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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원광
  [4월10일]좁은 문, 좁은 길
  







제목: 좁은 문, 좁은 길
■ 본문: (마 7:13~14) “13) ¶ 너희는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넓고 길이 널찍하여 거기로 들어가는 자들이 많고 14)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이 협착하여 그것을 찾는 자들이 적으니라.”
여러분에게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과 그 길을 소개할 수 있어서 저는 영광입니다. 사망이 임해 있는 세상 사람들에게는 구원의 문으로 안내하고, 그 문을 통과해서 다시 태어난 사람들 중에, 여전히 멸망의 길을 걷고 있는 그런 기독교인들에게는 생명의 길로 안내하고자 합니다. 오늘 설교 중에 저의 어떤 표현이 여러분의 기분을 조금 상하게 할 수도 있겠습니다. 하지만, 그 문은 모든 사람들이 믿고 들어가야 할 문이고, 그 길은 구원받은 모든 성도들이 믿고 걸어야 할 길이기 때문에, 여러분의 마음이 선하게 반응하기를 주님께 맡기고 말씀을 전하려고 합니다.
오늘 제가 전하는 말이 진리라고 믿으시면, 여러분은 하나님 앞에서 두려워해야 합니다. 제가 성경이 말하는 진리를 전하면, 여러분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아들이시길 바랍니다. 저는 여러분을 그 문과 그 길 앞에까지만 안내하고, 선택하는 것은 여러분에게 달려 있습니다. 어쩌면 예수님을 믿는다고 말하는 수많은 종교인들 중에, 지옥과 불못에서 영원을 보내게 될 사람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저와 함께 신앙생활을 하는 우리 교회 분들은 절대 그런 일이 없기를 바랍니다.
오늘날 기독교는 하나님의 말씀보다 세상 문화 위에 서 있습니다.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인생에서 주님을 영접하는 기도를 한번 따라 한 것으로, 자신이 하늘나라에 갈 것으로 믿고 있습니다. 여러분의 생활 주위를 한번 돌아보세요. 예수님을 믿는다고 말을 하면서도, 여전히 세상과 똑같이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지 않습니까? 여러분은 어떠신가요? 영화나 티비나 인터넷에서 보지 말아야 할 것들을 보고, 하나님께서 미워하시는 것들을 보면서 세상과 함께 웃고, 짧고 자극적인 옷을 입고 다니고, 세상이 말하듯 말하고, 세상의 음악을 좋아하고, 그냥 이렇게 세상과 함께 살아가겠다고 생각하면서도, 한편으로는 그 언젠가 예수님을 믿는다고 기도한 적이 있었기 때문에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살 거라고, 그래서 교회에는 다니고... 어쩌면 우리 주변에 교회 다니는 사람들의 생활이 이와 비슷할꺼 같습니다.
적어도 우리 교회 성도님이라면, 예수님이 누구신지 알고 있으시겠죠. 그리고 여러분은 예수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받아들이겠다고 기도했던 적이 있으실 겁니다. 그때, 그 말이 진심이었나요? 여러분이 알아야 할 것은, 구원은 오직 예수님 안에 있는 믿음으로만 얻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 그리스도의 믿음은, 죄의 회개와 분리될 수가 없습니다. 진정한 회개는 여지껏 살아오던 죄의 길에서 돌이켜, 하나님을 향해 걷는 것입니다. 진심으로 회개했다면, 하나님께서 미워하는 죄를 미워하게 되고, 하나님께서 사랑하시는 예수님을 사랑하게 됩니다. 무엇보다도 예수님을 닮아가려는 마음이 생긴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이 가신 그 길을 따라, 자신도 주님과 함께 걷고자 하는 마음이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회개의 합당한 열매입니다. 여러분이 예수님을 주님으로 받아들였을 때, 여러분에게 회개하는 이런 마음이 있었나요? 혹시 여러분은 교회에서나 부모님이 구원받아야 한다고 하니까, 그때 분위기로 예수님을 믿으라고 하니까 믿는다고 한 것은 아닌지, 자신이 구원받았는지 점검해 보시기 바랍니다.
