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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교회는 대환란을 통과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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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는 대환란을 통과하는가?

말씀 데살로니가 전서 5:9. 2011년 2월 20일 일요일 오후 2시

오전에 이어서 교회는 대환란을 통과하는가의 총 주제를 끝내겠습니다.
바울을 통해서 다가올 진노라고 한 말은 대환란을 말합니다. 이 말씀을 전한 때는 데살로니가 성도들에게 환란과 핍박이 심한 때였기에 당시 그들은 지금이 아마 대환란이 아닌가 할 정도였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대환란은 아니었습니다.
본문으로 읽은 데살로니가 전서 5:9절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진노에 이르도록 정하지 아니하시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도록 정하셨느니라.](살전5:9).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진노에 이르도록 정하지 아니하시고] 교회는 이 세상의 진노나 사람들의 분노로부터는 자유롭지 못합니다. 그러나 마귀의 진노에 대해서는 단호하게 대적해서 승리할 수 있습니다. 맞지요? 세상을 승리하신 주 안에서 우리는 마귀를 대적할 수 있습니다. 주님은 교회에게 뱀과 전갈을 밟고 이길 수 있는 권능을 주셨습니다.
우리는 분명히 성령을 의지하고 마귀를 대적하여 이길 수 있고 이겨야합니다. 마귀를 대적하는 것도 하나님께 복종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마귀가 도망간다고 하십니다. [그러므로 너희는 하나님께 복종하라. 마귀를 대적하라. 그리하면 그가 너희에게서 도망하리라.](약4:7).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거나 복종하지 않는 자는 마귀를 대적할 수도 없고 대적해도 마귀가 도망가지도 않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믿고 그분의 말씀에 복종할 때 그분 안에서 마귀를 대적할 수 있고 또 마귀도 우리 안에 계신 하나님의 영으로 말미암아 도망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대환란 때는 마귀가 도망가지 않습니다. 금식을 하던 무엇을 하던 도망가지 않습니다. 성도가 도망 가야합니다. 대환란 때에는 마귀가 성도들과 전쟁하여 이길 합법적인 권능을 받았기 때문입니다(계13:7).
이 땅엔 이미 성령님의 성전(고전3:16)인 교회가 올라가고 없기 때문입니다. 교회는 사람들의 진노나 마귀의 진노에 대해서는 아무렇지도 않습니다.
대환란은 마귀의 진노의 날이 아니라 하나님의 진노의 날입니다. 문제는 여기에 있습니다. 하나님의 진노는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습니다. 요한 계시록에 진노라는 표현이 열 네 구절에 나오는데 거의가 하나님의 진노입니다.
계6:16, 어린 양의 진노, 17, 그분의 진노의 큰 날, 11:18절에 주의 진노가 이르고, 14:8, 진노의 포도즙, 19, 하나님의 진노의 큰 포도즙, 15:7, 하나님의 진노를 가득히 담은, 16:1,[하나님]의 진노의 병들을 땅에 쏟아 부으라, 16:19, 자신의 맹렬한 진노의 포도즙 잔을 주시니라.
성경은 분명히 [다가올 진노로부터 우리를 건져 내신 예수님이시니라](살전1:10) 말씀하셨습니다. 주께서 휴거를 통하여 다가올 진노로부터 우리를 건져 내시는 것입니다. 만약에 대환란이 닥쳤는데 그때에 우리가 휴거되지 않았다면, 그래서 우리가 대환란을 통과해야 한다면 문맥의 시제를 다가올 진노가 아니라 다가온 진노라고 해야 맞습니다. 그렇게 되면 진노가운데에서 구원 받는 것이 됩니다. 그러나 주님은 다가올 진노 이전에 건져내신다고 하셨지 이미 다가온 진노 안에서 건져 내신다고 말씀하시지 않았습니다.
성경을 잘 보셔야합니다. 성경은 분명히 [다가올 진노로부터 우리를 건져내신 예수님이시니라.] 성경을 왜곡하는 이들은 환란 통과를 주장하기 위해서 말하기를, 바울이 말한 다가올 진노는 우리의 혼이 지옥에 가지 않는다는 말이지 대환란에서 건져낸다는 말이 아니라고 궁색한 억지를 부립니다.
지금 성경은 데살로니가 교회와 대환란을 말하고 있는데 그들은 갑자기 지옥이야기를 꺼내고 있습니다. 당연히 성도는 대환란과 상관없이 지옥에 가지 않습니다. 우리가 하늘로부터 오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기다리는 것은 지옥에서 건져내 달라는 것이 아닙니다.
데살로니가 전서 1:10절을 다시 보십시오, [그분께서 죽은 자들로부터 살리신 그분의 [아들]께서 하늘로부터 오실 것을 기다리는지 보여 주나니 이분은 곧 다가올 진노로부터 우리를 건져 내신 예수님이시니라.](살전1:10).
다시 데살로니가 전서 5:9절로 갑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진노에 이르도록 정하지 아니하시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도록 정하셨느니라.]
