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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히브리특강-26- 그리스도의 심판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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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의 심판석 (The Judgment Seat of Christ)

히브리서 무엇을 말하나? 구원? 보상?

말씀 : 누가복음12:41-48.

저는 요즈음 열왕기하 4장에 기록된 엘리사와 수넴 여인에 대한 기사와 같은 일을 실감하며 엘리사의 심정으로 어떤 가정을 위하여 간절히 기도하고 있습니다. 여러분들도 엘리사와 수넴 여인에 대해서 잘 아시겠지만, 기억을 되살리기 위하여 잠시 성경에 기록된 내용을 말씀드리겠습니다.
하나님의 사람 엘리야의 후계자로 부름 받은 엘리사가 수넴이라는 동네를 자주 지나가게 되었는데 그곳의 “창대한 여인” 하나가 엘리사를 강권하여 자기 집에 모셔 식사를 대접했습니다. 그 한번 뿐만 아니라 그가 그곳을 지날 때마다 그렇게 했습니다. 이 여인은 그것으로 만족한 것이 아니라 자기 남편을 졸랐습니다. 그 사람은 하나님의 거룩한 사람인줄 내가 아는데 아예 우리집 옥상에다 방을 하나 만들어 침대와 책상과 의자와 등잔대를 갖추어 그가 언제든지 들려서 평안히 지내게 해 드립시다(왕하4:10).
이렇게 하여 엘리사가 그곳을 지날 때마다 식사는 물론 편안히 쉴 공간을 얻었으므로 그 여인에게 무언가를 해 주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아무리 궁리해도 그녀에게 해 줄만한 것이 없었습니다. 별수 없이 엘리사는 그 여인을 불러 물었습니다. 엘리사가 그 여인에게 말하기를, 여보시요 자매님, 당신의 모든 배려로 우리를 위해 마음을 많이 쓰는데 내가 무엇으로 보상을 해 주면 되겠소? 나라에 청원할 일이라든가 무언가 필요한 것이 있으면 말하시오(13),
그러나 그 여인은 전혀 필요한 것이나 부탁이나 욕심을 내지 않았습니다. 그녀는 어떤 보상이나 대가를 바라고 한 일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엘리사는 무언가 보답을 꼭하고 싶은데 좋은 생각이 떠오르지 않아 자기 종 게하시에게 물었습니다. 그때 그 종의 말이, 그 여인에게는 아이가 없고 그 남편은 늙었다는 말을 듣고 엘리사가 그 여인을 다시 불러 말합니다.
[생명의 때를 따라 이맘때에 네가 아들을 안으리라.](왕하4:16). 그러나 그 여인은 자기와 자기 남편이 나이가 많아 그 하나님의 사람 엘리사의 말을 귀담아 듣지 않았고 오히려 거짓말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그 여인이 수태하여 생명의 때를 따라 엘리사가 그녀에게 말해준 그 때에 아들을 낳았고 품에 안았습니다.
이는 그 여인이 엘리사를 감동시킨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감동시킨 것입니다. 그 여인은 무엇이라도 해 주고 싶은 복 받을 짓을 한 것입니다. 그리하여 늙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으로부터 아들을 얻었습니다. 요즈음 저도 그 엘리사의 심정으로 한 가정을 위하여 그런 기도를 하고 있습니다.
여러분들이 알듯이, 우리 교회는 아직 재정자립이 안됩니다. 그것을 아는 사람은 기도하고 더 많이 분에 넘치도록 헌금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부담스러운 사람은 교회를 떠나가고 관심 없는 사람은 뭐가 뭔지 잘 모릅니다. 교회 재정부에서 매달 재정보고를 하는데 그것도 오후 예배 후에 하므로 오전 예배를 마치고 돌아가는 사람들은 전혀 알 길이 없을 것입니다. 교회 재정이 얼마가 필요하고 얼마가 헌금으로 들어오는지 관심을 가지는 것은 결코 부담이 아니라 헌신의 기회임을 알아야 할 것입니다.
잠시 하나님께서 그간 어떻게 우리교회의 재정을 채워 주셨는가를 말씀드리겠습니다.
한 해는 수원에 사시는 한 형제가 인터넷으로 우리교회 설교를 듣다가 녹음상태가 너무 좋지 않아 설교를 제대로 들을 수가 없어서 자기가 그 일의 전문가이므로 찾아와 컴퓨터를 따로 설치하고 녹음시설을 해주고 이 교회에 출석하면서 한 동안 십일조를 내지 못하고 별도로 모아둔 것이라고 사백 이십오 만원을 헌금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런 방법으로 그해의 부족한 재정을 해결해 주셨습니다.