이제 마태복음 7장에 있는 예수님의 말씀을 듣도록 하겠습니다.
(마 7:13) “¶ 너희는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넓고 길이 널찍하여 거기로 들어가는 자들이 많고”
여기에 문이 있습니다. 거기에는 하나님이 계십니다.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는, 유일한 중보자이신 예수님이 계십니다. 세상의 모든 길이 로마로 통한다고 하지만, 이 세상의 모든 길이 하나님께로 이끄는 것은 아닙니다. 예수님은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요 14:6b) “...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를 통하지(by me) 않고서는 아무도 [아버지]께 오지 못하느니라.”
저는 이 땅에 존재하는 어떤 사람이든지, 예수님을 통해야만, 구원받을 수 있다는 사실로 인해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성경은 “모든 사람이 죄를 지어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롬 3:23) 라고 모든 사람에게 경고하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모든 사람이 하나님께 반항을 했고, 모든 사람이 그분의 법을 어겼습니다. 이 말은 곧,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다는 사실입니다. 하물며 성경은 모든 사람이 부정한(unclean) 물건 같고, 모든 사람이 스스로 옳다고 여기는 것조차도 하나님 보시기에는 더러운 걸래(rags) 같다고 말씀합니다(사 64:6).
그래서 성경은 모든 사람이 하나님의 진노를 받아 마땅하다고 선포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진노. 하나님의 거룩한 화내심. 이 진노에서 피할 수 있는 길은 오직 예수님을 통해서만 가능한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분의 무엇을 믿는 거죠? 그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는 것입니다. 그 예수님은 하나님께서 사람의 육체 안에 오신 분이라는 것, 그분은 죄가 없으시다는 것, 모든 사람이 구원받게 하려고 그분이 십자가에 달리셨다는 것, 모든 사람으로 인한 하나님의 진노가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께 내려졌다는 것, 그렇게 십자가에서 피 흘려 죽으셨다는 것, 그리고 셋째날 다시 일어나셨다는 사실을 믿는 것입니다. 여기까지가 예수님이 이뤄놓으신 일입니다. 그리고 이제 하나님 앞에서 내가 죄인이라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 그래서 내 위에 하나님의 진노가 머물러 있다는 것, 하지만 예수님이 십자가 위에서 나를 위해 대신 죽으셨다는 것, 그리고 그분이 부활하심으로 나도 그분 안에서 다시 태어났다는 것. 이 사실을 마음으로 믿고 예수님을 받아들이면(요 1:12) 구원받게 됩니다. 이렇게 주님의 이름을 부르면 구원받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입니다.
사람이 구원받는 것은 마음으로 믿으면 됩니다. 이렇게 구원은 아주 쉽습니다. 그 구원의 문이 바로 예수님입니다(요 10:9). 그 문이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입니다. 그런데 성경은 그 문이 좁다고 말합니다. 적당히 좁은게 아니라, 좁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찾는 자가 적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그 구원의 문을 통과하셨습니까? 그래서 하나님의 자녀로 다시 태어났습니까? 그랬다면, 잘하신 겁니다.
이제 우리가 살펴볼 내용은 그 좁은 문을 통과해서, 구원받은 이후에 우리가 걸어가는 그 길도, 좁다는 것입니다. 그 좁은 문을 통과한 우리가, 다시 말하면 거듭난 우리가, 다른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해서 그들도 구원받지만, 그들의 남은 인생을 좁은 길로 안내하지 않고 있고, 타락한 세상 사람들처럼 그냥 살도록 내버려 두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이제는 교회의 도덕성이 세상의 도덕성보다 더 나을게 없어 보입니다. 구원받은 우리의 삶이, 세상 사람들과 차이가 없어 보입니다. 도대체 교회에 무슨 일이 일어난걸까요?
교회 안에 낙태 수가 세상과 거의 비슷한 비율이라는 걸 듣게 되고, 성경적이지 않은 이혼도 세상과 별반 다를 바 없이 흔합니다. 이렇게 교회 안에서 부도덕이 만연한 것을 보게 됩니다. 저나 여러분이나 많은 성도들이 어떤 면에서는 이렇게 부도덕하게 살아가면서도, 여전히 교회에 와서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는 것이 현실입니다.