이 두 구절을 눈을 씻고 자세히 보십시오. 다가올 진노는 지옥의 진노가 아닙니다. 우리가 누구를 기다립니까? 우리의 처소를 예비하시면 데리러 오신다고 약속하신 예수님의 다시 오심을 기다리는 것입니다.
[그분의 [아들]께서 하늘로부터 오실 것을 기다리나니]
그러면 왜 그분을 기다립니까? 그분이 왜 오십니까? 언제 오십니까?
[이분은 곧 다가올 진노로부터 우리를 건져 내신 예수님이시니라.] 이 말씀은 주님이 오셔서 우리를 지옥에서 건져내신다는 말이 아닙니다. 그분이 오시는 목적이 다가올 진노로부터 우리를 건져 내시기 위해 오십니다.
문맥적으로 지옥과는 전혀 해당사항이 없는 이야기입니다. 이 문장을 가지고 대환란의 진노가 아니라 지옥의 진노가 아닐까요? 반문한다는 것은 완전히 헛소리입니다. 그러면서 대환란을 통과한다는 자들이 그렇게 억지를 쓰고 주장합니다. 자기들이 오히려 성경적이라고 주장하는데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엉뚱한 소리를 하면서 성경을 억지로 풀고 있습니다.
다가올 진노라는 것은 대환란을 말합니다. 대환란이 바로 하나님의 진노의 날입니다. 우리는 구원받았을 때 이미 지옥으로부터 건져냄을 받았기 때문에 주님의 재림은 우리를 지옥에서 건지기 위함이 아닙니다.
그분은 이미 자신의 피로 구원 하신 우리를 위하여 하늘에 처소를 예비하시고 다가올 진노로부터 구원해 내시고 하늘에 데려가셔서 오히려 우리에게 보상을 주시려고 속히 오시는 것입니다.
[보라, 내가 속히 오리니 내가 줄 보상이 내게 있어 각 사람에게 그의 행위에 따라 주리라.](계22:12).
데살로니가 전서 1:10절은 문맥으로나 교리적으로나 상식적으로나 다가올 진노는 대환란을 말합니다. 대환란은 분명 하나님의 진노요, 어린양의 진노입니다. 이 진노가 누구위에 쏟아집니까? 아들을 믿지 않는 자들 위에 임합니다.
요한복음 3:36절에,[[아들]을 믿는 자에게는 영존하는 생명이 있고 [아들]을 믿지 않는 자는 생명을 보지 못하며 도리어 하나님의 진노가 그 위에 머물러 있느니라.](요3:36). 성도들은 아들을 믿습니다. 우리를 구원하신 그분이 우리의 아버지 집에 처소를 예비하시면 데리러 오신다고 하셨는데 다시 대환란의 진노 가운데 두신 다는 것은 정말 말이 안됩니다.
로마서 1:18절에,[하나님의 진노가 불의 안에서 진리를 붙잡아 두는 사람들의 모든 경건치 아니한 것과 불의를 대적하여 하늘로부터 계시되었나니](롬1:18). 하나님의 진노가 누구에게 임합니까? 불의한 자들, 믿지 않는 자들, 경건치 않은 자들, 불순종의 자녀들에게 임합니다.
에베소서 5:6, [아무도 헛된 말들로 너희를 속이지 못하게 하라. 이것들로 인하여 하나님의 진노가 불순종의 자녀들에게 임하나니](엡5:6).
하나님의 진노가 누구에게 임한다고요? 불순종의 자녀들에게 임한다고 하셨습니다. 성도는 순종의 자녀입니다. 믿음의 순종, 복음에 순종한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그러므로 진노는 누구에게 임합니까? 불순종의 자녀, 믿지 않는 자들에게 임합니다.
그런데 자신은 자꾸 환란을 통과해야만 할 것 같은 예감이 든다는 사람이 있습니다. 어쩐지 그렇게 될 것 같은 사람은 다 믿음대로 됩니다. 무엇인가 부족하고 대환란을 통과해야 될 것 같은 사람들이 대환란 통과를 주장하는 것입니다. 그들은 하늘보다 무언가 이 땅에 소망과 미련이 있는 사람들입니다. 롯의 아내와 같은 자들입니다.
저는 구원 받은 것을 전혀 의심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나의 무엇 때문에 구원 받은 것이 아니라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로 받은 것이기 때문입니다. 휴거 역시 나의 어떠함이 아니라 믿고 구원 받은 자들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의 선물이기 때문에 전혀 의심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대환란을 통과해야할 아무런 이유가 없습니다. 환란 통과에 대한 어떤 상상은 추호도 생각해 본 적이 없습니다. 너무도 당연한 것입니다. 왜 자꾸 불안해하고 환란을 통과 할 것처럼 생각하는 것입니까? 자신의 믿음이 그렇기 때문입니다.
