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 소개
예배시간 안내
약도/찾아오시는 길
연락처


게시판
교회 소식/공지
질의 게시판
행사 및 사진
Free Board
찬양방


말씀 및 설교
kjv mp3 player
주일 설교
묵상/은혜의 말씀
특강


지역 교회
링크


 

jboard

특강, 주제별 글모음

  크고 주목할 만한 주의 날
  관리자 [ E-mail ]
  http://av1611.co.kr

크고 주목할 만한 주의 날

말씀: 사도행전 2:20-21. 2011년 2월 6일 일요일 오전11시

모두들 설 명절을 잘 보내셨는지요? 감사하게도 날씨가 그다지 춥지 않아 정말 다행한 일입니다. 이렇게 또다시 만나보니 다들 잘 먹어서 그런지 건강해보이고 예뻐 보입니다. 이제 다시 생활전선에서 최선을 다하시고 신앙으로도 매일매일 승리하시기를 부탁드립니다.
저는 연휴기간 동안에 이웃 주안에 계시는 장로교회 어떤 목사님의 방문을 받고 많은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습니다. 아마 일 년 전인가 전화통화를 했었는데 그 이후로 아무런 소식이 없다가 이번에 저희 교회에까지 찾아오셔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바코드와 베리칩과 짐승의 표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베리칩은 피부 속에 이식시키는 신분증을 말합니다.
그분 말씀에 작년부터 교계에 계속되는 이야기인데 2012년 종말론과 짐승의 표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느냐 물어서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제가 다행히 계시록 강해를 했고 그 부분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알고 있으므로 아는 대로 성경에 기록된 말씀들을 나누었습니다.
대다수의 장로교회 목사님들이 그렇듯이 그분도 교회가 대환란을 통과 하거나 통과하다가 환란 중간에 휴거된다는 대환란 중간 휴거설을 믿는 분이었습니다. 우리교회는 이미 계시록을 공부했고 그 부분에 대해서 어느 정도 여러분들이 알고 계시겠지만, 또다시 온 세상엔 종말의 이야기가 퍼져나가고 있는 것 같습니다.
지금 이 시대의 크리스천들은 여느 시대보다 주님의 오심이 심히 가까운 때에 살고 있습니다. 그래서 대환란이나 종말이나 짐승의 표등에 대해 관심을 가진 성도들이 많습니다. 아마 적그리스도나 짐승의 표나 아마겟돈 전쟁 등에 대해서 들어 보지 않은 사람은 거의 없을 것입니다. 교회마다 나름대로 성경적 종말론에 대해서 강론하지만 제 각각인지라 혼란이 더욱 가중되고 있습니다.
오늘 이 시간에 여러분은 성경을 펴서 성경의 증언들을 읽고 듣고 바른 진리를 알고 확신하는 시간이 되시기 바랍니다.
결론 적으로 교회는 대환란을 통과하지 않습니다. 성경에 환란이란 말이 많이 나온다고 해서 그 환란을 ‘대환란’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오해를 넘어서 무지(無知)입니다. 이는 God와 gods가 단어가 비슷하다고 해서 서로 연관이 있고 같은 것이라고 말하는 것과 다를 바 없습니다. 자, 보십시오.
