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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일조는 율법인가?

말씀 : 히브리서 7:1-10. 2021년 1월 3일 일요일 오전 11시

신약시대에 십일조는 율법인가? 대답은 NO,아닙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십일조가 율법이지만 이방인들에게는 율법이 아닙니다. 성경엔 율법이 오기 훨씬 전에 아브라함이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제사장으로 오신 살렘 왕 멜기세덱에게 드린 십분의 일이 언급됩니다.
십일조라는 말은 모든 소득의 십분의 일을 말합니다.
오늘날 모든 교회에서 가장 예민하고 중요하게 여기는 헌금이 바로 십일조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그것으로 교회의 재정이 운영되기 때문입니다. 율법에서의 십일조는 이스라엘의 열두지파 중 레위지파를 뺀 열한지파가 십일조를 하여 레위지파를 먹여 살렸으므로 열한 지파가 십일조를 하느냐 마느냐는 한 지파가 사느냐 죽느냐와 같은 것입니다. 그리고 레위 지파가 받은 십일조에서 다시 십일조를 제사장들에게 주어 그들이 살았습니다. 그러다보니 현대 교회에서도 십일조에 관한 이야기가 많고 그 용도 면에서도 말들이 많습니다.
어느 목사님은 십일조로 레위지파와 제사장들이 살았으므로 오늘날의 십일조는 제사장격인? 목사님의 월급이라고 한답니다. 또 어떤 교회에서는 십일조는 율법이므로 신약성도들은 십일조를 하지 않아도 된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답니다. 일반적으로 성인이 되어 복음을 듣고 거듭나면 제일 먼저 시험에 드는 것이 바로 헌금이며 그것도 십일조입니다. 초신자가 십일조를 하기까지는 3년 정도 걸린다고 합니다. 그만큼 믿음이 성장해야 한다는 말입니다.
처음 제가 제도권 교회에서 독립침례교회로 옮겨와서 목회자들 가운데 십일조라는 말을 쓰면 마치 율법주의자 취급을 하는 이상한 기류를 보고 저야말로 상당히 이질감을 느꼈던 것이 사실입니다. 제가 알기로는 십일조라는 단어는 율법 이후에 등장하는 것이 맞습니다. 그러나 십분의 일이라는 단어는 율법이 오기 400년 전에 아브라함으로부터 시작되었다는 사실을 알아야합니다.
율법은 모세를 통해 주셨습니다. (요 1:17) 『이는 율법은 모세를 통해 주셨으되 은혜와 진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왔기 때문이라.』 우리는 모세를 통해, 혹은 모세가 율법에 기록한 것을 지키며 사는 성도들이 아닙니다. 율법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주신 표적입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를 통해 온 은혜와 진리 안에 삽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께서 택하신 유일한 백성이며 주님은 천사를 통해(행 7:53) 그들이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지켜야 할 율법을 주셨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의 백성들이 아니라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하나님의 아들이 되는 권능을 갖고 하나님에게서 태어난 자들입니다(요1:12-13).
동일한 성경을 읽으면서도 해석이 다르고 믿는바가 다르고 적용이 다른 게 현실입니다. 어찌 보면 각자가 믿고 싶은 대로 믿고 해석하고 싶은 대로 해석하는 시대가 된 것 같습니다. 성경의 해석은 사람에게 있지 않고 하나님께 있으며 성경은 언제나 성경이 해석해줍니다. 그러나 오늘날 주님의 말씀사역자들이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자기가 원하는 대로 적용하고 주장하는 일들이 일상이 된듯합니다. 성도들도 하나님께서 기록하신 말씀을 품에 안고서도 자기목사의 가르침이 진리요, 절대적인 교리이며 율법이 된 것 같습니다.
일단 신약성경이 말씀하시는 주께 드리는 모금(헌금)은 각자 자원하는 마음으로 하며(고후8:12) 강요나 억지로 하지 않습니다. 누구든지 감사와 기쁨으로 자기가 가진 것에서 마음에 정한대로 하면 가장 잘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은 심은 대로 거둔다고 말씀하십니다. 인색하게 심는 자는 인색하게 거두고 풍성하게 심는 자는 풍성하게 거둔다고 하셨습니다.
(고후 9:6-7) 『다만 내가 말하려는 바는 이것이니 곧 인색하게 뿌리는 자는 또한 인색하게 거둘 것이요, 풍성하게 뿌리는 자는 또한 풍성하게 거두리라는 것이라. 7) 저마다 자기 마음속에 정한 대로 낼 것이요, 마지못해 하거나 억지로 하지 말지니 [하나님]은 즐거이 내는 자를 사랑하시느니라.』하셨습니다.
