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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의 이중 적용

말씀 : 스바냐 1:14-18. 2020년 11월 22일 일요일 오전 11시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전서는 구약성경과 신약성경으로 구성되어있습니다. 구약성경은 역사의 시작이요, 신약성경은 끝이라 할 수 있으며 구약성경이 나무의 뿌리요, 몸통이라면 신약성경은 가지요, 열매라고 할 수 있습니다. 또한 구약성경은 예언서라면 신약성경은 성취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구약성경 없이 신약성경을 알 수 없고 신약성경 없이 구약성경을 이해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이 모든 것을 주관하시는 분은 세상을 창조하신 창조주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므로 주님은 내가 곧 처음과 나중이요, 시작과 끝이라 하셨습니다.
구약성경의 시작인 창세기는 시작을 알리면서 끝을 보여주고 신약성경의 끝인 계시록은 끝을 알리면서 새로운 시작은 알려줍니다. 마치 시작과 끝이 연결되어 돌고 도는 것 같습니다. 구약성경의 전도서를 기록한 선포자 솔로몬은 말하기를, 바람은 남쪽으로 가다가 북쪽으로 돌이키며 계속해서 빙빙 돌다가 자기의 순환 회로에 따라 되돌아가고 모든 강은 바다로 흐르되 여전히 바다를 채우지 못하며 강들은 자기들이 나오는 곳으로 거기로 되돌아간다고 말합니다. 결국 이미 있던 것 즉 그것이 후에 있겠고 이미 행한 것을 후에 다시 행하리니 해 아래에는 새 것이 전혀 없다고 전도서 1장에 선포합니다.
우리가 성경을 반복해서 계속 읽다보면 구약을 읽을 때 신약의 어떤 사건을 떠올리게 되고 신약성경을 읽다보면 구약의 어떤 부분을 생각하게 됩니다. 결국 구약성경과 신약성경은 떼어 놓을 수 없고 어느 한 부분만 필요하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동시에 구약에 있었던 사건이 신약에서 반복되는 경우가 많은데 이를 이중 적용과 이중 성취라 할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사용하는 언어는 의사소통을 하는데 완벽하지 않음으로 잘못 이해하거나 잘못 전달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같은 말, 같은 단어인데도 전혀 다른 의미와 다른 뜻을 나타내는 것들이 아주 많습니다. 예를 들어 “다리”라고 했을 때 다른 설명이 없으면 책상다리를 말하는지, 걸어 다니는 다리를 말하는지, 건너다니는 다리를 말하는지 알지 못합니다.
지난 시간에는 달력의 한 주(週)간의 일요일을 주일이라고 하는 것이 맞느냐? 주일날 이라고 하는 것이 맞느냐? 또는 주(週)의 첫날이라 하는 것이 맞느냐? 살펴보았습니다. 많은 성도들이 한 주(週)간의 7일 중 주(週)의 첫날인 일요일을 주님을 의미하는 주일, 혹은 주일날, 또는 주(主)의 날이라고 하는데 그것이 옳으냐? 의견이 분분합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일요일을 주일이나 주일날이라고 해도 다 알아듣습니다. 그 날이 주말을 의미하든, 주의 첫날을 의미하든 일요일을 말하는 것으로 알아듣습니다. 다만 성도들이 한 주(週)의 첫날인 일요일 주께 경배하려고 모이는데 그날이 마치 구약의 안식일을 대체하는 날이나 주님의 명령을 지키는 주(主)의 날로 오해하고 있는 성도들이 많다는 것입니다. 심지어 일요일 예배를 빼먹으면(주일성수) 구원을 잃어버린다고 설교하는 목사도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에서 말씀하는 주(主)의 날(the day of the LORD)은 성도들이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그런 날이 아닙니다. 우리가 한 주간의 첫날 모여 주께 예배하지만 그날이 주(主)의 날이라 모이는 것이 아니고 주(週)의 첫날 주께서 부활하셨고, 주(週)의 첫날 주께서 제자들을 찾아오셨고, 주(週)의 첫날 성령께서 임하셨으므로 자연스럽게 그날을 기억하고 그날을 기념하며 그날 모여 주께 예배하게 된 것입니다. 법으로 제정한 날이 아닙니다.