그런 사람들은 다 통과 할 것입니다. 저는 환란 통과론 자들은 그들의 믿음대로 다 통과 할 것이라고 믿습니다. 환란 통과를 지지하고 그렇게 믿는 교인들이 의외로 많거든요, 그런 사람을 만나면 네 믿음대로 될지어다, 하면 됩니다. 그들의 말을 들어보거나 설득하거나 토론할 필요가 전혀 없습니다. 그들은 얼마나 믿음이 좋은지 어떤 말도 듣지 않습니다.
그래서 형제님은 환란을 통과할 것 같네요. 하면 됩니다. 대환란 통과를 축하합니다. 부디 짐승의 표를 받지 말고 승리하십시오. 형제님이 대환란을 통과하면서 구원 받지 못한 사람이나 연약한 사람들에게 많은 힘을 주시기 바랍니다. 하지요,
꼭 환란을 통과 할 것 같은 느낌이 드는 사람은 반드시 환란을 통과 할 것입니다. 틀림없습니다. 그것은 다 하나님 앞에 그 사람의 양심이 증언하고 마음속에 가진 것이 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물론 누구에게 속았을 수도 있는데 대부분은 그것이 그들의 믿음의 분량입니다. 그리고 무언가 자기의 의를 들어내고 싶은 것입니다. 진짜 거듭난 사람들은 성령의 증언이나 말씀으로 인해서 휴거가 즐겁고 가슴설레이는 기다림의 복된 일이지 불안하거나 초조하거나 두려움이 아닙니다.
혹시 여러분은 y2k를 기억하시나요? 벌써 10년이 넘었는데 그 때 얼마나 시끄러웠습니까? 종말이 왔으니 환란을 대비해야 한다 하여 얼마나 뒤숭숭했습니까? 많은 사람들이 생필품을 준비한다고 무얼 사놓고 준비하고 별짓 다 했지만, 아무 일도 없었고 또 한 번의 해프닝으로 끝났습니다.
우리는 스피노자의 말 대로 내일 지구의 종말이 올지라도 나는 오늘 한 그루의 사과나무를 심겠다는 말 같이 오늘 우리는 최선을 다해야합니다. 휴거사건이 일어나면 휴거되면 되는 것이고 지금 창문이 고장 났거나 유리가 깨졌으면 그것을 고치는 것입니다. 종말이 온다고 해서 불안해하거나 초조할 것이 없는데 믿는다는 사람들이 라면을 사다 쟁이고 비상식품을 사고 물을 사다 놓고 양초를 구입하고 총을 구입해 놓고 별짓을 다합니다. 과연 그것들이 얼마동안이나 지켜줄 것 같습니까?
하나님의 자녀는 하나님의 진노를 받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자녀는 하나님의 진노의 날과 상관이 없습니다. 세상 사람들도 자기 자녀에게 진노를 내리지 않는데 하나님께서 왜 자신의 독생자의 피로 구속하신 자녀위에 진노를 내립니까? 성경이 이런 사실을 분명하고 명쾌하게 선포하지 않았습니까? 그림자적인 구약성경의 예를 보십시오. 하나님께서 노아를 언제 구출해 주셨습니까?
노아의 생애에서 육백 년째의 2월 17일에 홍수가 시작됐습니다(창7:11). 노아가 방주에 언제 들어갔습니까? 홍수가 시작되기 일주일 전 2월 10일에 방주로 들어갔습니다.
하나님은 결코 홍수 중간에 노아에게 피할 길을 주시지 않았습니다.
2월 10일에 주님께서 노아에게 방주 안으로 들어오라. 명령 하셨습니다(창7:1). 잘 보십시오. 주님께서 노아에게 방주로 들어가라 하시지 않고 방주 안으로 들어오라 하셨습니다. [너와 네 온 집은 방주로 들어오라. Come thou and all thy house into the ark;](창7:1)
주님이 어디에 계십니까? 방주 안에 계셨습니다. 주님은 우리보고 어디로 가라하시지 않아요, 항상 이리로 오라하십니다. 지금 주님이 어디에 게십니까? 하늘에 계시잖아요, 하늘에 계신 주님께서 [이리로 올라오라](계4:1) 그러십니다, 우리는 대환란으로 가는 것이 아니라 하늘로 가는 것입니다. 하늘에 계신 주님께서 우리를 [이리로 올라오라] 하시면 그곳으로 올라가면 됩니다.
저 원주 어느 산골짜기나 청송 깊은 산 속이나 짐승이 찾아내지 못할 지리산으로 가라하지 않으십니다. 서울은 위험하고 인천은 안전하지 못하니까 강원도 설악산골짜기로 가라하지 않습니다.
주님은 항상 오라 하십니다. 주님이 이리로 오라 하시면 이리가 어디입니까? 주님이 계신 하늘입니다.
노아는 하나님의 은혜를 입은 자입니다. 그리고 모든 신약성도들은 다 주님의 은혜를 입은 자들입니다. 우리 모두가 은혜로 구원 받았잖아요,
에녹은 언제 들림 받았습니까? 노아의 대 홍수 훨씬 전에 들림 받았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를 하늘로 데려가셨습니다. [에녹이 하나님과 함께 걷더니 하나님께서 그를 데려가시므로(God took him) 그가 더 이상 있지 아니하더라.](창5:24).
