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 소개
예배시간 안내
약도/찾아오시는 길
연락처


게시판
교회 소식/공지
질의 게시판
행사 및 사진
Free Board
찬양방


말씀 및 설교
kjv mp3 player
주일 설교
묵상/은혜의 말씀
특강


지역 교회
링크


 

jboard

특강, 주제별 글모음

  제4강 : 하나님의 왕국(Kingdom of God)
  관리자 [ E-mail ]
  http://av1611.co,kr

3, 하나님의 왕국(Kingdom of God)

말씀 : 막1:15, [이르시되, 때가 찾고 하나님의 왕국이 가까이 왔으니 너희는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막1:15).

[하늘의 왕국]과 달리 [하나님의 왕국]은 그리스도를 믿는 성도들에게 벌써 임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왕국]은 영적인 나라이기 때문에 보이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왕국]은 다시 태어난 사람들만이 볼 수 있고 그 왕국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성경기록을 보면 유대인들의 지도자요, 치리자인 유대교의 율법박사 니고데모가 풀리지 않는 궁금증을 가지고 밤중에 남몰래 예수님을 찾아와서 주님께 물었습니다.
“틀림없이 선생님은 하늘에서 오셨고 하나님께서 함께하시기 때문에 기적들을 행할 수 있는 것이 아니냐?”는 것입니다. 그 정도만 해도 다른 유대인들이나 바리새인들보다는 훨씬 낳은 편입니다. 당시 유대인들은 아무도 예수님을 하늘에서 왔다든가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말에 동의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예수님께서 자신이 하나님의 아들이라 해서 유대인들이 그분을 신성 모독죄로 돌로 치려했던 것입니다(요10:33).
예수님께서 니고데모에게 대답하십니다. [........ , 진실로 진실로 내가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다시 태어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왕국을 볼 수 없느니라, 하시니라.] (요3:3).
이 때 주님은 니고데모에게는 “회개하라. [하늘의 왕국]이 가까이 왔다” 하지 않으셨습니다. 니고데모는 분명한 유대인임에도 불구하고 주님은 그에게 [하나님의 왕국]에 대해서 말씀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그들의 왕으로 받아들이지 않았을 지라도 유대인이나 이방인이나 누구든지 그분을 자신의 구원자로 마음속에 받아들인다면 거듭날 수 있고 그에게 [하나님의 왕국]이 임함을 볼 수 있을뿐더러 [하나님의 왕국]에 들어 갈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왕국]은 볼 수 있게 임하는 것이 아니라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들의 마음에 조용히 임하기 때문에 믿지 않는 자들은 모릅 니다.
[바리새인들이 그분께 하나님의 왕국이 어느 때에 임하느냐고 다그쳐 묻거늘 그분께서 그들에게 응답하여 이르시되, 하나님의 왕국은 볼 수 있게 임하지 아니하며 또 그들이 이르기를, 여기를 보라! 혹은, 저기를 보라! 하지도 못하리니, 보라, 하나님의 왕국은 너희 안에 있느니라, 하시니라.] (눅17:20~21).
[하나님의 왕국]은 다시 태어난 자들 안에 있습니다. 다시 태어난 자들은 이미 [하나님의 왕국]에 들어간 것입니다. 다시 태어난다는 것은 처음에 어머니의 자궁 안의 태를 통해 물에서 태어난 자가 복음을 듣고 주님을 자신의 구원자로 믿고 받아들이면 성령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아들로 태어나는 것을 말합니다.
[예수님께서 대답하시되, 진실로 진실로 내가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물에서 나고 성령에게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왕국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요3:5).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왕국]은 육신에 필요한 것들을 채우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육신의 때에는 [하나님의 왕국]은 보이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왕국은 먹는 것과 마시는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님 안에서 의와 화평과 기쁨이니라. 이것들 안에서 그리스도를 섬기는 자는 하나님께서 받아주시며 사람들에게 인정을 받느니라.](롬14:17-18).