사람들은 주는 것보다 받는 것을 더 좋아합니다. 저도 그렇습니다. 특히 우리나라 사람들이 더욱 그런 것 같습니다. 기부 문화가 서양에 훨씬 뒤떨어지는 것이 사실입니다. 하지만 주님은 받는 것보다 주는 것이 더 복되도다(행20:35)하셨습니다.
저는 사실 헌금에 관한 설교를 잘못합니다. 성도들로 하여금 기쁨이 넘치며 감사로 즐겁게 헌금하게 해야 하는데 그런 면에서 저는 많이 부족합니다. 성도들이 성경을 읽고 설교를 듣고 은혜 받은 대로 자진해서 잘 하리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많은 목회자들이 그런 착각에서 목회를 함으로 실패한다고 말합니다. 성경을 가르치려면 성도들이 배운 바를 믿음으로 실천할 때까지 인내심을 가지고 반복해서 계속 가르쳐야 한다고 말합니다. 성도들이 잘 배우고 잘 들었어도 그 마음에서 지시하는 바가 어떠한가에 따라 행동할 것입니다.
어떤 목사님은 새로 부임한 교회에서 “서로 사랑하라”는 제목으로 3개월 동안을 계속 반복했답니다. 처음엔 성도들이 목사님 설교 잘하십니다. 많은 은혜 받았습니다. 하다가 3개월 동안 동일한 설교에 짜증을 내며 장로들이 몰려와서 목사님은 설교를 그것밖에 할 것이 없습니까? 물었답니다. 그때 목사님은 아직 여러분들이 내 설교를 듣지 못하고 이해하지 못한 것 같아서 알아듣고 사랑을 실천할 때까지 계속 하겠습니다. 했다는 말이 있습니다. 듣고도 행하지 않으면 듣지 않은 것이요, 잘 못들은 것입니다.
율법에서 십일조는 자기의 마음이 어떠함은 고려되지 않습니다. 법으로 정해진 것이기 때문에 반드시 해야 하는 것입니다. 구약에서 십일조란 단어는 레위기에서 처음 등장하는데 그 율법이 십일조는 주의 것이라고 말합니다.
(레 27:30-32) 『땅의 모든 십일조 곧 땅의 씨나 나무 열매의 십일조는 {주}의 것이니 그것은 {주}께 거룩하니라. 31) 만일 어떤 사람이 자기의 십일조 중에서 조금이라도 무르려면 그는 거기에 그것의 오분의 일을 더할 것이요, 32) 소 떼나 양과 염소 떼의 십일조에 관하여는 어떤 것이 막대기 아래로 지나가든지 열째 것이 {주}께 거룩한 것이 되리니』
십일조는 누구의 것입니까? 당연히 {주}의 것입니다. 성도들이 십일조를 하는 것은 자신의 모든 것이 주님의 것이라는 고백입니다. 목사님들이 십일조 헌금을 강조할 때 가장 많이 인용하는 성경 구절은 역시 말라기서입니다. 말라기 대언자는 십일조를 하지 않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것을 강도질 했다고 신랄하게 책망합니다.
(말 3:8-9) 『사람이 [하나님]의 것을 강도질하겠느냐? 그러나 너희는 내 것을 강도질하고도 말하기를, 우리가 어떤 점에서 주의 것을 강도질하였나이까? 하나니 너희가 십일조와 헌물에서 강도질하였느니라. 너희가 저주로 저주를 받았나니 이는 너희 곧 이 온 민족이 내 것을 강도질하였기 때문이라.』 하십니다. 주님은 분명히 십일조를 “[하나님]의 것”, 또는 “내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율법으로 정한 십일조는 하지 않으면, 즉 하나님의 것을 강도질하면 저주로 저주를 받습니다. 그러나 율법인데도 불구하고 십일조를 하면 주께서 복을 쏟아 붓는다고 말씀하십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말 3:10) 『만군의 {주}가 말하노라. 너희는 모든 십일조를 창고로 가져와 내 집에 먹을 것이 있게 하고 이제 그것으로 나를 시험하여 내가 너희를 위해 하늘의 창들을 열고 받을 곳이 없도록 너희에게 복을 쏟아 붓지 아니하나 보라.』 하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율법에 따라 온전한 십일조를 하면 받을 곳이 없도록 복을 받고 하지 않으면 저주로 저주를 받습니다.
