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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위대하신 하나님의 만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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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하신 하나님의 만찬

말씀 : 누가복음17:34~37. 2005년 6월 26일 일요일 오전11시
요절 : 누가복음17:37,
[그들이 그분께 응답하여 이르되, 주여, 어디로 이니까? 하니 그분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어디든지 시체(屍體)가 있는 곳이면 독수리들이 거기로 함께 모여 들리라, 하시니라.]

우리 교회에서는 주님 오심을 사모하는 마음으로 매달 첫 일요일 오전 11시 설교하기 전에 [주의 만찬]을 합니다. 이 때 사용하는 빵은 누룩 없는 빵 즉 맛을 내기 위한 설탕을 비롯한 어떤 조미료나 첨가물도 넣지 않는 것은 물론 잘 부풀려 부드럽게 하는 이스트를 넣지 않은 빵을 만들어 나누는 것입니다. 고전5:7~8,[그러므로 너희는 누룩 없는 자들인즉 새 덩어리가 되기 위하여 묵은 누룩을 제거하라. 우리의 유월절 어린양 곧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희생물이 되셨느니라. 그러므로 우리가 그 명절을 지키되 묵은 누룩으로도 말고 악의와 사악함의 누룩으로도 말며 오직 순수함과 진실함의 누룩 없는 빵으로 하자.]
이렇게 주님 다시 오시는 그날 까지 주의 만찬을 행합니다. 그리고 우리들의 죄를 씻어 주시기 위하여 십자가에서 흘리신 주님의 귀하신 보혈을 상징하여 발효되지 않은 포도즙을 서로 나누며 주님 오실 때까지 그분을 기억하여 이 일을 행합니다.(마26:26~30, 막14:22~26, 눅22:17~20,고전11:24~25).
이것은 주님의 명령이므로(고전11:23~26) 주님께서 우리를 데리러 오신 다는 약속을 믿는 모든 구원 받은 사람들은 그분 오실 때까지 이 일을 행하여 주님을 기억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예식을 [주의 만찬]이라 부릅니다.
사실 만찬이라는 뉘앙스는 맛있는 음식이 풍성한 어떤 잔치를 상상하게 됩니다. 그러나 [주의 만찬]은 주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시게 될 것을 아시고 제자들과 마지막 함께 나눈 저녁식사입니다. 그러한 상황에서 먹는 식사가 무슨 맛이 있겠으며 즐거움이나 기쁨이 있겠습니까? 오히려 슬픔과 경직된 분위기일 것입니다. 물론 만찬에서 먹을 수 있는 것은 진수성찬의 산해진미가 아니라 전혀 맛을 내지 않은 밀가루 반죽을 얇게 만들어 구운 전병이며 발효되지 않은 포도즙이 전부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만찬이라는 단어가 풍기는 진수성찬의 저녁식사는 아닙니다. 그것이 [주의 만찬]입니다.
만찬 중에 가장 화려하고 기쁜 것은 천상에서 있을 [어린 양의 혼인 만찬]일 것입니다. 구원 받아 들림 받은 교회가 어린양의 신부가 되어 어린양과 혼인잔치를 치르게 되니 얼마나 기쁘고 감사할 일입니까?
그런데 성경에는 [위대하신 하나님의 만찬]이 있습니다.
이 만찬은 [주의 만찬]이나 [어린 양의 혼인 만찬]과는 모든 것이 다릅니다. [주의 만찬]에 참여할 수 있는 사람들은 주님을 믿고 구원 받은 사람들만이 행하는 것으로 우리를 데려 가시기 위하여 다시 오신다는 주님의 약속을 굳게 믿는 구원 받은 사람들만이 유일한 자격을 갖게 됩니다. 그리고 그 만찬에서 먹을 수 있는 것은 순수한 밀가루 반죽을 구운 전혀 맛이 없는 단순한 빵과 발효되지 않은 포도즙입니다.
그러나 [어린 양의 혼인 만찬](계19:9)은 지금 우리가 상상할 수 없습니다.