육신의 즐거움은 분명 먹고 마시는 것입니다. 아무리 경치가 좋고 아름다워도 허기진 사람들에게는 그 아름다움이 눈에 들어오지 않습니다. [금강산도 식후경]이란 말이 있습니다. 사람들은 먹고 마시는 재미가 없다면 무슨 재미로 살아가느냐? 반문합니다.
복음을 전하다보면 많은 사람들이 이구동성으로 하는 말이, ‘술을 끊고 담배도 끊는다면 인생이 무슨 낙으로 살아가느냐’고 반문합니다. 그들은 믿기도 전에 술, 담배 끊을 걱정부터 합니다. 그러나 그들이 주님을 받아들이면 오직 성령님 안에서 의와 화평과 기쁨이 넘치기 때문에 육신이 즐기는 것들보다 훨씬 더 큰 기쁨이 있음을 모릅니다.
우리가 어떻게 다시 태어나고 어떻게 하나님의 아들이 되었습니까? 무엇으로 자기가 거듭나고 구원 받았음을 알 수 있습니까? 이는 일차적으로 우리를 구원하려고 오신 예수님을 각자가 자신의 구원자로 받아들이면 하나님의 아들이 되는 권능을 받게 된다는 말씀을 믿고 그분을 마음속에 자신의 구원자로 받아들이면 됩니다.
이차적 증거로는 내가 기록된 말씀을 믿고 예수님을 받아들였을 때 예수님의 영이신 성령 안에서 평안함과 기쁨이 넘치며 옳고 그름의 분명한 기준이 설정되며 의, 즉 옳은 것을 택하고 기뻐하게 됩니다.
더욱 확실한 증거는 내 입술이 예수님을 “주”라 부르는 것입니다.
[........ 성령님으로 말미암지 않고서는 아무도 예수님을 주라고 말할 수 없느니라.](고전12:3b) 예수님을 자신의 구주로 받아들인 사람은 예수님의 영이신 성령께서 이미 내 안에 들어오셔서 그 성령으로 말미암아 예수님을 “주”라고 시인하고 고백하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제자 베드로가 {주는 그리스도}라고 고백 했을 때 주님은 그것을 계시한 이는 하늘에 계신 아버지라고 하셨습니다. 교회를 수십 년을 다녀도 거듭나지 않고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자신의 주로 고백하지 않는다면 그는 구원 받지 못한 자입니다.
[그분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그러나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 하시니 시몬 베드로가 대답하여 이르되,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하매 예수님께서 그에게 응답하여 이르시되, 바요나 시몬아, 네가 복이 있도다. 그것을 네게 계시한 이는 살과 피가 아니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시니라.](마16:15-17).
처음 예수님께서 유대인들의 왕으로 오셨으나 그들이 받아들이지 아니하여 그들의 왕국 즉 [하늘의 왕국]은 이루어지지 않았으나 그분이 우리를 구원하시려고 오신 하나님의 아들로 믿고 받아들이면 누구든지 하나님의 아들이 되는 권능을 주셨습니다.
[그분께서 자기 백성에게 오시매 그분의 백성이 그분을 받아들이지 아니하였으나 그분을 받아들인 자들 곧 그분의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다 하나님의 아들이 되는 권능을 그분께서 주셨으니] (요1:11~12). 여러분은 그분을 자신의 구원자로 받아들였고 하나님의 아들이 되셨습니다.
그렇다고 육신적으로 달라 진 것이 있습니까?
여러분의 주민등록기록부에 호주가 하나님으로 바뀌었습니까? 아니면 국적이 바뀌었습니까? 육신이 더 젊어지고 아름다워졌습니까? 하나님의 아들로 알 수 있는 증표라도 생겼습니까? 아직은 아닙니다.
육신적으로는 아무런 변화가 없습니다. 이 모든 것이 마음속의 문제요, 영적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약속과 하나님의 법으로는 우리 모두는 구원 받은 하나님의 아들들입니다. 이런 사실을 세상의 행정당국이 인정하지 않아도 상관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의 아들로 받아주신 것이 중요합니다. 영적인 것은 믿음으로만 입증이 되는 것입니다.