십일조가 율법이냐? 아니냐를 떠나서 누구의 것이냐 했을 때 그것이 하나님의 것이라고 고백한다면 구약시대이건 신약시대이건 온전한 십일조를 하지 않는 것은 역시 하나님의 것을 강도질하는 것입니다. 복을 차버리고 저주로 저주받기를 원하는 것입니다.
이제 십일조의 뿌리요, 그 시작을 살펴보겠습니다.
앞에서 언급한 대로 우리는 모세를 통해 기록된 율법을 지키기 위한 십일조를 하는 것이 아니라 율법이 오기 400년 전에 아브라함으로부터 시작된 십분의 일을 살펴보려고 합니다. 아브라함이 처음 십분의 일을 누구에게 드렸습니까? 아브라함을 부르시고 찾아오신 하나님께 드렸습니다.
말씀으로 계신 주께서 살렘 왕 멜기세덱으로 현현하여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제사장으로써 빵과 포도즙을 가지고 아브라함을 마중 나왔습니다. 아브라함이 조카 롯을 구출하기 위한 전쟁에서 돌아오는 길에 멜기세덱이 빵과 포도즙을 가지고 나타나 아브람을 축복하매 아브람이 그에게 모든 것의 십분의 일을 드렸습니다.
(창 14:17-20) 『그가 그돌라오멜과 또 그와 함께한 왕들을 살육하고 돌아올 때에 소돔 왕이 사웨 골짜기 곧 왕의 골짜기에 나와 그를 맞이하였고 18) 살렘 왕 멜기세덱이 빵과 포도즙을 가지고 나왔는데 그는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제사장이었더라. 19) 그가 아브람을 축복하여 이르되, 하늘과 땅의 소유주 되시는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아브람에게 복이 있을지어다. 29) 네 원수들을 네 손에 넘겨주신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을 찬송할지어다, 하매 그가 모든 것의 십분의 일을 그에게 주니라.』
“하늘과 땅의 소유주”가 누구입니까? 당연히 하늘과 땅을 지으신 분이시지요. 그러면 하늘과 땅 안에 있는 것들은 누구의 것입니까? 사람을 누가 지으셨습니까? 하나님께서 지으셨습니다. 그러면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모든 것들의 소유주는 누구입니까? 당연히 하나님이십니다.
주님은 왜 창세기의 사건을 장성한 신앙을 말하는 히브리서에 기록했을까요? 이는 장성한 신앙인으로 살고자 하는 성도들에게 매우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히 7:1) 『이 멜기세덱은 살렘 왕이요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제사장이니라. 그가 왕들을 살육하고 돌아오는 아브라함을 만나 그를 축복하였으며』
십일조는 이스라엘 백성들만의 전유물이 아닙니다.
아브라함이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제사장에게 모든 것의 십분의 일을 드린 것은 그의 신앙고백입니다. 그가 원수들을 이길 수 있었던 것은 자신의 힘이 아니라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께서 원수들을 아브라함의 손에 넘겨주셨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그가 전쟁에서 얻은 탈취물이 자기가 힘써서 얻은 것이 아니라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의 손에 넘겨주셨음을 알았습니다.
전쟁에서 허기와 목마름으로 돌아오는 아브람에게 빵과 포도즙을 가지고 와서 맞아 주신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은혜를 알았습니다. 이는 자신의 생명이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께 있음을 알았고 아브라함은 그분을 믿는 믿음의 고백으로 모든 것의 십분의 일을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제사장으로 오신 멜기세덱에게 드린 것입니다.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제사장이 누구입니까? 말씀이신 주께서 육신을 입기 전 살렘 왕으로 현현하신 그리스도 예수님이십니다. 다 같이 확인해 보겠습니다. (히 3:1)『그러므로 거룩한 형제들 곧 하늘의 부르심에 참여한 자들아, 우리의 신앙 고백의 [사도]시며 [대제사장]이신 그리스도 예수님을 깊이 생각하라.』 하십니다. 여러분들이 소득의 십분의 일을 드리는 것은 “우리의 신앙 고백의 [사도]시며 [대제사장]이신 그리스도 예수님”을 깊이 생각하며 드리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인색하게 드리겠습니까?