성도들은 우리를 구원해주신 주님을 생각하며 주의 날(the day of the LORD)을 긍정적인 날로, 구원의 날, 경배의 날, 은혜의 날, 기쁨의 날, 감사의 날 정도로 알고 있습니다. 마치 주님의 아기탄생을 기뻐하며, 찬양하는 날이요, 주(週)의 첫날 부활하신 주님의 부활을 경배하며 동시에 우리의 부활을 소망하는 날이며, 주(週)의 첫날 죄 사함의 증표로 강림하신 성령님을 경축하는 것 같이 주의 날을 그런 의미의 기쁨의 날 정도로 알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지난 시간에도 살펴본 바와 같이 성경이 말씀하는 주의 날(the day of the LORD)은 진노의 날이요, 고난과 고통의 날이요, 슬픔의 날이요, 피폐함과 황폐함의 날이요, 어둡고 캄캄한 날이요, 구름과 짙은 어둠의 날이요, 경고소리를 내는 날이라고 말씀합니다. 그러기에 주일이라고 말하면서 주(主)의 날로 인식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잠시 성경이 말씀하시는 주의 날(the day of the LORD)의 이해를 돕기 위해서 비유를 들어 보겠습니다. 여러분들은 우리나라의 6·25전쟁이나 일본의 침략과 36년의 강점기를 잘 모르실 것입니다. 물론 저도 모두 잘 알지는 못합니다. 그러나 그 날들은 슬픔의 날이요, 고통의 날이요, 비참한 날들이라는 것은 잘 알고 있을 것입니다.
1, 2차 세계대전은 강한 나라가 약한 나라를 침략하여 국민들의 재산을 강탈하고 죽이고 백성들을 인간이하로 동물취급하며 노예로 착취했습니다. 전쟁에서 승리한 나라는 승전가를 부르며 환희와 자축으로 기뻐하겠지만 전쟁에서 패한 나라의 백성들은 패한 그 시간부터 나라와 자유와 재산과 인권은 찾아볼 수 없게 되고 죽지 못하여 모든 굴욕과 고통과 슬픔을 당해야 했습니다.
왜 이런 일들이 그들에게 임했습니까? 그들이 하나님을 버렸기 때문입니다. 동시에 일본의 침략과 식민통치와 6·25전쟁에서 살아남은 자들은 복음을 듣고 하나님께로 돌아와 하나님께 부르짖어 많은 사람들이 구원 받았습니다. 전쟁에서 포로로 잡혀가거나 죽은 사람들은 슬픔이지만 살아남아 구원 받은 자들에게는 축복이었습니다.
이스라엘의 역사를 보십시오. 자신들을 택하신 하나님을 버린 이스라엘은 하나님께서 그들의 이웃 나라들을 동원하셔서 그들을 침략하게 하고 패하게 하고 죽이고 포로로 잡혀가게 하고 착취하게 하여 슬픔과 고통 가운데 노예처럼 소망 없는 피폐한 삶을 살게 하셨습니다. 그 때 그들이 회개하고 하나님께로 돌아왔다면 얼마나 좋았겠습니까? 그러나 그들은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이제 이스라엘에 임한 주의 날이 어떠했는지 스가랴 14장에서 보겠습니다.
(슥 14:1-2) 『보라, {주}의 날(the day of the LORD)이 이르리니 사람들이 네게서 노략한 물건들을 네 한가운데서 나누리라. 2) 내가 모든 민족들을 모아 예루살렘을 대적하여 전쟁하게 하리니 그런즉 그 도시가 함락되며 집들이 강탈을 당하고 여인들이 강간을 당하며 그 도시의 반이 포로가 되려니와 백성의 남은 자들은 그 도시에서 끊어지지 아니하리라.』
어느 나라나 어느 민족이나 하나님을 대적하거나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는 자들에게 돌아올 것은 고난과 고통밖에 없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집트에서 노예생활을 한 것은 그들이 하나님을 버리고 우상을 섬기며 하나님을 찾지 않았기 때문에 고난과 고통을 통하여 하나님을 찾게 하시고 그들이 돌이킴으로 노예생활에서 건짐을 받게 하려하셨습니다.
우리도 구원의 여부를 떠나서 어떤 삶을 사느냐에 따라 주께서 우리를 대우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의 독생자를 보내셔서 우리의 죄 값을 치르게 하시고 십자가에 죽게 하셔서 우리를 구원 하셨는데 구원 받은 자들이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지 않을 때 어떤 형태로든지 벌주심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그 벌은 질병일수도 있고 전쟁일 수도 있고 천재지변일 수도 있습니다.
