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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겔다마,(Ακελδαμαχ) (피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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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겔다마,(Ακελδαμαχ) (피밭)

우리는 성경을 읽다보면 비슷한 사건들이 많음을 알게 됩니다. 아니 비슷한 것 같은데 전혀 다른 것들도 많이 있습니다. 그래서 비슷하기는 하나 서로 다른데 같은 것이라고 가르치고 또 그렇게 배우게 되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그렇다고 그것이 구원의 핵심진리나 교리는 아니므로 크게 염려하든가 옳다 틀렸다 싸울 필요는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은 성경을 잘못알기를 원하지 않으십니다.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가 성경 기록들도 알지 못하고 하나님의 권능도 알지 못하므로 잘못하느니라.](마22:29).
성경기록들을 바르게 알지 못하면 잘못하게 됩니다. 잘못하면 책망을 듣는 것입니다. 어쩌면 이 글을 쓰고 있는 저도 잘못알고 잘못 말하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한번쯤 짚어보고 싶은 것들이 있습니다.
왜냐하면 목회를 오래하면서 그동안 대강 알고 있었거나 잘못 배우고 잘못 알고 잘못 가르치고 있었던 것들이 자주 발견되기 때문입니다. 물론 앞으로도 주님 앞에 서게 될 때까지 얼마나 이런 일들이 반복될지 모릅니다. 반면 이 땅에 그 누구도 완전하거나 온전한 사람은 없다고 봅니다.
오늘 지면을 통하여 몇 가지 생각해 보고 싶은 것들이 있습니다.
먼저 [아겔다마] 즉 [피밭]이라는 사건을 살펴보기로 하겠습니다.
그 피밭은 마태복음27:3-10과 사도행전 1:15-26에 기록되어있습니다.
먼저 사도행전 1장의 (아겔다마)피밭을 살펴봅니다.
[사람들아 형제들아, 예수님을 잡아간 자들의 길잡이가 된 유다에 대하여 [성령]님께서 다윗의 입을 통해 미리 말씀하신 이 성경 기록이 반드시 성취될 필요가 있었나니 이는 그가 우리와 함께 계수되어 이 사역의 한 몫을 맡았기 때문이라. 이제 이 사람이 불법의 대가로 밭을 산 뒤 거꾸로 떨어져 한가운데가 터졌고 그의 창자가 다 흘러나왔으므로 그 일을 예루살렘에 거하는 모든 사람이 알게 되어 그 밭을 자기들 고유의 말로 아겔다마라 하니라. 그것은 곧 피 밭이라는 말이라. 시편에 기록된바, 그의 거처를 황폐하게 하시며 아무도 그 안에 거하지 못하게 하소서, 하였고 또, 그의 감독직을 타인이 취하게 하소서, 하였나니](행1:16~20).
[그(맛디아)가 이 사역과 사도직을 맡게 하옵소서. 유다는 자기 자신의 처소로 가려고 죄를 지음으로 그 직분에서 떨어져 나갔나이다, 하고](행1:25).
이제 마태복음 27장의 피밭을 살펴봅니다.
[그때에 그분을 배반하여 넘긴 유다가 그분께서 정죄 받으신 것을 보고 뜻을 돌이켜 은 서른 개를 수제사장들과 장로들에게 도로 가져다주며 이르되, 내가 무죄한 피를 배반하여 넘기고 죄를 지었노라, 하니 그들이 이르되, 그것이 우리와 무슨 상관이 있느냐? 네가 그것과 상관하라, 하거늘 유다가 그 은들을 성전에 내던지고 떠나가서 스스로 목을 매니라. 수제사장들이 그 은들을 거두며 이르되, 그것은 피 값이므로 그것들을 성전 보고에 넣어 두는 것은 율법에 어긋난다, 하고 의논한 뒤에 나그네들을 묻기 위해 그것들로 토기장이의 밭을 샀더라. 그러므로 이 날까지 그 밭을 피 밭이라 하느니라. 이에 대언자 예레미야를 통하여 말씀하신 것이 성취되니라. 일렀으되, 그들이 값을 매긴 자의 가격 곧 이스라엘 자손에 속한 자들이 값을 매긴 자의 가격인 은 서른 개를 취하여](마27:3~9).
성경을 살펴보기 전에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발행한 성경사전을 봅니다.
Aceldama

그 피밭이 그 피밭일까?
사도행전의 피밭이나 마태복음의 피밭이나 같은 밭일까?
[이제 이 사람이 불법의 대가로 밭을 산 뒤 거꾸로 떨어져 한가운데가 터졌고 그의 창자가 다 흘러나왔으므로](행1:18).
