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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도들의 생활방식

말씀 : 빌3:17-21. 2021년 1월 24일 일요일 오전 11시

사람들이 교만하여 하나님을 향하여 말이 많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롬 9:20-21) 『아니라, 오 사람아, 네가 누구이기에 [하나님]께 대꾸하느냐? 지어진 것이 자기를 지은 이에게 말하기를, 어찌하여 나를 이렇게 만들었소, 하겠느냐? 21) 토기장이가 같은 덩어리의 진흙으로 한 그릇을 만들어 존귀에 이르게 하고 다른 하나를 만들어 수치에 이르게 할 권한이 없겠느냐?』
하셨습니다. 창조주 하나님은 모든 것을 마음대로 하실 수 있습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이라면 사람을 만드신 분과 만들어진 자의 관계를 바로 알아야 합니다. 지음 받은 사람은 당연히 지으신 분의 모든 말씀에 순종해야 창조주와 창조물의 관계가 바르게 회복될 것입니다. 창조물은 창조주를 거역해서는 안 되며 창조주의 뜻과 다른 길로 가서도 안 됩니다. 창조물은 창조주의 명령에 순종할 때에만 참 평안과 기쁨과 행복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주께서 주시는 평안이 아니라면 그 누구에게도 참 평안은 없습니다. 그것은 세상이 주지도 못하고 어떤 사람이 만들어 주지도 못하고 스스로도 평안을 만들지 못합니다. 주께서 주시는 평안만이 온전하고 두려움이 없습니다. 세상이 주는 평안은 강자에게 속박되거나 굴복하는 것뿐입니다. 그러므로 주님은 말씀하셨습니다.
(요 14:27) 『내가 너희에게 평안을 남기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세상이 주는 것과 달리 내가 너희에게 주노니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하셨으므로 혹시 세상이 평안을 약속하더라도 그 평안은 사탕발림에 불과한 것임을 알아야합니다.
사람의 모든 죄와 고통과 슬픔과 불행은 하나님께 대한 불순종에서 왔습니다.
주께서는 사람을 지으시고 그에게 마음대로 먹을 자유와 평안을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첫 사람 아담을 에덴의 동산에 두시고 동산의 모든 나무에서 나는 것은 마음대로 먹도록 하셨으나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는 먹지 말라 하셨습니다. 이는 모든 것을 주시고 창조주와 창조물 사이에 경계를 두시기 위하여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에서 나는 것은”금하신 것입니다.
(창 2:16-17) 『{주} [하나님]께서 남자에게 명령하여 이르시되, 동산의 모든 나무에서 나는 것은 네가 마음대로 먹어도 되나 17)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에서 나는 것은 먹지 말라. 그 나무에서 나는 것을 먹는 날에 네가 반드시 죽으리라, 하시니라.』 하셨습니다.
아담을 지으신 하나님께서 남자가 홀로 있는 것이 보기에 좋지 않아 아담을 잠들게 하시고 그의 갈비뼈 하나를 취하여 여자를 만들어 아담을 조력하도록 하셨습니다. 그런데 그 여자가 간교한 짐승인 뱀에게 속아 사탄의 말을 듣고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에서 나는 것을 먹지 말라” 하신 그것을 먹고 자기 남편에게도 주매 아담도 그것을 먹었습니다.
이로써 그들은 하나님의 명령의 말씀을 버리고 사탄의 달콤한 유혹의 말을 따르는 죄를 지었고 그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의 대가로 사망이 들어왔습니다. (롬 5:12) 『그러므로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들어왔나니 이와 같이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임하였느니라.』하셨습니다.
그러면 아담 이후의 사람들은 어떠했나요? 하나님께서 땅위에 사람을 만드신 것을 슬퍼하실 만큼 사람들이 사악했으므로 주님은 홍수로 사람들과 짐승들을 지면에서 멸하시기로 하셨습니다.