어떤 교회에서는, 집사들이 모여 회의를 하면서 하는 대화가 “오늘 회의 끝나고, 한 잔 쫙~”, 교회에 다니면서도 사업을 한다는 이유로, 유흥가나 술집을 자기 집 드나들 듯하고, 그러면서 스스로는 그리스도인이라고 말합니다. 정작 교회 안에서는 다른 그리스도인들과 잘 어울리지도 않고, 그러면서도 교회에 와서 자신이 하나님 앞에 부족하지 않게 구원받았다고 믿고 있습니다. 그 언젠가 성경을 들어본 바는 있어서, 자신은 육신적인 그리스도인일 뿐이라고 말을 합니다. 그런데 “육신적”이란 단어와 “그리스도인”이라는 두 단어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말입니다. 참된 그리스도인은 육신적인 생각, 악한 생활, 죄 가운데, 그렇게 살지 않습니다. 다시 태어나서 하나님의 성품으로 예수님 같이 살아갑니다. 이것은 저도 알고, 여러분도 다 알고 있는 진리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못 살고 있죠. 이것이 우리에게 큰 문제입니다. 성경의 진리는 알고 있는데, 문제는 알고도 행하지 않으면 그것이 죄가 됩니다. 확인해 보겠습니다.
성경은 (약 4:17) “그러므로 사람이 선을 행할 줄 알고도 행하지 아니하면 그것이 그에게 죄가 되느니라.”고 말씀합니다. 알고도 행하지 않는 사람을 다른 표현으로 하면, 위선자죠.
교회에 다니는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이 덧에 걸렸습니다. 아마도 우리 교회에도 있을 수 있습니다. 어찌되었건 교회에 나와서 종교적인 행위는 합니다. 하지만 마음속은 악하기 그지없습니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 우리의 마음을 숨기면 안됩니다. 숨긴다고 숨겨지는 것도 아니지만, 숨겨서는 안됩니다. 그래야 우리가 겸손한 마음이 되고, 그래야 하나님의 은혜가 임하게 됩니다.
여러분이 놓치고 있는게 무엇인지 아십니까? 하늘나라에 들어가는 문만 좁은게 아니라, 하늘을 향해 가는 그 길도 좁다는 것입니다. 이 좁은 길을 통해서, 참된 그리스도인이 평가됩니다. 많은 교회들에서 좋은 성도의 징표(sign)를 무어라고 하는지 아십니까? 주일성수, 십일조, 모든 예배 참석, 많은 헌금, 교회 봉사 등 이런 것들은 잘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런 외적인 것들로, 종교적인 모양만 있어도 사람들로부터는 좋은 평가를 받을 수 있습니다. 믿음이 없이 종교적인 행위로 사람들로부터 좋은 평가를 받을 수 있다는 겁니다. 하지만 이런 것은 세상에서나 하는 평가 방식입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이렇게 말씀합니다. 고린도후서 13:5절을 찾아보겠습니다.
(고후 13:5) “너희가 믿음 안에 있는지 너희 자신을 살펴보고 너희 자신을 검증하라.”고 합니다. 그러면서 구원받았는지 다시 물어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시는 줄을 너희가 스스로 알지 못하느냐? 알지 못한다면 너희는 버림받은 자들이니라.”
구원은 예수 그리스도를 내(각자) 안에 주님으로 모시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버림받은 자입니다. 그렇게 구원받은 사람은, 믿음의 근원이신 예수님을 자신 안에 모셨으니까, 그분이 안에 계시는 걸 입증하라는 것입니다. 요한일서를 통해 우리는 그리스도인도 죄를 짓고 산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러면 우리가 죄를 짓느다고 믿음이 입증될까요? 안 됩니다. 하지만 죄에 대한 회개가, 우리에게 믿음이 있음을 입증할 수 있습니다. 또 어둠에 거하지 아니하고 빛 가운데 걷는 것으로도 믿음을 입증할 수 있습니다. 또 자신의 뜻과 생각을 하나님께 내어드리고, 성경이 말씀하신 하나님의 뜻과 생각을 따르는 것으로도 믿음을 입증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의로운 길을 걷는 것으로도 믿음을 입증할 수 있습니다. 정말로 여러분이 좁은 문을 통과했다면, 다시 말해 구원받았다면, 이제 좁은 길을 걸으라는 것입니다. 그 길을 걷고 있는지, 여러분 스스로가 입증하라는 것입니다.