가룟유다가 불법의 대가로 밭을 샀다고 한 것은 예수님을 판돈 은 30으로 산 것이기 때문일까? 성경사전이 그렇다고 하면 그렇게 받아들일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아무래도 사도행전 1장의 밭과 마태복음27장의 밭은 다른 밭 같습니다. 둘 다 피밭은 피 밭인데 사도행전의 피밭은 가룟유다의 피밭이고 마태복음의 피 밭은 예수님의 피밭이 아닐까?
아마 가룟유다가 불법의 대가로 밭을 산 것은 그가 죽기 훨씬 전이고 수제사장들이 유다가 성전에 버린 돈을 어떻게 할까 의논하고 토기장이의 밭을 산 것은 유다가 죽은 후에 있던 일이 아닐까? 시간적인 차이가 있지 않을까?
그 이유를 성경기록에서 찾아보기로 하겠습니다.
사도행전의 피밭은 저주 받은 밭입니다. 아마 가룟유다는 거기에서 목매어 죽었고 배가 터져 창자가 흘러나온 그의 시체는 거기에 묻혔을 것입니다. 그 이유는 그곳이 그의 거처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그 밭은 황폐하게 되고 아무도 그 안에 거하지 못합니다.
[시편에 기록된바, 그의 거처를 황폐하게 하시며 아무도 그 안에 거하지 못하게 하소서, .......](행1:20a) 인용 성경 그들의 거처를 황폐하게 하시며 아무도 그들의 장막에 거하지 못하게 하소서. (시69:25).
[그의 거처] 또는 [자기 자신의 처소]라는 단어에 관심을 가져봅니다.
[......유다는 자기 자신의 처소로 가려고 죄를 지음으로 그 직분에서 떨어져 나갔나이다,](행1:25a).

한편 마태복음의 피밭은 가룟유다가 성전에 버린 은 30으로 수제사장들이 의논한 뒤에 나그네를 묻기 위하여 토기장이의 밭을 샀습니다.
[수제사장들이 그 은들을 거두며 이르되, 그것은 피 값이므로 그것들을 성전 보고에 넣어 두는 것은 율법에 어긋난다, 하고 의논한 뒤에 나그네들을 묻기 위해 그것들로 토기장이의 밭을 샀더라. 그러므로 이 날까지 그 밭을 피 밭이라 하느니라.](마27:6-8).
마태복음의 기록으로 보면 가룟유다는 돈을 성전에 버린 뒤에 떠나가서 스스로 목을 맸다고 했는데 그 와중에 자기 집에 있던 돈으로 밭을 사고 거기 가서 목매 죽었는가? 아니면 유다가 성전에 던져버린 돈을 수제사장들이 수습하여 의논하고 그 은 30으로 토기장의 밭을 살 때까지 목매지 않고 어디 가서 기다렸다가 그들이 토기장이의 밭을 산 후에 거기 가서 목을 매었을까? 그 추리는 별로 설득력이 없습니다.
아니면 가룟 유다가 목매 죽은 곳이 공교롭게도 토기장이의 밭이었고 수제사장들이 산 밭이 그 밭일까? 그러나 어떤 추리도 기록된 성경과 같다고 볼 수 없습니다.
성경의 다른 편을 상고해보겠습니다.
사도행전의 피밭은 [그의 거처]가 황폐하게 하여 아무도 그 안에 거하지 못하게 했는데 마태복음의 피밭은 나그네의 매장지가 되었습니다. 즉 예수님의 피 값으로 산 밭은 저주 받은 밭이 아니라 나그네들이 죽어 잠들 수 있는 곳 즉 [그들의 거처]가 되었습니다. 비록 나그네들을 묻은 공동묘지라 할지라도 분명한 것은 그곳이 황폐한 곳이 아니라 그 무덤들 안에 나그네로 죽은 자들이 거하는 곳이 되었습니다.
예수님을 넘기고 받았던 은 30으로 산 밭은 토기장의 밭이지만, 가룟유다가 산 밭의 원래 소유자의 이름은 기록이 없습니다. 가룟유다가 누구의 밭을 언제 사 놓았는지는 모르지만 성경에 [이 사람이 불법의 대가로 밭을 산 뒤]라 했으므로 성경대로 믿는다면 그가 밭을 산 것이 분명합니다.
핵심은 불법의 대가로 밭을 샀다는 말입니다.
아울러 그가 죽은 장소와 그가 산 밭이 다른 곳이 아니며 밭을 산 뒤란 말은 밭을 산 것이 먼저입니다. [그의 거처] 또는 [자기 자신의 처소]라는 말은 유다가 밭을 산 것이 분명합니다. 반면 수제사장들이 의논을 하고 어디의 누구의 밭을 살 것인지 물색하고 거래하는 시간이 있었을 것입니다. 이는 아마도 유다의 사망 후가 될 것입니다.