(창 6:5-7) 『{하나님}께서 사람의 사악함이 땅에서 크고 또 그의 마음에서 생각하여 상상하는 모든 것이 항상 악할 뿐임을 보시고 6) {주}께서 땅 위에 사람을 만드신 것으로 인해 슬퍼하시며 또 그것으로 인해 마음에 근심하시고 7) {주}께서 이르시되, 내가 창조한 사람을 지면에서 멸하되 사람과 짐승과 기는 것과 공중의 날짐승까지 다 그리하리니 이는 내가 그들을 만든 것으로 인해 슬퍼하기 때문이라, 하시니라.』
이처럼 죄를 지은 사람들은 마음에 상상하는 모든 것들이 항상 악할 뿐입니다. 사람들이 아무리 좋은 뜻으로 생각하고 행동할 지라도 그것이 하나님으로부터 나지 않은 것은 다 악한 것입니다. 사람을 창조하신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복을 주시고 그들에게 이르시기를, 다산하고 번성하여 땅을 채우고 땅을 정복하라(창1:28) 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자식들을 많이 낳고 인구가 불어나서 땅의 여러 곳에 흩어져 그 땅을 채우고 땅을 정복하라 명령 하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세상을 물로 심판하시는 가운데에서도 은혜를 베푸시고 아담 대신에 의로운 노아와 그의 세대들은 남겨 두셔서 땅을 다시 채우도록 하셨습니다.
(창 6:8-9) 『그러나 노아는 {주}의 눈에 은혜를 입었더라. 9) 노아의 세대들은 이러하니라. 노아는 의인이요, 그의 세대들 가운데서 완전한 자더라. 그가 [하나님]과 함께 걸었더라.』했습니다. 은혜를 입은 노아는 하나님과 함께 걸었으며 하나님께서는 아담에게 주셨던 복을 그에게 다시 주셨습니다.
(창 9:1-2) 『[하나님]께서 노아와 그의 아들들에게 복을 주시며 그들에게 이르시되, 다산하고 번성하여 땅을 다시 채우라(replenish the earth). 2) 땅의 모든 짐승과 공중의 모든 날짐승과 땅 위에서 움직이는 모든 것과 바다의 모든 물고기가 너희를 두려워하고 너희를 무서워하리니 내가 그것들을 너희 손에 넘겨주었노라.』하셨습니다.
그렇지만 노아 홍수 뒤의 사람들은 어떠했습니까? 죄를 지은 아담의 후손은 여전했습니다. (요 3:6) 『육에서 난 것은 육이요 성령에게서 난 것은 영이니』 하신 대로 죄인은 죄인을 낳고 죄인으로 태어난 자는 또 죄를 지을 뿐입니다. 그들은 온 땅에 흩어지라는 말씀을 거역했습니다. 이는 하나님의 말씀을 정면으로 대적하는 행위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기보다는 모든 문제를 자신들의 생각과 계획대로 해결하자는 것입니다. 그들은 모두 아담의 후손들이므로 홍수심판 이전의 사람들과 다른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그들의 마음에서 생각하여 상상하는 모든 것이 항상 악할 뿐입니다.
(창 11:3-4) 『그들이 서로 이르되, 자, 우리가 벽돌을 만들어 견고히 굽자, 하고는 돌 대신 벽돌을 취하고 회반죽 대신 진흙을 취하며 4) 또 이르되, 자, 우리가 우리를 위하여 도시와 탑을 세우고 탑의 꼭대기를 하늘에까지 닿게 하며 우리가 우리를 위하여 이름을 내고 이로써 온 지면에 널리 흩어짐을 면하자, 하더라.』 이 두 구절을 자세히 살펴봅시다.
그들은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자.] 하지 아니하고 “우리가 벽돌을 만들자.”, “우리가 우리를 위하여 도시와 탑을 세우자.”, “우리가 우리를 위하여 이름을 내자.”, “온 지면에 널리 흩어짐을 면하자”이 말은 하나님께서 “다산하고 번성하여 땅을 채우라. 땅을 정복하라.”하신 말씀과는 완전히 반대되는 것입니다. 모든 일에서 “우리가, 우리를 위하여, 이름을 내고, 흩어짐을 면하자.” 하는 것입니다.
결국 그들의 생각과 상상하는 바는 항상 악하여 하나님을 대적하고 불순종하며 우리문제는 우리가 해결하겠으니 하나님께서는 간섭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들의 생각과 상상하여 이룬 것의 결과가 무엇입니까? 강제적인 흩어짐이었습니다. 그들이 상상도 하지 못할 일이 벌어졌습니다. 그들이 탑을 쌓고 도시를 세우는데 갑자기 서로 말이 통하지 않았습니다. 말이 통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같이 할 수 없습니다. 결국 그들은 도시세우기를 포기하고 말이 통하는 사람들 끼리끼리 온 지면으로 흩어져야했습니다.