또 한 해는 어떤 형제가 오래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면서 받은 퇴직금의 일부를 헌금하여 어려운 재정문제가 해결되었습니다. 또 한 해는 어떤 형제가 불의의 교통사고로 받은 보험금을 주님께 드림으로 어려운 재정을 해결하게 하셨습니다. 이것이 아무도 예측할 수 없는 주님의 방법입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이러한 사람들을 하나님께서 어찌 복 주시지 않겠습니까? 반드시 그들에게 주님의 보상이 있을 것입니다. 주께서 바울을 통하여 말씀하셨습니다. [다만 내가 말하려는 바는 이것이니 곧 인색하게 뿌리는 자는 또한 인색하게 거둘 것이요, 풍성하게 뿌리는 자는 또한 풍성하게 거두리라는 것이라.](고후9:6) 하셨습니다.
저희 교회는 최소한 월 이백만원 정도가 필요합니다. 그러자면 한 사람당 매달 십 만 원 이상은 헌금해야합니다. 그런데 모두가 돈을 버는 사람들은 아닙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두가 힘껏 주님께 드리고 있습니다. 그러나 인색한 사람은 자기 수입의 십분의 일은 고사하고 몇 천원, 몇 만원 헌금하는 것도 벌벌 떱니다. 그렇게 심은 사람이 얼마나 거두게 되겠습니까? 농부가 씨도 뿌리지 않고 추수할 것이 있겠습니까?
잠시 우리교회 헌금상태를 살펴봅니다. 지난 1월 2,200,000원의 헌금이 들어왔습니다. 2월 1,300,000원, 3월엔 2,300,000원, 4월 2,600,000원, 5월엔 1,100,000원, 6월엔 2,300,000만원이었습니다. 월 평균 이백 삼십 만원인데 2월이나 5월같이 백십 만원이나 백 삼십 만원이 헌금될 때는 목회자 생활비도, 건물 임대료도 낼 수 없습니다. 그런데 주님은 적절한 시기에 어느 손길을 통하시든지 필요를 채워 주신다는 말씀을 드리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풍성하게 뿌리는 자는 풍성하게 거둘 것이고 인색하게 심는 자는 인색하게 거둘 것입니다.
제가 이런 말을 오늘 설교의 서두에 꺼낸 것은 여러분들이 주님께 분에 넘치는 헌금을 하고도 혹시 보상을 받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을까봐 그 보상을 마귀에게 빼앗기지 않도록 하게하려고 이런 말씀을 드리는 것입니다. 반드시 마귀는 열심히 일하거나 분에 넘치도록 헌금을 한 성도들을 넘어뜨리려고 뒤에서 올무를 놓아 시험에 들게 합니다.
그럴 때 이기는 것이 진정한 믿음이요 승리입니다.
★저에게는 네 분의 누님이 계신데 그중 셋째 누님이 저에게 정말 잘해주셨습니다. 제가 가난할 때 돈도 주시고 옷도 맞춰 주시고 맛있는 음식도 많이 만들어 가져오셨습니다. 그런데 그분께 미안하지만 그런 것들이 하나도 기쁘거나 감사하지 않았습니다. 그분은 기껏 잘하고는 생색을 냅니다. 다른 사람들에게 내가 그렇게 했노라고 나팔을 붑니다. 그리고 이런저런 잔소리로 고맙거나 감사하다는 마음을 다 빼앗아가므로 오히려 아무것도 필요 없으니 제발 오지 말았으면 하는 마음이 들게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바치는 것도 그러합니다. 그러므로 주님은 아무도 네게 줄 보상을 빼앗아가지 못하게 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왼손이 한 일은 오른 손이 모르게 하라하십니다. 이는 사람들에게 잘 보이려 하거나 사람들에게 인정받으려 하거나 사람들에게 나팔 불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마귀는 사람들이 구원 받지 못하게 하고, 구원 받은 후에는 성장을 방해하고 여러분들이 장차 받을 보상도 다 잃게 하는 것이 그가 하는 일입니다. 그러므로 성도가 주님 앞에 귀한 예물을 드린 후에는 반드시 시험이 있습니다. 그 시험을 잘 이기지 못하면 쌓은 보상을 빼앗기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님은 시험을 견디는 자는 복이 있다고(약1:12) 말씀하셨습니다.