Spirit(성령)이 있고 spirits(영들)이 있습니다. Lord가 있고 lords가 있습니다. 한 처녀(a virgin)가 있고 처녀들(virgins)이 있습니다. 발음이나 글자에서 깊은 연관성이 있는 단어이지만 이 둘은 전혀 같지 않습니다.
노아의 대홍수와 지역이나 나라들에 있는 홍수들이 같은 홍수가 아니듯이 “야곱의 대환란과 환란들”은 조금도 같지 않습니다. 소위 성경을 믿고 연구한다는 분들이 성경의 어휘를 구분하지 않는 것은 진리를 혼잡케 하는 일입니다. 따라서 그리스도인들이 지금 이 땅에서 받는 환란들은 대환란과 조금의 연관성도 없습니다.
요한 계시록에 등장하는 대환란은 말 그대로 역사상 전에도 없었고 앞으로도 없을 그런 환란입니다. 야곱의 대환란은 그 대상이 교회가 아니라 지상의 이스라엘입니다.
우리 주님께서 대환란에 대해 말씀하실 때, [그때에 유대에 있는 자들은 산들로 도망할지어다.](마24:16)라고 하셨습니다.
누구라고요? “그때에 유대에 있는 자들...”입니다. LA나 서울이나 도쿄나 뉴욕에 있는 자들이 아닙니다. 교회는 그 때에 유대에 있지 않고 하늘에 있습니다.
[그러나 너희의 도피하는 일이 겨울이나 안식일에 일어나지 않도록 너희는 기도하라.](마24:20). 안식일을 지키는 민족은 유대인들뿐입니다. 도피하는 일이 안식일에 일어나면 그들은 도망갈 수 없기 때문에 안식일에 일어나지 않도록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교회는 마귀를 대적하는 자들이지 피해서 도망해야 하는 도망자들이 아닙니다. 무엇보다 ‘안식일’은 오늘날 신약 교회와 아무 상관이 없습니다(골2:16). 들림 받지 못할 안식교도들이나 유대인들에게나 해당되는 사항일 뿐입니다.
하나님은 대언자들을 통해 이스라엘이 겪게 될 대환란에 대해서 반복해서 선포하셨습니다. 자, 다 같이 요엘서 2:31-32을 보십시오.
[크고 두려운 주의 날이 이르기 전에 해가 변하여 어둠이 되고 달이 변하여 피가 되려니와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출을 받으리니 주가 말한 대로 시온 산과 예루살렘에 구출이 있으며 또 주가 부를 남은 자들에게도 구출이 있으리라.](욜 2:31,32).
대환란은 크고 두려운 주의 날입니다. 대환란은 주의 날로서 이스라엘이나 이방인들에게 “크고 두려운 날”이 분명합니다. 성경이 말하는 대상을 보십시오. “시온 산과 예루살렘에 구출이 있으며”라고 말합니다. 뉴욕이나 LA, 파리나 로마가 아닙니다. 서울이나 도쿄나 북경이 아닙니다.
문자 그대로 ‘시온 산과 예루살렘’은 이스라엘입니다. ‘또 주가 부를 남은 자들에게도 구출이 있으리라’는 말씀을 통해 이방인들 중에서도 구원 받을 자들이 있음을 보여 줍니다(계7:9).
이들이 바로 환란 성도들입니다.
요한계시록 7장에는 이스라엘의 각 지파에서 12,000명씩 총 144,000명이 나오고 구원받은 이방인들이 나옵니다. [이 일 후에 내가 보니, 보라, 아무도 능히 셀 수 없는 큰 무리 곧 모든 민족과 족속과 백성과 언어에서 나온 큰 무리가 흰 예복을 입고 손에 종려나무 가지를 들고 왕좌 앞과 어린양 앞에 서서](계7:9). 이들이 누구입니까? 성경이 스스로대답해 줍니다.
[... 이들은 큰 환난에서 나와 자기 예복을 씻고 어린양의 피로 그것을 희게 한 자들이니라.](계7:14). 그들이 누군가의 해석이 필요치 않습니다. 교회는 이미 구원받은 사람들로서 대환란을 통과하는 무리들이 아닙니다.
