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 소개
예배시간 안내
약도/찾아오시는 길
연락처


게시판
교회 소식/공지
질의 게시판
행사 및 사진
Free Board
찬양방


말씀 및 설교
kjv mp3 player
주일 설교
묵상/은혜의 말씀
특강


지역 교회
링크


 


  김원광 [ E-mail ]
  순결한 한 처녀로 드려
  http://av1611.co.kr

제목: 순결한 한 처녀로 드려
■ 본문: (고후 11:2) “내가 하나님께 속한 질투로 너희에 대하여 질투하노니 이는 내가 너희를 순결한 한 처녀로 그리스도께 드리기 위해 한 남편에게 너희를 정혼시켰기 때문이라.”
오늘은 이 세상 모든 사람을 위해 하나님께서 준비하신 남편과 그의 신부에 관한 말씀입니다. 하나님이 준비하신 남편이라 하더라도 그분을 주님으로 받아들이지 않으면 남편이 되는 것은 아니죠. 그리고 지역교회에 속해 있는 청년 형제와 자매에게 주어지는 말씀이기도 합니다.
요한계시록에는 하나님께서 모든 사람을 구원으로 초대하는 마지막 말씀이 나옵니다.
(계 22:17) “성령과 신부가 말씀하시기를, 오라, 하시는도다. 듣는 자도, 오라, 할 것이요, 목마른 자도 올 것이요, 또 누구든지 원하는 자는 값없이 생명수를 취하라.”
방금 읽은 계시록은 하나님의 초청을 받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그분의 신부로 남게 될 모든 그리스도인이 성령님과 함께 아직 구원받지 못하고 있는 죄인들에게 하신 말씀입니다. 우리도 이 초대를 받았었고 올바르게 반응해서 믿음으로 구원받게 되었고 거룩한 신부가 될 것입니다.
성경에는 하나님께서 부부로 정해주신 짝이 있습니다. 첫 사람 아담과 그의 아내 이브가 있고,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아내인 교회가 있습니다. 이 두 짝 사이에 공통점이 있다면 하나님이 정해주신 부부라는 위치에 두셨다는 것이고, 틀린 점이 있다면 첫 사람 아담은 그의 아내 이브와의 관계에서 믿음에 실패한 반면, 그리스도는 자신의 아내될 교회와의 관계에서 믿음에 성공하는 삶을 사셨고, 그분의 아내가 될 교회 또한 하나님의 은혜로 성공하는 삶으로 마무리 될 것입니다.
어떤 사람이 부모로부터 태어나 성인이 된 후, 자신의 인생을 살면서 자신이 좋아하는 것만 즐기고, 보기에 좋은 것에 욕심을 품고, 이 땅에서 부귀 영화를 누리며, 사람들에게 자랑할 거리가 많아서 존경을 받는 것 등 세상에서 나는 모든 것에만 인생의 목적을 두고 산다면 어리석은 인생으로 남을 것입니다.
(요일 2:16) “세상에 있는 모든 것 즉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인생의 자랑은 [아버지]에게서 나지 아니하고 세상에서 나느니라.”
그렇게 자신은 누가 창조했는지, 누구를 위해 창조되었는지, 왜 창조되었는지를 알려고 하지 않으므로 인생을 왜 살아야 할지 모르고 살아서 결국은 최종 하나님의 심판 때, 그는 헛된 인생으로 판결받고 불 못에 던져지게 될 것입니다.
성경에서 말씀하시는 사람이 존재하는 이유는 간단합니다.
(계 4:11) “오 [주]여, 주는 영광과 존귀와 권능을 받기에 합당하시오니 주께서 모든 것을 창조하셨고 또 그것들이 주를 기쁘게 하려고 존재하며 창조되었나이다, 하더라.”
여러분은 모두 주님을 기쁘게 하려고 창조된 존재입니다. 믿으시죠!
그리고 여러분이 창조된 그 목적에 합당하게 살아가는 길도 간단합니다.
(히 11:6) “그러나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게 하지 못하나니 그분께 가는 자는 반드시 그분께서 계시는 것과 또 그분께서 부지런히 자신을 찾는 자들에게 보상해 주시는 분이심을 믿어야 하느니라.”
어떤 사람에게 믿음(faith)이 있다면 하나님이 그 사람의 믿음을 보시고 기뻐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럼 믿음은 어디에서 올까요? 이 물음에 답도 간단합니다.