(창 11:6-8) 『{주}께서 이르시되, 보라, 백성이 하나요, 또 그들이 다 한 언어를 가지고 있으므로 이 일을 하기 시작하니 이제 그들이 하려고 상상한 어떤 일도 막지 못하리라. 7) 자, 우리가 내려가서 거기서 그들의 언어를 혼잡하게 하여 그들이 서로의 말을 알아듣지 못하게 하자, 하시고 8) 이처럼 {주}께서 거기서부터 그들을 온 지면에 널리 흩으셨으므로 그들이 그 도시 세우기를 그쳤더라.』 사람들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엄청난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주님을 믿는 성도라면 창세기의 이 사건을 모르는 사람들은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이 사건을 충분히 이해하지는 못해도 흥미는 있을 것입니다. 죄인에게서 태어나 죄를 지으며 살아가는 사람들은 이와 같이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 간섭받기를 싫어합니다. 자기 스스로 모든 것들을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이 사건을 읽으면서 오늘날 코로나19 바이러스를 생각하게 됩니다.
사람들은 과학이라는 학문으로 무한한 발전을 해 나가며 지금도 나아가고 있습니다. 마치 하나님이 계시지 않아도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듯이 교만합니다. 사람들은 창조주 하나님을 거부하며 어떤 고난에서도 그분의 도움을 청하지 않을뿐더러 사람들의 인권을 하나님보다 높여 자기들의 이름을 내려고 합니다. 우리가 우리를 위하여 높이 탑을 쌓아 하늘에 닿게 하고 지면에 흩어짐을 면하자. 하던 그대로입니다. 이는 누구와 같습니까? 하나님을 대적하는 이침의 아들 루시퍼와 똑같습니다.
(사 14:13-14) 『네가 네 마음속으로 이르기를, 내가 하늘로 올라가 내가 [하나님]의 별들 위로 내 왕좌를 높이리라. 또 내가 북쪽의 옆면들에 있는 회중의 산 위에 앉으리라. 14) 내가 구름들이 있는 높은 곳 위로 올라가 내가 [지극히 높으신 이]와 같이 되리라, 하였도다.』
우리가 사회생활을 하다보면 유난히 자기를 들어내고 말할 때마다 “내가”, “내가”를 강조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무엇이든 자기가 해 내겠다고 주장합니다. 이 짧은 두 구절에 자기를 나타내는 “내가”라는 말이 여섯 번이나 등장합니다. 결국 하나님을 대적하고 자기가 하나님과 같이 되겠다는 것입니다. 이는 에덴의 동산에 이브를 찾아와 그녀를 속인 사탄의 말과 동일합니다.
(창 3:4-5) 『뱀이 여자에게 이르되, 너희가 절대로 죽지 아니하리라. 5) 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에 너희 눈이 열리고 너희가 신들과 같이 되어 선악을 알 줄을 [하나님]이 아시느니라, 하니라.』 “반듯이 죽으리라”하신 하나님의 말씀을 뱀은 “절대로 죽지 아니하리라”고 바꿔 버렸습니다. 또한 너희가 “신들과 같이”된다는 말이나 [지극히 높으신] 이와 같이 되리라는 말은 같은 말입니다. 결국 창조주 하나님을 창조물인 자신과 같이 여기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갑작스런 자연재해도 스스로 해결하지 못하지만 온 세상을 뒤덮은 코로나19 바이러스도 그렇습니다. 죄인들의 교만은 자신들의 끝없는 노력의 진화로 승리할 수 있다고 믿으며 모든 방면에 물질문명을 발전시키고 과학이라는 것으로 창조질서를 깨뜨리고 있습니다. 이는 사람들이 창조주 하나님과 겨뤄보자는 것입니다. 코로나 바이러스가 온 세상을 뒤덮고 수천만 명이 죽어가도 하나님께 불순종의 죄를 회개하지 아니하고 자신들의 이름을 걸고 백신을 만들고 치료약을 만들고 확진 자를 찾아내는 일에 열심을 내고 있습니다.
바벨탑 사건에서 보듯이 자신들의 노력으로 흩어짐을 면하고 자기들의 이름을 내려고 하지만 하나님께서 그들의 언어를 혼잡하게 하시니까 결국은 언어가 통하는 사람들끼리 강제적인 흩어짐을 당하게 되었습니다.
오늘날 모든 분야의 과학자들이 모여 머리를 맞대고 무엇인가를 만들어 내려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코로나19로 그들의 모든 입을 마스크로 막고 모임을 갖지 못하게 흩으셨으며 강제적으로 거리를 두게 하셨습니다. 이는 모든 사람들이 회개해야합니다.