에녹은 대환란 전에 교회를 데려가시는 휴거의 모형입니다.
히브리서 11:5절에도 하나님께서 그를 데려갔다고 기록하셨습니다. [믿음으로 에녹은 죽음을 보지 아니하고 옮겨졌으니 하나님께서 그를 옮기셨으므로 그들이 찾지 못하였느니라. 그는 옮겨지기 전에 하나님을 기쁘게 하는 자라는 증언을 가졌느니라.](히11:5).
그 에녹이 대언한 것이 무엇입니까? 주님이 지상재림하실 때 대환란 전에 휴거되었던 성도들과 함께 오신 다는 것입니다. [아담으로부터 일곱 번째 사람인 에녹도 이들에 관해 대언하여 이르되, 보라, [주]께서 자신의 수만 성도와 함께 오시나니](유1:14).
주께서 지상재림하실 때에 수만의 성도가 함께 오기 위해서는 대환란 전에 먼저 올라가야 하지 않겠습니까? 이 증언은 바울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신의 모든 성도들과 함께 오실 때에.........](살전3:13상).
롯을 보십시오, 우리가 보기에는 그가 행실로 의로운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주님께서는 그를 의로운 롯이라고 베드로후서2:7절에 말씀하십니다. 그 의로운 롯이 살고 있는 소돔 땅에 하늘에서 유황불이 떨어지기 전에 하나님께서 천사를 통해 그를 소돔에서 끄집어 내셨습니다. (God took out him)
천사가 롯에게 무어라했습니까? [네가 거기서 나올 때까지 내가 아무 일도 할 수 없다]고 했습니다(창19:22). 천사는 롯이 그곳에서 나올 때까지 심판을 집행할 수가 없었습니다. 저나 여러분의 행실이 완벽하거나 의롭지 못할지라도 주님을 믿음으로 주께서 의롭다 하셨습니다. 또한 주님은 자신의 신부인 교회를 데려가시기 전에는 절대로 이 땅에 대환란을 허락하시지 않으십니다.
대환란이 시작될 때에도 하나님의 종들 144,000의 이마 안에 인을 다 찍을 때까지 땅을 해하지 말라했습니다. [이르되, 우리가 우리 [하나님]의 종들의 이마 안에 인을 찍어 그들을 봉인할 때까지 땅이나 바다나 나무들을 해하지 말라, 하더라. 또 내가 봉인된 자들의 수에 대하여 들었는데 이스라엘 자손의 모든 지파에서 봉인된 자가 십사만 사천이더라.](계7:3~4).
하나님의 진노의 날은 교회가 휴거되기 전에는 결코 이 땅에 임할 수 가 없습니다. 주님은 자신의 피로 산 자들을 대환란 가운데 두시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잘 들으셔야합니다. 아주 그들의 논리가 교묘합니다. 일부 교회가 대환란을 통과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말하기를, 대환란은 하나님의 진노의 날이 맞는데 하나님의 진노는 안 받지만, 마귀의 진노는 다 받아야 된다고 주장하며 아주 그럴 듯한 논리를 펼칩니다. 그러나 그것은 다 말장난입니다. 우리는 기록된 말씀을 믿고 따르면 됩니다.
계시록 12:12절입니다. [그러므로 하늘들과 그것들 안에 거하는 자들아, 너희는 즐거워하라. 땅과 바다에 거하는 자들에게 화가 있으리로다! 마귀가 자기 때가 조금만 남은 줄 알므로 크게 진노하여 너희에게로 내려갔도다, 하더라.](계12:12).
[마귀가 자기 때가 조금만 남은 줄 알므로 크게 진노하여] 이것이 마귀의 진노입니다. 이 구절로 성도가 하나님의 진노는 받지 않지만 마귀의 진노는 받아야 된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계시록 12장에 용의 분노는 1절에 나오는 한 여자에게 분노합니다.
그 한 여자가 누구예요? 이스라엘이지요, 용이 누구에게 분노하는 것입니까? 한 여자에게 분노하고 그녀를 삼키려고 난리를 치는 것입니다. 이 구절에서 마귀가 분노하는 대상은 성도나 교회가 아니라 한 여자, 곧 이스라엘이요, 이 땅에 남아있는 자들입니다.
대 환란에 관한 모든 문맥을 살펴보면 주님을 거부한 야곱의 고난의 때를 말하며, 모두 이스라엘에 관한 일관된 것을 봅니다. 마귀는 지금 교회에게 진노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스라엘에게 진노하는 것입니다. 당연히 환란은 야곱의 고난의 때입니다. 이는 너무나 명백한 말씀입니다.