또 다른 결정적인 단서는 마태복음의 예언은 [대언자 예레미야를 통하여 말씀하신 것]이고 사도행전의 예언은 [시편에 기록된]것입니다. 물론 부분적으로 다른 내용일 수 있겠으나 분명 다른 피밭을 다른 방향에서 예언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분명 다른 것이라는 것을 말해주고 있는 것입니다.

잠시 여기에서 가룟유다의 행적을 더듬어 보고자합니다.
1차적으로 그는 12사도와 함께 계수되어 그 사역의 한 몫을 맡았었습니다. 그가 맡았던 한 몫은 무엇일까요? 그는 예수님과 함께 복음을 전하러 다니면서 가난한 자들을 돕도록 들어온 돈을 관리하는 재정담당이었습니다. 그는 머리회전이 빠르고 수리에 밝습니다. 한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요한복음 12장의 마리아가 매우 값진 나드 향유 한 근을 가져다가 예수님의 발에 붓는 것을 보고 그는 마리아를 책망함과 동시에 그 나드 향유의 값을 산출해냅니다.
[이에 그분의 제자들 가운데 하나로 그분을 배반하여 넘길 시몬의 아들 가룟 유다가 말하되, 어찌하여 이 향유를 삼백 데나리온에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지 아니하였느냐? 하니](요12:4-5).
그러나 그는 간교하여 자기가 관리하는 돈 가방에서 돈을 가져가는 도둑이었습니다. 이는 한두 차례 한 것이 아닐 것입니다. 이 사실을 알고 있었던 주님은 그를 “도둑”이라하셨습니다.
[그가 이렇게 말한 것은 가난한 자들을 염려하기 때문이 아니요, 도둑이므로 돈 가방을 맡아 그 안에 든 것을 가져갔기 때문이더라.](요12:6).
그가 그동안 빼돌린 돈으로 무엇을 했을까? 물론 부동산에 투자했다고 보니다. 그런 근거는 그는 밭을 샀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어디까지나 기록된 성경을 문자대로 믿어야합니다.
[이제 이 사람이 불법의 대가로 밭을 산 뒤 (유다가 그 은들을 성전에 내던지고 떠나가서 스스로 목을 매니라 마27:5)거꾸로 떨어져 한가운데가 터졌고 그의 창자가 다 흘러나왔으므로](행1:18).
이 사람이 [불법의 대가로] 산 밭 값은 예수님을 판 은 30이 아닙니다. 그 돈은 성전에 버렸습니다. 그가 정상적인 수고로 번 돈이 아니라 돈 가방에서 도둑질한 것이기 때문에 돈을 훔친 것은 불법이므로 그 돈으로 밭 값을 치렀기 때문에 불법의 대가로 밭을 샀다 했으며 뒤에 한 몫 잡아보려 했으나 결국 그가 산 밭이 자기의 거처가 되고 만 것입니다. 그리고 성경기록은 유다는 [불법의 대가로] 밭을 사고 수제사장들은 유다가 성전에 버린 [은 30으로]토기장이의 밭을 샀습니다.

사실 가룟유다의 정체는 마귀입니다. 그는 그가 해야 할 사역이 따로 있었습니다. 그가 처음부터 마귀로 예수님을 배반하기 위해서 열둘 중에 하나로 들어와 제자 노릇을 했던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응답하시되, 내가 너희 열둘을 택하지 아니하였느냐? 그러나 너희 가운데 하나는 마귀니라, 하시니라. 그분께서는 시몬의 아들 가룟 유다를 가리켜 말씀하셨더라. 그는 곧 열둘 중의 하나로 그분을 배반하여 넘겨줄 자더라.](요6:70-71).
그는 한마디로 스파이요, 도둑이요, 땅 투기꾼입니다. 그러나 표면적인 직함은 예수님의 선택된 열두제자중의 하나였습니다. 그러나 어찌할까? 그는 사실 멸망의 아들입니다.
[내가 그들과 함께 세상에 있을 때에 아버지의 이름으로 그들을 지켰나이다. 아버지께서 내게 주신 자들을 내가 지켰고 멸망의 아들 외에는 그 중의 하나도 잃어버리지 아니하였으니 이것은 성경 기록을 성취하려 함이니이다.](요17:12).
기록된 성경은 틀림없이 성취됩니다. 그것이 전능하신 하나님의 말씀의 권위입니다. 가룟 유다의 육신의 삶은 참으로 불행하고 안타깝습니다. 주님은 그를 가리켜 차라리 태어나지 않았더라면 자기에게 좋을 뻔 했다고 하셨습니다. [사람의 [아들]은 자기에 대하여 기록된 대로 가거니와 사람의 [아들]을 배반하여 넘겨주는 그 사람에게는 화가 있으리로다! 그 사람은 차라리 태어나지 않았더라면 자기에게 좋을 뻔하였느니라, 하시니라.](마26:24).
