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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참 행복합니다.

말씀 : 디모데후서 1:1~5. 2021년 2월 14일 일요일 오전 11시

목회를 오래하다 보니 우리 교회에서 장성한 청년들이 장가가고 시집가서 아이들을 낳고 그들이 성장하는 모습을 계속 보게 되는데 특히 우리 교회에서 태어나고 자라가는 아이들이 모두 귀하고 사랑스럽지만 정말 기억에 길이 남고 자랑스럽고 대견한 아이들이 있습니다.
그 중의 한 아이는 태어날 때부터 눈이 크고 예쁘게 생겼는데 걷기시작하면서 처음 보는 사람들에게도 낮 가림 없이 다가가 예쁜 짓을 하여 많은 사람들에게 인기가 많았습니다. 그 아이도 커가면서 아빠엄마와 함께 성경을 읽다보니 지혜롭고 영특하여 남달리 성경을 잘 알아듣고 질문도 많이 했습니다.
어느덧 곱게 자라서 금년엔 고등학교를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초, 중학교 과정을 거치면서 믿지 않는 아이들에게 많은 상처도 받았지만 그럴 때마다 어떻게 해야 하는가를 질문하며 믿음으로 위기를 잘 넘겼고 어려서부터 듣고 읽은 성경말씀들이 그 아이를 지켜주고 가족의 기도가운데 주님께 위로 받으며 넘어지지 않았습니다.
6년 전 여러 가지 일들로 이사를 가게 되었고 지금은 다른 교회에 출석하고 있지만 명절마다 귀한 선물을 들고 찾아와 “우리 목사님”이라며 품에 안길 때마다 마음이 따뜻하고 기쁘고 즐거웠습니다. 그 아이의 엄마가 하는 말이 지금도 이 아이에게는 “우리 목사님”은 오직 한분 목사님뿐이라고 한답니다.
사실 그의 아버지와 엄마가 결혼초기 심각한 성격차이로 이혼 도장 찍으러 가정법원에 가있다는 소리를 전해 듣고 급히 달려가 데리고 와서 기도와 말씀으로 치유 받고 지금은 그 어떤 가정보다 화목하게 믿음을 지키면서 잘 살고 있습니다.
이처럼 우리를 구원하신 분도 살아 계신 하나님의 말씀이요, 말씀의 권능으로 우리를 바로 잡아주시며 그 말씀을 믿고 따를 때 잘못된 생각들을 바꾸어 주시며 바른 길로 인도해 주십니다. 지난달에는 그 아이가 그동안 열심히 기도하며 공부하여 소망한 국제 고에 합격했다는 소식을 전해 와 함께 기뻐했습니다. 그들은 저에게 감사하며 공을 돌리려 하지만 이모든 것은 살아 있는 권능의 말씀을 따를 때 일어나는 작은 기적들입니다.
(히 4:12)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권능이 있으며 양날 달린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둘로 나누기까지 하고 또 마음의 생각과 의도를 분별하는 분이시니』하신 대로입니다.
그 가정이 믿음으로 굳게 서 있는 현재의 모습을 볼 때 감개무량하며 목회의 보람을 느끼기도 합니다. 정말 이런 것이 하나님의 은혜요, 말씀의 권능이요, 말씀을 가르치는 목회자의 행복이라 생각합니다.
주께도 그러하듯이 목사에게 소중하지 않은 성도나 어린이는 하나도 없습니다. 개중에는 유난히 아픈 손가락도 있고 자기 생각을 굽히지 않는 고집 센 성도도 있고 약한 믿음에 신경이 쓰이는 성도들도 있고 생각만 하면 안타까워 저절로 기도가 나오는 아이들이나 성도들도 있습니다.
목사는 모든 성도들을 사랑하고 그들을 위해서 기도하고 보살펴야 하지만 특별히 사랑스럽고 자랑스럽고 보물 같은 아이들이나 성도들이 있음을 숨길 수 없습니다. 정말 힘든 목회생활 가운데에서도 그런 아이들이나 그런 성도들은 목사에게 비타민이 되고 힘이 되고 보람을 느끼게 하는데 그들이 바로 나를 매우 행복하게 하고 있습니다.