앞에서 말씀드린 수원에서 오시던 그 형제부인은 온전치 못하신 김순화 할머니에게 괜한 일로 욕을 얻어먹고 시험에 들었고 그 형제는 킹제임스 성경책 앞면에 [제임스 왕께 바치는 헌사]를 문제 삼고 교회를 그만두었습니다. 다른 사람이 볼 때는 전혀 문제 될 것이나 시험꺼리가 아닌 하찮은 것입니다.
그런데 그것이 그들이 드린 예물과 무슨 상관이 있을까? 할 것입니다. 전혀 관계가 없는 것 같은데 그 시험을 통과하지 못하면 결국 기왕에 드린 헌금에 대해서 아까워하거나 후회가기 때문에 보상을 잃게 되는 것입니다.
물론 그 형제도 세월이 흐른 뒤에는 그것이 아무 문제도 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마귀는 우리의 약점을 너무 잘 알기 때문에 전혀 엉뚱하거나 가장 약한 부분으로 시험문제를 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들은 정신을 차리고 속지 마시기 바라며 귀하게 드린 헌물에 대한 보상을 잃지 않으시기를 간절히 권면합니다.
자주 드리는 말씀이지만 좋은 일 뒤에는 반드시 나쁜 일이 찾아옵니다. 그 말을 호사다마(好事多魔)라 합니다. 영적으로 헌신한 일 뒤에는 마귀의 많은 역사가 있다는 말입니다. 우리의 영적 성장을 방해하는 마귀는 전혀 다른, 상관이 없는 것으로 찾아와서 언제든지 뒤통수를 칩니다.
오늘 드리는 말씀은 헌금문제가 아니라 보상에 관해 말씀드리려는 것입니다. 저는 6개월 동안 히브리서를 설교해왔습니다. 히브리서는 구원에 관한 말씀이 아니라 거듭난 자의 행위와 영적 성장과 그가 장차 받을 보상에 관한 말씀이라는 것을 이제는 여러분들이 잘 아셨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 보상에 관한 문제는 그리스도인들에게 많이 알려지지 않고 잘 이해하지 못하는 부분이며 보상 문제를 다룰 그리스도의 심판석에 관한 계시에 대해서 설명해 주는 교회나 설교가 별로 없는 것 같습니다. 그러므로 이 문제를 설명해 주시는 성경말씀조차 제시할 수 없다면 무언가 불안전하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이것이 빠지면 히브리서강해만으로는 좀 모자랄 것 같아서 마지막에 그리스도의 심판석에 대한 말씀을 덧붙입니다.
그동안 그리스도인들이 장차 받을 보상을 잃지 않기 위하여 어떻게 살아야하는가를 공부한 것의 마무리 겸 총괄덕인 복습을 하도록 하겠습니다.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어떻게 하면 보상을 잃지 않을까 하는 것도 대단히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리스도의 심판석이라는 것은 바울이 던진 한 질문에 대한 답변입니다.
롬6:1-2, [그런즉 우리가 무슨 말을 하리요? 은혜가 넘치게 하려고 우리가 죄 가운데 거하겠느냐?],[결코 그럴 수 없느니라. 죄에 대하여 죽은 우리가 어찌 그 가운데서 더 살리요?]하는 것이었습니다.
[은혜로 구원 받았는데](엡2:9-10), 또 은혜를 넘치게 받겠다고 계속 죄를 지을 수는 없다는 말씀입니다. 아울러 [믿는 자들의 구원은 영원히 보장받는다](롬8:35,39, 고전5:1-5)고 가르치니까 구원 받은 후에 계속 짓는 죄는 어떻게 되느냐? 하는 질문에 대한 답변이기도 합니다.
사실 은혜로 구원 받고 그 구원이 영원히 보장된다는 교리를 가르쳐 놓았더니 개중에는 구원 받았다는 사람들이 마음껏 죄를 범해도 더 이상 죄가 되지 않는 것처럼 오해하는 부작용이 발생했습니다. 그래서 바울도 은혜가 넘치게 하기 위해서 죄를 지어야하겠느냐? 반문했습니다. 만약 은혜의 구원을 그렇게 알고 죄 가운데 살아간다면 정말 그가 받을 보상은 하나도 없을 것입니다.
구원의 영원한 보장의 교리가 그리스도인들을 육신적으로 살도록 하고 평안에 대해서 진실한 감사가 아니라 거짓 느낌을 갖도록 부추긴다는 것입니다. 어떤 짓을 하든지 더 이상 죄나 벌을 받을 걱정 없이 살아도 된다는 생각을 하도록 만든다는 비난을 받습니다. 사실 이와 같은 비난을 받을 기회를 제공한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있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습니다. 그런 교리를 내세워 막살아간 사람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나라에는 서00 목사 파에서 그러한 행동을 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말을 듣습니다. 술 마시고 담배피우는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고 화투를 치거나 가무를 즐기고 심지어 양심의 가책 없이 간음을 일삼고 교회도 나가지 않고 자기들 끼리 교제한다고 모여 그 짓거리를 하는 자들이 있다고 들었습니다.]