다시 마태복음 7장으로 가서
(마 7:15~16a) “15) ¶ 거짓 대언자들을 조심하라. 그들은 양의 옷을 입고 너희에게 오지만 속은 약탈하는 이리니라. 16) 너희가 그들의 열매로 그들을 알리니...”
오늘날 사람들은 누군가로부터 책망 듣기를 싫어합니다. 그래서 적지 않은 설교자들도 그냥 좋은 말, 칭찬하는 말만 하려고 합니다. 그런데 분명히 알아야 할 것은, 교회는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고 배우고 가르치는 곳입니다. 설교자도 사람인지라 다른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고 싶어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만약에 여러분의 설교자가 어쩔 수 없이, 사람에게 상처를 주느냐? 아니면 하나님께 상처를 주느냐?를 선택해야 한다면, 여러분은 어떤 설교자를 선택하시겠습니까?
거짓 대언자를 구별할 수 있는 가장 뚜렷한 표식 중의 하나는, 그가 늘 여러분이 듣고 싶어하는 말을 한다는 것입니다. 그는 결코 여러분의 생각에 시비를 걸지 않을 것입니다. 언제나 잘 하고 있다고 박수를 쳐주고, 지금도 잘 살고 있으니까 그렇게 계속 살라고 할 것입니다. 그들은 여러분이 재미있도록 성경을 토대로 하는 게임을 제시하고, 세상의 음악 리듬으로 육신이 흥겹게 박수치며 찬송가를 부르고, 그런 세상적인 기독교를 제시할 것입니다.
다시 16절에 “그들의 열매로 그들을 알리니 ...”
그들의 열매를 통해서 거짓 대언자를 알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 말씀을 우리에게 영적으로 적용해 보면, 누가 참된 그리스도인인지 알 수 있다는 것입니다. 바로 우리의 열매를 통해서입니다.
여러분 자신을 한번 돌아보겠습니다. 여러분이 지난 일주일 동안, 어떤 길을 걸어왔는지 생각해보세요. 일주일 동안 어떤 말을 했는지도 생각해보세요. 여러분의 마음을 불타게 하는게 무엇이었는지 생각해보세요. 그곳에, 예수님이 계십니까? 여러분의 삶에 중심에 예수님이 계십니까? 그게 아니라면, 예수님을 여러분의 겉옷에 붙어있는 악세서리 정도로 취급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아니면, 일주일에 한두번 인사 나누는 그런 좋은 분 정도, 그것도 아니면, 단지 여러분의 생각으로만 동의하는 분 정도...
여러분이 구원받은 이후, 여러분이 맺은 열매는 무엇입니까? 혹시 여러분은 세상 사람들처럼 살고 있지 않습니까? 세상 사람처럼 생각하고 있지 않습니까? 세상 사람처럼 행동하고 있지 않습니까? 죄를 지으며 그것이 잠시 주는 달콤한 이득을 선택하고 있지 않습니까? 하나님이 내 위에 세운 권위자(아내는 남편에게, 자녀는 부모에게, 국민은 국가 권력에게)에게 반항하는 것을 평범하게 여기고 있지 않습니까? 만일 그렇다면 여러분은 하나님을 모르는 것입니다. 왠지 아세요? 여러분의 열매는 하나님을 모른다고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다시 마태복음 7:16절, 예수님의 말씀을 보겠습니다. “너희가 그들의 열매로 그들을 알리니 사람들이 가시나무에서 포도를 또는 엉겅퀴에서 무화과를 거두겠느냐?”