저는 화가는 아니지만 화가가 그림을 그리려고 할 때마다 깨끗하고 하얀 백지에다 그림을 그리고 싶을 것입니다. 물론 내가 어릴 적엔 하얀 백지가 그리 많지 않았습니다. 정말로 귀했습니다. 백지에 그림을 그리다가 잘못 그리거나 마음에 들지 않을 때 다른 새 종이를 쓸 수 있는 지금은 그만큼 풍요롭습니다. 그러나 흰 종이가 귀하던 옛날에는 이미 그린 그림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지우개로 지우고 거기에 다시 그립니다. 그렇게 지우고 다시 그리는 그림은 이래저래 마음에 들지 않습니다. 먼저 그리다 지운 도화지는 새 도화지 같이 깨끗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제가 왜 이런 말을 할까요? 전도를 하다보면 순수하고 깨끗한 혼이 있는가 하면 아주 더러운 혼도 있습니다. 이미 더럽혀진 혼은 마치 어떤 그림을 그렸던 종이 같이 깨끗하지 않고 깨끗하게 지워지지도 않을뿐더러 지우려고 애를 써보아도 여전히 더러워 그림이 예쁘게 그려지지 않습니다.
저는 어린아이의 혼이 그러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은 동일한 백지 같은 혼들인데 그림이 잘 그려지는 백지 같은 혼이 있고 열심히 그리려고 수고해도 잘 그려지지 않는 혼도 있습니다. 그 이유는 아이가 어떤 부모 밑에 어떤 환경에서 자랐느냐에 달렸다고 봅니다.
주님은 어린아이와 같이 순수하고 깨끗한 혼을 매우 좋아하십니다. 거기에 그리스도의 바른 교리로 하나님의 말씀의 씨를 심으면 깨끗한 새순이 나고 자라고 깨끗한 열매를 맺는 것은 참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그 부모와 목자를 매우 기쁘게 합니다.
성경인물 중에는 디모데가 그와 같은 사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가 어떤 환경에서 누구의 영향을 받고 자랐는가? 그것이 대단히 중요합니다. 디모데는 아주 믿음이 좋은 가정에서 태어났고 어려서부터 성경을 배우며 자랐습니다.
디모데에게는 육신의 아버지도 있고 어머니도 있고 할머니도 있지만 사도 바울은 디모데를 자신의 아들이라 생각하며 그렇게 부르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이 디모데를 볼 때 그 속에 꾸밈없는 믿음이 있다고 말했습니다. 그 꾸밈없는 믿음이 자연적으로 생긴 것이 아니라 꾸밈없는 믿음을 소유한 그의 할머니와 어머니가 있기 때문이라 했습니다.
(딤후 1:5) [내가 네 속에 있는 꾸밈없는 믿음을 회상하노니 그것은 먼저 네 할머니 로이스와 네 어머니 유니게 속에 있었으며 네 속에도 있는 줄을 내가 확신하노라.] 했는데 이는 윗물이 맑아야 아랫물이 맑다고 한 속담에 비유할 수 있습니다. 디모데의 어머니와 할머니에게 꾸밈없는 믿음이 있었으므로 디모데에게도 그와 같은 믿음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디모데가 어떻게 그런 믿음을 갖게 되었을까요? 그는 어려서부터 어머니와 할머니에게 성경을 배워서 알았고 순수하게 말씀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화가가 깨끗한 도화지에 좋은 그림을 그린 것같이 어리고 깨끗한 디모데의 혼 위에 할머니와 어머니를 통해서 꾸밈없는 바른 믿음이 심겨졌습니다.
이런 말씀을 읽을 때 아이를 가진 부모님들은 무슨 생각을 하게 될까요?
우리 교회는 어린아이가 글씨를 읽기 시작하면서부터 그의 부모와 함께 매일 성경을 읽습니다. 저는 매달 성경읽기 표를 만들어 성도들에게 나누어 줍니다. 그렇다고 모두 순종하여 읽지는 않는 것 같습니다. 매일 성경을 읽으라는 광고는 계속하지만 강제적으로 숙제 검사하듯 하지는 못합니다. 그들이 순종하며 자율에 맡길 수밖에 없습니다.