요한계시록 7장의 하나님의 종들은 누구였습니까? 이스라엘의 열두지파였습니다. 교회는 이스라엘의 어느 지파도 아닙니다. 대환란 때 하나님의 종들의 이마에 인을 칠 때까지 아무것도 해하지 말라 하셨습니다(계7:1-2). 반면 교회는 이미 성령을 통해서 구속의 날까지 인침을 받았습니다. 엡4:30,[하나님의 거룩한 [영]을 슬프게 하지 말라. 그분으로 말미암아 너희가 구속의 날까지 봉인되었느니라.]
이미 믿어 구원 받은 사람에게 대환란 때 다시 인을 치지 않습니다. 우리는 구원 받을 때 성령의 인침을 받았으므로 다시 인을 받지 않을뿐더러 어떤 해도 입지 않습니다. 이미 구원 받은 성도들은 들림을 받은 후이기 때문에 교회와 대환란은 무관하며 교회는 용의 진노와 하등의 상관이 없습니다. 마귀가 진노하는 대상은 아이를 해산하려는 여자 곧 이스라엘입니다.
계12:17절을 보십시오. [용이 여자에게 진노하여 그녀의 씨 중에 남은 자들 곧 [하나님]의 명령들을 지키고 예수 그리스도의 증언을 가진 자들과 전쟁을 하려고 나아가니라.](계12:17).
용이 누구에게 진노합니까? 여자에게 진노하여 그녀를 해치려 나갑니다. 이 여자는 사람들이 말하는 것처럼 성모마리아가 아닙니다. 당연히 교회도 아닙니다.
계12장의 여자는 이스라엘입니다.
또 [[하나님]의 명령들을 지키고 예수 그리스도의 증언을 가진 자들]이 누구입니까? 대환란 가운데 회심한 환란 성도들입니다. 이들은 대환란 중에는 하나님의 명령들을 지키고 예수 그리스도의 증언을 믿어야합니다. 이것이 신약시대와 다른 점입니다. [하나님]의 명령들도 지키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받아 들여야 한다고 말씀합니다.
대환란 때 유대인들을 보면 됩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믿을 뿐 아니라 율법을 준수해야한다고 했습니다. 이들이 예수님을 믿는다는 점에서는 구약성도들이 아니지요, 지금도 전통유대인들은 구약성도와 같습니다. 예수님을 안 믿습니다. 모세의 율법을 지킨다는 점에서는 신약성도들이 아닙니다.
다시 말해 그들이 예수를 믿는 다는 점에서는 구약성도가 아니고 율법을 지킨다는 접에서는 신약성도가 아닙니다. 그들은 바로 대환란 성도들입니다. 대환란이 오기도 전에 벌써 환란 성도들이 예비 된 것이지요, 대환란 때 이 땅에 천이백만이 넘는 유대인이 남아있다 할지라도 그 때에 하나님의 종으로 사역할 자들은 십사만사천이 전부일 것입니다.
오늘날 유대인들은 휴거를 기대하거나 믿지 않습니다. 그들한테 휴거를 이야기 해 보아야 전혀 믿지 않습니다. 그 사람들은 오직 땅입니다. 이 땅에서 받는 복에 관심이 있고 이 땅에 왕국을 세우는 일에 관심이 있고 이 땅에 낙원을 건설하는 것에 그들의 관심이 있습니다. 그들에게는 땅을 약속하셨기 때문입니다.
유대인들은 자기 민족에게 주어진 대환란을 준비하는 자들입니다. 그들은 지금 이 시대에서는 율법의 행위라는 저주의 복을 믿음으로 은혜에서 떨어진 자들이지만 장차 이 땅에서 대환란을 통과해야하는 성도들이 될 가능성이 가장 큰 자들입니다.
대환란 통과를 주장하는 사람들도 오직 이 땅에 관심이 있습니다.
그들은 하늘에 별 관심 없습니다. 그들의 관심은 오직 대환란을 통과 하는 것입니다. 그 뒤에 휴거가 되거나 하는 것은 나중 이야기이지 그들의 관심사는 이 땅입니다. 하늘에 소망두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대환란 통과를 지지하는 무리들의 지도자들은 성도들에게 땅을 팔고 집을 팔아 돈을 가져 오라는 것입니다. 그들은 사실 휴거나 대환란을 믿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다만 그것을 이용하여 자기들의 배를 채우려는 사기꾼들입니다.
분명히 은혜의 복을 믿고 주님의 지체가 된 교회는 대환란을 통과하지 않습니다. 그것도 내 믿음대로 될 지어다. 입니다. 오늘날 교회가 대환란을 통과한다는 이 교리는 너무나 혼탁하고 부패한 교리입니다.
종말론에 대한 토론은 언제나 논쟁과 다툼만 불러오는 것이 다반사입니다. 한번 이야기 해 보십시오, 목사들도 다 꺼려하는 부분입니다. 이야기 하면 답이 없습니다. 다 자기 견해만 있습니다. 그러니까 더 혼란스럽지요, 어떤 이는 대환란을 준비하는 무리에 끼어있는 것을 자랑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이럴 때 우리는 성경을 통해 진리의 조명을 받아야 됩니다.
계속해서 성경에서 말씀하시는 것을 보십시오, 계시록 4장5장입니다.
