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 소개
예배시간 안내
약도/찾아오시는 길
연락처


게시판
교회 소식/공지
질의 게시판
행사 및 사진
Free Board
찬양방


말씀 및 설교
kjv mp3 player
주일 설교
묵상/은혜의 말씀
특강


지역 교회
링크


 

jboard

제목
  씨 뿌리기와 수확하기
이름
   관리자 [ E-mail ]
홈페이지
  http://av1611.co.kr
첨부화일


씨 뿌리기와 수확하기

말씀 : 요한복음 4장 24절-54절. 2017년 9월 3일 일요일 오후

“하나님은 영이시니 그분께 경배하는 자들이 반드시 영과 진리로 그분께 경배할지니라, 하시니라.”(24절)
우리는 창조물이 아닌 창조자를 경배해야 합니다. 교리가 아닌 하나님을 경배해야 합니다. 하나님에 대해 기록한 책이 아닌 하나님을 경배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성경은 하나님께 경배하라고 말씀하기 때문입니다. 또한 우리의 경배는 반드시 진리대로 이루어져야 합니다.
“여자가 그분께 이르되, 메시아 곧 그리스도라 하는 분이 오실 줄을 내가 아노니 그분께서 오시면 모든 것을 우리에게 말씀하시리이다, 하매 예수님께 서 그녀에게 이르시되, 네게 말하고 있는 내가 그니라, 하시니라.”(25-26절)
우물가의 여인은 유대인이 아닌 사마리아인이었지만 구원자를 기다렸습니다. 유대인과 이방인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빛이 달랐지만 모두 구원자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이방인도 유대인과 마찬가지로 구원자를 기다렸습니다. 비록 그들의 지식은 부정확했지만 자신들의 죄를 제거해주고 소망을 줄 구원자를 기다린 것입니다.
“이때에 그분의 제자들이 와서 그분께서 그 여자와 말씀하시는 것을 보고 이상히 여겼으나 아무도, 무엇을 구하시나이까? 어찌하여 그녀와 말씀하시 나이까? 하고 말하지 아니하더라.”(27절) 유대인들은 혈통이 섞인 사마리아인들에 대한 편견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만일 “그들이 무엇을 구하시나이까? 어찌하여 그녀와 말씀하시나이까?” 하고 물었다면 주님께서는 세상의 구원자로서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는 일을 하고 있다고 답하셨을 것입니다.
“그때에 여자가 자기의 물 항아리를 버려두고 자기 길로 가서 도시로 들어 가 사람들에게 말하되, 와서 지금까지 내가 행한 모든 일을 내게 말한 사람을 보라. 이분은 그리스도가 아니냐? 하니”(28-29절)
성경은 남자보다 여자가 더 약한 그릇이라고 말씀합니다(벧전 3:7). 이것은 육체적인 면보다는 감정적인 면을 말하는 것입니다. 마을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와서 항아리에 물을 담아 다시 마을로 돌아가는 것은 쉽지 않은 일입니다. 우물가의 여자는 예수님을 그리스도라고 믿었습니다. 하지만 그분을 사람(남자)으로 소개했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께서는 인간의 육체 안에서 나타나신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딤전 3:16). 예수님이 인간의 모습으로 나타나셨지만 여자가 그리스도라고 분별할 수 있었던 이유는 주님의 말씀 때문이었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도 주님의 말씀을 통해 진리를 분별할 수 있습니다. 주님은 한 평범한 남자의 모습으로 우물에 앉아계셨습니다. 만일 여자가 주님의 말씀을 귀 기울여 듣지 않았다면 여자는 주님이 누구신지 알지 못했을 것이고 죄로부터 구원받지도 못했을 것입니다. 주님의 말씀에 귀 기울였기 때문에 그분이 바로 그리스도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주님에 대해 알지 못하는 이유는 주님의 말씀이 어려워서가 아니라 귀를 기울여 말씀을 듣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에 그들이 도시에서 나와 그분께로 오더라.”(30절)
요한복음 1장을 보면 누군가 예수님을 만난 사람은 다른 사람에게 그분을 소개해 줍니다. 여기서도 먼저 예수님을 만난 사람이 다른 사람들에게 예수님을 소개해주어 사람들이 그분께로 나아왔습니다. 이것이 바로 전도입니다. 복음 전도는 예수님을 아는 사람이 예수님을 모르는 사람에게 예수님을 알려주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해야 하는 일입니다. 여러분은 누구도 구원할 수 없지만 여러분이 누구를 만났는지는 말해주고 상대방도 그를 만날 수 있게 도와 줄 수는 있습니다.