어린이들은 복음을 제대로 알지 못합니다. 그들이 구원이 무엇인지 깨닫거나 구원의 확신을 갖게 되는 것은 많은 시간이 걸리고 구원 받았는데도 그것을 스스로 확신하기도 쉽지 않습니다. 그런데 저는 아이들의 말에서나 행동에서 그가 구원 받았다는 확신을 아이들 본인 보다 제가 더 확실하게 느낄 때가 있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일들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어린이가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사해 주시려고 십자가에 피 흘려 죽으심을 믿음으로 구원 받는 다는 공식은 몰라도 어린이가 성경을 읽고 무슨 내용인지 믿거나 설교를 듣고 이해한다는 것으로서 저는 그 아이 안에 꾸밈없는 믿음이 있음을 알게 됩니다.
(딤후 3:14-15) [그러나 너는 배워서 확신하게 된 것들 안에 거하라. 네가 그것들을 누구에게서 배운 줄 알며 15) 또 어린아이 때부터 네가 거룩한 성경 기록들을 알았나니 그것들은 능히 너를 지혜롭게 하여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 있는 믿음을 통해 구원에 이르게 하느니라.]하셨습니다.
어린이에게 성경을 가르치고 그가 성경을 읽고 배우면 그 성경 기록들이 그 어린이를 지혜롭게 하고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 있는 믿음을 통해 구원에 이르게 한다고 말씀합니다. 어떤 사람들에게는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은 인쇄된 문자요 하나의 두꺼운 책으로 보일지 몰라도 분명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있고 권능이 있습니다.
주께서도 말씀하셨습니다. (요 5:39) [성경 기록들을 탐구하라. 너희가 그것들 안에서 영원한 생명을 얻는 줄로 생각하거니와 그것들은 곧 나에 대하여 증언하는 것들이니라.] 성경은 영원한 생명을 주는 책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증언하는 책입니다. 누군가 수 만권의 명작을 읽었다 하더라도 성경을 읽지 않았다면 그는 생명 없는 책을 읽은 사람입니다. 어떤 사람의 서재에 수천수만 권의 책들이 있더라도 성경이 없다면 모두 죽은 책들일 뿐입니다.
세상을 살면서 상처받은 청년들이나 지친 어른들은 마음이 순수하지 못합니다. 교회를 오래 다닌 사람들도 그 마음이 순수하지 못하면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들도 있고 어느 부분은 하나님의 말씀이고 어느 부분은 사람들의 생각과 의견이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고 어느 부분은 믿고 어느 부분은 믿지 않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누군가 기록된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지 못하는 부분이 있다면 그것은 이미 하나님의 말씀이 아닙니다. 그리고 어느 부분만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는다면 그 어느 부분을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누가 정합니까? 누가 선택합니까? 그토록 불안정한 성경이라면 그 믿음조차도 완전할 수 없는 것은 너무나도 확실합니다. 그런 사람이야말로 자기가 믿고 싶은 것만 믿는 사람입니다. 그런 사람은 하나님을 두려워하지도 않고 하나님은 단지 자기의 부탁을 들어주는 요술램프의 제니에 불과합니다.
주님은 성경 어느 부분만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하시지 않습니다. 모든 성경 기록은 하나님의 영감으로 주셨으므로 이 성경교리로 책망하고 바로잡고 의로 교육해야합니다. 바른 성경으로 바로잡지 못하면 하나님의 신실한 사람이 될 수 없습니다. 혹시 그가 청년이 되어 신학대학을 다녔거나 유학을 했거나 유명신학교를 나왔어도 바른 성경으로 교육받지 못했다면 그를 하나님의 사람으로 모든 선한 일에 철저히 갖추어 졌다고 말하기는 어렵습니다.
(딤후 3:16-17) [모든 성경 기록은 [하나님]의 영감으로 주신 것으로 교리와 책망과 바로잡음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17) 이것은 [하나님]의 사람이 완전하게 되어 모든 선한 일에 철저히 갖추어지게 하려 함이라.] 하셨습니다.
