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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원광 [ E-mail ]
  은혜로운 교회
  http://av1611.co.kr

제목: 은혜로운 교회
■ 본문: (고후 9:8) “[하나님]께서 능히 모든 은혜를 너희에게 넘치게 하시나니 이것은 너희가 항상 모든 일에서 모든 것이 넉넉하여 모든 선한 일을 풍성히 하게 하려 하심이라.”
우리는 은혜로 구원을 받습니다. 그럼에도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을 믿는 믿음으로 살지 못하기 때문에 하나님의 은혜를 누리는 삶에는 실패를 합니다. 이것은 우리가 어려운 일을 당하면 육신의 방식대로 이 세상의 방식대로 해결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어떤 일이 진행할 때, 생각하는 대로 진행이 안 되면, 정직하게 의롭게 선하게 하나님의 은혜로 하나님의 방식대로 살려는 것이 아니라, 속이고 악하고 부정하게 세상 방식대로 해결하려고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를 누리는 삶에서 실패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가장 부유한 분이시고 모든 것의 주인이십니다. 그럼에도 주님은 하늘의 영광을 내려놓으시고 어린양으로 구유에 누이시고 십자가에 달려 죽기까지 겸손하셨습니다. 이것이 그리스도의 은혜입니다. 하나님이 베푸시는 은혜는 다른 사람의 영적 유익을 위해 자신의 물리적인 손해를 입는 것이 포함됩니다. 이 은혜는 내가 주님으로 받아들인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우리에게도 같은 은혜가 이미 주셨습니다.
이 세상에는 복음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 수없이 많이 있습니다. 고린도교회는 복음을 전하기 위해 성도들이 하나님의 은혜를 모았습니다. 그리고 그 은혜로 선교사역을 잘 감당하게 되기를 바랐습니다. 그들은 헌금을 억지로 하지 않았고 자원해서 넘치게 했습니다. 이 일의 성패는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에 달려있었습니다.
이와 같이 우리 그리스도인은 이 세상에서 잘 먹고 잘 살기 위해서 사는 것이 아닙니다. 만약 예수님이 우리를 위해서 자신의 부요함을 희생하지 않으셨다면, 부유한 분이 가난하게 되지 않으셨다면 우리는 구원받을 수 없었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의 복음을 믿음을 통해 은혜로 말미암아 구원 받았습니다. 그리고 은혜로우신 주님을 내 안에 받아들였습니다. 그렇게 그분은 나의 머리이시고 우리는 그분의 지체입니다. 머리가 생각하고 판단하는 대로 몸이 움직이는 것은 지극히 정상입니다. 주님은 자신이 우리에게 준 그 은혜가 우리를 통해 퍼져나가기를 원하십니다. 우리가 강제로 헌금을 드리지 않는 것처럼 이 은혜 또한 명령이 아닙니다. 자원해서 하는 것입니다. 주님은 율법의 명령과 같이 억지로 다른 사람의 영적 유익을 위해 주라고 하지 않습니다. 진정으로 주님의 은혜를 아는 사람은 마지 못해 하지 않고 자원해서 섬기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은혜로 주신 것이 넉넉하다고 말씀하십니다(고후 9:8). 넉넉하다는 것은 그 은혜를 받은 나 자신이 누리고도 남는다는 의미입니다. 그러므로 주님의 은혜를 받은 우리가 모든 일에서 모든 선한 일을 풍성히 하길 원하신다는 것입니다. 명령은 싫어도 해야만 하는 것이지만, 은혜는 명령이 아니기 때문에 해도 되고 안 해도 된다는 것입니다. 이 은혜를 하지 않는다고 해서 자녀인 우리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이 식지 않습니다. 다만 이 은혜를 우리에게 맡기신 것은 우리에게 유익이 따르기 때문에 주신 것입니다.
여러분도 다 아시는 바와 같이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은혜로운 분입니다.