우리가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을 따라 모든 소득의 십분의 일을 주께 드리는 것은 구원 받은 성도들의 기쁜 신앙고백입니다. 율법에 의한 것이 아닙니다. 율법으로 정해진 것을 행하는 것은 마음에 정한대로 내는 것이 아니며 자원해서 드리는 것도 아닙니다. 의무적인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이 자원하여 드린 것을 따른다면 여러분도 그가 보여준 신앙을 따르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갈 3:6-7) 『이것은 곧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매 그것을 그에게 의로 여기셨느니라 함과 같으니라. 7) 그런즉 너희는 믿음에 속한 자들 곧 그들이 아브라함의 자손들인 줄 알지어다.』 했습니다.
여러분들이 바른 신앙 갖기를 원하십니까? 여러분들이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과 함께 복 받기를 원하십니까? 그렇다면 아브라함이 행한 대로 따르십시오. 그리하면 아브라함과 같은 복을 받을 것입니다. (갈 3:9) 『그런즉 이와 같이 믿음에 속한 자들은 믿음이 충만한 아브라함과 함께 복을 받느니라.』
하나님께서 여러분들에게 직장주시고 건강주시고 소득을 주신 것을 믿는다면 그 소득의 십분의 일을 거룩하신 하나님께 온전히 드리십시오. 마음에 갈등이나 저울질하지 마십시오. 그것을 마음대로 나누지 마십시오. “우리의 신앙 고백의 [사도]시며 [대제사장]이신 그리스도 예수님을 깊이 생각하라.”(히 3:1) 하신 말씀을 가슴 깊이 새기시기 바랍니다.
소득이 생겼을 때 먼저 드리지 아니하면 인간의 간사한 마음은 시간이 갈수록 변합니다. 하나님께서도 내 사정을 잘 아실 거야! 지금은 이 일이 더 급하니까 다음에 드리면 돼! 시간이 갈수록 야금야금 깎아 먹다가 결국 드리지 못할 때가 많습니다. 그것이 연약한 믿음이요, 간사한 죄인들의 마음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사람은 다 거짓말쟁이라”(롬3:4)하셨습니다.
만약 여러분들이 어떤 사정에서건 십일조에 대한 갈등이 왔다면 여러분들의 신앙이 흔들리고 있다고 보면 될 것입니다. 개개인의 십일조 헌물은 그 사람의 신앙의 뿌리요, 바탕입니다. 제발 신앙의 슬럼프에 빠지지 마십시오.
율법 이전의 십일조에 대한 예를 하나 더 살펴보겠습니다.
이스라엘의 열두 지파가 아직 태어나기도 훨씬 전에 그들의 아버지가 될 야곱이 형 [에서]를 피하여 외삼촌 집으로 도망갈 때 광야에서 노숙하며 주님께 드린 서원을 보십시오. “하나님께서 내게 주실 모든 것에서” 십분의 일을 반드시 하나님께 드리겠다고 약속합니다. 이는 아브라함과 이삭으로부터 이어져온 믿음대로 모든 소득의 십분의 일을 하나님께 드리겠다는 것입니다.
(창 28:22) 『내가 기둥으로 세운 이 돌이 [하나님]의 집이 되며 하나님께서 내게 주실 모든 것에서 십분의 일을 내가 반드시 하나님께 드리겠나이다, 하였더라.』 여러분이 하나님의 아들이라면 여러분들도 야곱같이 구체적으로 기도해 보십시오. 야곱이 하나님께 조건을 달았습니다. 그가 무엇을 구했습니까?
1, 하나님께서 나와 함께 해주십시오.
2, 내가 가는 길에서 나를 지켜 주십시오.
3, 먹을 빵과 입을 옷을 내게 주십시오. 그리고
4, 내가 평안히 아버지 집으로 되돌아오게 해 달라는 것입니다.
이 정도는 해 줘야 자신의 하나님이 되신다는 것이지요. 자 확인 들어갑니다.
(창 28:20-21) 『야곱이 서원하여 이르되, [하나님]께서 나와 함께하셔서 내가 가는 이 길에서 나를 지키시고 먹을 빵과 입을 옷을 내게 주사 21) 내가 평안히 내 아버지 집으로 되돌아오게 하시면 {주}께서 나의 [하나님]이 되시고』 했습니다.
야곱의 당돌하고도 야무진 서원은 모두 이루어졌습니다. 그가 홀로 고향을 떠난 20년 뒤에는 열두 아들들을 얻었고 거부가 되어 두 떼를 이루고 아버지 집으로 돌아오게 됩니다. 그리고 먼 훗날 그가 서원한대로 벧엘에 하나님의 집이 세워졌습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여러분들의 모든 소득의 십분의 일은 하나님의 것입니다. 아니 여러분의 모든 것이 하나님께서 주셨음을 고백하는 믿음의 행위가 십분의 일을 드리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모든 소득뿐만 아니라 먹는 것과 입는 것도 주께서 허락하신 것이고 여러분의 생명역시 주께서 주신 것입니다. 그것을 믿고 인정하고 고백하는 것이 모든 것의 십분의 일을 드리는 것입니다. 믿으십니까?