“그 사이에 그분의 제자들이 그분께 간청하여 이르되, 선생님이여, 잡수소서, 하거늘 그분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내게는 너희가 알지 못하는 먹을 양식이 있느니라, 하시니 그러므로 제자들이 서로 이르되, 누가 그분께 잡수 실 것을 가져다 드렸는가? 하매”(31-33절)
다시 똑 같은 일이 반복됩니다. 주님께서는 영적인 것을 말씀하시는데 사람들은 육신적인 것을 이야기합니다.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내 양식은 나를 보내신 분의 뜻을 행하고 그분의 일을 끝마치는 것이니라.”(34절) 억지로 할 때와 즐기면서 할 때 시간이 가는 것은 다르게 느껴집니다. 무엇인가를 억지로 하면 시간이 가지 않는 것처럼 느껴지고 즐기면서 하면 시간이 빠르게 가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34절에서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의 의미를 이해하겠습니까? 예수님께서는 아버지의 뜻을 즐겁게 행하셨습니다. 점심시간도 잊을 정도로 즐거운 마음으로 열심히 아버지의 뜻을 행하신 것입니다.
여러분도 이런 경험이 있을 겁니다. 특히 구원받은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이런 것을 많이 경험했을 것입니다. 잠깐 성경을 읽은 것 같은데 몇 시간이 지난 적도 있을 겁니다. 예배를 드리고 형제, 자매들과 교제를 나누기 위해 다른 약속들을 모두 취소한 적도 있을 겁니다. 모든 관심이 교회에 쏠린 적도 있을 겁니다. 예배 시간이 짧게 느껴지는지, 혹은 길게 느껴지는지를 통해 자신의 영적 상태를 점검해 볼 수 있습니다.
“너희가 말하기를, 아직 넉 달이 남아 있고 그 뒤에 수확할 때가 이른다, 하지 아니하느냐? 보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눈을 들어 밭들을 보 라. 그것들이 이미 희게 되어 수확하게 되었도다.”(35절)
육신적인 눈으로 보는 것과 영적인 눈으로 보는 것에는 큰 차이가 있습니다. 육신적인 눈으로 보면 아직 추수할 때가 넉 달이나 남아 있습니다. 하지만 영적인 눈으로 보면 이미 희게 되어 수확하게 되었습니다.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리는 자들은 기쁨으로 거두리로다. 귀중한 씨를 가지고 나아가 우는 자는 반드시 기뻐하며 자기의 곡식 단들을 가지고 돌아오리로다.”(시 126:5-6) 씨를 뿌릴 때가 있고 거둘 때가 있습니다. 농사를 하려면 정해진 때에 씨를 뿌리고 정해진 때에 수확해야 합니다. 하지만 혼을 구원하기 위한 정해진 때는 없습니다. 혼에 관해서는 언제나 수확해야 할 때입니다. 혼의 구원을 위해서는 언제나 씨를 뿌릴 때이고 언제나 수확할 때입니다. 주님의 일을 하기 위한 특별한 때는 없습니다.
농사를 짓는 것과 주님의 일을 하는 것은 매우 유사하지만 차이점도 있습니다. 농사를 지을 때는 씨를 뿌릴 때와 거둘 때의 시기가 정해져 있지만 주님의 일을 할 때에는 특별한 시기가 정해져 있지 않습니다. 주님의 밭에서는 항상 씨를 뿌리는 때이며 동시에 항상 수확하는 때입니다.