그럼 크리스천들에게 이 날은 어떤 날입니까? 오순절에 성령을 받은 사도들은 이렇게 선포합니다. [저 크고 주목할 만한 주의 날이 이르기 전에 해가 변하여 어둠이 되고 달이 변하여 피가 되려니와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받으리라, 하였느니라.](행 2:20-21).
베드로는 분명히 요엘서를 인용하는데 비슷해 보이지만 본문이 완전히 바뀌어져 있습니다. “크고 두려운 주의 날”(욜2:31)이 아니라 “크고 주목할 만한 주의 날”(행2:20)이라고 선포합니다. 주의 성령께서는 신약 시대의 복음을 믿고 그리스도 안에 있게 될 성도들에게 그 날은 크고 두려운 날이 아니라 ‘크고 주목할 말한 날’일 뿐입니다. 교회는 대환란이 올 징조와 표적들을 보면서 예언의 성취를 주목할 뿐입니다.
우리는 대환란을 통과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지난 2,000년 간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에 속한 성도들은 다 구원 받았습니다. 그들은 지금 부활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구원 받은 성도들 중에는 육신적인 성도들이 매우 많습니다.
그들이 지상에 대환란이 될 때 땅에 내려와 대환란을 통과할 수는 없습니다. 어느 누구도 환란을 통과하기 위해서 부활하는 성도는 존재할 수 없습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잠든 성도들은 대환란을 겪지 않고 부활합니다. 그렇다면 그리스도 안에서 살아 있는 성도들은 대환란을 겪은 다음에 휴거(공중 들림)가 된다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습니다.
부활 성도와 휴거 성도는 동일한 그리스도의 지체입니다. 만약 살아 있는 성도가 7년 대환란을 통과해야 한다면 ‘휴거’는 산 소망이나 복된 소망이 아닙니다. 교회가 대환란을 통과해야 한다면 우리의 기도 제목은 대환란이 오기 전에 죽어서 대환란을 보지 않고 부활하는 것이 모든 성도들의 가장 큰 소망이 되고 말 것입니다.
어떤 이들은 오늘날 교회가 너무나 타락하고 더럽기 때문에 대환란이란 불같은 단련, 정련의 시간을 거쳐 깨끗하고 순결하게 정화되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이는 성경에 무지한 헛소리에 지나지 않습니다.
교회는 주님의 피로 씻음 받고 성령의 새롭게 하심으로 깨끗하게 되는 것이지 환란을 통해 정화되는 것이 아닙니다. 구원자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성도는 이미 의롭게 되었고, 깨끗하게 되었고, 거룩하게 되었으며 그리스도 안에서 완전하고 완벽합니다.
영적인 그리스도인은 환란 전에 휴거가 되고 육신적인 그리스도인들은 땅에 남아서 환란의 일부나 전부를 겪음으로 시험을 통과해야 한다는 것은 은혜의 복음이 아니라 전형적인 행위 구원으로 저주의 복음일 뿐입니다.
오늘날 환란 통과를 주장하는 교회나 교파들은 은혜의 복음이 무엇인지조차도 깨닫지 못하는 자들에 지나지 않습니다. 환란 통과의 교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구원의 안전, 구원의 영원한 보장에 대한 주님의 약속을 모조리 무시해 버리고 불신하는 사악한 교리입니다.
성도들은 하늘의 시민들이며, 하나님의 대사들입니다(고후5:17-21).
