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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원광
  [3월20일]마음속에 작정하고
  






제목: 마음속에 작정하고
■ 본문: (단 1:8~9) “8) ¶ 그러나 다니엘은 왕의 배정 음식이나 왕이 마시는 포도주로 자기를 더럽히지 아니하겠다고 마음속에 작정하였으므로 자기를 더럽히지 않으려고 내시들의 통치자에게 요청하였는데 9) 이때에 [하나님]께서 이미 다니엘이 내시들의 통치자에게 호의와 친절한 사랑을 받게 하셨으므로”
오늘 말씀의 제목은 [마음속에 작정하고]입니다. 다니엘서의 시작은 기도로 유명한 히스기야의 이야기에서 연결됩니다. 찾아가 보겠습니다.
(사 38:1~6) “1) 그 당시에 히스기야가 병들어 죽게 되매 아모스의 아들 대언자 이사야가 그에게 와서 이르되, {주}께서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네 집을 정리하라. 네가 죽고 살지 못하리라, 하시나이다. 하니 2) 이에 히스기야가 자기 얼굴을 벽 쪽으로 돌리고 {주}께 기도하여 3) 이르되, 오 {주}여, 간청하건데 내가 진실함과 완전한 마음으로 주 앞에서 걸었으며 주의 눈앞에서 선한 것을 행하였음을 이제 기억하옵소서, 하고 히스기야가 통곡하였더라. 4) ¶ 그때에 {주}의 말씀이 이사야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5) 가서 히스기야에게 말하기를, {주} 곧 네 조상 다윗의 [하나님]이 이같이 말하노라. 내가 네 기도를 들었고 네 눈물을 보았노라. 보라, 내가 네 날들에 십오 년을 더해 주며 6) 내가 너와 이 도시를 아시리아 왕의 손에서 구출하고 이 도시를 보호하리라.”
히스가야가 이러한 기도 응답을 받은 이후, 15년을 더 살고, 인생의 마감 앞에서 교만에 빠지게 됩니다. 그의 교만의 결과가, 자기 인생에서 끝나면 다행인데, 그의 교만 때문에 후손들이 큰 일을 겪게 됩니다. 이사야는 히스기야로 인해 다윗의 가문에 심판이 임할 것이라고 선포합니다. 확인해보겠습니다.
(사 39:6~8) “6) {주}께서 이르시기를, 보라, 날들이 오리니 네 집에 있는 모든 것과 네 조상들이 이날까지 쌓아 두었던 것이 바빌론으로 옮겨지고 하나도 남지 아니하리라. 7) 또 네게서 나올 네 아들들 곧 네가 낳을 자들 중에서 몇 사람을 저들이 잡아가리니 그들이 바빌론 왕의 궁궐에서 내시가 되리라, 하시나이다, 하매 8) 그때에 히스기야가 이사야에게 이르되, 당신이 말한 {주}의 말씀이 선하니이다(Good), 하고 또 이르되, 내 날들에는 화평과 진리가 있으리이다, 하니라.”
이사야의 이 예언은 약 백 년 후에 다니엘 시대에 문자적으로 성취됩니다. 그래서 다니엘서는 바빌론 왕이 예루살렘을 포위하면서 시작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살펴보려는 다니엘서에는 다니엘과 신실한 히브리 청년 세 명의 이야기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들의 이름은 하나냐와 미사엘과 아사랴였습니다. 이들은 바빌론 왕을 위해 특별한 교육을 받도록 선택되었지만, 레위기 11장에서 금지된 부정한 음식을 먹는 것이 모세의 율법을 어기는 것이기에 거부하게 됩니다. 율법에는 우상에게 바쳤던 음식을 먹는 것을 금지했습니다. 이들은 왕의 음식을 먹고 포도주를 마시느니, 차라리 콩을 먹고 물을 마시는 것을 선택합니다. 이들은 열흘 동안 시험을 받지만, 건강한 몸과 마음이 입증되어 하나님의 축복을 다른 사람들에게 드러내게 됩니다.