(시 84:11~12) “11) {주} [하나님]은 해와 방패가 되시나이다. {주}께서 은혜와 영광을 주시며 곧바르게 걷는 자들에게 좋은 것을 아끼지 아니하시리이다. 12) 오 만군의 {주}여, 주를 신뢰하는 자는 복이 있나이다.”
(약 1:17) “모든 좋은 선물과 모든 완전한 선물은 위에서 오며 빛들의 [아버지]로부터 내려오거니와 그분께는 변함도 없고 회전하는 그림자도 없느니라.”
은혜는 어떤 일에 대한 보상으로 주어지는 개념이 아닙니다. 열심히 일한 대가는 보상이지 은혜가 아닙니다. 그래서 성경은 법이니까 지켜야만 해서 지키는 율법과 값없이 거져주시는 은혜를 구분해서 설명하고 있습니다. 율법은 마치 가족이니까 돌봐야 해서 돌보는 관계와 비슷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은혜는 그리스도로 인해 하나님을 사랑해서 그분이 맺어주신 관계니까 사랑으로 돌보는 것입니다. 둘 다 돌보는 모양은 비슷하지만, 돌보는 내적 동기와 마음의 문제가 다릅니다. 그래서 은혜를 받은 자들은 율법 아래 있지 않게 되는 것입니다.
(롬 6:14) “너희가 율법 아래 있지 아니하고 은혜 아래 있으므로 죄가 너희를 지배하지 못하리라.”
그러니까 신약성도가 구약의 율법 아래에서 명령으로 지켜야 한다고 가르치는 것은 율법과 비교할 수 없이 더 좋은 은혜를 모르고 가르치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하나님이 주신 율법이 나쁜 것은 아닙니다. 율법은 선과 악을 구분할 수 있는 좋은 것으로 사람이 그것을 적법하게 쓰면 선한 것이지만, 법을 지키는 형식만으로는 하나님을 기쁘게 하지 못합니다. 우리가 법을 지키는 것은 잘하는 일이지만, 사람이 법을 지킨다고 해서 완전히 착한 사람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은혜는 율법의 가치 이상으로 착한 사람이 되게 합니다. 은혜를 받은 사람이 자신이 은혜받았음을 진정으로 깨닫게 되면, 은혜를 주신 분에 대해 사랑과 감사를 표현하게 되고, 그분의 말씀(명령)을 올바른 마음으로 지키고 순종하게 됩니다. 구약의 율법과 같이 지켜야만 하는 당위성 때문에 지키는 것이 아니라, 은혜는 누군가를 사랑해서 누군가가 좋아서 그분의 말을 지키고자 하는 마음이 따라갑니다. 이렇게 은혜와 율법은 하늘과 땅의 차이가 납니다.
은혜란? 받을 만한 자격이 없는 이에게 좋은 무엇을 주는 것을 말합니다. 그 은혜로운 하나님께서 거듭난 우리 안에 성전 삼고 와 계십니다(고전 3:16,17). 주님이 우리 안에서 우리를 통치하시며(하나님의 왕국), 우리가 받은 주님의 은혜를 다른 누군가에게도 나누어 주시는 은혜의 통로가 되게 하고 있습니다(고후 8,9장). 그런 주님의 넉넉한 은혜가 쌓아두지 않고 옆으로 잘 전달되는 성도들이 모여있는 교회가 좋은 교회입니다. 저는 우리 교회가 좋은 교회, 즉 하나님으로부터 사람들로부터 ‘은혜로운 교회’로 불려지길 원합니다.