성경이 말씀하시는 {주}의 날(the day of the LORD)이 과연 신약성도들이 생각하는 은혜와 감사의 날인지 성경을 제대로 탐구하며 올바른 용어를 사용해야 할 줄로 알기에 강조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구원 받은 신약성도들은 {주}의 날(the day of the LORD)을 기다리지 않습니다. {주}의 날은 영원한 생명의 날이 아니라 심판과 멸망의 날이기 때문입니다.
하늘과 땅이 완전히 불타 소멸되기까지 하나님을 거역하는 자들에게 진노의 날은 반복될 것입니다. 사악한 자의 죽음까지도 기뻐하지 않으시는 하나님께서는 모든 사람들이 회개하고 구원 받기를 바라며 죄악에서 돌이키기를 원하시기 때문에 많은 대언자들을 보내셔서 경고하시고 돌아오라 하십니다.
(겔 18:23) 『[주] {하나님}이 말하노라. 사악한 자가 죽는 것을 내가 조금이라도 기뻐하겠느냐? 그가 자기 길들에서 돌이켜 사는 것을 기뻐하지 아니하겠느냐?』 하셨습니다.
이스라엘에게 임한 주(主)의 날과 온 세상에 임할 주(主)의 날이 어떠할지는 성경 여러 곳에 기록되어있고 우리가 성경기록을 통하여 알고 있는 바입니다. 마찬가지로 예루살렘에 임한 주(主)의 날 또한 성경을 통해 알고 있습니다.
우리나라가 일본에게 침략당하고 학살당하고 강탈당하고 여인들이 강간당한 역사를 통하여 주의 진노의 날이 어떤 날인지 알아야합니다. 우리는 일본의 침략의 후유증이 지금까지도 상처로 남아 고통가운데 괴로워하고 있습니다. 6·25전쟁 에서도 학살당한 자들과 포로로 끌려간 자들과 살아남은 자들이 있습니다. 그때 입은 고통과 상처가 지금까지도 남아 있습니다. 이와 같이 주의 진노의 날은 하늘과 땅이 불에 녹아 사라질 때까지 계속될 것입니다.
성경은 전쟁의 책(민 21:14)이라 했습니다. 역사는 전쟁의 기록입니다. 전쟁은 영적인 전쟁과 육신적인 전쟁이 있습니다. 영적인 전쟁은 인간창조 훨씬 전에도 있었겠지만 사람이 창조된 이후 전쟁은 에덴동산에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그 전쟁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빚어진 첫 사람과 사탄과의 전쟁이었습니다. 그 싸움은 마귀에게 속은 사람의 패배로 끝났습니다.
첫 사람 아담에게 주신 명령은 땅을 정복하고 모든 생물을 지배하고 다스리는 권한이 주어졌으나 사탄에게 속아 그 통치권이 그에게 넘겨지고 말았습니다. 주께서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셔서 구원자로 사역하려 할 때 마귀가 그분을 찾아와 그분을 시험하며 하는 소리를 들어보십시오.
(눅 4:5-6) 『또 마귀가 그분을 데리고 높은 산으로 올라가 순식간에 세상의 모든 왕국들을 그분께 보여 주며 6) 마귀가 그분께 이르되, 이 모든 권능과 그 왕국들의 영광을 내가 네게 주리라. 그것이 내게 넘겨졌으므로 누구든지 내가 원하는 자에게 그것을 주리라.』 했습니다. 첫 사람 아담이 마귀에게 속아 싸움에서 지고 세상 통치권이 그에게 넘겨졌으므로 그 후로 마귀가 세상을 지배하고 통치하는 권세를 잡은 자가 되었습니다.
우리도 구원 받기 전에는 마귀의 권세 아래 마귀의 영을 따라 살았습니다.
(엡 2:2) 『지나간 때에는 너희가 그것들 가운데서 이 세상의 행로를 따라 걸으며 공중의 권세 잡은 통치자 곧 지금 불순종의 자녀들 가운데서 활동하는 영을 따라 걸었느니라.』 이제 우리는 주님의 은혜로 주께로 돌아왔으니 주님의 뜻을 따라 살아야합니다. 이스라엘과 같이 살아서는 안 됩니다.