각국이 자기나라를 지키기 위해서라고 하지만 하나님께서 각 나라의 국경을 차단하게하시고 비행기를 다니지 못하게 하시고 그들의 입을 막으셨으며 모이지 못하도록 하셨습니다. 심지어 다섯 명이 함께 식사도 하지 못하도록 하셨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자신들이 무엇을 잘못했는지를 깨닫지 못하고 자신의 죄들을 회개하지 않습니다. 이 일은 반드시 자신들이 해결하고 이기겠다며 백신을 만들고 치료제를 개발하려고 발버둥 칩니다.
자기들의 과학으로 물질문명을 발전시켜 그것을 누리고 즐기려하지만 과학의 끝은 무엇입니까? 환경파괴입니다. 과학은 당장 사람들에게 편리함과 편안함을 줄지 모르지만 자연 생태계를 파괴시키고 과학자들이 감당하지 못할 질병을 가져다줄 뿐입니다.
주님은 사람들의 과학을 무어라하십니까? 속되고 헛된 말장난이라 하십니다. 거짓이라 하십니다. 그러므로 과학자들이 말하고자 하는 것은 하나님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과학의 끝은 멸망입니다. 사람들의 창안물인 과학은 창조주 하나님을 이길 수 없습니다.
(딤전 6:20) 『오 디모데야, 속되고 헛된 말장난과 또 거짓으로 과학이라 불리는 것의 반론들을 피하며 네게 맡긴 것들을 지키라.』 하셨습니다. 이는 믿지 않는 세상 사람들뿐만이 아니라 하나님을 믿는다는 성도들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을 믿는다 하면서도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순수합니다(시12:6). 사람들은 그 순수한 하나님의 말씀을 가감 없이 순수하게 받아들이고 순종하면 됩니다.
거룩하신 하나님의 순수한 말씀에 더러운 죄인들의 말을 더해서도 안 되고 거룩하신 그 말씀에서 일점일획이라도 빼면 안 됩니다. 순수한 하나님의 말씀에 인간의 학문을 더하거나 자기 생각을 더하거나 듣기 좋게 하려고 없는 말을 더하거나 자기 마음대로 해석하거나 자기 의견과 일치하도록 비유적으로 사용하면 성경에 기록된 재앙들이 그에게 따른다고 경고하셨습니다.
(계 22:18) 『내가 이 책의 대언의 말씀들을 듣는 모든 사람에게 증언하노니 만일 어떤 사람이 이것들에다 더하면 [하나님]께서 이 책에 기록된 재앙들을 그에게 더하실 것이요,』하셨습니다. 성경에는 많은 재앙들이 기록되어있습니다. 재앙중의 재앙은 아담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아니하고 사탄의 더해진 말을 듣고 그대로 행하여 죄를 짓고 에덴의 동산에서 쫓겨난 사건입니다.
(창 3:23-24) 『그런 까닭에 {주} [하나님]께서 에덴의 동산에서 그를 내보내사 그의 출처가 된 땅을 갈게 하시니라. 24) 이같이 그분께서 그 남자를 쫓아내시고 에덴의 동산 동쪽에 그룹들과 사방으로 도는 불타는 칼을 두어 생명나무의 길을 지키게 하시니라.』 아담이 에덴의 동산에서 쫓겨난 사건이야말로 재앙중의 재앙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로부터 모든 사람이 흙으로 돌아갈 때까지 얼굴에 땀을 흘려야 빵을 먹게 되었습니다(창3:19).
하나님의 책에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들에다 무언가를 더하면 이 책에 기록된 수많은 재앙들을 당하게 될 것입니다. 이런 두렵고 무서운 말씀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말씀에 자기 생각을 더하는 일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마치 하나님의 말씀만으로는 무언가 부족하다는 듯이 자기 생각과 자기가 원하는 것들을 첨가합니다. 이는 스스로 재앙을 부르는 일입니다.
또한 순수한 하나님의 말씀에서 무언가를 빼버리는 일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이 또한 성도들에게는 크나큰 손실입니다. 이미 구원 받은 성도들이 하나님의 말씀에서 무언가를 빼버린다면 그가 지옥으로 가지는 않겠지만 그가 받을 부분의 보상을 빼신다고 하셨습니다.