“거두는 자가 삯을 받고 영원한 생명에 이르는 열매를 모으나니 이것은 뿌리는 자와 거두는 자가 다 함께 기뻐하려 함이라. 이 점에서, 한 사람이 심고 다른 사람이 거둔다, 하는 그 말이 참되도다. 내가 너희를 보내어 너희가 수고하지 않은 것을 거두게 하였나니 다른 사람들은 수고하였고 너희는 그들의 수고에 참여하였느니라, 하시니라.”(36-38절)
우물가의 여인은 그리스도께서 오실 것을 자신이 안다고 말했습니다. 누군가 그녀에게 이야기해 주었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오셔서 자신이 그리스도라고 드러내셨을 때 그녀는 주님의 말씀을 받아들였습니다. 그녀는 구원자를 만날 준비가 되었기에 주님을 만났을 때 주님을 구원자로 받아들였습니다. 누군가 그녀의 마음에 씨를 뿌렸고 주님께서는 수확을 하신 것입니다.
그녀에게 그리스도에 관해 말해준 사람은 나중에 그녀가 실제로 그리스도를 만나게 될 것이라는 생각은 하지도 못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상상도 하지 못했던 일이 실제로 일어났습니다. 누군가 뿌린 씨가 익어 수확하게 된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제자들을 밭으로 보내셨습니다. 주님께서는 오래 전에 예레미야와 이사야와 호세아와 말라기와 침례인 요한을 보내셔서 눈물로 씨를 뿌리게 하셨습니다. 제자들은 이들이 오래 전에 뿌린 씨앗 중 익어 열매를 맺는 것이 무엇인지 보고 수확해 와야 했습니다.
다른 사람이 수고한 것에 참여해야 했습니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씨 뿌리는 자의 비유를 통해 말씀의 씨를 여기저기에 뿌리라고 하셨습니다. 그래야 언젠가 수확할 수 있게 되기 때문입니다. 주님의 일은 항상 이런 식으로 이루어집니다. 누군가 주님의 명령에 순종해 씨를 뿌리면 다른 사람이 주님의 명령에 순종해 수확하러 갑니다.
우리가 복음을 전하러 가면 항상 두 종류의 사람을 만나게 됩니다. 한 사람은 우리가 씨를 뿌려야 할 사람이고 다른 한 사람은 수확해야 하는 사람입니다. 복음을 전하려고 하니 전에 복음을 들어본 적이 있다고 하면 누군가 그 사람의 마음 밭에 이미 씨를 뿌린 것입니다. 이미 복음을 여러 번 들은 사람들 중에는 수확할 수 있는 사람도 있습니다.
어린 시절 부모님을 따라 좋은 교회를 다니다가 성장하여 교회를 떠나 세상에서 살다가 다시 주님께로 돌아오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어린 시절 다른 교회에서 뿌린 씨를 성장했을 때 다른 사람들이 수확한 것입니다. 여러분의 수고가 지금 당장은 눈에 보이지 않을지 모르지만 나중에 여러분이 뿌린 씨가 자라서 익게 되면 누군가 그것을 수확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면 영원한 생명에 이르는 열매를 모은 후 하늘에서 뿌린 자와 거둔 자가 다 함께 기뻐하게 될 것입니다.
아무리 열심히 복음을 전해도 믿으려는 사람이 전혀 없고 시간 낭비와 헛수고만 할 뿐이라고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하지만 사실이 아닙니다. 내가 뿌린 씨를 다른 사람이 거둘 것이고 다른 사람이 뿌린 씨를 내가 거두게 될 날도 올 것입니다. 뿌린 자와 거둔 자가 기쁨을 누릴 때는 영원한 생명에 이르는 열매를 모을 때입니다. 따라서 그 때까지 우리는 주님을 위해 한 일에 대한 결과를 알 수도 없고 알아야 할 필요도 없습니다.
우리가 한 모든 수고에 대한 결과는 이 세상이 아닌 하늘에서 드러나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교회에 열심히 나오다가 사라져버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목사나 성경교사들은 이들이 어디에 가서 어떻게 되었는지 전혀 알지 못합니다. 하지만 하늘에서는 모든 결과를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결과와 상관없이 씨를 뿌려야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뿌린 씨를 다른 사람이 수확할 것이고 다른 사람이 뿌린 씨를 여러분이 수확할 것입니다. 여러분이 한 일에 대한 정확한 결과는 이 세상이 아닌 하늘에서 드러나게 됩니다. 우리는 그때까지 각자에게 맡겨진 일에 충실해야 합니다.
