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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원광 [ E-mail ]
  시간을 만회하라(redeeming)
  http://av1611.co.kr

제목: 시간을 만회하라(redeeming)
■ 본문: (엡 5:11~17) “11) 열매 없는 어둠의 일들에 참여하지 말고 도리어 그것들을 책망하라. 12) 그들이 은밀한 가운데 행하는 그것들은 말하는 것조차 수치니라. 13) 그러나 책망을 받는 모든 것은 빛으로 말미암아 밝히 드러나게 되나니 무엇이든지 밝히 드러나게 하는 것은 다 빛이니라. 14) 그러므로 그분께서 이르시기를, 너 잠자는 자여, 깨어서 죽은 자들로부터 일어나라. 그리스도께서 네게 빛을 주시리라, 하시느니라. 15) 그런즉 너희는 주의하여 어리석은 자가 아니라 지혜로운 자로서 조심스럽게 걸어 16) 시간을 되찾으라. 날들이 악하니라. 17) 그러므로 너희는 지혜 없는 자가 되지 말고 오직 [주]의 뜻이 무엇인지 이해하라.”
저희 교회도 인터넷을 이용한 화상회의 웹과 앱을 통하여 비대면으로 예배를 드리고 있는데요. 대면 예배 때와 달리 모니터나 스마트폰의 작은 화면을 통해 예배를 드리다보니 예배시간이 조금만 길어져도 말씀을 듣는 집중도가 조금 떨어지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조금 짧게 말씀을 전하고자 하니까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무엇이라고 말씀하시는지 집중해서 잘 듣고, 과연 그러한가 성경기록을 확인해서 믿으시길 바랍니다.
{모든 사람을 위한 아주 특별한 은행이 있습니다. 이 은행에서는 날마다 모든 사람들에게 86,400원을 입금해 줍니다. 노인이나 아이나, 남자나 여자나, 부자나 가난한 자나, 신분이나 빈부를 가리지 않고 모든 사람들에게 똑같은 금액을 무료로 나누어 줍니다. 만약 하루 동안에 이 돈을 다 쓰지 못하면 남은 잔액은 이월되지 않고 그냥 소멸됩니다. 그렇지만 염려할 것이 없습니다. 다음날이 되면 또 같은 금액이 입금되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 모든 사람에게 선물로 주신 [시간 은행]이 있습니다. 이 은행에서는 누구에게나 매일 86,400초, 즉 24시간을 무료로 나누어 줍니다. 우리가 이 시간을 잘 사용하건 대충 사용하건, 시간은 흘러가 버리며, 다음에 쓰겠다고 이월하거나 미래를 위해 저축할 수도 없습니다.
그렇게 우리는 과거, 현재, 미래로 이어지는 시간의 흐름 속에서 살고 있습니다. 시간이 흐름에 따라 현재는 바로 과거가 되고, 미래는 현재가 됩니다. 우리는 태어나서 자라고, 교육받고, 일하고, 결혼하고, 자녀를 키우고, 늙어서 죽기까지 이 시간 속에서 모든 활동을 합니다. 그리고 주님께서 다시 오실 때, 이 세상에서의 시간을 어떻게 사용했느냐?에 대해 주님 앞에서 회계보고를 하게 됩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심판석 앞에서 주님께서 주신 시간을 얼마나 가치 있고 보람 있는 일에 사용했느냐?에 따라 각기 보상을 받게 될 것입니다.
구약 성경 사사기 12장에는 입산이라는 사람이 나오는데, 그에게는 아들 서른 명과 딸 서른 명이 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삿 12:9). 그에게 60명의 자녀가 있었는데요. 한 명의 아내가 60명을 다 낳았을 것 같지는 않고, 한 명의 아내가 자녀를 여섯 명씩 낳는다고 가정하면 10명의 아내가 필요합니다. 그는 아내들을 얻기 위해 많은 시간과 노력을 투자했을 겁니다. 그렇게 해서 60명의 아들딸들을 양육하고, 아들들을 장가보내고 딸들을 시집보내는데, 자신의 인생 중 많은 시간을 소모했을 것입니다. 이런 사람은 나중에 주님 앞에서 회계보고를 할 때, 자신의 인생을 어떻게 보고했을까요?} 지금 말한 내용은 [건강과 생명] 2016년 1월호에 게재되었던 내용입니다.