이세상이 하나님의 말씀으로 지어진 것을 아는 것은 믿음을 통해서만 가능합니다. [믿음을 통해 우리는 세상들이 하나님의 말씀으로 지어진 줄을 깨닫나니 그런즉 보이는 것들은 나타나 보이는 것들로 만들어 지지 아니하였느니라.](히11:3).
[하나님의 왕국](Kingdom of God)은 모든 복음서에 다 나오는데 마태복음에는 주로 [하늘의 왕국]을 말하며 [하나님의 왕국]은 다섯 번 등장합니다. [하나님의 왕국]은 도덕적이고 영적인 왕국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자신의 구주로 영접한 사람들의 마음 가운데 이미 세워진 왕국입니다.
[하나님의 왕국]의 왕이신 하나님의 영께서 믿는 자들 마음속에 들어와 계시기 때문에 [하나님의 왕국]은 믿음으로 구원 받은 자 안에 이미 임한 것입니다.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영께서 너희 안에 거하시는 것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고전3:16).
이처럼 [하늘]이 [하나님]과 다르다면 [하늘의 왕국]과 [하나님의 왕국]은 당연히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은 영이시므로 [하나님의 왕국]은 영적인 나라입니다. [하늘의 왕국]이 정치적이고 물질적이며 지상에 세워질 문자적인 왕국이라면 [하나님의 왕국]은 영적이고 도덕적이며 육신의 눈에 보이지 않는 왕국입니다.
하나님께서 유대인들에게는 세상의 것, 땅의 것, 물질적인 것, 이 땅에 세워질 나라를 약속하셨기 때문에 그들에게 [하나님의 왕국]에 대한 개념은 전혀 없고 [하늘의 왕국]에 대한 소망뿐입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주님의 말씀을 들을 때 이를 분별 하지 못하고 영적인 말씀을 들을 때엔 동문서답을 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왕국]에 이르는 복음은 어떠한 복음입니까?
우리는 어떻게 영원한 생명을 얻을 수 있습니까? 주님은 유대인들에게 왕국복음을 전하면서 이르시기를, [네가 생명에 들어가려거든 명령들을 지키라](마19:17) 하셨는데 오늘날 우리도 명령들을 지켜야 영원한 생명을 얻게 됩니까? 그것이 [하나님의 왕국]에 이르는 복음입니까?
우리의 구원은 명령들을 지켜서 얻게 되는 행위 구원이 아니라 주님을 믿으면 구원받고 영원한 생명을 얻게 됩니다. [이것은 누구든지 그를 믿는 자는 멸망하지 않고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 하나님께서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자신의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것은 누구든지 그를 믿는 자는 멸망하지 않고 영존하는 생명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하나님께서 자신의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정죄하려 하심이 아니요, 그를 통해 세상을 구원하려 하심이라.] (요3:15~17).
이것이 곧 은혜의 복음입니다.
[........이것은 내가 나의 달려갈 길과 [주] 예수님께 받은 사역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언하는 일을 기쁨으로 끝마치고자 함이라. 보라, 내가 너희 가운데서 하나님의 왕국을 선포하며 다녔으나 ......](행20:24b~25a)
[하늘의 왕국]복음은 회개와 명령들을 지키는 것이고 대상은 유대인들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은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이며 대상은 이 세상사람 누구든지 입니다.
[그를 믿는 자는 정죄를 받지 아니하거니와 믿지 않는 자는 하나님의 독생자의 이름을 믿지 아니하였으므로 이미 정죄를 받았느니라.] (요3:18).
[[아들]을 믿는 자에게는 영존하는 생명이 있고 [아들]을 믿지 않는 자는 생명을 보지 못하며 도리어 하나님의 진노가 그 위에 머물러 있느니라.] (요3:36).
오늘날의 육신적인 그리스도인들은 영적인 것을 구별하지 못합니다.
육신의 오감으로 보여 지고 만져지고 냄새 맡고 먹고 마시고 느끼고 즐기고 누리는 육신적인 것에는 지대한 관심이 있으나 영적인 것에는 별 관심이 없습니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입니다. 이는 땅의 것을 약속 받은 유대인들이 영적인 것과 육신적인 것을 구별하지 못하는 것과 다를 것이 전혀 없습니다.