(롬 10:17) “그런즉 이와 같이 믿음은 들음에 의해 오며 들음은 [하나님]의 말씀에 의해 오느니라.”
우리가 성경기록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읽고 믿을(believe) 때, 주님으로부터 믿음(faith)이 옵니다. 우리가 설교를 하나님의 말씀으로 듣고 믿을 때, 주님으로부터 믿음이 옵니다. 우리가 누군가와 대화를 하는 과정에서도 상대방이 한 말이 하나님의 말씀과 같을 때 그 말을 듣고 믿을 때, 믿음이 옵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믿을(believe) 때, 성령님의 열매인 믿음(faith)이 우리 안에 열리게 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기록이 우리에게 하신 말씀을 믿는(believe) 그 믿음으로(by faith) 우리는 구원을 얻게 되고, 그 믿음으로 우리는 의롭게 되며, 그 믿음으로 우리는 거룩하게 불려지게 되고, 그 믿음으로 우리는 미래에 벌어질 일들을 진리로 믿고 살아가게 됩니다.
그 믿음 가운데에는 우리의 아버지이신 하나님께서 자녀인 우리를 누구와 결혼시키기로 정하셨음을 믿게 됩니다.
(고후 11:2) “내가 하나님께 속한 질투로 너희에 대하여 질투하노니 이는 내가 너희를 순결한 한 처녀로 그리스도께 드리기 위해 한 남편에게 너희를 정혼시켰기 때문이라.”
옛날로 말로 하면, 가문 어른이 정혼시켰다는 말과 비슷할 수 있습니다. 요즈음 청년들에게 이런 말을 하면, “조선시대에 사느냐?, 우리가 자녀지만 개인의 인격과 선택을 존중해야 하는거 아니냐”고 세상 사람들과 똑같이 어이없다는 반응을 보일 수 있습니다. 어쩌면 저의 딸도 그럴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예수 그리스도를 믿은 우리는 하나님이 우리의 아버지시고, 그 아버지가 우리를 위해 최선의 좋은 결정을 해 주신 것을 믿습니다. 그 믿음이 우리를 그리스도와 정혼시켜 놓았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말씀에 순종해서 살아가야 하는 것이 올바른 신앙임을 믿습니다.
어떤 한 성도가 교회에는 쾌 오래 다녔지만, 아직도 믿음이 크게 성장하지 못해서 벌어지는 어떤 일을 볼 때면, 하나님의 시각으로는 보지 못하고 세상적인 시각인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인생의 자랑으로 보려고 합니다. 그런 성도는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은 것들이 자기 눈 앞에 있다고 해도 알아볼 수 없을 것입니다. 결혼 배우자를 선택하는 문제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떤 청년 형제와 청년 자매가 처음 본 사람이라고 할지라도 하나님의 기대와 목적으로 상대를 보라 본다면,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자신에게 합당한 배우자인지 알아볼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대부분의 청년은 내가 바라는 배우자, 내 만족을 채울 수 있는 상대에 목이 말라서 견딜 수 없어 합니다. 세상적으로 아름다운 사람, 하나님의 생명이 죽어있는 배우자를 구하느라고 시간과 열정을 낭비하고 있습니다. 이런 것이 허비와 낭비죠.
그렇다면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은 나의 배우자를 어떻게 선택해야 할까요? 형제라면 먼저 하나님이 나에게 주신 은사를 사용하는데, 도움이 되는 배우자인가를 살펴봐야 합니다. 자매라면 먼저 하나님의 일을 하려는 형제를 내가 도움이 될 수 있는가 살펴봐야 합니다.
이런 배우자 선택과 결혼에는 하나님의 뜻하신 바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 뜻을 강제로 이루시지는 않습니다. 우리가 자유 의지를 가지고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은 판단을 하고, 순종하기를 기대하며 기다리십니다. 그렇게 배우자 선택 문제는 인간의 선택과 책임 하에 두셨습니다.