성경이 말씀하시는 그 하나님은 자신의 은혜로(천천히 곱씹으며)
우리에게 죄들의 용서를(엡 1:7), 은혜로 구원을(엡 2:5~9), 그 은혜는 구원의 은혜에 감사로 영광을 찬양하고(시 33:1, 벧전 2:9), 은혜는 사람을 섬길 수 있는 권능을 갖게 하고(고전 15:10, 벧전 4:10~11), 은혜는 단순한 생활을 영위하게 하고(고후 1:12), 은혜는 헛된 것에 빠져 일하는 것에서 가치 있는 일을 할 수 있게 하고(갈 2:21), 그분의 은혜는 무익한 것에서 유익을 제공하게 하고(히 2:9), 은혜는 약한 가운데 있는 자를 완전해지게 하고(고후 12:9), 은혜는 믿음과 사랑을 넘치도록 풍요롭게 하게 하고(딤전 1:14), 은혜는 권능 안에서 강한 자가 되게 하고(딤후 2:1), 은혜는 경건한(godly) 것을 가르쳐 하나님의 성품에 걸맞게 살게 하고(딛 2:11), 은혜는 그리스도의 재림에 대한 소망을 가져다주고(살후 2:16), 은혜는 영원한 생명을 소망하는 상속자가 되게 합니다(딛 3:7).
우리는 성경이 말씀하시는 하나님이 베푸신 은혜와 우리가 받은 은혜에 대해 듣고 있습니다.
주님의 은혜는 우리가 죄에게 지배당하지 못하게 하고(롬 6:14), 은혜는 하나님의 선택을 받게 하고(롬 11:5), 은혜는 주님의 부르심의 근원이고(갈 1:15), 은혜는 우리의 믿는 마음을 견고하게 하고(히 13:9), 은혜는 재림 때까지 마음의 허리를 동이고 정신을 차리게 하고(벧전 1:13), 은혜는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는 모든 일, 곧 믿음과 말과 지식과 모든 열심과 우리를 사랑하는 일에 풍성하게 하고(고후 8:7), 은혜는 소금으로 간 맞추는 듯한 지혜로운 말을 하게 하고(골 4:6), 은혜는 그리스도의 영과 함께 하게 하고(갈 6:18), 은혜는 영존하는 안위와 좋은 소망을 있게 하고(살후 2:16), 은혜는 주님의 눈에 호감, 호의, 은총을 입게 하고(창 6:8), 은혜는 주님의 길을 보여 알게 하고(출 33:13), 등등.
여러분은 이러한 주님의 은혜를 받았고, 받고 있습니까?
은혜를 받은 사람은 삶에 변화가 있습니다.
(고전 15:10) “[하나님]의 은혜로 내가 지금의 내가 되었으니 내게 베푸신 그분의 은혜가 헛되지 아니하여 내가 그들 모두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나 내가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다.”
그러면 어떤 변화가 있을까요?
(벧전 4:10~11) “10) 각 사람이 선물을 받은 대로 [하나님]의 여러 가지 은혜를 맡은 선한 청지기로서 서로 그 선물을 써서 섬기라. 11) 누구든지 말하려거든 [하나님]의 말씀들을 말하는 것 같이 하고 누구든지 섬기려거든 [하나님]께서 주시는 능력으로 하는 것 같이 그 일을 하라. 이것은 모든 일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게 하려 함이니 그분께 찬양과 통치가 영원무궁토록 있기를 원하노라. 아멘.”
10절에 은혜로 선물을 받은 사람은 어떻게 살아간다고요? 네에, 그 선물을 써서 주님을 섬기고 주님의 영광을 위해 사람들에게 사용하며 살아간다는 것입니다.
여러분도 이미 주님의 은혜를 받아서 주님과 형제/자매를 섬기는 생활을 하고 있지만, 한 번 더 확인하시는 시간이 되시길 바랍니다.
1) 주님의 은혜를 입은 사람은 죄를 짓지 않습니다.
(롬 6:1~2) “1) 그런즉 우리가 무슨 말을 하리요? 은혜가 넘치게 하려고 우리가 죄 가운데 거하겠느냐? 2) 결코 그럴 수 없느니라. 죄에 대하여 죽은 우리가 어찌 그 가운데서 더 살리요?”