지상에서 대환란이 시작될 때에 하늘에서 하나님의 왕좌 주변에 스물네 장로가 주님을 찬양하며 주님이 주신 승리의 상징인 금관을 받아쓰고 앉아있습니다. 계시록 4:4절입니다. [또 그 왕좌 둘레에 스물네 자리가 있고 내가 보니 그 자리들 위에 스물네 장로가 흰옷을 입고 앉아 있는데 그들이 머리에 금관을 썼더라.](계4:4).
장로라는 호칭은 천사들이나 영적 존재들에게 쓴 적이 한 번도 없습니다. 이는 분명 천사들이나 스랍 같은 영적존재는 아닙니다. 그들은 왕좌 주변에 앉아있을 이유가 전혀 없습니다. 천사들은 머리에 금관을 쓰지 않습니다. 그들은 구원의 상속자들을 섬기는 직분입니다(히1:14).
그리스도인들에게는 흰옷과 금관이 약속되어있습니다. 성도들에게는 다섯 가지 왕관이 약속되어있는데 이는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서 상급으로 주어 질 것입니다. 그들이 썩지 않을 왕관, 환희의 왕관, 의의 왕관, 목자들에게 주시는 영광의 왕관, 생명의 왕관을 그리스도의 고난에 동참하는 자들에게 주신다고 하셨습니다.
그리스도를 위하여 수고와 섬긴 자들에게 준다는 말씀입니다.
하늘과 땅 사이에 관을 받을 사람들이 누구입니까? 그리스도인들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인들을 왕과 제사장으로 삼으셨다고 하셨습니다. 주님은 성도들과 함께 통치하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그럼으로 관을 받지요, 이들 하나님의 왕좌 둘레에 스물네 자리에 앉아 있는 스물네 장로들은 구속받은 성도들이라는 것을 의심할 바 없습니다.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기록된 성경을 단순하게 믿으면 됩니다.
많은 사람들이 스물네 장로들이 누구인지 그들의 정체에 대해서 분분한 해석을 합니다. 스물네 장로는 어저구저쩌구 하는 것은 어디까지나 자기들의 추론입니다.
장로들의 입으로 증언하는 것을 읽어보십시오. 그리고 그대로 받아들이고 그대로 믿으십시오. 계시록 5:9,[그들이 새 노래를 불러 이르되, 주께서 그 책을 취하시고 그 책의 봉인들을 열기에 합당하시나이다. 주께서 죽임을 당하시고 주의 피로 모든 족속과 언어와 백성과 민족 가운데서 우리를 구속하사 [하나님]께 드리셨으며](계5:9).
[주께서 죽임을 당하시고] 이것이 십자가 복음입니다.
그들은 절대 구약의 누구가 아닙니다. 주께서 죽임을 당하시고 주의 피로 누구를 구속하셨습니까? [모든 족속과 언어와 백성과 민족 가운데서 우리를 구속]하셨습니다. 한 민족이 아니라 모든 족속과 언어와 백성과 민족 가운데서 믿음으로 구속받은 은혜시대의 그리스도인들입니다.
[우리를 구속하사 하나님께 드리셨으며], 주님의 보배로우신 피로 우리를 사셔서 하나님의 아들로 드리시고 그분의 왕과 제사장으로 삼으셨습니다. 구약의 이스라엘은 한 민족을 하나님께서 부르시고 자신의 백성으로 택하셨습니다. 그들은 그리스도의 피로 사신 자들이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그들은 그들의 왕을 배척하고 십자가에 못 박은 자들입니다.
계시록5:10, [또 우리 [하나님]을 위해 우리를 왕과 제사장으로 삼으셨으니 우리가 땅에서 통치하리이다, 하더라.](계5:10).
계1:6에도 우리를 왕과 제사장으로 삼으셨다고 하셨지요? 이는 크리스천이지요? 의심할 것이 전혀 없습니다. 말씀 그대로 입니다. 24장로들은 주께서 죽음 당하시고 그리스도의 피로 자신들을 구속하셨다는 분명한 구원 간증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의 구원 간증이 이보다 더 분명한 것이 있습니까?
그들은 계1:5-6절에 계시한 말씀과 정확하게 일치합니다. 그러므로 스물네 장로는 구원 받은 신약성도들입니다. 그런데 요한이 올라가보니 그들은 이미 하늘에 있었습니다. 땅에서 대환란이 시작되기 전에 하나님의 보좌 둘레에 이미 올라가 있습니다.
이들은 지상의 대환란 때 저 하늘의 주님의 보좌 둘레이서 주님을 경배하고 찬양하며 주님과 함께 있습니다. 스물네 장로는 교회가 대환란을 통과 할 수 없다는 결정적인 증거입니다. 스물네 장로의 정체에 대해서 이런 저런 말을 많이 하지만 우리는 성경 그 자체로 이들은 구원 받은 신약의 성도들임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이들이 입은 흰옷은 왕 같은 제사장들의 옷입니다. 구약의 제사장들의 청색 홍색 백색의 실로 만든 의복이 아닙니다. 구약의 어떤 제사장도 왕좌에 앉거나 금관을 쓰지 않았고 흰옷을 입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속에만 흰옷을 입었습니다. 그리고 구약시대의 제사장은 레위지파의 아론의 후손들이지 [모든 족속과 언어와 백성과 민족 가운데서] 구속받은 성도가 될 수 없습니다.