다니엘은 대략 늦은 십 대(19세쯤)에 포로로 끌려왔고, 일 년 이후부터 그의 사역이 시작됩니다. 그의 사역은 페르시아의 통치 기간까지 이어졌으니까, 대략 90세쯤에 사망한 것으로 보입니다. 다니엘이 바빌론의 수상이 된 후에도, 여호와(주) 하나님을 신실하게 섬겼습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을 존중하는 사람을 존중해 주시는 분입니다.
다니엘서는 포로로 잡혀간 유대인들을 위해 기록되었고, 아주 현실적이고, 실천적이고, 동시에 예언적이고, 교리적인 책입니다. 다니엘의 담대함과 확신, 그리고 그의 친구들의 태도는 고난받는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아주 좋은 모범으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우리는 다니엘을 통해 어려운 여건에서도 세상과 타협하지 않고, 주님을 섬기는 것이 가능하다는 것을 배우게 됩니다.
이제 다니엘서 1:1절에서
(단 1:1~2) “1) 유다 왕 여호야김의 통치 제삼년에 바빌론 왕 느부갓네살이 예루살렘으로 와서 그곳을 에워쌌더니 2) [주]께서 유다 왕 여호야김과 [하나님]의 집 기구들 중 일부를 그의 손에 넘겨주시매 그가 그것들을 시날 땅에 있는 자기 신의 집으로 가져다가 그 기구들을 자기 신의 보고에 들여놓았더라.”
이 말씀에서 다니엘은 하나님의 집의 물건들이 우상의 집으로 옮겨지는 것을 보면서, 마음이 매우 괴로웠을 것입니다. 그러면 또 누가 괴로웠을까요? 하나님의 말씀을 무시한 결과로, 이교도들에게 모든 것을 빼앗겨 버린, 자신의 백성을 보시는 하나님도 괴로우셨을 것입니다. 요즈음 교회들 중에 재정 관리를 잘하지 못해서 예배당 건물이 경매에 나오고, 그 건물을 이단 교회가 낙찰하는 것을 보면서, 저도 마음이 편하지 않았습니다. 앞으로 저희 교회의 재정을 관리하게 되는 분은 특별히 하나님이 보시기에 건전하고 지혜롭게 재정을 관리해야 합니다.
(단 1:3~4) “3) ¶ 왕이 자기 내시들의 우두머리 아스부나스에게 말하여 그가 이스라엘 자손과 왕의 씨와 통치자들 중에서 몇 사람 4) 곧 흠 없이 잘생기고 모든 지혜에 능숙하며 지식을 두루 갖추고 과학을 이해하여 왕의 궁궐에 설 만한 능력을 갖춘 아이들을 데려오게 하고 사람들이 그들에게 갈대아 사람들의 학문과 말을 가르치게 하니라.”
한 국가가 다른 국가를 침략해서 승리했을 때는, 패배한 국가의 우수한 인재를 잡아가서 그들을 유용하게 쓰는 것은 매우 일반적인 일입니다. 평범하거나 쓸모없어 보이는 사람들은 모두 죽이고, 쓸모 있어 보이거나 자기 국가에 이득이 될 사람들만 살려둡니다. 이것만 봐도 저 같이 쓸모없는 사람을 살려주셨고, 은혜를 베풀어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게 됩니다. 주님은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고, 이득도 되지 않는 저를 위해, 십자가 위에서 대속해 주셨습니다. 그렇게 주님은 아무런 가치 없던 저를 구원해 주시고, 은사를 주셔서 주님을 섬길 수 있는 특권까지 주셨습니다. 여러분도 마찬가지시죠.
(단 1:5~7) “5) 또 왕이 그들에게 왕의 음식과 왕이 마신 포도주에서 날마다 필요한 양식을 지정해 주고 이렇게 삼 년 동안 그들을 양육하였으니 이것은 삼 년이 끝날 때에 그들이 왕 앞에 서게 하려 함이었더라. 6) 이때에 이들 가운데 유다 자손에 속한 다니엘과 하나냐와 미사엘과 아사랴가 있었는데 7) 내시들의 통치자가 그들에게 이름을 주되 곧 그가 다니엘에게는 벨드사살이라는 이름을 주고 하나냐에게는 사드락, 미사엘에게는 메삭, 아사랴에게는 아벳느고라는 이름을 주었더라.”