복음은 죄에 대해서 죽음이 전제되는 말씀입니다. 우리는 그 복음의 말씀을 믿고 구원 받았습니다. 우리가 복음을 헛되이 믿은 것이 아니라면 죄에 대해서 반응하는 자신을 괴로워하고 주님의 도우심을 구해야 합니다. 우리의 일상에 짓게 되는 죄의 경각심에 대해서는 11월 셋째주 설교를 다시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2) 은혜를 입은 사람은 주님이 자신에게 맡기신 일을 합니다.
(엡 3:7) “내게 주신 [하나님]의 은혜의 선물에 따라 그분의 권능이 효력 있게 활동함을 힘입어 내가 이 복음의 사역자가 되었노라.”
복음의 사역자는 목사님만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모든 성도는 복음으로 구원받았습니다. 그 복음이 우리가 일할 수 있는 원동력으로 제공되고, 우리 안에 주인으로 받아들인 그리스도가 나를 통해서 일하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너무 육신적이어서 좋은 일이라도 하기 싫은 생각이 듭니다. 특히 성령님이 일하시는 좋은 일에는 더욱이 그렇습니다. 그럴 때 우리는 성령님께 붙들려 나 자신의 생각을 버리고 영적인 올바른 생각을 내 생각으로 꽉 붙잡을 필요가 있습니다. 예를 들어, 자신은 하기 싫은 어떤 일인데, “부모를 공경하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기억하게 하시는 성령님께 붙들려 내 생각을 버리고 부모를 공경하는 좋은 마음으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할 때 주님의 사역자로 일하게 되는 것입니다. 사역이 특별한 게 아닙니다. 이런 믿음의 생활은 하나님께 기쁨을 드림은 물론이고 주님으로부터 복을 받게 됩니다.
이렇게 은혜 입은 사람은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는 하나님의 일을 합니다.
3) 은혜는 주님을 찬양하게 합니다.
(골 3:16) “그리스도의 말씀이 너희 속에 모든 지혜로 풍부히 거하게 하여 시와 찬송가와 영적 노래로 서로 가르치고 훈계하며 너희 마음속에서 은혜로 [주]께 노래하고”
우리의 삶은 매일 평탄하지만은 않습니다. 기쁠 때도 있고, 슬플 때도 있고, 아무 일이 없을 때도 있고, 불편한 여러 일이 얽힐 때도 있습니다. 하지만 나에게 발생하는 어떤 일에도 주님이 허락하신 좋은 의도가 있고, 우리가 아직 육신적이어서 그분의 의도를 다 이해할 수는 없어도 좋으신 하나님을 믿는 믿음으로 항상 기쁨으로 찬양할 수 있습니다.
기쁠 때는 밝고 상쾌한 리듬의 찬양으로 주님의 은혜를 기쁨으로 누리고, 슬프고 힘들고 외로울 때는 위로와 격려와 힘주시는 찬양으로 주님의 은혜를 누릴 수 있습니다. 우리는 그렇게 모든 일에서 주님의 은혜를 입은 자로서 주님을 찬양하는 삶을 살 수 있습니다.
4) 은혜는 마음을 굳게 정착하게 합니다.
(히 13:9) “여러 가지 이상한 교리에 끌려 다니지 말라. 은혜로 마음을 굳게 함이 선한 일이요, 음식으로 할 것이 아니니 음식에 전념하는 자들에게 음식이 유익을 끼치지 못하였느니라.”
성경에는 여러 가지 주제에 관한 하나님의 교리가 있습니다. 이상한 교리를 들을 때에도 은혜가 우리의 마음을 바른 믿음에 서도록 굳게 합니다. 신앙은 마음의 문제입니다.
길을 걷다 보면 성경을 피면서 이상한 교리를 전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성경을 펴서 보여준다고 해서 모두 진리는 아닙니다. 우리가 은혜로 살아가고 있다면, 그리스도에 관한 잘못된 교리에 흔들리지 않을 것입니다.