반면 [위대하신 하나님의 만찬]은 이 땅에서 마지막 있을 것으로 매우 특별합니다. 이 만찬에 초대받는 손님들은 사람들이 아니라 하늘을 나는 모든 날짐승들입니다. 각종 새들이 이 만찬의 유일한 고객입니다. 그리고 그들이 먹는 음식은 다름 아닌 사람들의 살과 그들이 타고 다니던 말들의 살입니다. 이 얼마나 끔찍하고 무시무시한 일입니까? 사람들이 들으면 대단히 엽기적인 이야기요, 흉측하고 듣기 거북한 말입니다.
이 새들이 배부르게 먹게 될 사람들은 그 신분이 다양합니다.
계시록19:17~18, [또 내가보니 한 천사가 해 안에 서서 하늘 한 가운데로 날아가는 모든 날짐승을 향하여 큰 음성으로 외쳐 이르되, 너희는 와서 위대하신 하나님의 만찬에 함께 모여 왕들의 살과 대장들의 살과 말들의 살과 말 탄 자들의 살과 자유로운 자나 매인 자나 작은 자나 큰 자를 막론하고 모든 사람의 살을 먹으라, 하더라.]
이렇게 아주 특별한 만찬이 주님께서 이 땅에 재림하실 때 있게 됩니다. 이 만찬에 날 짐승들의 음식으로 자기 살을 제공하고 싶은 사람들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그러나 그들은 세상의 신분과는 상관없으며 그 신분은 새들이 먹는 데도 아무런 상관이 없습니다.
[위대하신 하나님의 만찬]에 내 놓을 음식으로는 이미 살펴본 대로 왕들의 살과 총대장들의 살과 용사들의 살과 자유로운 자나 매인 자나 작은 자나 큰 자를 막론하고 모든 사람들의 살과 말들의 살입니다. 저는 여러분 중에는 단 한 사람도 자기 살이 이 만찬에 제공되는 음식이 되지 않기를 간절히 소원합니다.
물론 자신이 구원 받았음이 확실하고 절대 지옥가지 않고 영원한 생명을 얻었다는 증거로 생명책에 그 이름이 기록되어 하나님의 아들의 권능을 보장받은 사람들은 그 육신 즉 자신들의 살을 날짐승들에게 주지 않아도 됩니다.
[위대하신 하나님의 만찬]은 구원 받은 사람들 모두가 들림 받은 후, 대 환란 마지막에 일어날 일이므로 오늘날 구원 받은 교회에는 해당되는 문맥이 아닙니다.
얼마나 다행한 일입니까? 얼마나 감사할 일입니까? 우리들의 구원은 이토록 값진 것입니다. 주님의 보혈은 이토록 능력이 있는 것입니다.
성경의 환란 장이라는 마태복음24장28절을 봅니다. [또 어디든지 사체(死體)가 있는 곳이면 거기로 독수리들이 함께 모여들리라.] 했습니다. 환란 기간 동안 기근으로 죽은 자들, 전쟁으로 죽은 자들, 지진이나 각종 재앙으로 죽은 자들, 환란의 마지막 재림하시는 주님의 심판으로 죽은 자들로 사체가 가득한 이 땅을 깨끗하게 청소할 독수리와 모든 날짐승들이 포식하는 전무후무한 잔치인 [위대하신 하나님의 만찬]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휴거 즉 주님의 공중 재림과 교회의 들림 받는 사건과 대 환란에 대해서는 여러분들이 잘 알고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그러나 저는 휴거 사건 때 일어나는 일로 배우고 가르치고 설교한 내용 중 잘못 알고 잘못 가르치고 잘못 설교한 부분이 있어 바로잡기 위하여 오늘 이 본문을 택하여 다시 설교합니다.
저는 먼저 여러분들에게 성경을 잘못 가르친 것에 대해서 사과드리며 용서를 빕니다.