이 세상의 통치자는 하나님과 관련된 이름을 인정하고 싶어하지 않습니다. 우리나라 일제 강점기에도 민족말살 정책으로 한국 사람을 일본 이름으로 개명시키려고 했습니다. 이것과 비슷한 겁니다. 그래서 다니엘이라는 “하나님은 나의 심판자이시다”라는 의미의 이름을 벨드사살로 바꿔야 했는데, “벨”은 바빌론 신의 이름이고, 벨드사살의 의미는 “벨이 그의 생명을 보호해 줄 것이다”였습니다. 하나냐는 “여호와는 은혜로우시다”라는 이름이었는데, 그의 이름을 “달 신의 명령”이라는 의미의 사드락으로 바꿨습니다. 미사엘은 “누가 하나님과 같은가”라는 이름에서 “누가 아쿠와 같은가”라는 의미인 메삭으로 바뀌었습니다. 아사랴는 “여호와는 나를 돕는 분”이라는 이름에서 “메고의 종”이라는 의미의 아벳느고로 바뀌었습니다. 구원받은 여러분은 어떤 이름과 호칭을 갖고 있습니까? 여러분에게 하나님과 관련된 이름(names)과 호칭(titles)로 어떤게 있을까요? 거룩한 삶을 사는 ‘성도’, 그리스도가 내 안에 사시는 ‘그리스도인’, 하나님의 왕국에서 파견된 ‘대사’, ‘복음에 빚진 자’, ‘빛과 소금’ 등 이런 호칭들이 있습니다. 세상은 우리가 이런 이름으로 불리는 것을 싫어하지만, 하나님은 우리가 이런 이름으로 불려지는 것을 기뻐하십니다.
다니엘은 이스라엘 민족의 백성으로, 고국과 민족과 하나님을 사랑했습니다. 하지만 이스라엘 민족의 불신으로 인해, 그들의 종교와 국가는 흩어지게 되었습니다. 우리 신약교회는 어디서 모이든 장소에 상관없지만, 유대교는 장소에 구애를 받습니다. 교회인 우리는 어디서든 주님께 경배를 드릴 수 있지만, 율법에 따르면 유대교의 중심은 예루살렘과 성전이었습니다. 이런 유대인들이, 고국에서 쫓겨나 바빌론으로 끌려간 것입니다. 이제 다니엘과 세 친구는 더 이상, 유대교에 따라 신앙생활을 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이제 다니엘에게는 그를 바르게 인도해주고 말씀을 알려줄 대제사장도 없고, 레위인도 없고, 아버지도 어머니도 없었습니다. 하지만 다니엘은 그런 상황에서도 최선을 다해서 하나님을 신뢰하겠다고, 자기 마음속으로 작정했습니다. 오늘 말씀은 구원받은 모든 사람에게 전하는 것이지만, 특별히 젊은 사람들이 중점으로 들었으면 좋겠습니다.
여러분은 교회 밖에서도 하나님과 동행하고 있습니까? 혹시, 여러분 옆에 목사님이 없고, 부모님도 없고, 다른 그리스도인들도 없을 때, 여전히 그리스도인답게 살아가고 있습니까? 여러분이 교회에서 믿음을 드러내는 것처럼, 세상에서 살 때도 믿음을 드러내고 있습니까?
다니엘은 정말 어려운 상황에 처해 있는 것입니다. 더욱이 아주 젊은 나이에 부모님과 떨어져 홀로 지내야 했습니다. 타국에서 원하는 음식을 마음대로 먹을 자유가 없는, 그런 노예생활을 해야만 했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도 그는 하나님을 더욱 신뢰하겠다고 마음속으로 작정했습니다. 국가와 종교와 부모를 포함한 거의 모든 것을 잃었지만, 하나님과의 관계와 하나님 앞에서 진실하게 살겠다고 자기 마음속으로 작정했습니다. 하나님을 신뢰한다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신뢰하는 것입니다.