어린 아이들은 참으로 순수합니다. 그리고 성경을 가르치면 순수하게 받아들이고 순수하게 믿습니다. 그런 아이의 모습을 보는 그의 부모나 목회를 하는 저는 참으로 행복합니다. 그런 아이가 우리 교회에서 자라고 있는데 어찌 행복하지 않고 어찌 감사하지 않겠습니까? 어찌 기쁘지 않겠습니까?
우리 교회에서 청년으로 계속 헌신하다 결혼하고 세 자녀를 둔 한 가정이 있습니다. 그 첫째가 금년 3월이면 초등학교 2학년이 됩니다. 그 아이는 참으로 영특합니다. 동생들도 잘 돌보고 엄마아빠 말도 잘 듣는 마음이 고운 효녀 맏딸입니다. 거기다 예쁘기까지 합니다. 보물 중의 참 보물입니다.
그 어린이가 엄마 아빠와 온 가족이 함께 성경을 읽다가 질문을 했습니다. 부활하신 주님은 왜 마리아에게 “내게 손을 대지 말라.”하셨습니까? 대개는 관심 없이 읽고 넘어가지만 그 아이에게는 그것이 궁금했습니다. 참으로 기특하고 예쁘지 않습니까? 우리 모두 그 질문 속으로 들어가 보겠습니다.
(요 20:16-17) [예수님께서 그녀에게, 마리아야, 하시거늘 그녀가 돌이켜 그분께, 랍보니여, 하니 이것은, 선생님이여, 라는 말이라. 17) 예수님께서 그녀에게 이르시되, 내게 손을 대지 말라. 내가 아직 내 [아버지]께로 올라가지 아니하였노라. 다만 내 형제들에게 가서 그들에게 이르되, 내가 내 [아버지] 곧 너희 [아버지], 내 [하나님] 곧 너희 [하나님]께로 올라간다, 하라, 하시니]
수많은 성도들이 성경을 읽고 설교를 들어도 그런 질문을 하는 어른이나 어린이가 없었습니다. 이문제가 어렵고 쉽고를 떠나서 성경을 읽다가 잘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이 있다는 것은 그가 성경을 읽을 때에 건성으로 읽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성경의 모든 부분을 잘 받아들이고 있는 것입니다.
믿음이 없는 사람들에게는 성경 읽기가 고역입니다. 성경이 곧 수면제입니다. 주님을 사랑하지 않거나 믿어지지 않는다면 성경이 재미가 하나도 없습니다. 고리타분하고 지루할 따름입니다. 그런데 그 어린이에게는 성경이 오묘하고 달고 재미있습니다. 그 어린이는 아마도 예수님께서 지상에 계신다면 그분에게로 달려가 벌써 그분의 품에 안겼을 것입니다. 우리는 잠간 어린아이들을 주님께로 데리고 온 부모들과 제자들의 모습을 살펴봅시다.
(막 10:13-16) [그들이 어린아이들을 그분께 데려와 그분께서 그들을 쓰다듬어 주시게 하매 그분의 제자들이 그들을 데려온 자들을 꾸짖거늘 14) 예수님께서 그것을 보시고 심히 기뻐하지 아니하사 그들에게 이르시되, 어린아이들이 내게 오는 것을 허락하고 그들을 막지 말라. [하나님]의 왕국은 그런 자들의 것이니라. 15) 진실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누구든지 어린아이와 같이 [하나님]의 왕국을 받아들이지 아니하는 자는 그 안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하시며 16) 팔로 그들을 안고 그들에게 안수하시며 그들을 축복하시니라.]
어린아이의 부모들은 자기 아이들이 주님께 안기어 축복받는 것을 좋아하나 제자들은 아이들이 주님을 귀찮게 할까봐 아이들이 주님께 다가가는 것을 막았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오히려 순수한 어린 아이들을 사랑하시고 그들이 자기에게 오는 것을 막지 말라 하셨으며 그들에게 안수하시고 축복하셨습니다. 우리는 어린아이들을 빨리 주님께로 데려 와야 합니다. 아이들의 마음이 세상으로부터 상처받고 멍들고 굳어지기 전에 열심히 데려와야 합니다.