(계 22:19) 『만일 어떤 사람이 이 대언의 책의 말씀들에서 빼면 [하나님]께서 생명책과 거룩한 도시와 이 책에 기록된 것들로부터 그의 부분을 빼시리라.』 하셨습니다. 그런데 목사들 중에서도 성경에서 몇 단어나 몇 구절 빠졌다고 그렇게 호들갑을 떨 필요가 있느냐 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이는 참으로 어리석은 일이며 전능하신 하나님을 전혀 두려워하지 않는 태도며 교만한 일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등 뒤로 버리는 자와 같은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서 더하거나 빼는 일이 대수롭지 않은 일이라면 왜 주께서 성경 곳곳에 더하거나 빼지 말라 하셨습니까? (신 4:2) 『너희는 내가 너희에게 명령하는 말에 더하거나 거기에서 빼지 말고 내가 너희에게 명령하는 {주} 너희 [하나님]의 명령들을 지키라.』 (신 12:32) 『내가 너희에게 명령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그것을 지켜 행하고 너는 거기에 더하거나 그것에서 빼지 말지니라.』 (잠 30:6) 『너는 그분의 말씀들에 더하지 말라. 그분께서 너를 책망하실 터인즉 네가 거짓말쟁이로 드러날까 염려하노라.』 (전 3:14) 『내가 알거니와 무엇이든지 [하나님]께서 행하시는 것은 영원하리라. 그것에 무엇을 더하거나 그것에서 무엇을 뺄 수 없나니 [하나님]께서 그것을 행하시는 것은 사람들이 자신 앞에서 두려워하게 하려 하심이라.』 (렘 26:2) 『{주}가 이같이 말하노라. {주}의 집 뜰에 서서 {주}의 집에서 경배하려고 오는 유다의 모든 도시들에게 내가 네게 명령하여 그들에게 말하라고 한 모든 말을 말하되 한 마디도 감하지 말라.』
이 땅에서 자기부모의 말도 자기 마음대로 더하거나 빼지 못할 진대 하물며 거룩하시고 두려우신 창조주 하나님의 말씀을 더하거나 뺀다는 것은 전적으로 그분을 업신여기는 행위입니다. 아버지의 재산을 더 많이 가지려고 아버지의 유언장에서 형제 이름을 빼거나 자기 이름을 넣거나 숫자 하나를 더 넣는다면 그 유언장은 아무 효력이 없습니다.
저는 가끔 쇼핑몰에서 고급스런 옷이나 신발의 가격표를 잘못보고 실수할 때가 있습니다. 가격표의 0 하나를 빼고 읽고서는 상품이 괜찮다고 생각합니다. 예를 들면 850,000원의 0 하나를 빼고 85,000원으로 읽고 이정도면 살만하다고 여기는 것입니다. 우리는 일점일획이라는 말을 깊이 생각해야합니다. 특히 공부하는 학생들에게 소수점 하나로 답이 틀리는 경우가 많고 0 하나에 자기가 원하는 대학 시험에서 떨어질 수가 있습니다.
만약 여러분들이 누군가에게 돈을 빌리거나 갚을 때 0 하나를 잘못 읽거나 잘못 표기한다면 크나큰 손실을 입게 될 것입니다. 1억의 돈을 받아야 하는데 0 하나를 뺐다면 천만 원을 받게 됩니다. 그러면 그 차액은 9천만 원이 됩니다. 단위가 높을수록 0하나의 값은 상상을 초월합니다. 그런데 어떻게 거룩하신 하나님의 말씀에서 더하거나 뺄 수가 있습니까?
만약 구원 받은 자가 순수한 하나님의 말씀에다 무언가를 더하거나 한 단어라도 빼는 행위는 책망 받을 일이며 하늘에서 받을 보상을 포기하는 행위입니다. 성도들이 주님 앞에 섰을 때 받을 보상이 하나도 없다는 것은 상상할 수 없는 영원한 슬픔입니다.
(고후 5:10-11) 『우리가 반드시 다 그리스도의 심판석 앞에 나타나리니 이로써 각 사람이 좋은 것이든 나쁜 것이든 자기가 행한 것에 따라 자기 몸 안에 이루어진 것들을 받으리라. 11) 그런즉 우리가 [주]의 두려움을 알므로 사람들을 설득하거니와 우리가 [하나님]께 밝히 드러났고 또 너희 양심에도 밝히 드러난 줄로 나는 확신하노라.』
그리스도의 심판석은 죄를 다루는 자리는 아닙니다. 그러나 영원한 생명을 가진 자로서 이 땅에서의 잘못행한 자기 행위 때문에 하늘에서 받을 보상이 사라진다면 그의 영원이란 끔찍한 일입니다. 그리스도의 심판석에서 심판에 따라 받을 보상과 영광의 기쁨은 영원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주님께 받을 보상이 없는 구원은 “불에 의해 받는 것 같이”영원한 부끄러운 구원이 될 것입니다. 우리는 영원한 하늘의 보상을 위해서 이 땅의 많은 것을 포기해야 할 때가 많습니다.