그리고 지난 일요일 아침 [재림]에 대해서 공부하고 이메일로 질문 한 김원광 형제에게 이 자리를 비러 공개적으로 감사하다는 말을 합니다. 무엇이 잘못되고 무엇을 감사하는가의 결론부터 말씀드리자면 오늘 본문으로 택한 누가복음17:34~36,의 내용은 휴거 때에 일어날 내용이 아니라는 것을 새롭게 깨닫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다 같이 다시 한 번 읽어보고 자세히 설명 드리겠습니다.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 밤에 두 남자가 한 잠자리에 누워 있을 터인데 하나는 붙잡혀 가고 다른 하나는 남겨질 것이요, 두 여자가 함께 맷돌을 갈고 있을 터인데 하나는 붙잡혀 가고 다른 하나는 남겨질 것이며, 두 남자가 들에 있을 터인데 하나는 붙잡혀 가고 다른 하나는 남겨지리라, 하시니라.] (눅17:34~36),
이 내용을 휴거 때 들림 받을 자들과 이 땅에 남겨질 자들로 가르쳤는데 사실과 전혀 다릅니다. 이 구절의 붙잡혀 가는 자들이 휴거되어 하늘로 올라가는 자들이 아니라 환란 때 [위대하신 하나님의 만찬]의 음식으로 독수리와 모든 날짐승들 앞에 던져지기 위하여 붙잡혀 가는 자들입니다.
일요일 아침 재림에 대한 성경공부를 한 김원광 형제가 예배 후 집에 가서 이메일로 질문을 했는데 제가 예배 후 천안을 다녀오는 바람에 월요일 아침에 이메일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 이메일 내용이 이러합니다.
서두는 생략하고
【 .........그리고 일요일 오전에 성경공부를 하며 이상하게 여겼던 눅17:34절 말씀에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 밤에 두 남자가 한 자리에 누워 있을 터인데........ }에서 "두 남자"로 번역한 "be two men"를 "두 사람"으로 번역해 놓아야 더 바른 것 같은데요. 두남자로 번역해놓으니 마치 구원받은 동성애자가 휴거되는 모습이 되어 버리니 말입니다.
내일 저녁에 뵙겠습니다. 김원광.】

저는 이 편지를 읽고 곰곰이 생각해 보고 몇 번이고 읽고 또 읽어보면서 고민해 보았습니다. 그리고 클라렌스 라킨 형제의 세대적 진리를 살펴보고 러크맨 형제의 마태복음 주석을 살펴보아도 동일하게 성도들의 휴거와 주님의 공중 재림으로 설명되었으며 김oo 형제의 마태복음 강해 테잎을 들어보아도 별 다른 해답을 얻지 못했습니다.
그 누구도 두 남자가 한 베드 속에서 잠잔다는 것을 이상스럽게 본 사람이 없습니다. "be two men in one bed" 물론 두 남자가 함께 잘 수도 있겠으나 김 형제가 생각하기는 다 큰 두 남자가 한 침대에 든다는 것은 꼭 동성애자들과 같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입니다. 여러분들도 이러한 안목으로 성경을 상고할 때 엄청난 수확을 얻을 수 있으며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의도를 바르게 깨닫게 될 것입니다.
저는 여러 주석과 성경공부 교재들을 찾아보았으나 동일한 휴거의 내용으로 설명되었을 뿐이었는데 그 확실한 대답은 역시 주님께서 조명해 주셨습니다. 그들은 하늘로 데려간(휴거) 것이 아니라 땅의 다른 곳으로 붙잡혀 간 것이라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물론 그들은 두 남자 중 구원 받은 한 남자가 아닙니다.
우선 본문에 거론한 사람들은 구원이나 휴거와는 하등의 관계가 없는 사람들로 환란이 끝나가는 지점인 주님의 지상 재림의 시기의 사람들이라는 것을 염두에 두어야합니다. 그들 중 하나가 들림 받는다고 배웠기 때문에 자신도 모르게 고정관념이 생겨서 선뜻 이해하기가 힘들 수도 있습니다. 그들은 동성애자들일 수도 있고 범죄자들일 수도 있습니다. 그들은 부자지간일 수도 있습니다. 그들의 관계는 아무래도 상관없습니다.