가시나무와 포도, 엉겅퀴와 무화과는 서로 종류(kind)가 다릅니다. 그래서 서로 거둘 수 없는 거죠. “자기 종류대로”는 하나님이 세워놓으신 창조의 원리이므로 지켜집니다. 이 말씀을 우리에게 영적으로 적용해 보면, 이런 겁니다. 너희가 구원받아서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고, 내 길을 따라오는 제자라고 말하면서, 어떻게 나쁜 열매를 맺을 수 있느냐? 그건 너희의 생활 모습이 가시나무에서 포도를 거두고, 엉겅퀴에서 무화과를 거두는, 아주 비정상을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거 아니냐?고 물으시는 것입니다.
성경을 읽다보면, 하나님이 세우신 창조 원리에 위배되는 현상들을 간혹 만나게 됩니다. 식물들은 창조자 하나님의 섭리를 잘 따르고 지킵니다. 그래서 사과나무는 사과를 맺고, 배나무는 배를 맺고, 좋은 나무는 좋은 열매를 맺고, 나쁜 나무는 나쁜 열매를 맺습니다. 식물들은 이렇게 창조자 하나님의 섭리에 순종합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이 원리에 역행하기도 합니다. 마치 가시나무에서 포도를 거두려 하듯, 좋은 나무에서도 악한 가지와 악한 열매를 맺고 있습니다. 확인해 보겠습니다.
(롬 11:16) “첫 열매가 거룩하면 덩어리도 거룩하고 뿌리가 거룩하면 가지들도 그러하니라.”. 나무의 뿌리가 거룩하면 붙어있는 가지들도 거룩해야 하는게 하나님의 섭리입니다. 나무들은 다 그렇게 합니다. 그런데 사람은 이러한 하나님의 섭리에 불순종해서, 거룩한 나무에서 나쁜 가지와 나쁜 열매를 맺는게,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계속해서 17절을 보겠습니다.
(롬 11:17) “또 그 가지들 중에서 얼마가 꺾이고 야생 올리브나무인 네가 그들 가운데 접붙여져서 그들과 함께 올리브나무의 뿌리와 기름짐에 참여하게 되었거든”
“그 가지들 중에서 얼마가 꺽이고”, 이 말은 거룩 나무에 붙어있던 이스라엘 백성들 중에 하나님을 믿지 않고 열매가 악해서 하나님이 그 가지를 꺽으신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사람이 나쁜 나무에 붙어있으면 나쁜 열매를 맺겠지요. 그러나 좋은 나무에 붙어있어도 나쁜 열매를 맺을 수 있는게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성경이 그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이게 바로 사람입니다. 우리 자신을 봐도 알 수 있습니다. 우리가 구원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된 이후에, 우리 안에 열린 열매가 선한게 많을까요? 악한 게 많을까요? 성경은 17절에 이방인이었던 우리가 거룩한 뿌리의 나무에 접붙여졌다고 하는데도, 우리의 가지는 여전히 육신에 속한 악한 열매를 맺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얼마나 많은 설교에서 “회개하라고, 첫사랑을 회복하라고, 헌신하라.”고 선포하고 있습니까? “좁은 문”을 통과해 거듭난 사람이, 생활 속에서 “좁은 길”을 걷지 않고 있다면, 좋은 열매가 자라지 않고 있다면, 선한 행실이 지속되지 않고 있다면, 어쩌면 그것은 헛되이 믿은 것일 수도 있습니다. 누구도 일시적인 감정으로 선하게 보이는 일을 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혹시 그런 분이 계시다면, 자신의 구원을 점검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인생에 역사하신 때가 언제입니까? 구원받았을 때? 마음 속에서부터 선한 일을 시작했을 때? 그게 언제입니까? 여러분은 하나님과 함께 걷고 있습니까? 성경은 “그들의 열매로 그들을 알지니”라고 하십니다. 만약 우리의 삶에서, 그리스도인의 열매가 안 보인다면, 어딘가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도 “너희의 열매로 너희를 알리라”고 말씀하고 계신 것입니다.
잠언에도 이와 비슷한 말씀이 있습니다.
(잠 2:22) “그러나 사악한 자들은 땅에서 끊어지고 범법자들은 땅에서 뿌리째 뽑히리라.”