그 어떤 국가도 전쟁이나 기타 급변상황이 생길 때 가장 먼저 하는 일은 자국민 보호와 철수입니다. 이번 이집트 민주화 사태가 심각하게 되자 우리나라는 물론 미국이나 다른 나라들이 특별기를 보내어 자기 국민들을 신속하게 이집트에서 철수 시켰습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께서 자신의 가족이요, 종들을 극심한 대환란의 마귀통치 아래 두고 짐승의 표를 받지 말고 끝까지 견디라고 요구하지 않습니다.
주님은 먼저 교회를 데려 가십니다. 교회가 있는 한 마귀는 세상을 마음대로 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교회에게 마귀를 대적하고 이기는 권능을 주셨기 때문입니다. [.......마귀를 대적하라. 그리하면 그가 너희에게서 도망하리라.] (약4:7). 교회가 들림 받아야 마귀는 이 땅에서 마음대로 자신의 뜻을 펼칠 수 있습니다.
교회의 예표인 에녹은 살아서 들림 받는 성도의 예표입니다. 에녹이 주님과 동행하며 한 일이 무엇입니까? [아담으로부터 일곱 번째 사람인 에녹도 이들에 관해 대언하여 이르되, 보라, 주께서 자신의 수만 성도와 함께 오시나니](유1:14). 에녹은 주님께서 수만 성도와 함께 오신다고 대언했습니다.
주님이 자신의 성도들과 함께 오시려면 성도들은 주님 재림 전에 들림 받아 주님과 함께 거하고 있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에녹은 이미 대환란 전 교회의 휴거에 대해서 대언했던 것입니다.
Jesus came to his people. -초림. (자신의 백성에게)
Jesus comes for his people. -공중 재림. (자기의 사람들을 위하여)
Jesus comes with his people. -지상 재림. (자기의 성도들과 함께)
구약의 미리 기록된 사건들은 오늘날 우리에게 배움과 경고와 본보기로 주어졌습니다.
롯을 보십시오. 롯은 하나님께서 의로운 자를 악한 자들과 함께 멸망시키지 않으시며, 심판하지 않으실 것임을 입증하는 좋은 본보기입니다. 롯은 소돔에서 그들의 죄로 인해 고통 받는 혼이었습니다.
베드로후서 2:7-9을 보십시오. [사악한 자들의 더러운 행실로 인해 괴로움을 받던 의로운 롯을 건져 내셨으니 (이는 저 의로운 사람이 그들 가운데 거하며 그들의 불법 행위를 보고 들으면서 날마다 자기의 의로운 혼을 괴롭게 하였기 때문이니라.) 주께서 하나님을 따르는 자들은 시험들에서 건질 줄 아시고 또 불의한 자들은 심판의 날까지 예비해 두사 벌할 줄 아시되](벧후 2:7-9).
베드로는 롯의 예를 들어‘의롭게 된 성도’는 대환란이란 시험, 심판에서 건짐 받는다는 사실을 분명하게 말해 줍니다. 대환란은 시험의 시간입니다(계3:10). 대환란은 심판의 날입니다. 주님께서는 하나님을 따르는 자들을 시험들에서 건질 줄 아신다고 말씀하십니다.
롯이 그러했듯이 교회는 대환란 전에 건짐을 받습니다. 우리는 그 사실을 압니다. 주님의 말씀은 신실하십니다. 하지만 불의한 자들(믿음으로 의롭게 되지 못한 자들)은 심판의 날까지 예비해 두사 벌할 줄을 아신다고 선포합니다. 대환란 전에 건짐 받는 혼들과 심판의 때까지 예비해 두사 벌을 받는 혼들을 구분해서 말씀하고 계심에 주목하십시오.
심판의 날은 결코 혼이 지옥에 가는 날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롯의 예를 들어 소돔과 고모라에 임했던 심판과 같이 이 세상에 임할 대환란의 심판을 말하는 것입니다.