제가 항상 하는 말이지만, 어떤 유명한 사람이나 박사나 목사의 말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주님께서는 무어라 말씀하시는가? 입니다. 신앙생활은 들은풍월로 하면 안됩니다. 우리의 기준은 언제든지 성경이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주님은 성경을 공부하라, 상고하라. 묵상하라. 연구하라. 탐구하라.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행17:11, [이들은 데살로니가에 있는 사람들보다 더 고귀하여 온전히 준비된 마음으로 말씀을 받아들이고 그것들이 그러한가 하여 날마다 성경 기록들을 탐구하므로] 여러분들도 목사의 말만 듣지 말고 성경이 과연 그러 한가 자세히 살펴보시기를 바랍니다. 목사나 성경 교사는 성경을 이해하고 믿는데 도와주는(guide) 역할을 할 뿐입니다. 제가 그러하듯이 유명한 사람이나 럭크만 박사나 클라렌스 라킨 형제라 할지라도 실수하거나 발견하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주님은 사람들의 외모를 보시지 않습니다. 남자들은 잘 생기고 여자들은 예쁘고 누구는 키가 크고 작다든지 학식이 있고 없다든지 말을 잘하고 잘못 한다든지를 보시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의 중심을 보시기 때문에 그들의 마음이 온전히 준비된 마음인가? 준비된 마음으로 말씀을 받아들이는가? 그리고 성경을 온전히 믿고 탐구하는 가로 평가하십니다.
그렇게 하는 사람을 고귀한 사람으로 보십니다.
여러분들이 성경을 읽다가 내용이 이상하거나 말이 되지 않는 부분은 왜 그럴까? 생각해 보는 것이 보물을 캐게 되는 행운을 얻는 것입니다. 모든 발명가들이 사소한 것에서 아이디어를 얻듯이 성경 또한 그렇습니다.
오늘 본문과 같은 내용이 마태복음 24장에도 나옵니다.
마24:40~41, [그 때에 두 사람이 들에 있을 터인데 하나는 붙잡혀가고 다른 하나는 남겨질 것이요, 두 여자가 방앗간에서 맷돌을 갈고 있을 터인데 하나는 붙잡혀 가고 다른 하나는 남겨 지리라.] 이 사건을 저를 포함한 모든 교회와 성도들 거의가 휴거 때에 일어날 사건으로 인식하고 있습니다. 휴거라는 소설책을 쓴 사람도 이 말씀을 근거로 책을 쓰고 있습니다. 설사 휴거가 그렇게 전개 되더라도 이 구절의 내용은 그런 뜻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그리고 많은 찬송가나 복음성가가 이 내용을 교회의 휴거 사건으로 다루고 있습니다. 저도 지금까지 그렇게 배웠고 그렇게 설교했고 그렇게 가르쳤습니다. 저 역시 배운 대로만 가르치고 성경이 과연 그러 한가 자세히 탐구하지 못했음을 시인하고 회개하며 잘못을 빌고 바로잡고자 합니다. 그러면 이 말씀은 도대체 어떤 말씀이며 어디에 적용되어야 할 말씀인가를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1, 문맥의 전 후 내용을 살펴보아야 합니다.
이 말씀들이 기록된 장들을 우리는 환란장이라 부릅니다. 환란 때에 일어날 일들을 기록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마24:21, [그 때에 큰 환란이 있으리니 세상이 시작된 이래로 이때까지 이런 환란이 없었고 이 후에도 없으리라.] 했습니다. 그리고 곧 이어 마24:40~41, [그 때에 두 사람이 들에 있을 터인데 하나는 붙잡혀가고 다른 하나는 남겨질 것이요, 두 여자가 방앗간에서 맷돌을 갈고 있을 터인데 하나는 붙잡혀 가고 다른 하나는 남겨 지리라.] 했습니다. 이 일은 환란 기간이 거의 끝나가는 시점에 일어날 일들입니다.
오늘 본문 누가복음17:26~30절을 보십시오, 사람의 아들인 주님께서 지상에 나타나실 날을 [사람의 아들의 날들]이라고 하시면서 노아의 날들과 롯의 날들을 예를 들고 있습니다. 노아의 날은 홍수가 온 세상에 임하는 환란이요, 롯의 날은 소돔과 고모라에 임하는 유황불이 쏟아지는 환란입니다.
노아나 롯의 가족들은 환란 전에 피신하게 됩니다. 그러나 그 나머지 사람들은 환란 가운데에서 멸망을 당합니다.