어떤 분들은 지금이 “상실의 시대”라고 합니다. 무엇을 잃었기에 상실의 시대일까요? 여러분은 무엇을 잃었나요? 국가? 종교의자유? 사랑하는 사람? 직장? 아니면 재물? 건강? 그것도 아니면 하나님과 그분의 말씀에 대한 믿음을 잃어버렸나요?
이제 다니엘은 집으로도 갈 수 없고, 성전으로도 갈 수 없고, 하나님께 희생물을 드릴 수도 없고, 거실에 둘러앉아 부모님과 대화를 나눌 수도 없었습니다. 그는 모든 것을 잃었고, 게다가 바빌론에 끌려온 노예 상태였습니다. 하지만 그런 최악의 상황에서도 다니엘은 “하나님, 오직 주님만을 신뢰하며 살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라고 간절히 구했습니다. 그렇게 그는 마음속으로 오직 주님만을 신뢰하며 살겠다고 작정했습니다.
(단 1:8) “8) ¶ 그러나 다니엘은 왕의 배정 음식이나 왕이 마시는 포도주로 자기를 더럽히지 아니하겠다고 마음속에 작정하였으므로 자기를 더럽히지 않으려고 내시들의 통치자에게 요청하였는데(requested)”
다니엘은 왕이 정해 준 음식을 거부했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음식에 관한 엄한 규정을 주셨습니다. 바빌론에서는 짐승을 죽이면 먼저 희생물로 드리고, 그 다음에 사람이 먹었습니다. 이것은 이교도들에 흔히 생활방식이었습니다. 이교도는 자신들이 믿는 신에게 먼저 짐승을 바친 후에 고기를 먹으면, 그 고기를 통해 그 신의 일부를 자신들이 섭취하게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마치 천주교의 영성체와 비슷하죠. 그들은 이러한 행위를 통해 신의 능력과 은혜를 얻게 되고 건강해진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도 우상에게 바친 고기로 인해 누군가 실족하게 된다면, 자신은 고기를 먹지 않겠다고 말한 것입니다.
사실 다니엘은 선택권이 없는 상황입니다. 그는 포로로 끌려와 바빌론의 소유물이 되었기 때문에, 바빌론 외에 다른 곳에서는 살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다니엘은, 몸이 비록 바빌론에 속해 있지만, 마음은 하나님께 속할 수 있다는 사실을 잊지 않았습니다. 다니엘은 포로이기 때문에 자신에게 선택권이 없고, 자유가 없다는 사실을 잘 알았기에, 그는 자신을 관리하는 내시에게 정중히, “requested” 격식을 차려 정중하게 요청했습니다. 그랬더니 다니엘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아십니까?
9절에 “이때에 [하나님]께서 이미 다니엘이 내시들의 통치자에게 호의와 친절한 사랑을 받게 하셨으므로”
다니엘이 내시에게 요청하기도 전에, “이미” 하나님께서는 그의 마음을 보시고, 그가 내시들에게 호의와 친절한 사랑을 받게 하셨습니다. 이렇게 하나님은 자신의 성도의 최악의 상황에서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려고 하는 사람을 위해, 그의 주위에 있던 사람들이 그에게 친절을 베풀게 하셨습니다. 여러분도 진심으로 작정하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려고 한다면, 지금 여러분이 어떤 어려운 상황에 있든지 상관없이, 하나님은 여러분을 선하게 인도해주실 것입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함으로 인해 마음속에 작정한 다니엘, 그리고 그 다니엘의 마음을 보신 하나님.