모든 소득의 십분의 일을 주께 드려야 되느냐? 안 드려도 되느냐? 하는 것은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의 신앙을 따르는 것이 아닙니다. 십분의 일을 드리지 않는 것은 모든 소득은 내가 노력하고 땀 흘려 얻은 것이지 하나님께서 주셨음을 부인하는 것입니다. 십분의 일, 즉 십일조가 율법이냐 아니냐? 따지는 것조차 믿음이 없는 갓난아이의 행위입니다. 그것이 율법에 국한한다면 신약성경에 기록되지 않았을 것이고 아브라함의 행위를 다시 언급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육신 안에 오신 주님은 무어라하십니까?
(마 23:23)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 위선자들아, 너희에게 화가 있을지어다! 너희가 박하와 회향과 근채의 십일조는 바치되 율법의 더 중대한 문제인 판단의 공의와 긍휼과 믿음은 무시하였도다. 너희가 마땅히 이것들을 행하였어야 하거니와 다른 것도 행하지 않은 채 내버려 두지 말아야 하느니라.』
율법을 강조하는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은 율법을 지켰습니까? 지키지 않았습니까? 그들은 왜 주님께 책망을 받았습니까? 그들은 “율법의 더 중대한 문제인 판단의 공의와 긍휼과 믿음은 무시”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율법주의자들이지만 율법의 더 중대한 문제는 지키지 않았습니다.
그러면 주께서 그들이 그토록 철저하게 강조하는 십일조는 하라는 것입니까? 하지 말라는 것입니까? 주님은 무어라 하십니까? 주님은 “너희가 마땅히 이것들을 행하였어야 하거니와 다른 것도 행하지 않은 채 내버려 두지 말아야 하느니라.”하셨습니다. 주께서 말씀하시는 “이것들”은 무엇이며 “다른 것”은 무엇입니까? 이것들은 당연히 “율법의 더 중대한 문제인 판단의 공의와 긍휼과 믿음”입니다. 그렇다면 “다른 것”은 당연히 앞에서 언급한 십일조입니다.
“다른 것도 행하지 않은 채 내버려 두지 말아야 하느니라.”하셨습니다.
주님은 다른 복음서에도 반복하여 기록하셨습니다.
(눅 11:42) 『그러나 바리새인들아, 너희에게 화가 있을지어다! 너희가 박하와 운향과 온갖 종류의 채소의 십일조는 드리되 판단의 공의와 [하나님]을 향한 사랑은 넘어가는도다. 너희가 마땅히 이것들도 행하였어야 하거니와 다른 것도 행하지 않은 채 내버려 두지 말아야 하느니라.』 하셨습니다.
오늘 본문을 계속 보겠습니다.
(히 7:2-4) 『아브라함도 모든 것의 십분의 일을 그에게 주었느니라. 그 이름을 해석하면 첫째로 의의 [왕]이요 그 다음은 또한 살렘 [왕]이니 곧 화평의 [왕]이라. 3) 그는 아버지도 없고 어머니도 없고 혈통도 없고 날들의 시작도 없고 생명의 끝도 없어 오직 [하나님]의 [아들]과 같이 되어 항상 제사장으로 있느니라. 4) 이제 이 사람이 얼마나 위대한가 깊이 생각해 보라. 심지어 족장 아브라함도 노획물의 십분의 일을 그에게 주었느니라.』
아브라함을 찾아온 멜기세덱이 누구입니까? 항상 하나님의 제사장으로 있는 말씀이신 그리스도 예수님의 현현입니다. 아직 육신 안에 오시기 전 거룩하신 하나님의 제사장으로 계신 그리스도께 아브라함이 소득의 십분의 일을 드렸습니다. 그렇다면 그리스도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구원 받은 저와 여러분들은 모든 소득의 십분의 일을 주님께 드리는 것은 당연하고도 지극히 옳은 일입니다.