누가복음17:34~36절의 내용이나 마태복음24:40~41절의 내용은 시기적으로 환란 전의 공중 재림이 아니라 환란이 끝나는 주님 지상 재림의 시점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알고 있는 것 같이 이 구절들은 환란이 시작되기 전에 있을 휴거 사건이 아니고 환란의 끝이므로 구원 받은 성도는 들려 올라가고 구원 없는 사람은 남겨 진다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교회의 휴거는 환란 전에 일어납니까? 혹은 환란 중간에 일어납니까? 아니면 환란 후에 일어납니까? 우리가 지난번에 계시록을 공부할 때에 이 땅에 환란이 일어나기 전에 교회는 들림을 받는다고 배웠습니다. 교회는 주님의 신부요, 휴거는 주님의 신부를 환란이 임하기 전에 데리고 가시는 사건입니다. 그러므로 문맥상의 시기적으로 볼 때 두 남자가 한 침대에서 자다가 하나가 붙잡혀 가는 것이 휴거되는 것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두 여자가 맷돌을 갈다가 하나가 붙잡혀 가는 것이 휴거되는 것이 아니고 두 남자가 들에서 일하다가 하나가 붙잡혀 가는 것이 하늘로 끌려가는 휴거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냥 선배들이 그렇게 알고 그렇게 가르쳐 주었기에 확인해 보지도 않고 그렇게 알고 있었을 뿐입니다.
오늘날 성도들의 성경 지식의 대부분이 미확인된 들은풍월의 지식이라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잘못 번역된 성경을 그대로 받아들인 것이 원인입니다. 저희들은 개역 성경을 읽으면서 일점일획도 가감하면 안 된다는 말씀 때문에 감히 성경이 잘못되었다는 것은 꿈에도 생각할 수 없었습니다.
분명히 개역 성경에는 눅17:34,35,(36은 없음),[.......하나는 데려감을 당하고 하나는 버려둠을 당할 것이요]
[데려감을 당하고] 했기 때문에 추호도 의심할 수 없는 휴거의 내용으로 수용했던 것입니다. 역시 마태복음24:40~41절에도 [.......하나는 데려감을 당하고 하나는 버려둠을 당할 것이요] 아예 휴거의 상황으로 받아들이도록 번역했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나 데려가는 것과 붙잡혀 가는 것은 너무나 다른 것 아닙니까?
그런데 아무런 거부감 없이 주님께서 데려 간다고 생각하도록 번역한 것입니다.
이제는 바른 성경이 나왔으므로 제대로 읽고 주님의 말씀을 올바로 받아들여야 주님의 뜻대로 살 수 있으며 순종할 수 있습니다. 어느 한 구절로 단정 지으면 안됩니다. 전 후 구절을 살펴보아 어느 시기 누구에게 하시는 말씀인가를 자세히 살펴 보아야합니다.
분명히 오늘 구절들은 환란의 마지막 순간 주님께서 지상에 재림하실 시점임을 알아야합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을 읽을 때 34절로 36절까지만 읽지 말고 단락이 끝나는 37절까지 읽고 전체 문장을 함께 상고해 보아야 합니다. 중대한 실수는 마지막 37절을 읽지 않고 둘 중 하나는 하늘로 데려갔다고 생각하고 하나는 버림 받았다고 생각해 버린 데서 잘못 해석이 시작되었으며 그 데려간 곳이 어디인가를 확인하지 않은 것이 잘못입니다. 누구나 자신의 생각이나 자신의 상식이나 자신의 지식을 온전한 것으로 믿어서는 안됩니다.

2, 주님께서 사용하신 단어(말씀)를 대조해 보아야합니다.
두말할 것 없이 교회의 휴거는 데살로니가 전서4:16~17절일 것입니다.
[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음성과 하나님의 나팔 소리와 함께 친히 하늘로부터 내려오시리니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 그 뒤에 살아서 남아 있는 우리가 그들과 함께 구름들 속으로 채여 올라가 공중에서 주를 만나게 되리라. 그리하여 우리가 항상 주와 함께 있으리라.]
누가복음17장이나 마태복음24장에서는 둘 중에 하나가 붙잡혀 가고 하나는 남겨 진다고 했습니다. ........the one shall be taken, and the other left.
그러나 지금 읽은 데살로니가 전서4:17은 구름들 속으로 채여 올라갑니다. 사용된 단어가 틀립니다. ..........shall be caught up together with them in the clouds, 입니다.