(고전 3:13-15) 『각 사람의 일이 드러나리라. 그 날이 그것을 밝히 드러내리니 이는 그것이 불에 의해 드러나고 그 불이 각 사람의 일이 어떤 종류인지 그것을 시험할 것이기 때문이라. 14) 어떤 사람이 그 기초 위에 세운 일이 남아 있으면 그는 보상을 받고 15) 어떤 사람의 일이 불타면 그는 보상의 손실을 당하리라. 그러나 그 자신은 구원을 받되 불에 의해 받는 것 같이 받으리라.』
“불에 의해 받는 구원”은 불앞에서 얼굴이 화끈 거리는 것 같은 부끄러운 구원을 말합니다. 지난 일요일 김원광 형제님은 시간을 아끼라고 설교하셨습니다. 이는 주어진 시간을 자기를 위해 쓰지 말고 주님을 위해 쓰라는 것입니다. 하늘의 보상을 위해 시간들을 되찾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주님께서 구원 받은 우리를 데리러 오실 때에 빈손으로 오시지 않고 각자가 주를 위한 행위에 따른 보상을 주시기 위하여 오신다고 하셨습니다. 영원의 세계에서 하나님 아버지를 위한 왕과 제사장의 영광과, 해와 달과 별의 영광을 받고 높은 지위와 부요하게 살고자 하는 자들은 지금 이 땅에서 시간을 아끼어 주를 위한 삶을 살아야할 것입니다.
(계 22:12-14) 『보라, 내가 속히 오리니 내가 줄 보상이 내게 있어 각 사람에게 그의 행위에 따라 주리라. 13) 나는 [알파]와 [오메가]요 시작과 끝이요 처음과 마지막이라. 14) 그분의 명령들을 행하는 자들은 복이 있나니 이것은 그들이 생명나무에 이르는 권리를 소유하게 하며 그 문들을 지나 그 도시로 들어가게 하려 함이로다.』 하셨습니다.
“그분의 명령들을 행하는 자들은 복이 있나니”이 복은 영원히 누릴 복이며 영원히 소멸되지 않는 영광입니다. 혹시 상 받을 일을 하지는 못할망정 하나님의 순수한 말씀을 가감하여 책망들을 일은 하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더 좋은 부활”이란 말을 들어봤습니까? 구원 받은 우리 모두가 부활할 것인데 믿음의 사람들은 더 좋은 부활을 얻으려고 이 땅에서 부당한 일을 당하는 것은 물론이고 심한 조롱을 당하거나 채찍에 맞거나 결박당하거나 고문 받거나 굶주리거나 돌로 맞기도 하고 톱으로 잘려 죽기도 했습니다.
더 좋은 부활이 무엇입니까? 하늘에서 받을 영원히 빛나는 보상입니다.
(히 11:35-38) 『여인들은 자기들의 죽은 자를 다시 살려서 받기도 하며 다른 이들은 고문을 당하되 더 좋은 부활을 얻으려고 구출받기를 원치 아니하였으며 36) 또 다른 이들은 심한 조롱과 채찍질뿐 아니라 참으로 또한 결박과 옥에 갇히는 시련도 겪었으며 37) 돌로 맞기도 하고 톱으로 잘리기도 하며 시험을 받기도 하고 칼로 죽임을 당하기도 하며 양 가죽과 염소 가죽을 입고 떠돌아다니며 궁핍과 고난과 고통을 당하였으니 38) (세상은 이런 사람들에게 합당치 아니하였느니라.) 그들이 사막과 산과 동굴과 땅굴에서 떠돌아다녔느니라.』
성도들은 영원히 변하지 않고 썩지 않을 하늘의 보상을 위하여 이 땅의 썩을 것들을 포기할 줄 아는 믿음과 용기가 있어야합니다. 이 땅의 목숨보다 더 소중한 것이 하늘에서 받는 보상입니다. 더 좋은 보상을 받는 더 좋은 부활을 얻으려고 이 땅의 것들을 배설물로 여기는 믿음의 성도들이 되시기를 간절히 부탁드립니다.
잠시 육신의 삶인 이 땅의 인생을 살펴봅시다.