세상에 의인은 단 한 사람도 없지만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그분 안에서 의롭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불법을 행하거나 가증한 일들을 행하면 안 됩니다.
(겔 18:24)『그러나 의로운 자가 자기 의에서 돌이켜 불법을 행하고 사악한 자가 행하는 모든 가증한 일대로 행하면 그가 살겠느냐? 그가 행한 모든 의가 언급되지 아니하리니 그는 자기가 범한 범법과 자기가 지은 죄 가운데서 곧 그것들 가운데서 죽으리라.』하셨습니다.
마귀에게 속은 첫 사람으로 인하여 온 인류가 고통가운데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주님은 성경 여러 곳에 “속지 말라”고 반복 말씀하십니다. 구원받고 의롭게 된 저와 여러분들이 불의한 자와 같이 살아서는 안 됩니다.
(고전 6:9-10) 『불의한 자가 [하나님]의 왕국을 상속받지 못할 줄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속지 말라. 음행하는 자나 우상 숭배자나 간음하는 자나 여성화된 남자나 남자와 더불어 자신을 욕되게 하는 남자나 도둑질하는 자나 탐욕을 부리는 자나 술 취하는 자나 욕하는 자나 착취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왕국을 상속받지 못하리라.』 하셨습니다.
(고전 15:33) 『속지 말라. 악한 사귐은 선한 습성을 부패시키느니라.』
(갈 6:7) 『속지 말라. [하나님]은 조롱당하지 아니하시나니 사람이 무엇을 심든지 또한 그것을 거두리라.』
속이는 자나 속는 자는 한가지입니다.
복음을 헛된 것으로 여기고 믿지 않음으로 구원 받지 못하고 타락한 사람들은 하나님을 따르고 순종하기보다는 속이는 자 마귀를 따름으로 마귀에게 속한 자들은 하나님께서 세상을 심판하시는 날 마귀와 함께 그들을 심판하시며 불구덩이에 던져 버리시는 날이 곧 그들에게 {주}의 날(the day of the LORD)이 됩니다.
주께서 세상 모든 사람들을 구원하시려고 이 땅에 오셔서 모든 사람들의 죄를 지시고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그들의 죄 값을 치러주셨으나 복음을 듣고도 믿지 않는 자들은 자기들의 죄 값으로 사망하여 지옥으로 가고 그 지옥과 함께 영원히 꺼지지 않는 불 못에 던져져서 영원히 고통 받을 것입니다.
(계 19:20-21) 『짐승이 잡히고 또 그 앞에서 기적들을 행하던 거짓 대언자도 그와 함께 잡혔는데 그는 짐승의 표를 받은 자들과 그의 형상에게 경배하던 자들을 기적들로 속이던 자더라. 이 둘이 산 채로 유황으로 불타는 불 호수에 던져지고 21) 그 남은 자들은 말 타신 분의 칼 곧 그분의 입에서 나온 칼로 죽임을 당하니 모든 날짐승이 그들의 살로 배를 채우더라.』
믿지 않는 자들이 불 호수에 던져질 때, 그들은 불 침례를 받는 것입니다.
잠시 지난날 웃지 못 할 왜곡된 이야기 하나 하겠습니다. 왕년에 부흥강사들이 성령부흥회라는 집회를 하면서 성령을 받으라! 외칠 때 뜨거운 체험을 하는 것이 곧 성령과 불로 침례를 받는 것이라 하여 불로! 불로를 외치며 부흥회에 참석한 자들의 감정에 흥을 돋우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이는 개역성경이 “성령과 불로 침례를 주시고”라는 번역 때문입니다. 요한이 주는 회개의 물 침례와 달리 사람이 주님을 믿음으로 구원 받을 때 성령님을 받는데 곧 성령침례와 더 강력한 불 침례가 있는 것처럼 가르쳤던 것입니다. 그러나 성령침례는 주 예수님을 믿고 그분을 마음속에 받아들임으로 구원 받은 사람에게 성령님이 임하여 영적침례가 이루어지지만 불 침례는 믿지 않는 자들이 유황불 호수에 던져져서 잠기는 불 침례라는 사실을 알아야합니다.