계속해서 교회의 환란 전 휴거에 대한 증언들을 살펴보겠습니다.
성경을 상고하는 길이 믿음의 확신을 위해 가장 안전하고 좋은 길입니다.
성도의 부활과 휴거는 ‘복된 소망, 산 소망, 영광스런 소망’이라고 말합니다. 대환란이 주의 오심보다 먼저라면 즉 교회가 대환란을 통과한 후에나 들림을 받게 된다면 우리는 주를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대환란을 기다리는 자들이 되고 맙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아니라 적그리스도의 출현을 기다리는 자들이 되는 것입니다. 교회는 주님의 오심을 기다리라는 명령을 받았지 대환란을 기다리라, 적그리스도를 기다리라는 명령을 받은 적이 없습니다. 주님께서 이 땅으로 오실 때 성도들은 짐승의 표를 받지 않으려고 도망 다니거나 환란이 끝날 때까지 견디는 것이 아닙니다.
교회의 규례요 명령으로 주어진 바울 서신서에는 단 한 번도 대환란에 대해 언급하지 않습니다. 교회 서신인 바울의 편지에는 대환란 때 교회 성도들의 삶에 관한 언급 자체가 아예 없습니다. 이는 교회가 그 때 이 땅에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이 세상에서 갖가지 환난들, 고난들, 박해와 어려움을 당하지만 이것들을 대환란과 혼동해서는 안됩니다.
대환란은 복된 소망이 아닙니다. 대환란은 하늘로부터 오는 주님을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땅에서 일어나는 갖가지 표적들을 기다리는 것입니다. 여러분 주위에 있는 환란 통과를 주장하는 이들의 주관심사는 언제나 땅의 표적들입니다.
짐승의 표, 베리칩, 각국의 화폐 통합, 종교 통합 등 각종 땅의 현안에 대해서 깊은 관심을 갖습니다. 교회는 땅의 일들에 관심을 두는 자들이 아닙니다. 우리는 땅에 있는 것들에 아무 애정이 없습니다. 교회가 대환란을 통과해야 한다면 우리 역시 땅의 일들에 관심을 기울이겠지만 우리는 그 전에 들림을 받을 것이기 때문에 복음만 전할 뿐입니다.
누가복음 12:36절입니다. [너희 자신은 마치 자기 주인이 결혼식에서 돌아올 때에 그를 기다리는 사람들과 같이 되라. 그가 와서 문을 두드리면 그들이 즉시 그에게 열어 주리라.](눅12:36).
주인은 결혼식을 위해서 돌아오는 것이 아니라 “결혼식에서 돌아”옵니다. 예수님은 결혼을 하고 돌아오시는 것입니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신부입니다. 신랑이신 예수님께서 결혼식에서 돌아오시는 것은 지상 재림입니다. 결혼을 위해 신부인 교회를 데리러 오시는 것은 공중 재림입니다.
교회는 대환란 전에 들림을 받고 저 하늘에서 그리스도와 혼인을 한 후에 이 땅에 돌아오는 것입니다. 어린 양의 혼인 잔치에 관한 말씀을 보십시오. [우리가 즐거워하고 기뻐하며 그분께 존귀를 돌릴지니 어린양의 혼인 잔치가 이르렀고 그분의 아내가 자신을 예비하였도다. 또 그녀가 깨끗하고 희고 고운 아마포 옷을 차려입도록 허락하셨는데 그 고운 아마포는 성도들의 의니라, 하더라.](계19:7-8).
그분의 아내(교회)가 자신을 예비하였다고 말합니다. 과거시제입니다. 대환란을 통과한 후에 자신을 예비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예비했습니다. 신부는 이미 하늘에 있습니다. 그러므로 신부는 이미 들림을 받은 상태입니다. 이로써 우리는 교회가 대환란 이전에 들림을 받는다는 분명한 진리를 알 수 있습니다. 계시록 19:7-8의 문맥은 주님이 아직 지상 재림 전입니다.
요한계시록 3:10입니다. [네가 나의 인내의 말을 지켰은즉 나도 너를 지켜 시험의 시간을 면하게 하리니 그것은 곧 앞으로 온 세상에 임하여 땅에 거하는 자들을 시험하는 시간이라.](계 3:10). I also will keep thee from the hour of temptation,
주님은 시험의 시간 즉 대환란으로부터 교회를 지켜 주시겠다고 말씀하십니다.
Keep...from입니다. Keep...during(while)이 아닙니다.
keep...from은 그 자체 속에 부정의 의미가 내포되어 있습니다. ---를 하지 못하도록 지킨다, 막아준다는 뜻입니다. 시험의 시각 그 자체로부터 지켜 주신다는 뜻이지 시험을 받는 중에 시험 속에서 지켜 주신다는 뜻이 아닙니다.
영어 구문에 익숙하지 않는 분들 중에서 킹 제임스 성경을 직역 한다면서 “나도 너를 시험의 시각으로부터 지키리라”고 번역해서 교회는 시험을 받지만 “그 시험으로부터” 지켜 주신다는 뜻으로 대환란 통과를 지지하는 구절이라고 억지를 부리는 이들이 있습니다. 이는 기본 영어 문법이나 구문조차 파악이 안 된 사람들입니다.