이 세상은 화려하고 아름다운 것들이 많아 보입니다. 세상 사람의 시각으로 볼 때 외모, 학벌, 돈, 예쁜 옷, 멋진 차 등 유혹하는 것들과 취하고 싶은 것들이 아주 많습니다. 거기에다가 배우자에 대해서는 키는 얼마나 되고, 용모는 어떻고, 학벌은 어떠하며, 자신의 욕망을 채우기 위해 배우자를 선택해서 결혼에 성공한다고 하더라도 그것들이 자신의 인생에 올무가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런 것들은 영원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결혼 전에는 있다가 없어지게 되면, 결혼을 유지할 원인이 사라지기 때문에 계속 함께 살아갈 이유가 없어지게 되고 이혼이라는 죄를 선택하게 됩니다. 세상 사람들이 원하는 육신의 정욕, 안목의 정욕, 인생의 자랑을 우선한 선택은 하나님에게서 나는 판단 기준이 아닙니다. 이것은 악한 세상 사람들이 바라보는 세상적 관점일 뿐이지, 하나님의 자녀인 우리 청년들이 판단의 기준으로 삼아서는 안 되는 것들입니다.
결혼은 두 사람이 하나가 되는 서로 간의 연합입니다. 마치 어떤 두 재료를 용광로에 녹여서 하나로 합치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나의 개성을 죽이고 상대방의 성품과 하나 되는 고통과 어색함과 불편함이 따르게 됩니다. 어떤 경우에는 우리의 마음에 마치 생살을 도려내는 고통과 새로운 것이 이식되는 듯한 아픔이 동반되기도 합니다. 그러니 한 번에 연합되기가 얼마나 어렵겠습니까? 하지만 이러한 과정을 거쳐야만 둘이 하나라는, 진정한 하나로서의 결혼의 원리를 이루는 것입니다. 그렇게 결혼은 서로 상대에게 속해서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성경은 남녀 간에 성 결합을 말할 때, “안다.”라는 표현으로 사용하셨습니다.
(창 4:1) “아담이 자기 아내 이브를 알매 그녀가 수태하여 가인을 낳고 이르되, 내가 {주}로부터 남자를 얻었다, 하니라.”
서로를 인격적으로 깊이 만난다는 의미가 “안다.”입니다. 이러한 성의 결합은 육체적인 것뿐만이 아니라, 영적인 요소도 포함됩니다. 두 몸이 하나가 되듯이, 두 마음이 하나가 되고, 각자 인생으로 살던 두 코스를 그리스도를 향한 하나의 코스에서 연합하겠다는 것입니다.
성이 자신의 육신의 쾌락만을 갈구하는 것이라면 이기적인 것이 되어버리고, 하나님이 뜻하신 바의 기준에 절대적으로 미달 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 형제라면, 내가 정말 한 자매의 머리로서 그리스도 안에서 자매를 존중하여 결혼 전까지 순결을 지켜주어야 하며, 자매라면, 내가 정말 한 사람의 돕는 배우자로서 순결하게 살아야 합니다.
남녀가 결혼 전에 서로가 상대방의 순결을 지켜주지 않고, 한 몸이 되려는 것은 앞으로 다가올 자신의 인생에 스스로 걸리게 하는 큰 걸림돌을 두는 것과 같습니다. 만약 결혼을 약속하였다고 하더라도 상대방을 사랑함으로 상대를 위해 또한 자기 자신을 위해 결혼 때까지 순결을 지켜주려는 인내가 필요함입니다. 만약 결혼 전에 두 육체가 하나가 되면, 그 순간부터 영적인 것은 뒷전으로 밀리고 육적인 것만 드러나게 됩니다. 이 둘은 더 이상 상대방에 대해 귀중함을 느끼지 못하게 됩니다. 왜냐하면 상대방에 대하여 이미 알아버렸기 때문입니다. 알아버리면 시간이 흐를수록 열정이 식어버리게 되는데, 그렇기 때문에 결혼이 완성되는 순간까지 남겨두는 것이 있어야 더 애뜻하고 설렘도 있게 됩니다. 이런 남겨두는 것 때문에라도 사랑은 훨씬 더 깊어지게 되고, 만약 중간에 교제가 끊어진다고 해도 훗날에 아름다운 추억으로 남게 될 것입니다.
육체의 순결을 결혼까지 지켜주는 것, 끝을 남겨두는 것, 이것이 진정으로 상대방을 존귀하게 여기고 사랑하는 것입니다. 어쩌면 젊은 날에 성욕을 참는 것은 굉장히 어려운 길일 것입니다. 그런데 그것을 참을 인내가 있는 사람이라면 무슨 일이든 인내하며 잘 할 수 있는 사람일 것입니다. 인내와 존중, 그런 사람이 결혼할 자격이 있는 사람입니다. 만약 결혼 전에 육체를 허락하면 결혼하고 나서는 서로를 무시하고 만만하게 보게 됩니다. 이것은 사람의 본성이 악하기 때문에 당연한 결과입니다. 스스로가 자신의 순결을 지키지 못했기 때문에 서로가 서로를 무시하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정하신 법은 항상 중요합니다. 결혼과 잠자리에 대한 말씀을 찾아보겠습니다.