오늘은 “시간을 만회하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전하도록 하겠습니다.
성경기록은 우리에게 하나님 앞에서 가치 있는 인생으로 평가되어야 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시간을 창조하셨고, 모든 시간의 주인이십니다. 그분께서는 우리 각 사람에게 이 세상에서 살아가는 시간을 누리도록 허락해 주셨습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은 70년, 강건하면 80년 정도입니다(시 90:10). 그리고 그 시간은 대단히 빠르게 지나가며, 한 번 지나간 시간은 다시 돌아오지 않습니다(욥 7:6).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시간을 잘 관리해야 합니다.
전도서 기자는 사람의 인생에 대해 최종 결론을 내리기 전에 이런 평가를 내립니다.
(전 12:8b) “... 헛되고 헛되며 모든 것이 헛되도다.”
인생은 너무도 짧은데 헛되이 살 만큼 쉽게 낭비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결국 어떻게 하라는 것일까요? 쏜 살 같은 세월을 어떻게 잘 활용해야 할까요? 일순간에 불과한 삶, 의미, 목적, 정체성, 진리에 대한 이해, 그리고 옳고 그름 같은 개념에 대해서 성경은 무어라고 말씀하실까요?
그런 헛된 인생으로 남지 않기 위해서는 모든 것의 결과가 어디로 향하는지, 그리고 우리가 어떤 생각으로(mind) 이해해야 하는지, 그리고 우리가 무엇을 바라보는 관점으로 살아야 하는지, 그리고 우리가 살 만한 가치가 있는 삶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며,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에 대해 성경은 이렇게 결론을 내립니다.
(전 12:13~14) “13) ¶ 우리가 전체 일의 결론을 들을지니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그분의 명령들을 지킬지어다. 이것이 사람의 온전한 의무이니라. 14) [하나님]께서 모든 은밀한 일과 더불어 선한 일이든 악한 일이든 모든 일을 심판하시리라.”
창조자 하나님, 두려운 하나님, 창조물 사람의 온전한 의무, 하나님의 심판. 이런 생각은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 동안 어떤 삶을 살아가야 하는지 방향을 제시해 주고 있습니다.
사람은 공간을 정복할 수 있습니다. 우리 주위를 보더라도 산을 허물고, 계곡을 메우며, 도로를 건설하기도 하고, 산을 뚫어 터널을 만들기도 하고, 불도저로 땅을 평탄하게 고르고, 크레인을 사용해서 고층 아파트를 짓기도 하고, 스마트폰, 비행기, 여러 기술을 활용해서 공간을 정복합니다. 반면에 시간은 정복할 수 없습니다. 그 이유는 시간은 공간처럼 우리 앞에 가만히 놓여 있지 않고, 앞을 향해 정해진 한 반향으로만 나아가 인간이 시간을 멈출 수 없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물리적인 공간의 세계를 정복하는 일은 그리 어렵지 않지만, 이것은 항상 시간을 소비한다는 진실을 깨달아야 합니다. 우리가, 하는 일 없이 손가락으로 책상을 톡톡 두드리는 그런 행동을 하게 될 때도 우리는 나의 시간을 소비하고 있고, 그렇다고 어떤 일을 열심히 할 때도 시간이 소비되는 이 문제는 해결되지 않습니다.