(히 7:5-6) 『진실로 레위의 아들들 중에서 제사장 직의 직무를 받는 자들은 자기 형제들인 그 백성이 아브라함의 허리에서 나왔음에도 불구하고 율법에 따라 그들에게서 십일조를 취하라는 명령을 받으나 6) 혈통이 그들로부터 나온 것으로 여겨지지 않는 그는 아브라함에게서 십분의 일을 받고 약속들을 가진 그를 축복하였느니라. 7) 낮은 자가 더 나은 자에게 축복을 받는다는 것에는 전혀 모순이 없느니라.』
우리는 혈통을 따른 아브라함의 자손이 아닙니다. 믿음을 따라 난 자들입니다.
유대인들은 율법을 따라 자원하든 억지로하든 십일조를 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을 따라 자원함으로, 기쁘고 감사함으로 주께 모든 소득의 십분의 일을 드립니다. 여러분이 십분의 일을 거룩하시고 위대하신 분께 드리는 것은 나의 모든 것이 주님의 것이란 믿음의 고백입니다.
나의 생명도 주님의 것이란 고백의 표시가 십일조입니다. 그것이 율법이냐? 아니냐를 따지는 자체가 대단히 어리석고 잘못된 것입니다. 십분의 일 드리기를 망설이는 것은 우리의 신앙고백의 사도시며 대제사장이신 그리스도 예수님을 깊이 생각하지 않는(히3:1) 것입니다. 모든 소득의 십분의 일에 대해서 왈가왈부하는 것은 그분께 드리는 나의 물질이 아깝다는 것입니다. 드릴 마음이 없다는 것입니다.
(히 7:8-10) 『또 여기서는 죽는 사람들이 십일조를 받으나 저기서는 살아 있다고 증언을 얻은 이가 받느니라. 9) 또 나는 십일조를 받는 레위도 아브라함 안에서 십일조를 바쳤다고 말할 수 있나니 10) 멜기세덱이 아브라함을 만났을 때에 레위는 이미 자기 조상의 허리에 있었느니라.』
아브라함에게 율법이 주어졌기 때문에 십일조를 드린 것이 아니라 율법이 아브라함을 따랐다고 말씀합니다. 그러므로 율법 이전부터 시작된 십일조는 율법시대에도, 율법 이후에도 계속되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이스라엘의 열한 지파가 레위 지파에게 준 십일조는 죽는 자들에게 준 것이지만 우리는 거룩하신 하나님의 제사장으로 영원히 살아계신 주님께 기쁨으로 드리는 것입니다.
전에 제가 간증설교 할 때 예화로 드린 말씀이 있습니다.
처음 개척교회에 부임했을 때, 개인 주택의 2층 다락방에서 월세를 제대로 내지 못하니까 집 주인 아주머니가 교회로 올라와 저에게 하는 말이, 십일조를 자기가 다니는 교회에 반절 내고 우리교회에 반절 내면 어떻겠느냐? 해서 십일조가 누구 것입니까? 모든 소득이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하나님의 것이라는 고백으로 드리는 것이 십일조인데 왜 하나님의 것을 당신 마음대로 여기저기 인심 쓰듯 나누어냅니까? 당연히 십일조는 자기가 다니는 교회에 온전히 드리는 것이 합당합니다. 십일조를 나누어 누구를 동정하듯 우리 교회에 조금 내겠다는 것은 우리가 밀린 월세를 받고 싶은 속셈이 있지 않습니까? 동정하려면 십일조는 온전히 드리고 구제헌금을 하십시오. 하고 책망한 일이 있었습니다.
여러분들이 하나님께 드리는 십분의 일이 어떤 의미인줄을 알아야합니다.
나의 모든 것이 하나님의 것이고 하나님께서 허락하시어서 내가 누리고 산다는 것을 감사하며 믿음으로 주님께 드리는 것이 모든 소득의 십분의 일입니다. 그것을 인정하고 믿음으로 드리는 소득의 십분의 일을 둘로 나누거나 마음속으로 흥정하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그것은 거룩한 구별이 아닙니다.
우리는 좀 더 넓은 집회 장소를 얻기 위하여 예배당 모금을 시작하여 1년 동안 진행하고 있습니다. 이는 참으로 귀한 일이고 잘하는 일입니다. 여러분들이 어려운 가운데에서도 열심을 내는 것은 참으로 아름다운 일입니다. 주께서도 마케도니아의 교회들을 칭찬하신 것처럼 여러분들을 매우 기뻐하시리라 생각합니다. (고후 8:2) 『고난의 큰 시련 속에서도 그들의 넘치는 기쁨과 극심한 가난이 그들로 하여금 풍성하고 너그러운 선물을 넘치도록 하게 하였도다.』
하나님께 드리는 것은 부나 가난이 문제가 아니라 믿음과 마음의 문제입니다.