우리가 거리에서 복음을 전하며 “예수님 믿고 구원 받으세요”하면 지나가는 사람들이 혀를 차며 참 할 일 없는 사람들도 많네, 하며 불쌍하게 여깁니다. 또 “예수님 믿고 천국 가세요.”하면 천국이 있는지 지옥이 있는지 가봤냐? 묻고 조롱하고 비웃습니다. 성도들 가운데에도 하나님의 왕국이 어디에 있느냐? 모르는 이들도 많습니다.
이들은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을 순수하게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입니다.
제가 말한 그 어린이는 유년부 김은설입니다. 은설이가 질문한 내용을 보아 그녀는 주님의 부활을 믿고 있습니다. 주님의 죽으심과 장사지낸 일들이나 부활하신 것을 믿는데 주님을 찾아간 마리아가 부활의 주님을 보고 너무 반가워 붙잡으려하자 “내게 손을 대지 말라.”하신 것이 이상스럽게 여겨졌던 것입니다. 왜 주님께 손을 대면 안 되는지가 궁금했습니다.
제가 은설이를 기특하게 여기는 것은 성경을 읽다가 의문이 생기면 아빠나 엄마와 같이 질문을 한다는 것입니다. 은설이는 그 내용을 더 확실하게 알고 싶어 합니다. 어찌 그런 은설이를 예쁘게 보지 않겠습니까? 얼마나 기특합니까? 그런 은설이를 사랑하지 않고서는 견딜 수가 없습니다. 그리고 이 어린이는 같은 장면인 것 같은데 마태복음에서는 예수님의 발을 붙잡았다는 것이 이상했습니다.
주님이 요한복음에서 자신에게 손을 대지 말라고 하신 것은 부활의 주께서 자신을 아버지께 보이시기 전이라는 것을 압니다. 기록된 문장대로라면 부활의 주님은 아직 아버지께로 올라가지 않으셨습니다. 그리고 주께서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 가셨다가 와서 제자들을 만나러 가신다고 하셨습니다.
(요 20:17) [예수님께서 그녀에게 이르시되, 내게 손을 대지 말라. 내가 아직 내 [아버지]께로 올라가지 아니하였노라. 다만 내 형제들에게 가서 그들에게 이르되, 내가 내 [아버지] 곧 너희 [아버지], 내 [하나님] 곧 너희 [하나님]께로 올라간다, 하라, 하시니]
은설이는 마리아와 같이 예수님을 몹시 사랑합니다. 그분을 보고 싶어 합니다. 그분의 품에 안기어 재롱도 떨고 그분께 쓰다듬을 받고 싶어 합니다. 어찌 이런 아이가 사랑스럽지 않습니까? 성경을 읽고 지혜를 얻어가는 은설이야 말로 보물 중의 보물이요, 비타민 덩어리입니다. 이런 아이가 있는 교회는 행복한 교회요, 저는 참으로 행복한 목사입니다.
성경을 보십시오. 시몬 베드로와 예수님께서 사랑하신 다른 제자(요한을 말함)는 주님이 묻혔던 빈 무덤만 보고 천사들의 말을 듣고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요 20:10) [이에 제자들이 다시 자기들의 집으로 돌아가니라.] 그게 다입니다.
어쩌면 제자들은 주님의 빈 무덤이나 천사들을 보고 두려워했는지 모르겠으나 마리아는 예수님의 행방이 몹시 궁금해서 빈 무덤을 떠나지 못하고 다시 들여다보며 슬피 울었습니다. 그때까지는 주님의 부활을 믿지 못하고 누군가 주님의 시체를 옮겨 갔다고 생각했습니다.
(요 20:11-12) [그러나 마리아는 바깥의 돌무덤에 서서 슬피 울더라. 그녀가 슬피 울면서 몸을 구부려 돌무덤 속을 들여다보고는 12) 흰옷을 입은 두 천사가 예수님의 몸이 놓였던 곳에 하나는 머리 쪽에 다른 하나는 발 쪽에 앉은 것을 보니라.]