[하늘의 왕국]복음이 선포되는 대상이 유대인이고 [하나님의 왕국]복음을 선포하고 듣는 대상이 세상 모든 사람들이며 하나는 이 땅의 것이고 후자는 영적인 것입니다.
참으로 안타까운 것은 하나님께서 유대인들에게 약속하신 것들을 오늘날의 육에 속한 그리스도인들이 이 땅에서 그대로 받으려고 하는 것입니다. 자신들이 영적 이스라엘이기 때문에 육신의 사는 날 동안에 유대인들에게 약속한 이 땅의 것, 물질적인 것, 현실적인 것, 육신적인 것, 세상의 것을 받아야 한다고 믿고 또 구합니다.
유대인이 아닌데 유대인이라는 것은 명백한 거짓말입니다.
[보라, 사탄의 회당에 속한 자들 곧 스스로 유대인이라 하나 유대인이 아니고 거짓말을 하는 자들이 있는데, 보라, 내가 그들이 와서 네 발 앞에 경배하게 하고 내가 너를 사랑한 줄을 알게 하리라.] (계3:9)
자신의 혈통이 누구인지도 모르는 그리스도인들은 성경을 기록된 문자대로 믿지 않는 자들이며 무엇이든지 영적, 영적이라면 만사형통하는 줄 압니다. 이는 참으로 어리석은 자들입니다.
육신적인 그리스도인들은 [육에서 난 것은 육이요, 성령에게서 난 것은 영](요3:6) 이라는 뜻을 모르고 자신들이 영적 이스라엘이라면서 그들에게 약속한 육신적인 것을 받으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습니다. 그러나 먼저 구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 알아야합니다.
[오히려 너희는 하나님의 왕국을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적은 양 무리여, 두려워하지 말라. 너희 [아버지]께서 그 왕국을 너희에게 주시는 것을 참으로 기뻐하시느니라.] (눅12:31~32).
육신에 속한 성도들은 영적인 것, 하늘에서 받을 유업에 대한 믿음이나 소망이 없으므로 능력 있는 영적 삶을 살지 못합니다. 영적인 것이라면 희미하거나 꿈속에서 잠시 누리는 좋은 것들 정도로 생각하기 때문에 하늘에 애착을 두지 못하고 하늘에 보물을 쌓아두려는 생각을 하지 못합니다.
우리교회는 연초에 천사들에 대한 [날개 없는 천사]란 제목으로 특강을 했습니다. 거듭난 사람들이 부활 때에는 하늘에 있는 하나님의 천사와 같다고 주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부활 때에는 그들이 장가가지도 시집가지도 아니하며 하늘에 있는 하나님의 천사들과 같으니라.](마22:30).
천사는 영물입니다. 우리 육신의 눈에 보고 싶을 때마다 볼 수는 없습니다. 시집가고 장가가는 일들은 이 세상의 일들이요, 육신 적인 일들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천사들은 영물이요, 영적이기 때문에 장가가지도 시집가지도 아니합니다. 더 이상 자녀를 둘 필요가 없습니다.
자, 우리는 성경에서 천사들의 행적들을 살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가 부활 때에는 하늘에 있는 하나님의 천사들과 같을 것이기 때문에 그들의 활동을 살펴보면 우리의 영적 미래를 볼 수 있습니다. 그리하여 영적이라는 개념을 확실하게 인식하고 받아들이고 소망해야 합니다.
천사는 능력이 있습니다.
잠시 꿈속에 나타났다가 사라지는 희미한 기억이나 이내 사라지는 허무한 허영이 아닙니다. 환상이 아닙니다. 기쁨이나 슬픔을 느끼지 못하는 무형물의 존재가 아닙니다. 몸이 없거나 지각이 없다고 생각해서는 안됩니다. 오히려 육신의 때보다 부족함이나 불편함이나 불가능이 없음을 알고 부활의 몸을 입고 천사와 같은 삶을 살기를 사모해야 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형을 당하시고 장사되신바 되고 안식 후 첫날 이른 아침주님의 부활하셨음을 모르는 여인들이 예수님의 시신에 몰약과 향유를 발라 드리려고 무덤을 찾아가면서 걱정한 것이 무엇입니까? 누가 동굴 무덤의 입구를 막고 있는 크고 육중한 돌문을 열어 줄 것인가? 하는 것이었습니다.
[안식일이 지났을 때에 마리아 막달라와 야고보의 어머니 마리아와 또 살로메가 가서 그분께 기름을 바르려고 이미 향품을 사 두었더라. 주의 첫날 매우 이른 아침 곧 해 돋을 때에 그들이 돌무덤에 가며 자기들끼리 이르되, 누가 우리를 위하여 돌무덤 입구에서 돌을 굴려 주리요? 하고 바라볼 때에 돌이 이미 굴려져 있음을 보았으니 이는 그 돌이 심히 컸기 때문이더라.] (막16:1~4).