하나님은 말씀대로 살고자 하는 다니엘의 마음을 아셨습니다. 바빌론이 다니엘의 마음을 바꾸지 못하자, 주님은 다니엘을 향한 바빌론 사람들의 마음을 바꿔주신 것입니다. 하지만 다니엘은 바빌론 사람들의 마음을 바꿔달라고 기도하지 않았습니다. 세상을 바꿔주셔서 자신이 믿음을 지키고, 편하게 생활할 수 있게 해 달라고 기도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자신의 마음을 바꿔달라고, 그리고 지금 상황이 아무리 안 좋아도, 오직 주님만을 신뢰하겠다고 마음속으로 작정한 것입니다. 그랬더니 하나님은 다니엘의 마음을 보시고, 그가 믿음으로 살 수 있게 인도해 주셨습니다.
다니엘이 하나님을 향해 마음으로 작정했듯이 ,우리 교회에도 이런 믿음을 가지고 생활하시는 분들이 계십니다. 자신이 일하는 직장에서 노조가 하는 일들이 자신의 믿음과 상충되어 마음에 작정하고 노조를 탈퇴하게 됩니다. 주님께 바라옵기는 그 형제님의 마음을 보시고 계속해서 믿음으로 살 수 있도록 하나님의 은혜를 구합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대통령을 바로잡아 달라고, 정치인들도 바로잡아 달라고, 세상을 바로잡아 달라고 기도합니다. 그래야 우리가 편하게 신앙생활을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지금 바로잡기를 원하는 것은, 대통령이나 정치인이나 세상이 아니라, 바로 예수님을 믿어서 구원받은 우리의 마음입니다. 말씀 대로가 아닌, 자신의 생각대로 사는 우리의 마음을 바로잡기를 원하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구원받지 않은 사람의 마음이 아니라, 구원받은 우리가 마음을 바로잡고, 다니엘 같이 주님과 같은 마음으로 살겠다고 결단하길 원하신다는 것입니다.
10절에 “내시들의 통치자가 다니엘에게 이르되, 내가 내 주 왕을 두려워하노라. 왕께서 너희의 먹을 것과 너희의 마실 것을 지정하셨는데 너희 얼굴이 너희 부류에 속한 아이들보다 못한 것을 그분께서 보셔야 할 까닭이 무엇이냐? 그리되면 너희가 왕으로 인해 내 머리를 위태롭게 하리라, 하니”
내시는 다니엘의 요청을 들어주었다가 일이 잘못되면, 자신의 처지가 잘못될 것을 염려했습니다. 어쩌면 내시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면, 다니엘이 믿는 신은 자신의 백성도 구하지 못하는 신이었고, 이스라엘이 바빌론으로 끌려가는 것을 막지도 못한 무능한 신이었고, 자신의 신이 다니엘의 신의 성전을 노략하고 모든 것을 빼앗아가도 다니엘의 신은 아무것도 할 수 없었고, 자신의 신이 다니엘의 신을 이겼다고 생각했을 겁니다.
그런 내시에게 다니엘은 “자신의 하나님을 신뢰하라”고 도전을 줍니다. 구원받은 우리는 다니엘과 같은 간증이 있어야 합니다. 불신자들이 갑자기 구원받게 되고, 하루아침에 바른 성경과 바른 교리를 붙드는게 아닙니다. 구원받은 사람들이 지속적으로 보여주는 좋은 간증이, 그들의 마음을 여는데 도움이 됩니다. 우리가 구원받지 못한 사람들에게 좋은 간증을 보여주고, 살아계신 하나님을 신뢰하고 산다는게 무엇인지를 보여주면, 그들이 위기에 처했을 때 다른 신들(gods)이나 점쟁이를 찾아가지 않고, 우리에게 찾아와 도움을 구할 것입니다. 우리가 어려운 상황에서도 믿음을 잃지 않고, 하나님을 신뢰하고, 주님의 말씀대로 살고, 주님을 공경하며 산다면, 세상 사람들은 우리의 믿음에 대해 더 듣고 싶어 할 것입니다. “너희는 무엇을 믿고 그렇게 살아?”. 여러분은 누구를 믿고 사십니까?