따라서 어떤 일에서든 우리의 이득이나 손실, 노력의 가치를 평가받을 때 우리가 사용한 시간도 함께 실질적인 비용으로 판단해야 합니다. 마치 어떤 물건을 가성비(가격&성능)로 판단하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아무리 쉬운 성취라도 그 성취까지의 시간을 비용으로 지불하게 됩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사람이 만일 온 세상을 얻고도 자기 혼을 잃으면 그에게 무슨 유익이 있겠느냐?”(막 8:36)며, 없어질 세상 것을 얻기 위해 인생의 시간을 헛되이 사용하고 진짜 중요한 것을 놓쳤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시간과 인생에는 의미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뜻과 인간의 창조된 목적이라는 한 쌍의 진리 아래에서, 시간과 인생은 심판이라는 종착역을 향해 쉬지 않고 흘러가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의 인생이 누구를 위해 존재하며, 누구와 함께 어떤 길로 살아가야 하는지를 인식하며 살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우주와 그 속의 만물을 창조하신 분이므로, 자신의 창조물에 매이지 않으시고, 자연과 자연의 작동 방법을 초월하실 수 있는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공간과 시간의 창조자로서 시간의 안과 시간의 밖을(out of time, 욥 22:16) 초월하고 계십니다. 하나님은 인간에게 부여된 시간을 통해 인간과 교류하고 동행하며, 역사하고 계십니다. 우리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으로 창조된 존재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자유로운 선택을 내릴 수 있습니다. 또한 그 선택에는 책임이 따릅니다. 우리는 창조주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생명과 복을 선택할 수 있고, 하나님의 뜻을 버리는 사망과 저주를 선택할 수도 있습니다(신 30:19).
이렇게 사람이 자유로운 선택을 할 수 있는 존재로서 여지껏 선택해서 살아온 것과 다르게 선택할 수도 있었으므로, 사람의 선택과 행동에 대한 책임이 자신에게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지금까지 어떤 선택을 하며 삶을 살아왔건 그 삶을 위해 지불했던 시간에 대한 책임도 따르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육체를 입고 살아가는 땅의 삶이 전부가 아니란 믿음으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의 지난 과거를 되돌아보면 헛된 것들에 우리의 시간을 너무 많이 소비했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우리에게 “시간을 되찾으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엡 5:16a) “시간을 되찾으라...”
“되찾으라”고 번역한 영어 단어는 “Redeeming”입니다.
‘redeem’은 다른 구절에서 “구속”이라고 번역하기도 했는데, ‘값을 치르고 산다.’는 의미입니다.
앞에서도 살펴본 것처럼 시간은 아낀다고 절약되거나 저축되지 않고 계속 흘러갈 뿐입니다. 그러나 헛되이 지나간 시간을 되찾아야 합니다. 되찾으라는 말은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로 가서 자신의 과거에 잘못된 인생을 되돌리고 돌아오라는 의미가 아닙니다. 우리는 과거를 되돌릴 수는 없습니다. 우리가 과거의 시간을 지혜롭지 못하게 사용했다고 인정한다면, 지금부터라도 현재의 삶에서 과거에 낭비한 시간을 만회하며 살라는 의미입니다.
‘만회한다’는 의미의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저의 둘째 딸 ○○이가 중학교에 입학했을 때, 그 학교는 사교육 없는 시범 중학교였습니다. 그래서 딸과 상의해서 학교를 다니는 동안 과외나 학원을 다니지 않기로 했습니다. 그러다가 김포로 이사를 하게 되었고, 딸은 전학 온 중학교에서 중간고사를 보게 되었는데, 성적결과가 자신의 생각보다 많이 실망할 정도였었나 봅니다. 딸은 저에게 “아빠, 학원을 다녀야 할 것 같아요.” 말을 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지나간 1년 반이란 시간 동안 적당히 공부를 했기 때문에 그때부터 뒤처진 진도를 따라잡아야 하는데 쉽지 않았습니다. 조금은 뒤늦은 것 같았지만, 하나님의 은혜로 집 근처에는 눈** 학원이 있었고, 학원셈과 함께 ○○이에게 적절한 공부계획을 세우고 곧바로 열심히 공부를 시작하여 다른 친구들을 따라잡을 수 있었습니다. 그 결과로 딸이 바라는 학과가 있는 고등학교로, 딸이 생각하던 진로가 있는 대학교를 잘 마치게 되었습니다. 이처럼 학생이 시간을 되찾으려면 어제까지 놀거나 공부보다 덜 중요한 시간을 포기(희생)하고 현재부터 그 시간을 공부하는데 사용하라는 것이 “시간을 되찾으라”, “시간을 만회하라”는 의미입니다.