지금까지 우리 교회는 특별 모금이나 헌금을 작정한 일이 없었습니다. 그동안 자원하여 선교헌금을 계속하는 형제들이 있습니다. 그리고 예배당 헌금은 예배당을 얻기 위한 것으로 다른 목적에는 쓰지 않을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습니다. 여러분이 예배당 헌금을 하느라 십일조를 못하는지 안하는지 현저하게 일반 재정이 줄어드는 것입니다. 한마디로 말하자면 전에 하던 십일조를 나누어 예배당 모금도 하고 얼마는 십일조도 한다는 이야기가 됩니다.
그러면 일반 재정은 어디에 쓸까요? 관리비와 인건비와 기타 제반지출을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일반 재정 즉 관리비와 인건비가 모자란다고 특별헌금인 예배당 모금을 일반재정으로 사용할 수는 없는 일 아닙니까? 일반 재정이 남아 특별계정으로 유용하는 것은 좋은 일이나 특별헌금을 하느라 일반재정에 어려움이 생긴다면 문제는 심각합니다. 기초가 흔들리는 것입니다. 많은 교회들이 실패하는 경우가 바로 무리한 계획을 세우고 특별헌금을 작정하게 하다보면 일반재정에 문제가 생깁니다.
우리 교회는 지금까지 풍성한 재정으로 운영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교회가 성장하면 교회 운영위원회에서 새해의 예산을 세우게 됩니다. 대략 수입이 어느 정도 될 것이고 건물 임대료나 인건비와 기타 지출이 어느 정도 될 것이라는 예산을 세우게 됩니다. 그런데 특별 모금을 하느라 일반재정에 이상이 생긴다면 균형이 깨지고 교회의 기초가 무너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므로 특별모금은 일반재정에 무리가 가지 않게 해야 한다는 것이 저의 생각이고 저의 목회 원칙입니다.
저는 지난 12월 26일 토요일 일반재정을 긴급 공적자금으로 각 가정에 1백만 원씩 지급했습니다. 사전에 교회의 의견도 들어보지 않고 담임목사의 직권으로 집행하고 나서 교회 재정을 목사 마음대로 지출했다고 한 성도에게 심한 질책을 들었습니다. 이는 제가 질책들을 만 한 일을 한 것이 분명합니다. 있을 수 없는 일을 저질렀습니다. 저도 잘 압니다. 개척교회에서나 있을 법한 일을 저지른 것이지요. 제가 이런 일을 행한 것은 성도 여러분들이 무엇인가를 깨닫게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고심, 또 고심 끝에 이런 일을 했습니다.
저는 지원금과 함께 쪽지에 이렇게 썼습니다.

사랑하는 형제자매님들께 드립니다.
우리를 지켜주시는 하나님께 영광과 찬양을 드립니다.
우리가 비록 함께 모이지 못하더라도 믿음 안에서 영으로 끊임없는 교제 나누기를 원합니다. 코로나가 길어질수록 우리 형제자매님들도 많이 힘들 줄 압니다. 코로나로 인하여 모두가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고 대면 예배를 하지 못하므로 교회의 모금도 현저히 줄어들고 있습니다. 교회 예배당을 구하려고 목적헌금(건축헌금)을 하다 보니 기존 일반헌금(십일조, 감사)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쏠림 현상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지난여름 저는 일반재정을 연말에 건축헌금으로 돌리겠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마음에 계속되는 부담이 있어 지금은 일반재정을 공적자금으로 각 가정에 지원하기로 마음먹었습니다. 이는 교회법도 아니고 전통도 아니고 말씀이 지시하는 바도 아닙니다. 단순이 담임목사 직권으로서 내린 결정입니다. 혹 마음에 들지 않는 분이 있더라도 미리 성도들의 의견을 듣지 않고 집행한 것에 대해서는 여러분들의 양혜를 구합니다.
오늘 현재 일반 재정은 0000000원입니다. 이는 여러분들이 하나님께 드린 헌금입니다. 그리고 여러분들의 재산입니다. 이 어려운 시기에 각 가정에 1백(100)만원씩 지원하려고 합니다. 그러면 재정은 0,000,000원 남을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가장 급하다고 생각하시는 대로 사용하시고 더욱 주님께 헌신하시기를 기도합니다.
주후 2020년 12월 26일
인천말씀침례교회 담임목사 박참하 드림.