인생이란 무엇입니까? 성경은 사람의 생명을 무어라 말씀하십니까?
잠시 나타났다가 곧 사라져 버리는 수증기라고 하셨습니다.
(약 4:14) 『내일 있을 일을 너희가 알지 못하는도다. 너희 생명이 무엇이냐? 그것은 곧 잠시 나타났다가 그 뒤에 사라져 버리는 수증기니라.』하셨습니다. 잠시 나타났다가 사라질 수증기 같은 여러분의 짧은 육신의 생명을 주님을 위하여 소비한다면 주님으로부터 엄청난 복을 받고 보상을 받으며 그것을 영원토록 누릴 것입니다.
세상의 모든 영광은 잠시 피었다 지는 꽃이라고 하셨습니다. 사람마다 다르기는 하지만 각자는 슬픈 일도 있고 기쁜 일도 있으며 많은 사람들로부터 부러움과 영광을 받을 일들도 있을 것입니다. 작게는 졸업의 영광이나 결혼의 행복이나 금메달의 영광들이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고 세월이 흐르면 모든 사람들의 기억에서 사라지고 맙니다. 그것이 세상의 영광입니다.
(벧전 1:24-25) 『모든 육체는 풀과 같고 사람의 모든 영광은 풀의 꽃과 같으니라. 풀은 마르고 그것의 꽃은 떨어지되 25) 오직 [주]의 말씀은 영원토록 지속되나니 복음으로 너희에게 선포된 말씀이 이 말씀이니라.』 이 땅에서의 부귀영화는 잠시잠깐입니다. 이 땅에서 잠시 누릴 육체의 영광을 위하여 땀 흘리는 것도 좋지만 영원토록 지속되는 주의 말씀을 위하여 금 같은 시간과 꽃다운 청춘을 주님을 위하여 소비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이 땅에서 육신이 받는 영광은 풀의 꽃과 같이 시들지만 하늘에서 받는 보상과 그 영광은 영원토록 지속된다는 사실을 잊지 마십시오.
육신의 생명은 빈손으로 와서 잠시 머물다가 빈손으로 가는 나그네입니다.
(딤전 6:7) 『우리가 이 세상에 아무것도 가지고 오지 아니하였은즉 아무것도 가지고 가지 못할 것이 확실하니』 이 땅의 것은 제아무리 좋아도 하늘에서는 쓸모없으며 가져가지도 못합니다. 썩을 육신을 위하여 시간을 허비하지 말고 영원한 복락을 누리기 위하여 주를 위한 삶을 살기 바랍니다.
(벧전 2:11) 『극진히 사랑하는 자들아, 나그네와 순례자인 너희에게 내가 간청하노니 혼을 대적하여 싸우는 육체의 정욕들을 삼가라.』 나그네와 순례자에게 짊어진 짐이 많으면 많을수록 괴롭고도 고달픕니다. 먹을 것과 입을 것이 있으면 그것으로 만족해야합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는 목적이 육신의 영광이어서는 안 됩니다. 육체의 정욕들을 버리십시오.
(고전 15:19) 『만일 우리가 이 세상 삶을 사는 동안에만 그리스도 안에서 소망을 갖는다면 모든 사람들 중에 우리가 가장 비참한 자니라.』 하셨으니 이 땅에서 사람들이 누리는 것으로 믿음을 평가해서는 안 됩니다. 이 땅에서 받는 복으로 만족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나그네로 살아가는 이 땅에다 미련두지 말아야합니다. 이 땅에 소망을 두는 사람들과 하늘에 소망을 두는 사람들의 차이는 상상을 초월합니다.
오늘날 교회들이 성도들에게 복 받으라 강조하고 출세하고 부자 되어 부귀영화를 누리라고 부추기고 세상의 머리가 되고 꼬리가 되지 말라고 설교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주께서 하신 말씀들이 아닙니다. 주님은 이 땅에서의 성도들의 생활방식이 무어라고 하셨습니까?
오늘 본문으로 읽은 말씀을 살펴보겠습니다.
(빌 3:17) 『형제들아, 너희는 함께 나를 따르는 자가 되고 또 너희가 우리를 본보기로 삼은 것 같이 그렇게 걷는 자들을 주목하라.』 사도 바울은 이 땅에서 성도들의 생활방식이 어떠한지 자신을 모델로 삼으라했습니다. 그는 자신의 부귀영화를 위해 일하지 않았습니다. 오직 주님의 영광을 위하여 평생을 바쳤습니다.