다시 말해서 성령침례는 구원 받는 순간 성령님이 내 안에 오셔서 영적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육신의 오감으로는 감지할 수 없습니다. 성령침례는 부흥강사나 목사님의 안수로 받는 것이 아니며 오순절에 나타났던 것같이 눈에 보이는 불같이 임하는 것이 아닙니다.
(마 3:11) 『참으로 나는 회개에 이르도록 너희에게 물로 침례를 주거니와 내 뒤에 오시는 분은 나보다 능력이 더 있으시매 나는 그분의 신발을 나를 자격도 없노라. 그분께서는 너희에게 [성령님]으로 침례를 주시고 불로 침례를 주시리니』(개역 ; 성령과 불로) 마치 상령을 받을 때 더 강력하고 뜨겁게 성령을 받는 체험을 강조함으로 열심 있는 성도들에게 불 침례를 갈망하게 하는 짓을 저지른 것입니다.
우리가 복음을 듣고 주 예수 그리스도를 마음속에 받아들일 때 자연스럽게 성령께서 내 안에 들어오심이 곧 성령침례인데 부흥강사들은 성령침례를 육신의 오감으로 느끼는 뜨거운 체험이 있어야 한다고 강조하며 성경에도 없는 새로운 설과 교리를 만들어서 성도들을 혼란스럽게 하며 잘못된 교리를 따르게 했던 것입니다.
저도 신앙초기에 은혜를 사모하며 강력하고 뜨거운 체험을 경험하고 싶어서 기도원을 자주 찾았습니다. 그 때 부흥강사는 불같은 성령을 받아야 방언을 할 수 있다면서 불 침례를 받으라고 고래고래 소리 지르던 것이 생생합니다. 방언을 못하면, 개도 받는 방언을 받지 못한다고 윽박지르며 불같은 성령을 받으라고 머리를 짓누르는 안수를 받기도 했었습니다.
오늘날도 일부 은사주의 교회에서는 성도들에게 유능한 목사님이나 부흥강사들에 의해 성령을 받게 한다고 가르치고 있으며 믿음이 약해지면 성령을 다시 받아야 한다고 윽박지르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성도들은 성경을 매일 매일 많이 읽어야하고 바른 성경으로 바른 성경공부를 해야 합니다.
침례요한은 타락한 유대인들에게 회개의 물 침례는 줄 수 있으나 성령침례나 불 침례를 주시는 분은 요한의 뒤에 오시는 예수 그리스도뿐이라고 말합니다.
여러분들은 침례에 대해서 잘 알고 있겠지만 다음 세대들에게도 반복 교육이 필요함으로 다음 시간에 침례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정리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오늘의 주제는 주의 날, 진노의 날입니다. 이는 천년왕국이 임하기 전에 주께서 마귀와 그에게 속한 자들을 심판하시는 날입니다.
주께서 통치하시는 천년왕국이 임하기 전에 지상의 모든 죄악들을 심판하시고 청소하시는 장면이 요한 계시록의 7년 큰 환란이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의 날은 땅에 거하는 믿지 않는 자들에게 임하는 영원한 멸망과 사망의 불 침례를 받는 날입니다.
(계 20:14-15) 『사망과 지옥도 불 호수에 던져졌더라. 이것은 둘째 사망이니라. 15) 누구든지 생명책에 기록된 것으로 드러나지 않은 자는 불 호수에 던져졌더라.』 앞으로 있을 주(主)의 날은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 임하는 날입니다. 회개하지 않은 자들에게 임하는 날입니다. 구원받지 못한 자들에게 임하는 날입니다. 주(主)의 날은 구원 받은 사람들이 모두 하늘로 옮겨 진 뒤에 이 땅에 거하는 자들에게 임하는 날입니다.
다시 말씀드리지만 주의 날은 어떤 성도들의 생각과 같이 구원의 날도 즐거운 날도 기쁨의 날도 아닙니다. 그 날은 진노의 날이요, 고난과 고통의 날이요, 피폐함과 황폐함의 날이요, 어둡고 캄캄한 날이요, 구름과 짙은 어둠의 날이요, 나팔 소리와 경고 소리를 내는 날입니다.
주의 심판의 날은 주님을 믿는 자들과 믿지 않는 자들을 구분하는 날입니다.