“여자의 말이, 지금까지 내가 행한 모든 일을 그분께서 내게 말하였다, 하 고 증언하므로 그 도시의 사마리아 사람들 중의 많은 이들이 그분을 믿더라.
이에 사마리아 사람들이 그분께 와서 그분께 간청하여 그분께서 자기들과 함께 머무를 것을 구하니 그분께서 거기에 이틀을 머무르시매 그분의 말씀으로 인해 더욱 많은 사람이 믿고”(39-41절)
예수님께서 그곳에 이틀을 머무셨다면 제자들도 주님과 함께 그곳에서 이틀을 머물렀을 것입니다. 제자들은 불편한 이틀을 보냈을 것입니다. 그들은 주님께서 사마리아인과 대화하는 것조차 싫어했습니다. 그런데 6끼의 식사와 이틀 밤을 사마리아인들과 지내야 했으니 정말 괴로웠을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제자들이 어떤 편견을 가지고 있는지는 상관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들이 누구를 편하게 여기고 누구를 불편하게 여기는지도 상관하지 않으셨습니다. 주님께서는 사람들이 구원받기를 원하셨습니다.
“그 여자에게 이르되, 이제 우리가 믿는 것은 네 말 때문이 아니니 이는 우 리가 직접 그분의 말을 들었고 이분께서 참으로 세상의 구원자 그리스도이신 줄 알기 때문이라, 하였더라.”(42절)
사마리아인들은 예수님을 만나 그분의 말씀을 듣고 구원받았습니다. 주님의 말씀을 진지하게 들어본다면 주님을 구원자로 받아들이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주님을 거부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대부분 단 한 번도 성경을 진지하게 읽어본 적이 없습니다. 진실한 마음으로 성경을 열심히 읽지만 예수님을 만나지 못하게 되는 일은 일어나기 어렵습니다.
“이제 이틀 뒤에 그분께서 거기를 떠나 갈릴리로 들어가시니 이는 예수님께서 친히 증언하시기를, 대언자가 자기 고향(country)에서는 아무 존경도 받지 못하느니라, 하셨기 때문이라.”(43-44절)
가족에게 복음을 전했다가 거절당하면 많은 사람들이 44절을 핑계로 자신을 정당화합니다. 하지만 이 구절을 근거로 핑계를 대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첫째, 그런 핑계를 대는 사람 중 누구도 대언자는 아니기 때문입니다.
둘째, 성경은 자기 고향에서 존경 받지 못한다고 했지 집이라고 하지 않았습니다. 사도들이 구원받았을 때 그들은 예루살렘에서부터 복음을 전하기 시작했고 수천 명이 구원받았습니다. 따라서 문맥과 상관없는 구절을 떼어다가 가족과 친구들에게 복음을 전하지 못한 핑계로 사용해서는 안 됩니다.