(히 13:4) “결혼은 모든 것 가운데 존귀한 것이요 잠자리는 더럽히지 말아야 하거니와 음행을 일삼는 자들과 간음하는 자들은 [하나님]께서 심판하시리라.”
결혼은 존귀한(honourable)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혼전 순결을 지키라고 했으면 지켜야 합니다. 그것이 하나님을 존중하는 길이고 상대방을 사랑하는 길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스킨쉽도 절제해야 합니다.
(고전 7:1~2) “1) 이제 너희가 내게 쓴 것들에 관하여 말하건대 남자가 여자에게 손을 대지 아니하는 것이 좋으니라. 2) 그럼에도 불구하고 음행을 피하기 위하여 남자마다 자기 아내를 두고 여자마다 자기 남편을 둘지니라.”
“not to touch(손을 대지 아니하는)”, 스킨쉽을 하게 되면, 그 다음 단계로 나아가기 쉬워집니다.
남녀가 만날 때도 으슥한 장소는 피하고 환한 장소에서 환한 시간대에 만나는 것이 좋습니다. 낮이라고 해도 공원이나 (요즈음은 코로나로 예외의 상황이기는 하지만) 사람들이 많은 장소에서 빛의 자녀답게 건전한 교제를 나누는 것이 좋습니다. 주변 환경이 어둠에 있거나 육신의 정욕에 끌리는 상황에 놓이게 되면, 거절하기 쉽지 않기 때문에 아예 그런 빌미를 제공하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그리고 어떤 남자가 여친이 자신과 육체 관계를 거절했다고 해서 ‘나를 사랑하는거 맞나’라는 식으로 대화를 이끄는 남자라면, 그런 사람은 떠나게 버려두어야 합니다. 이는 육체의 정욕을 ‘참 사랑’이라고 착각하는 것이고, 그런 사람은 관계 후 정욕이 식을 수 밖에 없습니다. 이와 같이 사람의 인격은 상대방과의 관계에서, 영적인 성숙도는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실생활 가운데 드러나게 됩니다. 우리 교회는 형제건 자매건 혼전 순결을 지켜야 한다고 말씀을 가르칩니다.
지금 살펴본 청년 형제나 자매가 결혼 전까지 육체의 순결을 지키는 것이 중요할 뿐 아니라, 하나님이 보시는 영적 순결을 지키는 것도 중요합니다.
하나님의 뜻들 중에는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고 진리에 이르는 것입니다(딤전 2:4). 그렇게 하나님의 뜻에 순종해서 그리스도 예수님을 주님으로 영접하게 되면,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신분과 의롭게 됨과 상속권(요 1:12)과 통지권과 더불어, 영이신 그리스도의 신부가 되도록 결혼을 정하셨습니다.
(고후 11:2) “내가 하나님께 속한 질투로 너희에 대하여 질투하노니 이는 내가 너희를 순결한 한 처녀로 그리스도께 드리기 위해 한 남편에게 너희를 정혼시켰기 때문이라.”
하나님께서는 구원받은 우리가 그리스도와 정혼하라고 정하셨습니다. 이 말씀에 보면 정혼하기로 한 이후의 삶이 어때야 하는지, 함축해 놓으셨는데요.
“a chaste virgin(순결한 한 처녀)” 입니다.
“a(하나)”, 우리 교회의 성도만 성도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구원자로 믿고 주님으로 영접한 모든 사람은 그들이 어디에 살든, 어느 시대에 살든, 주님이 부활하신 2천년 전부터 공중 재림하셔서 우리를 불러올리실(휴거) 사람들까지 모두 영 안에서(in spirit) 한(one, a) 몸을 이루는 존재입니다. 그러므로 거듭난 모든 성도는 어느 교회를 다니건 주님의 한 몸입니다. 직장에서나 이웃에게나 우리와 맞닿아 일하게 되는 상대방이 누구든 간에 선하고 친절하게 대해야 하는 이유가 됩니다. 어떤 누구도 그가 구원받은 주님의 몸일 수 있고, 앞으로 구원받아 주님의 몸이 될 사람일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한 몸 안에서 분쟁이 있어서는 안되며, 모두 순결한 같은 삶을 살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chaste(순결한)”, 육체적으로나 영적으로 더럽혀지지 않는 순수한 상태를 의미합니다. 그래서 한글로는 순수한, 소박한, 꾸밈없는 등으로도 번역할 수 있습니다.