(단 1:11~13) “11) 이에 다니엘이 멜살 곧 내시들의 통치자가 다니엘과 하나냐와 미사엘과 아사랴를 감독하게 하려고 세운 자에게 이르되, 12) 간청하건데 당신의 종들을 열흘 동안 시험하사 그들이 우리에게 콩을 주어 먹게 하고 물을 주어 마시게 한 뒤에 13) 당신 앞에서 우리의 얼굴과 왕의 배정 음식을 먹는 아이들의 얼굴을 관찰하게 하시고 당신이 보시는 대로 당신의 종들에게 행하소서, 하매”
다니엘의 고백은 정말 담대합니다. 그의 마음에 하나님으로 가득 차 있지 않으면, 이런 말이 나올 수 없습니다. 다니엘의 말을 다른 식으로 표현하면 이런 겁니다. “나는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면서 하나님을 존중하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도 내 말대로 행하시며 나를 존중해 주실 겁니다. 제가 입증할 테니까, 당신은 그저 지켜보기만 하면 됩니다.”
우리가 우리의 이웃과 동료와 친구에게, 이렇게 말할 수 있을까요? 다니엘은 내시에게 자신의 믿음을 입증해 보이겠다고 하는 것입니다. 이 세상의 방식이 아닌, 하나님의 말씀대로 사는 삶이, 훨씬 더 낫다는 것을 입증해 보이겠다는 것입니다.
지금 우리나라에 정말로 필요한게 무엇일까요? 정치개혁? 진보나 보수? 코로나 종식? 이런게 아닙니다. 우리나라에 정말로 필요한 것은, 예수님을 믿는 모든 사람들이 자신의 믿음을 세상에 드러내 보이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사는 인생이 얼마나 좋은지, 세상에 입증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우리는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 당당하게 말할 수 있어야 합니다. “저를 보세요. 하나님의 말씀대로 사는 사람의 인생이 어떤 것이지, 제가 보여드리겠습니다.” 바로 이게 다니엘의 마음에 있던 것입니다.
다니엘은 거만하거나 교만한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단지 하나님의 말씀대로 사는 것이 무엇인지, 다른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싶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세상의 방식이 아닌, 주님의 말씀대로 사는 것이 얼마나 기쁘고, 은혜가 넘치는 인생인지,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왕의 음식처럼 이 세상에서 가장 좋은 것을 먹고 사는 것보다도, 하나님을 신뢰하며 사는 것이 사람에게 훨씬 더 유익하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다니엘은 세상과 함께 고기를 먹는 것보다 하나님과 함께 콩을 먹는 것이, 세상과 함께 고급 와인을 마시는 것보다 하나님과 함께 물을 마시는 것이, 훨씬 더 유익하다는 사실을 세상에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그는 먹고살 만하고 좋은 환경에서, 신앙생활을 잘하려고 결심한 것이 아닙니다. 그는 이 세상에서 누릴 수 있는, 거의 모든 것을 잃었지만, 가장 소중한 것, 하나님에 대한 믿음을 지키기 위해서, 마음속으로 작정한 것입니다. 그는 이 세상에서 무엇인가를 얻고자 하지 않았고, 하나님 앞에서 진실한 인생을 사는 것이 무엇인지 입증해 보이길 원했습니다. 이렇게 살았던 사람이 있다는 거고, 누구요? 19세 다니엘, 그러니 우리도 이렇게 살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다니엘은 하나님만을 신뢰해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고, 하나님은 그런 다니엘의 믿음에 응답해 주셨습니다. 이럴 때, 외쳐야 할 말이 있죠. “할렐루야(주님을 찬양하라)!”
(단 1:14~15) “14) 이에 그가 이 일에 관해 그들의 말에 동의하여 열흘 동안 그들을 시험하였더라. 15) 열흘이 끝났을 때에 그들의 얼굴이 왕의 배정 음식을 먹은 모든 아이들보다 더욱 아름답고 살이 더욱 기름지게 보이므로”
다니엘은 이 일을 통해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 하나님께서 살아계심을 보여주었습니다. 세상은 믿음이 없는 그리스도인들을 보고, 실망합니다. 우리가 그들에게 하나님의 말씀대로 사는 것이 무엇이며, 그것이 얼마나 즐겁고, 얼마나 유익한 것인지 보여줄 수 있다면, 그들은 우리를 통해 주님 앞에 나아올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가 세상에서 얼마나 행복한지, 평안한지, 만족하는지, 이런 모습을 보여주어야 합니다. 우리가 주님을 신뢰하는 믿음을 통해, 이런걸 세상에 드러내 보여야 합니다.