주님은 교회를 자신의 신부로 확실하게 지키시지 왜 대환란에 집어넣고 그 때에 지키십니까? 그것은 말장난입니다.
저는 킹 제임스 성경의 오역을 지적하는 수많은 분들이 영어 구문론부터 좀 공부를 했으면 하는 생각이 간절합니다. 대부분이 단어에 매여문장을 파악하지 못한 채 자기 멋대로 해석하는 것을 자주 보았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교회를 향해 “앞으로 온 세상에 임하여 땅에 거하는 자들을 시험하는 시간”(대환란의 기간)을 면하게 해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이는 일관된 약속입니다.
한 구절 더 살펴보겠습니다. [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음성과 하나님의 나팔 소리와 함께 친히 하늘로부터 내려오시리니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 그 뒤에 살아서 남아 있는 우리가 그들과 함께 구름들 속으로 채여 올라가 공중에서 주를 만나리라. 그리하여 우리가 항상 주와 함께 있으리라. 그러므로 이 말씀들로 서로 위로하라.](살전4:16-18).
여기서 우리는 하늘로 올라가는 두 부류의 사람들을 봅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 즉 부활 성도입니다. 그 뒤에 살아서 남아 있는 성도들입니다. 부활과 휴거는 하나님의 나팔 소리와 함께 친히 내려오시는 한 날에 일어나는 사건입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부활해서 대환란을 통과하는 것이 아니라 하늘로 들림을 받습니다. 그렇다면 살아서 남아 있는 성도들 즉 교회는 어떻게 됩니까?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그들과 함께 구름 속으로 채여 올라가....” 살아 있는 성도들은 그리스도 안에서 잠든 자들이 일어나 공중으로 들림을 받을 때 “그들과 함께” 구름 속으로 채여 올라갑니다.
고로 교회는 대환란을 통과할 수 없습니다.
부활 성도와 휴거 성도는 동일한 그리스도의 지체들이기 때문에 시간적, 공간적 분리가 일어날 수 없습니다. 성경 자체가 “우리가 그들과 함께...채여 올라가”라고 분명하게 말하고 있습니다. 이는 교회가 환란을 통과할 수 없다는 진리입니다.
고린도전서 15장입니다. [보라, 내가 너희에게 한 가지 신비를 알리노니 우리가 다 잠자지 아니하고 마지막 나팔 소리가 날 때에 눈 깜짝할 사이에 순식간에 다 변화되리라. 나팔 소리가 나매 죽은 자들이 썩지 아니할 것으로 일어나고 우리가 변화되리니](고전 15:51-52).
바울은 성도들에게 ‘한 가지 신비’를 알려 줍니다. 이 신비는 성도들의 부활과 휴거에 관한신비입니다. 마지막 나팔 소리가 날 때 눈 깜짝할 사이에 지상에 있던 크리스천들은 순식간에 ‘다’ 변화됩니다. but we shall all be changed(KJV).
모두 다 변화되는 것이지 어떤 이들의 주장처럼 일부는 변화되고 일부는 대환란을 통과한다는 부분 휴거는 성경과 동떨어진 헛소리입니다. 성경은 분명히 *우리가 다*(all) 변화되리라고 말합니다.
자, 그럼 이 변화되는 휴거의 시점이 언제입니까? 마지막 나팔 소리가 날 때입니다. 많은 이들이 마지막 나팔 소리를 계시록에 나오는 나팔을 받은 일곱 천사들이 부는 나팔 중에 일곱 번째 부는 천사의 나팔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교회는 대환란을 모두 통과하고 일곱 번째 나팔 소리가 나는 순간에 들림 받는다는 것입니다.
이들의 주장에 따르면 교회는 하나님께서 천사들을 통해 세상에 내리는 나팔 재앙(심판, 진노, 정죄)을 처음부터 다 받은 후에 마지막 나팔 소리에 들림 받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그리스도 안에서 이미 잠든 성도들은 대환란 동안에 전혀 대환란의 고통을 받지 않고, 그 시대에 살아 있는 성도들만 고스란히 주의 진노를 받습니다. 부활 성도와 휴거 성도는 그리스도 안에서 동일한 지체요, 한 몸이며, 그리스도의 신부입니다. 이 둘은 분리되지 않습니다.
부활 성도가대환란과 무관하다면 살아 있는 성도 역시 대환란과 무관합니다. 나팔 소리가 나면 죽은 자들이 썩지 아니할 것으로 일어납니다. 부활이 먼저 있고 살아 있는 성도가 변화됩니다. 이 둘은 다른 날, 다른 시각에 발생하는 각자의 사건이 아니라 나팔 소리가 날 때 모두 다 일어나는 사건입니다. 부활한 성도들은 대환란을 통과하기 위해 부활하는 것이 아니라 하늘로 올라가기 위해 부활하는 것입니다.