그러므로 만약에 이에 대한 성경적인 답변을 제시하지 못한다면 그와 같은 비난이 정당하다고 받아들여야 할 형편입니다. 그러면 그런 사람들을 보면서 다른 그리스도인들은 또 어떤 질문들을 합니까?

일단 구원 받은 그리스도인이 다시 세상으로 되돌아 갈 수 있습니까?
그리스도인들은 자기가 기뻐하고 원하는 대로 막 살아도 됩니까?
하나님의 은혜 구원이라는 것은 죄를 지을 권리까지 줍니까?
그러한 사람들을 하나님께서 벌주시지 않습니까?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벌을 주신다면 어디서 어떻게 주십니까?
그리스도인들이 고백하지 아니하고 회개하지 아니한 죄를 지닌 채로 살다가 죽게 되면 그들에게 어떤 일이 생길까요? 등 아주 많은 질문들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그와 같은 질문에 대한 성경의 답변 (The Bible Answer)은 어떤 것이 있을까요? 저는 이러한 질문에 대한 답변은 성경에 아주 완전하고 분명하게 제시되어있다고 믿습니다. 수백 개의 구절들이 그리스도의 심판석이라는 교리를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러나 대다수의 목회자나 성도들은 그런 구절들은 그냥 넘어가거나 무시되어집니다.
한 죄인이 예수 그리스도를 자신의 구원자로 영접할 때 모든 죄에 대한 책임은 즉시 다 처리되고 영원토록 다 제거되어 버리는 것은 확실히 맞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예수님을 영접한 후에는 결코 정죄 받거나 죄 때문에 또다시 구원을 잃어버리는 일은 없습니다.
그러나 믿는 자로서 그가 행한 모든 것에 대한 책임은 자기가 져야 됩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의 심판석에서 회계보고를 하도록 되어있고 아주 완전하고 정의로운 심판 가운데 그가 행한 일에 따라 보상을 받게 되거나 잃게 될 것이며 왕국에서 그의 지위와 위치가 그가 행한 일의 기록에 따라 배당이 됩니다. 이 사실은 많은 성경 구절들이 말씀하며 그 가운데 우리가 가장 익숙하게 잘 알고 있는 구절은 고린도후서 5:10절입니다. [우리 모두가 반드시 그리스도의 심판석 앞에 나타나리니 이로써 각 사람이 좋은 것이든 나쁜 것이든 자기가 행한 것에 따라 자기 몸 안에 이루어진 것들을 받으리라.]
그리고 고린도전서 3:11-15절에도 구체적으로 제시합니다. 따라서 주의 모든 종들은 회계보고 할 날이 반드시 있을 것입니다(마25:19). (보상과 관련된 구절들 마6:6, 10:42; 눅6:22,35; 골3:24; 히11:6; 계22:12)

성경에는 믿는 자에게 세 가지 심판이 있다고 말씀합니다.
과거의 심판이 있고 현재적 심판이 있고, 그리고 미래적 심판이 있습니다. 죄의 책임에 대한 심판은 이미 완전히 주 안에서 해결된 과거의 심판입니다. 그러므로 믿는 자가 그리스도 안에서 이미 자기의 위치를 확실히 보장받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완성된 사역에 근거해서 영원한 구원의 보장은 과거에 이미 확정된 사실입니다. (요5:24, 10:28; 롬5:1, 8:1)
다음은 믿는 자가 이 땅의 생활에서, 현재의 매일 매일의 삶에서 심판받는 것이 있는데 이는 회개하지 아니하고 고백하지 아니한 죄 가운데 계속 머물러 있는 자들을 징계하시는 것입니다. 나약함과 질병과 육신의 죽음으로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징계하십니다(고린도전서11:29-31).
세 번째 심판은 미래에 있을 것입니다. 이 미래적 심판은 현재우리의 행위들과 관련됩니다. 우리의 신실함에 대해서 우리가 받을 보상을 결정짓고 우리의 신실하지 못함에 대해서는 보상의 손실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미래의 심판은 오늘 내가 어떻게 사느냐에 달려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을 올바로 알지 못한다면 최선을 다하고 열심을 낸 일에도 보상을 받지 못하고 잃어버리는 일들이 있기 때문에 진리를 제대로 알아야할 필요가 있습니다.