붙잡혀 가는 것은 벌 받거나 심판 받으러 끌려가는 강제성이 있는 것입니다. 그들은 결코 구름들 속으로 데려 간 것이 아니라 땅의 다른 장소로 붙잡혀 간 것입니다. 그러나 휴거는 공중(위)으로 채여 올라갑니다. caught up 했습니다. 휴거는 땅에서 하늘로 공간 이동을 하지만, 붙잡혀 가는 것은 땅에서 다른 지역으로 구간 이동을 하는 것이며 휴거는 나팔 소리를 듣는 순간 홀연히 변화되어 올라가지만, 붙잡혀 가는 것은 변화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리고 휴거는 살아있는 성도들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라 믿음 가운데 그리스도 안에서 이미 죽은 성도들이 먼저 일어난다는 사실을 알아야합니다. 고전15:51~52, [보라, 내가 너희에게 한 가지 신비를 알리노니 우리가 다 잠자지 아니하고, 마지막 나팔 소리가 날 때에 눈 깜짝할 사이에 순식간에 다 변화 되리라. 나팔 소리가 나매 /죽은 자들이 썩지 아니할 것으로 일어나고/ 우리도 변화되리니]고전15:51~52, 에 말씀했습니다.
휴거는 살아있는 사람이나 죽어 이미 장사된 사람이나 구원 받은 자들은 모두 들려 올라가는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 누가복음 17장에는 구원이라는 단어나 죽은 자들에 대한 언급이 전혀 없습니다.
휴거를 시간적으로 따지자면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납니다. 데살로니가 전서4:16~17을 다시 한 번 읽어보겠습니다. [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음성과 하나님의 나팔 소리와 함께 친히 하늘로부터 내려오시리니 그리스도 안에서/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 그 뒤에 살아서 남아 있는 우리가 그들과 함께 구름들 속으로 채여 올라가 공중에서 주를 만나게 되리라. 그리하여 우리가 항상 주와 함께 있으리라.]
그리고 휴거는 나팔 소리와 관계있습니다.
그 나팔 소리는 들림 받는 대상들에게만 들릴 수도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와 같이 한 밤중에 자고 있는 사람을 붙잡아가거나 집에서 맷돌을 갈고 있는 사람을 다른 한 사람이 보고 있는 가운데 붙잡아 가거나 들에서 일하고 있는 사람을 또 한 사람이 보는 가운데 붙잡아 가는 것이 아닙니다. 주님의 공중 재림과 휴거의 순간에는 구원 없는 세상 사람들은 알 수 가 없이 일어나는 일이기에 도둑같이 란 말을 씁니다.
살전5:1~2, [그러나 형제들아, 그 때와 그 시기에 관하여는 내가 너희에게 쓸 필요가 없나니 주의 날이 밤의 도둑 같이 이를 줄을 너희 자신이 완전히 아느니라](살전5:1~2), 그런데 본문은 독수리들의 밥으로 던지기 위하여 다른 사람이 보는 가운데 붙잡아가고 사형장으로 끌려가는 모습입니다.
우리가 조금만 신경을 쓰고 성경을 살펴보았다면 분명히 분별했을 것입니다. 우리는 휴거의 시간이 혹 밤일지 혹 낮일지 혹 새벽일지 모릅니다.
오늘 본문에 보면 밤에 잠자리에서 붙잡혀 가는 사람, 들밭에서 일하다 붙잡혀 가는 사람, 집 안에서 맷돌을 갈다가 붙잡혀 가는 사람들을 확대 해석하여 지구는 둥그니까 어느 곳은 밤에 이일을 당할 것이고 어느 곳은 낮에 일하다가 이 일을 당할 것이고 어느 곳은 식사 준비를 하다가 이 일을 당할 것이라고 가르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본문의 사건과 휴거의 사건은 전혀 다른 것입니다.
물론 공중 재림이나 지상 재림의 때와 그 날과 시는 아무도 알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항상 깨어 있으라 하셨습니다. [너희는 주의 하라. 깨어 기도하라. 이는 그 때가 언제인지 너희가 알지 못하느니라]막13:33, 그 중에서도 주님의 공중 재림은 휴거 자들 외에 지상에 남아 있을 모든 사람들은 알 수도 없으며 주님을 볼 수도 없습니다.