“그때에 그분께서 갈릴리에 이르시매 갈릴리 사람들이 그분을 받아들이니 이는 그들도 명절을 지키러 갔다가 그분께서 명절에 예루살렘에서 하신 모든 일을 보았기 때문이더라. 이처럼 예수님께서 다시 갈릴리 가나에 오셨는데 이곳은 그분께서 물을 포도즙으로 만드신 곳이더라. 거기에 어떤 귀인이 있었는데 그의 아들이 가버나움에서 병들었더라. 그가 예수님께서 유대에서 떠나 갈릴리로 들어오셨다는 것을 듣고 그분께 가서 그분께 간청하여 그분께서 내려와 자기 아들을 고쳐 줄 것을 구하니 이는 그가 죽게 되었기 때문이라. 그때에 예수님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너희는 표적들과 이적들을 보지 않으면 믿으려 하지 아니하는도다, 하매 그 귀인이 그분께 이르되, 선생님이여, 내 아이가 죽기 전에 내려오소서, 하니 예수님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네 길로 가라. 네 아들이 살아 있다, 하시매 그 사람이 예수님께서 자기에게 하신 말씀을 믿고 자기 길로 가더라. 이제 그가 내려갈 때에 그의 종들이 그를 만나 그에게 고하여 이르기를, 당신의 아들이 살아 있나이다, 하거늘 그때에 그가 자기 아들이 낫기 시작한 시각을 그들에게 물은즉 그들이 그에게 말하되, 어제 일곱 시에 열병이 그에게서 떠났나이다, 하매 이에 그 아버지가 그때가 바로 예수님께서 자기에게, 네 아들이 살아 있다, 하고 말씀하신 그 시각인 줄 알고 그와 그의 온 집이 믿으니라. 이것은 또한 예수님께서 유대에서 떠나 갈릴리로 들어오신 뒤에 행하신 둘째 기적이니라.”(45-54절)
이것은 매우 아름다운 모습입니다. 이 사건은 예수님의 신성과 능력을 보여줍니다. 주님께서는 병자의 머리에 손을 얹거나 머리를 치지도 않으셨고 어떤 기구를 사용하지도 않으셨으며 심지어 만나지도 않으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한 도시에 계시면서 오직 말씀만으로 다른 도시에 있는 병자를 고치셨습니다. 이것은 정말 우리에게 큰 축복이 아닐 수 없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지금 새 예루살렘에 계시고 우리는 저마다 다른 도시에 살고 있습니다. 주님과 우리가 서로 다른 도시에 있지만 주님은 언제나 우리를 고쳐주실 수 있으십니다. 주님께서는 우리의 기도에 응답하시러 이 세상에 오실 필요가 없습니다. 셋째 하늘에서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고 말씀만으로 응답해 주실 수 있기 때문입니다.
비록 먼 곳에 계시지만 오직 말씀만으로 우리의 기도에 응답해 주시고 고쳐주시며 인생을 바꿔주실 수 있으십니다. 주님께서 그렇게 하실 수 있고 그렇게 하셨다는 사실로 인해 감사를 드립니다. 이 사건이 주는 두 번째 의미는 고침을 받은 당사자는 아무런 믿음도 없었다는 점입니다. 은사주의자들은 환자가 믿음이 없으면 고칠 수 없다고 주장하지만 본문에서는 환자가 믿음을 가지고 있었다는 말은 나오지도 않습니다.
은사주의자들은 주님을 열심히 믿고 물질로 “정성”을 보이면 하나님께서 응답해 주셔서 병을 고쳐주신다고 하지만 본문은 환자가 그러한 것을 했다는 언급이 없습니다. 은사주의자들이 그러한 말을 하는 이유는 환자가 치유되지 않았을 경우 자신들의 능력이 부족함은 가리고 환자들의 믿음과 “정성”이 부족하다는 핑계를 대기 위해서입니다.
병을 고치기 위해 예수님께서는 환자의 믿음을 필요로 하지 않으셨다는 점을 반드시 주목해야 합니다.
이 사건이 주는 세 번째 의미는 하나님께서는 거짓말을 하실 수 없다는 사실입니다. 저는 하나님께서 거짓말을 하실 수 없다고 믿습니다. 예수님은 죄를 단 한 번도 지은 적이 없다고 믿습니다. 예수님은 거짓말쟁이도 아니고 속이는 자도 아닙니다. 이 말은 칼빈주의자들이 또 다시 헛다리를 짚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본문에 나온 귀인은 예수님께 아들을 고쳐 달라고 간구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너희는 표적들과 이적들을 보지 않으면 믿으려 하지 아니하는도다.” 라고 하셨습니다. 그러자 귀인은 “선생님이여, 내 아이가 죽기 전에 내려오소서” 라고 했고 예수님은 “네 길로 가라. 네 아들이 살아 있다.” 라고 하셨습니다. 이 사람이 주님께서 아들을 고쳐주실 수 있다는 사실을 믿자 주님께서는 아들을 살려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귀인의 마음이 바르지 않았기 때문에 첫 번째 요청에는 거절하셨습니다. 귀인은 처음 주님께 나올 때는 믿음이 아닌 불신으로 나왔던 것입니다. 두 번째 나올 때 믿음으로 나아오자 주님께서는 그의 믿음에 응답해 주셨습니다.