이 단어를 1828년 웹스터 사전에서 찾아보면,
① 모든 불법적인 남녀 거래로부터 순수함. 결혼 전 사람들에게 적용되며, 그것은 모든 성매매로부터 순수하고 더럽혀지지 않은 것을 의미합니다.
② 마음의 생각과 언동이 순수한, 순수한 언어로, 성실한, 부패하지 않은, 야만적이거나 기이한 영향을 받아 사치스러운 표현이 없다는 의미입니다.
③ 기혼자에게도 적용되며, 결혼 잠자리에도 적용됩니다. 배우자에게 순결해야 한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베드로전서 3:2절에는 “chaste(순결한, 정숙한)”의 의미가 잘 표현되어 있습니다.
(벧전 3:1~4) “1) 아내들아, 이와 같이 너희도 너희 남편에게 복종하라. 이것은 누가 말씀에 순종하지 아니하여도 그들 또한 말 없이 아내의 행실을 통해 얻고자 함이니 2) 두려움이 동반된 너희의 정숙한(chaste) 행실을 그들이 눈여겨보느니라. 3) 너희의 단장은 머리를 땋고 금으로 치장하며 옷을 차려입는 그런 외적 단장으로 하지 말고 4) 오직 마음의 감추어진 사람으로 하되 썩지 아니하는 것 즉 온유하고 조용한 영의 장식으로 할지니 그것은 [하나님]의 눈앞에서 지극히 값진 것이니라.”
외적으로 화려하지는 않지만, 내적으로 온유하고 조용한 마음에서 나오는 행실로 순결함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구원받은 우리를 ‘순결한 한 처녀’로 부르셨으며, 자신의 사랑하는 아들의 신부로 삼기로 정하셨습니다. 처녀는 순결합니다. 순수합니다. 그렇게 우리가 순결한 마음으로 순결한 행실을 하도록 정하신 것입니다.
우리의 남편은 거룩한 왕이신데 그분의 아내 될 우리가 순결하지 않다면, 남편과 어울리지 않는 아내일뿐더러, 남편의 위엄을 깍아내리는 아내가 될 것입니다. 그러면 안 됩니다. 그분의 아내인 우리는 순결한 삶을 살아서 남편인 그리스도와 어울리는 한 몸이어야 합니다.
“virgin(처녀)”, 어떤 남자도 알지 않은 여자(창 24:16), 결혼하지 않은 여자(고전 7:34)를 말합니다. 성경은 결혼하지 않은 것과 어떤 남자도 알지 않았다는 것을 같은 단어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앞에서 말씀드린 것처럼 결혼하지 않고는 남자를 알아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요즈음 세상에서 처녀라고 말할 때는 남자를 알았지만 결혼만 안 했던 여자를 지칭하기도 하는데요. 겉으로는 처녀라고 할지 모르지만, 하나님과 자신은 처녀가 아님을 알고 있습니다. 단어의 의미가 점점 나쁘게 변해가는 것을 보더라도 그만큼 세상이 많이 악해졌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다시 태어나게 하시면서 순결한 처녀로 삼아주셨습니다. 그럼에도 우리의 생활은 순수하기는 커녕, 구원받기 전과 같이 나의 남편 그리스도 이외에 마귀와 연합하기도 하고, 이것이 영적인 간음이죠. 재물을 얻기 위해 세상과 하나가 되기도 하고, 이것이 배신이죠. 다른 사람의 배우자와 하나 되기도 하는 마치 창녀와 같은 생활을 하고 있지 않는지, 우리 자신을 살펴봐야 합니다. 겉으로는 순결한 처녀라고 말할지 모르지만, 속으로는 이미 세상에 더럽혀진 지옥으로 내려가는 여자와 같은 생활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그렇게 불법과 하나가 되고, 죄와 하나가 되고, 악과 하나가 되고 있지는 않은지, 만약 그런 삶을 살았었다면 지금이라도 그리스도의 피를 통한 믿음으로 죄 씻음과 영적인 간음의 죄들을 회개함으로 용서를 구하고, 이제부터는 우리의 신분에 합당한 순결한 처녀로서의 삶을 살아서 신랑 그리스도에 어울리는 그런 신부가 되도록 해야 합니다. 더욱이 하나님이 우리를 그리스도 안에서 순결한 자로 보고 계시므로 우리는 새로 태어난 자로서 순결한 처녀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예전에 이런 노랫말이 있었습니다.