마리아가 주님을 얼마나 사랑하고 그분을 얼마나 보고 싶어 합니까? 마리아는 귀한 나드 향을 주님의 발에 붓고 자기 머리털로 주님의 발을 씻던 마음씨 곱고 아름다운 여인입니다. 주님을 사랑하는 은설이도 그녀와 같습니다. 주님을 더 알아가고 싶은 예쁜 마음이 보입니다.
제자들은 빈 무덤만 들여다보고 천사들의 말만 듣고 그냥 돌아갔으나 마리아는 계속 주님을 찾으므로 부활의 주님은 그녀에게 제일 먼저 보이셨고 그녀는 반가워 그분께 손을 대려하자 그분이 “내게 손을 대지 말라.”하신 말씀을 들었으며 그녀는 그분께서 명령하신 대로 제자들에게 가서 부활하신 주님을 만난 사실과 주께서 아버지께로 올라가신 다고 하신 말씀을 전하려고 제자들에게 달려갈 때에, 아버지께 다녀오신 예수님이 마리아 일행에게 다시 나타나신 것입니다.
(마 28:8-9) [그들이 두려움과 큰 기쁨을 가지고 서둘러 돌무덤을 떠나 그분의 제자들에게 말을 전해 주려고 달려가더라. 9) 그들이 그분의 제자들에게 말하러 갈 때에, 보라, 예수님께서 그들을 만나 이르시되, 다 잘 있느냐, 하시거늘 그들이 나아와 그분의 발을 붙잡고 그분께 경배하니]했습니다.
마태복음과 요한복음을 살펴보니 부활의 주께서 마리아에게 보이신 뒤에 아버지께 다녀온 것이 확실합니다. 그런데 은설이의 질문은 부활의 주께서 왜 마리아에게 “내게 손을 대지 말라.”하셨는가가 입니다. 문장대로라면 주께서 아버지께 올라가기 전이므로 누구도 그분에게 손을 대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궁금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부활 후 첫 열매로 자신을 아버지께 보이고 또 아버지께 자신을 화평케 하는 헌물로 드려야했습니다. 어렵게 생각할 필요는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들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신 것은 죄인들의 모든 죄를 대신 지고 십자가에 죽게 하신 것인데 그 모든 것을 명령하신대로 다 행하고 죽으셨다가 일어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세상 죄를 지옥에 내려놓으시고 올라오신 것은 모든 사람들의 죄를 해결하셨다는 증거가 바로 부활이므로 그 모습을 먼저 아버지께 보여 “화해 헌물”로 드리려는 것입니다.
(요일 2:2) 『그분은 우리의 죄들로 인한 화해 헌물이시니 우리의 죄들뿐 아니요 온 세상의 죄들로 인한 화해 헌물이시니라.』 이런 일은 영원히 단 한번 있는 일입니다. 두 번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간단한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아들이 군대에 갔습니다. 모든 의무를 다 마치고 제대를 했다면 제대하는 날 제일 먼저 누구에게 자신을 보여야 할까요? 부모님입니다. 또, 장수가 적과의 싸움에서 적을 물리치고 승리했다면 제일 먼저 누구에게 승리를 보고하고 자신을 보여야 할까요? 그 나라의 왕입니다.
은설이가 학교에서 전교 1등을 하고 상장을 받았다면 제일 먼저 누구에게 알리고 또 보이고 싶을까요? 당연히 엄마 아빠에게로 달려 갈 것입니다. 예수님도 마찬가지로 아버지의 명령을 다 지키고 승리하셨음을 아버지께 보여 드리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부활의 첫 열매이십니다.
(고전 15:20) [그러나 이제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들로부터 일어나사 잠든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도다.], (고전 15:23) [그러나 각 사람이 자기 차례대로 되리니 먼저는 첫 열매인 그리스도요, 그 다음은 그리스도께서 오실 때에 그분께 속한 사람들이라.]