여러분은 어떠신가요. 아침에 일찍 일어나 성경말씀을 묵상하려면 늦은 밤 생활을 포기해야 하고, 또한 일부 새벽잠을 희생시켜야 합니다. 이렇게 우리가 어떤 일을 할 시간을 확보하려면, 다른 활동에 드는 시간과 또는 멍하니 흘려보내는 시간을 희생하는 대가를 지불하고, 그 시간을 구속해야(redeem) 합니다. 값을 치르고 시간을 구속하기 전에는 내 시간이 될 수 없습니다. 과거가 아닌 현재 시간을, 장래를 위한 현재 시간을 지혜롭게 사용하라는 것입니다. 구원받은 우리는 그리스도의 심판석에 설 것입니다. 그 때에 부끄럼 당하지 않도록 시간을 만회해야 합니다.
어느 영역에서건 익숙하고 능숙하게 되기 위해서는 셀 수 없는 훈련과 연습으로만 가능합니다. 처음에는 어색하고 더디고 잘 안되는 것도 끊임없는 훈련을 통해 숙련됨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마음의 문제나 신앙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처음에는 하나님 앞에서 걷기를 할 때, 하나님이 보시니까 내 마음의 생각을 의식적으로라도 올바르게 하고 선한 선택의 의지적 결단을 내리게 되지만, 이러한 영적인 훈련을 꾸준히 하다 보면 어느 순간부터는 내가 그렇게 생각해서 해야지 하는 생각이 들지 않아도 내 생각 자체가 그리스도의 생각과 같아지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말하고 행하는 방식, 매일의 일상을 살아가는 모습은 항상 우리의 믿음을 평가할 수 있는 최상의 방법이며, 우리의 생각과 동기를 잘 나타내 주는 지표입니다.
그런데 “시간을 되찾으라”는 말씀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하나님이 계수하시는 시간에 대한 자신의 상태를 파악하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의 인생을 최대한 활용하기 위해 꼭 필요한 것은 내게 주어진 이 시간이 세상 시계로만 흐르는 시간이냐? 아니면, 하나님의 시계에 내 인생이 카운트 되는 시간이냐?를 분별해서 오늘을 붙잡아 시간을 구속해야 하는 것입니다.
모든 인간에게 주어진 세상 시간의 카운트(계수)와 하나님이 인간을 평가하실 때 영적 시간의 카운트가 다를 수 있습니다. 사람에게 주어진 시간의 카운트는 하루를 기준으로 일정하게 흘러가고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동일한 시간으로 적용됩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사람을 평가할 때 사용되는 믿음의 시간은 다릅니다. 출애굽기 12장에는 이스라엘 백성이 이집트를 탈출(출애굽)하게 되는데, 그 달을 기준으로 새로운 달이 시작됩니다. 세상의 달력과는 별개로 하나님이 세우신 영적인 달력이 시작된 것입니다.
(출 12:1~2) “1) {주}께서 이집트 땅에서 모세와 아론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2) 이 달이 너희에게 달들의 시작이 될지니 곧 그것이 너희에게 한 해의 첫 달이 될지니라.”