누가 언제 어디에서 심판을 받는가? (Who, When, and Where?)
이 세 번째 미래적 심판을 살펴보기 전에 각자는 결정해야만 합니다.
(1) 이 미래에 있을 그리스도의 심판석에는 누가 서게 될 것인가?
(2) 그 심판은 언제 열리게 될 것인가?
(3) 어디에서 열리게 되는가?
성경은 분명히 말씀하시기를 믿고 구원 받아 들림 받은 자들만이 그리스도의 심판석에 서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 그리스도의 심판석을 크고 흰 왕좌의 심판석 즉 백 보좌 심판석과 혼동해서는 안됩니다. 그 심판석에는 구원을 받지 못한 잃어버린 자들만 불려나오게 됩니다(계20:11-15).
이 두 가지 심판이 다르다는 사실은 그 심판의 시기가 다르다는 것으로도 확실합니다. 믿는 자들의 심판은 이 땅에 천년왕국 통치가 시작되기 전 하늘에서 있을 것이며 그리스도의 심판석을 거친 후에 어린양의 혼인식이 있을 것이고 그들은 주와 함께 이 땅에 오게 됩니다.(참고구절 마16:27; 고전4:5; 살전 3:13, 벧전1:7; 계22:12)
이 믿는 자들이 행한 일에 대한 심판은 휴거와 예수 그리스도의 공개적인 지상 재림 전의 어린양 혼인 잔치 사이에 있을 것이기 때문에 이것은 아마 공중 혹은 영계에서 열리게 될 것입니다(살전4:17). 이 땅의 환란이 끝나갈 무렵 모든 믿는 자들은 각자가 자신의 행한 일에 대해서 불에 의한(고전3:13-15) 시험을 받고 왕국에서 다스리는 시기가 시작 될 때에 자기에게 해당되는 지위와 직분을 배당받게 될 것입니다(고전15:40-41).
어떤 사람들은 풍성한 것을 갖고 왕국에 들어가게 될 것입니다(벧후1:11), 그들은 주님이 나타나실 때 확신을 갖게 될 것이며(요일2:28), 아주 충만한 보상을 받게 될 것입니다(요이:8). 다른 형제들은 그분이 나타나실 때 부끄러워 할 것이고(요일2:28), 불에 의해서 구원 받는 것처럼 될 것입니다(고전3:15). 지금 말씀드린 것들은 우리가 심각하게 고려해불 일들입니다. 그리고 이 경고들을 무시한다면 실망스런 결과를 맞게 될 것입니다.
또 어떤 그리스도인들은 주님의 오심을 기쁨으로 바라볼 수 없을 것입니다. 자기가 알고 있는 죄와 고백하지 않은 죄 가운데 살면서 주님이 오시는 것을 기뻐할 수는 없습니다. 우리가 떳떳한 상태로 살아야 기쁨으로 주님을 맞이할 수 있습니다. 그렇지 못하면 주님이 오심을 기뻐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고후5:11절의 바울이 말 한 것은 지극히 당연한 것입니다.
[그런즉 우리가 주의 두려움을 알므로 사람들을 설득하거니와 우리가 하나님께 밝히 드러났고 또 너희 양심에도 밝히 드러난 줄로 내가 확신하노라.](고후5:11).
주께서 베푸신 은혜를 느슨하고 부주의한 생활의 핑계로 삼는 자들은 주님의 다시 오심이 그렇게 반갑지는 못할 것입니다. 그들이 그리스도의 심판석에 설 때에 모든 것이 그들의 영광이 아니라 미처 생각하지 못한 보상의 손실로 인하여 후회와 원통함이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리스도의 지상 왕국에서 통치하게 될 때에 그는 아주 낮은 지위를 부여받게 될 것입니다.

심판의 목적 (The Purpose of the Judgment)
그리스도의 심판석에서는 각 사람이 좋은 것이든 나쁜 것이든 자기가 몸 안에서 행한 일들에 대해서 합당하게 보상해 주기 위한 심판이라는 사실을 저는 다시 한번 더 강조합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들에게 준 기회와 개인적인 능력에 근거해서 보상해 주실 것입니다. 만약에 열 달란트 받은 자가 장사하여 여덟 달란트를 남기고 다섯 달란트 받은 자가 다섯 달란트를 남겼다면 비율로 보아 다섯 달란트 남긴 자가 더 많은 상급을 받게 될 것입니다. 그것은 다음과 같은 일들에 근거하여 보상할 것입니다.
1, 긍휼과 사랑의 행위들(눅6:35-36).