또 막13:35, [그러므로 너희는 깨어 있으라. 집 주인이 어느 때에 올른지 저물 때일지, 한밤중일지, 닭 울 때일지, 아침녘일지, 너희가 알지 못하느니라.] 이 말씀은 공중 재림이나 주님의 지상 재림이나 동일하게 적용할 수 있습니다.

3, 그들이 붙잡혀 간 장소와 채여 올라간 장소가 다릅니다.
이미 말씀드린 대로 교회시대 성도들의 휴거된 장소는 공중입니다. 구름들 속으로 채여 올라가 공중에서 주님을 만나게 됩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에서 그들이 붙잡혀 간 곳은 어디입니까? 이것이 결정적인 해답이 되는 것입니다.
본문 눅17:34~36절 말씀을 듣고 있던 제자들이 주님께 그들이 어디로 붙잡혀 갔느냐고 물었습니다. 그 물음과 주님의 대답은 눅17:37절입니다.
[그들이 그분께 응답하여 이르되, 주여, 어디로 이니이까? 하니 그분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어디든지 시체가 있는 곳이면 독수리들이 거기로 함께 모여 들리라, 하시니라.]
그들을 붙잡아다가 공중에 나는 새들의 밥으로 던져 버린 것입니다.
34,35,36절의 둘 중의 하나가 붙잡혀 갔는데 제자들이 어디로 붙잡혀 갔는지 물어보는 37절을 제대로 읽고 살펴보았더라면 이 문맥이 결코 휴거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았을 터이나 성경을 자세히 탐구하지 않으므로 독수리와 모든 날짐승들의 밥이 되기 위하여 붙잡혀간 사람들을 휴거되었다고 가르치는 꼴이 되었습니다. 더욱이 개역 성경에는 36절이 없으므로 35절에서 단락되어 37절은 유의하여보지 않게 됩니다.
우리는 지금까지 잘못된 찬송가나 복음성가를 불러왔습니다. 대단히 복음적이고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 경종을 울리는 복음 송 같지만, 결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과는 정 반대의 상황이라는 것을 알아야합니다. 찬양집 “예수” 21장에 예수님 맞을 준비됐나? 후렴 부분을 살펴봅니다.
[두 사람이 함께 맷돌 갈다가 두 사람이 함께 잠을 자다가
한 사람은 가고 한 사람은 남겠네, 예수님 맞을 준비됐나?
두 사람이 함께 길을 가다가 두 사람이 함께 말을 하다가
한 사람은 가고 한 사람만 남겠네, 예수님 맞을 준비됐나?]
둘 중에 한 사람이 독수리의 밥으로 던져지기 위해서 붙잡혀 갔는데 휴거 된 것으로 알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예수님 맞을 준비라는 것입니다. 얼마나 우리는 잘못 알고 있었습니까?
그들이 끌려 간 곳은 [위대하신 하나님의 만찬]에 초대된 공중의 날아가는 모든 날짐승을 위한 만찬의 음식용으로 끌려간 것입니다.
계19:17~18을 다시 봅니다. [또 내가 보니 한 천사가 해 안에 서서 하늘 한 가운데로 날아가는 모든 날짐승을 향하여 큰 음성으로 외쳐 이르되, 와서 /위대하신 하나님의 만찬/에 모여 왕들의 살과 대장들의 살과 용사들의 살과 말들의 살과 말 탄 자들의 살과 자유로운 자나 매인 자나 작은 자나 큰 자를 막론하고 모든 사람의 살을 먹으라, 하더라.]
이 말씀과 본문 눅17:37을 잘 비교해 보시고 마24:28절을 비교해 보시면 더욱 확실해 질것입니다. 마24:28, [또 어디든지 사체(死體)가 있는 곳이면 독수리들이 함께 모여들리라.]
눅17:37하, [.......................어디든지 시체가 있는 곳이면 독수리들이 거기로 함께 모여 들리라, 하시니라.] 이 보다 더 확실한 해답은 없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순수합니다. 시편12:6절입니다. [주의 말씀들은 순수한 말씀들이니 흙 도가니에서 단련하여 일곱 번 순수하게 만든 은 같도다.] 이 순수한 말씀을 가감 없이 그대로 받고 그대로 믿는 것이 복된 것입니다.