하나님이 인간을 평가하시는 시간이 별도로 계수되기 시작하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거듭남을 예표하는 출애굽, 이 때부터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새로운 영적 시간이 시작되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거듭났다고 해서 누구에게나 이 영적인 시간이 동일하게 흐르는 것은 아닙니다. 누구는 자신에게 주어진 시간을 하나님과 동행하는 영적인 시간으로 잘 활용해서 성장하므로 남을 가르치는 자리에 있는가 하면, 누구는 주어진 시간을 없어질 세상의 것들에만 소비를 해서 영적 성장이 안 되어 교리의 기초 원리들을 다시 가르침 받는 영적 어린아이 수준에 계속 머물러 있기도 합니다(히 5:12).
이렇게 세상에 보낸 시간과 하늘에서 평가받게 되는 시간이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은 자신들의 시간을 영적으로 잘 사용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평가하실 때 잃어버린 시간이 발생하게 됩니다. 두 말씀을 비교해 볼건데요.
사도행전 13:18절부터 보면, 바울이 이스라엘 사람들을 향해 그들의 과거 역사를 설명하는 기록이 나오는데요. 거기서 18절에 출애굽 이후 광야 사십 년을, 20절에 그 뒤에 대언자 시대 사백오십 년을. 21절에 그 뒤에 사울 통치 사십 년을, 그리고 삼하 5:4절에 다윗 통치 사십 년을, 그렇게 출애굽부터 솔로몬 이전까지를 총 오백칠십 년으로 기록하고 있는데요.
열왕기상 6:1절에는 “이스라엘 자손이 이집트 땅에서 나온 지 사백팔십 년이 되는 해 곧 솔로몬이 이스라엘을 통치한 지 사 년이 되는 해 시브 월 즉 둘째 달에 그가 {주}의 집을 건축하기 시작하였더라.”
성경기록은 사도행전을 통해 오백칠십 년을 말씀하시고, 이와 같은 기간을 열왕기상 6장에서는 삼백칠십육 년으로, 두 기간을 다르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왜 다르게 표현하셨을까요? 이스라엘이 주 하나님을 배교하고 등지고 떠나서 하나님이 함께 할 수 없던 시간, 이스라엘에게 주신 하나님의 시계가 멈추어진 구십 여년이라는 잃어버린 시간이 발생하게 된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렇게 하나님이 우리를 평가하시는 영적인 시간은 우리가 살아온 시간과 차이가 날 수 있다는 것을 신명기 1장을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신 1:1~3) “1) 모세가 요르단 이편 광야 곧 바란과 도벨과 라반과 하세롯과 디사합 사이에 있는 홍해 맞은편 평야에서 온 이스라엘에게 전한 말씀들이 이러하니라. 2) (호렙에서 가데스바네아까지는 세일 산의 길을 따라 열하루 길이니라.) 3) 사십 년째 되는 해 십일월 곧 그 달 첫째 날에 모세가 {주}께서 이스라엘 자손을 위하여 자기에게 명령으로 주신 모든 것에 따라 그들에게 말하였는데”
2절에 ‘가데스바네아’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주시겠다고 말씀하신 가나안 땅을 정탐하러 보낸 사람들 중에서 여호수아와 갈렙을 제외하고는 믿음이 없는 악한 보고를 함으로써 백성을 낙심하게 했던 장소입니다(민 14장, 민 32장).
그들은 열 하루 길에 들어갈 수 있는 약속의 땅이었는데,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믿음보다 세상에 보이는 것들에 대한 두려움이 더 커서 결국은 광야 학교를 통해 하나님의 말씀을 믿는 믿음의 훈련을 사십 년이나 받게 되었습니다. 세상의 시계로는 사십 년, 그러나 하나님의 시계로는 열 하루였습니다. 그들은 믿음이 없어서 사십 년을 읽어버리게 되었습니다. 이런 말씀들은 우리가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을 믿음으로 바르게 사용하고 있느냐?에 대한 교훈을 줍니다.
그리고 마태복음 20장에는 하나님께서 일꾼을 고용하시는 내용이 나옵니다.