마태는 예수님의 무덤 입구를 막고 있는 그 심히 큰 돌을 굴려 낸 자는 주의 천사라고 기록했습니다. [보라, 큰 지진이 났더라. 이는 [주]의 천사가 하늘로부터 내려와서는 가서 그 입구에서 돌을 뒤로 굴려 내고 그 위에 앉았기 때문이더라. 그의 용모는 번개와 같고 그의 옷은 눈과 같이 희거늘 지키던 자들이 그를 두려워하여 떨며 죽은 사람같이 되었더라.] (마28:2~4).
천사의 몸을 우리 눈으로 볼 수 없다고 그들이 힘이 없는 것이 아닙니다.
이 땅에 천사의 힘을 당할 사람은 하나도 없습니다. 사람의 수가 얼마든 간에 한 천사를 수많은 사람들이라도 당할 수가 없습니다. 이는 영적인 존재와 육신적인 존재의 차이입니다.
무덤을 지키던 자들은 천사의 용모만 보고도 두려워 떨며 죽은 사람같이 되었다고 마태는 기록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이 지금 실감 나지 않을지라도 주께서 우리가 부활 때에는 하늘에 있는 하나님의 천사와 같다고 하셨으면 그렇게 될 것을 믿으면 됩니다. 천사와 같다는 말은 그의 용모는 물론 능력이나 지각이나 모든 면에서 그와 같다는 것입니다.
지난 천사에 관한 특강을 할 때에도 예를 들어 잘 알고 있겠지만, 주의 천사가 한 밤에 십팔만 오천 명을 죽였습니다. 그들은 오합지졸들이 아닙니다. 같은 내용이지만 두 성경 구절을 보도록 합니다.
먼저 열왕기하 19:35절입니다. [그 밤에 주의 천사가 나아가 아시리아 사람들의 진영에서 십팔만 오천 명을 치매 그들이 아침에 일찍 일어나니, 보라, 그들이 다 죽어 송장이 되었더라.](왕하19:35). 했습니다.
이번엔 역대기하 32:21절을 보겠습니다. [주께서 한 천사를 보내시매 그가 아시리아 왕의 진영에서 모든 강한 용사들과 대장들을 멸하였으므로 이에 그가 수치스런 얼굴로 자기 땅으로 돌아갔더라. 그가 자기 신의 집에 들어갔을 때에 그의 배 속에서 나온 자들이 거기서 그를 칼로 죽였더라.](대하32:21).
천사들의 활동이야기는 끝이 없습니다. 이는 꿈이나 환상이 아닙니다. 현실입니다. 그러면 언제 우리가 천사들과 같은 능력으로 살게 될까요?
우리가 휴거를 통하여 부활의 몸을 입고 하늘로 들림 받았다가 주님과 함께 이 땅에 내려와 이 땅을 천년 동안 주님과 함께 통치할 때 천사와 같은 모습으로 천사와 같은 능력을 가지고 그들을 통치하게 될 것입니다.
그런데 그리스도인들도 썩어질 이 육신을 잃으면 모든 것을 다 잃어버릴 것이란 생각에 영적인 것, 천사와 같이 된다는 말에 별 흥미를 갖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는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며 믿음이 필요합니다.
예수님께서 유대인들에게 선포한 [하늘의 왕국]이 이 땅에 이루어 질 때 영적인 왕국 즉 [하나님의 왕국]이 동시에 입체적으로 임하게 됩니다. 입체적이란 말은 지상에는 여전히 육신을 갖고 먹고 마시고 낳고 죽는 사람들의 삶이 존재하며 심고 거두는 일은 오늘날과 다를 것이 없습니다.
다른 것이 있다면 온 세상을 통치하실 분은 이 세상 사람이 아니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부활의 모습으로 그분의 성도들과 함께 재림하셔서 만왕의 왕으로써 온 세상을 천년 동안 우리와 함께 다스리시는 것입니다.
이 땅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구원자로 받아들인 자들 안에 [하나님의 왕국]이 임하지 않았습니까? 그 왕국이 들림 받았다가 주님과 함께 내려와 지상에 세워진 [하늘의 왕국]을 통치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 일이 진행되려면 교회는 이 땅에 대환란이 임하기 전에 들림 받아야하는 것이 당연한 순서입니다. 이를 다른 말로 환란 전 휴거라고 합니다. 주께서 우리를 하늘로 데려 가실 때 우리는 홀연히 변화 됩니다.
[보라, 내가 너희에게 한 가지 신비를 보이노니 우리가 다 잠자지 아니하고 마지막 나팔 소리가 날 때에 눈 깜짝할 사이에 순식간에 다 변화 되리라.] (고전15:51). 이를 또한 부활이라고 말합니다.