(요 1:14)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분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하신 분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성경에 나타난 교리들은 모두 진리이신 그리스도를 드높이고 그분의 영광에게 초점이 맞춰져 있습니다. 구약에 나타난 절기들도 모두 예수 그리스도를 나타내기 위한 그림자이지, 신약성도가 구약의 절기들을 지킴으로 하나님이 영광을 받게 되는 것은 아닙니다. 신약성도가 구약의 절기를 지켜야 한다는 이상한 교리에 흔들리지 않기 위해서는 그리스도의 은혜를 매 순간 인식하며 살아가야 합니다.
5) 은혜가 있는 사람은 착한 일을 넘치게 합니다.
(고후 8:1~2) “1) 또한 형제들아, 마케도니아의 교회들에 베푸신 [하나님]의 은혜를 우리가 너희에게 알리노니 2) 고난의 큰 시련 속에서도 그들의 넘치는 기쁨과 극심한 가난이 그들로 하여금 풍성하고 너그러운 선물을 넘치도록 하게 하였도다.”
1절에 “마케도니아의 교회들에 베푸신 하나님의 은혜”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일반적인 은혜는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것을 말하는데요, 이 문맥에서는 성도들이 하나님에게 믿음으로 드린 헌금을 하나님의 은혜를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마케도니아 성도들이 걷은 헌금을 하나님의 이름으로 다른 지역에 전달했기 때문에 받은 사람들에게는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받는 것도 은혜, 은혜로 받은 것을 다시 모아서 다른 누군가에게 나누어 주는 것도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2절 “고난의 큰 시련 속에서도” 하나님의 은혜는 부유하고 가난하고, 평화롭고 고난 가운데 있고, 기쁘고 슬프고의 문제가 아닙니다.
“그들의 넘치는 기쁨과” 기쁨은 은혜를 받은 사람들의 특징이죠.
“극심한 가난이 그들로 하여금 풍성하고” 그냥 가난이 아니라, 극심한 가난 속에 있는데도 주님의 은혜를 나눌 수 있습니다. 우리 속담에 ‘콩 한 쪽도 나눠 먹는다.’는 말이 있죠. 하나님은 공평하시다는 믿음, 일반적으로 물질적인 부유함과 영적인 가난함의 원리로 균등하다는 것입니다(고후 8:14). 우리 교회가 물질적으로는 가난할 수 있지만, 만약 영적으로까지 가난하다면 가장 안 좋은 상태가 되는거죠. 그러나 교회는 물질적인 면은 주님이 주시는 대로 만족하는 것이고, 영적인 부유함은 필수 조건입니다.
“너그러운 선물을 넘치도록 하게 하였도다.” 너그러운 선물은 문맥상으로 타지역에 보낸 선교헌금이었습니다. 이 말씀을 영적으로 적용하자면, 우리와 함께 주님을 섬기는 교회 내에 형제/자매가 어려울 때, 또는 다른 지역교회가 어려울 때, 우리가 믿음으로 해야 하는 하나님의 일은 너그러운 선물을 넘치도록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아는 누군가가 어려움에 처해진 것을 알게 될 때, 그냥 흘려버리는 것이 아니라, 기도하고 나에게 넉넉하게 주신 은혜를 주님의 이름으로 나누어 주라는 말씀입니다.
이와 같은 주님의 은혜는 선한 일을 풍성히 할 수 있게 합니다.
(고후 9:8) “[하나님]께서 능히 모든 은혜를 너희에게 넘치게 하시나니 이것은 너희가 항상 모든 일에서 모든 것이 넉넉하여 모든 선한 일을 풍성히 하게 하려 하심이라.”
이런 면에서도 우리 교회가 믿음으로 하나님이 우리 교회를 “은혜로운 교회”라고 부르시길 원합니다. 또한 다른 사람들이 우리 교회를 예기할 때도 “은혜로운 교회”라 불리길 원합니다.
6) 은혜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오는 것입니다.
(요 1:17) “이는 율법은 모세를 통해 주셨으되 은혜와 진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왔기 때문이라.”