(마 20:1~6) “1) 하늘의 왕국은 마치 품꾼들을 고용하여 자기 포도원에 들여보내려고 아침 일찍 나간 사람 곧 집주인과 같으니라. 2) 그가 하루에 일 데나리온씩 주기로 품꾼들과 합의하여 그들을 자기 포도원에 들여보내고 3) 또 세 시쯤에 나가서 시장에서 놀고 서 있는 다른 자들을 보고는 4)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도 포도원에 들어가라. 내가 너희에게 무엇이든 정당한 것을 주리라, 하매 그들이 자기들의 길로 가니라. 5) 다시 그가 여섯 시와 아홉 시쯤에 나가서 그와 같이 하고 6) 또 열한 시쯤에 나가서 놀고 서 있는 다른 자들을 보고는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는 어찌하여 온종일 여기서 놀고 서 있느냐? 하매”
하나님은 우리에게도 말씀하십니다. “어찌하여 온종일 여기서 놀고 서 있느냐?”, 하나님은 우리를 선한 일꾼으로 부르시고, 우리가 믿음으로 그 일을 잘 감당하길 원하십니다. 그런데 우리가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을, 먹고살고, 아이 낳고 기르고, 사망의 일에만 정신이 팔려 하나님으로부터 평가받을 시간을 허비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 봐야 합니다.
그러면 우리가 살아온 과거 동안 잃어버린 시간들을 어떻게 만회할 수 있을까요? 하나님께서는 친절하게 성경기록을 통해 시간을 잘 관리하는 방법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첫째, 하나님이 카운트하시는 우리의 날 수 세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시 90:3~12) “3) 주께서 사람을 돌려 멸망에 이르게 하시며 말씀하시기를, 사람들의 자녀들아, 너희는 돌아갈지어다, 하시오니 4) 주의 눈앞에서는 천 년이 단지 지나간 어제와 같으며 밤의 한 경점과 같나이다. 5) 주께서 그들을 홍수로 하듯 쓸어 가시매 그들이 잠 같으며 아침에 자라는 풀 같으니이다. 6) 풀은 아침에 꽃을 피우고 자라다가 저녁에는 베여 시드나니 7) 우리가 주의 분노로 말미암아 소멸되며 주의 진노로 말미암아 근심하나이다. 8) 주께서 우리의 불법들을 주 앞에 두시며 우리의 은밀한 죄들을 주의 얼굴빛 가운데 두셨사오니 9) 우리의 모든 날이 주의 진노 중에 지나가며 우리가 이야기를 듣는 것 같이 우리의 햇수를 보내나이다. 10) 우리의 햇수의 날들이 칠십 년이요, 강건하면 팔십 년이라도 그 햇수의 위력은 수고와 슬픔뿐이니 그 위력이 곧 끊어지매 우리가 날아가 버리나이다. 11) 누가 주의 분노의 능력을 아나이까? 주의 진노는 주의 두려우심과 꼭 같으니이다. 12) 그런즉 우리에게 우리의 날수 세는 것을 가르치사 우리가 지혜에 이르도록 우리의 마음을 쓰게 하소서.”
하나님의 영적 시계는 세상 시계와 다르게 작동합니다. 앞에서 구약의 이스라엘을 통해 말씀해 주신 것처럼 그분이 우리에게 채워주신 영적 시계는 우리가 믿음으로 살아가는 날에만 동작합니다. 그냥 세상 시간과 같이 한 해를 지나면서 영적인 나이가 거져 먹는 것은 아닙니다. 30~40년을 교회를 다녔다 해도 영적으로는 태어나지 않았다거나, 태어났다고 해도 여전히 갓난아이일 수도 있습니다. 그런 사람은 하나님으로부터 시간을 만회하지 못했다고 책망의 말씀을 듣게 되는 것입니다.