주님께서는 누구도 억지로 믿게 하지 않으시며 오직 믿는 자를 구원하십니다. 주님께서는 억지로 우리가 주님의 뜻대로 살게 하지 않으시고 우리가 자원해서 주님의 뜻대로 살려고 할 때 도와주실 것입니다.
칼빈주의자들 중에서는 자신이 하나님을 사랑하려고 하지만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지 못하도록 막으신다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거룩하게 살고 싶지만 하나님께서 허락하지 않으시기 때문에 거룩하게 살 수 없다고 핑계를 대는 사람도 있습니다. 이것은 자신의 죄를 하나님 탓으로 돌리는 파렴치한 짓일 뿐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원하지 않는 자도 억지로 자신에게 오게 하겠다고 하지 않으셨습니다. 주님께서는 “…내게 오는 자는 내가 결코 내쫓지 아니하리라.”(요 6:37b)고 하셨습니다. 성령님께서는 “누구든지 원하는 자는 값없이 생명수를 취하라.”(계 22:17)고 하셨습니다. 본문에 나온 귀인은 아들을 살리고 싶은 마음에 자원해서 주님께 나아갔습니다. 그리고 주님을 믿었기 때문에 주님께서는 그의 믿음에 응답해 주셨습니다.
여기에 나온 기적은 2장에 나온 기적과 유사합니다.
두 기적 모두 도시에 들어오신지 셋째 날에 행하셨습니다(요 2:1, 4:43). 두 번 모두 사람들이 주님께 왔을 때 처음에는 거절당했습니다(요 2:4, 4:48). 둘 다 사람들은 주님의 명령에 바로 순종했습니다(요 2:7, 4:50). 둘 다 주님께서는 말씀만으로 역사하셨습니다(요 2:8, 4:50). 둘 다 심부름을 한 종들은 알았습니다(요 2:9, 4:51). 두 경우 모두 기적을 통해 믿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요 2:11, 4:53).
잠시 성경에 나온 기적에 대해 간단히 생각해보겠습니다. 성경을 보면 하나님께서는 오직 세 번의 시대에만 기적을 허락해 주셨습니다. 세 번 모두 기적의 목적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새로운 일을 시작하셨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함이었습니다. 유대인들은 표적을 요구합니다.
“유대인들은 표적을 요구하고 그리스인들은 지혜를 추구하나”(고전 1:22)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이집트에서 데리고 나와서 약속의 땅으로 인도하실 때 모세가 기적을 행하게 하셨습니다. 아담이나 아벨이나 아브라함이나 이삭이나 야곱은 기적을 행하지 않았습니다.
모세 시대에 이르러서야 하나님께서는 기적을 허락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기적은 다음 세대인 여호수아 시대까지 이어지고 끝났습니다. 사사기나 사무엘기에는 기적이 나오지 않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율법을 저버렸을 때 하나님께서는 이제 그들을 대언자를 통해 다루려 하셨습니다.
엘리야가 등장하기 전까지는 참된 대언자가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엘리야는 기적을 행하며 등장했습니다. 기적은 엘리야의 후계자인 엘리사까지 이어졌다가 사라져버렸습니다. 그 후에는 기적이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이사야나 예레미야나 다니엘은 기적을 행하지 않았습니다. 엘리야와 엘리사 이후에 구약성경에서는 기적을 행하는 사람이 등장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율법과 대언자는 침례인 요한까지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적과 기적과 표적을 통해 이스라엘 백성 가운데 율법을 세우셨고 이적과 기적과 표적을 통해 이스라엘 백성 가운데 대언자를 세우셨습니다. 그리고 인류의 역사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등장하십니다. 율법은 모세를 통해 대언자는 엘리야를 통해 주셨지만 은혜와 진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왔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기적을 행하셨고 기적은 사도들을 통해 이어졌습니다. 성경은 그리스도인의 표식이 아닌 사도들의 표식이 바로 기적이라고 말씀합니다. 그래서 바울 이후에 사도의 시대가 끝나 사도가 사라져버리자 기적도 사라지게 된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도시를 돌아다니며 사람들의 병을 고치는 기적을 행했지만 인생 말년에는 디모데에게 보내는 서신에서 약을 먹으라고 권면했습니다(딤전 5:23). 또 드로비모는 병들어서 밀레도에 남겨둘 수밖에 없었고(딤후 4:20) 자신은 의사인 누구와 함께 전도여행을 다닐 수밖에 없었습니다.