(단 1:16) “그런 까닭에 멜살이 그들의 배정 음식과 그들이 마실 포도주를 거두어 가고 그들에게 콩을 주니라.”
다니엘은 자신의 믿음을 입증해 보였습니다. 그러자 세상도 그것을 인정했습니다. 성경은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이, 악하다고 말씀합니다. 우리는 이 악한 현 세상에 살면서도, 하나님의 뜻대로, 말씀대로 살아가는 우리의 믿음을, 세상에 보여줄 수 있고 입증할 수 있어야 합니다.
여러분이 직장에 입사할 때, 말씀대로 사는 좋은 간증을 가지고 들어가서, 퇴사할 때도 좋은 간증을 가지고 나올 수 있습니다. 학교도 좋은 간증을 가지고 입학해서 좋은 간증을 가지고 졸업할 수 있습니다. 우리의 마음속에 하나님의 뜻대로 살겠다고 작정하면, 다니엘 같이 우리도 가능한 일입니다. 이 세상이 아무리 사악해도, 우리가 처한 상황이 아무리 좋지 않아도, 우리는 하나님의 뜻대로 살 수 있고, 말씀대로 살 수 있습니다. 이것이 가능한 이유는, 가장 먼저 다니엘처럼 하나님을 신뢰하고, 그분의 말씀대로 살겠다고 마음속으로 작정하는 것입니다.
여러분도 마음속으로 작정하십시오. 부모님도 없고 제사장도 없고 목사도 없고 다른 그리스도인들이 없어도, 여러분이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겠다고, 오직 하나님만을 신뢰하면서 살겠다고, 마음속으로 작정하십시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겠다고 마음속으로 작정하면, 아무리 우리의 상황이 좋지 않아도, 주님은 우리가 믿음으로 살 수 있도록, 길을 열어주시고 인도해 주실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말씀대로 살기로 마음속으로 작정하면, 도와주시고, 그러한 우리 안에서 일하실 것입니다. 세상이나 마귀나 다른 사람이나, 주변 상황을 탓하지 마십시오. 그러한 것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기로 마음속으로 작정했느냐?입니다.
오늘 말씀을 마무리하겠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은 우리가 하나님만을 신뢰하며 살겠다고, 마음속으로 작정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비록 영적인 바빌론에 살고는 있지만, 바빌론 사람들처럼 살 필요는 없습니다. 우리가 비록 이 세상에 살고는 있지만, 세상 사람들처럼 살 필요도 없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바빌론을 변화시키지 않으실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사악한 현 세상을 변화시키지 않으실 것입니다. 주님은 우리가 비록, 바빌론 같은 사악한 세상에 살고 있지만, 바빌론이 우리를 변화시키지 않기를 바라고 계십니다.
이제 우리가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은 성도로 남고, 우리 교회가 영적으로 큰 부흥을 이루기 이전에, 제일 먼저 해야 하는게 무엇인지 아십니까? 먼저 우리 각 사람이, 세상과 분리되고 거룩하게 되는 것입니다. 각 사람의 마음이, 하나님을 신뢰하며 살기로, 작정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모든 일보다 먼저 이행되어야 하고, 여기가 출발점입니다.
우리는 세상이 아니라, 하나님을 신뢰하겠다고 마음속으로 작정해야 합니다. 세상이 보여주는 화면을 보지 않겠다고, 세상이 들려주는 소리를 듣지 않겠다고 작정해야 합니다. 우리가 세상을 따라 죄를 지을 필요가 없고, 세상이 죄를 짓는 것을 막을 필요도 없습니다. 그저 우리는 세상이 무엇을 하든지 상관하지 말고, 하나님을 바라보고 그분만을 신뢰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신뢰하겠다고 마음으로 작정하는... 이것이 오늘 설교의 핵심 내용입니다.