거듭났으나 육신이 죽어 잠자는 자들에게는 부활의 몸을 입게 되는 과정이요, 또한 거듭나고 살아있는 동안에 들림 받게 되는 휴거의 찰라 눈 깜짝할 사이에 변화되어 부활의 몸을 입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형제들아, 잠자는 자들에 관하여 너희가 모르기를 내가 원치 아니하노니 이것은 너희가 아무 소망 없는 다른 사람들 같이 슬퍼하지 아니하게 하려 함이라. 우리가 예수님께서 죽으셨다가 다시 일어나셨음을 믿을진대 그와 같이 예수님 안에서 잠자는 자들도 하나님께서 그분과 함께 데려오시리라. 우리가 [주]의 말씀으로 너희에게 이것을 말하노니 곧 [주]께서 오실 때까지 살아서 남아 있는 우리가 결코 잠자는 자들보다 앞서지 못하리라. [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음성과 하나님의 나팔 소리와 함께 친히 하늘로부터 내려오시리니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 그 뒤에 살아서 남아 있는 우리가 그들과 함께 구름들 속으로 채여 올라가 공중에서 [주]를 만나리라. 그리하여 우리가 항상 [주]와 함께 있으리라.] (살전4:13~17).
이러한 성도들의 들림 받는 부활의 과정이 없다면 주님이 지상 재림하실 때 어떻게 성도들이 그분과 함께 이 땅에 올 수 있겠습니까? 환란 전에 교회가 들림 받지 못한다면 언제 올라가 그리스도의 심판대에 서고 언제 어린양의 신부로 혼인식을 치르고 주님과 함께 옵니까?
[이것은 그분께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신의 모든 성도들과 함께 오실 때에 하나님 곧 우리 아버지 앞에서 너희 마음을 거룩함 속에서 흠 잡을 것이 없게 굳건히 세우시게 하려 함이라.](살전3:13).
주님 지상 재림 때에 그분과 함께 오려면 우리가 먼저 들림 받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세상 종말이 아닙니다. 지구의 종말이 아닙니다. 그러한 일이 일어나는 대환란의 순간에는 지상엔 여전히 전쟁과 기근과 질병과 죽고 태어나는 일은 계속 되는 것입니다.
[그 날들에는 아이 밴 자들과 젖 먹이는 자들에게 화가 있으리로다! 그러나 너희의 도피하는 일이 겨울이나 안식일에 일어나지 않도록 너희는 기도하라.] (마24:19~20).
지상에서 일어나는 야곱의 고난(렘30:7)이라고 일컬어지는 대환란이라는 과정이 끝나갈 즈음에 주님께서 만왕의 왕으로 오실 때 하늘에 있는 군대들이 흰 말을 타고 그분을 따라 와서 드디어 [하늘의 왕국]을 이 땅에 세우실 것입니다.
[하늘에 있던 군대들이 희고 깨끗한 고운 아마포 옷을 입고 흰 말을 타고 그분을 따르더라.](계19:14). [그분께는 그분의 옷과 넓적다리에 왕들의 왕, 주들의 주라고 기록된 한 이름이 있느니라.](계19:16).
지금 우리의 영적 생활에 가장 큰 걸림돌은 무엇입니까? 당연히 육신입니다. [하나님의 왕국]이 우리 안에 임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육신은 현실적입니다. 먹고 마시고 입고 즐기고 누리는 것을 원합니다. 영적인 것은 이론뿐이요, 실질적인 것은 육신의 욕구입니다.
일전에 어떤 믿음의 형제가 저에게 아쉬운 듯 말하기를, [육신의 때에도 보상을 받았으면 좋겠습니다.] 했습니다. 세상을 살아가는 모든 사람들이 육신의 사는 날 동안 어떻게 하면 좀 더 누리고 살 수 있을까? 하는 것이 모든 사람의 사는 목적같이 되었습니다. 이는 사람이 사는 곳이라면 동서고금(東西古今)을 막론하고 같을 것입니다.
세상의 모든 종교가 육신의 것을 추구합니다. 무병장수와 부귀영화를 추구하는 것이 세상 종교가 지향하는 것들입니다. 복음이 우리나라에 훨씬 전에 들어왔지만, 특별히 기독교가 부흥한 시기는 이 땅에 새마을 운동이 벌어지던 시기와 맞물려 있습니다.
우리나라가 외부에 끊임없는 침략을 받아오고 일본의 강점기를 겨우 벗어난 상태에서 6.25전쟁을 통하여 피폐해진 나라는 가난에 찌들릴 대로 찌들려 어떻게 하면 잘살아볼까? 가난한 우리나라 백성들은 잘살아보는 것이 너무 절실했습니다. 지긋지긋한 가난을 벗어버리는 것이 모두의 소원이었습니다.
6.25동란 후 먹을 것이 없는 봄철에 진달래꽃을 유일한 간식거리로 삼았다는 말을 듣고 도회지에서 산 우리 집 사람은 가슴 아파 했습니다. 얼마나 먹고 살기 힘들었든지 일 년 내내 농사를 지어봐야 가을에 추수하여 지난겨울 먹고 살아온 빚을 갚으면 또다시 빚내어 그해 겨울을 보내야 하는 악순환의 연속이었습니다.
누가 무엇이든 외상을 준다면 소도 잡아먹는 다는 말이 있을 정도였으며 혹시 먹을 것이 갑자기 생겨 너무 먹으면 탈이 난다고 걱정하면 하는 말이 ‘먹고 죽은 놈은 굶어 죽은 놈보다 때깔이라도 곱다’는 말이 있었습니다. 이는 가난이 얼마나 무서운가를 엿볼 수 있는 이야기들이며 굶어 죽는 다는 것이 얼마나 큰 고통인가를 말하는 것입니다.
때마침 이 땅에 불어 닥친 것이 새마을 운동입니다. 아침 늦잠자고 부자 된 사람은 없다는 성현들의 지론으로 잘 살기 위해서는 아침 일찍부터 일어나 일해야 한다는 것이 새마을 운동의 취지입니다.