(빌 3:18) 『(내가 여러 번 너희에게 말한 적이 있고 지금도 눈물을 흘리며 너희에게 말하는 많은 사람들 곧 그들이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원수로 걷느니라.』 많은 사람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거부하거나 혹은 그분을 믿는다고 말하는 사람들조차도 그리스도를 위하여 살지 않고 자신의 부귀영화를 위하여 사는 것을 안타까워했습니다. 사도 바울이 눈물을 흘리며 권고하는 것은 육신을 위하여 살지 말고 영원한 보상을 위하여 살라는 것입니다. 그리스도를 빙자한 사람들이 이 땅에서 추구하는 것들이 무엇입니까?
(빌 3:19-20) 『그들의 마지막은 파멸이요 그들의 [하나님]은 그들의 배요 그들의 영광은 그들의 수치스러운 일에 있고 그들은 땅의 일들을 생각하느니라. 20) 우리의 생활 방식은 하늘에 있으며 거기로부터 또한 우리가 [구원자] [주] 예수 그리스도를 기다리노니』 우리는 이 땅에서 나그네입니다. 땅의 것을 추구하는 사람들과 하늘의 것을 소망하는 사람들의 가치는 하늘과 땅차이입니다. 썩을 것과 썩지 않을 것의 차이입니다.
우리의 소망은 이 땅에 있지 않고 우리를 데리러 오실 그리스도에게 있습니다.
(빌 3:21) 『그분께서는 모든 것을 자기에게 복종시킬 때 사용하는 능력을 발휘하사 우리의 천한 몸을 변화시켜 자신의 영광스러운 몸과 같게 만드시리라.』 은혜와 긍휼이 풍성하신 주님은 우리의 더러운 죄들을 씻어 주시고 자신 안에 받아 주셨습니다. 우리의 목표는 그분과 같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아들들인 우리는 우리 앞에 나타나실 그분과 같게 되는 것입니다. (요일 3:2-3) 『사랑하는 자들아, 이제 우리는 [하나님]의 아들들이니라. 우리가 앞으로 어떻게 될지는 아직 나타나지 아니하였으되 그분께서 나타나시면 우리가 그분과 같게 될 줄 아노니 이는 우리가 그분을 그분께서 계신 그대로 볼 것이기 때문이라. 3) 그분 안에서 이 소망을 가진 자마다 그분께서 순결하신 것 같이 자기를 순결하게 하느니라.』하셨습니다.
모세는 120년을 살았는데 죽을 때까지 그의 눈이 어둡지 아니하고 타고난 힘이 줄지 않았습니다(신34:7). 그러나 그는 시편에 노래하기를 『우리의 햇수의 날들이 칠십 년이요, 강건하면 팔십 년이라도 그 햇수의 위력은 수고와 슬픔뿐이니 그 위력이 곧 끊어지매 우리가 날아가 버리나이다.』(시 90:10) 했습니다. 그의 회고록은 “수고와 슬픔뿐”이었습니다.
창조주 하나님의 창조의 목적과 달리 죄를 지은 인생은 태어나는 자체가 고생의 시작입니다. 욥기에서 말씀하기를, (욥 5:7) 『불티가 위로 날아가는 것 같이 사람은 고생하려고 태어나느니라.』했습니다.
솔로몬은 당대 최고의 권력을 누리며 세상 모든 사람들이 그를 두려움과 부러움을 살 만큼 부귀와 영화를 누리고 살았으나 그의 삶의 결론은 해 아래의 모든 것이 헛되고 헛되다고 했습니다. (전 1:1-3) 『다윗의 아들 예루살렘 왕 선포자의 말씀들이라. 2) 선포자가 이르되,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 3) 사람이 해 아래에서 행하는 자기의 모든 수고에서 무슨 유익을 얻으리요?』했으니 우리 모두는 이 세상 삶을 육신을 위한 헛된 삶으로 끝내지 맙시다. 용기를 내고 분발하여 주님 앞에 죄들을 회개하고 주님의 영광을 위하여 좀 더 힘을 내시기 바랍니다.
이 땅에서의 성도들의 삶의 방식은 그리스도를 위하여 그리스도의 냄새를 풍기는 예수쟁이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고후 2:14) 『항상 우리를 그리스도 안에서 승리하게 하시고 우리를 통해 모든 곳에서 그분을 아는 냄새를 풍기게 하시는 [하나님]께 이제 감사하노라.』 아멘!!
2021-01-25 17:02: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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