기적과 이적과 표적은 율법과 대언자를 주실 때,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등장하여 새로운 일을 하실 때 그것이 옳다는 신호로 주신 것이었습니다. 이스라엘을 향한 하나님의 다음 역사는 적그리스도를 통해 강한 미혹을 보내시는 것으로 나타납니다. 거짓 그리스도를 위해 거짓 대언자가 등장하면 기적과 이적과 표적을 통해 유대인들을 속일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유대인들이 진리와 거짓 중 무엇을 사랑하는지 시험하기 위해 거짓 대언자가 나타나 그들을 미혹하도록 허락하실 것입니다.
저는 가장 큰 표적은 중동이 아닌 교회에서 일어났다고 믿습니다. 거짓 교사들이 거짓 기적을 행하고 거짓 치유로 많은 사람들을 모았습니다. 아무도 알아들을 수 없는 엉터리 방언을 하면서 자신들의 능력을 자랑했습니다. 이러한 것을 통해 사람들은 거짓 기적과 표적에 길들여져 갔습니다. 이제 적그리스도는 사람들로부터 아무런 방해를 받지 않고 자연스럽게 왕좌에 앉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성경에 의하면 이렇게 단 세 시대에만 기적이 허용되었습니다. 모세와 여호수아는 기적을 행했지만 이스라엘 민족은 주님을 믿지 않아 38년 동안 광야에서 방황하다 죽었습니다. 엘리야와 엘리사가 기적을 행했지만 북왕국 이스라엘과 남왕국 유다는 불신으로 인해 멸망하고 이방인들에게 포로로 사로 잡혀 갔습니다.
예수님께서 세상에 오셔서 기적을 행하셨지만 이스라엘 민족은 주님을 믿지 않고 그분을 십자가에 못 박았습니다. 사도들도 기적을 행했지만 유대인들은 불신으로 인해 도시마다 쫓아다니며 그들을 박해했습니다. 기적은 하나님의 말씀을 이미 거부한 사람들의 마음을 돌이켜 사람들이 주님을 믿게 한 적이 단 한 번도 없습니다. 이미 하나님의 말씀을 거부한 사람은 아무리 많은 기적을 보여줘도 믿지 않을 것입니다. 믿지 않는 사람은 기적을 보고 예수님을 믿는 것이 아니라 기적을 행한 사람을 믿을 것입니다. 아무리 많은 기적을 목격하거나 체험한다 해도 하나님의 말씀을 믿지 않으면 아무런 소용이 없습니다.
우물가의 여인은 주님의 말씀을 믿고 구원받았습니다. 사마리아 사람들도 주님의 말씀을 믿고 구원받았습니다. 참 된 믿음, 사람을 구원하는 믿음은 하나님의 말씀에서 옵니다. “그런즉 이와 같이 믿음은 들음에 의해 오며 들음은 하나님의 말씀에 의해 오느니라.”(롬 10:17)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믿으면 구원받을 것이고 아무리 기적을 체험했다 해도 하나님의 말씀을 믿지 않으면 구원받지 못할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말씀을 전파해야 합니다.
“말씀을 선포하라. 때에 맞든지 맞지 아니 하든지 긴급히 하라. 모든 오래 참음과 교리로 책망하고 꾸짖고 권면하라.”(딤전 4:2)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주님께서 주신 성경으로 인해 감사드립니다. 우물가의 여인을 구원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그녀를 생각해 주시고 염려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사마리아 사람들을 염려해 주시고 사랑해주시고 구원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우리도 주위에 있는 다른 사람들을 염려해 주고 구원의 길로 인도해 줄 수 있도록 도와주시기 원합니다. 편견을 가지고 우리와 다른 사람들을 보는 것이 아니라 구원받아야 할 불쌍한 혼으로 볼 수 있도록 저희의 눈을 열어주시기 원합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렸습니다. 아멘.