부활한 성도들이 대환란을 통과하지 않는다면 당연히 살아남은 성도들도 대환란을 통과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그들과 함께 구름 속으로 채여 올라가며, 그들이 썩지 아니할 것으로 일어날 때 우리 역시 그들과 함께 홀연히 변화되어 들림 받습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잠든 성도들이 대환란을 통과하지 않는다면 살아남은 성도 역시 대환란을 통과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성경을 통해 유대인(이스라엘 민족)과 신약 교회를 철저히 구분할 줄 알아야 합니다. 오늘날 이 둘의 경계를 무너뜨림으로써 진리를 혼잡케 하고 스스로 오류에 빠져 헤매는 이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야곱의 환란, 큰 환란, 대환란이라고 말하는 이 환란은 이스라엘 민족에게 정해진 것이며,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는 자들에게 임하는 심판입니다. 다니엘 12:1을 보십시오.
[그때에 네 백성의 자손들을 위하여 일어서는 큰 통치자 미가엘이 일어날 것이요, 또 고난의 때가 있으리니 그것은 민족이 있은 이래로 그때까지 없었던 고난일 것이며 그때에 네 백성이 구출을 받되 책에서 발견된바 기록된 모든 자가 구출을 받으리라.](단 12:1).
다니엘은 분명히 “그때에 네 백성의 자손들을 위하여”라고 기록합니다. 다니엘의 백성이 누구입니까? 이스라엘입니다. 대환란을 고난의 때라고 말하며 “민족(어느 민족?- 이스라엘)이 있은 이래로 그때까지 없었던 고난”이라고 말합니다.
민족은 교회가 아닙니다. 이는 우리 주님께서 이미 증언하신 내용으로 교회가 받는 환난, 고통, 고난, 어려움 등과는 전혀 다른 것입니다. 성경에 따르면 전무후무한 대환란이 이 땅에 임할 것입니다.
이것은 신약 교회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습니다. 우리는 그 전에 모두 들림 받게 됩니다. 이것이 바로 산 소망이요, 복된 소망이요, 영광스런 소망입니다.
우리는 주의 오심을 간절히 사모하고 기다리지 대환란을 소망하고 기다리지 않습니다. 적그리스도를 기다리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대환란을 두려워하거나 짐승의 표를 받지 않으려고 끝까지 견딜 장소를 물색하지 않아도 됩니다. 진리를 알면 그 진리가 우리를 자유롭게 합니다(요8:32). 거짓과 오류는 사람들에게 공포와 두려움, 불안을 조성할 뿐입니다.
다만 우리는 휴거가 있는 것도 알고 대환란이 있을 것도 알고 얼마나 두렵고 고통스러운 것도 압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아직도 믿지 않는 부모형제나 친척이나 이웃이나 친구들에게 이 사실을 전하여 그들도 대환란과 지옥의 형벌에서 구원해 내야합니다. 이 일을 맡기려고 저와 여러분들을 구원하셨고 이 교회에 모이게 하셨습니다.
구원 없는 자들에게는 대환란이 크고 두려운 날이 될 것이고 구원 받은 저와 여러분들에게는 크고 주목할 날이 될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성경을 배우는데 그치지 말고 더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 주는 일에도 게을러서는 안 될 것입니다.
오늘날도 계시록의 유명강사님들이 대환란을 통과할 믿음을 갖자고 열변을 토합니다. 그러면 비싼 등록비를 내고 모여든 목회자들은 아멘! 아멘!을 연발하며 주여! 짐승의 표를 받지 않을 믿음을 달라고 울부짖습니다.
2012-05-01 20:29:47



   

관리자로그인~~ 전체 118개 - 현재 2/8 쪽
번호
제목
이름
파일
날짜
조회
103
2012-05-29
1242
102
2012-05-29
1270
101
2012-05-29
1124
100
2012-05-01
1462
99
2012-05-01
1213
98
2012-05-01
1133
97
2012-05-01
1138
96
2012-05-01
1188
95
2012-05-01
1006
2012-05-01
1031
93
관리자
2012-03-18
1110
92
2012-01-29
1189
91
2012-01-29
1066
90
2012-01-29
956
89
2012-01-29
1027

 
Phone: (032) 421-2609 & (011) 389-5994 E-Mail: mykjv@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