(요 3:17-18) 『[하나님]께서 자신의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정죄하려 하심이 아니요, 그를 통해 세상을 구원하려 하심이라. 18) 그를 믿는 자는 정죄를 받지 아니하거니와 믿지 않는 자는 [하나님]의 독생자의 이름을 믿지 아니하였으므로 이미 정죄를 받았느니라.』
주의 날은 진노의 날이며 주의 진노는 믿지 않는 자들 위에 머물러 있습니다.
(요 3:35-36) 『[아버지]께서 [아들]을 사랑하사 모든 것을 그의 손에 맡기셨으니 36) [아들]을 믿는 자에게는 영존하는 생명이 있고 [아들]을 믿지 않는 자는 생명을 보지 못하며 도리어 [하나님]의 진노가 그 위에 머물러 있느니라.』
오늘 본문의 기록은 시기적으로 유다의 패망을 선포하는 때입니다.
잠깐 스바냐의 서문을 보겠습니다.
기록자가 누구입니까? 스바냐입니다. 기록 시기는 언제입니까? 주전 630년경입니다. 주께서 육신을 입고 세상에 오시기 630년 전입니다. 수신자, 즉 대언의 말씀을 들어야 할 자는 누구입니까? 남 왕국 유다의 백성들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버리고 타락한 유대인들에게 주의 날을 경고하며 그들에게 회개하고 하나님께로 돌아오라는 주님의 마지막 경고입니다. 동시에 세상 모든 민족들에게 임할 마지막 심판을 경고하는 말씀이기도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버린 유다백성들과 세상을 살아가는 믿지 않는 자들에게 심판의 날이 오기 전에 멸망을 피할 수 있는 길을 알려 주시기 위한 경고의 말씀으로 당시 유대인들에게와 오늘날 마지막 때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이중 적용이 되는 것입니다. 이미 멸망한 유대인들에게 미리 주셨던 말씀이 마지막을 살아가는 사람들에게도 경고가 되는 말씀이란 것입니다.
그런 면에서 볼 때 하나님께서 유다를 영원히 버리지 아니하시고 은혜를 베푸셔서 경고한 강도의 반절에도 미치지 못하는 벌을 내리시고 그들을 완전히 소멸시키지 아니하시고 주의 날에 심판하실 때까지 오래 참고 계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지금이 남은 유대인들은 물론 세상 모든 사람들에게 은혜 베푸시는 날이요, 구원의 날입니다.
(고후 6:1-2) 『그런즉 우리가 그분과 함께 일하는 일꾼으로서 너희에게도 간청하노니 너희는 [하나님]의 은혜를 헛되이 받지 말라. 2) (그분께서 이르시되, 받아 주는 때에 내가 네 말을 들었고 구원의 날에 내가 너를 구조하였노라, 하시나니, 보라, 지금이 받아 주시는 때요, 보라, 지금이 구원의 날이로다.)』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오래 참으시고 은혜 베푸시는 지금 우리는 복음을 전하고 말씀을 선포해야합니다. 때에 맞든지 맞지 아니하든지 긴급히 하라 명령하셨습니다. 그들에게 주의 날, 진노의 날이 오기 전에 복음을 전해야합니다. 구원 없는 자들은 지금 믿고 지금 구원 받아야합니다.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읽고 믿는 사람들은 구원의 날과 심판의 날과 주의 날을 구분해야합니다. 제가 강조하는 것은 주일이나 주일날이나 주의 날을 같이 쓰거나 혼돈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의 백성으로 택하신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버리고 마귀의 편에 서서 우상을 섬기고 마귀를 따름으로 그들을 심판할 주의 날이 얼마나 심각한 날인지 알려주시며 그들이 회개하도록 대언자들을 보내어 말씀하시며 끝까지 기다리시는 것입니다. 만약 스바냐의 대언대로 이스라엘을 심판하셨다면 지금 이스라엘 백성들은 남은 자들이 하나도 없을 것입니다. 그러면 본문을 보면서 그날이 얼마나 크고 두려운 날인지를 다시 살펴보며 우리는 어떤 삶을 살아야 할지를 배우도록 하겠습니다.