잠언30:5~6, [하나님의 모든 말씀은 순수하며 그분은 자신을 신뢰하는 자들에게 방패가 되시느니라. 너는 그분의 말씀들에 더하지 말지니 그분께서 너를 책망하실 터인즉 네가 거짓말쟁이로 드러날까 염려하노라.]
순수한 말씀을 의도적으로 다르게 해석한 것은 아니지만, 전혀 다른 뜻으로 잘못 전했기 때문에 저는 지금까지 본의는 아니지만 거짓말쟁이 노릇 한 것입니다. 날짐승들의 음식으로 던지려고 붙잡아 간 자들을 하늘로 데려가셨다고 거짓 증언했습니다. 휴거 사건을 도둑 같이 임한다고 했는데 벌건 대 낮에 들에서 같이 일하는 사람이보는 가운데 붙잡혀간 것을 하늘로 데려가셨다고 거짓말했습니다.
두 여자가 함께 맷돌을 갈고 있을 때 다른 한 여자가 보고 있는 가운데 한 여자만 붙잡혀 간 것을 도둑같이 와서 데려 갔다고 거짓말했습니다.
하나님의 아들로 갓 태어난 아기들은 순수한 말씀으로 자라가야 건강한 아이로 성장할 수 있습니다. [새로 태어난 아기들로서 말씀의 순수한 젖을 사모하라. 이것은 너희가 그 젖으로 말미암아 성장하게 하려 함이라.]벧전2:2, 눈에 발견되지 않는 적은 양일지라도 유해 음식물을 계속 섭취하다보면 각종 질병으로 고생하게 됩니다. 그러기에 영적으로 건강하게 성장하려면 지극히 순수한 말씀으로 자라가야 합니다. 변질된 말씀, 첨가된 말씀, 삭제하여 모자라는 말씀을 장기간 섭취하다보면 자신도 모르게 영적으로 병들어 있음을 보게 됩니다.
저는 오늘 이 말씀을 전하면서 감사와 두려움이 교차합니다.
먼저 김원광 형제의 작은 의구심을 통하여 휴거 구절로 거의 교리화 되었던 문맥이 전혀 다른 상황이라는 것을 알게 되어서 감사가 넘치고 한편 우리가 제대로 성경을 상고하지 않고 들은풍월로 믿고 전하다 보면 전혀 다른 의미로 전달되어 하나님의 뜻을 왜곡시키게 된다는 것을 깨닫고 전능하신 주님께 두려움을 느낍니다.
주께서는 크신 은총을 베풀어 주셨습니다. 저를 긍휼히 보신 하나님께서는 저희의 지각을 열어주시어 말씀을 깨닫게 해 주셨습니다.
하나님께 이 모든 영광을 돌립니다.
저와 여러분들은 끊임없이 아직도 잘못 알고 있는 말씀들이 있다면 바로 알 수 있도록 깨달음을 달라고 계속해서 기도해야 할 것입니다.
잘못된 앎은 차라리 모르는 것이 더 낳을 것입니다. 성경의 무지는 무죄가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가 성경 기록들도 알지 못하고 하나님의 권능도 알지 못하므로 잘못하고 있느니라.]마22:29, 하셨습니다. 성경도 알지 못하고 하나님의 권능도 알지 못하면 잘못하게 됩니다. 그리고 잘못한 부분에 대해서는 책망을 듣게 됩니다. 항상 겸손하므로 깨닫게 해 달라고 기도하면서 매일 말씀을 읽고 묵상하고 공부하시기를 간절히 부탁드립니다.
우리는 오늘 [위대하신 하나님의 만찬]을 알았습니다.
이것은 다시 오실 주님을 사모함으로 그분을 기억하여 행하는 [주의 만찬]과는 전혀 다른 것입니다. 또한 환란 후에 있을 [어린 양의 혼인 만찬]과도 다릅니다. 그리고 [위대하신 하나님의 만찬]은 휴거 때가 아니고 7년 대 환란 마지막 지점인 심판주님의 지상 재림시기입니다.
우리는 기록된 성경을 읽을 때마다 성령님의 깨닫게 하심을 간구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순수한 말씀이 가감되고 훼손되고 변질된 이 마지막 때에 순수한 말씀인 킹제임스 성경을 알게 해 주신 하나님께 존귀와 영광 돌리시기를 간구합니다.
2012-05-01 20:4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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