새마을 노래 - 싸우면서 건설하자
1.새벽종이 울렸네 새 아침이 밝았네
너도 나도 일어나 새마을을 가꾸세
살기 좋은 내 마을 우리 힘으로 만드세

2.초가집도 없애고 마을길도 넓히고
푸른 동산 만들어 알뜰살뜰 다듬세
살기 좋은 내 마을 우리 힘으로 만드세

나의 조국 새마을의 대합창
잘 살아보세 잘 살아보세
잘 살아보세 잘 살아보세
우리도 한번 잘 살아보세
우리도 한번 잘 살아보세
~
잘 살아보세 잘 살아보세
잘 살아보세 잘 살아보세
우리도 한번 잘 살아보세

새벽 다섯 시부터 이 노래가 온 나라에 반복적으로 울려 퍼졌습니다.
아이들이 학교 갈 때면 모두 모여, 줄을 서서 목청껏 이 노래를 부르며 가야했습니다.
이 새마을 운동과 함께 불붙은 것이 바로 교회의 새벽기도입니다.
교회에서는 목사가 날마다 복 받고 잘살아 보자고 설교하고 성도들은 필사적으로 복 받겠다고 아멘! 하여 사람들이 부지런해지고 마을마다 초가집들이 양철집이나 슬레이트집이나 기와집으로 바뀌고 마을길이 넓어지면서 지게로 등짐을 지던 사람들이 리어카에 더 많은 짐을 싣고 더 많은 일을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마을마다 교회가 들어서고 남정네들은 아침 일찍 새마을 운동을 나갈 때 아낙네들은 교회의 새벽기도회에 나가서 복달라고 부르짖고 목사님들은 구약의 이스라엘에게 약속하신 육신의 것, 땅의 것들을 설교하며 나라와 가정이 윤택해 지는 것을 부추겼습니다.
금요일마다 예수님의 고난에 동참한다는 명목으로 철야기도가 있었는데 실상은 가난과 시집살이에 고달팠던 아낙네들이 밤새도록 넉두리 하듯, 한 많은 사연을 하소연하고 푸념하듯, 주님 앞에 수다 떨 수 있는 자유와 공간이 마련 된 것입니다. 이러한 철야기도와 산 기도는 스트레스 해소는 물론 믿음으로 연결되고 응답이라는 소득을 얻게 되었습니다(눅18:1-8).
농촌의 교회에서는 창세기의 이삭에게 주신 복을 우리에게도 달라고 울부짖었습니다. [그때에 이삭이 그 땅에서 씨를 뿌려 바로 그 해에 백 배를 받았고 {주}께서 복을 주시므로 이 사람이 크게 되고 앞으로 나아가 성장하여 마침내 심히 큰 자가 되었으니 그가 양 떼를 소유하고 소 떼를 소유하였으며 종들이 심히 많았더라.......] (창26:12~14a).
교회마다 집집마다 성경읽기 운동이 벌어지고 배우지 못하여 감겼던 여인들의 눈이 열려졌습니다. 자연적인 문맹퇴치 운동이 벌어지고 배워야 산다는 의식이 팽배해지면서 교육열 또한 불붙기 시작한 것입니다.
우리나라 기독교 역사를 살펴보면 누구나 알 수 있듯이 새마을 운동과 더불어 나라의 경제나 가정의 살림살이가 훨씬 나아진 것은 부인할 수가 없습니다. 더불어 정부에서는 미신타파 운동이 불처럼 번져 나아가 미신은 숨을 죽이고 복음의 불길은 타올라 기독교 불모지였던 우리나라에 기독교인 수가 천만 명을 넘어서게 되었습니다.
이 기간이 1960년대 초에서-1980년대 말까지 이르는 약 30년간의 부흥시기였습니다. 당시엔 지하실이든지 다락방이든지 교회 간판만 붙여 놓으면 사람들이 모여들어 부흥되었습니다.
이렇게 교회가 확산되고 부흥되었으나 사실상 영적인 복의 개념은 무디어지고 현실위주의 신앙은 영원한 하늘나라에 대한 소망도 하늘에 보화를 쌓는 믿음도 희미해지고 지금 복 받고 지금 잘살아야 한다는 현실주의의 종교가 되어 버리고 말았습니다.
고난에 찌든 성도들은 창세기를 읽으며 형제들의 시기 질투로 이집트에 팔려간 요셉이 하나님과 함께 함으로 형통했다는 말씀을 좋아하고 그렇게 만사형통하기를 간구했습니다. [요셉이 이집트로 끌려 내려가매 파라오의 직무수행자로 호위대장인 이집트 사람 보디발이 그를 거기로 끌고 내려간 이스마엘 족속의 손에서 그를 사니라. {주}께서 요셉과 함께 계시므로 그가 형통한 자가 되어 그의 주인인 이집트 사람의 집에 있더라. 그의 주인이 {주}께서 그와 함께 계심을 보고 또 {주}께서 그가 행한 모든 일을 그의 손에서 형통하게 하심을 보았더라.] (창39:1~3).
목사님이 이 성경을 읽고 성도들에게 [여러분들도 요셉과 같이 만사형통하게 되기를 축원합니다!] 하면 성도들은 좋아서 아멘! 을 합창합니다.