부활하신 주께서 아버지께 자신을 보이시고 자신을 그분께 “화해 헌물”로 드렸듯이 세상을 심판하시고 승리하신 뒤에도 그리스도의 왕국을 아버지께 넘겨 드려야합니다. (고전 15:24) [그때에 끝이 오리니 곧 그분께서 모든 치리와 모든 권세와 권능을 물리치시고 왕국을 [하나님] 곧 [아버지]께 넘겨 드리실 때라.] 하셨습니다.
몇 가지 아버지를 뵙는 예를 더 들어 보겠습니다. 우리는 잘 모르지만 하나님께서는 천사들에게 세상의 어린아이들을 보살피라는 명령을 하셨고, 그들에 대한 보고를 하라는 명령을 받은 천사들은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얼굴 앞에 항상 자기들을 보이며 보고를 해야 했습니다.
(마 18:10) [너희가 이 작은 자들 중의 하나라도 업신여기지 않도록 조심하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늘에서 그들의 천사들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얼굴을 항상 바라보느니라.] 했습니다. 이와 같이 예수님도 아버지께 받은 명령들을 끝마치고 부활하신 다음 먼저 아버지께 자신을 보이시려고 하늘에 올라가야하니 그 전에는 자신에게 손을 대지 말라하신 것입니다.
마태는 베드로가 주님의 빈 무덤만 보고 부활의 주님은 만나보지 못하고 천사가 그들에게 명령한 것으로 기록했습니다. 마태는 부활하신 주께서 마리아에게 제일 먼저 보이신 것은 모르고 기록하지 않았으며 마리아가 제자들에게 말하러 갈 때에 부활의 주께서 마리아에게 보이신 것으로 기록했습니다.
(마 28:9-10) [그들이 그분의 제자들에게 말하러 갈 때에, 보라, 예수님께서 그들을 만나 이르시되, 다 잘 있느냐, 하시거늘 그들이 나아와 그분의 발을 붙잡고 그분께 경배하니 10) 이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두려워하지 말라. 가서 내 형제들에게 갈릴리로 가라고 말하라. 거기서 그들이 나를 보리라, 하시니라.] 마리아는 주님이 아버지께 다녀오신 것을 알았으므로 그분의 발을 붙잡았습니다. 이 두 복음서의 두 구절을 통해 예수님께서 하늘에 올라가셔서 아버지께 보이시고 온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하나님 아버지께 자신의 부활의 몸을 보이고 또 자신을 아버지께 드리시기 전에는 땅의 사람들이 영광스러운 그분을 만질 수 없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잠시 후 그들은 자신들을 찾아오신 부활의 예수님을 만났고 그분의 발을 붙잡았는데 이는 주께서 하늘에 올라가셨다가 오신 뒤였습니다.
다른 비유들은 자주 있는 것들이지만 예수님의 고난과 부활과 “화해 헌물”로 드려짐은 영원히 단 한번 있는 일입니다.
욥기에는 하나님의 아들들이 세상을 돌아보고 그들이 본 것들을 주께 보고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하나님의 아들들 가운데에는 사탄도 함께 있는데 그도 세상을 여기저기 돌아보고 하나님의 질문에 대답을 합니다.
(욥 1:6-7) [이제 하루는 [하나님]의 아들들이 자기를 {주} 앞에 보이려고 왔는데 사탄도 그들 가운데 오니라. 7) {주}께서 사탄에게 이르시되, 네가 어디에서 오느냐? 하시니 이에 사탄이 {주}께 대답하여 이르되, 땅에서 여기저기 다니고 또 그 안에서 위아래로 거닐다가 오나이다, 하매]
우리는 알 수 없으나 하늘에는 하나님께서 명령하시는 여러 가지 일들과 그것들을 수행하는 자들의 행적을 보고하는 일들이 끊임없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성경에는 이렇게 자주 일어나는 일들도 있고 단 한번 일어나는 일도 있습니다. 그것들을 분별하여 읽고 알아야합니다. 단 한번 있는 일들을 자주 있는 일들로 알거나 반복 적용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욥 2:1-2) [또 하루는 [하나님]의 아들들이 자기를 {주} 앞에 보이려고 왔는데 사탄도 그들 가운데 와서 {주} 앞에 자기를 보이니라. 2) {주}께서 사탄에게 이르시되, 네가 어디에서 오느냐? 하시니 사탄이 {주}께 대답하여 이르되, 땅에서 여기저기 다니고 또 그 안에서 위아래로 거닐다가 오나이다, 하매]이와 같이 하나님께 보이고 보고하는 일들이 있습니다.