(습 1:14-16) 『{주}의 큰 날이 가까이 이르렀도다. 그것이 가깝고도 심히 빠르니 곧 {주}의 날의 소리로다. 용사가 거기서 비통하게 부르짖으리로다. 15) 그 날은 진노의 날이요, 고난과 고통의 날이요, 피폐함과 황폐함의 날이요, 어둡고 캄캄한 날이요, 구름과 짙은 어둠의 날이요, 16) 성벽을 두른 도시들과 높은 망대들을 향해 나팔 소리와 경고 소리를 내는 날이로다.』
주의 날을 ({주}의 큰 날)이라고 대언자는 말합니다. 주의 날은 심판의 날로 타락한 이스라엘을 벌주실 때마다 그들에게 임했습니다. 주께로 돌이키지 않는 자들에게 진노하시는 날입니다. 전쟁터에서는 용감했으나 {주}의 날엔 용사가 비통하게 부르짖는 날입니다. 백성들에게는 고난과 고통의 날이요, 피폐함과 황폐함의 날이요, 어둡고 캄캄한 날이요, 구름과 짙은 어둠의 날이 될 것입니다. 주의 날이 임하기전에 그들은 하나님께로 돌아와야 합니다. 주의 날이 임한 뒤에는 더 이상 소망이 없습니다.
(습 1:17-18) 『내가 사람들에게 고통을 가져와 그들이 눈먼 사람들처럼 걷게 하리니 이는 그들이 {주}에게 죄를 지었기 때문이라. 또 그들의 피는 티끌같이 쏟아지며 그들의 살은 거름같이 쏟아지리로다. 18) {주}의 진노의 날에는 그들의 은이나 그들의 금이 그들을 건지지 못하며 그 온 땅이 그의 질투의 불에 삼켜지리니 그가 그 땅에 거하는 모든 자를 매우 신속히 제거하리라.』
왜 그들에게 주의 날이 임합니까? 그들이 {주}에게 죄를 지었기 때문입니다.
본문에 의하면 주의 날을 {주}의 진노의 날과 {주}의 큰 날로 부르고 있는데 같은 날을 그렇게 부를 수도 있겠고 강도에 따라 구분 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회개하고 돌아오기를 바라시고 많은 대언자들을 보내셔서 경고하셨으나 그들은 끝내 돌아오지 않았으므로 말라기 대언자를 끝으로 그들과 하나님의 관계는 끊어진 상태입니다.
인류역사상 어떤 모습으로든지 세상이 존재하는 동안은 역사가 끊어지는 일은 없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과 하나님사이엔 현재 관계가 끊어진 상태입니다. 이스라엘의 하나님은 하나님을 떠난 그들이 질투하게 하시려고 이방인들을 부르시고 구원하셔서 새로운 한 민족을 이루셨습니다. 이스라엘 역사에는 없는 민족인데 곧 교회를 말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이 돌아오기를 원하셔서 침례요한을 보내시고 그가 선포하여 이르되, (마 3:1-2) 『그 무렵에 [침례자] 요한이 와서 유대의 광야에서 선포하여 2) 이르되, 너희는 회개하라. 하늘의 왕국이 가까이 왔느니라, 하였으니』 또한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도 그들이 하나님께로 돌아오기를 원하셔서 선포셨습니다.
(마 4:17) 『그때부터 예수님께서 선포하기 시작하여 이르시되, 회개하라. 하늘의 왕국이 가까이 왔느니라, 하시더라.』 그러나 그들은 목이 뻣뻣하고 교만하여 돌아오지 않았으므로 결국 주의 날 진노의 심판을 받고 나서야 남은 자들이 돌아올 것입니다.
우리는 두 차례에 걸쳐 주의 날을 살펴보았습니다. 생각 없이 말하는 주일이나 주일날은 주의 날이 아니라는 사실을 강조했습니다. 그것이 구원을 좌우하는 교리는 아니지만 단어를 제대로 구분해서 사용해야 한다는 것을 말씀드립니다. 또한 구약성경에서 대언하신 말씀이 당시 그들에게 적용된 것이 앞으로도 적용되므로 이중 적용 되는 대언들이 있다는 것을 말씀드렸습니다.
우리는 주께서 부르시는 그날까지 기록된 성경을 부지런히 읽고 공부하여 하나님의 뜻을 바로 알기에 힘써야 할 것입니다. 우리는 주님 앞에 단어 하나 행동 하나가 매우 중요함을 알고 주께서 원하시는 언어와 삶을 살도록 노력합시다. 하나님의 뜻을 다르게 적용하는 것도 주님을 노엽게 하는 행위임을 알아야합니다. 우리를 구원하신 주님을 찬양합시다.
2020-11-21 10:50: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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