다니엘은 바빌론을 변화시키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단지 바빌론의 일부가 되기를 거부했을 뿐입니다. 우리도 세상을 변화시키려고 할 필요가 없습니다. 세상을 변화시킬 수도 없습니다. 우리는 단지 세상의 일부로 살아가고 있지만, 거기에 물들면 안 됩니다.
구원받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아십니까? 예수님을 마음으로 믿으면 됩니다. 만일 여러분이 구원은 받았지만, 여전히 죄를 지으며 하나님의 뜻대로 살지 않고 있다면, 여러분이 죄를 버리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겠다고 마음속에서 작정해 보십시오.
하나님은 다니엘에게 말씀하셨지만, 다니엘이 억지로 말씀대로 살도록 강요하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은 다니엘이 우상 숭배에 참여하지 않기를 바라셨지만, 강제로 그렇게 하지도 않으셨습니다. 오늘날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만일 여러분이 아직 구원받지 못했다면, 하나님은 여러분을 억지로 구원받게 하지 않으실 것입니다. 만일 여러분이 구원은 받았지만, 하나님의 뜻대로, 말씀대로 살지 않고 있다면, 하나님께서 여러분이 억지로 말씀대로 살도록 하지 않을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여러분이 말씀을 믿고 그대로 살기를 원하십니다. 그것이 여러분의 인생에 최선의 길이기 때문입니다. 그게 최선일지라도 하나님은 절대로 강제하지는 않으실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여러분이 마음속으로 작정하고 실행해야 하는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결심, 결단.
여러분이 구원받기를 원하면, 주님께서 여러분을 도와주실 것입니다. 여러분이 구원받은 이후 말씀대로 살기를 원하면, 주님께서 여러분을 도와주실 것입니다. 이같이 여러분의 마음에 결단이 먼저입니다. 왜인지 아십니까? 여러분이 진정으로 원해서, 마음으로 결단하고, 하나님의 길을 선택했느냐?를 보시는 겁니다.
이제 여러분이 직장에서, 그리스도인으로서, 예수님의 대사라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여러분이 직장 상사에게 공손하게 대해야 합니다. 부하직원에게도 친절하게 대해야 합니다. 어느 직장에나 나름의 규칙들이 있습니다. 여러분이 어떤 기업에서 일하고 싶다면, 그 기업의 규칙을 준수해야 합니다. 하지만 직장에서 여러분에게 하나님의 뜻과 어긋나는 일을 요구한다면, 여러분은 정중하게, 또한 단호하게 의견을 제시해야 합니다. “저는 회사를 위해 최선을 다해서 일하겠습니다. 그런데 죄송하지만, 제가 주일에는 주님께 경배를 드려야 하기 때문에 회사에 출근하기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이런 식으로 정중하게 말해야 합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들같이 “내가 여기 아니면 갈 데가 없는 줄 알아? 일요일에 교회도 못 가게 하고, 이런 회사는 망할꺼야.” 이런 무례한 말과 행동을 해서는 안 됩니다.
다니엘은 용감했지만, 동시에 정중했습니다. 그는 자신의 신분을 알았고, 공손하게 요청했습니다. 그는 자신의 말을 신뢰하지 않고, 하나님을 신뢰했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뜻대로 살겠다고 마음속에 작정하고 자신의 믿음을 정중하게 표현한 것입니다.
이 다니엘의 하나님은, 지금 우리가 믿고 있는, 그 하나님과 같은 분입니다. 다니엘이 하나님의 뜻대로 살고, 오직 하나님만을 신뢰하면서 살기로 마음속에 작정했을 때,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 아시죠! 하나님께서 그를 인도하시고 도와주셨습니다. 우리도 다니엘과 같이 하나님만을 신뢰하고 마음속으로 작정하면, 하나님께서 다니엘을 인도해주셨던 것처럼 우리도 인도해 주실 것입니다. 끝.
2022-03-21 12:4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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