그리스도께서 흰 옷을 입고 나와 함께 걷는 자들은 신약의 성도들밖에 없습니다. 계3:4절에 흰옷을 입은 자가 누구입니까? 지역교회의 신실한 성도입니다. [사데에도 자기 옷을 더럽히지 아니한 몇 이름이 네게 있어 그들이 흰옷을 입고 나와 함께 걸으리니 그들은 합당한 자들이니라.](계3:4).
[그들이 흰옷을 입고 나와 함께 걸으리니] 주목하십시오. 흰옷을 입고 주님과 함께 걷는 자가 누구입니까? 그것이 교회의 성도입니다. 계시록 3:5,[이기는 자 곧 그는 흰옷을 입을 것이요, 내가 그의 이름을 생명책에서 지워 버리지 아니하고 그의 이름을 내 [아버지] 앞과 그분의 천사들 앞에서 시인하리라.](계3:5).
[흰옷을 입을 것이요]누가 흰 옷을 입습니까? [이기는 자]입니다.
스물네 장로가 입은 옷은 이긴 자들로서 신약성도들에게 주어진 옷입니다. 성경에서 이 사실을 확인 할 수 있습니다.
이기는 자가 누구입니까? 예수 그리스도께서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신약성도들은 승리자입니다. 우리는 승리를 선물로 받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이기게 하셨습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승리를 주시는 분이십니다. 우리는 이 사실에 감사를 드리면 됩니다. 고린도전서 15:57,[그러나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에게 승리를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라.](고전15:57).
[우리에게 승리를 주시는 하나님]이 계시므로 분명 우리가 이기는 자이지요,
고후2:14,[항상 우리를 그리스도 안에서 승리하게 하시고 우리를 통해 모든 곳에서 그분을 아는 냄새를 풍기게 하시는 하나님께 이제 감사하노라.]
[항상 우리를 그리스도 안에서 승리하게 하시고]구원 받은 성도가 이기는 자입니다. 우리는 세상을 이기는 자들이요, 마귀를 이기는 자들입니다. 대환란 때는 성도가 마귀를 이기는 것이 아니라 마귀가 성도들을 이기고, 신약시대에는 성도가 마귀를 이깁니다. 우리가 이기는 자들입니다. 성경은 크리스천들을 이기는 자라고 말합니다.
요한일서 5:5절에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는 자가 아니면 누가 세상을 이기는 자냐?](요일5:5) 우리는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아들임을 믿잖아요, 그러므로 우리가 세상을 이기는 승리자입니다. 성도들이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아들임을 믿는 것보다 더 큰 승리가 무엇입니까? 영적인 훈련입니까? 고행입니까? 금식입니까? 선행입니까? 수도원 생활입니까?
그 무엇보다 가장 큰 믿음은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독생자로서 우리를 구원하러 육신을 입고 오셨다는 것을 믿는 것보다 더 큰 것은 없습니다. 구원 받은 이후의 행위들은 보상에 해당합니다.
요한일서4:4,[어린 자녀들아, 너희는 하나님께 속하였고 또 그들을 이기었나니 이는 너희 안에 계신 분이 세상에 있는 그보다 더 크시기 때문이라.](요일4:4). 주님은 우리가 그들(마귀)을 이기었다고 말씀하십니다. 신약성도들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이긴자들입니다.
주님께서 사망을 이기시고 마귀를 이기시고 세상을 이기시고 모든 정사와 권세를 다 깨뜨리셨음으로서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이미 이긴자가 되었습니다. 흰옷을 입고 주님의 둘레에 앉아서 머리에 금관을 쓰고 있는 스물네 장로가 이미 하늘로 들림 받은 교회임을 보여 줍니다. 이들은 왕가의 제사장직분을 지닌 자들로서 성령으로 거듭난 사람들입니다.
그리스도의 고난에 동참한 자들입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의 심판석에서 상을 받았습니다. 만약 교회가 대환란을 통과해야한다면 하늘의 하나님 왕좌 둘레에는 빈자리만 놓여 있어야합니다. 대환란이 끝 날 때까지 빈자리에는 “예약된 자리이니 아무도 앉지 마시오” 그렇게 써 놓아야합니다. 그러나 이미 다 앉아있었습니다.
어떤 이들은 스물네 장로가 구약의 이스라엘 열두지파와 신약의 열두 사도가 아닐까 그렇게 추측을 합니다. 구약에서의 장로란 한 민족의 한 지파나 가문이나 혹은 한 도시의 대표로 나타납니다. 구약에서 스물네명의 제사장이 직분을 담당했고 다윗은 스물네명의 제사장 가문의 우두머리들을 찾아내서 모든 제사장 직분을 대표로 맡은 적이 있었습니다. 역대하 24장에 그 이야기가 나오지만 그들에게 금관을 준 일은 없습니다.