그렇게 흘러온 우리나라 기독교의 교리는 이 땅의 것에 치중되고 [하나님의 왕국]에 대한 소망과 지식은 소멸되거나 아득한 먼 미래의 것이거나 환상 정도로 생각하게 된 것입니다. 부활의 몸을 입고 주님과 함께 통치한다는 개념은 성경속의 지식정도로 남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오늘날의 성도들에게 [하나님의 왕국]에 대한 공부는 인기가 없고 실감나지 않고 아득한 미래에 혹시 올지도 모를 환상의 세계의 일로만 여겨지게 된 것이 사실입니다. 이는 참으로 슬픈 일입니다.
지금 우리나라 교회는 육신의 배고픔은 사라졌고 [하나님의 왕국]은 여전히 사모하지 않습니다. 이는 성경적인 신앙이 아닙니다. 내세의 영적인 축복은 믿지 않으므로 기대하지 않는 심성과 현실주의에 밀려났습니다.
내세에 어떤 보상보다는 지금 얻어질 소득에 모든 관심이 쏠려 있습니다.
오늘의 교회는 주님이 오셔서 유대인들에게 선포하신 것이 무엇이며 이방인들에게 선포하신 것이 무엇인지를 분간해야합니다.
[하늘의 왕국]은 침례 요한과 예수님과 제자들에 의해서 유대인들에게 먼저 선포되었으나 아직까지 이르지 않았고 [하나님의 왕국]은 주님을 그리스도로 믿는 자들 안에 임했으나 전혀 실감하지 못합니다.
오늘날 성도들은 그것이 얼마나 좋은지, 무엇을 의미하는지도 모릅니다.
이제 곧 주님이 재림하셔서 지상에 [천년 왕국]을 세우실 때 우리는 주님과 함께 [하나님의 왕국] 통치자들로서 지상 [하늘의 왕국]인 [천년 왕국]을 다스리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땅에 문자적으로 정치적으로 역사적으로 세워질 [하늘의 왕국]이 곧 [천년 왕국]이 될 것입니다.
[첫째 부활에 참여하는 자는 복이 있고 거룩하도다. 둘째 사망이 그들을 다스릴 권능을 갖지 못하고 도리어 그들이 [하나님]과 그리스도의 제사장이 되어 천 년 동안 그분과 함께 통치하리로다.] (계20:6).
이제 그 날이 여러분의 코앞에 있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성경에 왕국은 다양하게 표현됩니다.
[아버지의 왕국](Kingdom of the Father 마13:43).
[사람의 아들의 왕국](Kingdom of the Son of man 마16:28).
[그의 사랑하는 아들의 왕국](Kingdom of the His dear Son 골1:13).
[우리 주와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원한 왕국](Everlasting Kingdom of our Lord and Saviour Jesus Christ 벧후1:11).
[우리 주와 그의 그리스도의 왕국](Kingdom of our Lord and His Christ계11:15).
[하늘의 왕국]과 [하나님의 왕국]을 포함한 일곱 가지의 표현이 있는데 이를 정리하면 [하늘의 왕국]과 [하나님의 왕국]으로 요약 할 수 있습니다. 대부분의 교회와 신학교들이 이 모두를 같은 것이라고 가르치고 있으나 다른 것은 다른 것입니다. 결코 같은 것이 아닙니다.
2012-05-29 10:49:50



   

관리자로그인~~ 전체 118개 - 현재 1/8 쪽
번호
제목
이름
파일
날짜
조회
[N]
관리자
2005-12-08
1924
118
2014-09-01
2693
117
2013-01-06
1515
116
2013-01-06
1313
115
2012-08-06
1414
114
2012-08-06
1127
113
2012-08-06
1254
112
2012-08-06
1306
111
2012-08-06
1257
110
2012-08-06
1264
109
2012-08-06
1117
108
2012-08-06
1063
107
2012-08-06
1302
106
2012-05-29
1514
2012-05-29
1430
104
2012-05-29
1394

[맨처음] .. [이전] 1 [2] [3] [4] [5] [6] [7] [다음] .. [마지막]

 
Phone: (032) 421-2609 & (011) 389-5994 E-Mail: mykjv@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