누구든지 이 땅에 태어나 마귀의 자식으로 살던지 하나님의 아들로 살든지 둘 중의 하나입니다. 그 삶과 쓰임 받는 것은 다소의 차이가 있을지라도 마귀의 종으로 살던지 예수님을 믿고 받아들여 하나님의 아들로 살던지 둘 중의 하나밖에 다른 것은 없습니다.
그렇다면 가룟유다 뿐 아니라 예수님을 믿지 않고 그분을 받아들이지 않은 사람은 누구나 [그 사람은 차라리 태어나지 않았더라면 자기에게 좋을 뻔]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구원은 참으로 값지고 감사한 일이며 더불어 구원 없는 자들을 구원의 길로 인도해야할 의무를 가집니다.
그러나 가룟유다는 처음부터 성경을 성취하려고 예수님의 제자로 들어온 것입니다. 성경에는 주께서 그를 베드로나 야고보나 마태나 요한과 같이 제자로 부르셨다는 말은 찾아볼 수 없습니다. 그런데 그가 주님의 제자로 들어왔고 주님은 그가 자기를 배반하여 넘길 자임을 처음부터 알고 계셨습니다.
[그러나 너희 중에 믿지 않는 자들이 더러 있느니라, 하시니 이는 예수님께서 믿지 않는 자들이 누구며 또 자기를 배반하여 넘길 자가 누구인지 처음부터 아셨기 때문이라.](요6:64).
제자들은 아무도 몰랐으나 주님은 처음부터 그가 언제 어떻게 배반할지 다 아셨습니다. 그가 어느 날 변한 것이 아닙니다. 주님은 한 번도 그를 타이르거나 고치시려고 하신 적이 없습니다. 주님은 악한영도 쫓고, 다리 저는 불구자나 눈을 보지 못하는 맹인이나 중풍병자나 문둥병자나 그분 앞에 고침 받지 못한 사람은 없습니다.
유다는 주님을 따라다니다가 주께서 죽으셔야할 때가 되어 제사장들에게 돈을 받고 주님을 넘긴 것입니다. 주님은 그에게 속히 할 일을 하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대답하시되, 내가 빵 한 조각을 적셔다가 주는 자가 그니라, 하시고 빵 한 조각을 적시사 시몬의 아들 가룟 유다에게 주시니라. 빵 조각을 받은 뒤에 사탄이 그 속에 들어가매 그때에 예수님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네가 하는 일을 속히 하라, 하시니라.](요13:26-27).

가룟유다는 왜 스스로 목을 매어 죽었나요?
[유다가 그 은들을 성전에 내던지고 떠나가서 스스로 목을 매니라.](마27:5).
마귀는 모방의 천재입니다. 적그리스도는 그리스도를 그대로 흉내 냅니다. 그가 만약 동료인 주님의 제자들에게 배반자로 밝혀지고 그들에게 붙잡혀 돌에 맞아 죽었다면 성경 기록이 성취되지 못하고 예수님을 흉내 내지 못할 것입니다.
예수님은 자신의 목숨을 “스스로” 버리신다고 하셨습니다. 반면 유다는 처음부터 마귀요, 또한 사탄이 유다에게 들어갔는데 그 역시 사탄의 권세로 “스스로” 죽는 것을 보여 예수님과 동등함을 과시한 것입니다.
예수님의 죽으심을 보겠습니다.
[이러므로 내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시나니 이는 내가 내 생명을 다시 취하려고 그것을 버리기 때문이라. 아무도 그것을 내게서 빼앗지 아니하며 내가 스스로 그것을 버리노라. 내게는 그것을 버릴 권능도 있고 그것을 다시 취할 권능도 있노라........](요10:17-18a).
한편 유다는 장차 이 땅에 짐승으로 오기 위하여 자기 처소로 가 있어야하고 죄를 지어야 하고 스스로 죽어야 했습니다. 기록된 성경으로 확인해보겠습니다.
[......유다는 자기 자신의 처소로 가려고 죄를 지음으로 그 직분에서 떨어져 나갔나이다,](행1:25a).
우리는 성경기록을 문자적으로 믿는 것을 가장 중요하게 여깁니다. 그러므로 가룟유다가 밭을 샀다는 것도 문자적으로 믿고 수제사장들이 토기장이의 밭을 사서 나그네의 매장지로 삼았다는 것도 문자적으로 믿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도행전의 피밭 (아겔다마)와 마태복음의 피밭은 분명 다른 두 장소의 밭이라고 보는 것입니다.
2012-05-01 20:4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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