‘세상에는 공짜가 없다.’는 말이 있습니다. 절반은 맞고 절반은 틀린 예기입니다. 어떤 일의 근원이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시작된 것이라면 공짜이지만, 사람에게서 난 일이라면 이면에는 댓가가 따르기 때문에 은혜가 아닙니다.
(고전 1:4)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너희에게 주신 [하나님]의 은혜로 인해 내가 너희를 대신하여 항상 나의 [하나님]께 감사하노라.”
하나님의 은혜는 무엇을 해서 얻게 되는 보상의 개념이 아닙니다. 우리가 어떤 일을 주님의 은혜로 된 것이라고 말한다면, 그것이 더 이상 우리 자신의 행위(work)에서 난 것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만약 우리의 행위가 1%라도 포함되었다면, 그것은 더 이상 은혜가 아닙니다(롬 11:6).
어떤 사람이 하는 일의 근원이, 또는 동기가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받은 은혜에서 시작된 것이라면 은혜가 될 수 있지만, 어떤 사람의 일에서 자기 의를 나타내고자 하는 목적이 숨겨져 있다면 입으로는 은혜라고 말할지 모르겠지만, 그 일은 악한 일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로부터 구원이라는 은혜를 값없이 받았습니다. 또한 우리는 그리스도로부터 칭의라는 은혜를 값없이 받았습니다. 우리에게 은혜를 주신 그분은 은혜를 받은 우리가 주님의 은혜를 전하는 통로의 도구로 일하길 원합니다. 그러면서 그 일을 통해 은혜로운 예수 그리스도가 높여지기를 원하십니다. 우리는 은혜의 일을 넘치게 함으로써 은혜로운 주님의 교회가 되어야 하고 될 수 있습니다.
7) 은혜는 받을 만한 자격이 안 되는 사람들에게 크게 받아들여집니다.
(딤전 1:14~15) “14) 우리 [주]의 은혜가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 있는 믿음과 사랑과 함께 넘치도록 풍성하였도다. 15) 이것은 신실한 말이요 온전히 받아들이기에 합당한 말이니 곧 그리스도 예수님께서 죄인들을 구원하시려고 세상에 오셨다는 말이로다.”
은혜라는 말의 의미에서 같이 어쩌면 모든 사람들이 죄인이기 때문에 주님의 은혜의 대상이 되는 것입니다.
빚 탕감 문제를 은혜의 관점에서 보겠습니다.
(눅 7:41~43) “41) 그분께서 이르시되, 빚을 준 어떤 사람에게 빚진 사람 둘이 있어 하나는 오백 데나리온을 빚지고 다른 하나는 오십 데나리온을 빚졌는데 42) 그들이 전혀 갚을 것이 없으므로 빚을 준 사람이 두 사람 다 너그러이 용서해 주었나니 그런즉 내게 말해 보아라. 그들 중에 누가 그를 더 사랑하겠느냐? 하시거늘 43) 시몬이 대답하여 이르되, 내 생각에는 그가 많이 용서해 준 사람이니이다, 하니 그분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네가 옳게 판단하였도다, 하시고”
같은 은혜라도 많은 빚을 탕감받은 사람이 더 큰 은혜로 여길 것입니다. 더 큰 은혜를 받은 사람은 그만큼 더 큰 사랑을 하게 될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더 큰 은혜를 받고자 더 큰 죄를 지어서는 안 되는 것도 잘 아시죠.
거듭난 우리는 죄의 빚을 대속 받은 사람들입니다. 이 은혜를 받은 우리는 다른 사람의 죄를 정죄해서는 안되겠죠. 그게 은혜를 입은 사람이 주님 앞에 살아가는 길입니다.
8) 주님의 은혜를 개인적인 용도로만 사용해서는 안 됩니다.
(벧전 4:10) “각 사람이 선물을 받은 대로 [하나님]의 여러 가지 은혜를 맡은 선한 청지기로서 서로 그 선물을 써서 섬기라.”