시간을 카운트하는 것, 사랑하는 연인들이 둘이 사귄 지 얼마나 되었는지 세어보듯이, 결혼을 앞둔 신랑 신부가 혼인식까지 남은 날짜를 꼽아보듯이, 수험생들이 수능 시험까지 얼마나 남았는지 세어보듯이, 하루 중 우리의 시간을 어디에 얼마나 썼는지, 일 년에 몇 일이나 하나님을 위해, 가족과 이웃을 위해 얼마나 시간을 드렸는지 헤아려 보아야 합니다. 그리고 하루 하루가 믿음의 비중 없이 보냈다면 지금부터 비중을 높여서 시간을 만회해야 합니다.
둘째, 깨어서 죽은 자들로부터 일어나 빛을 발해야 합니다.
(엡 5:14~17) “14) 그러므로 그분께서 이르시기를, 너 잠자는 자여, 깨어서 죽은 자들로부터 일어나라. 그리스도께서 네게 빛을 주시리라, 하시느니라. 15) 그런즉 너희는 주의하여 어리석은 자가 아니라 지혜로운 자로서 조심스럽게 걸어 16) 시간을 되찾으라. 날들이 악하니라. 17) 그러므로 너희는 지혜 없는 자가 되지 말고 오직 [주]의 뜻이 무엇인지 이해하라.”
우리의 삶이 옛사람처럼 죽은 행실이나 어둠의 행위만 한다면,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영적 시계는 정지해 있을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로부터의 부활한 사람들입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로 인해 거듭난 새사람으로서 그리스도의 빛을 발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만약 내 삶을 누가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지혜가 부족하거든 기도해야 합니다.
(약 1:5) “너희 중에 어떤 사람이 지혜가 부족하거든 모든 사람에게 너그러이 주시고 꾸짖지 아니하시는 [하나님]께 구하라. 그리하면 그것을 그에게 주시리라.”
우리는 자세히 주의하여 덜 중요한 일이나 세상에서 없어질 헛된 일에만 관심을 두는 어리석음을 범하지 말고, 하나님과 함께 동행하는 믿음에 더 많은 관심을 두는 지혜로운 자가 되어야 합니다.
셋째, 우리에게 주어진 날들이 악하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엡 5:16).
16절에 “16) 시간을 되찾으라. 날들이 악하니라.”
우리가 나 자신을 가만히 내버려 두면, 주어진 시간으로 선한 일을 하기보다는 거짓, 미움, 살인, 음행, 부정, 탐욕, 추잡한 것, 어리석은 것, 희롱의 말, 게으름, 열매 없는 일들에 관심이 쏠리기 쉽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날들이 악하다는 믿음으로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을 선한 그리스도의 일에 사용해야 합니다. 개개인으로는 성경을 연구하고, 복음을 전하고, 삶에서 의와 사랑의 일을 함으로써 우리는 시간을 만회할 수 있습니다. 교회로는 코로나와 같은 전염병으로부터 예방되면 예배당을 준비하고, 예배 모임도 늘리고, 거리 전도를 함으로써 시간을 만회할 수 있습니다.
넷째, 우리는 장기적인 사고방식을 갖고 살아야 합니다.
(살전 1:3) “[하나님] 곧 우리 [아버지]의 눈앞에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너희의 믿음의 행위와 사랑의 수고와 소망의 인내를 끊임없이 기억하기 때문이니”
모 은행 광고에서 ‘모조 대나무’를 비유하면서 4년 동안 시간이 멈춰버린 것처럼 아무런 미동도 하지 않다가 5년이 되던 해부터 매일 30cm씩 성장하며, 6부 차가 되면 그 자리는 순식간에 빽빽하고 울창한 대나무 숲을 이루게 되니까, 사람도 이 대나무와 같이 장기적인 안목으로 꾸준히 지원해야 한다는 내용이 있습니다.
변화는 시간이 걸리고, 성장도 시간이 걸립니다. 더욱이 그리스도의 성품을 형성하는 마음의 습관도 시간이 걸립니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부터, 오늘부터, 조금씩 한걸음씩, 날마다 믿음의 순간마다, 우리가 과거에 허비했던 시간을 만회함으로 결국 영적 성장이라는 큰 변화를 낳을 수 있습니다. 사람들이 판단하는 조급한 평가와 때 이른 결론은 잘못을 낳을 수 있습니다.