우리 자매는 화를 내며, 지금 한품이라도 아끼고 열심히 모아 예배당을 마련해야 할 판에 무슨 짓을 한 것이냐? 사전에 의논도 없이 목사가 교회 재정을 마음대로 집행하는 것이 옳으냐? 내 신앙 양심으로는 용납이 안 된다. 아주 심한 책망을 들었습니다. 모두 다 옳은 소립니다. 그러나 저는 여러분들의 신앙이나 마음을 살펴보고 싶었습니다. 헌금에 관한 바른 교육을 하고 싶었습니다. 제가 지금까지는 실패했으나 이제라도 기초를 튼튼히 하고 싶었습니다.
여러분들이 혹시 오늘 말씀으로 시험에 들거나 낙심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저는 여러분들의 믿음과 교회를 든든한 반석 위에 견고히 세우고 싶은 간절한 마음입니다. 과연 지금이 산의 나무를 베어다 너희 집을 고칠 때냐? 하신 주님의 말씀을 상기시켜 보고자 하는 마음이었습니다.
(학 1:4-5) 『오 너희여, 이 집이 피폐하거늘 지금이 너희가 널빤지로 꾸민 너희 집에 거할 때냐? 5) 그러므로 이제 만군의 {주}가 이같이 말하노라. 너희 길들을 깊이 생각할지니라. ........8) 산에 올라가서 나무를 가져다가 그 집을 건축하라. 그리하면 내가 그것으로 말미암아 기쁨을 얻고 또 영광을 얻으리라. {주}가 말하노라.』
여러분들이 지금은 산에 올라가서 나무를 가져다가 그 집을 건축할 때입니다.
건축물은 아무리 아름다워도 그 기초가 튼튼하지 못하면 곧 무너지고 맙니다.
우리 교회 형제자매님들은 이번 코로나 사태에도 직장을 잃거나 월급을 받지 못하는 사람들이 없어서 다행으로 생각하며 감사드립니다. 여러분들은 과연 얼마나 주님께 깊은 감사를 합니까? 여러분이 매달 받는 월급이 여러분들의 삶의 기초가 된다는 것을 잘 알 것입니다. 만약 여러분들도 다른 소상공인들과 같이 장사가 안 되고 수입이 없으면 생활의 기초가 무너졌을 것입니다.
(눅 6:48-49) 『그는 집을 짓되 깊이 파고 기초를 반석 위에 놓은 사람과 같도다. 홍수가 나고 물살이 그 집에 세차게 부딪치되 그 집을 흔들지 못하였나니 이는 그것을 반석 위에 세웠기 때문이라. 49) 그러나 듣고도 행하지 아니하는 자는 기초 없이 흙 위에 집을 지은 사람과 같으니 물살이 그 집에 세차게 부딪치매 집이 곧 무너져 그 집이 크게 파괴되었느니라, 하시니라.』
우리 교회가 지금까지 지탱해 온 것은 여러분들이 소득의 십분의 일을 꾸준히 드려 왔기 때문입니다. 이번 기회에 여러분들의 믿음의 기초가 무엇인지를 마음에 새기시기를 간곡히 부탁드립니다.
많은 교회들이 코로나가 무서운 것이 아니라 코로나로 인하여 모임을 갖지 못함으로 성도들이 십일조를 하지 않기 때문에 기초가 무너지고 있는 것입니다. 명심하십시오. 가지가 꺾이면 재생이 가능하지만 기초가 무너지면 존재가 불가능합니다. 저는 그것을 여러분들에게 알려 드리고자 했습니다. 목회를 하려는 사람은 주님의 부르심과 믿음의 바탕위에 재정적인 기초가 든든해야 무너지지 않는 다는 것을 명심하십시오. 여러분들의 십일조는 여러분의 믿음과 교회의 기초입니다. 반석위에 세운 교회는 쉽게 무너지지 않습니다.
율법이 아닌 아브라함의 믿음을 따라 거룩하시고 영원하신 하나님의 제사장이신 주님께 여러분의 모든 소득의 십분의 일을 감사함으로 온전히 드리시기를 간곡히 부탁드립니다. 항상 여러분의 구원을 감사하십시오.
주께서 나를 구원하시려고 자신의 생명을 버리신 은혜를 잊지 마십시오. 여러분들이 주께 드리는 십분의 일은 여러분의 믿음을 견고히 하며 교회를 튼튼한 반석위에 세우는 길임을 잊지 마십시오. (시 107:22) 『그들은 감사의 희생물로 희생물을 드리며 기뻐함으로 그분께서 행하신 일들을 밝히 보일지어다.』 아멘!
2021-01-03 12:1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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