은혜는 나를 위해서만 사용하라고 주신 선물이 아닙니다. 주님의 이름을 높이는데, 그리고 다른 사람을 세우는데 사용하라고 주신 것입니다.
말씀을 전하는 은사(gift, 선물)를 받은 분도 계시고, 음악성을 은사로 받은 분도 계시고, 친절함을 받은 분도 계시고, 사랑을 받은 분도 계시고, 건강한 육체를 받은 분도 계시고, 많은 재산을 선물로 받은 분도 계실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이런 은사를 각 사람에게 나누어 주신 이유는 자신을 높이고 자랑하라고 주신 것이 아니라, 각자가 받은 은사를 사용해서 다른 사람을 세우고 섬기라고 주신 것입니다.
이러한 은혜(선물)는 겸손한 사람들에게 주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벧전 5:5) “너희 젊은 사람들아, 이와 같이 장로에게 복종하고 참으로 너희가 다 서로에게 복종하며 겸손으로 옷 입으라. [하나님]께서 교만한 자는 물리치시고 겸손한 자에게는 은혜를 주시느니라.”
나보다 남을 더 낫게 여기는 겸손함과 서로 섬기라는 말씀은 잘 어울리는 말씀입니다.
주님의 은사를 받은 성도가 모여있는 지역교회는 그렇다는 것입니다. 우리 교회도 그렇게 하고 있는거죠!
9) 은혜는 교회가 일을 할 때, 강력한 힘의 근원이 됩니다.
(딤후 2:1) “그러므로 내 아들아, 너는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 있는 은혜 안에서 강건한 자가 되고”
거의 일 년이 되어가는데 아직도 코로나19가 한창입니다. 코로나와 같이 외부에서 들어오는 바이러스는 우리 몸 안에 바이러스를 물리칠 수 있는 힘센 면역력이 있을 때는 바이러스가 들어오더라도 이겨낼 수 있는 것처럼, 은혜도 영적인 면역력과 같이 외부의 어려움을 이겨낼 영적인 힘이 됩니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세상 삶에서 고난과 시련이 있을 때, 내적으로 주님의 은혜가 쌓여 있으면, 외적인 상황이 많이 어렵고 힘들어도 내적으로 이길 수 있는 강건함을 갖을 수 있게 됩니다.
우리는 좋을 때도 기도하고, 고난에 처할 때도 기도를 합니다. 그런데 기도의 응답도 주님의 은혜에 의해 주어집니다.
(사 30:19) “백성이 예루살렘에서 시온 안에 거하리니 네가 다시는 울지 아니하리라. 네가 부르짖는 소리에 그분께서 네게 크게 은혜를 베푸시며 그 소리를 들으실 때에 네게 응답하시리라.”
사람의 인생에 고난이 오는 것은 당연한 것이므로(욥 5:7) 앞으로 우리에게 어떤 곤경이 오더라도 주님의 은혜로 살아가야 하고, 고난 중에서도 주님의 은혜와 믿음을 잃지 않을 때 시련을 강건하게 이겨낼 수 있습니다.
그런데 고난이 길어질 때도 필요한 게 인내인데요. 이것도 은혜에서 옵니다.
(벧전 1:13) “그러므로 너희 마음의 허리를 동이고 정신을 차려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때에 너희에게 가져오실 그 은혜로 인해 끝까지 소망을 가질지어다.”
사람의 인생에는 트러블이 계속 있지만, 그 가운데에서 은혜로 산다는 말은 참된 말입니다.
10) 은혜는 사탄의 유혹과 시험에서도 승리하게 합니다.
(롬 16:20) “평강의 [하나님]께서 곧 사탄을 너희 발밑에서 상하게 하시리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너희와 함께 있기를 원하노라. 아멘.”
이 세상의 신은 마귀입니다(고후 4:4).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마음에서) 믿지 않으려고 할 때, 마귀는 우리의 마음을 가려 그리스도의 복음이 비추지 못하게 합니다. 마음이 올바르지 않으면 마귀에게 속게 되고, 결국 마귀와의 싸움에서 지게 되는 것입니다.