새 예루살렘에 열두 기초석이 있는데 열두 기초석에는 열두 지파의 이름이 있다고 했고 열두 대문이 있는데 열두 대문에는 어린양의 열두 사도의 이름이 있다고 계시록 21장에 기록합니다. 그래서 이런 이유로 구약의 열두 지파와 신약의 열두 사도를 스물네 장로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럴듯한 추측입니다.
구약의 열 두 장로는 누구인지 모르지만 어쨌든 야곱의 아들 열 두 명인지 신약의 열 두 사도를 합해서 스물네 장로라고 말합니다. 그러면 아브라함과 이삭은 어디에 앉아야하고 야곱은 어떻게 합니까? 야곱의 자식들 열두지파가 자리를 차지해버리면 야곱은 어디에 앉아야합니까? 그런데 대다수가 그런 추측을 합니다.
르우벤도 앉고 요셉도 앉고 베냐민도 앉는데 정작 아비가 앉지 못하면 야곱이 억울하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삭이나 아브라함은 앉지도 못하고 야곱의 열두 아들들이 다 차지해버렸으니 안됐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런 것들은 성경이 지지 하지도 않는 사람들의 추측하는 소설입니다. 어떻게 들으면 그럴 듯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성경의 말씀이 아니라 지어낸 이야기입니다.
만약 그렇게 추측을 했다 하더라도 구약성도는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 후에 이미 들림을 받았고(마27:52-53). 신약성도는 환란 전에 들림을 받기 때문에 모두 하늘에 있는 것입니다. 어쨌든 교회는 대환란을 통과하지 않습니다. 이렇게 말하나 저렇게 말하나 교회는 대환란을 통과하지 않습니다. 스물네 장로는 틀림없는 신약교회의 성도입니다. 예수님의 보좌 둘레에 앉아 있는 스물네 사람들은 장로들이었습니다.
베드로 사도는 자신을 무어라했습니까? 베드로전서5:1절입니다. [너희 가운데 있는 장로들에게 권면하노니 나 역시 장로요 그리스도의 고난의 증인이요 또한 앞으로 나타날 영광에 참여할 자니라.](벧전5:1).
성도들 가운데에 장로들이 있지만 베드로는 자신을 [나 역시 장로요]라고 했습니다.
사도요한 역시 자기를 장로라고 했습니다. 요한이서1:1,[장로는 선택 받은 부인과 그녀의 자녀들에게 편지하노라. 내가 진리 안에서 너희를 사랑하며 나뿐 아니라 진리를 안 모든 자도 그리함은](요이1:1).
요한 삼서1:1역시 자신을 장로라고 말합니다. [장로는 극진히 사랑하는 가이오 곧 내가 진리 안에서 사랑하는 자에게 편지하노라.](요삼1:1).
결국 무엇을 말합니까? 믿음으로 구원 받은 사람들이 장로입니다. 그 장로들 스물네명이 하나님의 보좌 둘레에 앉아있습니다. 그것도 금관을 쓰고 흰옷을 입고 자리에 앉아있습니다. 이들은 저 하늘에 있습니다. 땅에 있지 않습니다. 그들은 대환란 전에 올라가 있으므로 교회는 대환란을 통과하는 것이 아닙니다.
신약성도들은 대환란 전에 들림을 받아 모두 하늘에 있는데 자신들을 장로라고 한 사도들이 이 땅에 있을 수가 없습니다. 주님께서 그들에게 하나님의 어린양을 돌보라고 하셨는데 어린양이 있는 곳에 장로가 있는 것이나 목자들이 있는 곳에 어린양은 당연히 올라와 있어야 합니다.
스물네 장로에 대해서 어떻게 시비를 걸어도 교회가 대환란 전에 하늘로 들림을 받는 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분명히 대환란 전에 들림을 받습니다. 교회는 대환란을 통과하지 않습니다. 전무후무한 대환란 전에 난리와 재앙의 소식이 들려 올 때 우리는 주님을 만나게 될 터이므로 기뻐하고 즐거워하는 것입니다.
왜 기뻐하고 즐거워합니까? 주님의 오심이 점점 가까워지는 구나! 이제 다 왔구나! 곧 휴거가 있겠구나 하며 기뻐하는 것이 성도들이고, 아이고 이제 죽었구나! 불안하고 두렵고 초조하고 염려하는 자들에게는 무엇이 그들에게 다가옵니까? 크고 두려운 날입니다.
그 사람들은 구원 받지 못한 사람들입니다. 속은 사람들입니다. 대환란을 통과하려고 기다리는 자들입니다. 이제 그날은 아주 가깝습니다. 더욱 열심히 복음을 전하여 대환란 전에 사랑하는 가족들과 친척들과 이웃과 친구들을 구원의 길로 인도합시다. 할렐루야!!
2012-05-01 20:4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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