   

관리자로그인~~ 전체 392개 - 현재 1/14 쪽
번호
제목
이름
파일
날짜
조회
2017-09-03
352
391
성가대
첨부화일 : 주만바라볼지라.gif (353832 Bytes)
2013-05-01
2164
390
성가대
첨부화일 : 사랑은_하나님_선물(류근면).pdf (114050 Bytes)
2013-05-01
1700
389
성가대
첨부화일 : 0주는나의반석.nwc (6642 Bytes)
2013-05-01
1292
388
성가대
첨부화일 : 0변화하리라_(Changed)_-_Tom_Fettke.nwc (4268 Bytes)
2013-05-01
1052
387
성가대
첨부화일 : 0눈물로내삶을다드려도.nwc (4029 Bytes)
2013-05-01
1542
386
성가대
첨부화일 : 하나님_사랑_놀라운_사랑(김병진).pdf (143187 Bytes)
2013-05-01
1404
385
성가대
첨부화일 : 00주는항상나를인도하시네.nwc (4285 Bytes)
2013-05-01
1527
384
성가대
첨부화일 : %B3%CA~1.JPG (228559 Bytes)
2013-05-01
1475
383
성가대
첨부화일 : 나주님~1.GIF (38067 Bytes)
2013-02-24
7829
382
성가대
첨부화일 : 00000참좋으신주님(김기영)[1].nwc (4302 Bytes)
2013-02-23
1334
381
성가대
첨부화일 : 0나의 찬양의 노래.nwc (4527 Bytes)
2013-02-23
1540
380
성가대
2013-02-23
1449
379
성가대
첨부화일 : 포기하지말라.nwc (1368 Bytes)
2013-02-03
1242
378
성가대
첨부화일 : 나주안에늘기쁘다.nwc (1161 Bytes)
2013-02-03
1432
377
성가대
첨부화일 : 0교회.nwc (1661 Bytes)
2013-02-03
1164
376
성가대
첨부화일 : 늘언제나늘가까이.JPG (141399 Bytes)
2013-02-03
3401
375
성가대
첨부화일 : 287.jpg (83236 Bytes)
2013-01-06
4807
374
성가대
첨부화일 : 232.jpg (75091 Bytes)
2013-01-01
2586
373
성가대
첨부화일 : 0사방에서 고난을 당해도.nwc (1405 Bytes)
2013-01-01
1192
372
성가대
첨부화일 : 0하나님앞에올수있는특권.nwc (1017 Bytes)
2012-12-23
1472
371
성가대
첨부화일 : 0000참좋으신주님(김기영)[1].nwc (3760 Bytes)
2012-12-09
1373
370
성가대
첨부화일 : 나의가는길.nwc (3465 Bytes)
2012-12-02
2495
369
성가대
첨부화일 : 0나의가는길들이.nwc (1600 Bytes)
2012-12-02
1567
368
성가대
첨부화일 : 0주님다시오실때까지(편곡).nwc (4962 Bytes)
2012-11-18
1471
367
성가대
첨부화일 : 248.jpg (82739 Bytes)
2012-11-11
2562
366
성가대
첨부화일 : 어느좋은그날아침에.nwc (1236 Bytes)
2012-11-04
1653
365
성가대
첨부화일 : 0오직예수.nwc (7627 Bytes)
2012-11-04
1376
364
성가대
첨부화일 : 0사람들은알지못해도.nwc (1395 Bytes)
2012-10-21
1354
363
성가대
첨부화일 : 0주의십자가(고민지_Arr.허림).nwc (5952 Bytes)
2012-10-14
1319
[맨처음] .. [이전] 1 [2] [3] [4] [5] [6] [7] [다음] .. [마지막]
 
Phone: (032) 421-2609 & (011) 389-5994 E-Mail: mykjv@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