이 말도 다른 방식으로 표현하면, “그들의 열매로 그들을 알리라.”와 같은 의미입니다. 우리는 악인들의 최후에 어떤 결과를 얻는지 보며, 그들의 열매로 그들이 어떤 사람인지 알게 됩니다.
여러분, 저는 여러분의 마음을 꿰뚫어 볼 수 없습니다. 제 마음이 여러분의 마음의 진실을 보기 어렵습니다. 하지만 우리에게는 결코 속일 수 없는 분이 계십니다. 하나님입니다. 하나님은 여러분의 열매로 여러분을 알고 계십니다. 두렵지 않으세요? 후회되지 않으세요?
예수님은 우리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누가복음 13:24절에
(눅 13:24~26) “24) ¶ 좁은 문으로 들어가기를 힘쓰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많은 자들이 들어가기를 구하여도 들어갈 수 없으리라. 25) 집주인이 한번 일어나 문을 닫으면 너희가 밖에 서서 문을 두드리기 시작하며 이르기를, [주]여, [주]여, 우리에게 열어 주소서, 하여도 그가 너희에게 응답하여 이르되, 나는 너희가 어디에서 왔는지 알지 못하노라, 하리니 26) 그때에 너희가 말하기 시작하여 이르되, 우리는 주 앞에서 먹고 마셨으며 주께서는 우리의 거리에서 가르치셨나이다, 할 것이나”
우리가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지 않고, 열매도 맺지 않으면서, 입으로만 고백하는 신앙이 어떤 가치가 있는지 아십니까? 안타깝지만, 아무 가치가 없습니다. 그리스도께 나아와 “주여, 주여”한다고 해서, 모두가 하늘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고 성경은 말합니다. 교회에서 공개적으로 간증을 한다고 해서 모두가 영광을 얻는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도 아닙니다. 너무도 많은 사람들이 교회에 모여 “주여, 주여” 외치고도 하늘나라에 들어갈 수 없습니다. 왜인지 아십니까? 죄가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으로부터 칭의를 얻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계속해서 27절에 “27) 그가 이르되,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나는 너희가 어디에서 왔는지 알지 못하노라. 불법을 행하는 모든 자들아, 너희는 내게서 떠나라, 하리라. 28) 너희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과 모든 대언자들은 [하나님]의 왕국에 있고 너희 자신은 쫓겨난 것을 볼 때에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
이 말씀을 보면,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불법을 행하지 않고 하나님의 법을 지키며 예수님과 함께 걷는다는 의미입니다. 하나님의 뜻은 모든 사람이 예수님을 믿어 구원받는 것입니다. 교회에 다닌다고 하면서, 마음에도 없고 의미도 없이 “주여, 주여”라고 하는 그런 사람들이 있습니다. 교회 모임을 찾아다니며, 끊임없이 “주님”이라고 말하고 찬송을 하지만, 여전히 그의 생활 속에서는 불법의 열매가, 악한 마음이 보인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거듭나면서 들어온 그 문, 생명으로 인도하는 그 문은 좁습니다. 여러분도 동의하시나요? 그러면 그 문을 통과해서 살아가는 길은 어떤가요? 여러분의 생각에 넓은가요? 적당히 좁은가요? 아니면 좁은가요? 그래서 우리가 어떤 길을 걷고 있는지, 우리의 생활을 성경에 비추어봐야 합니다. 성경은 “주여, 주여”한다고 주님을 아는 것이 아니라고 말합니다. 여러분은 주님을 아십니까? 여러분에게 예수님의 믿음이 있냐?는 말입니다. 여러분이 받은 구원을, 일하여 드러내고 있느냐?는 말입니다. 성경이 말하는 그 좁은 길로, 살아가고 있는 모습이 보이느냐?는 말입니다.