{청바지가 잘 어울리는 여자, 밥을 많이 먹어도 배 안 나오는 여자... 김치 볶음밥을 잘 만드는 여자.... 난 그런 여자가 좋더라!}
그리고 노랫말 끝부분에
{여보세요 날 좀 잠깐 보세요. 희망사항이 정말 거창하군요. 그런 여자한테 너무 잘 어울리는 난 그런 남자가 좋더라}
이 노랫말 끝부분에서와 같이 우리는 나로 인해 목숨을 버릴 수 있는 멋진 신랑을 얻어서 좋은데, 멋진 신랑을 얻은 걸로만 기뻐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도 멋진 신랑에 어울리는 신부로서의 합당한 삶을 살아야 하지 않을까요!
그리스도와 교회는 남편과 아내의 관계이며, 머리와 몸의 관계입니다.
(엡 5:23) “이는 남편이 아내의 머리 됨이 그리스도께서 교회의 머리 되심과 같기 때문이라. 그분은 그 몸의 구원자시니라.”
판단하고 지시하고 온 몸을 돌보는 머리이신 그리스도와 그분의 몸으로서 교회는 행하고 그분을 드러내고 그분을 높임으로 함께 영광을 받게 되는 존재이면서 남편과 아내의 관계입니다.
남편이 어떤 일을 할 때 아내는 남편의 “help(협력자, 조력자)”입니다.
(창 2:18) “¶ {주} [하나님]께서 이르시되, 남자가 홀로 있는 것이 좋지 못하니 내가 그를 위하여 합당한 조력자를 만들리라, 하시니라.”
남편이 선한 일을 하려는데, 아내가 협력하지 않고 그 일에 무관심하다면 합당한 협력자라고 할 수 없을 것입니다. 남편이 어떤 일을 할 때, 의롭고 선하고 하나님이 보시기에 상대방에게도 좋은 결과를 얻는 방식으로 일을 하는데, 아내는 자기 남편을 돕는다며 불의하고 악하고 남에게 해를 주면서까지 자신의 유익을 구한다면 남편의 합당한 협력자라고 할 수 있을까요?
영적으로 적용해보면, 남편은 진리와 순종 안에서 걷는데, 그의 아내는 남편을 돕는다며 악과 불순종으로 걷는다면 남편의 합당한 협력자라고 할 수 있을까요?
이와 같은 부적합한 아내의 모습이 어쩌면 우리의 옛 모습은 아닐까 반성해보면서, 우리는 하나님이 정하신 그리스도의 아내로서 남편과 어울리는 순수하고 순결한 삶을 살도록 해야 합니다.
마무리 하겠습니다.
청년 형제님, 자매님,
성경기록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그 기록이 말하길 결혼 전, 정혼한 사이라 할지라도 내 배우자가 될 남편과 아내를 존중하고 사랑하는 뜻으로 육체 관계를 범하지 않도록 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잘 아는 요셉과 마리아가 그랬습니다. 그들은 정혼 한 사이였지만 그녀가 그녀의 맏아들을 낳을 때까지 그녀를 알지 아니하였습니다(마 1:25). 그리스도 안에서 살아가는 형제 자매님은 이래야 합니다.
세상 사람들은 세상에 있는 모든 것, 즉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인생의 자랑과 같은 세상에서 나고 이 세상과 함께 없어질 것들을 추구하며 살아갑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믿는 우리는 이런 것들에 마음을 빼앗겨 하나님 [아버지]에게서 난 순결한 것, 순수한 것, 영원한 것을 소홀히 여겨서는 안됩니다.