마무리 하겠습니다.
우리는 성경적 시간관을 볼 수 있는 눈이 있어야 하고, 삶에서 밝게 빛을 발하는 그리스도에 시간을 소모해야 합니다. 우리가 올바른 시간관, 하나님이 잘했다 평가하시는 시간관,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믿음의 시계가 카운트 되는 시간관을 갖아야 합니다.
우리가 올바른 시간관을 갖고 있을 때에만, 하나님이 평가하실 때 우리의 인생에 하찮은 것과 중요한 것, 지나가는 것과 영원한 것, 임의적인 것과 의미 심장한 것을 구별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우리의 삶을 뒤돌아볼 때, 하나님이 평가하시는 우리의 믿음의 시간이 연속되는 선들이 아닌 가끔 찍히는 점들로만 되어 있을 수 있습니다. 어찌보면 당장의 우리의 인생은 미완성일 수 있고, 큰 꿈이 이루어지지 않을 수도 있으며, 최선을 다하지 않게 보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믿음의 사람들은 장기적인 안목으로 하나님의 왕국의 찬란함을 입을 그 날을 바라보고 꾸준히 달려갑니다.
그때까지는 현재를 붙잡고, 영적인 성장을 위해 지혜롭게 오늘의 시간을 만회해야 합니다. 오늘뿐 아니라, 하루하루를 믿음과 소망과 사랑을 품고 완전함을 향해서 달려가야 합니다. 자신을 드러내지 않으면서 그리스도 안에서 걸어가야 합니다. 우리의 영적 시간을 카운트 하시는 하나님의 방식대로 살아가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를 데리러 오실 재림의 그날까지 우리가 과거에 잃어버린 시간을 만회하며 순례자로 날마다 신실하게 걸어가야 합니다.
언제나 그랬듯이 시간이 우리의 인생을 평가하는 열쇠이고, 오늘을 사는 의미입니다. 과거 현재 미래의 시간은 우리의 모습으로 평가될 것입니다. 과거는 항상 어떤 식으로든지 현재를 여는 열쇠가 되고, 현재는 어떤 식으로든지 미래를 여는 열쇠가 됩니다.
학생 여러분이 지나온 과거에 어떤 과목의 공부를 소홀히 하여 그 과목이 낮은 평가를 받았다면, 현재는 그 과목을 만회할 수 있는 시간입니다. 그래야 미래에 그 과목에 대한 평가를 높게 받을 수 있습니다.
신앙도 마찬가지입니다. 지나온 과거에 믿음을 소홀히 여겨 낮은 평가를 받았다면, 현재는 믿음의 과목을 만회할 수 있는 시간입니다. 그래야 미래에 믿음의 과목에 대한 평가를 높게 받을 수 있습니다. 믿음은 성경읽기, 성경연구, 기도생활, 복음전도, 그리스도인, 선한 일 등으로 나타나게 됩니다.
이제 우리는 다시 새해로 2021년을 맞았습니다. 은혜로우신 하나님은 우리에게 올 한 해에도 날마다 24시간이라는 시간을 주고 계십니다. 그러나 이미 지난 과거의 시간은 우리가 다시 쓸 수 없으며, 미래는 아직 오지 않았기 때문에 우리 것은 현재라는 시각 뿐입니다. 우리가 쓸 수 있는 시간은 오직 지금이라는 현재 밖에 없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선물로 주신 현재라는 이 시간을 지혜롭게 사용하여 하나님 앞에서 선한 열매를 맺고, 그리스도의 심판석 앞에서 칭찬과 보상을 받는 성도님들이 되시길 바랍니다.
한 번뿐인 인생, 여러분은 어떻게 사실 것입니까? (끝)
2021-01-19 07:03: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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