참 그리스도인으로 살고 있다는 징표가 무엇인지 아십니까? 바른 성경을 사용하는 것, 바른 교회를 다니는 것, 바른 교리를 믿는 것, 신학교를 나오는 것, 티셔츠 등판에 기독교 문구가 적인 옷을 입는 것, 이런 것들은 좋은 모습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이것만으로 참된 그리스도인이라고 말하기에는 부족합니다. 참 그리스도인은 구원받은 증거가 있습니다. 그리고 그에게는 하나님의 뜻에 따라 살아가려고 하는 마음이 있습니다. 여러분에게 그런 모습의 열매가 보이는가? 입니다.
누군가 저의 설교를 듣고, 이렇게 말할지도 모르겠습니다. “형제는 지금, 행위를 하라고 말하고 있군요!”. 아닙니다. 제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율법의 행위나, 억지로 무언가를 하라고 하는게 아니라, 여러분 안에 구원이 있는지? 그 구원의 증거로 하나님의 말씀을 믿음으로 사는게 있는가? 입니다. 성경은 믿음은 보이지 않는 것들에 대한 증거라고 합니다. 하나님이 나에게 하신 말씀을 믿으면, 그에 따른 믿음의 증거가 드러나 보인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가진 믿음이, 거짓이 아니라는 사실을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여러분 안에 하나님이 말씀하신 좁은 길로 가려는 마음이 있습니까? 그러면 그 길로 걸으며 아버지의 뜻을 행하고자 하는 열매는 어디에 있습니까? 감사하게도 저희 교회 성도님들은 제가 알고 있듯이 그 좁은 길로 가려는 태도가 보여지고, 그렇게 살아가려는 마음이 있는 걸 종종 보게 됩니다.
적어도 우리 교회 성도님들은, 이 땅을 살아가며 가장 중요한 일이,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라고 말할 것입니다. 틀린 말이 아닙니다. 하지만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예수님께서 우리를 아시는가? 입니다. 제가 대통령을 안다고 말해서 아무 때나 그분이 계신 직무공간에 들어갈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하지만 대통령이 저를 지목해서 안다고 하면, 저는 그분을 만나러 들어갈 수 있습니다. 여러분이 구원받았다면, 예수님을 안다고 고백할 수 있습니다. 그분을 알아야 구원도 받게 되는 거니까요. 그렇게 구원받고 나서, 예수님을 모르고 사는 것처럼 살다가, 어느날 어려운 일이 닥쳐서 주님을 찾아옵니다. 그런데 그의 삶에 아직 불법이 남아있다면,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실 것입니다. “나를 주님이라고 부르는 자야! 나의 제자라고 스스로 말하는 자야! 그러면서도 좁은 길로 걷지 않는 자야! 불법을 범하지 말라.”. 어쩌면 대다수의 그리스도인들이 이렇게 살아가고 있는 것 같습니다.
오늘날의 기독교인 대다수가 좁은 문을 통과하며 구원받고 나서 이렇게 말합니다.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나를 구원하신 주님을 찬양합니다.”. 그런 다음에는 그게 끝입니다. 더 이상 좁은 문을 기억하지 않습니다. 세상과 다름없이 살아가고, 자신이 어떤 길을 걷고 있는지도 모른 채, 주변에 사람들이 많고 내가 하는 일이 잘 되어가니까, 마치 모든게 잘 되어간다는 듯이 살아갑니다.
그런데 성경은 좁은 문을 통과한 것이 끝이 아니라고 말합니다. 우리가 믿는 성경적 기독교는 단지 예수님을 주님을 받아들여 사람이 구원받는 것이 끝이 아닙니다. 그 이후, 어떤 길로 걸으며 살아갈 것인가? 이제 시작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성경은 문만 좁다고 하는 것이 아니라, 걸어가야 할 길도 좁다고 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구원받았습니까? 좁은 문을 통과하셨습니까? 그 좁은 문을 통과한 우리는, 하늘나라의 생활 방식으로 좁은 길을 걸어가야 하는 사람입니다. 죄를 짓는 예전 삶이 아니라, 불법을 버리고, 예수님이 걸으신 그 길,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찾지 않고, 몇몇 하나님을 따르는 사람들만 찾는 그 의로운 길, 선한 길, 진리의 길을 걸어야 합니다.