2, 신실한 기도에 근거하여 (마6:6).
3, 형제들에게 친절한 대접을 한 것(마10:42).
4, 주님을 섬기는 내적인 동기(마6:1; 고전4:5).
5, 그리스도를 위하여 고난을 당한 것(눅6:22-23).
6, 주님이 다시 오심을 사랑하고 기다리는 것(딤후4:8).
7, 선한 일을 하면서 끝까지 견디는 것(갈6:9).
8, 그리스도를 위해서 이겨 온 혼들(살전2:19).에 근거합니다.
지금 언급한 8가지 이외에도 다른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그러나 이 여덟 가지가 그때 그리스도의 심판석에서 보상받을 확실한 근거가 될 것입니다.

그러나 역시 심판이 있습니다. (But Judgment Also)
많은 성도들은 보상에 관심이 없고 다만 그저 구원을 받고 하늘나라에 가는 것만으로 만족하는 것 같습니다. 그들에게는 상급이나 왕관을 잃어버린다고 하는 것이 별로 두려움을 주는 것 같지 않습니다. 또 어떤 성도들은 주께서 많은 보상을 주신다는 것은 좋아하나 보상 받을 일이나 그 보상을 잃어버릴 것에 대해서는 무관심합니다. 그러면 왜 그들은 보상에 대하여 별로 두려움을 갖지 않는가? 상 많이 받으면 좋고 못 받으면 그만이지 하늘나라에 가는 데는 지장이 없지 않은가?
그것은 “보상을 잃어버림”당하는 고통을 모르기 때문입니다(고전3:15).
보상을 잃어버림에는 반드시 두려움과 고통이 따른다는 것을 알아야합니다. 성경은 “그가 잃어버림을 즐길 것이다”라고 말씀하지 않고 보상을 잃어버리는 고통을 겪게 될 것이다, 라고 말씀하십니다.
“구원을 받되 불에 의해 받는 것 같이”라는 표현은 분명히 즐겁거나 기쁘거나 달콤한 말씀은 아닙니다. 믿는 자들의 신실치 못한 것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에 관한 말씀들은 무언가 좀 두렵고 무언가 두려워할 만 하고 피해야만 될 것들에 대한 말씀이 나옵니다.
오늘 본문으로 택한 말씀 중 누가복음12:47-48에서 우리 주님은 무엇을 말씀하시는 것일까요? 이 말씀은 예수님께서 신실한 종들에게 주시고자 하신 보상과 아주 대조를 이루고 있습니다.
[자기 주인의 뜻을 알고도 자기를 예비하지 아니하고 주인의 뜻대로 행하지 아니한 그 종은 채찍을 많이 맞되],[알지 못하고 채찍 맞을 일들을 한 자는 적게 맞으리라. 누구든지 많이 받은 자에게 많이 요구할 것이요, 사람들이 많이 맡긴 자에게 더 많이 달라고 하리라.](눅12:47-48).
분명히 보상에 대해서 주님이 말씀하셨습니다.
[그의 주인이 올 때에 그렇게 하고 있는 것을 보면 그 종이 복이 있도다.],[진실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주인이 그를 자기의 모든 소유를 맡을 치리자로 삼으리라.](눅12:43-44). 하셨습니다. 이 구절들에서 실신한 자에게는 보상이 있고 신실치 못한 종들에게는 채찍으로 맞을 것이라고 되어있습니다. 예를 들어 주인이 종에게 열을 주었는데 다섯만 남기고 다섯을 주었는데 넷만 남겼다면 그 부족한 부분에 대해서 매를 맞을 것입니다. 이것이 장차있을 심판입니다.
그러므로 그 매 맞는 숫자는 각자가 소유하고 있는 영적조명과 기회의 양에 따라 결정되어집니다. 이 문장의 “채찍들”에 대해서는 정확한 것은 잘 모릅니다. 그러나 신실함은 보상을 받게 될 것이고 신실치 못하면 벌을 받게 될 것이라는 한 가지 사실은 분명합니다. 그런데 그 벌은 고통스럽고 모욕적이고 수치를 당하는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그러나 보상을 받는 것에 대한 것과 왕관을 받는 것에 대해서는 수천 개의 설교들이 행해졌고 또 많은 책들이 쓰여 졌습니다만 이 보상을 상실할 것이라는 내용과 그에 따르는 고통이나 두려움에는 거의 자료가 없습니다. 계시록 3장에는 믿는 자가 환란을 피하게 될 것이라는 약속이 주어진 뒤에 그 다음 구절은 아주 엄격한 경고가 담겨져 있다는 것은 상당히 의미심장합니다. 여러분들이 확인해 보십시오. 계 3:10절의 말씀은 우리에게 얼마나 큰 위로를 줍니까?