마귀에게 이기려면, 올바른 하나님의 말씀을 선택해야 하고, 바른 말씀의 씨앗을 나의 좋은 마음 밭에 뿌리고 믿을 때 우리가 믿음으로 승리할 수 있습니다. 그래야 믿음이라는 성령의 열매가 맺히게 됩니다.
우리 교회는 올바른 하나님의 말씀인 (영어)킹제임스 성경을 선택했고, 그 말씀을 통해 우리의 마음 밭에 남아있는 자갈과 같은 거친 것들이 걸러내고 있고, 이제 우리 스스로가 자신의 마음을 살펴서 좋은 밭으로 만들어 매일 읽는 성경을 통해 하나님의 말씀의 씨앗을 심어야 합니다.
그렇게 우리의 이성과 감성을 모두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함으로 믿을 때, 마귀를 대적하고 이길 수 있는 믿음을 갖게 될 것입니다. 이 믿음의 승리도 내 안에 계신 주님의 은혜로 주어집니다.
마무리 하겠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헛되이 받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고후 6:1) “그런즉 우리가 그분과 함께 일하는 일꾼으로서 너희에게도 간청하노니 너희는 [하나님]의 은혜를 헛되이 받지 말라.”
하나님의 은혜는 사람이 살아가는데 선택사항이 아니라 필수 조건입니다.
의인은 믿음으로 산다고 말씀하셨습니다(롬 1:17, 갈 3:11, 히 10:38). 그런데 믿음은 하나님의 은혜로 받은 선물입니다(롬 4:16, 롬 5:2, 롬 12:6 등).
다시 말하면, 의인은 은혜로 산다는 의미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주님의 은혜로 의인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주님의 은혜는 우리가 믿음 안에 든든히 서게 합니다.
(벧전 5:12) “너희를 위한 신실한 형제라고 내가 생각하는 실루아노 편에 내가 간단히 써서 권면하고 이것이 [하나님]의 참된 은혜임을 증언하였거니와 이 은혜 안에 너희가 서 있느니라.”
서 있게 될 뿐만 아니라,
은혜가 있어야 우리 안에 성령의 열매를 맺게 될 수 있습니다.
(골 1:6) “이 복음이 온 세상에 있는 것 같이 너희에게 이르렀으며 너희가 그것을 듣고 진리 안에서 [하나님]의 은혜를 안 그 날부터 너희 안에서도 열매를 맺는 것 같이 열매를 맺는도다.”
열매는 다른 누군가의 이득을 위해 맺힙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은혜도 나를 위해 주셨지만, 나만을 위해 주신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 하나님의 은혜로 사는 인생은 주님을 섬기고 주님의 몸된 성도들을 섬깁니다. 이래야 하나님의 은혜를 받은 사람이 제대로 사는 인생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런 삶을 사는 것이 하나님의 은혜를 헛되이 여기지 않는 인생이요.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인생이고. 하나님의 자녀다운 인생입니다. 결코 손해가 아니며 헛되지 않은 인생입니다.
이렇게 사는 사람은 다 하나님의 은혜에 참여하는 것입니다.
(빌 1:7) “내가 너희 모두에 대해 이같이 생각하는 것이 합당하니 이는 너희가 내 마음속에 있기 때문이라. 나의 결박당한 일과 복음을 변호하고 확증하는 일에서 너희는 다 나의 은혜에 참여한 자들이니라.”
하나님께서 우리 인천말씀침례교회를 부르실 때 “은혜로운 교회”가 되길 바랍니다. 또한 사람들이 보기에도 “은혜로운 교회”로 불려지길 원합니다. 이것은 우리 각자가 겸손한 가운데 은혜로운 주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고 순종하는 결과로 얻을 수 있습니다. 끝.
2020-11-29 12:4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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