남녀가 결혼 전에 육체를 내어주면, 자기 스스로 자신의 가치를 소홀히 여기게 되는 것이고 그렇게 되면 상대방도 내 가치를 소홀히 여기게 될 것입니다. 상황에 어쩔 수 없다는 그런 말은 핑계일 뿐입니다. 어쩔 수 없는 상황은 안 만들면 되고, 거절하고 멀리하면 피할 수 있습니다. 자신이 자신을 스스로 평가가 절하해 버리는 그런 잘못을 범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이 주신 자신의 순수한 순결한 가치를 지킴으로 하나님이 쓰실 귀한 보석이 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구원받아 주님 안에 있게 된 형제님, 자매님,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하나님의 자녀가 된 우리 모두는 어린양의 아내가 될 것입니다. 그렇게 하나님이 정하신 뜻으로 말미암아 그분의 아내로 정혼 되었습니다. 우리는 순종의 자녀입니다. 아버지가 정하신 것을 선한 마음으로 따르는 것이 순종의 자녀입니다. 그렇게 우리는 그리스도와 결혼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그분의 아내가 된다는 것은 그분의 협력자로서 그분과 함께 하나님의 일을 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남편이신 그리스도는 의롭고 선하시며 사랑이 많으신 분입니다. 그의 아내인 우리 또한 남편과 같은 삶을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이 부부를 보실 때, 한 육체로 보십니다(창 2:24, 마 19:5~6, 막 10:6~9). 만약 아내인 우리가 성령 충만할 때는 남편 그리스도로 살아서(갈 2:20) 선한 생활을 하고, 아내인 내 자아가 우세할 때는 아담의 후손인 옛사람의 성품으로 살아서 이중 인격의 생활을 한다면, 바람직한 아내의 모습이 아닐 것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신부로서 이런 이중인격적인 생활을 해서는 안됩니다.
또한 우리가 믿는 대로 그리스도는 우리의 머리십니다. 남편이 아담의 후손이라면 머리가 머리 역할을 제대로 못해서 몸의 지체들에게 불익을 줄 때도 있겠지만, 우리의 신랑이시며 머리되시는 그리스도는 지혜가 충만하시고 은혜로우시며 긍휼이 많으시고 사랑이 넘치시는 분입니다. 우리가 우리의 신랑을 알면 알아갈수록 내 자신의 인생을 믿고 맡길 수 있는 분임을 확신하게 됩니다.
그렇게 우리 안에 그리스도가 사셔야 남편과 아내가 한 몸으로, 한 영 안에서, 하나로 일을 할 수 있게 됩니다. 남편이 의로운 분이기에 아내될 우리도 의로운 생활을 해야 합니다. 남편이 사랑이시기에 아내인 우리도 사랑이어야 합니다. 남편이 순결한 분이기에 아내될 우리도 순결한 삶을 살아야 합니다. 우리는 육신이 순결한 삶을 살아야 합니다. 어둠을 멀리하고 악한 행동을 멀리하며 빛의 자녀답게 밝은 것에서 낮에 일하듯이 일해야 합니다. 또한 육체의 순결 못지않게 중요한 것은 영적인 마음의 생각과 의도까지도 순결해야 합니다. 겉으로 드러나는 외적인 행동은 착해 보이는데 속마음은 악한 생각을 한다면 순결한 아내가 아닙니다. 우리가 순결한 남편의 걸음걸이에 발맞춰 우리가 함께 걸으며 함께 일할 수 있으려면 우리도 순결해야 합니다.
여러분이 이 진리를 깨닫고 지금 오늘을 살아가겠다고 믿고 행동해야 합니다. 이 “순결한 한 처녀의” 길을 가겠다고 결심하고 믿고 행하는 것은 여러분 각자의 몫입니다.
인천말씀침례교회 성도님!
우리 모두는 그리스도의 신부답게 순결한 처녀의 삶을 살아서 신랑이신 그리스도가 우릴 맞을 때, 아름다운 자신의 신부로 평가받을 수 있는 생활을 하시길 바랍니다. 끝.
2021-02-21 18:04:33


   

관리자로그인~~ 전체 1529개 - 현재 1/77 쪽
1529
2021-04-11
3
1528
2021-04-04
4
1527
2021-03-20
13
1526
2021-03-15
18
1525
2021-03-07
17
1524
2021-02-28
27
2021-02-21
16
1522
2021-02-14
18
1521
2021-02-07
28
1520
2021-01-31
22
1519
2021-01-25
30
1518
2021-01-19
27
1517
2021-01-10
26
1516
2021-01-03
41
1515
2020-12-27
48
1514
2020-12-19
45
1513
2020-12-13
53
1512
2020-12-04
46
1511
2020-11-29
57
1510
2020-11-21
73

[맨처음] .. [이전] 1 [2] [3] [4] [5] [6] [7] [다음] .. [마지막]

 
Phone: (032) 421-2609 & (011) 389-5994 E-Mail: mykjv@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