[네가 나의 인내의 말을 지켰은즉 나도 너를 지켜 시험의 시간을 면하게 하리니 그것은 곧 앞으로 온 세상에 임하여 땅에 거하는 자들을 시험하는 시간이라.](계3:10).
그런데 이 10절에서만 머물러버리면 중요한 부분을 놓치게 됩니다. 환란은 피했는데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 그리스도의 심판석에 서게 되는 것은 속빈 위로일 뿐입니다. 즉 환란을 피하게 된다는 것은 위로가 되지만 준비되지 않은 상태로 그리스도의 심판석에 선다는 것은 위로받을 만한 것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요한은 그 다음 구절에 이렇게 덧붙입니다.
계3:11, [보라, 내가 속히 오리니 네가 가진 그것을 굳게 붙잡아 아무도 네 관(冠)을 빼앗지 못하게 하라.](계3:11). 하셨습니다. 이렇게 구원은 잃어버릴 수 없으나 보상과 왕관은 잃어버릴 수 있습니다. 이 그리스도의 심판석에서 보상의 손실에 대한고통이나 두려움에 대해 설교하는 것을 소홀이 하게 되면 우리의 행실이 느슨하게 되거나 우리가 영적인 일에 무관심한 채 살거나 거짓된 안전을 제공하는 결과가 될 것입니다.
만약 구원 받은 것으로 만족하게 하고 주님을 섬기는데 느슨한 생활과 무관심한 생활이라든가 더 이상 지옥에 갈 걱정이 없다며 거짓 안전이나 거짓 평안을 전하여 공의로우신 주님의 심판에 대비하지 못하게 한다면 참으로 심각한 문제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백성이 깨끗하기를 원하시기 때문에 “주께서 사랑하시는 자들을 징계하신다.” 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지 않습니까? 그리스도의 사랑에 의하여 성도가 자발적으로 신실하지 않을 때에는 주님은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징계하십니다. 바로 이러한 사실이 바울에게는 큰 두려움으로 임하고 있었습니다.
[이런 까닭에 나도 이 일들로 고난을 당하되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나는 내가 믿어온 분을 알며 또 내가 그 날을 대비하여 그분께 맡긴 것을 그분께서 능히 지키실 줄 확신하노라.](딤후1:12).
바울은 자신의 구원을 잃어버릴까 두려워하지 않았지만 자신의 보상이나 왕관을 잃어버릴까 두려워 떨었습니다. 바울이 보상을 잃어버릴 것에 대해서 두려워했다는 것은 너무나 명백하기 때문에 확인하는 것이 어렵지 않습니다. 그는 고전9:26-27절에 이렇게 말합니다.
[그러므로 내가 이와 같이 달리되 정해진 것이 없는 것처럼 하지 아니하고 또 이와 같이 싸우되 허공을 치는 것같이 하지 아니하며],[오직 내가 내 몸을 억제하여 복종시킴은 내가 다른 사람들에게 복음을 선포한 뒤에 어떤 방법으로든 내 자신이 버림을 받지 않게 하려 함이라.](고전9:26-27).여기에서 “버림”이라고 하는 단어의 의미는 구원에서 버림 당한다는 뜻이 아닙니다. 보상으로부터 버려진다는 뜻입니다.
이스라엘의 출애굽 사건을 예로 들어보겠습니다.
이스라엘은 홍해를 건넘으로 영원히 이집트의 속박에서 벗어나있었습니다. 그러나 가나안에는 도달하지 못했습니다. 가나안은 다름 아닌 그들의 승리의 목표였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그 목표에 도달하지 못한 채 대부분이 죽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구속 받은 백성이었습니다. 그런데 승리와 보상의 땅에는 미치지 못한 채 광야에서 죽어가지 않았습니까? 그들이 구원은 받았으나 주께서 약속하신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을 보상으로 받지는 못했습니다. 이집트를 탈출한 이스라엘백성에게 구원이 목표입니까? 보상이 목표입니까? 그들에게는 이집트를 탈출 한 것이 구원이므로 그들의 목표는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땅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주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고 진리를 아는데 이르기를 원하신다고 하셨습니다(딤전2:4).

보상의 근거(The Basis of Reward )
보상하시는 것과 왕국에서의 지위를 제공하는 것은 양이 아니고 비율에 근거해서 정해집니다. 성경에 보면 두 달란트를 남긴 종은 다섯 달란트를 남긴 종과 똑 같이 보상을 받았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는 시작할 때에 두 달란트를 가지고 시작했고, 상대방은 다섯 달란트를 가지고 시작했기 때문입니다.
