기도와 경배와 찬양에 어떤 죄도 들어가지 못하게 되기를 원합니다.
마무리입니다.
사람 사이에 불편한 것이 있으면 평화롭지 못한 것처럼 우리의 죄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하나님과 화평을 누릴 수 없습니다.
(롬 5:1) “그러므로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게 되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과의 화평을 누리는도다.”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과 화평을 누리기를 원하지만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죄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지는 않습니다. 그리고 이 죄 문제는 오직 예수님을 통해서만 해결될 수 있습니다. 교회에 다니거나 헌금을 하거나 봉사를 하거나 세례나 침례를 받는 것은 죄 문제를 해결하는 것과는 무관합니다. 하나님 앞에서 먼저 자신이 죄인이라는 사실을 시인하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 위에서 자신의 죗값을 치러주신 사실을 마음으로 믿어야만 죄 문제를 해결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 위에서 드린 범법 헌물을 믿음으로 받아들이지 않고는 결코 죄로부터 깨끗해질 수 없습니다.
누구도 구원을 스스로 이룰 수 없습니다. 성경을 읽고 헌금을 하고 봉사를 하고 침례를 받고 기도를 하고 선한 행위를 하는 것은 모두 좋은 일이지만, 그것으로는 하나님과 화평을 누릴 수 없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 위에서 이루신 일을 믿음으로 받아들이는 것만이 하나님과 화평을 이루게 해 줍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 안에만 구원이 있습니다. 구원에 있어서는 다른 길은 존재하지 않습니다(요 14:6). 예수님을 유일한 구원자로 믿고 받아들여야 합니다(요 1:12).
사람이 죄를 지으면, 죄가 사람에게 묻어나게 됩니다. 더러움이 사람에게 남아있게 되는 것입니다. 죄는 주변에 있는 것을 오염시키는 속성이 있습니다. 한 사람이 더러워지면 많은 사람이 더러워지게 됩니다. 일시적으로라도 오염을 막을 수 있는 방법은 격리밖에 없습니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무엇이 더러운지, 혹은 깨끗한지가 매우 중요한 문제라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주님을 섬기는데 사용하는 모든 것들은 거룩해야 합니다. 우리가 주님을 섬기는 방법과 도구와 동기는 모두 거룩해야 합니다. 잘못되거나 더러운 방법이나 도구로 주님을 섬겨서는 안 됩니다. 인간이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 나아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무죄한 피가 있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인간의 행위나 구별이나 기름부음이나 의복이나 헌신이 아닌 무죄한 피가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 인간을 똑바로 세워주고 하나님을 섬기게 할 수 있습니다. 구약성경에 나온 모든 무죄한 피는, 우리의 모든 죄를 깨끗하게 씻어주는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피를 상징합니다.
그러므로 모든 사람이 반드시 예수님을 알아야 합니다. 반드시 예수님의 피로 씻김을 받아야 합니다. 여러분은 어린양의 피로 씻김을 받았습니까? 이것보다 더 중요한 일은 없습니다.
우리는 주님의 피를 힘입어 깨끗하게 되었고 거룩한 신분이 되었습니다. 그분의 피는 우리 죄들의 댓가로 치러주신 하나님의 피입니다. 그 피로 우리의 모든 죄들을 제거해 주셨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그분의 피 값을 허비하게 하는 죄를 더 이상 지어서는 안 됩니다. 우리가 지은 죄의 결과는 비참합니다. 우리의 죄의 책임은 무서운 것입니다. 그런 죄를 주님의 긍휼과 은혜로 대속되었습니다.
이제 우리는 죄에 대하여는 죽은 자로서 최선을 다해서 예수 그리스도를 높이려고 합니다. 우리가 성경이 말씀하시는 참된 의미를 제대로 이해한다면 예수님을 높이지 않을 수 없습니다. 죄를 멀리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잠시 주는 죄의 쾌락은 마약과 같은 것입니다. 시작도 하지 말아야 합니다.
예수님의 이름이 가장 위대하지만, 성경은 주님의 말씀을 주님의 모든 이름 위로 크게 하셨다고 분명하게 말씀합니다(시 138:2).
우리가 예수님을 존중한다고 말하면서 주님의 말씀을 무시할 수는 없습니다. 주님의 말씀을 존중하지 않으면 주님도 존중하지 않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존중하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바로 그분의 말씀을 존중하는 것이고 특히 그분에 관한 말씀을 존중하는 것입니다.
(롬 6:2) “결코 그럴 수 없느니라. 죄에 대하여 죽은 우리가 어찌 그 가운데서 더 살리요?” 끝.
2020-11-15 12:24: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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