이제 은설이는 부활의 주님이 마리아에게 “내게 손을 대지 말라”하신 궁금증은 풀어졌으리라 생각합니다. 오히려 너무 많은 예들을 들어서 이해하는데 방해가 되지는 않았는지 모르겠네요.
마태는 주후 60년경에 마태복음을 기록했고 요한은 주후 90년경에 요한복음을 기록했습니다. 그들은 같은 주님의 제자들이지만 서로 의논하고 복음서를 기록한 것이 아닙니다. 모든 것을 하나님께서 주관하시지만 보는 각도와 생각과 경험과 기억들이 차이가 있음을 알아야하고 이런 것을 통하여 모든 성경은 사람들이 꾸며낸 이야기가 아니며 거짓 없는 진리임을 증언하는 것입니다.
주께서 제자들에게 영감을 주시고 기록하게 하신 대로 기록하신 것을 의심 없이 믿는 믿음이야말로 거짓 없는 믿음이요, 꾸밈없는 믿음입니다. 은설이의 마음속엔 거짓 없는 믿음, 꾸밈없는 믿음이 자라나고 있습니다. 성경을 기록된 대로 믿는 믿음이 성장하고 있습니다. 저는 그래서 행복한 목사입니다. 여러분 모두가 이러한 순수한 믿음을 소유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여러분들은 주께서 명령하신 대로 성경을 탐구해야 합니다. 공부해야합니다. 성경을 탐구하면 영원한 생명을 얻고 예수님에 대해서 잘 알게 되고 바로 알게 됩니다. 생명의 말씀인 성경이 여러분들을 지혜롭게 하고 믿음을 굳게 하며 구원으로 인도할 것입니다.
성도들이 성경을 모르면 자기를 인도하는 자가 하나님의 명령대로 인도하는지 자신의 생각대로 인도하는지 분별하지 못합니다. 누군가가 자기를 데려가는데 그곳이 좋은 곳인지 나쁜 곳인지 모르고 따라가는 것은 참으로 불행한 일입니다. 눈먼 자를 따라가는 자들은 같이 도랑에 빠지게 될 것입니다.
성도들은 자신을 인도하는 자가 설교할 때 그것이 과연 하나님의 말씀인지 자기 철학인지를 가려낼 줄 알아야합니다. 자기가 만든 교리인지 성경교리인지 분별해야합니다. 그에게 속고 나서 후회하고 원망해 보아야 소용없고 보상받지 못합니다. 그래서 주님은 성경기록들을 탐구하라고 말씀하십니다.
(행 17:11-12) [이들은 데살로니가에 있던 자들보다 더 고귀하여 온전히 준비된 마음으로 말씀을 받아들이고 그것들이 그러한가 하여 날마다 성경 기록들을 탐구하므로 12) 그들 중의 많은 사람이 믿고 또 그리스 사람인 귀부인들과 남자들 중에서도 적지 않은 사람이 그리하더라.]
그럼으로 말씀에 근거한 믿음이야말로 흔들리지 않고 품위 있고 고귀하며 사람들을 생명의 길로 인도할 수 있습니다. 육신의 정욕을 쫓는 자들의 신앙은 품위 없고 천박하며 육신의 것, 세상의 것, 썩을 것들만 바라보게 되고 장차 하나님 앞에서 받을 보상도 없고 불에 의해 구원을 받는 것같이 부끄러운 구원을 받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날마다 성경 기록들을 탐구”하시기를 부탁드립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늘 읽고 듣고 공부하여 주께서 기뻐하시는 일을 행하며 바른 길로 가시기를 진심으로 축원합니다. 할렐루야! 주님께 영광 돌립니다.
2021-02-14 12:15: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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