그 좁은 길을 걸어갈 때, 우리 안에는 성령의 열매가 맺힙니다(갈 5:22~23). 주님의 사랑, 주님의 기쁨, 주님의 화평, 주님의 오래 참음, 주님의 부드러움, 주님의 선함, 주님의 믿음, 주님의 온유, 주님의 절제. 외적으로 크거나 화려하진 않아도 이런 내적인 참된 거룩을 따르는 생활을 합니다.
우리가 여지껏은 하나님께서 미워하시는 것들을 즐겨봤고, 미워하시는 옷을 입었고, 미워하시는 행동을 했고, 미워하시는 냄새를 풍겼고, 악하게 돈을 벌고, 세상과 다르지 않게 살아왔지만, 이제부터는 그 좁은 문을 통과한 우리가 예수님이 걸으신 선한 길, 의의 길, 그 “좁은 길”을 걸어가야 하는 것입니다.
성경은 (눅 13:24a) “¶ 좁은 문으로 들어가기를 힘쓰라.” 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힘쓰라”고 번역한 단어는 “strive”입니다. “strive”는 노력하다, 힘쓰다, 얻으려고 애쓰다, 싸우다, 항쟁하다, 경쟁하다는 뜻입니다. 구원은 믿음으로 은혜로 값없이 받았지만, 상급과 보상은 거져 얻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그 문을 들어가고 나오며(요 10:9) 좋은 꼴을 얻는 데는 노력이 따르고, 힘써야 하고, 얻기 위해 애쓰고, 자신과 영적으로 싸고, 마귀와 항쟁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슬프게 하는 일들을 행했던 것으로 인해, 우리 자신의 죄악을 깨닫고 슬퍼해야 합니다. 그렇게 회개해야 합니다. 그리고 좁은 문으로 들어왔다면, 지금부터는 좁은 길을 걸어가야 합니다. 그 길은 찾는 사람들이 몇 없습니다. 성경은 “좁은 길”이 생명으로 인도하는 길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빛 가운데로 인도하시고, 우리가 죄에서 돌이키며, 하나님을 슬프게 했던 일들을 그만두고, 그분을 알고, 그분을 사랑하게 되기를 기원합니다.
오늘 말씀을 마무리하겠습니다.
성경은 마태복음 7장에서 좁은 문, 좁은 길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마 7:13~14) “13) ¶ 너희는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넓고 길이 널찍하여 거기로 들어가는 자들이 많고 14)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이 협착하여 그것을 찾는 자들이 적으니라.”
여러분은 성경에 나오는 방주의 문, 하늘의 문, 성전의 문, 양들의 문, 구원의 문이 누구를 상징하는지 아실 것입니다. 예수님입니다. 예수님을 받아들여 그 문으로 들어와 구원받게 됩니다. 좁은 문으로 들어온 것입니다. 그렇게 예수 그리스도라는 구원의 문으로 들어온 사람들 앞에는, 꼴을 얻는 좁은 문과 걸어가야 할 좁은 길이 있습니다. 그 길은 넓지 않아서 찾는 사람이 적습니다. 이 말은 여러분의 주변에 그 좁은 길로 걸어가려는 사람이 몇몇 없다는 것입니다. 그 길은 우리가 생명을 얻기 위해 들어온 문이 좁았던 것처럼, 그 길도 좁은 길입니다. 그 길을 찾는 자도 적다는 말입니다.
여러분의 지금 삶에서 여러분이 살아가는 길(way)이 넓고 평탄하다면, 어쩌면 여러분은 잘못된 길을 걸어가고 있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여러분이 가고 있는 길에 많은 사람들이 걷고 있다면 여러분은 잘못된 길을 걷고 있을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제 말이 아니라 성경이 그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너희는 좁은 문으로 들어가고, 좁은 길로 걸으라고 합니다.
성경은 우리가 가야할 그 길이 적당히 넓은게 아니라, 좁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적당히 많은 사람들이 함께 걷고 있는게 아니라, “몇몇(few)”의 적은 수가 찾는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 길이 생명으로 인도하는 길이고, 저와 여러분이 함께 걸어가야 할 생명의 길이라고 믿습니다. 끝.
2022-04-11 17:2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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