다섯 달란트 받아서 다섯 달란트 남긴 것이나 두 달란트 받아서 두 달란트 남긴 것이나 상은 똑 같습니다(마25:21,23). 비록 그 한 사람이 두 달란트 밖에는 벌지 못했지만 다섯 달란트 번 사람과 비율로 보면 똑 같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자본금의 백퍼센트 벌었습니다.
그러나 (눅19:17)의 므나에 대한 내용을 보면 다섯 므나를 번 사람은 십 므나를 번 사람과 똑같은 보상을 받지 못하는데 이때에도 보상은 비율에 근거하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모두 자본금을 한 므나씩 받았는데(눅19:16) 한 사람은 열 므나를 벌고, 한 사람은 다섯 므나를 벌었습니다. 그러므로 열 므나를 번 사람은 열 도시를 다스리는 권세를 받게 되고 다섯 므나를 번 사람은 다섯 도시를 다스리는 권세를 얻게 됩니다(눅19:17-18).
주님께서는 우리의 능력 그 이상을 요구하시지는 않습니다. 우리에게 주신 것만큼만 요구하십니다.
다섯을 주셨으면 다섯만 벌면 됩니다. 보상은 전적으로 비율에 근거한 것이며 아주 정당한 것입니다. 그 원칙은 오늘 본문 48절에 분명히 설명되어있습니다.
[알지 못하고 채찍 맞을 일들을 한 자는 적게 맞으리라. 누구든지 많이 받은 자에게는 많이 요구할 것이요, 사람들이 많이 맡긴 자에게 더 많이 달라고 하리라.](눅12:48).

누가 재판관이 될까요? (Who Is Judge)
재판관에 대한 마지막 말씀은 우리를 위해서 우리에게 모든 것을 주신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주님께서 직접 그리스도의 심판석에서 심판관이 되실 터인데 그분의 심판은 우리가 살고 있는 삶의 모든 여건들을 다 고려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삶의 여건이라는 것은 사람들의 눈에는 숨겨져 있고 때로는 우리들 스스로에게도 숨겨져 있습니다.
오직 하나님께서만 알고 계십니다. 그 사람이 돈이 얼마나 있는지 아이큐가 얼마인지 체력이 얼마나 좋은지 일할 여건은 어떤지 이런 것들을 완전히 다 고려하셔서 공평하게 판정을 내리실 것입니다. 그것들을 주신분이 바로 그분이시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이 보기에 나약하고 실패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그분에 의해서 칭찬받게 될 것이고 또한 그들의 큰 성공으로 인하여 우리 모두가 다 칭찬하고 우러러 봤던 사람들이 낮은 지위를 얻게 될 것이며 우리보다 더 작은 보상을 받게 될지도 모릅니다. 모든 것을 비율로 하기 때문입니다.
보상을 주실 때 주께서 우리의 성공을 바라보고 주시는 것이 아니고 우리 마음의 동기를 보십니다.
무슨 마음을 품고 어떤 마음으로 했느냐? 그 마음을 보십니다. 승리가 아니라 어떠한 영적 방식으로 싸웠느냐? 육신적인 방식으로 싸웠느냐? 주님을 사랑하기 때문에 헌금을 했느냐? 교회에서 사람들에게 인정받고 싶어서 헌금하고 봉사를 했느냐? 동기가 중요하지 그 양이나 들어난 행위가 중요하지 않습니다. 비록 우리가 패배한 순간에도 그 싸움을 어떠한 마음 자세로 싸웠느냐가 중요하지 그 승리가 중요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성취한 그것을 보고 상을 주시는 것이 아니라 그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 우리가 어떠한 신실함을 가지고 했느냐를 보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께서 오실 때까지 때가 이르기 전에 아무것도 판단하지 말라. 그분께서 어둠의 감추어진 일들을 빛으로 가져가 비추시고 마음의 의도들을 들어내시리니 그때에야 비로소 각 사람이 하나님으로부터 칭찬을 받으리라.](고전4:5).
사랑하는 형제자매들이여!!
절대 다른 사람과 외모나 들어난 성과를 비교하지 마십시오. 다른 사람을 의식하지 마십시오. 오직 주님만을 바라보고 사랑과 감사함으로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십시오. 그것만이 진정한 승리입니다. 주님은 여러분들에게 줄 보상을 가지고 속히 오실 것입니다.
2009-12-22 10:37: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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